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draising

제품도 없는데 수익은 어떻게?

얼마 전에 TechCrunch에서 배양육 산업 관련 기사를 읽었다. 우리도 국내 최초의 배양육 스타트업 셀미트에 투자했기 때문에, 관심을 갖고 기사를 정독했다. 기사의 제목은 “Even after $1.6B in VC money, the lab-grown meat industry is facing ‘massive’ issues” 였고, 내용은 암울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너도나도 대체 단백질과 배양육 시장에 투자하기 바쁠 땐, 거의 묻지마 투자 수준으로 많은 돈이 이 시장에 투입됐지만, 연구개발에 생각보다 많은 돈과 시간이 필요하고, 이후에 관계 정부 부서의 승인 받는 것도 어렵다는 걸 이제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있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현실은, 연구개발을 하고 승인을 받아도, 결국 돈을 벌기 위해선 배양육 제품을 팔아야 하는데, 시장에서 수용할 수 있는 가격대에 대량 생산하기 위해서는 상상 이상의 돈이 설비와 공장에 투입돼야 하므로 투자자들이 이젠 이 분야를 등한시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실은, 순수 소프트웨어 사업이 아닌, 사람의 개입이 필요한 operation이 필수인 사업도 비슷한 문제에 항상 직면해 있긴 하다. 멀리 볼 필요도 없고 가까운 스트롱 포트폴리오 네트워크에만 보더라도 이런 회사들이 수두룩하다. 대표적인 예가 모바일 세탁소 세탁특공대인데, 앱으로 세탁을 맡길 수 있지만, 결국엔 회사에서 세탁물을 수거해서 본인들이 직접 운영하는 세탁공장으로 운반하고, 여기서 세탁한 후에 다시 고객들에게 배송해야 한다. 분명 소프트웨어 비즈니스이지만, 사업의 절반 이상이 전통적인 물류와 공장 운영이다. 굉장히 돈이 많이 필요하고, 상상 이상의 돈이 설비와 공장에 투입되어야 한다는 점은 위에서 언급한 배양육 회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세탁이라는 업은 첫 매출을 만들기 위한 R&D는 필요 없다. 사업을 개선해서 더 많은 매출을 만들기 위한 R&D는 있지만, 이게 없어도 세탁업은 시작할 수 있고, 매출을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만든 매출과 다른 의미 있는 수치를 기반으로 계속 적당한 밸류에이션에 투자 받으면서 사업을 키울 수 있다.

하지만, 배양육 사업은 오랜 기간 동안 아주 무거운 R&D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제품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돈을 버는 건 시작도 못 한다. 사업을 시작하지 못하고, 돈을 아예 못 벌면, 투자받는 게 쉽지 않다. 경기가 아주 좋을 땐, 기술력을 평가하고 미래의 수익성을 기반으로 좋은 조건에 큰 투자를 하는 투자자들이 꽤 있다. 실은 우리 투자사 셀미트를 비롯한 이 분야의 많은 회사들이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식으로 투자를 잘 받았다. 하지만, 요새 같은 불경기에 투자자들이 회사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매출이다. 투자자들은 매출을 선호하고, 더 나아가서 수익을 선호한다. 이 상황에서 팔 제품 자체가 없는 스타트업은 어떻게 수익을 만들고, 어떻게 투자를 받을 수 있을까?

아마도 이런 상황에 놓인 창업가들이 꽤 있을 것 같고, 최근에 이런 고민을 하는 분과 잠깐 이야기를 했는데, 이분이 나한테 열변을 토했다. “아니, 아직 제품도 없는데 어떻게 매출을 만드나요? 어떻게 우리 같은 회사의 밸류에이션을 매출을 기반으로 산정합니까? 그러면 우린 밸류에이션이 0인 회사인데요.”

