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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의 차별화

O2O 비즈니스는 정말 어렵다. 뭐, 어렵지 않은 비즈니스는 없겠지만, O2O는 오프라인 비즈니스의 운영과 물류의 어려움, 그리고 온라인 비즈니스의 제품과 시장의 어려움을 모두 갖고 있어서 더욱더 쉽지 않은 거 같다. 우리도 이 분야에 투자했고, 계속 하고 있지만, 알면 알수록 이 비즈니스는 더 빨리 성장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걸 느끼고 있다.

얼마 전에 미국의 대표적인 온디맨드 세탁 서비스 Washio가 안타깝게 문을 닫았다. 집으로 찾아와서 세탁물을 수거하고 24시간 안으로 가져다주는 이 서비스는 5.99 달러의 배송비에 파운드 당 2.15 달러의 세탁 비용을 받았는데, 돈을 벌 수가 없는 비용구조였고, 아마도 이 때문에 망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3년 전에 창업됐고, 약 200억 원의 펀딩을 유치한 워시오가 문을 닫은 건 O2O 비즈니스들에는 큰 타격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진입장벽이 없고 마진이 적은 비즈니스가 얼마나 어려운지 다시 한 번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이제 성장을 시작한 온디맨드 세탁서비스들이 있는데, 한국은 미국같이 현금출혈이 심하지는 않지만, 워시오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전에도 ‘마이너스매출총이익’이라는 글에서 잠깐 언급을 했는데, 대부분의 O2O 서비스들은 빠른 고객 획득을 통한 시장 석권을 위해서 주문이 발생할 때마다 돈을 버는 구조가 아니라 돈을 잃는 구조의 비즈니스 전략을 택한다. 그리고 엄청난 펀딩을 통해서 성장을 시도하고, 성공적으로 시장을 독점하면 그 이후에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을 보고 사업을 전개한다. 우버는 이러한 시장 독점을 향해서 잘 가고 있지만, 많은 비즈니스가 워시오 같이 망하기도 한다.

이런 O2O 서비스들의 또 다른 고민거리는 전통 플레이어들과의 차별점이다. 정확한 개념의 ‘온디맨드’는 아니지만, 온디맨드 세탁이나 가사도우미 서비스는 한국에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스트롱도 온디맨드 가사도우미 서비스 미소에 투자해서 나도 자주 사용하고 있다. 솔직히 편리하긴 편리하다. 네이버 검색, 가사도우미 중개업체 전화, 전화로 날짜랑 시간 예약, 그리고 무통장입금하는 과정이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은근히 스트레스받는 일이다. 누구랑 전화 하는 거 자체가 불안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앱을 통해서 몇 번의 클릭으로 해결하는 게 얼마나 편리한가?”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모든 사람이 나와 동의하지는 않는다. 우리 와이프만 해도 이런 앱들이 뭐가 O2O냐고 물어본다. 그냥 옛날부터 있던 걸 앱으로 주문하는 게 뭐가 그렇게 대단한지 모르겠다고 한다 – 어차피 O2O 앱이나 인력소개서를 통해서 오는 아줌마들 모두 친절하고 일 잘한다고 한다. 오히려 앱 설치하고 가입하는 게 더 귀찮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워시오같은 온디맨드 세탁 앱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분들이 내 주변에 많다. 미국이야 다르지만, 한국의 경우 동네 세탁소 아저씨들이 20년 전부터 아파트 돌아다니면서 세탁물 수거해서 깨끗하게 세탁하고, 그다음 날 배송비 없이 다시 집으로 가져다줬다. 특히 오랫동안 한 동네에서 세탁하시던 분들은 동, 호수를 다 외우고 세탁물만 봐도 어떤 집인지 아신다. 물론 동네 세탁소는 자정까지 세탁물을 수거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늦게 세탁물을 맡겨야 하는 분들도 별로 없는 거 같다. 나는 솔직히 세탁특공대 같은 앱이 엄청 편해서 좋아하는데, 내 주변 분들은 앱으로 세탁 주문하는 거 외에는 동네 세탁소랑 뭐가 다르냐고 물어본다.

