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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서가기

dorm mining equipment얼마 전에 재미있는 기사를 읽었다. 미국의 대학생들이 기숙사에서 가상화폐를 채굴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수익성이 높은 채굴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값싼 전기와 값싼 하드웨어인데, 이게 가능한 나라가 중국이기 때문에, 채굴 시장은 중국이 압도적으로 점유하고 있다. 특히 비트코인의 경우, 비트코인 채굴을 위해 설계된 전용 ASIC 하드웨어가 필요한데, ASIC은 상당히 비싸고 전기도 많이 사용한다. 그래서 다른 나라보다 전기와 하드웨어가 저렴한 중국에서 비트코인이 많이 채굴되고 있다. 전기세가 비싼 곳에서 비트코인을 채굴하면, 채굴한 비트코인의 가치보다 전기 비용이 더 많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이더와 같은 가상화폐 채굴용 전용 ASIC은 아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더의 경우 그냥 일반 PC로 채굴이 가능하다(기본 CPU가 아니라 성능이 더 좋고 비싼 GPU가 필요하긴 하다). 전기료도 그만큼 저렴하다. 이러한 이유로 MIT와 같은 미국 대학교 기숙사에서 학생들이 이더나 다른 알트코인을 채굴하고 있다고 한다. 일단 비싼 하드웨어가 필요 없고, 전기세도 학교가 부담하기 때문이다. 또한, 대학교 기숙사의 경우, (현재로써는)전기나 수도세는 등록금과 기숙사비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점을 잘 활용해서 첨단 기술을 공부하고, 돈과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호기심이 동기가 되어, 전 세계 학생들이 요새 기숙사에서 24시간 PC와 GPU를 돌리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대학교 기숙사의 전기세는 각 방 단위로 요금이 부과되지 않고, 전체 기숙사 단위로 요금이 부과되고, 아직 비정상적인 전기사용은 파악되지 않아서 학교 측에서는 이에 대해서 지적한 사례는 없다고 한다.

이런 사태를 보면, 많은 사람은 열심히 공부해서, 비싼 등록금 내고, 좋은 학교 가서 정신 나간 짓 하고 있다고 욕할 것이다. 학생들이 너무 어린 나이에 일확천금을 노리면 돈의 노예가 될 것이고, 이런 학생은 나중에 졸업하면 인생의 낙오자가 될 것이라고 손가락질할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기숙사에서 열심히 채굴하는 학생들은 졸업 후 새로운 기술로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게 크게 기여할, 만반의 준비가 된, 중요한 인재가 될 확률이 높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이들은 이미 가상화폐와 암호화 전문가가 되어 있다. 대부분의 학생 채굴자들은 기숙사에서의 채굴 경험으로 인해 블록체인과 가상화폐 기술에 대해 수업보다 더 많은 지식을 얻었다고 한다. 물론, 이 중 소수는 상당히 많은 돈을 벌기도 했다. 분명한 거는, 기숙사에서 소소하게 가상화폐를 채굴하는 게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이들은 시대를 앞서가는 고속차선을 탄 것임은 틀림없다.

나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작년에 읽은 책 ‘플레이‘가 생각났다. 지역도 다르고, 시대도 다르고, 기술도 다르지만, 당시 대학원생들이 연구실과 기숙사에서 공부는 안 하고 게임에 미쳐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분명히 손가락질하면서 욕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한국의 온라인 게임 산업을 만들었고, 한국이 전 세계에서 1등 하는 몇 안 되는 분야를 무에서 만든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대를 앞서가는 인재들이었다.

2018년 1월, 우리는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한국이 최단 기간에 글로벌 1등이 된 가상화폐 산업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고 전면 규제할 것인가, 아니면 큰 혁신이 일어나기 전에 흔히 볼 수 있는 혼돈으로 간주하고 현명하게 규제하고 대처할 것인가. 간단하지도 않은 이슈이고, 그 결정은 더욱더 간단하지 않은 후속 결과를 낳을 것이다. 잘 판단하길 바란다.

