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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대회 채점하기

최근에 스타트업들을 심사하는 자리에 몇 번 참석했는데, 관련해서 전부터 내가 느꼈던 점에 대해서 좀 써보고 싶다. 대부분의 피칭이나 경진대회 심사를 보면, 한 장 짜리 점수표를 기반으로 스타트업들을 평가하도록 되어 있다. 점수표는 매우 그럴싸하게 만들어져 있다. 창업가의 창업성, 제품의 시장성, 매출근거의 타당성, 글로벌 진출 가능성, 기술의 독창성 등과 같은 기준들을 기반으로 이 팀을 0점에서 10점까지 각 항목에 대해서 평가 채점 해야한다.

특히 정부기관들의 행사 심사는 모두 이런 포맷의 채점표를 사용한다. 워낙 많은 회사들이 피칭을 하고, 이 회사들의 선정여부를 결정하려면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근거가 존재해아하기 때문에 나도 처음에는 이런 채점표를 가지고 평가하는게 맞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항상 채점을 끝낸 후에 전체적으로 점수들을 보면 뭔가 이상하다는걸 느낄때가 많다. 느낌이 굉장히 좋은 대표이사가 가능성이 많은 비즈니스에 대해서 피칭을 해서 이런 회사라면 투자검토 해볼만하다라고 생각을 했지만 막상 점수표를 보면 굉장히 낮게 나오고, 이와는 반대로 형편없는 비즈니스라고 생각을 했지만 점수는 상당히 높게 나오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발생하다보면 내가 괜찮다고 생각했던 회사들한테 더 높은 점수를 주기 위해서 다시 채점을 하고 점수를 조정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이런 이유 때문에 스코어카드 기반의 피칭 대회의 채점 방식에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점수를 가지고 스타트업들을 평가할 수 없는 이유는 아마도 현재 보다는 보이지 않는, 또는 보기 쉽지 않은 미래의 가능성을 가지고 이 회사들을 평가해야하기 때문인거 같다. 지금은 볼품 없지만, 앞으로의 가능성이 높은 회사들을 점수로 평가한다는건 쉽지 않은 작업이다.

또 다른 이유는 – 그리고 이건 점수를 가지고 채점해야하는 모든 대회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 누군가의 능력을 숫자로 표현하는건 굉장히 애매모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회사의 글로벌 가능성은 4점이고, 다른 회사의 글로벌 가능성은 6점인데 이 2점의 차이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할까? 6점을 받은 회사가 4점을 받은 회사보다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인가? 글로벌 시장 진출이 그렇게 흑백으로, 그리고 점수로 평가가 가능한 것인가?

나는 오히려 이런 점수보다는 그냥 심사위원들이 토론을 통해서 스타트업들을 선정하는게 더 좋다고 생각한다. “수치는 좋지 않고, 시장에 경쟁이 치열하지만, 이러이러한 이유로 이 회사가 잘 할 수 있을거 같다.” 뭐 이런 식으로 계속 이야기와 토론을 하다보면 조금은 더 피칭 대회의 의도와 맞는 방향으로 우수한 스타트업들을 선정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굳이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점수표가 있어야 한다면, 시간을 많이 들여서 채점 항목들을 다시 한번 만들어 보는 방법도 있을거 같지만 나도 어떤 항목이 적합한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런 점수위주의 채점 방식이 나쁘고 틀렸다는건 아니다. 너무 주관적인 방법으로 스타트업들을 선정하면 나중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소지가 많이 존재한다. 특히 공공기관에서는 더욱 그렇다. 혹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신 분들 중에 단순한 점수보다는 조금 더 효과적인 채점 방식을 알고 계신 분이 있다면 공유해 주시기 바란다.

