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draising

현장의 중요성

몇 주 전에 어떤 해외 투자자를 서울에서 꽤 오랜만에 만났다. 요새 스트롱벤처스의 현황과 우리가 어떤 창업가들을 만나고 있는지에 대해 업데이트했고, 한국 시장에 대해서 내가 그동안 보고, 듣고, 느낀 점들을 공유해줬다. 이야기 도중 이분이 나에게 한국의 계엄 사태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고, 2025년 절반은 우리가 국가의 리더가 없었다고 이야기했는데, 그때 내 반응은 “아, 맞다. 한국에 그런 일이 있었지…” 였다. 나는 완전히 이 일들에 대해 잠시 잊어버리고 있었고, 별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분의 회사는 본사가 미국이고, 싱가폴에 아시아 지사가 있는데, 이분은 싱가폴 지사에서 일하는 파트너이다. 얼마 전에 미국 본사의 나이 든 파트너들과 한국 벤처 시장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한국은 아직도 전시 국가이고, 북한이 계속 미사일을 쏘고 있는데, 한국 시장에 투자하는 게 너무 위험한 게 아닌가요?”라는 질문이 나왔다고 한다. 이 말을 듣자마자 내 반응은 계엄 사태와 비슷하게 “아, 맞다. 우린 아직 북한이 미사일을 쏘고 있지…” 였다. 실은 이것도 잠시 잊어버리고 있었고, 별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 회사는 한국의 정치와 국방 리스크가 조금 더 해소되면 한국 벤처 시장을 조금 더 깊게 보자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분이 나에게 그다음에 한 이야기가 더 재미있다. 한국의 이런 리스크에 대해서 내부적으로 이야기하고, 한국에 오랜만에 왔는데, 막상 와보니까 나라는 너무나 잘 돌아가고 있어서 놀랐다고 한다. 항상 그렇듯이, 한국인들은 아주 역동적이고 강렬한 삶을 살고 있고, 비즈니스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잘 되는 것 같고, 우리 같은 VC들도 너무나 활발하게 투자하고 있어서, 이 나라가 과연 본인들이 몇 주 전에 정치와 국방 리스크가 있다고 당분간 투자하지 말자고 내부적으로 결정했던 그 나라가 맞는지 의아해했다. 그리고 미국 본사의 파트너들에게 그들이 걱정하는 것과 달리 한국은 잘 있고, 한국인들은 평상시와 같이 잘 살고 있고, 한국 시장도 아주 좋다는 걸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제삼자를 통해서 보고 듣는 이야기와, 내가 직접 그 현장에서 보고 듣는 이야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솔직히 한국의 정치적인 상황이나 북한의 위협은 내가 종사하고 있는 실제 투자 현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내용인데, 한국에 와보지도 않고 외신을 통해서 한국의 소식을 접하면 우리나라에서 당장 전쟁이 나고, 정치적으로도 완전히 무너질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실은 위에서 말 한 분 뿐만이 아니라, 이런 이유로 올해는 아예 한국에 투자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투자자들도 있는데, 이들이 한국이라는 현장에 와서 직접 시장 돌아가는 걸 보면 생각이 많이 바뀔 것이다.

우린 실제로 어떤 시장, 회사, 인물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소문이나 “~카더라” 이야기, 정확하지 않은 기사, 근거 없는 소셜미디어의 내용만을 기반으로 판단하는데, 이렇게 하면 틀린 결정을 하고, 이로 인해 좋은 기회를 놓칠 가능성이 높다. 위에서 말 한 투자자가 한국의 벤처 시장에 지금 투자하지 않음으로써 몇 년 후에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과 비슷하게.

정답은 항상 현장에 존재한다. 현장에 가서 보고, 듣고, 이야기하고, 직접 판단해야 한다.

소화불량으로 인한 죽음

경험이 좀 있는 미국 투자자들이 하는 말 중 이런 말이 있다.

“굶주려서 문 닫는 회사보단, 소화불량으로 문 닫는 회사가 훨씬 더 많다.(More companies die due to indigestion than starvation)”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게 무슨 말인지는 대충 알 텐데, 스타트업의 맥락에서 이야기하자면, 돈이(=런웨이) 없어서 문을 닫는 회사도 많지만, 이보다 돈이 너무 많아서 멍청한 짓을 해서(cross out) 문을 닫는 회사가 훨씬 더 많다는 의미다.