이분은 시드 투자를 받아서 한 2년 동안 열심히 R&D를 해고, 연구 결과도 좋고 방향도 좋아서 실제 제품을 만들고 매출을 발생시키기 위해 추가 투자를 받아야 하는데, 만나는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매출이 없어서 거절하거나, 관심 있는 투자자는 매출이 없어서 (본인이 생각하기엔) 터무니없이 낮은 기업 가치를 제시하는 좋지 않은 상황에 부닥쳐있다.

솔직히 나도 이분에게 특별히 해 줄 말이 없었다. 경기가 좋고 시장에 돈이 넘쳐흐를 땐, 제품도 없고 매출이 없어도 기술 그 자체나 시장의 가능성에 투자하는 VC들이 많았지만, 이젠 대부분의 VC들이 매출이 발생하는 회사를 선호하고, 어떤 VC는 매출로도 부족하고 손익분기를 해서 이익이 발생하는 회사에만 투자하고 있기 때문에 위에서 말한 창업가가 투자받는 건 정말 힘들기 때문이다. 만약에 이런 상황에 처한 창업가가 있다면, 그냥 최대한 많은 투자자를 만나서 제품과 매출이 없는 회사에도 투자하는 곳을 찾는 수밖에 없다. 만약에 운 좋게 이런 곳을 찾더라도, 회사의 밸류에이션과 투자 조건을 결정하는 건 전적으로 투자자의 특권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말을 쉽게 해석해 보면, 투자받는 것도 mission impossible이고, 운 좋게 우리 회사에 관심 갖는 투자자를 찾더라도 좋지 않은 조건에 투자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입장 바꿔서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 싶다. 즉, 이런 회사들을 자주 만나는 VC의 입장에서,,,실은 지금 이런 상황에 부닥친 회사에 투자하면, 정말 매력적인 조건에 투자할 수 있다. 이 회사에 살아 남아서 정말로 좋은 기술로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면,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매출이 발생하기 시작하면 확실한 해자를 만들면서 성장하기 때문에 멈출 수 없을 정도로 매출이 잘 나올 것이다. 특히나, 이런 기술을 잘 이해하고, 이 시장을 잘 이해하고 있는 대기업의 전략적 투자 부서가 이런 플레이를 스마트하게 하면, 그 대기업의 미래 먹거리를 생각보다 쉽게 확보할 수도 있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요새도 MBTI 이야기를 사람들이 많이 하는지 모르겠지만, 한때는 우리가 검토했던 회사 자료의 팀 슬라이드에 각 팀원의 MBTI가 보일 정도로 이게 유행했을 때가 있었다. 나는 MBTI를 맹신하진 않지만, 나름의 과학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MBTI 풀 버전을 2005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할 때 처음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엔 내가 E 성향이 강했는데, 그동안 이게 I로 바뀌었고, 요샌 나는 아주 행복한 I의 삶을 살고 있다. 성향이 I라서 그런지, 아니면 그냥 바빠서 그런지, 나는 외부 활동을 잘 안 하고, 사람들을 잘 안 만난다. 정확히 말하자면, 원래 아는 사람들과 친구들은 자주 만나지만, 새로운 사람들은 되도록 잘 안 만난다.

그래도 예외를 두고, 가능하면 시간을 만들면서 꼭 만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제 막 본인의 이름으로 VC를 시작해서 첫 번째 펀드를 만들고 있는 투자자들, 그리고 우리가 투자는 안 했지만, 음악 분야에서 스타트업하는 창업가들이다.

