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undersAtWork

경쟁사가 아니라 고객에게 집중하기

반려견 돌보미 마켓플레이스를 운영하는 우리 투자사 도그메이트와 얼마 전에 이야기하다가, 도그메이트 관련 민원이 구청에 많이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도그메이트가 뭘 잘못해서가 아니라, 악성 민원이 대부분인데, 이런 P2P 모델이 생기 기전부터 운영되던 애견호텔이나 동물병원이 민원의 근원이다. 이들의 논리는, 자신들은 엄청나게 큰돈을 투자해서 동물병원이나 애견호텔을 운영하는데, 도그메이트와 같은 ‘신삥’이 갑자기 시장에 등장해서 물을 흐린다는 이야기다. 수년 동안 본인들이 공을 들였고, 돈과 시간을 투자했는데, 도그메이트와 같은 업체들이 그런 과거의 노력과 땀을 거저 가져가는 건 불공평하다는 주장이다.

내가 동물병원이나 애견호텔을 직접 운영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런 민원이나 논란에 대해서 직접 할 말은 없지만, 새로운 플레이어의 등장으로 인해 기존 세력들이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이고, 방해 공작을 펼치는 건 매우 익숙한 광경이다. 택시, 중고차, 호텔, 부동산 등의 산업에서 수십 년 또는 수백 년 동안 독점적인 위치를 누리던 기존 업체들이, 기술로 인해 세상이 변하고, 이런 트렌드를 잘 파악해서 새로운 시각과 태도로 비즈니스에 접근하는 신생 스타트업들한테 이런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건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자주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뭐, 솔직히 이들의 반응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 하는 건 아니지만, 항상 아쉬운 맘은 있었고, 도그메이트에 대한 기존 플레이어들의 민감한 반응을 보고 다시 한번 이런 아쉬운 맘이 들었다.

이런 기존 세력들이 놓치고 있는 게 있는데, 바로 경쟁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정말로 중요한 ‘고객’을 완전히 놓치고 있다는 점이다. 도그메이트 비즈니스가 지속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시장에 존재하던 기존 서비스들이 고객의 가려운 부분을 제대로 긁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애견호텔이나 동물병원은 기본적으로 공간이 협소한데, 그 협소한 공간에서 최대한 수익을 많이 내기 위해서 어이없이 많은 개를 숙박시킨다. 수익을 많이 내야 하는 이유는, 호텔이나 병원을 만들기 위해서 들어간 비용을 되찾아야 하거나, 월세를 감당하기 위해서이다. 이러다 보니, 대부분 애견호텔이나 병원에서는 개들을 케이지 안에 가둬놓는데, 이건 개들한테는 정말 최악이다. 그 어떤 개 주인도 자기 개를 케이지에 가둬놓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다. 적은 인력이 많은 개를 돌봐야 하고, 개들도 사람같이 모두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불미스러운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많은 개를 돌봐야 하는데,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돌봄 인력은 항상 부족하게 운영하니, 이런 병원이나 호텔에서 모든 개가 세심한 보살핌을 받을 수가 없다. 그러다 보면, 사고도 자주 발생한다. 나도 미국에서 애견호텔에 우리 개를 몇 번 맡겨봤지만, 항상 불안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Rover와 같은 서비스가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애견호텔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도그메이트는 이 산업의 기존 문제점들을 많이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대체재다. 물론, 완벽하진 않지만, 최대한 개 주인들의 목소리를 듣고, 반영하고, 지속해서 서비스를 개선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기존 세력들은 보지도 못하고, 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냥 이들한테는 족보도 없는 듣보잡 애들이 갑자기 이 시장에 들어와서, 자기들 밥그릇과 점심을 야금야금 빼앗아 가고 있다는 일차원적인 생각밖에 못 하고 있다. 왜 그 점심을 도그메이트가 뺏어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다.

