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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제2외국어

programming-languages얼마 전에 초등학교 아이의 아빠인 내 친구한테 연락이 왔다. 아이한테 본격적인 제2외국어 교육을 하려고 하는데 메인으로 배워야 하는 게 영어인가 중국어인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중국은 잘 모르지만, 미국은 좀 안다. 그리고 내가 아는 지식이나 한정된 경험에 의하면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으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무조건 영어를 메인으로 하라고 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 지금부터 코딩을 가르치라고 했다.

전 세계 12억 명이 중국어를 사용하고, 비슷한 인구수가 영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사용하는 언어는 ‘코딩’이라고 생각한다. 프로그래밍이나 코딩이라고 하면 아직도 너무 많은 사람이 복잡하고 어려운 기술이나 학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코딩을 단순하게 보면 사람과 기계를 연결해 주는 일종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지만, 앞으로는 기계들이 더욱더 많은 분야에서 인간을 대체할 것이다. 과거에는 고도의 판단력이 필요하지 않고 반복적인 일들을 수행하면서 로봇과 같은 기계들이 사람을 대체했지만, 앞으로는 고도의 사고력과 결정력이 필요한 업무 또한 기계들이 대체 가능할 것으로 예측된다. 인공지능, 로보틱스, 자율주행 자동차 등…. 이 모든 기술은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으며, 페이스북,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세계 최고의 기술 회사들이 수조 원의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 기계들이 우리 삶의 일부가 될수록 우리는 이 기계들과 원활하게 소통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데, 기계와 소통할 수 있는 언어가 코딩이다.

미국 못지않게 한국도 이러한 추세를 잘 파악하고 있는 거 같다. 최근에 검토한 많은 회사가 이 분야에 있는데, 언어교육과 마찬가지로 코딩도 어릴 때 시작하는 게 좋으므로 어린이들을 위한 코딩 교육 게임이나 학원 비즈니스를 생각하고 있는 창업가들이 많은 거 같다. 내 또래 분 중 80년 후반 – 90년 후반에 유명했던 비트 컴퓨터 학원과 같은 물리적인 코딩 학원에 다니면서 실력을 키운 분들도 있을 것이다. 당시에는 ‘코딩’이라는 말 자체가 없었고, ‘프로그래밍’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나도 C++를 배우러 컴퓨터 학원에 몇 달 다녔던 기억이 나는데, 자리마다 컴퓨터가 한 대씩 있었고 교실 앞에서 선생님이 수업하고 과제를 시켰던 전형적인 강의실 포맷으로 강의가 진행되었다. 5.25″ 나 3.5″ 플로피 디스크에 과제를 담아서 제출했었던 기억도 난다.

이후 물리적인 학원은 없어지고 Codecademy나 Lynda와 같은 인터넷 강의의 시대가 왔다. 더는 칙칙한 학원에 직접 가지 않아도 집이나 사무실 또는 내가 편한 그 어느 곳에서 내 페이스대로 코딩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런 인터넷 동영상 강의는 아직도 인기가 많다. 하지만, 인터넷 강의를 통해 100% 자율적으로 학습하다 보니까 학습에서 가장 중요한 진도와 실력의 향상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단점도 발견되었다. 그래서 새로 등장한 포맷이 물리적 학원의 강제성과 인터넷 동영상 강의의 자율성을 잘 혼합한 하이브리드 코딩 학원이다. 한국도 이미 이런 비즈니스들이 창업되어서 잘 운영되고 있는 스타트업들이 몇 군데 있다.

애가 있는 친구들한테 나는 항상 제2외국어로써 코딩 교육을 권장한다. 국어·영어도 중요하고, 그 이후의 토익이나 토플 시험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가장 많은 세계인이 사용할 언어는 코딩이 될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내 주변에 엄마와 아빠가 모두 개발자인 많은 가족조차 애들한테는 코딩을 절대로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직도 한국에서 개발자의 삶은 배고프고 대우를 못 받는다고 하면서, 아이들한테는 변호사나 의사의 길을 권장하고 있다. 이분들이 코딩을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이 아닌, 사람과 기계가 소통할 수 있는 언어로 본다면 조금은 다르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미지 출처 = http://www.serendipity35.net/index.php?/archives/3278-Coding-as-a-second-Language.html>

당신이 누굴 아는지 난 관심 없다

6a00d834516b3c69e2015437f86d20970c-500wi나는 말이 너무 많은 사람이 싫다. 1시간짜리 미팅을 하면 어떤 사람들은 1시간 내내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상대방 이야기는 듣지도 않는다. 이런 사람들이랑 만나면 굉장히 피곤하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저 누구 알아요”로 모든 대화를 진행하는 사람들이다.

