FoundersAtWork

최고의 창업기회

내 책 ‘스타트업 바이블‘에서 가장 많이 강조된 내용은 창업의 3가지 필수조건인 사람, 돈, 그리고 아이디어다. 나열한 이 순서대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아이디어가 가장 덜 중요하고,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도 투자할 때 웬만하면 단독 창업가보단 공동 창업가가 있는 팀을 선호하고, 나는 공동 창업가가 없으면 웬만하면 창업하지 말라는 조언까지 한다. 그런데 이 힘든 여정을 오랫동안 같이 할 공동 창업가는 도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창업을 꿈꾸는 분들이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이다.

어디로 가면 좋은 사람이 많다는 정답을 줄 순 없지만, 경험상 이건 말해줄 수 있다. 어려울 때 깨지지 않고 오래 가고, 이렇게 버티다 보면 결국엔 성공하는 팀의 공통점을 보면, 학교 친구(주로 고등학교 이후의 친구들인데, 이 시점부터 미래와 커리어에 대해 고민을 하기 때문인 것 같다) 또는 직장 동료인 경우가 상당히 많다. 우리가 투자한 230개가 넘는 회사 중 지금 잘하는 회사들만 봐도 이 코파운더 구조가 나름 잘 적용되는데, 그냥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이해가 간다. 이해관계가 어느 정도 얽혀있는 사회에서의 관계가 시작되기 전부터, 인간적으로 오랫동안 친한 사람들이고, 서로를 나름 깊게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창업이라는 힘든 여정을 같이 하면서 좋을 때보단 좋지 않을 때 관계가 깨지지 않고 오래 간다는 건 정성적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학교 친구와 직장 동료의 관계를 조금 더 정량적으로 들어가서 분석해보면, 왜 이들이 좋은 코파운더가 되는지,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학생일 때와 직장 다닐 때가 왜 창업을 위한 최고의 기회인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일단 내가 좋아하는 워렌 버핏 이야기를 해보자. 버핏의 투자 원칙은 가치 투자이다. 가치 투자는, 특정 기업의 가격이 본연의 내재 가치보다 낮을 때 투자하는 전략이다. 간단한 예를 들면, 버핏이 계산했을 때 나이키의 실제 가치를 반영한 주식 가격이 $100이라면, 시장에서의 가격이 $100 이상일 때는 투자하지 않지만, 이 가격 이하로 떨어지면 대량으로 투자하는 방법이다. 즉, 제대로 실행한다면 가장 좋은 매물을 가장 적은 취득 비용에 구함으로써 장기적으로 항상 돈을 벌 수 있는 전략이다.

학교는 창업을 위한 가장 값진 자원을 가장 적은 비용에 취득할 수 있는 곳이다. 한가지 자원이 아니라 지식, 책, 정보, 코파운더, 세계적인 석학 등의 다양한 자원에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이런 자원을 가장 싸게 구할 수 있는 시간이 꽤 길어서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한 직장에 평균 3년 정도 일 한다고 가정해보면, 직장 밖에서는 접근이 용이하지 않은 다양한 자원을 아주 오랜 기간 동안 가장 적은 비용에 취득할 수 있는 곳이다(학교의 경우 거의 공짜라고 할 수 있다. 부모님이 학비를 부담하면).

종합해보면, 학생일 때와 직장인일 때 미래의 그 어느 시점보다 더 낮은 가격에, 더 많은 지적자산에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다. 창업을 위한 가장 소중한 자원은 사람인데, 좋은 코파운더와 팀원에 대한 접근성을 학교와 직장은 거의 공짜로 제공하기 때문에, 이 글을 읽는 분들이 학생이거나 직장인이면, 지금이 창업하기에 최고의 기회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참고로, 주로 고등학교, 대학교 또는 대학원 친구들이 좋은 코파운더가 되는 이유는 아마도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는 아직은 본인들이 미래에 대한 그림을 그리기 전이고, 뭔가 심각하게 커리어에 대해서 고민할 나이가 아니라서 그런 것 같다. 아, 물론, 항상 그런 건 아니다. 스트롱의 코파운더인 존과 나는 초등학교 친구이다.