미국 비디오/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주무르던 블록버스터는 넷플릭스라는 새로운 플레이어 때문에 망했다는 게 정설이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맞다. 하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바로 블록버스터가 고객의 목소리를 듣지도 않고, 고객한테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디오테이프를 늦게 반납하면 지급해야 하는 어마어마한 연체료 때문에 블록버스터 고객들은 불만이 정말 많았지만, 오히려 연체료야말로 회사의 수익원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고객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결국, 좋은 대체서비스인 넷플릭스가 등장하면서 고객을 빼앗기기 시작했고, 인터넷 스트리밍이라는 변화를 부인하다가 회사가 망했다. 이런 과정에서 블록버스터는 고객한테 집중하기보단, 넷플릭스를 모함하고 방해하는 쪽에 더 많은 자원을 집중했던 거 같다.

고객한테 집중하지 않고 경쟁사를 방해하는데 신경을 쓰는 회사의 미래는 밝을 수가 없다.

비슷하면서 다른

사진 2018. 5. 15. 오후 1 27 43테이크아웃 커피를 주문하면, 열을 보존하고, 커피가 흐르지 않도록 일회용 컵 위에 플라스틱 리드(=뚜껑)를 끼워준다. 나는 최근 미국에 살았던 약 9년 동안 매일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시면서, 커피를 워낙 많이 흘려봐서 이 리드에 상당히 민감하다. 어떤 리드는 헐렁해서 조금이라도 컵이 출렁거리면 커피가 흘러나오고, 어떤 리드는 너무 타이트해서 잘 끼워지지 않는다. 종이컵과 리드의 교합이 조금이라도 잘 맞지 않으면, 커피가 스며 나와서 옷이나 차 안에 떨어지는데, 이게 여간 짜증 나는 게 아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스타벅스의 리드가 가장 훌륭하다. 외형도 튼튼하고, fit도 좋아서, 한 번에 끼울 수 있고, 끼운 후에는 웬만하면 커피가 흐르지 않아서 언제 어디서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다. 이와 반대로 한국 프랜차이즈 커피나 그냥 동네 커피숍은 거의 항상 컵과 리드 사이로 커피가 흐른다. 실은, 이게 어떤 사람들한테는 이슈가 아닐 수 있고, 어떤 이들은 이런 걸 알아차리지도 못 할 텐데, 내가 보기엔 디테일에 대한 세심한 관심의 차이고, 모든 고객이 나 같다면, 커피 가게의 생존과도 직결되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이다.

며칠 전에 우리 사무실 옆 동네 커피 가게에서 산 아메리카노를 마시는데, 커피가 새어 나와 새 바지 위에 흘렸는데, 이걸 보면서 – 물론, 엄청 짜증났다 – 창업가들이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직도 많은 창업가는 스스로 열심히 회의하고 고민하고, 전체 개발팀이 밤을 새워가면서 만든 제품을 론치 하면, 그 이후에는 돈만 써서 마케팅하면, 모든 게 해결되는 줄 알고 있다. 사용자 수가 증가하지 않고, 매출이 증가하지 않으면, 가장 큰 이유는 마케팅을 못 해서 아직 우리 제품을 남들이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시장에는 유사한 제품과 서비스가 많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투자를 많이 받고, 마케팅에 돈을 태워서,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고 많은 창업가가 주장한다.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위에서 말한 커피 리드의 경우와 같이, 겉으로 보면 다 똑같은 커피 리드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사용해보면 사용자가 느끼는 최종 사용자 경험은 하늘과 땅 차이다. 그리고 이런 하늘과 땅의 차이를 만드는 건 겉으로 대충 보면 절대로 발견할 수 없는 디테일이다. 이런 디테일은 수천 번의 시행착오 기반의 product iteration과 고객의 목소리에서 나온다.

