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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채널의 진화

우리가 투자한 많은 이커머스 스타트업을 가까이서 보면서 배운게 하나 있다면, 온라인으로 뭔가를 파는 게 쉬워 보이지만, 실은 굉장히 어렵다는 사실이다. 쉬워 보이는 이유는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나 까페24와 같은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면 코딩을 못 해도 온라인 쇼핑몰을 만들 수 있고, 여기에 내가 팔고 싶은 물건을 등록해서 판매하면 매출이 발생하니까, 겉으로 보면 그래도 상대적으로 빨리 셋업해서 매출을 빨리 만들 수 있는 사업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쉽게 셋업해서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건 맞다. 그리고 거의 설립하자마자 매출이 발생하는 것도 맞다. 그래서 아마도 직장인들이 너도나도 부업으로 쇼핑몰에 관심을 갖는 것 같다. 하지만, 이걸 직접 해 본 분들이라면, 실은 굉장히 어려워서 대부분 얼마 안 가서 포기한다.

만약 이 단계를 지나서 어느 정도의 제품력을 기반으로 약간의 브랜딩이 만들어졌다면, 이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다양한 온라인 마케팅을 시도한다. 실은 모든 이커머스 업체들에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다른 유통업체를 통하지 않고, 이렇게 직접 내가 우리 고객들에게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고객과의 접점이 생기고, 이들에 대한 데이터도 많이 확보하면서, 계속 소통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신제품이 나와도 성장하고 확장하는 게 수월하다. 그런데 계속 우리가 직접 온라인으로 고객에게 판매하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온라인 마케팅의 비용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지면서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경쟁사도 계속 출현하고, 이들이 더 많은 마케팅 비용을 집행하면, 이제 시작하는 스타트업이 이 게임에서 이길 수 있는 확률은 더욱더 낮아진다. 가끔 마케팅을 전혀 하지 않아도 구언효과와 바이럴로만 시장을 다 먹어버리는 회사들이 나오는데, 요샌 이런 회사는 정말 드물다.

그래서 결국 이들은 다른 온라인 유통 플랫폼에 입점한다. 식품을 판매하면 마켓 컬리, 화장품이면 올리브영, 그리고 모든 제품을 취급하는 쿠팡 같은 곳들이 이런 대형 플랫폼/마켓플레이스다. 미국이라면 아마존에 대부분 입점할 것이다. 이런 대형 플랫폼을 통해서 우리 제품을 판매하면 노출과 트래픽은 극대화되지만, 고객과의 직접적인 접점이 잘 안 생기고, 우리 브랜드를 고객이 잘 기억 못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예를 들면, 나도 마켓컬리에서 물건을 구매하면, 제품 이름은 잘 안 보고 그냥 마켓컬리에서 구매한 제품이라는 것만 기억한다.) 그리고 사업적으로 더 좋지 않은 건 남의 채널을 통해서 판매하기 때문에 통행료(=수수료)를 내야하고, 이 수수료 또한 상황에 따라 매우 늦게 받는 경우가 있다. 노출이 잘 되고, 판매가 어느 정도 되지만, 결국엔 돈은 못 벌고, 이 돈 또한 늦게 받는 경우가 있어서 회사의 현금 흐름에 악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누가 우리 제품을 구매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이들을 대상으로 직접적인 마케팅을 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이 단계까지 왔다면 그래도 외형적으로는 어느 정도 성장하는 비즈니스가 됐을 것이고, 이런 성장을 이해하는 투자자들로부터 투자를 유치할 가능성은 높아졌을 것이다. 이후에는 계속 성장해야 하기 때문에 수익성의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계속 외부 플랫폼과 유통채널을 통해서 제품을 판매하는데, 이 비즈니스의 특성상 주문과 납기를 맞추기 위해서 초기 제조 비용이 들어가고, 여기저기서 다양한 수수료를 부담해야 하는 반면, 수금은 늦어지기 때문에, 수익성과 현금흐름의 개선을 기대하긴 쉽지 않다.