<이미지 출처 = Steemit>

1백만

sketchware_1M install안드로이드 모바일 앱을 쉽게 만들 수 있는 모바일 앱 스케치웨어가 얼마 전에 백만 다운로드를 달성했다. 실은, 요새 워낙 좋은 앱들이 많아서 1백만 다운로드는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닐 수도 있지만, 이 숫자가 나한테 의미하는 건 조금 특별하다. 프라이머와 스트롱이 같이 투자한 이 회사에 우리가 어떻게 투자하게 되었는지 여기서 잠깐 적어본다.

작년 6월 말, 나는 스케치웨어 김기한 대표의 cold 이메일을 받았다. 우리는 웬만한 콜드이메일은 다 읽으려고 노력하지만, 많이 오면 어쩔 수 없이 놓치는 것도 있는데, 다행히도 이 이메일은 내가 봤고, 첨부한 사업계획서도 읽어봤다(간결했다). 나도 이 분야를 잘 모르지만, 괜찮다고 생각해서 일단 화상으로 통화를 하고, 프라이머 파트너십과도 공유했다. 한국에서 나오기 쉽지 않은 순수 소프트웨어 비즈니스, 그리고 시장 자체가 한국보다는 해외가 훨씬 더 크다는 점을 모두 높게 평가했지만, 그만큼 더 어려운 시장이고, 이 팀이 해외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그래서 아쉽지만 이번에는 투자를 하지 않겠다고 메일로 답변을 드렸다.

보통 여기까지 오면, 대부분 창업가는 다른 투자사를 찾아보는데, 며칠 뒤에 스케치웨어로 부터 이메일을 하나 더 받았다. 솔직히 투자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그냥 대충 보고 넘길 수도 있었지만, 나는 사무실에서 큰 모니터로 이메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읽었다. 스케치웨어의 간절함과 절실함이 글로 나한테 그대로 전달이 되었다. 하지만, 비굴한 어조는 전혀 없었다. 왜 지금 회사는 투자가 필요하고, 그나마 여기까지 온 투자사는 프라이머와 스트롱 밖에 없고, 이 비즈니스의 진가를 알아보는 VC를 만나는 게 너무 힘든데, 그동안의 대화가 즐거웠고, 이런 대화를 앞으로 계속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메일을 읽자마자 지금은 쿠팡에 인수된 우리 투자사 Recomio의 창업가 태호한테 스케치웨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좀 알려달라고 했다. 참고로, 내가 소프트웨어 기술을 잘 모르기 때문에, 순수 기술 회사에 대해서는 내가 믿는 사람들의 조언을 항상 구하는데, 태호는 그중 내가 가장 믿는 엔지니어다. 태호는 굉장히 좋은 반응을 보였고, 왜 스케치웨어가 크게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공유해줬다.

나는 이런 내용을 정리해서 프라이머 파트너십에 다시 투자제안을 했고, 결국 프라이머와 스트롱이 공동 투자하기로 하면서 스케치웨어에 작은 초기 투자를 했다. 이후 우리는 한 번 더 추가 투자를 했고, 다행히도 회사는 이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1백 만 다운로드는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더 많은 사용자의 꿈을 실현해 주 수 있는 좋은 제품으로 성장하길 바라며, 5백만 다운로드가 벌써 기대된다.

에센스(본질)

내 나이 또래 중 ‘배가본드’라는 일본 만화를 아시는 분이 많을 거다. 슬램덩크로 유명한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또 다른 명작인데, 1582년~1645년 실존했던 일본의 전설적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의 일대기가 펼쳐지는 만화이다. 무사시는 29세가 되기 전 60번의 목숨을 건 싸움에서 승리한 이후, 방랑 생활을 하다가 말년에 ‘오륜서’라는 병법서를 썼다. 1643년도에 쓴 책이지만, 전 세계 사업가들이 즐겨 읽는 책이라고 알고 있는데, 목숨을 걸고 싸우는 사무라이와 목숨을 걸고 경쟁하는 비즈니스맨 사이에는 시대를 초월하는 공통점이 많이 존재하기 때문인 거 같다.