그래서 이미 존재하던 오프라인 사업에 온라인을 적용하는 O2O 비즈니스라면 “옛날 방식과 뭐가 그렇게 다른데?”라는 의구심을 확실하게 잠재울 수 있는 ‘경험의 차별화’가 필요하다. 오프라인 부분의 차별화는 힘들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한 지역에서 오프라인 서비스를 제공하던 분들보다 (이 분야의 경험이 없고, 인터넷 비즈니스에 더 익숙한 분들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어렵다. 그러므로 온라인 부분을 정말 잘 만들어야 한다. 단순히 앱으로 서비스를 신청하거나 주문하는 걸 넘어서 정말로 부드럽고 마찰이 없는 완벽하고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면서 경쟁사들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시점에 지속적인 투자를 유치해야 하니 정말로 쉽지 않다.

섹시한 비즈니스

B2B이번 여름 정말 덥고 습하지만, 이 무더위 속에서도 좋은 회사들은 계속 창업되고 있다. 나는 아주 다양한 스타트업들을 계속 만나고 있는데 B2B 회사들의 무덤인 한국에서도 최근 들어 괜찮은 기업용 솔루션을 만들고 있거나, 만들려고 하는 스타트업들이 출현하고 있다. 우리도 B2B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하지는 않았지만, 항상 관심과 애정을 갖고 보는 분야이다. 총 4개의 B2B 스타트업에 투자했는데, 의류도매를 위한 플랫폼 Brandboom, MCN 용 분석툴과 대시보드 ChannelMeter, 실내위치 플랫폼 로플랫, 그리고 Sarbanes Oxley 프로그램 애플리케이션인 SoxHub 이다. 이 중 로플랫을 제외한 나머지 회사들은 미국의 스타트업들이다.

미국보다는 한국에서 자주 경험하는 현상인데,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B2B 소프트웨어 회사들에 투자하는걸 꺼린다. 그 이유야 투자자마다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다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1/ 섹시하지 않다 – 왠지 B2B 딱지가 붙으면 비즈니스가 굉장히 unsexy 해 보이고, 재미가 없는 거 같다. 빠르게 변화하는 일반 고객 시장에(=B2C) 비해서 느리고 변화가 거의 없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제품을 만들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이런 이미지가 생긴다.
2/ Scale의 문제 – 잘 만든 소셜앱이나 사진앱들은 폭발적인 속도로 바이럴하게 번져서 기본 수 백만 명의 유저를 단시간 안에 확보할 수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의 네트워크 효과가 제대로 적용될 수 있는 분야가 B2C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B2B 제품들은 기업들이 사용하기 때문에 고객 수에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네트워크 효과나 바이럴 효과보다는 기업 내부의 다양한 요소에 도입영향을 받기 때문에 단 시간내에 엄청난 성장이 상대적으로 힘들다. 슬랙 같은 B2B 제품의 급성장은 예외라고 보는 게 맞다.
3/ 긴 영업 주기 – B2C 제품의 경우, 내 친구가 재미있는 앱을 사용하면 나도 앱 스토어에 가서 받아서 설치하면 된다. 안타깝게도 B2B 제품은 이렇게 할 수가 없다. 개인적이 아니라 기업의 업무 효율을 위해서 도입하는 제품이기 때문에 기업의 승인과 결제가 있어야지만 제품이 설치된다. 기업의 승인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B2B 제품들의 특성상, 중요한 기업 프로세스를 새로운 방식으로 간소화하는 서비스이기 때문에 여러 부서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영업사원들은 최종 의사 결정을 하는 사장부터 실무를 담당하는 말단 직원들 모두를 대상으로 영업해야 한다. 나도 2001년 부터 2004년까지 제조업의 기간 업무인 생산계획을 효율화하는 공급망관리(SCM = Supply Chain Management) 솔루션을 한국의 중소제조업체 대상으로 영업한 경험이 있는데, 최소 3개월에서 길게는 1년까지도 걸리는 작업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B2B 제품들은 나름 확실한 매력이 있다. 팔기가 어렵고, 계약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영업을 위한 인력을 유지해야하는 부담이 따르지만, 일단 한 번 팔아 놓으면 꽤 오랫동안 예측 가능한 안정적인 매출이 발생한다. 위에서 말 한대로 B2B 제품은 기업의 많은 부서에 영향을 미치는 프로세스를 자동화하고 간소화하기 때문에 한 번 도입하면 웬만하면 걷어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한번 설치된 제품은 지속적인 사용료 뿐만 아니라 정기적인 유지보수 매출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이렇게 심플하고 좋은 비즈니스도 찾아보기 힘들다.