진화하는 창업가

사람들이 나에게 자주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가, 투자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업가의 자질에 관련된 내용들이다. 실은 이 질문은 항상 받기 때문에 몇 년 전에 관련된 내용을 블로그에 정리한 적이 있다. 이 글에서는 대표이사나 창업가의 펀딩과 채용 능력에 관해서 썼는데, 그동안 ‘좋은 창업가’의 정의에 대한 내 생각이 보강돼서 몇 자 더 적어본다.

일단, 대표이사의 펀딩과 채용 능력은 여전히 중요하다. 실은, 사업 환경이 더욱더 힘들고 불확실하고, 경기가 좋지 않을수록 외부에서 자금을 수혈받을 수 있는 능력과 네트워크, 그리고 이 자금을 가장 효율적인 결과로 만들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을 회사로 데려오는 능력과 네트워크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하다.

스타트업에게 자금은 피와도 같다. 피가 몸에서 돌지 않으면, 우리가 살지 못하듯이, 회사에 돈이 돌지 않으면 망한다. 돈은 그냥 생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직접 벌든지, 아니면 외부에서 인위적으로 가져와야 하는데, 초기 스타트업은 돈을 벌 수 있는 제품, 시스템이나 비즈니스 모델이 아직 없기 때문에 대부분 외부에서 돈을 끌고 와야 한다. 아무것도 없는 회사가 그 가능성을 팔고, 이에 대한 대가로 투자를 받는 건 거의 예술에 가까운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남의 투자를 받는 것도 너무 힘든데, 이걸 회사에 유리한 조건으로 받아 오는 건 정말로 mission impossible이다. 이 단계에서 투자유치에 성공하는 건, 전적으로 창업가의 능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도 지금까지 엄청 많은 회사에 투자했지만, 투자를 위해서 같이 만나고 대화했던 창업가/대표는 정말로 아주 특별하고 신비한 사람들이다. 펀딩을 못 하는 대표가 운영하는 스타트업은 오래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말한 대로, 돈은 회사를 돌아가게 하는 피와도 같다. 그리고 피와 같은 돈으로 제품을 만들어서 판매하고, 다시 회사에 자금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좋은 사람들이 필요하다. 창업가의 또 다른 중요한 자질은 좋은 사람을 채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내가 항상 강조하는 “당신이 지금 힘들게 채용해서 만드는 team이 바로 당신이 만들 회사 그 자체임을 잊지 말아라.”는 말은 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누가 봐도 망하는 서비스를 유니콘으로 만드는 것도 좋은 사람들이고, 누가 봐도 유니콘이 될만한 서비스를 망하게 하는 것도 나쁜 사람들이다. 창업가는 지속적으로 받는 펀딩으로, 지속적으로 본인보다 똑똑하고 일 잘하는 사람들을 채용해야 한다. 실은, 이런 좋은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도 널려있지만, 이들이 듣보잡 스타트업으로 이직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이런 사람들을 데려오는 건 절대적으로 창업가/대표의 능력이다. 채용을 못 하는 대표가 운영하는 스타트업은 오래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실은, 펀딩과 채용의 기본이 되는 게 있는데, 이건 좋은 제품이다. 어떻게 보면, 대표이사와 창업팀의 가장 기본이 되는 능력은 고객을 감동하게 하는 좋은 프로덕트 빌딩 기술이다. 좋은 제품을 못 만들면, 펀딩도 못 하고, 채용도 힘들다. 기술력이 있는 팀, 제품이 있고 가능성을 보이는 초기 수치가 있는 팀, 제품에 대한 생각하는 논리와 프로세스가 좋은 팀, 또는 과거에 엄청난 프로덕트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 팀, 이 모두 다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팀이고, 이런 팀이 펀딩과 채용을 더 잘할 확률이 높다.