나도 이 오륜서 관련 다른 책을 몇 권 읽어봤는데, 무사시가 강조하는 건 본질이다. 기교나 잔꾀를 부리면 한 두 번은 싸움에서 이길 수 있지만, 결국엔 남의 검에 베이기 때문에, 무사는 항상 본질을 추구해야 한다는 내용이 주가 되는 책이다. “검술의 진정한 도는 적과 싸워 이기는 것이요, 이것을 빼면 아무것도 있을 수 없다”라는 무사시의 명언은 실은 370년이 지난 오늘의 비즈니스 세계와 우리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명쾌한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투자도 나는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나한테 많은 분이 물어보는 게 요새 실리콘밸리의 투자 트렌드 또는 한국과 실리콘밸리 투자의 차이점인데,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고민을 많이 한다. 왜냐하면, 이분들이 생각하는 거와 같이 실리콘밸리와 한국의 투자 환경이나 트렌드가 그렇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투자는 솔직히 단순하다. 한국이든 실리콘밸리든 그냥 좋은 회사에 투자하는 게 성공적인 투자이기 때문에 무슨 투자 트렌드에 관해서 이야기하라고 하면 딱히 할 말은 없다. 물론, 그때마다 유행인 분야나 산업은 있지만, 결국 투자의 본질은 그냥 좋은 회사를 찾아서 돈을 투입하는 거다.

얼마 전에 이 기사를 읽었다. 내년에 1조 원 규모의 돈이 벤처시장에 풀리기 때문에, 벤처투자의 판이 커지고, VC 판도와 트렌드 자체가 바뀔 것이라는 내용이다.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판이 아무리 커져도, 투자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칼싸움의 본질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적이 나를 베기 전에 적을 베어 죽이는 것이다. 투자의 본질도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남들보다 빨리) 좋은 회사를 찾아서 투자하는 것이다.

좋은 회사는 시장에 돈이 풀리든 안 풀리든 좋은 투자를 받을 것이고, 후진 회사는 시장에 아무리 많은 돈이 흘러도 투자받지 못 할 것이다. 후진 제품을 만들면서 내년에 돈이 넘쳐흐르기 때문에 혹시나 투자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창업가들이 생각보다 많은데, 그런 꿈은 빨리 깨는 게 좋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VC들이 그렇게 멍청하진 않다.

가상화폐 규제

비트코인 1천만 원 시대가 정말로 왔다. 그리고 많은 국가에서 가상화폐를 제도권으로 편입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한국에서도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에 대한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내가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며칠 전에 국회 정무위원회가 관련 전문가 5명을 초청해 가상화폐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했다고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가상화폐가 제도권과 동떨어져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제대로 된 법과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ICO를 그냥 금지해버린 것과 같은 일률적 규제는 그 누구한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이 방식으로 가상화폐 규제에 접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미디어를 통해서 접하는 비트코인과 가상화폐 관련 소식은 대부분 부정적이어서 일반인은 무조건 나쁘고, 사기성이 강해서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텐데, 이 분야를 조금 아는 우리 같은 사람은 이런 흑백논리로 접근하는 건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청회에서 이천표 서울대 명예교수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는데, 나는 이 말에 정말 동의한다.

“ICO 방식으로 모은 자금으로도 혁신적 실험을 하려는 기업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투자사업이 무엇이 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관에서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올바른 방도가 될 수 없다”

몇 년 전에 이더리움이 탄생했던 배경을 기억한다면, 이게 어떻게 보면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ICO였는데, 누가 과연 이걸 사기라고 할 수 있을까? 이더리움이야말로 ICO를 통해서 모은 자금으로 많은 실험을 많이 했고, 이더리움 프로토콜 기반으로 엄청난 혁신적 기술이 만들어지고 있다. 가상화폐가 정말 화폐냐 또는 주식과 같은 투자(투기) 상품이냐를 정의하는 게 매우 시급하고, 현재로서는 후자로 정의될 확률이 크다고 생각되며, 이 방향으로 가면 정부는 가계를 보호하기 위해서 가혹한 정책으로 가상화폐를 규제하지 않겠냐는 걱정이 든다.

