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밟아야 사는 사회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이 대선 출마를 위해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나는 실은 이 분이 한국에서만 자란 분 치곤 영어를 참 잘해서, 정말 열심히 영어공부를 하셨다는 점 빼고는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UN사무총장 시절, 자신만의 목소리가 참 없는 분이라고 생각했고, 모든 걸 “좋은 게 좋은 거야” 주의로 처리하고 결정하시는 거 같아서 정치인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은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이 분이 정치를 하겠다는 입장에 대한 다른 대선후보의 소감을 뉴스에서 봤는데, 하나같이 비판하고 비난하는 분위기였다. 실은 나는 정치를 전혀 모른다. 그래서 원래 정치인들은 다른 경쟁자들을 무조건 비난하는 캠페인을 전개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굳이 모든 상황에서,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남을 비방하는 건 좀 아닌 거 같다. 반기문 씨에 대해서도 그냥, “그동안 UN에서 고생 많으셨고, 잘 돌아오셨습니다. 선의의 경쟁을 통해서 우리 대한민국 좋은 나라로 만들어 봅시다.” 뭐, 이렇게 말하면서 경쟁하는 그림을 만들면 안 되는 건가? 이건 미국도 마찬가지인 거 같은데, 대선 무대에서 정치인들이 본인의 장점과 강점을 강조하는 걸 본적이 없는 거 같다. 대신,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상대방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며, 거의 삿대질을 하면서 싸우는 저질 싸움판이 형성되는데, 원래 정치가 이런 건지, 아니면 조금 다른 방법으로 경쟁할 수 있는데 이렇게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자주 접할 수 있다. 좋은 제품을 가지고 스스로 잘 성장해서, 우리 팀과 기술을 가지고 경쟁하는 바람직한 스타트업들이 있는가 하면, 내 강점보다는 남의 약점만 늘어놓으면서, 상대방을 밟아가면서 자신을 빛내는 스타트업들도 많다. 언론 인터뷰에서 경쟁사에 관해서 물어보면, 경쟁사를 칭찬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시장을 같이 키워나가고, 궁극적으로 소비자들한테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대표이사는 요새 찾아보기가 힘들다. 일단, 경쟁사를 비방하고, 저 회사는 나쁜 회사고, 우리는 좋은 회사니까 무조건 우리 제품을 사용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는 분들이 더 많다.

피칭할때도 자주 경험하는데, 어떤 대표는 일단 경쟁사는 비방하고, 밟고 시작한다. 이런 분들의 공통점은 바로 자신의 내실을 다지고 내공을 쌓는 데 집중하기 보다는, 경쟁사가 뭘 하는지에 더 관심이 많다는 점이다. 나는 오히려 경쟁사를 칭찬하는 분들을 선호한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우리보다 잘하는 서비스와 회사를 잘 이해해야지만 더 좋거나 차별화된 서비스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잘해서 스스로 빛나야지, 굳이 남을 밟으면서 성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자전거 배우기

나도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는 프라이머의 10기 데모데이가 1월 19일 건설회관에서 성황리에 진행됐다. 실은 5분 안에 어떤 팀이, 어떤 문제점을, 어떤 솔루션으로 해결하는지 설명하는 건 쉽지 않다. 이번에 발표한 19팀 모두 짧은 시간 동안 적은 돈으로 열심히 제품을 만들고, 시장의 반응을 테스트하면서, 항상 꿈꿔왔던 꿈을 현실로 만들고 있는 실행가들이다. 꿈을 현실화하는 이 과정을 5분 안에 압축, 발표하기 위해서 모두 나랑 같이 3번의 리허설 시간을 가졌다. 어떤 대표는 청중을 압도하는 타고난 발표가 이지만, 대부분 무대 공포증에 시달리는 초기 사업가들이다. 데모데이 때마다 느끼는 건데, 발표 당일이 되면 나는 항상 조마조마하지만, 모든걸 직접 부딪히면서 해결해야 하는 창업가라서 그런지, 다들 실전에는 매우 강한 프라이머 팀들이다.