이제 첫 번째 펀드를 만들고 있는 VC들을 보면 내가 12년 전에 스트롱 1호 펀드 만들 때가 생각난다. 남의 돈을 받는 건, 그때도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고 앞으로도 항상 어려울 것이다. 참고로 우린 이제 5호 펀드를 만들고 있는데, 1호 펀드보다 규모만 커졌지 돈 모으는 건 항상 더럽게 어렵다. 그런데 성적이 전혀 없는 첫 번째 펀드를 만드는 VC를 뭘 믿고 누가 돈을 줄까? 그래서 나는 이런 분들을 보면, 우리가 첫 번째 펀드 만들 때가 많이 생각난다. 그때 참 힘들고, 외롭고, 서럽기도 했는데, 그나마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나보다 먼저 이 힘든 길을 지나왔던 선배 VC들의 격려와 조언이었다. 그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원래 처음엔 힘든데, 계속 지치지 않고 하다 보면 더 쉬워질 거야.” , “그래도 너는 내가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훨씬 잘하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 “원래 펀드 못 만들 것 같아도, 계속하다 보면 다 하게 된다. 그냥 시간이 걸릴 뿐이야.” 뭐, 이런 말들이었는데, 그땐 이 조언들이 얼마나 힘이 됐는지 모른다.

근데 참 웃긴 게, 나도 이제 시작하는 후배 VC 분들을 만나면, 12년 전에 내가 들었던 말과 거의 동일한 조언을 해준다. 그리고 이들이 아직 경험하지 못한 걸 내가 이미 경험했다면, 가감 없이 모든 경험을 다 공유하고, 가능한 선에서 되도록 많은 사람들을 소개해 주고 연결해 준다. 그래서 이분들이 힘든 길을 가는데 조금이나마 위안과 도움이 됐으면 하는 생각을 항상 한다.

음악 분야에서 스타트업하는 창업가들에게도 내가 아주 오래전에 뮤직쉐이크를 하면서 경험하고 느꼈던 점들을 아주 솔직하게 공유해주고 이들이 시행착오를 줄이고 조금이라도 정신적인 평화를 찾을 수 있길 바란다. 나도 15년 전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완전히 아무것도 모를 때 이미 그 길을 걸었던 선배들에게 큰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출장에서 수년 동안 내가 알고 지낸 잠재 투자자를 만났다. 유명하고 큰 투자자인데, 누구나 다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서 아주 바쁜 분이다. 그런데 이 분은 내가 미국에 올 때마다 연락하면 항상 시간을 만들어서 나를 만난다. 시간이 많을 땐 밥도 같이 먹고, 정말 바쁘면 15분이라도 짧게 시간을 내서 얼굴이라도 본다. 나를 볼 때마다 20년 전에 본인이 투자를 시작했을 때가 생각난다고 하면서 원래 남의 돈 받는 건 무지하게 어려운데, 그래도 스트롱은 아주 잘하고 있다는 큰 격려의 말을 해줬다. 그리고 본인도 시작할 때, 이렇게 만나서 긍정의 말 한마디 해주는 선배 투자자들이 정말 고마웠다고 한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항상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아무리 바쁘지만, 내가 처음에 어떻게 시작했고, 어디서 왔는지 기억하자는 다짐을 한다. 나는 아직 개구리로 완벽하게 변신하진 못했지만, 올챙이 시절은 벗어났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애송이 시절이 있었고, 누구나 다 올챙이를 거쳐서 개구리가 된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절대로 잊지 말자는 다짐을 오늘도 해본다.

불평하지 않는 길

작년 말에는 지금쯤 되면 경기가 좀 회복되고, 투자 시장에 활기가 돌아올 줄 알았는데, 내가 요새 체감하는 건, 아직 정상화되려면 시간이 훨씬 더 오래 걸릴 것 같다. 아니면, 지금 이 불경기가 어쩌면 정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뭔가 느낌이 좋진 않다.

우리 같은 투자자도 이런 느낌인데, 매일 힘든 사업을 해야 하는 우리의 창업가들은 오죽하랴. 정말 요새 죽을 맛이다. 특히, 자금이 떨어져서 펀딩을 해야 하는 대표들은 정말 살면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투자사 대표들에게 런웨이가 12~18개월 정도 있으면, 웬만하면 펀딩하지 말고 사업에 집중하고, 나중에 수치들이 더 좋아지면 그때 투자유치를 하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그래도 돈이 다 떨어졌으면, 경기랑 상관없이 투자를 받아야 한다. 우리 투자사들도 요새 펀딩하고 있는 곳들이 많긴 한데, 모두 다 힘들어하고, 회사가 원하는 투자 조건과는 한참 동떨어진, 그냥 주는 대로 받는 전략으로 가는 곳들도 많고, 우리도 기투자자로서 이런 조건이라도 투자받을 수 있으면 받아서, 일단 살아남으면서 버티자는 스탠스다.

