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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평판

broken-glass요새 실리콘밸리 남성 투자자들의 평판이 무너지고 있다. 그것도 완전히 와르르 무너지고 있다. 워낙 이슈화가 되었고, 한국 미디어에서도 많이 보도되어서, 기사를 접한 분들은 잘 알겠지만, 여성 창업가를 포함한, 스타트업 커뮤니티 여성들과의 신체적, 성적인 문제 때문에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정말 난리도 아니다. 이 중,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투자자들도 있지만, 피해자인 여성 중에도 내가 아는 분들이 있다. 양쪽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솔직히 말해서, 한쪽이 일방적으로 잘못했다고 밀어붙이기엔 조금 무리가 있지만, ‘돈’이라는 – 어떻게 보면 돈 없는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창업가들한테는 그 어떤 것 보다 힘 있는 – 권력을 가진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조금 더 신중했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나는 다시 한번 ‘평판’의 중요성에 대해서 생각했고, 나도 앞으로 정말 신중하게 행동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번 사건의 ‘가해자’인 미국의 남성 투자자들은 현재까지의 위치에 오르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일했다. 그렇게 힘들게,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쌓아온 평판인데, 이 모든 게 한순간에 산산조각이 나는걸 보면서, 평판이라는 건 영원할 수 없고, 오히려 언젠가는 깨질 수 있는 위험에 항상 노출된, 쌓는 것도 힘들지만, 지키는 건 더욱더 어려운 모래성과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VC들의 성희롱 사건과 같이 한방에 깨질 수도 있지만, 작은 크랙들이 누적되어 깨지는 유리와도 비슷한 거 같다.

실은,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도 이와 비슷한 사건들이 요새 미디어에서 많이 보도되고 있다. 남들이 한 마리 팔 때, 두 마리씩 팔아서 갑부가 된 치킨집 사장의 성추행 사건이나, 일본의 작은 피자 브랜드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한 폭행과 갑질 논란은 거의 30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힘들게 쌓은 평판을 한 방에 무너뜨렸다.

VC나 스타트업도 평판이 매우 중요한 비즈니스이다. 어떻게 보면, 평판이 전부인 비즈니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하지만, 워낙 소셜미디어나 온라인상에서 목소리가 크고, 활동이 활발한 사람들로 구성된 그룹이기 때문에, 이 바닥에서의 평판이야말로 언제가 산산조각이 날 수 있는 진짜 유리평판이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평판 관련 포스팅을 하면, 이게 정말 불같이 퍼지는데, 내용의 사실 여부가 판명이 나기도 전에 이미 그 사람은 공공의 적이 된다. 내용이 사실이 아니거나, 또는 거짓으로 판명이 나더라도, 이미 그 피해는 엎질러진 물이 되는 경우가 많다.

평판을 쌓는 건 정말 힘든 일이지만, 그 평판을 계속 유지하는 건 더욱더 힘들다. 항상 신중해야 하고, 내가 하는 일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그래도 피해를 볼 수 있는 세상에 우린 살고 있다.