내가 처음에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약 3년 차 VC였다. 그리고 솔직히, 이게 무슨 말인지 잘 이해를 못 했다. 돈이 없어서 스타트업이 문을 닫지, 돈이 많은데 어떻게 회사가 망하는지 잘 이해가 안 갔다. 더 많은 사람을 채용하고, 더 많은 영업과 마케팅을 하고, 더 많은 제품을 만들면 당연히 매출도 늘어나고 더 잘 되는 게 아닌가.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하지만, 이제 14년 차 VC인 내가 이 말을 들으면 그냥 자동으로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그리고, 그동안 투자를 너무 많이 받고 돈이 너무 많아져서, 소화불량으로 어려워진 우리 투자사들이 했던 멍청한 짓들이 비디오같이 내 머릿속에서 재생된다. 이 중 많은 회사들이 망했고, 일부 회사들은 아직 살아 있지만, 과거의 실수를 만회하느라 아직도 허덕거리는 곳들이 상당히 많다.

과식해서 소화불량으로 – 즉, 투자를 너무 많이 받아서 – 죽거나 힘들어하는 회사들의 공통점이 몇 가지 있다. 이 회사들은 주로 시장에 유동성이 과하게 높았던 시기에 약간 말도 안 되게 높은 밸류에이션에 필요 이상의 투자를 받았다. 시작부터 이러니, 마치 본인들이 정말로 사업을 잘해서 이런 높은 밸류에이션에 투자받은 거로 착각하는데, 사업을 못 했으면 투자를 못 받았을 테니, 사업을 잘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높은 밸류를 받을 정도의 대단한 사업은 아니었다. 이렇게 필요 이상의 투자금을 받은 창업가들은 대부분 돈의 가치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본인들이 평생 일을 해도 200억 원이라는 돈을 만져보지도 못할 텐데, 갑자기 회사 통장에 200억 원이 입금되면 이 돈의 무게를 그대로 느끼지 못하고, 너무 우습게 생각하는 걸 나는 자주 목격했다.

그리고 갑자기 큰돈이 생기면, 이들은 돈이 없었으면 절대로 할 생각도 하지 않았을 일들을 벌리기 시작한다. 즉, 위에서 말한 대로, 아주 멍청한 짓들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냥 돈이 있어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딱히 사람이 필요 없는데, 네이버, 카카오, 토스, 쿠팡 같은 곳으로부터 몸값이 엄청나게 비싼 임원들을 회사로 영입한다. 이런 분들이 필요하면 당연히 비싸게 돈을 주고 채용해야겠지만, 그냥 돈이 너무 많으니까, 사람들을 막 데려온다. 그리고 본업과는 상관없는 방향의 제품을 개발하기 시작하고, 주변의 다른 회사를 인수하기 시작한다. 왜 이러냐고 물어보면, 답변은 항상 논리적이고 똑똑하다. 결국엔 그 방향으로 확장해야지만 유니콘 기업이 될 수 있는데, 하나씩 하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좋은 회사들을 ‘싸게’ 인수한다는 답변을 나는 꽤 자주 들었다. 그리고 이걸 가능케 하기 위해 더 많은 인력을 채용하고, 이들을 모두 수용하기 위해서 더 크고 더 좋은 사무실로 이사 가거나, 어쩔 땐 사옥을 매입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서서히 소화불량으로 회사가 죽는 걸 나는 꽤 많이 봤다. 왜 이 회사의 투자자인 스트롱은 이걸 그대로 두고 봤냐고 물어본다면, 솔직히 나도 할 말은 없다. 당시엔 나는 이렇게 하는 게 맞다고 믿었고, 돈 다 쓰면 또 투자받으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을 했다.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고, 굉장히 멍청한 생각이었다. 이제 나는 회사의 퍼포먼스 대비 너무 높은 밸류에 너무 많은 투자를 받는 우리 투자사가 있으면 이 회사가 과식하고 소화불량으로 죽지 않게 각별히 주의한다.

돈이 다 떨어졌고, 도저히 펀드레이징이 안 되는 회사가 서서히 죽어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런 회사는 배가 너무 고프지만, 뭘 사 먹을 돈이 없어서 계속 굶는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이런 회사들이 오히려 물만 먹으면서 오랫동안 살아남는 경우를 봤다. 반면에 갑자기 너무 돈이 많이 생겨서,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계속 뭔가 먹다가 과식해서 소화불량으로 급체해서 죽는 회사들이 더 많다는 사실을 모든 창업가는 기억하길 바란다.