어쨌든 성장을 멈출 순 없기 때문에, 그동안 온라인 위주의 판매를 하다가 결국엔 오프라인 채널로도 확장하는 걸 우린 많이 봤다. 오프라인 채널은 또 다른 어려운 사업이지만, 편의점과 같은 궁극의 오프라인 채널에 입점하면 외형적인 매출 규모는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런데 오프라인 채널은 수익성의 면에서는 주로 최악인 경우가 많다. 수수료가 높고, 원치 않는 프로모션을 해야 할 때가 있는데, 우리 투자사를 비롯한 오프라인에서 활동하는 많은 분들이 오프라인은 돈을 버는 목적보단, 브랜드와 제품의 노출을 위해서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렇게 여러 곳에서 노출이 되면서 브랜딩이 확고해진 제품이 실제로 많이 있고, 이를 통해서 크게 성장하고 투자를 받은 곳도 있지만, 반대로 수익성에 전혀 도움이 안 되고, 어떤 경우에는 마이너스가 발생해서 오프라인 채널에서 완전히 발을 뺀 곳도 있다.

실은 여기까지 와서, 온라인이냐 오프라인이냐 고민하고 있다면, 그래도 월 매출이 수 억 ~ 수십억 원 단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단순한 제품보단 더 큰 브랜드와 사업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을 단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고민을 계속하면서, 오프라인에서 발자취를 계속 넓혀가면서, 여기서 발생한 규모로 원가를 계속 낮추면서 수익성을 개선하는 곳도 있고, 온라인을 오히려 더 강화하면서 고객과의 끈끈한 접점을 만들어서 계속 이들에게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는 곳도 있다. 어떤 D2C 스타트업은 결국 유통채널단에서 컨트롤할 수 있는 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제조원가를 줄여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자체 공장을 만들어서 수익성을 대폭 개선한다. 모든 비즈니스가 그렇듯이, 한가지의 정답은 없다.

그래도 내가 봤을 때, D2C 스타트업의 가장 이상적인 성장은 온라인 판매이다. 최고의 제품과 가장 창의적인 마케팅으로 우리를 사랑하는 고객과의 끈끈한 접점을 만들면서 D2C 왕국을 만드는 게 갈수록 힘들어지곤 있지만, 이런 성장을 할 수 있다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K-제조 2.0 – part 2

바로 이전 글 ‘K-제조 2.0 – part 1‘에서 한국이 원래 제조 강국이고, 화장품같이 누구나 다 한국이 잘 만드는 걸 아는 분야도 있지만, 콘택트렌즈나 콘돔과 같이 우리가 잘 몰랐던 분야도 한국이 제조를 잘한다는 내용에 대해서 적어봤다. 이런 새로운 분야의 스타트업에 우리가 투자하면서 계속 스스로 물어봤던 건, “그러면 왜 이 렌즈나 콘돔을 직접 생산하는 한국의 제조업체에서 본인들의 브랜드를 잘 만들어서 직접 판매하지 않을까?” , “이미 우리 투자사들이 이 공장에 OEM 생산을 맡기고 자신들의 브랜드로 잘 판매하고 있는데, 이걸 생산업체에서 직접 하면 되지 않을까? 어차피 동일한 제품인데.”와 같은 질문이었다.

그리고 실사를 하면서 공장에 이 질문을 직접 했는데, 해외 시장에 대해서는 대부분 그냥 본인들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애초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이미 한국에서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서 판매하는 업체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 제품을 엄청난 브랜드로 키우고, 대단한 이커머스 플레이를 할 의지가 별로 없었다.

여기서 우린 기회를 봤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수많은 제품 중 한국에서 가장 싸고, 빠르고, 품질 좋게 생산할 수 있는 제품이 상당히 많이 있을 것 같은데, 이런 제조업체가 어디에, 얼마만큼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다. 하지만, 이런 양질의 제조업체에서 만든 Made in Korea 제품을 북미 시장에서 잘 판매할 수 있다면, Dollar Shave Club과 같은 유니콘 스타트업이 여러 개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미 전 글에서 언급했던 우리 투자사들이 이 작업을 하고 있고, 아직 엄청나게 큰 회사로 성장하진 않았지만, 충분히 이런 가능성이 보인다고 생각한다. 미국 시장을 잘 알고, 영어가 가능하고, 미국에서 좋은 인재 채용이 가능한 이런 창업가들은 한국의 제조 공장과 글로벌 시장을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고, 이런 분들에게 집중적으로 투자할 수 있다면, 한국이 가진 작은 시장의 단점을 극복하면서, 훨씬 더 큰 글로벌 시장을 가장 잘 만든 제품으로 공략할 수 있는 공식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스타트업들이 크게 성장하면, 역으로 한국의 제조 업체를 인수하면, 업계에서 말하는 수직 통합을 통해서 더 큰 사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이런 사례를 우리가 직접 경험해보진 못 했지만,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

K-제조 2.0이 시작됐다. 이런 긍정적인 움직임을 통해서 한국이 계속 제조의 강국으로 남길 바란다.