누구나 자주 가는 단골 식당이 한두 개는 있을 것이다. 이 단골 식당에서 이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요리를 제공하진 않을 것이다.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냉면, 김치찌개, 짜장면이나 파스타 뭐 이런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일 텐데,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식당은 남들과 뭔가 다르고, 더 맛있게 요리하기 때문에 인기가 있다. 겉으로 보면 그냥 평범한, 서울에만 수 백 개가 있는 냉면집이지만, 다른 식당과는 다르고, 그래서 맛이 좋은 식당이 항상 돈을 잘 번다. 이와 반면에 똑같은 음식을 판매하지만, 어떤 식당들은 맛이 없어서 손님이 없다. 잘 되는 식당은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있어서 장사가 잘 되는 건 아니다.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많은 연구를 하고, 세심하게 디테일을 관찰하는 허름한 식당이 동네 상권을 일으키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너무 많은 창업가가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블루오션’을 찾으려고 한다. 그리고 남들이 이 분야로 들어오기 전에 빨리 뭔가를 해서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으려고 한다.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한다. 아무리 경쟁이 심하고, 겉으로 보면 포화된 시장이지만, 겉으로는 비슷하지만 뭔가 다른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 기회는 항상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큰 차이라기보단, 작은 차이가 이런 기회를 가져다주고, 이런 작은 차이는 팀의 비전, 확신, 그리고 실행력이 만드는 거 같다.

마찰력의 크기

창업가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시장의 크기,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 그리고 마찰력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실은 이 3가지가 거의 다 비슷한데, 최근에 만났던 꽤 멋진 창업가와 미팅을 하다가 나온 ‘마찰력의 크기’에 대해서 몇 자 적어본다.

사용자의 관점에서 보면, 마찰력은 사용자의 경험을 해치는, 흔히 말하는 창업가들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이다. “그 제품은 다 좋은데, 이 부분이 좀 어려워서…막상 사용하기는 쉽지 않지.”에서 그 어려운 부분이 바로 이 제품의 마찰점, 또는 마찰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마찰력을 확대해석해보면, 바로 많은 창업가가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이유인 ‘해결하려는 문제’가 되고, 이를 조금 더 확대해보면, 시장의 크기가 된다. 그냥 본인이 원래 좋아하는 걸 비즈니스로 만든 창업가도 많고, 특별한 시장에 대한 고민 없이 돈을 엄청 벌고 싶어서 창업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특정한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창업을 한다. 이 문제점은 창업가가 오래전부터 관찰했는데 아무도 관심 두지 않은 이슈일 수도 있고, 아무 생각 없다가 갑자기 “아, 바로 이거야!”라고 순간적으로 느낀 그런 문제일 수도 있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문제가 너무 많다. 아침에 눈을 떠서, 다시 밤에 잠들기 전까지, 심지어는 잠을 자는 동안에도 창업가의 눈으로 보면 조금 더 빠르고, 조금 더 싸고, 조금 더 좋은 방법으로 개선할 수 있는 프로세스가 너무나 많고, 좋은 창업가라면 이런 개선의 여지가 있는 문제를 비즈니스 기회로 연결한다. 이런 분들한테 내가 조금 더 강조하는 건, 이 문제점들의 마찰력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개선하고자 하는 프로세스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제공하는 대체제품을 사용할 정도로 그 문제점이 불편한지에 대해서 고민해봐야 한다는 점이다. 즉, 내가 제공하는 제품의 편리성이, 대체하고자 하는 기존 제품의 마찰력을 완전히 압도하지 못하면, 시장은 굳이 새로운 제품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관련해서 내가 자주 드는 예시는 모바일 결제이다. 애플페이와 삼성페이가 출시됐을 때 시장의 기대는 어마어마했다. 이제 곧 시장에서 신용카드는 없어질 것이고, 사람들이 더이상 현금을 가져 다닐 필요가 없기 때문에 지갑도 곧 없어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했다. 나도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고, 다만 상점들이 모바일 페이를 위한 하드웨어를 도입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수년 이 지난 이 시점, 아직도 절대다수는 신용카드와 현금을 사용하고 있다. 그 이유는 상점들이 기기를 도입하지 않기 때문은 아니다(물론, 기기의 비용도 장애물 중 하나이긴 하다). 가장 큰 이유는, 모바일 결제가 대체하려고 했던 신용카드 사용의 마찰력이 의외로 낮았기 때문이다.