너무 허기져도 안 되고, 너무 배가 불러도 안 된다. 항상 적당히 먹어서 잘 소화하고 건강해야 한다.

국도에서 고속도로로

전에 한번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내가 봤을 때 지금이 시의적절한 타이밍이라서 다시 한번 내 생각을 포스팅해 본다.

2022년 후반부터 시작된 벤처 겨울은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이제 최악의 추위로부터 우린 조금씩 멀어지고 있지 않나 싶다. AI 투자 덕분에 외형적으론 글로벌 벤처 투자는 2024년 Q3($57B)부터 2025년 Q1($121B) 까지 연속 3사분기 상승 중이다. 실은 벤처투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건 VC들에게 자금을 제공하는 LP들도 더 활발하게 투자하고 있다는 간접적인 증거이기 때문에 여러모로 좋은 시그널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돈이 극소수의 AI 회사에 투입되고 있다는 건 – 예를 들면, 2025년 Q1 전체 글로벌 벤처 투자금 $121B 중 거의 3분의 1인 $40B이 OpenAI 단 한 개의 회사에 투입됐다 – 아직도 뭔가 불안하고 찜찜하지만, 어쨌든 부정적인 것보단 긍정적인 신호라고 생각한다.

한국도 여기저기서 긍정적인 소식이 들려온다. 새로운 정부가 AI에 10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고, 벤처 투자 생태계에도 40조 원가량의 자금을 투입하겠다고 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 돈을 어디서 어떻게 조달할진 잘 모르겠지만, 긍정적인 소식이며, 하반기에는 유동성이 조금씩 풀리지 않을까 기대한다. 정부가 벤처 투자를 리딩하는 건 장기적으론 부정적인 면도 많지만, 반면에 현재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정부가 이렇게 시원하게 쏘는 것만큼 단기적으론 좋은 방법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시그널이 보이는 분위기에서 요새 나는 우리 창업가분들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하고 있다.

첫째, 2022년 후반부터 성장보단 생존과 수익성에 집중하고 있는 회사 중, 아직도 비용을 못 줄여서 매달 마이너스가 나고, 명확하게 공식화할 수 없는 PMF와 비즈니스 모델을 못 찾은 분들에겐 계속하던 대로 성장보단 생존에 집중하라고 한다. 이런 회사들은 아직도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사는 곳들이 많아서 계속 비용 절감과 비즈니스 모델 확립에 집중해야 한다. 운전에 비유하자면, 고속도로보단 계속 국도로 달리는 것이다. 국도에서 가속하지 말고, 정속 주행을 통해서 기름을 아끼는 전략이다. 하지만, 조금씩 천천히 앞으로 가곤 있다.

둘째, 2022년 후반부터 성장보단 생존과 수익성에 집중하면서 지난 3년 동안 비용 절감에 성공해서 흑자 전환을 했고, 어떻게 하면 확실하게 돈을 벌 수 있는지 공식화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과 PMF를 찾았다면, 이제 다시 서서히 성장에 대해 고민해 보라고 한다. 운전에 비유하자면, 이제 국도를 서서히 벗어나면서 다시 고속도로에 진입해서 악셀러레이터를 힘차게 밟아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책 없이 돈을 써서 마이너스를 내면서 성장하라는 조언은 아니다.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좋은 비즈니스 모델을 돈을 버는 프레임 안에서 더 가속하라는 조언이다.

이렇게 국도에서 다시 고속도로로 진입하려면 돈도 더 필요하고, 어쩌면 사람도 더 필요한데,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창업가의 마인드와 태도의 180도 변화이다. 너무 오랫동안 국도만 달렸기 때문에 다시 고속도로로 진입해서 그동안 시속 50km를 넘지 않았던 악셀러레이터를 더 밟아서 80km 이상으로 달려야 하는데, 다시 성장 모드로 마인드를 바꾸는 게 쉽지 않다. 회사의 전략과 방향을 180도 다르게 설정하는 데에도 switching cost가 발생하지만, 실은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건 창업가의 두려움이다. 이미 지난 3년 동안 돈이 없으면 얼마나 사업이 힘들어지는지 뼈저리게 경험하고 배웠기 때문에 다시 성장에 집중하는 게 너무 공포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성장에 집중하려면, 펀드레이징도 다시 해야 하고, 더 많은 돈을 써야 하는데, 혹시라도 이렇게 하는 과정에서 돈을 다 써서 다시 힘든 시점이 오면, 그땐 다시 한번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체력과 정신력이 남아 있을지,,,그 생각만 해도 공황장애가 오기 때문이다.