일 년에 두 번 하는, 매번 같은 포맷으로 진행되는 데모데이 행사이지만, 그 현장을 지켜보고 있자면 항상 흥분되고, 짜릿하다. 19팀 중 나는 3개의 팀과 약 3개월 동안 매주 만나면서 집중적으로 같이 일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는데, 대표이사들이 많이 배웠고, 감사하다는 말을 나한테 항상 한다. 그런데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실은 이 팀들이 나한테 뭘 배운 거보다는 내가 이 팀들한테 배운 게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전반적인 비즈니스 경험은 프라이머 스타트업보다 내가 조금 더 많고, 대부분 대표이사보다 내가 더 많은 분야에서 다양한 시행착오를 했다고 생각하지만, 투자를 더욱 많이 할수록 생기는 편견과 고정관념,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급증하는 변화와 새로운 시도에 대한 두려움과 귀찮음을 극복하는 방법을 나는 프라이머 회사들한테 배우기 때문이다. 우리 아버지도 이런 행사를 좋아하셔서 10기 데모데이에도 오셨다. 복잡한 비즈니스들도 있어서 피칭을 모두 다 이해하시지는 못했지만, “이런 행사에 오면 늘 젊어지는 느낌이다”라는 문자를 보내주신 걸 보면, 위에서 내가 말한 것과 비슷한 생각과 영감을 받으신거 같다.

최근에 우리보다 더 복잡한 투자를 하는 선배가 “기홍아, 너도 어서 펀드 규모를 키워서, 재무제표도 좀 보고하는 투자를 해야지.”라는 말씀을 하셨다(프라이머나 스트롱이 투자하는 초기 단계에서는 재무제표가 큰 의미가 없다. 매출도 없고, 비용이라곤 월급밖에 없는 초기 스타트업들의 재무제표를 볼 필요가 별로 없고, 실은 나는 재무제표를 봐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VC가 시간이 지나면서 투자를 더 많이 하면, 펀드 규모를 키우고, 투자 규모도 키우고, 투자인력도 더 늘린다. 그런데, 솔직히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고 투자를 더 많이 할수록, 작은 규모의 펀드를 운용하면서, 계속 초기투자를 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진다. 복잡한 걸 싫어하고, 많은 사람을 관리하는 걸 싫어하는 성격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아무래도 초기기업들과 밀착하게 일하면서 같이 성장하는걸 즐기는 거 같다. 한국으로 온 후에, 이런 걸 부쩍 많이 느끼고 있다.

자전거 처음 배울 때를 모두 기억할 것이다. 중심을 못 잡고, 넘어질까 봐 무서워서, 보조 바퀴를 이용하다가, 조금 자신감이 생기면 보조 바퀴를 제거하고 뒤에서 누군가 자전거를 잡아준 상태에서 앞으로 천천히 나아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자전거를 뒤에서 잡아주던 손을 놓고, 스스로 페달을 열심히 밟으면서 전진한다. 아마도 뒤에서 자전거를 살짝 잡아주는 이 역할이 나한테는 큰 보람을 주는 거 같다. 실은, 손을 놓자마자 바로 꽈당 넘어지는 자전거들이 더 많은데, 그러면 다시 잡아주면 된다. 반면에, 어떤 자전거들은 손을 놓자마자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나아간다.

It’s all good.

롤러코스터 인생

rollercoaster흔히 인생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롤러코스터와 같다고 한다. 나도 40년 넘게 살아보니, 이 말이 맞는 거 같다. 평범한 인생도 롤러코스터인데, 스타트업 인생은 오죽하랴. 이제 우리도 투자한 회사가 70개가 넘었다. 이 중 잘 되는 회사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 힘들어하고, 항상 돈이 부족하다. 스타트업을 하다 보면 항상 힘들고, 항상 돈이 부족한 건 누구나 다 알고, 누구나 다 경험하지만, 이 밑바닥 경험이 너무 오랫동안 지속하다 보면 인간의 멘탈 한계가 가끔 찾아온다.