실은, 나도 모바일 페이를 사용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꺼내서 한 번만 긁으면 결제가 되는 게 이미 쉬운데, 굳이 핸드폰을 사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신용카드가 더 가볍고, 작아서, 핸드폰을 사용하는 거보다 더 쉽다. 신용카드나 현금 대비 모바일 결제가 가져다주는 편리성에 대해서는 당연히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수십 년 동안 사용하던, 그다지 불편하지 않은 카드를 버릴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모바일 영수증도 비슷한 거 같다. 종이가 필요 없고, 나무도 덜 죽이고, 뭐 다 좋은데, 그냥 영수증 하나 받아서 주머니에 넣으면 되기 때문에 굳이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고 영수증을 문자로 받진 않는다. 오히려 이게 더 불편하기 때문이다.

창업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마찰력을 줄이는 건 너무 좋다. 다만, 입증되지 않는 신제품을 사용하는 거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히 큰 게 현실이다. 내가 제공하는 대체제품을 시장에서 간절히 필요할 정도로 기존 마찰력이 큰지는 잘 생각해봐야 한다.

Keep it Simple, Stupid

영어에 KISS 라는 말이 있다. Keep it Simple, and Stupid의 약자인데, 이 말은 1960년대 미 해군에서 나왔다고 한다. 복잡하게 만들기보단, 멍청할 정도로 단순하게 만든 시스템이 훨씬 잘 작동한다는 미 해군의 디자인 원칙인데, 스타트업계에서도 자주 언급된다.

며칠 전에 USV의 Fred Wilson이 비슷한 맥락의 에서 이걸 다이빙에 비유했다. 올림픽 다이빙 선수는 우승하려면 공중에서 최대한 어렵고 복잡한 동작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정확한 지점에서 입수해야 하지만, 스타트업은 그냥 단순한 동작으로 물에 입수하는데 집중하라는 내용이다. 동작을 너무 복잡하게 하면 수영장 물밖에 떨어질 수 있는데, 그러면 죽을 수 있으니까, 완벽하진 않아도 계속 물에만 떨어질 수 있게 간단한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더 복잡한 동작을 소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나도 이 말에 동의한다. 아직도 가끔 한 시간 이상 창업가의 이야기를 들어도, “죄송한데요, 그래서 뭐 하는 회사라고요?”라는 질문을 하는 경우가 많다. 비즈니스 모델도 복잡하고,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너무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런 비즈니스는 주주명부와 법인구조조차 상당히 복잡하다.

소위 말하는 유니콘 회사 중 비즈니스 모델을 이해하려면 공학박사 학위가 필요하고, 모든 게 다 복잡한 회사도 있지만, 내가 아는 대부분의 잘 하는 회사는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비즈니스를 하고, 그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실행력으로 엄청난 진입장벽과 해자(垓字)를 만든다. 그리고, 성장하는 비즈니스를 계속 단순하게 만들려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정확히 구분해서 다 쳐내는 게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잘 하고, 해야만 하는 일에 회사의 모든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초등학교 과학실험 중 돋보기로 햇빛을 모아서 종이를 태워본 분은 경험적으로 알 것이다. 햇빛이 모이는 면적이 작을수록 종이가 잘 탄다. 면적이 너무 넓으면 그냥 그을리기만 한다. 아주 단순하게, 햇빛을 모아서, 그냥 한 곳에만 집중하면 된다. 비즈니스도 마찬가지이다. Keep it simple, and keep it stupid가 좋다.