제품, 펀딩, 채용, 이 세 가지는 너무나 중요한 창업가의 자질이고, 우리가 투자하기 전에 세밀하고 꼼꼼하게 따져보는 포인트들이다. 그런데 최근에 우리가 자세히 보려고 하는 네 번째 포인트가 있는데, “배울 의지가 있는 창업가” 또는 “진화할 수 있는 창업가”이다. 영어로는 founder evolution이라고 하는데, 사업을 하면 할수록 창업가가 더 좋은 창업가로 진화하고 결국엔 기업인으로 진화할 수 있는 자질을 말한다. 그리고 진화할 수 있는 자질을 판단할 수 있는 세 가지 포인트는 위에서 말 한 제품, 펀딩, 채용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우리가 가장 먼저 투자해서 지금까지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당근마켓의 창업가들, 클래스101의 창업가들, 핀다의 창업가들 모두 다 위에서 말 한 네 가지 자질이 압도적으로 뛰어나다. 그리고 우리가 투자하지 않았지만, 토스의 이승건 대표님과 같은 분도 이런 능력과 자질이 있는 거로 알고 있다.

결국, 우리가 찾는 창업가의 단 하나의 특징이라고 하면, 위에서 말한 모든 자질을 포함하는 ‘진화하는 창업가’라고 할 수 있다.

장난감, 취미, 그리고 사업

작년 말에 우린 브레이크앤컴퍼니라는 회사에 투자했다. 내가 이 블로그를 통해서도 자주 이야기하는 게, 최근에 우리가 투자한 회사들은 나에게 꽤 새롭기 때문에, 사업을 다 이해하기전에 – 실은, 어차피 아무리 공부를 해도 100% 다 이해하는 건 쉽지 않다 – 믿고 투자한 경우가 굉장히 많다. 처음에는 이렇게 투자하는 게 적응이 안 됐지만, 이제 어느 정도 적응이 됐고, 이 회사들의 실적이 나쁘지 않은 걸 확인하면서 이렇게 투자해도 괜찮겠다는 희망이 많이 생겼다.

브레이크앤컴퍼니는 스포츠(농구, 야구, 미식축구 등)나 컨텐츠(포켓몬, 유희왕 등) 분야의 IP를 보유한 곳으로부터 라이선스를 받아서 제작되는 트레이딩 카드를 그레이딩(=평가, 등급화)하는 아시아의 유일한 회사이다. 참고로, 이 회사는 NFT가 아니라 실물 카드만을 취급하는데, 내가 몰랐던 시장 중 이렇게 큰 시장이 존재하는 사실 자체가 당시에 나에겐 충격이었다. 상태가 양호한 마이클 조던의 카드는 수억 원을 쉽게 초과하고, 포켓몬 카드의 가격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이 회사는 첨단 기술을 활용해서 카드의 품질과 상태를 검증하고, 여기에 등급을 매긴 후, 특수 제작한 플라스틱 케이스에 카드와 라벨을 봉인해서 등급을 의뢰한 고객에게 다시 보내준다. 이 플라스틱 케이스를 고객들이 ‘브레이크’하는 데서 회사의 이름이 유래됐다.

이런 회사에 투자했다고 하면, 대부분 이건 사업이 아니라 애들 장난이라고 하는데, 바로 그 점이 나에겐 중요했다. 우리 주변의 많은 위대한 사업들, 특히 우리의 습관을 바꾼 사업들은 대부분 장난이나 취미활동에서 시작됐다. 똑똑한 창업가들이 없는 시간을 쪼개서 밤늦게 또는 주말에 만지작 거리면서 뭔가를 조금씩 만들다 보니, 주변에 또 다른 똑똑한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됐고, 이들에게도 장난감 같은 취미였지만, 어느 순간에 이게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큰 사업이 되는 경우를 꽤 많이 봤다.

브레이크앤컴퍼니의 사업을 나는 아직도 100% 이해하지 못하고, 이 서비스를 열렬하게 사용하는 고객도 아니지만, 장난감같이 시작한 취미 활동이 큰 사업이 될 거라는 확신이 크다.

인터넷 서비스에 대해 일가견이 있고, 좋은 인사이트를 항상 많이 공유해주는 a16z 파트너 Chris Dixon의 글을 읽으면 내가 브레이크앤컴퍼니에 대해서 생각했던,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결국 모든 위대한 비즈니스는 똑똑한 사람들의 취미와 장난 거리로 시작하고, 이들이 주말에 재미 삼아서 뭔가를 계속 발전시키면서 점점 더 모습이 잡혀간다는 이야기인데, 많이 동의한다.