이 중에서도 특히나 힘들게 투자유치를 하는 회사가 몇 군데 있다. 일단 펀딩 하는데 걸린 절대적인 시간이 너무 길고, 투자를 커밋했던 VC들이 시간이 지연되면서 슬그머니 말을 번복하고, 이미 최종 투심까지 가서 결정된 곳들도 갑자기 정말 미안한 사정이 생기면서 취소되고, 이런 일이 생기다 보니 확신을 갖고 후속 투자를 준비하던 기존 투자자들도 하나둘씩 말이 달라지고 있다. 대부분 6개월 정도 힘들게 투자유치를 하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기면 대표는 지치면서 번아웃되고, 런웨이가 없어지니 직원들도 불안해하면서 어떤 분들을 퇴사하고, 결국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펀딩 전략을 새로 만들고 있다. 이 와중에 어떤 곳들은 투자자들과 이야기가 아주 잘 되고 있었는데, 같은 분야의 경쟁사가 상대적으로 낮은 밸류에 투자를 받으면서 그동안 합의됐던 밸류에이션이 조정되고 있고, 어떤 곳은 동종 업계의 회사가 상장했는데, 상장 후 주식가격이 형편없이 떨어지면서 다시 이야기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여기까지 오면, 우리 같은 기존 주주들도 정말 힘이 빠지는데, 이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큰 타격을 받은 대표는 돌아버리기 일보 직전이다. 그냥 남 탓하면서 욕하고, 포기하고 싶을 것이다. 뭐 하나 뜻대로 되는 게 없다.

어떻게 보면 이 창업가들의 잘못은 아니다. 우린 잘하고 있는데, 경기가 좋지 않아서 시장에 유동성이 부족해서 투자받는 게 힘든 것이다. 우린 잘하고 있는데, 동종 업계의 다른 회사가 잘 못 해서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영향을 받는 것이다. 갑자기 투자자가 투자 결정을 철회한 것도 대표의 잘못이 아니다. 이건 그 투자자가 나쁜 놈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남을 탓하고, 불평해도 되지만, 우리가 투자하는 창업가들은 불평하지 않는다. 이들은 최선을 다한다. 그래도 일이 잘 안 풀리는 건 본인들이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그냥 또 다른 방법을 찾는다. 불평하지 않고 그냥 또 길을 찾는다.

나도 이런 힘 빠지는 경험을 자주 한다. 새로운 펀드를 만들면서 너무 많은 거절을 당하고, 꼭 돈을 줄 것 같았던 투자자가 결국엔 투자하지 않는다. 동시에 우리가 투자한 너무 많은 회사가 망한다. 꼭 잘될 것만 같았던 회사들이 잘 안되고, 안 될 것 같았던 회사는 항상 잘 안된다. 이런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이로 인한 피로감이 쌓일수록 자신감이 떨어진다. 정말 내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실은, 이런 상황에서 나는 그냥 이래저래 불평만 하고 싶다. 나는 잘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나쁜 놈들이고, 내 잘못은 하나도 없다는 핑계를 대고 싶다. 하지만, 우리가 투자하는 창업가들이나 이들을 지원하는 우리나 모두 불평하는 데 익숙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 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주 거절당하고, 자주 넘어지지만, 그럴 때마다 불평하지 않고 다시 일어난다. 다시 일어나서 그냥 내가 해야 할 일을 한다. 우리가 선택한 길은 불평이라는 옵션이 없는 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