누구나 다 이런 사람들이 한두 명은 주변에 있을 텐데, 이상하게 나는 이런 사람들을 최근에 많이 만난 거 같다. 나도 꽤 바쁜 사람이라서 나랑 미팅하려면 그래도 며칠 전에는 약속을 잡아야 한다. 이렇게 어렵게 나랑 약속을 잡은 분을 얼마 전에 우리 사무실에서 한 시간 가량 만났다. 그런데 나한테 스스로와 현재 하는 비즈니스에 대해서 한 시간 동안 설명을 해도 시간이 모자랄 판에 이 분은 자기가 아는 사람들 이름만 줄줄이 읊다가 미팅을 끝냈다. 뭐, 들어보면 굉장히 유명하고 잘 나가는 사람들을 아는것 같고, 그중 나도 한번 만나보고 싶은 분들 이름도 있었지만, 솔직히 나는 이 분이 아는 사람들보다는 이 분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자신이 어떤 길을 지금까지 걸어왔고, 왜 이 비즈니스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나한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매우 궁금했었다. 하지만 만나자마자 누가 옛날 직장 동료였고, 지금 이 분야에서 굉장히 유명한 분이 대학교 동아리 선배고, 같은 아파트에 상장한 인터넷 기업의 부사장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미팅의 절반을 이런 ‘이름 들먹이기(name dropping)’ 하는데 허비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이런 사람들은 항상 있는데, 역시나 땅도 좁고 바닥이 좁은 한국이 더 심한 거 같다. 특히 내가 누구냐 보다는 내가 누굴 아는 게 더 중요한 한국의 ‘보여주기’ 문화는 이런 현상을 심화시키는 거 같다. 정작 본인은 아무것도 이루어 놓은 게 없는데 누군가 유명한 사람을 알고 있으면 마치 자신이 그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요새 너무 많다. 그리고 돈 많고 유명한 사람들을 잘 안다고 하면, 그 사람이 마치 대단한 것처럼 취급해주는 사회 분위기도 여기에 한몫을 한다. 정작 본인은 내세울 게 없고, 내실 없고 껍데기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이렇다는 걸 자주 경험한다.

그런데 어차피 내가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은 이 업계 분들이라서 이들이 안다고 주장하는 많은 분을 나도 안다. “나는 그분을 아는데, 그분은 날 모르죠”가 아니라 그래도 서로 알고 지내는 그런 관계이다. 이 중 정말 친한 분들도 있고, 행사 같은 곳에서 정기적으로 보는 분들도 있지만 나는 내가 누굴 안다는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괜히 말했다가 그 사람을 소개해달라고 하면, 안 그래도 바쁜 사람들한테 누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생각해서 그런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누굴 안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항상 의심이 간다. 정말로 아는 것인지, 아니면 명함 한 번 교환한 것인지.

나는 당신한테 관심이 있지, 당신이 누굴 알던 관심 없습니다. 당신이 아는 남들에 대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지 말고, 당신 스스로에 대해서 그렇게 자랑할 수 있도록 내실을 다지세요.

<이미지 출처 = https://asheathersworldturns.wordpress.com/2015/03/13/name-dropper/>

종이 위의 잉크

%ea%b0%84%ec%9d%b82012년도에 Strong Seed Fund 1호로 공식적인 벤처투자를 시작한 우리는 지금까지 약 4년 동안 60개가 넘는 한국과 미국의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정확한 계산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이 중 약 40개 정도의 회사에 스트롱은 최초로 투자했다. 지금도 계속 남들보다 먼저 회사를 발굴해서 가장 먼저 투자하는 first investor 전략을 고집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다른 투자자들과 함께 공동투자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과거에도 좋은 회사들이 많았고, 지금도 많지만, 시대가 시대인만큼 요새 초기 스타트업들은 대부분 더 많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공동투자를 하면 스트롱 보다는 다른 투자사들이 라운드를 lead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경우 우리는 계약서를 따로 사용하지 않고 리드 투자사의 계약서를 그대로 사용한다. 즉, 남의 투자계약서에 우리 이름과 투자 금액만 추가해서 묻어간다. 이렇게 하는 게 우리도 편하지만, 투자를 받는 회사들에도 계약서 검토 시간과 비용면에서 훨씬 더 수월하다. 특히 우리가 투자하는 단계에서는 많은 대표이사가 법률용어와 익숙지 않기 때문에 그냥 잘 모르는 상태에서 계약하거나, 아니면 법률검토에 과도한 비용을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능하면 우리는 두 회사 간 법적 서명을 해야 하는 계약서의 프레임은 유지하되, 세부 항목들은 스탠다드하게 유지한다.