전에 우리가 투자한 B2B 스타트업 Brandboom에 대해서 몇 번 블로깅 한 적이 있다. 이 회사가 연 매출 100만 달러에 도달하는 데에는 7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의류업계에 새로운 기업용 솔루션을 판매하는 건 힘들었다. 얼마 전 LA에서 Brandboom을 방문했을 때 이 회사는 연 매출 200만 달러를 눈 앞에 두고 있었다. 2년 만에 매출이 100% 성장했고, 앞으로도 지속해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모바일 앱도 아니고, 화려한 B2C 앱도 아니지만, 제대로 돈을 벌고 있는 섹시한 비즈니스이다.

섹시한 비즈니스는 겉만 화려하고, 출시한 지 한 달 만에 수천만 명의 사용자들이 달라붙지만, 구체적인 비즈니스모델이 없거나 단순히 광고에만 의지하는, 그런 비즈니스가 아니다. 우리 제품의 본 기능들을 사용하기 위해서 사용자들이 기꺼이 돈을 지급하는 비즈니스가 바로 섹시한 비즈니스이다.

<이미지 출처 = http://b2bcon.asia/why-b2b-startups-are-suddenly-so-sexy/>

김영철의 슈퍼파월 도서관

개그맨 김영철 씨를 모르는 분들은 거의 없다. ‘나 혼자 산다’를 비롯, 여러 가지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동 중인데, 웃기고 재치도 있지만 나는 김영철 씨 하면 ‘책’ 과 ‘영어’ 이미지가 떠오른다. 한 번도 해외에서 거주하지 않았지만 웬만한 유학생 수준의 유창한 영어 실력을 구사하고, 책을 통해서 습득한 고급 지식을 방송을 통해서 자랑하는 김영철 씨를 보면서 나는 기획사에서 저런 인텔리 이미지로 가라고 시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개인적으로 김영철 씨를 만났고, 이후에 몇 번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실제로 영어를 정말 잘하고, 책을 상당히 많이 읽는 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참 재미있는 사실은, 김영철 씨가 우리가 투자한 책 관련 스타트업 2개와 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추천해서 배달해주는 서비스 ‘플라이북’의 고객이자 공유도서관 ‘국민도서관‘에서 현재 개인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오늘은 이 개인도서관에 관해서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한다. 국민도서관 장웅 대표님과 셀레브리티 마케팅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도 ‘책’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연예인들과 뭔가를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그런데 단순히 연예인이 우리가 판매하는 제품을 홍보해주는 그런 1차원적인 그림이 아니라 조금은 더 큰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고, 책을 많이 읽는 유명인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김영철 씨가 떠올랐고, 같이 식사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안 그래도 김영철 씨 집에 책이 많은데 보관할 공간이 모자라서 도서관에 기증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때 장웅 대표가 제안한 게 바로 ‘셀레브리티 도서관’이다. 김영철 씨가 국민도서관에 책을 키핑하고, 팬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개그맨과 소셜 공간에서 관계를 이어나가는 개념이다. 김영철 씨는 일차적으로 책 328권을 국민도서관에서 키핑하고 있으며, 전 세계 최초로 ‘슈퍼파워 라이브러리‘라는 개인 도서관을 운영하는 셀레브리티가 되었다. 김영철 씨의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면 일정 금액이 적립되며 김영철 씨와 팬의 이름으로 전액 기부될 예정이다. 또한, 책을 빌리는 팬들에게 책과 관련된 소식을 보내 팬들과 소통할 수 있다.

슈퍼파워 라이브러리가 공개된 지 아직 며칠 안 되었지만, 영철씨 팬들의 반응은 상당히 좋다. 독서를 생활화하는 연예인과 유명인들이 자신의 책꽂이를 공개하고 공유하며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는 첫 사례가 탄생했는데, 앞으로 다른 셀레브리티들도 동참하면 좋겠다.

SuperZoo 2016

Photo 8-2-16, 2 51 19 PM미국 반려동물 산업의 규모는 대략 80조 원이다. 시장 규모도 크지만, 더 놀라운 건 성장 추세이다. 반려동물 산업은 지난 5년 동안 해마다 두 자릿수로 성장하고 있고, 지속해서 성장하는 몇 안 되는 밝은 산업이다. 사료, 액세서리, 미용, 의료 시장이 가장 크지만, 애견호텔과 같은 숙박 및 반려동물 전용 택시와 같은 운송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서 투자자로서 봤을 때 성장 가능성이 높은 미래 산업이다.