창업가의 정신적 건강 리스크에 대해서는 이미 2013년, 2014년에 포스팅한 적이 있는데, 요새 이런 생각을 더욱더 자주 하게 된다. 우리 투자사 대표들 포함해서, 스타트업 커뮤니티에서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창업가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최근 많이 느끼고 있다. 스타트업은 모두를 위한 건 아니다. 창업가를 보면 주로 비전이 있고, 자존심이 강하고, 열정과 야망이 넘쳐흐르는 분인데, 예상대로 일이 잘 안 풀리면 이런 사람들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들에 비해 더 크게 좌절하고, 더 큰 자괴감에 빠진다.

인생 살다 보면 일이 풀릴 때도 있고, 안 풀릴 때도 있고, 또는 일을 아예 못 벌일 때도 있다. 하지만, 스타트업 인생을 살다 보면, 일이 풀릴때가 거의 없고, 특히 초기에는 밑바닥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이게 너무 오래 지속하면 – 그리고 대부분 이 처절한 몸부림을 오랫동안 경험한다 – 정신이 공격을 받는다. LG 전자에 다니는 내 월급쟁이 친구가 얼마 전에 이런 말을 나한테 했다. “야, 승진하니까 스트레스가 장난 아냐. 오늘은 기분이 좋았다가 내일은 확 다운되는데, 이러다가 조울증 걸릴 거 같네.” 물론, 이 친구가 정말 힘든 건 내가 그 누구보다 더 잘 안다. 그래도 난 별로 불쌍하다고 느끼지 못한 이유는, 우리 투자사 대표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이 기분의 업다운을 느끼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자는 동안 매출이 발생했거나, 유저들이 등록을 했다면 마치 마약 한 거같이 기분이 좋아졌다가, 그 이후로 몇 시간 동안 매출이 안 생기고 유저 등록이 더디어지면 또다시 기분은 지옥으로 떨어진다. 이 감정의 변동이 하루에도 수차례 미친 듯이 왔다 갔다 하니, 롤러코스터도 이런 기가 막힌 롤러코스터가 없다.

자, 이게 반복되다 보면 정신적인 타격이 누구한테나 다 오게 되어 있다. 천성이 낙천적이고, 스트레스를 잘 견디기 때문에 아무리 상황이 힘들어도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를 느끼지 않는 창업가가 있다면, 내 경험에 의하면 이건 정말로 힘든 경험을 하지 않았거나, 목숨 걸고 비즈니스를 하지 않기 때문인 거 같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나름대로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도 이런 경험이 있으므로, 창업가들의 어두운 경험을 잘 알고 있다.

이런 스트롱 대표이사님들 보면 마음이 짠하다. 사업이 도대체 뭐길래……. 그런데 이분들이 아셔야 하는 게 있다면, 사업을 하면 할수록 스트레스는 더 심해지고, 문제는 더 많아지고, 상황은 더 안 좋아진다는 것이다. 사업이 안 풀리면 이에 따른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엄청난 스트레스가 찾아오지만, 반대로 사업이 잘 풀려도 이에 따른 다른 차원의 문제점들과 스트레스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을 하기로 했으면 미친 롤러코스터를 벗어날 수 없다. 이건 명심을 하면서 사업을 해야 한다. 다만, 이런 감정의 변화와 기복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까, 너무 괴롭고 힘들면 주변에서 꼭 도움을 요청하라고 권장하고 싶다. 가족, 친구, 동료, 투자자, 선배, 후배, 심리치료사, 정신과 의사, 그 누구도 괜찮고, 아무도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지 않으니까 걱정 마라. 혼자 끙끙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미지 출처 = https://www.pinterest.com/explore/roller-coaster-quotes/>