공동투자를 하면 다른 투자사의 계약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볼 기회가 있는데, 가끔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계약서를 빡빡하게 만드는 투자사들도 있다. 어떤 항목들은 굳이 계약서에 넣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하게 만드는데, 물어보면 두 회사가 하는 계약이기 때문에 발생 가능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서 무조건 다 포함해야 한다고 한다. 이분들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일하고 있는 이 벤처 업계는 다른 산업과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같이 초기회사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회사의 비즈니스나 시장보다는 대표이사와 창업팀에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능하면 대표이사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믿을 수 있는지, 나랑 교감이 가능하며 비즈니스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인지를 파악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이분들을 100% 믿고 같이 일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 투자를 한다(물론, 이런 내 생각과 감이 항상 맞지는 않는다. 이상한 인간들한테 투자한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 단계까지 오면 계약서는 투자하기 전에 자동으로 작성하는 기계적인 문서이지, 상대방을 불신하기 때문에 각 항목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작성해야 하는 문서는 아니다. 이때부터는 서로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같이 가는 모드로 전환되어야 하고, 우리가 투자한 팀이 잘해서 서로 이길 수 있는 환경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위에서 말한, 계약서가 존재하는 이유인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회사가 잘 안돼서 망하면 설명할 필요도 없이 그냥 서로 손해를 보는 거다. 만약에 대표이사가 딴 맘을 먹고 계약을 위반하면 참으로 짜증 나는 상황이 발생하지만, 그렇다고 법정으로 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투자한 금액보다 더 많은 비용이 발생하는 소모전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도 서로 손해를 보고 끝날 확률이 높다. 즉, 스탠다드한 계약서이든 엄청 깐깐한 계약서이든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면 투자자나 피투자 기업이나 둘 다 손해를 보고 끝나는 것이다.

한국 투자자와 공동투자를 하면 50장에 육박하는 계약서에 간인을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최근에 만난 투자사 대표이사는 도장 찍느라고 손목을 다쳤다고 했는데, 공동투자사들이 2개만 넘어도 50장짜리 계약서에는 도장을 100번 이상 찍어야 한다. 거기에다 요새는 무슨 펀칭까지 하는 걸 봤다. 이렇게 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원래 그렇게 하기 때문에 한다고는 하지만, 궁극적인 이유는 서로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간인을 하지 않으면 혹시나 중간에 있는 페이지를 누가 몰래 바꿔서 계약 내용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같은 경우 스트롱이 단독으로 투자하면 전자서명을 하고, 이렇게 하면 서명해야 하는 페이지는 단 한 장이다. 투자자나 피투자사는 단 한 번의 클릭으로 계약을 체결한다. 전자서명이 아니라 스캔을 해서 PDF를 교환할 때도 우리는 서명을 해야 하는 페이지만 스캔해서 PDF로 만든 후에 나머지 계약서에 PDF로 붙여서 통합해버린다. 계약서가 아무리 길어도 실제로 서명해야 하는 페이지는 단 한 장인데, 모든 페이지에 서명하거나 도장을 찍는 건 정말로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페이지마다 간인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계약이라는 건 당사자들이 그 계약을 서로 인정하면 법적 효력을 갖는 걸로 알고 있고, 투자자와 피투자 기업 간 깊은 신뢰와 믿음이 있다면 이건 충분히 가능하다. 나중에 서로 딴소리를 한다면 그 투자 자체가 잘못된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랑 존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계약서는 결국 종이 위의 잉크일 뿐이고, 궁극적으로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 그 자체가 비즈니스라는. 우리가 자주 하는 말이지만, 정말 멋진 말이고, 모든 계약 관계는 이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우리가 일하는 멋진 스타트업 세계에서는.

<이미지 출처 = http://blog.naver.com/sallimnea/130137902550>

경험의 차별화

O2O 비즈니스는 정말 어렵다. 뭐, 어렵지 않은 비즈니스는 없겠지만, O2O는 오프라인 비즈니스의 운영과 물류의 어려움, 그리고 온라인 비즈니스의 제품과 시장의 어려움을 모두 갖고 있어서 더욱더 쉽지 않은 거 같다. 우리도 이 분야에 투자했고, 계속 하고 있지만, 알면 알수록 이 비즈니스는 더 빨리 성장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걸 느끼고 있다.