K-제조 2.0 – part 1

스트롱벤처스에서 우리는 많은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하지만, 미국과 그 외 지역의 글로벌 회사에도 투자한다. 지금까지 우린 240개 이상의 스타트업에 투자했는데 이 중 30%가 한국이 아닌 곳에 본사를 두고 있다. 대부분 미국이지만, 동남아나 유럽에서 사업하고 있는 회사도 있다. 하지만, 지역을 떠나 이 모든 회사가 가진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한국’이라는 큰 테마이다. 해외 스타트업도 한인이 창업한 회사들이고, 한국이 잘하거나, 한국에서 어느 정도 입증된 컨셉을 기반으로 글로벌 비즈니스를 만들고 있는 회사가 대부분이다.

이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하다 보니, 한국이 전통적으로 잘하고, 오늘의 한국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 제조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우리가 투자한 꽤 많은 스타트업이 직접 제품을 만들어서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D2C / 이커머스 비즈니스를 하는데, 자체 제작하기보단 대부분 한국의 공장에 OEM을 맡기고 본인들의 브랜드로 판매한다. 뒤에서 이들의 제품을 직접 만드는 제조 분야를 보다 보니, 그동안 내가 몰랐던 것들을 하나씩 배우고 있다.

일단, 한국은 정말로 제조 강국이 맞다. 굳이 삼성이나 현대와 같은 재벌 대기업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좋은 제품을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만들고 있는 중소 제조업체와 공장이 이 작은 나라에 정말로 많다는 걸 매번 느끼고 있는데, 어떤 제품은 중국보다 더 저렴하게 만들고, 어떤 제품은 독일이나 일본보다 더 견고하고 우수하게 만드는 공장이 한국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마다 깜짝 놀라고 있다.

이렇게 한국에서 만든 제품을 기반으로 한국과 미국에서 사업을 하는 스트롱 투자사들이 꽤 많은데, 이 중 어떤 회사는 한국이 원래 잘하는 거로 유명한 아이템으로 사업을 하고, 어떤 회사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이 잘하는 아이템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

화장품은 한국이 원래 잘 만드는 거로 유명하다. 뉴욕에 있는 Cardon은 한국에서 제조한 남성용 뷰티 제품을 북미 시장에서 잘 판매하고 있다. 한국에 있는 율립은 한국에서 제조한 클린 뷰티 립스틱을 한국과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하고 있다. 한국이 화장품 제조 강국이라는 점은 굳이 내가 강조하지 않아도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고, 많은 업계 관계자가 인정하고 있다. 앞으로도 화장품 제조 강국으로의 포지션을 우리가 계속 잘 지켰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하지만, 한국이 잘 만드는 게 또 있다. 아니, 굉장히 많다.
우리 투자사 옵틱라이프는 루킹굿이라는 콘택트렌즈 이커머스 플랫폼을 운영하는데, 자체 렌즈 브랜드도 같이 판매하고 있다. 우린 이 회사를 검토하면서 이 시장의 여러 가지 문제점과 재미있는 점을 동시에 발견했는데, 한국이 콘택트렌즈 제조 강국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왠지 유럽이나 일본에 OEM 생산을 의뢰할 것만 같은 렌즈같이 정교한 제품도 한국의 공장에서 소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로웠다.
또 다른 우리 투자사는 뉴욕에 있는 Issawrap이라는 스타트업이다. P.S. Condoms라는 브랜드를 이커머스로 판매하고 있는데, 이름에서 금방 알 수 있듯이 콘돔을 섭스크립션으로 판매하는 서비스다. 그리고 이 제품은 한국에서 만들고 있다. 이 회사를 우리가 검토하면서 비즈니스 모델 면에서도 미국의 Dollar Shave Club과 유사성을 많이 봤는데, Dollar Shave Club의 면도기도 한국의 도루코에서 생산하고 P.S. Condoms의 콘돔도 한국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는 점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이 회사의 창업가들 말에 의하면, 한국은 전 세계에서 콘돔을 가장 잘 제조하는 기술과 생산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콘택트렌즈와 콘돔뿐만이 아니다. 제조업이 과거의 가장 큰 성장 동력이었던 한국이 만드는 제품 중 글로벌 시장에서 1등을 할 수 있는 제품과 시장이 이 외에도 상당히 많다고 생각하고, 이런 제품이 글로벌 시장에서 브랜딩, 마케팅, 그리고 판매할 수 있는 좋은 창업가들과 연결되면 엄청나게 큰 비즈니스가 여러 개 나올 수 있다고 난 요새 생각하고 있다.