아직 제대로 된 비즈니스 모델을 못 찾았다면, 계속 비용 절감하면서 생존에 집중해라. 이런 사업이면 어차피 고속도로에 진입해도 속력도 못 내고 금세 연료가 떨어져서 멈출 것이다. 하지만, 이제 돈을 확실하게 벌 수 있는 사업을 만들었다면 위에서 말한 두려움을 떨쳐내고 과감하게 고속도로에 진입해라. 그리고 다시 쌩쌩 달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어차피 스타트업이란 어느 시점엔 성장을 해야 하는데, 이미 3년이라는 시간을 까먹었기 때문에 따라잡아야 하는 거리가 상당히 많이 남았을 것이다.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보자.

현실과 이상

펀드레이징하는 창업가들이 가장 신경 써야 하는 건 바로 현실과 이상을 철저히 구분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일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당연히 창업가들을 만나는 건데, 이 중 당장 투자유치를 하지 않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 현재 펀드레이징 중이고, 스트롱에게 투자받기를 희망하는 창업가들이다. 우리도 워낙 많은 회사를 검토하고 투자 유치가 급한 회사들에 검토의 우선순위를 할당하면서 일을 쳐내기 때문에 항상 하는 질문 중 하나가 펀드레이징 타임라인이다. 즉, 이번 투자유치가 얼마나 급한가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가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회사인데, 현금이 아슬아슬해서 금방 런웨이가 끝나는 상황이면 우선순위를 높게 하고 검토한다. 또한, 다른 VC와도 이야기하고 있고, 몇몇 투자자들과의 대화가 깊게 진행되고 있다면, 이런 회사들도 우린 우선순위를 높게 하고 검토한다. 느낌이 좋은 창업가인데, 우리의 바쁜 상황 때문에 느리게 검토했다가 다른 VC에게 투자를 받고 라운드가 마무리되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요새 아주 자주 느끼는 건, 상당히 많은 창업가들이 VC들의 의향에 대해서 착각하고, 현실을 똑바로 못 보고 본인들이 바라는 이상대로 생각하고 믿는다는 점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면, 몇 달 전에 한 회사를 만났는데 꽤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 창업가에게 펀드레이징 타임라인에 대해서 물어보니, “최근에 XYZ 벤처스가 커밋했고, 3주 안으로 마무리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라고 해서 우리도 현재 검토하고 있는 다른 딜들을 일단 보류하고 이 딜을 먼저 검토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 창업가는 다른 VC들과 미팅하면서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던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위에서 말 한 커밋했다는 투자사의 담당자를 만나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커밋은 커녕, 딜 검토를 진행할지 말지 결정도 안 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3주 안에 마무리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는지 물어보니, 상당히 황당해하면서, 그건 그 VC의 일반적인 투자 프로세스에 관해 이야기한 건데, 대표이사가 철저하게 본인이 이해하고 싶은 데로 받아들인 것 같다고 했다.

또 한가지 예는, 창업가는 그 투자 라운드에 여러 명의 VC가 커밋해서 이미 마무리 됐다고 하면서 스트롱이 들어 올 수 있는 룸이 없다고 하는데, 막상 커밋했다고 하는 VC들과 확인해 보면 몇 번 가볍게 미팅만 했지, 투자 한다고 커밋 한 적은 전혀 없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역시 룸이 안 남았다고 우리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 했던 창업가는 한 달 후에 다시 연락와서 펀드레이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했다.

왜 이런 일이 있을까?