얼마 전에 미국의 대표적인 온디맨드 세탁 서비스 Washio가 안타깝게 문을 닫았다. 집으로 찾아와서 세탁물을 수거하고 24시간 안으로 가져다주는 이 서비스는 5.99 달러의 배송비에 파운드 당 2.15 달러의 세탁 비용을 받았는데, 돈을 벌 수가 없는 비용구조였고, 아마도 이 때문에 망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3년 전에 창업됐고, 약 200억 원의 펀딩을 유치한 워시오가 문을 닫은 건 O2O 비즈니스들에는 큰 타격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진입장벽이 없고 마진이 적은 비즈니스가 얼마나 어려운지 다시 한 번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이제 성장을 시작한 온디맨드 세탁서비스들이 있는데, 한국은 미국같이 현금출혈이 심하지는 않지만, 워시오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전에도 ‘마이너스매출총이익’이라는 글에서 잠깐 언급을 했는데, 대부분의 O2O 서비스들은 빠른 고객 획득을 통한 시장 석권을 위해서 주문이 발생할 때마다 돈을 버는 구조가 아니라 돈을 잃는 구조의 비즈니스 전략을 택한다. 그리고 엄청난 펀딩을 통해서 성장을 시도하고, 성공적으로 시장을 독점하면 그 이후에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을 보고 사업을 전개한다. 우버는 이러한 시장 독점을 향해서 잘 가고 있지만, 많은 비즈니스가 워시오 같이 망하기도 한다.

이런 O2O 서비스들의 또 다른 고민거리는 전통 플레이어들과의 차별점이다. 정확한 개념의 ‘온디맨드’는 아니지만, 온디맨드 세탁이나 가사도우미 서비스는 한국에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스트롱도 온디맨드 가사도우미 서비스 미소에 투자해서 나도 자주 사용하고 있다. 솔직히 편리하긴 편리하다. 네이버 검색, 가사도우미 중개업체 전화, 전화로 날짜랑 시간 예약, 그리고 무통장입금하는 과정이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은근히 스트레스받는 일이다. 누구랑 전화 하는 거 자체가 불안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앱을 통해서 몇 번의 클릭으로 해결하는 게 얼마나 편리한가?”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모든 사람이 나와 동의하지는 않는다. 우리 와이프만 해도 이런 앱들이 뭐가 O2O냐고 물어본다. 그냥 옛날부터 있던 걸 앱으로 주문하는 게 뭐가 그렇게 대단한지 모르겠다고 한다 – 어차피 O2O 앱이나 인력소개서를 통해서 오는 아줌마들 모두 친절하고 일 잘한다고 한다. 오히려 앱 설치하고 가입하는 게 더 귀찮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워시오같은 온디맨드 세탁 앱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분들이 내 주변에 많다. 미국이야 다르지만, 한국의 경우 동네 세탁소 아저씨들이 20년 전부터 아파트 돌아다니면서 세탁물 수거해서 깨끗하게 세탁하고, 그다음 날 배송비 없이 다시 집으로 가져다줬다. 특히 오랫동안 한 동네에서 세탁하시던 분들은 동, 호수를 다 외우고 세탁물만 봐도 어떤 집인지 아신다. 물론 동네 세탁소는 자정까지 세탁물을 수거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늦게 세탁물을 맡겨야 하는 분들도 별로 없는 거 같다. 나는 솔직히 세탁특공대 같은 앱이 엄청 편해서 좋아하는데, 내 주변 분들은 앱으로 세탁 주문하는 거 외에는 동네 세탁소랑 뭐가 다르냐고 물어본다.

그래서 이미 존재하던 오프라인 사업에 온라인을 적용하는 O2O 비즈니스라면 “옛날 방식과 뭐가 그렇게 다른데?”라는 의구심을 확실하게 잠재울 수 있는 ‘경험의 차별화’가 필요하다. 오프라인 부분의 차별화는 힘들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한 지역에서 오프라인 서비스를 제공하던 분들보다 (이 분야의 경험이 없고, 인터넷 비즈니스에 더 익숙한 분들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어렵다. 그러므로 온라인 부분을 정말 잘 만들어야 한다. 단순히 앱으로 서비스를 신청하거나 주문하는 걸 넘어서 정말로 부드럽고 마찰이 없는 완벽하고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면서 경쟁사들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시점에 지속적인 투자를 유치해야 하니 정말로 쉽지 않다.