Switching cost

고객들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드는 건 과거에도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다. 굳이 따지자면 과거보다는 현재가 훨씬 더 어렵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과거에 비해서 웹서비스나 모바일 앱들의 종류와 수가 절대적으로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제품들 사이에서 우리가 만드는 제품이 입소문을 타고 고객들의 관심을 끈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는게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만 하루에도 수 백개의 새로운 제품들이 구상되고 개발되는거 같다. 대부분 이미 존재하는 제품이 있지만, 뭔가 문제가 있거나 사용상에 불편함이 있기 때문에 그런 단점들을 개선한 제품들이다. 그 누구나 다 완성도 높은 제품을 만들어서 출시하면 시장에 존재하는 기존 제품들이 제공하지 못하는 특별한 기능이나 경험을 우리 제품은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장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많은 경쟁 제품의 고객들을 다 가져올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뭐, 당장은 그렇게 되진 않겠지만 결국 그렇게 될 거라는 기대들을 많이 한다.

그런데 현실은 주로 그렇지 않다. 아니, 완전 반대다. 창업팀이 생각하는 대로 어쩌면 그들의 제품은 그동안 시장에 없던 새로운 기능이나 경험을 제공할지도 모르지만, 이걸로 사용자를 끌어들이기는 쉽지 않다는걸 많은 분들이 경험했고, 현재 경험하고 있고, 앞으로 경험할 것이다. 나도 이런 창업가들을 많이 만난다. 아니, 거의 매일 만나는데 이 분들에게 내가 항상 강조하는건 switching cost 이다. 즉, 이미 잘 사용하고 있는 유사 제품이 있는데 조금 더 좋은 기능이나 경험을 제공하는 새로운 제품으로 갈아타는데(=switching) 들어가는 비용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라고 한다. 이런 말을 하면 대부분 “현재 경쟁사는 초점을 잘 못 잡고 있다고 생각하며, 우리 제품은 이를 보완해 줄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에 성공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라며 자신의 제품과 논리를 방어한다. 어쩌면 이들이 맞을 수도 있다. 제품을 출시하면 엄청나게 인기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나는 새로운 앱을 설치하는걸 정말 싫어한다. 수 많은 앱들이 내 아이폰에 깔려 있는데 정말로 필수 앱이 아니라면 – 우리 투자사 앱들은 예외다. 필수 앱이 아니라도 대부분 설치해서 사용해본다 – 내 아이폰 스크린에 설치될 확률은 매우 낮다. 실은 나는 극단적인 경우이지만, 내 주위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현대인이라면 ‘앱 피로’ 현상을 매일 경험한다. 어떨때는 앱스토의 아이콘들만 봐도 토할거 같다. 현실이 이러니 사용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앱을 설치하게 하는 건 정말로 쉽지 않다. 설치 후에 앱을 실행했는데 로그인이 필요하다면, 그리고 만약에 페이스북 회원가입 프로세스가 없고 전통적인 방법으로 회원가입을 해야 한다면 바로 나가버리고 다시는 그 앱을 사용하지 않는게 일반적인 행동이다. 새로운 제품을 사용하게 만드는게 이렇게 힘들다. 새로운 기능이나 경험은 커녕, 대부분 그 전에 앱을 지워버릴 수도 있다. 특히 이 앱이 이미 내가 잘 사용하고 있는 제품과 비슷하다면. 그만큼 switching cost가 높다.

그러니까 이미 존재하는 제품에 비해 아무리 새로운 기능과 경험을 제공하는 제품을 만들어도, 내 인생에 정말로 유용하지 않으면 사용자들을 확보하는게 매우 어렵다. 이미 존재하는 제품보다 더 싸고, 더 빠르고, 더 좋은 제품을 만들고 있는 모든 창업팀은 이 ‘더’의 의미를 잘 정의해야한다. 이미 잘 사용하고 있는 제품이 존재한다면, 그리고 기존 제품이 아무리 완벽하지 않고 몇 가지 기능이 빠져있더라고, 새로운 제품으로 갈아타는 switching cost가 너무 높으면 원래 사용하던 익숙한 제품을 계속 사용할 확률이 높다. 이 말을 조금 더 간단하게 풀어보면, 새로운 제품을 사용하기 위해서 앱을 설치하고, 회원가입을 하고, 새 기능들에 익숙해져야하는 귀찮음이 새로운 제품이 제공하는 가치보다 크다면 우리가 만드는 새로운 제품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껍데기만 O2O

몇 달 전에 비해서 O2O란 유행어는 조금 시들해졌지만, 관련 비즈니스들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시장에 나오고 있다. 내가 최근에 만난 스타트업들의 절반 이상이 O2O 비즈니스인거 같다(실은 내가 보기엔 O2O가 아닌데, 본인들은 모두 O2O라고 주장하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창업에 관심을 갖고 더 많은 젊은이들이 스스로 뭔가를 해보겠다는건 진짜 좋은 현상이지만, 더 많은 회사들과 더 많은 잡음 속에서 옥석을 가리는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졌다.