“Cynics sound smart but optimists build the future(부정적인 사람들의 말이 항상 더 똑똑해 보이지만, 결국 낙관주의자들이 미래를 만든다)”

아멘.

마법의 순간

얼마 전에 도산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고 있었다. 내 뒤에는 젊은 여성 두 분이 쉬지 않고 떠들고 있었는데, 너무 시끄러워서 살짝 짜증이 났었다. 그런데 갑자기 “…축구…플랩…”이라는 말이 들려서 집중해서 두 분의 대화를 엿들어봤다. 앞뒤 내용은 내가 잘 모르겠지만, 둘 중 한 분이 축구(=풋살: 미니축구)를 좋아하고, 이번 주에 두 번이나 플랩으로 축구를 했다는 게 내가 듣고 싶었던 그 부분이다. 팀이 없어도, 혼자 가도 선수를 매칭해주는 우리 투자사 소셜풋살 플랫폼 플랩풋볼이 메인스트림 시장으로 진입하는 마법의 순간을 내가 강남 한복판에서 목격한 감동의 순간이었다.

우리가 꽤 대중적이고 생활밀착형인 서비스에 많이 투자하다 보니, 나는 위에서 말 한 이런 마법의 순간을 몇 번 경험해봤다. 당근마켓이 지금은 국민 앱이 됐지만, 우리가 처음 투자할 때는 트래픽이 별로 없었고, 초반에는 성장도 상당히 더뎠다. 시간이 가면서 입소문으로 앱이 바이럴하게 퍼졌지만, 그래도 내 주변에 당근마켓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회사에서 퇴근하는 만원 버스 안에서 여기저기 밀리고 치여서 짜증이 살살 나고 있을 때, 뒤편에서 귀에 익은 깜찍한 소리가 들렸다. 바로 “당근~” 소리였는데, 아직도 그 순간이 기억난다. 아무도 몰랐던, 그리고 그 누구도 이렇게 성장하리라고 예측 못 했던 – 물론, 당시엔 지금 당근마켓의 성장은 상상도 못 했다 – 회사에 우리가 초기 투자를 하고, 그 서비스를 만원 퇴근 버스 안의 내가 모르는 그 누군가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한 그 순간은 정말로 마법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세탁특공대도 이와 비슷한 순간이 있었다. 나는 투자자라서 초반부터 열심히 세특을 애용했지만, 당시 우리 아파트 주민들은 대부분 동네 세탁소 또는 클린토피아를 사용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동네 세탁소 아저씨를 만날 때마다 속으로는 “빨리 모든 사람이 세탁특공대를 사용해야할텐데…언제 그렇게 될까”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순간이 생각보다 빨리 왔다. 어느 날 너무나 낯익은 세탁특공대 유니폼을 입은 요원을 우리 아파트 정문에서 만났고, 혹시 몇 동 몇 호에 가시냐고 물어봤고, 우리 집이 아니라는 걸 확인했을 때, 마법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청담도서관에서 어느 날 플라이북의 키오스크를 발견한 순간도 마법과도 같았다. 무에서 유를 만들고 싶어 하는 회사에 투자했는데, 정말로 대중이 사랑하고 내 눈앞에서 어린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와서 플라이북 키오스크에서 추천해주는 책을 도서관에서 대여하면서 기뻐하는 그 모습을 보는 건, 마법과도 같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이런 마법의 순간을 더 자주, 더 오래, 그리고 더 깊게 느꼈으면 좋겠다.