오늘도 나는 “그래서 뭐 하는 회사라고요?”라는 질문을 했고, 이 비즈니스에는 아마도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세상, 새로운 창업가

15 yr old hacker암호화 화폐에 관심 있다면 Ledger라는 하드웨어 지갑을 갖고 있거나, 알고 있을 것이다. 나도 이 제품을 초기에 구매한 고객이다. 인터넷과 연결이 끊긴 하드웨어 지갑이고, 보안 쪽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회사라서 매우 안전한 제품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이 Ledger의 보안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는걸 얼마 전에 한 해커가 발견하고, 이걸 인터넷에 공개했다. 재미있는 건 이 해커는 Saleem Rashid라는 15살 짜리 영국 소년이다. 실은 Ledger는 제품의 결함을 발견한 사람을 대상으로,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회사에 먼저 알려주면 보상을 해주는 bounty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외부에 공식적으로 알려진 건 없지만 회사가 이 꼬마에게 제안한 상금이 상당히 높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Saleem은 이 제도를 통해서 받을 수 있는 보상을 거부하고, 그냥 온 세계에 제품의 결함을 공개해버린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내가 들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솔직히 소문이기 때문에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난 생각한다. Saleem이 제품의 치명적인 결함을 발견했다는 소문을 Ledger도 들었고, 외부에 공개하지 않으면 엄청난 보상을 하겠다고 이미 개별적으로 접촉해서 제안했다고 한다. 보상금액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15살의 머리로는 상상도 못 할 수준의 금액이었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Ledger가 이 소년을 채용하려는 시도까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한테 돌아온 건 거의 “FUCK YOU” 수준의 답변이었고, 이 소년은 제도권의 부탁과 의견을 완전 무시한 채, 테크크런치와 레딧과 같은 미디어를 통해서 온 세상에 Ledger의 결함을 공개했다.

이 사건에 대해 들었을 때,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고, 태어날 때부터 모바일과 인터넷이 생활 일부가 되는 신세대는 우리랑 완전히 다른 시각을 갖고 있고, 뇌 구조 자체가 다르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솔직히 나는 Saleem의 태도를 잘 이해할 수가 없다. 그냥 보상금을 받고 편안하게 살면서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해도 될 텐데, 굳이 제도권의 여러 이해관계자를 화나게 하면서까지 이런 무모한 짓을 할 필요가 있었겠느냐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내가 이해를 못 해도 상관없다. 이게 현실이니까. 요즘 신세대는 우리 같은 기성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종이다. 그리고 미래의 페이스북, 구글과 아마존을 만드는 창업가는 Ledger를 해킹한 소년과 같이 기성세대의 가치는 안중에도 없고, 인터넷과 모바일을 몸 일부와 같이 다룰 수 있는, 그런 젊은 친구일 가능성이 높다.

실은, 우리같이 늙어가는 VC가 앞으로 만나고, 설득하고, 같이 일해야 하는 창업가가 이런 이해하기 힘든 젊은 친구들이라는 생각은 흥분되기보다는 좀 걱정된다. Saleem 같은 창업가가 나를 찾아오면 나는 편견 없이 이 친구를 대할 수 있을까? 어쩌면 “저런 싸가지없고 버릇없는 놈이랑은 같이 일 할 수 없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이 업을 계속하려면, 그리고 미래의 유니콘 회사에 투자하고 싶다면, 우리 같은 VC는 이런 젊고 이해하기 힘든 창업가들을 더욱더 많이 만나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이게 가능해지려면, 스스로 많이 변화해야 한다. 많은 충돌도 있을 것이지만, 세상이 바뀌면서 사람도 바뀐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VC는 반드시 도태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지난주 일요일 SBS 스페셜 다큐멘터리에 중국에서 맹활약하는 한국의 프로게이머 ‘페이커’와 그를 한류 아이 돌보다 더 신같이 존경하는 중국의 ‘주링허우 세대(=중국 경제를 이끌어가는 90년대생 중국 청년)’가 소개되었다. 주링허우 세대 또한 나는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해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역시 스스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

<이미지 출처 = Born Rea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