하지만, 나는 정부 높은 분들이 가상화폐의 본질을 조금 더 연구하고 제대로 보려는 노력을 더 하면 좋겠다. 기술 혁신을 가능케 하면서, 부정적인 부분을 제거할 방법은 충분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정책을 만드는 분들이 진정성을 갖고 이 분야에 대해 이해를 하고자 하는 노력을 조금 더 하면 된다. 하지만, 조금 안타까운 점은, 규제하자고 주장하는 분들이 본인들이 정확히 무엇을 규제하는지 잘 모른다는 느낌을 매일 받는다. 정책을 만드는 분 중, 비트코인 지갑을 만들어서, 조금이라도 구매해 본 경험이 있는 분이 있겠느냐는 생각도 하게 된다.

없다면, 가상화폐를 조금이나마 직접 체험해보길 권장한다. 모르는 게 있으면, 아는 사람한테 물어보고 의견을 충분히 구했으면 한다. 그 이후에 규제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 안 그러면 한국에서는 정말로 혁신이 힘들어질 것이다.

옷 벗는건 무책임

10월 말에 열린 국내 여자골프 메이저 대회 중 하나인 KB금융 스타챔피언십 대회가 골프선수들의 반발로 1라운드가 완전히 취소되는 아주 이상한 사태가 벌어진 적이 있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설명하진 않겠지만….조금만 설명을 하면…그린 옆 프린지의 잔디가 그린과 쉽게 구별이 안 될 만큼 짧게 깎아놓아서, 일부 선수들이 프린지를 그린으로 착각했다. 그래서, 여기에 떨어진 공을 집어 들어서 벌타를 받는 사태가 여러 차례 발생했다. 이에 대해 선수들의 불만이 터지자, 경기위원회는 그린과 프린지가 구별이 안 된다는 걸 인정하고 이로 인한 선수들의 벌타를 모두 면제해줬는데, 이게 벌타를 받지 않은 다른 선수들의 엄청난 반발을 산 것이다. 그리고, 선수들은 형평성 문제를 들어 1라운드 결과를 무효로 처리하라며 대회 출전을 거부했다.

사태가 이렇게 되니, 위원회는 공식 사과와 함께 1라운드 자체를 아예 취소해버리고 원래 4라운드 경기를 3라운드로 축소를 했다. 상당히 미숙한 운영이고, 이렇게 1라운드를 취소한 것도 이상하지만, 내가 가장 이해하지 못했던 건, 경기위원장의 사임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지고 사임하겠습니다”라면서, 90도 인사하고 사임하는 게 과연 책임을 지는 것인가?

실은, 우리는 이와 비슷한 현상을 주변에서 너무 자주 본다. 큰 사건이 터지면, 담당 장관이 옷을 벗고, 기업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엄밀히 말해서 그 사건과 직접적으로는 관련 없는 고위간부가 ‘책임을 지고’ 회사를 그만둔다. “그거 잘못되면 내가 책임지고 그만두면 되잖아.”라는 말이 난무하는 사회이다. 아주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사임하는 건 책임 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책임을 지고 싶다면, 그전에 잘못한 거를 깨끗하게 인정하되, 그 잘못된 걸 올바르게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똥은 왕창 싸놓고, 그냥 옷 벗으면, 이걸 누가 처리하란 말인가?

나는 그래서 문제가 발생하면, 가끔 사임하지 않고 끝까지 남아서 책임을 지겠다고 하는 정치인들을 오히려 좋게 볼 때가 있다. 어떤 이들은 수치심도 없는 부끄러운 인간들이라고 하지만, 나는 오히려 잘못했으면, 그 잘못을 가장 잘 고칠 수 있는 건 그 사람 본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태도가 더 좋다는 생각을 한다. 그냥 단지 사임하는 건, 오히려 더 비겁하고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