매출이 다시 중요해지는 시점

지난 2년 동안 시장에 유동성이 넘쳐흘렀는데, 이제 그 돈줄이 서서히 마르고 있다. 한국에서는 천천히 마르는 것 같은데, 미국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는 조금은 다르게, 급격하게 돈줄이 메마르고 있는 것 같다. 시장에 돈이 너무 많이 풀려서 발생한 결과 중 하나가 말도 안 되게 높은 스타트업 밸류에이션이었다. 창업한 지 한 달도 안 되는 회사가 100억 원 이상의 밸류에이션으로 투자받는 상황이 이젠 이야깃거리도 아니다. 과거에 이런 회사에 기업가치 30억 원 이하로 투자를 주로 해서, 기업가치가 떨어질 거라는 생각으로 기다리는 동안, 우리가 안 하면 누군가는 이 밸류에 투자를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현상은 시장에 돈이 너무 많이 풀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분들은 물가가 올랐고, 스타트업 밸류에이션에도 이런 물가 상승이 반영되어야 하므로 이렇게 가격이 비싸졌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이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팬데믹 기간 동안 이렇게 밸류에이션이 높아졌을 땐, 오히려 매출이 발생하는 회사들이 매출이 전혀 없는 회사보다 더 나쁜 조건으로 투자받는 걸 많이 경험했다. 예를 들어, 사업 시작한 지 2년 됐고, 월 매출 1억 원 하는 스타트업이 펀딩을 하면, 많은 VC가 이 회사의 밸류에이션을 현재 매출을 기반으로 책정했다. 아주 1차원적으로만 계산해보면, 월 매출 1억 원이면, 연 매출 12억 원이고, 분야에 따라서 이 연 매출의 배수를 회사의 밸류에이션으로 계산했다. 뭔가를 판매하는 이커머스라면, 배수가 낮기 때문에 연 매출의 2배~5배 사이가 이 회사의 밸류에이션일 확률이 높다. 즉, 월 매출 1억 원 하는 이커머스 회사의 밸류에이션은 24억 원 ~ 60억 원 사이로 생각한다. 참고로, 무에서 시작한 회사가 매달 고객으로부터 1억 원을 벌고 있다는 건 대단한 업적이다.

그런데, 창업한 지 3개월도 안 된, 매출은커녕 비즈니스 모델도 없는 회사가 100억 원 기업가치에 투자받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까? 이런 회사는 오히려 매출이나 수치가 전혀 없기 때문에 위에서 말 한 수치 기반의 밸류에이션 산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냥 이런 밸류에이션이 가능하다고 본다. 물론, 사업성이 유망하고 능력 있는 팀이지만, 그렇다고 2년 동안 확실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서 돈을 벌고 있는 회사보다 이 회사의 기업가치가 높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아마도 첫 번째 예로 든 회사는 업력이 좀 됐기 때문에, 짧은 기간에 빠른 성장을 원하는 VC들에겐 성장이 느린 회사로 인식됐을 것이다. 그리고 뭔가 계산을 할 수 있는 숫자(매출)가 있기 때문에, 밸류에이션에 디스카운트가 됐을 것이고, 창업한 지 얼마 안 된, 숫자가 없지만 요새 유행하는 기술을 기반으로 완전히 새롭게 창업한 회사가 밸류에이션 프리미엄을 받았을 것이다.

이제 경기가 꺾이면서, 이 상황이 역전되고 있다. 이젠 비즈니스 모델과 매출이 없는 회사들보단, 작더라도 매출이 발생하고 있는 회사들이 투자받을 확률이 더 커졌다. 이 불경기와 인플레이션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불투명해졌는데, 이런 불확실한 경제 상황을 버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게 견고한 비즈니스 모델과 매출이라서 그런지 이젠 많은 투자자들이 매출이 발생하고 있는 회사들을 다시 선호하고 있다.

유동성이 넘쳐 흘려서 비즈니스가 없음에도 부르는 밸류에이션이 값이 되는 시기에는 우리 투자사에 작은 매출을 만들 바에 일부러 매출을 발생시키지 말라는 조언을 한 적이 있다. 그래야지 오히려 더 높은 밸류에이션으로 투자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인데, 이 논리는 얼마 전에 빌 게이츠가 말했던 ‘더 큰 바보 이론(The Greater Fool Theory)’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즉, 내가 아무리 비싸게 사도, 누군가는 이 가격보다 더 비싸게 살 것이고, 이 가격보다도 더 비싸게 살만한 또 다른 바보가 내 주변에 널려있기 때문인데, 시장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이제 모두 다 현실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 것 같다.

이제 다시 매출이 정말로 중요한 시점이 돌아왔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계속 이 분위기가 아주 오래 지속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