섹시한 비즈니스

B2B이번 여름 정말 덥고 습하지만, 이 무더위 속에서도 좋은 회사들은 계속 창업되고 있다. 나는 아주 다양한 스타트업들을 계속 만나고 있는데 B2B 회사들의 무덤인 한국에서도 최근 들어 괜찮은 기업용 솔루션을 만들고 있거나, 만들려고 하는 스타트업들이 출현하고 있다. 우리도 B2B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하지는 않았지만, 항상 관심과 애정을 갖고 보는 분야이다. 총 4개의 B2B 스타트업에 투자했는데, 의류도매를 위한 플랫폼 Brandboom, MCN 용 분석툴과 대시보드 ChannelMeter, 실내위치 플랫폼 로플랫, 그리고 Sarbanes Oxley 프로그램 애플리케이션인 SoxHub 이다. 이 중 로플랫을 제외한 나머지 회사들은 미국의 스타트업들이다.

미국보다는 한국에서 자주 경험하는 현상인데,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B2B 소프트웨어 회사들에 투자하는걸 꺼린다. 그 이유야 투자자마다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다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1/ 섹시하지 않다 – 왠지 B2B 딱지가 붙으면 비즈니스가 굉장히 unsexy 해 보이고, 재미가 없는 거 같다. 빠르게 변화하는 일반 고객 시장에(=B2C) 비해서 느리고 변화가 거의 없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제품을 만들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이런 이미지가 생긴다.
2/ Scale의 문제 – 잘 만든 소셜앱이나 사진앱들은 폭발적인 속도로 바이럴하게 번져서 기본 수 백만 명의 유저를 단시간 안에 확보할 수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의 네트워크 효과가 제대로 적용될 수 있는 분야가 B2C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B2B 제품들은 기업들이 사용하기 때문에 고객 수에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네트워크 효과나 바이럴 효과보다는 기업 내부의 다양한 요소에 도입영향을 받기 때문에 단 시간내에 엄청난 성장이 상대적으로 힘들다. 슬랙 같은 B2B 제품의 급성장은 예외라고 보는 게 맞다.
3/ 긴 영업 주기 – B2C 제품의 경우, 내 친구가 재미있는 앱을 사용하면 나도 앱 스토어에 가서 받아서 설치하면 된다. 안타깝게도 B2B 제품은 이렇게 할 수가 없다. 개인적이 아니라 기업의 업무 효율을 위해서 도입하는 제품이기 때문에 기업의 승인과 결제가 있어야지만 제품이 설치된다. 기업의 승인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B2B 제품들의 특성상, 중요한 기업 프로세스를 새로운 방식으로 간소화하는 서비스이기 때문에 여러 부서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영업사원들은 최종 의사 결정을 하는 사장부터 실무를 담당하는 말단 직원들 모두를 대상으로 영업해야 한다. 나도 2001년 부터 2004년까지 제조업의 기간 업무인 생산계획을 효율화하는 공급망관리(SCM = Supply Chain Management) 솔루션을 한국의 중소제조업체 대상으로 영업한 경험이 있는데, 최소 3개월에서 길게는 1년까지도 걸리는 작업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B2B 제품들은 나름 확실한 매력이 있다. 팔기가 어렵고, 계약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영업을 위한 인력을 유지해야하는 부담이 따르지만, 일단 한 번 팔아 놓으면 꽤 오랫동안 예측 가능한 안정적인 매출이 발생한다. 위에서 말 한대로 B2B 제품은 기업의 많은 부서에 영향을 미치는 프로세스를 자동화하고 간소화하기 때문에 한 번 도입하면 웬만하면 걷어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한번 설치된 제품은 지속적인 사용료 뿐만 아니라 정기적인 유지보수 매출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이렇게 심플하고 좋은 비즈니스도 찾아보기 힘들다.

전에 우리가 투자한 B2B 스타트업 Brandboom에 대해서 몇 번 블로깅 한 적이 있다. 이 회사가 연 매출 100만 달러에 도달하는 데에는 7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의류업계에 새로운 기업용 솔루션을 판매하는 건 힘들었다. 얼마 전 LA에서 Brandboom을 방문했을 때 이 회사는 연 매출 200만 달러를 눈 앞에 두고 있었다. 2년 만에 매출이 100% 성장했고, 앞으로도 지속해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모바일 앱도 아니고, 화려한 B2C 앱도 아니지만, 제대로 돈을 벌고 있는 섹시한 비즈니스이다.

섹시한 비즈니스는 겉만 화려하고, 출시한 지 한 달 만에 수천만 명의 사용자들이 달라붙지만, 구체적인 비즈니스모델이 없거나 단순히 광고에만 의지하는, 그런 비즈니스가 아니다. 우리 제품의 본 기능들을 사용하기 위해서 사용자들이 기꺼이 돈을 지급하는 비즈니스가 바로 섹시한 비즈니스이다.

<이미지 출처 = http://b2bcon.asia/why-b2b-startups-are-suddenly-so-sex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