K-제조 2.0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우린 가장 앞단에서 한국의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면서, 이런 큰 흐름을 요새 몸으로 직접 느끼고 있다.

요샌 글을 길게 안 써서, 이번 포스팅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다음 포스팅에서 내 생각을 더 텍스트화해 보겠다.

MVP 출시의 고통

요새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는 초기 스타트업 대표들이 몇 분 있다. 회사가 어느 정도 수준까지 성장한 후에, 이 회사를 더 좋은 회사로 만들기 위해서 어떤 작업을 하고, 어떤 사람을 채용하고, 어떤 성장 전략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조언을 주는 건 내가 잘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회사가 다르기 때문에 항상 힘들지만, 지금 아무것도 없는 초기 스타트업이 소위 말하는 product/market fit을 찾는 걸 도와주고 조언해주는 것도 만만치 않게 힘든 일이다.

얼마 전에 이 중 한 분과 이야기하다가 MVP(Minimum Viable Product)에 대해서 서로의 생각을 공유했는데, 초기 스타트업과 만나다 보면 MVP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항상 등장한다. MVP의 기본정의는 대략 다음과 같다.

MVP는 출시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능만 제공한다. 보통 얼리어답터와 같은 소수 잠재 고객에게 먼저 공유를 한다. 이런 고객이 불완전한 제품의 가능성을 잘 파악하고 생산적인 의견을 주기 때문이다. MVP의 기본이 되는 사상은 고객을 발견하고 고객의 애로사항을 파악하는 것이다. 빨리 제품을 시장에 내면 고객 성향을 빨리 배울 수 있다. 그래서 창업자가는 고객이 관심 없는 기능엔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고객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제품을 빠르게 내야 한다. 그래야 남들보다 빠르게 배울 수 있다.
-출처: ‘스타트업 바이블 2‘ 23계명 – 빨리 똑소리 나는 MVP를 만들라

제품을 매일 매일 만들고, 이 제품을 시장에서 마케팅하면서 product/market fit을 찾기 위해 밤새워서 고민하는 창업가들은 MVP의 정의도 잘 알고 있고, 제품 개발을 조금 해본 분들이면 어떻게 하면 좋은 MVP를 만들어서 시장이 좋아하는 제품으로 지속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지에 대한 나름의 방법이 몇 가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좋은 MVP’는 어떤 제품일까? 어느 정도 수준까지 만들어야지만 MVP라고 할 수 있을까? 초기 스타트업 대표들이 이런 질문을 나한테 많이 한다. MVP의 의미는 과거와 전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전적인 정의는 “시장에서 사용될 수 있는 최소한의 제품”이다. 당근마켓은 현재 전 국민의 40%가 사용하는 국민 중고 거래/로컬앱으로 성장했지만, 창업초기에는 모바일로 아주 쉽게 내 물건을 등록하고, 이걸 판교 지역 사람들에게 사고팔 수 있는 최소한의 기능만을 제공했다(당근마켓의 원래 이름은 판교장터 였다). 이 MVP로 실험하고자 했던 건, 과연 사람들이 지역주민이랑만 거래할 의향이 있을까였다.
마찬가지로, 지금은 홈서비스를 위한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는 미소의 MVP는 웹 기반의 간단한 청소가사도우미 매칭 서비스였다. 집 청소가 필요하다고 요청하면, 뒤에서 미소 직원들이 고객의 집 근처에 있는 인력사무소에 전화해서 수동으로 가사도우미를 매칭해줬는데, 이 MVP로 실험하고자 했던 건, 과연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가사도우미 서비스 신청을 할까였다.