<이미지 출처 = All Class Glass>

착한 사람

6월 30일 프라이머 11기 데모데이에서 메가스터디의 창업자 손주은 회장님이 키노트 연설을 하셨다. 실은 당연히 파워포인트나 PDF 자료 기반으로 발표하실 줄 알았는데, 본인은 자료 같은 거 사용하지 않고 그냥 화이트보드에 직접 쓰신다고 해서, 내부적으로는 좀 당황하긴 했다. 그리고 행사당일, 800명 이상이 모인 큰 장소의 무대 위에 아주 작은 보드에 마커로 이것저것 쓰시면서 시작할 때만 해도 난 솔직히 좀 불안했다. 또한, 손 회장님이 과거 어떤 행사에서 30분이 배당됐는데, 한 시간 이상 이야기하셨다는 소문이 청중에서 나오자 더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내 걱정과는 반대로, 손주은 회장님의 연설은 프라이머 데모데이에서 들었던 그 어떤 키노트보다 더 값지고 찰졌다. 그리고, 사람의 냄새가 폴폴 날 정도로 매우 인간적이었다. 시간은 조금 오버하셨지만, 내용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청중이 경청해서 들었다. 실은 나는 이 분을 개인적으로 잘 모르지만, 맨손으로 상장 회사를 만드신 패기와 그 비즈니스를 계속 잘 운영하시는 스킬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본받고 싶었던 건 이 분의 소명의식과 사회에 많은 걸 환원하고 싶어하는 책임감이었다. 나도 돈 많이 벌면, 저렇게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인데(이건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냐 하면 ‘착한 사람’이라고 하시면서 키노트를 마쳤다. 이 ‘착한 사람’에 대해서는 나도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서 의견이 계속 바뀐다. 실은, 착한 사람은 그냥 착하지, 비즈니스는 잘못 한다는 게 일반론인 거 같다. 일을 하다 보면, 힘든 결정을 해야 하고, 사람도 해고해야 하고, 남한테 싫은 소리를 더 많이 해야 하는데, 이런 일들을 잘하려면 나쁜 놈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인 거 같다.

우리도 착한 CEO한테 투자해봤고, 내가 봐도 아주 싸가지 없는 못 된 CEO한테 투자도 해봤다. 아직 판단하려면 시간이 걸릴 텐데,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천성이 착한 사람들이 승리하는 방향으로 대세가 기울어지는 거 같다. 단기적으로는 차갑고, 남들한테 욕 많이 먹는 사장들이 비즈니스를 잘하지만, 장사 수준을 벗어나서, 실제 비즈니스를 만들고, 더 좋은 사람들을 채용하고, 제대로 된 비즈니스로 성장하기 위한 필수요소인 회사의 ‘문화’를 만드는 건 착한 사람들인 거 같다.

실은, 나는 착한 사람에 대해서 한동안 생각을 안 하다가, 데모데이 이후 다시 한번 깊게 고민하게 됐고, 이제 창업자들 만나면, “스스로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나요?”라고 꼭 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프라이머 11기 데모데이

내일은 프라이머 11기 데모데이다. 스트롱은 본격적으로 프라이머 8기부터 파트너로 조인했으니까, 이제 나도 4기 수에 걸쳐 파트너 활동을 한 셈이다. 솔직히 악셀러레이터 일을 한 다는 건 정말 쉽지 않다. 절대적으로 회사 수가 많고, 각 파트너당 최소 4개의 완전초기-초기 스타트업과 같이 일을 하려면, 체력도 강해야 하고, 공부도 상당히 많이 해야 한다. 그래도 나는 힘든 거보다는 배우는 게 더 많으므로, 매 기수 데모데이를 할 때가 되면, 보람차고 상당히 행복하다.

이번에 나는 4개의 회사와 같이 일을 했다. 이젠 물리적으로 한국에 있으므로, Skype가 아니라, 매주 한 번씩 직접 만나서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야기를 창업가들과 했다. 나는 각 회사의 비즈니스에 대해서 깊게 파고 들어가서, 비즈니스 모델이나 수치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그냥 전반적인 큰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는데, 그 이유는 일단 내가 각 비즈니스에 대해서 깊게 들어갈 정도의 지식이 없고, 이 단계의 회사들에 필요한 건 운영 면에서의 도움보다는 전반적인 방향에 대한 도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8기부터 11기까지, 지금까지 난 14개의 프라이머 회사들과 아주 밀접하게 일을 했는데, 내가 과연 이 회사들한테 어떤 도움과 가치를 제공해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매주 한두 시간씩 만나는 게, 지금 당장 일을 해야 하는 창업가들한테는 부담이 될 수도 있는데, 이 바쁜 사람들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난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다. 그래서 데모데이 전 마지막 미팅에서는 각 팀한테 물어본다. 프라이머 프로그램에 대한 객관적인 피드백, 나랑 매주 만나면서 했던 미팅들에 대한 솔직한 의견, 그리고 혹시 앞으로 내가 더 잘하려면 어떤 부분을 수정하고 보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물어본다.