Feeder의 역할

우리도 두 번째 펀드를 만들면서 한국 정부 기관의 출자를 받았고, 이를 계기로 나에게는 중기청을 비롯한 여러 정부기관과 꽤 많은 대화를 할 기회들이 주어진다. 내가 과거에 쓴 글들을 본 분들은 잘 알겠지만, 나는 정부의 스타트업 관련 정책과 투자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도 다분히 있지만, 그래도 총체적으로 보면 마이너스 보다는 긍정적이라는 입장을 조심스럽게 취하고 있다. 정부 관련 부서와 담당자분들을 만나면 항상 나한테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가, “우리가 어떻게 하면 스타트업 생태계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이다. 실은, 이런 질문을 하는 분들은 진짜 고마운 분들이다. 본인이 정확한 방법은 모르지만, 소중한 국민의 세금을 잘 사용해서 대한민국의 창업 생태계에 도움을 주려는 의지라도 충만한 분들인데, 이분들한테 나는 주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이미 과거 포스팅에서 강조했지만, 창업 정책에 있어서는 정부는 리더(leader)가 아니라 피더(feeder)의 역할을 해야 한다. 리더의 역할은 현재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창업가 또는 스타트업 커뮤니티에서 직접 활동하는 기관이나 사람한테 맡겨야 한다. 이들은 입이 아니라 행동으로 모범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런 리더들이 스타트업 생태계를 잘 형성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측면이나 후방에서 도움과 지원을 제공해주는 피더의 역할을 해야 한다. 실은, 대부분의 정부기관이 겉으로는 이런 피더 역할을 한다고 하지만, 막상 정책을 실행함에서는 리더의 역할을 하고 싶어 하는 거 같다. 모든 정책은 실적과 직결되고, 실적을 만들기 위해서는 피더가 아닌 리더가 되어야 하기 때문인 거 같다. 나는 간혹 어떤 프로그램이나 정책을 보면, 창업 생태계가 아닌 특정 기관이나 담당자의 실적을 위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냐는 생각도 한다.

창조경제가 만든 스타트업 정책 중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도 있는데, 나는 이런 프로그램들은 최소 10년~15년을 보고 운영했으면 한다. 안 그래도 요새 너무 많은 스타트업과 투자자가 유행을 좇아가고 있어서 조금 아쉬운데, 정부마저 유행을 타면서 스타트업 정책을 만드는 건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정 기술이 실리콘밸리에서 갑자기 뜨거나, 대통령이나 장관이 어떤 회의에 갔다가 갑자기 뭔가를 듣고 오면, 이게 갑자기 정책으로 만들어지는 걸 나는 여러 번 본 거 같다. 번갯불에 콩 볶기 전에, 과연 이런 기술이나 트렌드가 한국의 상황에 적합한지 다양한 각도에서 고민하고 판단을 한 후에 제대로 된 정책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만들었으면, 단기적인 성과를 바라지 말고, 아주 장기적인 안목과 인내심을 갖고 차근차근 실행해야 하는데, 정권이 교체되면 새로운 담당자는 꼭 본인 주도하에 새로운 정책을 만들려고 한다. 좋은 정책이라면, 여러 정권에 걸쳐서 훨씬 더 견고하게 잘 다듬어서 꾸준히 실행을 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피더들은 리더들이 주최하는 행사를 지원해야 하는데, 정부 기관들은 아직도 너무 많은 행사를 직접 하려고 한다. 나도 2012년부터 비글로벌 행사를 준비해봐서 잘 아는데, 관에서는 이런 스타트업 행사를 할 수가 없다. 관이 조금이라도 관여하게 되면, 행사의 어젠다와 포맷은 완전히 산으로 가게 되고, 아마도 정부 기관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한 번이라도 참석해 본 분들이라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 것이다. 스타트업이 뭔지도 모르는 고위 공무원들이 차례로 환영사를 하는 걸 보면 한숨 밖에 안 나온다.
실은, 담당자분들도 이런 사실을 다 안다. “저희가 원래 정부 기관이라서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런 행사를 할 때는 한계가 있네요.”라는 말을 나는 여러 번 들었는데, 거의 5년째 똑같은 말을 듣고 있다. 그리고 이게 앞으로 바뀌지 않을 게 뻔한데도, 똑같은 포맷으로, 똑같은 부정적인 피드백을 들으면서, 해마다 이런 행사를 계획하는 건 큰 문제가 있는 거 같다.

어떤 정부 관계자가 나한테 물었다. “그럼 어떻게 행사를 하는 게 좋을까요?”