창업가들이 현실을 제대로 보지 않고, 본인들이 믿고 싶고, 보고 싶은 이상만 봐서 그렇다. 그리고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VC들을 잘 못 읽어서인 것 같다. VC들도 사람이라서 모두 다 성향, 인상, 태도, 어법, 표정 등이 다르고, 한 사람을 읽는 것도 어려운데, 이렇게 다양한 사람을 읽는다는 건 정말 어렵다. 두 사람이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같은 말을 해도, 이들이 의도하는 건 완전히 반대인 경우도 있다. 특히, VC는 소위 말하는 어장 관리를 해야 하는 업종이라서 가끔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투자하겠다는 건지, 안 하겠다는 건지, 나도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들이 명확하게 이야기해도 창업가는 다르게 이해하는 경우도 많다. 내가 다수의 VC가 한 회사의 피칭을 듣는 자리에 참석했는데, 한 투자자가 이 회사에 특별한 애정을 보이면서, “우리는 10억까진 할 수 있고, 리드도 할 수 있다. 당장 내부에서 작업을 시작해 보겠다.”라는 말을 했다. 나도 아주 명확하게 들었다. 그런데 같은 창업가가 다른 자리에서 그 투자자가 10억을 커밋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걸 나는 봤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이 창업가는 정말로 그때 들은 말이 회사에 10억을 투자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했다고 한다. 어쩜 이렇게 현실을 제대로 못 보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VC들을 잘 읽어서 현실과 이상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텀싯이다. 아무리 투자자들이 당신의 회사에 투자하고 싶다고 하고, 투자하겠다고 하고, 내부 투심에서 무조건 통과시키겠다고 해도, 텀싯을 주지 않으면, 그 VC는 투자하지 않는 거다. 이게 현실이다. 이미 커밋한 VC가 있다고 하는 창업가들에게 내가 항상 텀싯을 받았는지 물어보는데, 돌아오는 답변은 대부분 비슷하다. “아직 텀싯은 안 받았는데, 구두로 확실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 “원래 이 VC는 텀싯 없이 투자한다고 합니다.” 등의 답변인데, 이런 투자자들이 투자하는 걸 난 보지 못했다.

간절하게 펀드레이징 하는 건 좋은 자세이다. 하지만, 현실과 이상은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

(꽤 중요한) 투자자와의 소통

전에 내가 ‘투자자와 소통하기’라는 글을 썼다. 우리가 일하는 분야는 워낙 페이스가 빨라서 과거에 맞다고 했던 내용이 현재는 완전히 틀릴 수도 있고, 과거에 틀렸다고 했던 내용이 현재는 완전히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6년 전에 썼던 이 글은, 과거에도 맞았고 지금은 더 오지게 맞는 내용이라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가 않기 때문에, 비슷한 내용의 글을 한 번 더 쓴다.

우리 모두 인생과 직장에서의 소통, 즉,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고, 인생은 피드백이고 인생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특히, 스타트업 창업가라면,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고, 이 가장 중요한 자산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대화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안다. 아마도 대부분의 창업가에게 물어보면 사업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건 ‘사람’이라고 할 것이고, 이 사람들을 끈끈하게 본딩해줄 수 있는 건 소통이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건, 내가 아는 많은 창업가들이 입으로는 소통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정작 본인들은 이걸 참 못 한다. 아니, 어떤 분들은 일부러 안 하는 것 같다. 특히, 내부 소통보단 외부 소통, 외부 소통 중에서도 투자자들과의 소통에 있어서는, 어떤 분들의 – 우리 포트폴리오 포함 –  커뮤니케이션 점수는 빵점이다.

우리 포트폴리오 대표님들은 잘 아실 텐데, 우린 워낙 많은 투자사가 있어서, 이들의 사업 현황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든 회사를 매달 만나는 비현실적인 방법보단, 이메일로 월간 사업 업데이트를 받고, 이를 통해서 사업의 현황과 건강의 척도를 평가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래서 나는 매달 대표님들에게 사업 업데이트를 부탁하는데, 이걸 받는 분들은 징글맞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덕분에 대부분의 스트롱 대표님들은 이렇게 투자자들에게 월간 사업 업데이트하는 게 습관화되어 있다. 언젠가 우리와 몇 개 회사에 공동 투자한 다른 VC가 “스트롱 포트폴리오는 월간 업데이트를 정기적으로 잘하네요. 그리고 그 내용도 형식적인 보고가 아니라, 대표님의 고민, 생각, 그리고 투명한 회사의 실적을 공유해줘서 너무 좋습니다. 훈련이 잘된 것 같아요.”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실제로 그렇다고 생각한다.

전에도 내가 여러 번 말했는데, 투자자와의 이런 정기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스타트업 생태계에 종사하는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일단 회사가 투자를 받으면, 투자자들에게 사업 현황을 정기적으로 투명하게 공유하는 건 기본이자, 회사의 가장 중요한 책임이고 의무이다. 이 글을 보면, 너무나 당연한 거로 생각하겠지만,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창업가분들도 과연 본인의 투자자들과 소통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봐라. 안 그런 분들도 꽤 있을 것이다. 소통이 잘 안되는 사소한 문제가 나중에 엄청나게 커지고, 이게 서로의 감정싸움으로 번지면서 소송으로 가는 것까지 나는 본 적이 있다.