다행히도, 지금까지는 나쁜 피드백보다는 좋은 피드백이 더 많았다. 그리고 특히 이제 갓 사업을 시작한 회사들에는 프라이머 파트너와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더 큰 도움이 된다는 걸 많이 느꼈다. 수치, 매출, 운영적인 차원보다는 그냥 스타트업이나 인생 경험이 조금 더 많은 선배 같은 파트너들과 정기적으로 얼굴 보면서 이야기 하는 게 심리적으로, 비즈니스적으로, 여러 가지 면에서 도움이 된다는 피드백을 들었다(어차피 사업은 본인들이 풀어야 할 장기적인 숙제).

Good luck with 데모데이!

스케치웨어

sketchware_meta_en우리 투자사 스케치웨어는 모바일 앱을 쉽게 만들 수 있는 앱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이다. 나같이 코딩 지식이 없는 일반인이 모바일 앱을 만드는 건 쉽지 않지만, Scratch 기반의 스케치웨어를 사용하면, 큰 학습곡선 없이 간단한 모바일 앱을 만들고, 이걸 다른 사용자들과 공유할 수가 있다.

비 개발자에게도 많은 돈과 시간의 투입 없이,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기 때문에 이런 부류의 제품을 흔히 empowerment tool이라고도 하는데, 최근에 이를 증명해주는 재미있는 사례가 생겼다. 시현수라는 한국 여고생이 스케치웨어를 사용해서 만든 앱이 한 달 만에 10만 번 이상 다운되면서 구글플레이스토어 엔터테인먼트 분야 1위에 올라간 것이다. 한국의 인기 보이그룹 EXO 콘서트에서 사용할 수 있는 EXO-LIGHT 라는 앱인데, 물리적인 EXO 라이트스틱은 가격이 4만 원 이상이라서 학생이 사기에는 만만치 않기 때문에, 이 학생이 방법을 찾다가 직접 안드로이드 앱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콘서트 시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EXO 라이트스틱이 출시되기 때문에, 이걸 앱으로 만들어서 적절히 업데이트만 하면, 현수양같은 고등학생들이 비용부담 없이 EXO를 응원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프로그래밍 지식이 없어서 – 실은, 고등학교에서 기본적인 코딩 수업을 듣긴 들었지만, 학교 수업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걸로 모바일 앱을 직접 만든다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 앱을 만들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플레이스토어에서 여러 가지 앱을 시도해본 후, 가장 직관적으로 앱을 만들 수 있는 스케치웨어를 선택했다. 큰 기대 없이 만든 EXO-LIGHT는 첫날 22,000번 설치되었고, 현재 110,000번 다운로드, 3,500개의 리뷰, 평점 4.9를 받는 인기 앱으로 급부상했다. 지금은 순위가 떨어졌지만, 한때 인도네시아 플레이스토어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9위, 그리고 중국에서는 6위까지 올라갔다.

코딩 지식이 없는 여고생이 며칠 만에 인기 앱을 직접 개발한 것도 대단하지만, 이 과정을 계기로 이 학생은 코딩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앞으로 조금 더 복잡하고 다양한 제품을 만들 계획을 하고 있다. 창업에도 관심이 있다고 하니,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시현수 학생의 꿈을 실현하는데 스케치웨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스케치웨어팀에서 현수 학생을 직접 인터뷰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고, 누구나 다 스케치웨어앱을 다운받아서(안드로이드 only) 자기만의 모바일 앱을 만들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스케치웨어 홈페이지>