어차피 완벽한 제품은 만들 수가 없기 때문에, 오래 고민하고 개발해서 10년 후에 출시한다고 시장에서 환영받는 제품이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시장에서 먹힐만한 제품과 시장이 실제로 원하는 제품은 다르고, 시장의 상황도 지속해서 변하기 때문에 완벽한 제품을 만들어서 출시하는 건 시간 낭비다. 이런 문제점을 잘 해결할 수 있는 린 제품 개발 방법론 중 하나가 MVP를 빨리 만들어서 출시하고, 이후에 시장의 피드백을 지속해서 다시 제품에 반영해서 시장이 원하는 것과 가장 근접하게 제품을 개발하는 방법이다.

완전한 제품을 만들어서 한 번의 무거운 제품 출시를 하지 말고, MVP를 만들어서 가벼운 제품 출시를 여러 번 하라는 조언을 나도 자주 하는데, 최근에 내가 느끼고 있는 건 MVP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상향평준화 돼서 완전한 제품의 완성도를 가진 MVP도 꽤 있다는 점이다. 이런 추세를 의식해서인지, 우리 투자사 포함, 많은 창업가들이 더 좋은 MVP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서 긍정적인 결과 보단, 부정적인 결과가 더 눈에 띈다. 더 좋은 MVP를 만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더 많은 절대적인 개발 시간을 투입하는데, 어떤 회사는 MVP 만들어서 출시하는데 1년 넘게 걸리고, 예정 일정 대비 계속 출시가 지연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렇게 완성될 수 없는 완벽함을 추구하다 보면, MVP 출시 자체를 못 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그리고 계속 출시 준비만 하다가 회사가 망하기도 한다. 또는, 지연을 거듭하다가 결국 출시는 했는데, 그동안 타이밍을 놓치면서 시장의 요구사항이 바뀌거나, 아니면 경쟁사가 먼저 MVP를 출시하면서 모든 게 도로 아미타불 되는 경우도 많이 봤다.

이런 상황을 많이 보고 경험하면서, 내가 느낀 MVP에 대한 생각을 간단하게 정리해본다:
1/ MVP의 수준이 상향평준화 된 건 확실하다. 하지만, MVP의 정의는 말 그대로 “최소한의 기능만 탑재한 제품”이다. 무조건 빨리 출시하는 게 생존과 성공의 확률을 높일 수 있다.
2/ 이렇게 빨리 출시해서 시장의 반응을 보는 게, 포기할 건 빨리 포기하고, 더 개발할 건 빨리 개발하는걸 결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근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3/ “최소한의 기능”을 조금 더 확대해석해서 “최소한의 기본적인 기능”이라고 하고 싶다. 즉,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제품이 시장에서 필요한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을 텐데, 이 욕구를 충족시키는 게 이 최소한의 기본적인 기능이다.
3-1/ Gmail보다 훨씬 더 사용하기 편리한 이메일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스타트업이라면, MVP는 멋진 UI와 UX, 그리고 다른 부수적인 기능 보단, 일단은 이메일을 잘 보내고, 잘 받는 기능이 가장 중요하다. 이게 최소한의 기본적인 기능이다. 이게 완성되면 일단 MVP를 출시하고, 이후에 시장의 피드백을 반영하면서 제품을 계속 향상해야 한다. 모든 부수적인 기능이나 디자인을 입힌 후에 MVP를 출시하려면 출시 자체를 못 할 확률이 높다.
3-2/ 이 최소한의 기본적인 기능에 대한 정의를 제품 개발 시작하기 전에 잘 고민해봐야한다. 여기에서 정의가 어긋나면 MVP 자체가 산으로 간다.
4/ 그렇다고 허접한 MVP를 만들면 안 된다. 이 또한 망하는 지름길이다.
4-1/ 최소한의 기본적인 기능이 탑재되지 않고, 쓸데없는 부수적인 기능과 기술이 탑재된 MVP가 출시되면, 사용자를 확보하지 못하고, 이로 인해 MVP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5/ 즉, MVP의 핵심은,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으면서, 앞으로 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제품의 방향을 확정하기 위한 틀을 만드는 작업이다. 하지만, 너무 빨리 만들어서 사용 자체를 못 하는 MVP를 출시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나도 정확한 평균치를 계산해본 적은 없지만, 좋은 개발력과 제품 기획력이 있는 초기 스타트업이 괜찮은 MVP를 만드는데 투자하는 시간은 대략 6개월 정도인 것 같다. 6개월 이하면 원하는 제품이 안 나오고, 6개월을 넘기면 출시가 지연된다. 물론, 이건 산업마다 다르고, 시장마다 다르고, 회사마다 다르다.