나도 개를 키우기 때문에 반려동물 시장의 가능성을 믿고 있고, 미국만큼 커지지는 않겠지만, 한국의 반려동물 산업도 앞으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정확한 시장 조사 자료는 없지만, 현재 한국 반려동물 시장의 규모는 대략 2조 원 정도이며, 앞으로 10년 안에 8조 원의 시장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한국사회의 매크로 트렌드는 이런 고속 성장을 뒷받침해준다. 젊은이들은 결혼을 미루고, 결혼해도 애를 갖지 않고 있다. 대신, 이들은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걸 선호하고 있다. 또한, 고령화가 가속되면서 나이 드신 많은 분이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있다. 반려동물 문화 자체는 한국이 아직 많이 뒤처져있지만, 미국이나 일본을 따라간다는 가정하에 한국 시장이 성숙하는 건 시간문제이다.

8월 1일 – 4일 동안 나는 우리 투자사 헤이마일로와 함께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전 세계 최대 규모의 도소매 업체를 위한 반려동물 박람회인 SuperZoo 2016에 참석했다. 세계 반려동물 시장이 엄청나게 크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막상 이 박람회에 와보니 그 어마어마한 규모에 할 말을 잃었다. 세계 각국에서 온 1,500개 이상의 업체들이 전시회에 참석했는데, 우리는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행사 장소인 Mandalay Bay의 컨벤션 센터를 하루 10킬로 이상을 걸었음에도 100개 업체도 못 만났다. 그만큼 큰 규모의 행사이고, 그만큼 큰 시장이라는 뜻이다. 한국에서 오신 분들도 꽤 많이 눈에 띄었다. 옷이나 사료를 만드는 한국 업체에서 부스 전시 하는 것도 보였고, 행사장을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수입업자, 또는 헤이마일로 같은 이커머스 업체들도 보였는데, 한국에도 큰 시장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우리가 만난 대부분의 북미 또는 캐나다 제조업체들이 한국 시장의 성장에 대해서 익히 알고 있었으며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큰 관심을 두는 분들도 더러 있었다.

나도 우리 개 마일로한테 투자를 많이 한다. 특히 먹는 거에 있어서는 내 밥보다 더 비싼 사료를 주고, 각종 영양제랑 건강한 간식을 준다. 시간이 아무리 없어도 거의 매일 30분씩, 주말에는 2시간씩 산책을 시키고 있다. 심지어는 개를 키우는 사람들도 나한테 그래 봤자 동물인데 그렇게 지극정성일 필요가 있냐고 물어본다. 그런데, 마일로는 그냥 우리 집에서 키우는 동물이 아니라 같잉 사는 우리 가족이다. 우리 가족인데, 좋은 밥 먹이고 잘 대접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앞으로 나 같은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이기 때문에 한 5년 후부터는 이 시장이 활짝 열릴 거라고 확신한다. 이미 반려동물 관련 스타트업들이 많이 창업되고 있고 우리가 투자한 이커머스 업체 헤이마일로와 프라이머에서 투자한 반려견을 위한 온디맨드 돌보미 서비스 도그메이트 같은 회사들은 이 시장의 가능성을 잘 알고 있다. 반려동물 시장에 진출할 마음이 있는 예비창업자라면 지금이 적절한 시기이다.