직업은 직업일 뿐

통계적으로, 한국에서 대기업 공채 준비하는데 드는 평균 비용은 4,300만 원이라고 한다. 이 비용에는 취업을 위한 9가지 스펙이 – 학교, 학점, (각종) 영어점수, 어학연수, 자격증, 공모전 입상, 인턴십, 동아리 활동(자원봉사), 그리고 성형수술 – 포함된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의 최대과제 중 하나는 취업문제 해결이고, 여기에 앞으로 한국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TV만 켜면, 학교 졸업하고 취직 못 해서 방황하는 청년들과 위에서 언급한 9개의 스펙을 갈고 닦는 졸업반 학생과 취준생들이 나오고, 바늘구멍보다 더 좁은 취업 지옥에 대한 다큐멘터리들이 날이 갈수록 더 많이 제작되고 있는 거 같다. 이런 프로만 보면 한국에서 젊은이들이 취직하는 건 이제 불가능하다는 생각마저 들게 된다.

그런데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는, 젊은이들을 필요로 하는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들은 사람을 못 뽑아서 쩔쩔매고 있는 현상도 보인다. 직원 4명인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내 친구랑 얼마 전에 식사하다가 들었는데, 사람 좀 뽑으려고 면접 약속까지 잡았는데, 아무런 사전 통보 없이 ‘노쇼’하는 면접생들이 너무 많다고 한다. 그렇다고 회사가 열정페이를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평균 연봉에 4대 보험까지 제공하는데, 이렇게 나타나지도 않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왜 그럴까 물어보니, 뭐 개인적인 사정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졸업생이 작은 벤처나 중소기업보다는 남들이 들으면 알만한 대기업을 선호하기 때문에, 만약에 대기업 면접 약속이랑 중첩되면, 무조건 그쪽으로 가거나, 아니면 면접 날짜가 다가올수록, “나는 삼성이나 현대에 취업을 해야 하는데, 무슨 벤처기업은….”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내가 아는 경기도에 위치한 꽤 건실한 중소기업 오너도 비슷한 말을 하는 걸 들었다. 아무리 회사가 건실하고, 대기업보다 성장 가능성이 높아도, 2년제든 4년제든 대학 졸업생들을 채용하는 게 너무나 어렵다고 한다. 연봉도 나쁘지 않고, 혜택도 나쁘지 않지만, 지방에 위치한 회사고, 남들이 잘 모르는 회사라는 이유가 가장 크다고 한다. 물론, 대우나 혜택이 대기업만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취업을 해야 하는 사람이 거들떠 보지 않을 정도로 택도 없는 건 절대 아니다.

나 자신보다는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더 중요한 사회, 그리고 직업에는 귀천이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 문화가 이런 현상의 원인 중 하나인 거 같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아니, 없어야 한다. 내 생각에 직업은 그냥 직업이다. 좋은 직업도 없고, 나쁜 직업도 없다. 그냥 내가 열심히 일해서, 일한 만큼의 보람을 얻고, 이에 대한 보상을 받아가는 곳이 직장이다. 서울 한복판 대기업에서 양복 입고 일하는 게 지방의 중소기업에서 작업복을 입고 일하는 것보다 좋다는 게 한국이 직업을 보는 일반적인 시각인데, 실은 그냥 두 개의 다른 직업일 뿐이다.

얼마 전에 서울에 있는 꽤 괜찮은 대학교에서 학생들 대상으로 강연한 적이 있는데, 아직도 대부분의 대학생이 졸업 후 현대나 삼성 취업을 목표로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선배인 교수한테 물어보니, “이게 참…웃긴 현실인데, 남학생들이 중소기업에 취직하지 않는 큰 이유 중 하나가, 나중에 결혼할 때 불리하거든…미래 장인, 장모가 듣도 보도 못한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에서 일하는 사람한테는 딸 시집 안 보내더라고…. 이게 한국의 현실이다…. 아직은”

연봉이 높은 직업이 있고, 낮은 직업도 있다. 사무실에서 내근하는 직업이 있고, 계속 밖에서 외근하는 직업도 있다. 출퇴근이 자유로운 직업이 있고, 그렇지 못한 직업도 있고,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직업도 있다. 하지만, 모두 다 그냥 직업일 뿐이다. 좋은 직업과 나쁜 직업을 구분하는 시각이나 편견은 서서히 없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