그냥 안 하면 된다. 그런 보여주기식 행사보다는, 그 예산으로(=세금) 아직도 겨울을 춥게 사는 독거노인에게 연탄을 사주는 게 훨씬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대업(大業)

창업과 스타트업이라는 말을 모르는 대한민국 국민이 없을 정도로 우리나라는 요새 창업이 큰 화두이다. 정부의 엄청난 지원, 웬만한 대학교마다 볼 수 있는 창업보육센터, 강남을 주축으로 여기저기 생기고 있는 창업 지원공간, 그리고 미디어에서 계속 떠드는 벤처, 스타트업, 청년창업 때문인지 마치 한국이 창업 국가라는 착각을 하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한국의 제대로 된 창업 역사는 상당히 짧다. 스타트업 바이블이 2010년도에 출간되었는데, 실은 이 책이 나오기 전에는 ‘스타트업’이라는 단어조차 한국 사회에서는 매우 생소했다. 그 전에는 모두 ‘벤처’라는 말을 사용했다.

즉, 스타트업이라는 단어가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온 지가 이제 몇 년도 안 됐을 정도로 한국의 창업 생태계는 걸음마 단계라는 점을 나는 항상 개인적으로 강조한다. 그래서 너무 실리콘밸리와 한국을 비교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도 올 한 해 자주 강조했다. 실리콘밸리의 역사가 언제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모두 다르지만, 1957년 창업된 Fairchild Semiconductor가 그 시초라는 이야기를 많은 분이 한다. 이렇게 보면, 실리콘밸리의 역사는 60년 정도이며, 우리가 미디어에서 자주 접하는 이 동네 스타트업들은 분명 전통적인 대기업보다는 훨씬 바른 고속성장을 했지만, 이 성장은 실리콘밸리의 60년 시행착오 노하우가 전제된 배움의 성장이다.

솔직히 나는 제대로 된 한국 스타트업 역사는 5년밖에 안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국은 자꾸 우리의 성장을 실리콘밸리와 비교하려고 하고,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들과 같은 성장 곡선을 따라 하려고 한다. 따라 하는 건 나는 좋다고 생각한다. 이게 맹목적인 카피가 아니라, 우리보다 역사가 깊고 더 잘하고 있는 회사의 지표나 문화를 우리의 상황에 맞게 변형해서 벤치마킹하는 건 후발주자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따라 한다고 우리가 페이스북이나 구글 같은 회사같이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실패하고, 실패하는 과정에서 완전히 회사가 주저앉을 수도 있는데, 이럴 때 우리는 “왜 우리는 실리콘밸리같이 못 할까?”라면서 자신을 너무 자책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실리콘밸리보다 역사가 짧고, 그래서 배움도 당연히 짧고 한정되었기 때문에 잘 안되고 실패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계속 도전하고, 잘 안된 원인을 분석하고, 다시는 비슷한 실수를 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있어야지만, 개인과 기업은 발전하고, 생태계는 만들어진다.

나는 우리 같은 VC는 금융업이 아니라 건설업에 종사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회사를 만드는 건(=building a company), 땅을 파고, 거기에 토대를 튼튼히 기초공사하고, 그 위에 건물을 올리는 건설과 똑같다. 이렇게 하는 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어쩌면 평생이 걸리는, 죽을 때까지도 완성하지 못하는 대업(大業)일지도 모른다.

한국의 모든 창업가와, 스타트업 관계자들이 이렇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모두 다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들고 싶어 하고, 나도 실은 여기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지만, 생태계라는 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어쩌면, 내가 죽을 때까지도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기초공사도 못 끝낼지도 모른다. 그동안 많은 회사가 생기고, 투자를 받고, 망하고, exit을 하게 될 것인데, 이 모든 게 회사가 성장하고 생태계가 단단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과정이다.

일희일비하지 말고, 길게 보고 가자. 5년 안에 exit 할 비즈니스를 만들기보다는, 평생 할 수 있는 사업을 만들다 보면, 운 좋으면 1년 안에 exit 할 수 있다. 물론, exit 한다는 게 항상 좋은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