대기업, 동네 가게, 그리고 이들이 상생할 수 있는 방법

얼마 전에 네이버가 플리토의 번역서비스를 그대로 카피한 네이버 ‘참여번역Q’를 출시해서 상당히 욕을 먹고 며칠 만에 서비스를 중단한 사건이 있었다. 내가 봐도 이건 네이버가 생각이 너무 짧았던 거 같다. 그냥 카피해도 욕을 먹었을 텐데, 플리토라는 회사와 오랫동안 파트너십을 맺고 이 회사의 번역 서비스를 사용하면서 그대로 카피를 했으니까 이건 당연히 도덕적으로도 옳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정말 궁금했던 게 있다. 네이버가 이 번역 서비스를 계속 운영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과연 네이버가 더 크고, 사용자들이 더 많고, 돈으로 밀어붙이니까 몇 년 동안 시장에서 잘 성장하고 사용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플리토의 서비스가 위기를 맞고 문을 닫았을까? 아니면 워낙 서비스가 탄탄하고 사용자들의 사랑을 받았으니까 네이버가 공격해도 끄떡없고 오히려 네이버가 번역 서비스를 포기했을까?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분야로 진출한다고 하면 우리는 일단 비판부터 하는 거 같다. 부자들이 더 부자가 되기 위해서 없는 자들의 피를 뽑아간다고 하면서. 그런데 나는 가끔 조금 다른 시각에서 생각해본다. 일단 대기업들이라고 항상 잘 먹고 잘사는 건 아니다. 이들도 성장을 위해서 매일 고민하고 있으며, 급변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러다 보면 동네 상권으로 진출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들이 있는 조금은 더 ‘작은’ 놀이터로 진출한다. 그리고 나는 대기업이 해야 할 분야, 스타트업이나 동네 가게들이 해야 할 분야가 따로 존재한다는 건 너무나 이상적인 생각인 거 같다. 자본주위에서는 회사의 성장과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면 모든 분야를 진출 대상으로 고려해 보는 게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만약에 우리가 작은 스타트업인데 네이버나 카카오같이 큰 회사가 엄청난 자본력과 인력을 가지고 우리 나와바리로 진출한다면 당연히 걱정이 돼서 잠을 못 잘 거 같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이 분야에서 정말로 실행을 잘하고 있고, 고객들의 사랑을 받는 서비스를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다면 아무리 대기업이 들어와도 자신이 있을 거 같다. 만약에 이 싸움에서 우리가 진다면? 억울하고 화가 나겠지만, 아주 냉정하게 생각을 해본다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을 제대로 못 했기 때문에 후발주자한테 시장을 빼앗긴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은 매우 중요하다. 대기업 때문에 스타트업이 다 망하면 우리 같은 투자자들도 설 자리가 없어진다. 하지만 대기업이 동네 상권으로 진입하는 걸 필사적으로 반대하고 막는 건 상생에 도움이 안 된다. 나는 진정한 상생은 실력으로 경쟁할 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진짜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충성심 높은 고객들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라면, 아무리 대기업이 들어와서 서비스를 카피해도 따라 잡히지 않는다는 게 내 지론이다. 소비자들도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아파트 앞에는 파리바게뜨와 같은 대형 빵집이 없다. 가장 가까운 빵집은 옆 아파트 상가 안에 있는 동네 빵집이다. 그런데 이 가게는 ‘동네 빵집’이 떠올리는 정겹고 친절한 그런 이미지의 가게와는 거리가 멀다. 맛도 그저 그렇고, 가격도 비싸고, 친절하지도 않고, 동네 경제의 일부라는 그런 공동체 의식도 전혀 없다. 빵마다 가격도 제대로 표시되어 있지 않아서 주인아주머니한테 매번 물어보는데, 그때마다 오는 답변이 과연 정확한 가격인지 아니면 말 그대로 ‘부르는 게 값’인 건지 의심스럽다. 만약 파리바게뜨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가 우리 집 앞에 생기면 이 동네 빵집은 그대로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기 때문이다. 맛은 나쁘지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 고급은 아니고, 가격도 비싸고 서비스도 나쁘니까 빵집으로서는 실력이 없는 것이다. 이런 가게는 경쟁에서 도태되어 망할 수밖에 없다.

많은 분이 기억할 텐데, 롯데마트가 치킨을 판매한다고 발표했을 때 엄청 욕먹었다. 너무 싸게 팔아서 동네 치킨집들 다 죽일 것이란 걱정을 했는데, 실제로 많은 치킨집이 문을 닫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문을 닫는 치킨집들은 다 맛없고 자기만의 개성이나 강점이 없는 가게들이었다. 롯데마트보다 훨씬 비싸게 팔지만, 자기만의 노하우로 정말로 맛 좋은 치킨을 좋은 서비스에 제공하는 동네 치킨집들은 여전히 잘 되고 있고 나도 더 비싸지만 이런 치킨집들을 애용한다.

위에서 언급한 플리토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결국, 네이버 김상헌 대표님이 공식적인 사과를 하고 번역 서비스를 중단했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플리토 이정수 대표님의 스마트한 소셜 마케팅이 있었고, IT 분야에서 종사하는 많은 분의 네이버 공격과 비난이 있었고, 언론의 플리토 옹호 플레이가 있었다. 나는 이것도 플리토가 그동안 쌓아왔던 실력과 사용자들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물론, 한국인들의 대기업에 대한 증오도 한몫을 했다). 제품이 후졌고, 사용자들의 사랑이 없었다면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대기업, 동네 가게, 중소기업, 그리고 스타트업들이 상생하려면 모두 다 자기만의 실력을 갈고닦는 방법밖에 없는 거 같다. 자연스럽게 경쟁력 없는 업체들은 없어지고, 실력 있는 회사들이 살아남을 것이며, 이런 과정이 계속 반복되면서 모두가 다 실력으로 상생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그리고 장담하건대 이렇게 되면 대기업만이 승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