소통이 중요한 또 다른 점은, 이렇게 매달 투자자들과 사업 현황을 공유하다 보면, 그냥 단순히 커뮤니케이션 빈도를 높이고, 정기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은 투자자와 창업가의 관계는 한쪽이 다른 쪽에 원할 때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어야 하고, 또 실제로 대부분 그렇다. 투자자는 창업가에게 자금을 제공했기 때문에, 창업가는 싫든 좋든 투자자가 연락하면 언제든지 연락이 돼야 한다. 반대로, 창업가는 본인이 선장인 배에 탄 투자자들이 배가 목적지에 무사히 도달할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하게 만들어야 하므로, 필요한 게 있으면 투자자에게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게 자정이든 주말이든 투자자는 무조건 연락이 돼야 한다. 다른 VC는 잘 모르겠지만, 스트롱 전체 팀은 우리 포트폴리오 대표님들이 연락하면 언제든지 연락이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서로 자주 연락을 안 하는 게 또 투자자와 창업가의 관계이다. 시간이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자원이며, 이 부분을 서로 존중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창업가나 VC들도 비슷할 것 같은데, 아무리 서로 친해도 엄청나게 자주 만나거나 연락하진 않을 것이다. 이게 나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어쨌든 사람은 자주 연락하고 봐야지 친해지니까. 그래서 월간 업데이트를 하면 매달 소통할 수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매우 좋다. 우리는 이 월간 업데이트를 자세히 읽고, 우리의 피드백과 생각을 공유하고, 질문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상당히 많이 한다. 그러면 굳이 자주 만나지 않아도, 서로의 소식을 정기적으로 정하고, 포트폴리오의 사업 현황에 대해서 꽤 잘 숙지할 수 있다. 얼마 전에 우리 포트폴리오 대표님을 만났는데, 반갑게 이야기하다가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게 거의 1년 반 전이였다는 걸 알게 된 후에 깜짝 놀랐다. 매달 이메일로 소통하다 보니, 거의 매달 만난 것 같았으니.

마지막으로, 투자자와의 소통이 정말 중요한 가장 실용적인 이유는, 정기적인 소통이 됐다면 회사가 어려울 때 투자자들이 지체하지 않고 바로 도움의 손길을 뻗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0개월 동안 사업 업데이트가 없던 대표가 금요일 저녁에 다급하게 연락이 와서 다음 달 나갈 월급이 없다고 하거나, 경쟁사에게 소송을 당했다고 SOS를 치면 우리가 당장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 우리 투자사이니 당연히 같이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보겠지만, 우리도 이 회사가 그동안 뭘 했고, 현황은 어떤지, 그리고 대표님은 어떤 고민과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일단 회사의 현황을 파악하는 데만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소통하면서 회사의 상황에 대해서 잘 공유했다면, 회사에 현금이 고갈되고 있다는 사실을 수개월 전부터 알아서 즉각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이렇게 소통이 안 되는 대표는 우리도 우리와 친한 다른 VC에게 선뜻 소개해 주는 게 망설여진다. 다른 VC한테 투자받은 후에 또 이렇게 연락이 잘 안될 텐데, 이건 스트롱과 내가 욕먹을 일이기 때문이다.

뭔가 우리가 대단한 걸 매달 요구할까? 그건 아니다. 우리가 포트폴리오 대표들에게 요구하는 건 다음과 같다:
1/ 회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KPI(매출, UV, MAU 등…)
2/ 영업, 마케팅, 유통, 제조 등 관련해서 특별히 나쁘거나, 좋았던 내용들
3/ 특이 사항
4/ full-time 임직원 수
5/ 지금까지 유치한 총투자 금액
6/ 현재 회사에 남은 cash 상황
7/ 스트롱에게(또는 다른 투자사들) 부탁하고 싶은 내용

이건 솔직히 제대로 된 회사, 제대로 된 대표라면 매달 결산하고 스스로 정리하고 고민하는 내용들이다. 그냥 이 내용이 정제되지 않은 포맷으로 편안하게 공유해달라고 부탁하는 정도이다.

이 글을 읽는 창업가들은 모두 본인들의 투자자들과 월간 업데이트를 공유하면서 소통하는 걸 적극 권장한다. 한 일 년 이상 꾸준히 하다 보면, 커뮤니케이션의 빈도와 질에 매우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고, 더 신뢰받는 대표가 되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