적자 면허

우리가 지금까지 투자한 250개가 넘는 한국과 미국의 스타트업은 대부분 돈을 못 벌거나, 돈을 벌어도 적자다. 하지만, 나는 비즈니스의 최종 목적은 시장이 돈을 내면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서 돈을 버는 것이고, 당장은 힘들지만, 언젠가는 회사가 쓰는 돈보다 버는 돈이 더 많아서 흑자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돈을 벌어서 흑자를 만드는 시점까지의 여정은 회사마다 다를 수 있다. 물건을 직접 만들어서 판매하는 D2C 회사라면, 창업하자마자 매출이 발생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지만,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서 판매하는 회사라면 창업 후 1년, 또는 2년 후까지 제품도 출시 못 하는 경우도 많고, B2B SaaS 회사라면 돈을 버는 시점이 상당히 나중에 올 수도 있다. 어떤 비즈니스는 당장 작은 매출을 만들기보단, 적자를 감수하면서 마케팅에 집중해서 사용자를 모으고, 많은 트래픽이 확보되면 이를 통해서 순식간에 매출을 만드는 전략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런 회사들의 성장 과정은 경영 교과서에 나와 있는 이상적인 기업의 성장 방식과는 완전히 반대이다. 돈을 벌면서 기업이 성장하는 게 아니라, 돈을 까먹으면서 기업이 성장하고, 그 성장 또한 회사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판매되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투자자의 돈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흑자 구조로 점점 더 가까이 가는 게 아니라, 적자로 시작해서, 많은 경우 수년 동안 이 적자가 더 커지면서, 적자와 생존 사이에 생기는 큰 간격을 투자금으로 계속 메꿔가면서, 전통적인 비즈니스를 하던 분들이 보면 약간 기형적인 구조로 성장한다.

솔직히, 나는 이런 형태의 성장을 선호하진 않는다. 창업 첫날부터 돈을 벌어서 흑자 구조로 전환하는 건 요새 거의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기업은 돈을 벌어야 하고, 계속 적자 폭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긴 하다. 하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 스타트업을 본다면, 이 회사들은 이미 시장에 존재하는 거대한 기업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데, 이 거대한 경쟁사들이 전통적으로 사업을 해왔던 방식으로 성장을 하면,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좋은 기술, 자본과 인력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성장을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어느 정도 수준까지 사업을 끌어올려야지만 경쟁 자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즈니스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면서도, 당분간은 마이너스에 허덕거리는 사업에 투자하고 이들을 응원하는, 어떻게 보면 모순되는 투자를 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한다. 그리고 돈을 버는 것보다 빠른 성장이 더 중요한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창업가라면, 이런 사업의 생리와 배경을 투자자와 이사회에 잘 설득시켜야 하고, 이들이 아주 오랫동안 마이너스가 나는 비즈니스에 투자하고 있다는 걸 이해시키고, 이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동의를 구해야 한다. 나는 우스개 소리로 이걸 창업가의 ‘적자면허(Permission to be unprofitable)’라고 한다.

이미 말한 대로, 사업의 궁극적인 목표는 돈을 버는 것이다. 하지만, 이 힘들고 어쩌면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달성하지 못 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돈을 까먹으면서 성장을 해야 하는 구간이 있을 수가 있다. 특히, 남들보다 빨리 성장해서 고객을 락인 해야하는 – 락인 한 후에 이 고객 베이스를 기반으로 돈을 번다는 말은 플랫폼 플레이어라면 누구나 하는데, 실제로 이걸 할 수만 있다면 엄청난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다 – 영역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면, 투자자와 이사회에서 “You have the permission to be unprofitable”이라고 해주면 더 과감하게 지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