그런데 소위 말하는 O2O 비즈니스를 – 이상하게 나는 이 단어를 싫어한다 – 하고 있는 분들이나, 준비하는 창업가들이 이 단어에 대해서 조금은 더 깊게 고민을 했으면 좋을것 같다는 생각을 최근에 굉장히 많이 한다. 과거 수 십년, 또는 수 백년 동안 오프라인에서만 존재하던 비즈니스에 IT 기술을 적용하면서 ‘온라인’ 이라는 날개를 달아주는게 흔히 말하는 O2O 비즈니스인데 여기서 우리가 말하는 IT 기술이나 온라인 기술을 적용한다는게 그냥 상품을 구매하거나 주문하는 웹사이트를 만드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시작은 인터넷으로 뭔가를 하거나 주문하기 위한 프론트 단의 웹사이트와 전자상거래 기능이겠지만 이는 단지 더 크고 효율적인 비즈니스를 위한 시작이자 수단이지 끝이 아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는거 같다. 전에 내가 포스팅을 한 적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O2O의 승자는 offline이 차지하는 비중을 최소화 하면서 online 부분을 강화하는 업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지만 적은 인력과 자원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한계비용이 낮고 확장가능한 비즈니스로 성장할 수 있는 최적의 발판을 만들 수 있다.

요새 좀 안타까운건, O2O를 하겠다는 많은 팀들이 간단한 웹사이트만 제외하면 기존 오프라인 비즈니스와 별반 다를게 없는 비즈니스를 만들고 있다는 건데, 내가 보기엔 껍데기만 O2O 이지 이건 그냥 오프라인 비즈니스이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학력 좋고 체력 좋은 젊은 친구들이 조금 더 빠르고 세련되게 오프라인 비즈니스를 하는거 같다. 적당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IT 업계의 ‘총각네 야채가게’ 같은 느낌이랄까?

실은 오프라인 비즈니스가 나쁘다는건 절대 아니다. 오프라인에 집중해서 성장할 수 있는 방법도 많다. 하지만, 이렇게 방향을 잡아서 오프라인 비즈니스를 강화하는건 이미 수 십년 또는 수 백년 동안 오프라인 비즈니스만 하시던 분들이 전문성을 갖고 있는 분야로 우리가 들어가서 경쟁하려는건데 이는 매우 어렵다. 내가 만나는 모든 팀들은 오프라인 보다는 온라인 쪽의 기술력과 경쟁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강점들을 아주 잘 활용해서 과거에 오프라인이었던 비즈니스에 온라인 기술을 적용해서 모든 프로세스를 더 빠르고, 더 싸고, 더 좋게 만들 수 있는 쪽으로 공략했으면 좋겠다.

간혹 카카오의 O2O 비즈니스에 대해서 이야기 하시는 분들도 많다. 카카오의 O2O 전략이야말로 그냥 오프라인 비즈니스를 카카오 플랫폼이라는 껍데기로 포장한게 아니냐 라면서. 카톡으로 먹을거리를 주문하면 슈퍼에서 집까지 배달해주는게 뭐가 그렇게 온라인스럽냐 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맞다. 아주 맞는 말이다. 하지만 카카오는 조금은 다르게 봐야할 필요는 있을거 같다. 이미 카카오톡이라는 전국민이 사용하는 플랫폼을 잘 구축해놨기 때문에 그만큼 여러가지 오프라인 비즈니스를 이 플랫폼 위에 얹을 수 있고, 적은 비용으로 많은 수요를 한 방에 발생시킬 수 있는 엄청난 네트워크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고, 그 많은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해서 계속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조금은 다르게 봐야 한다.

껍데기만 O2O인 비즈니스는 효율적으로 크게 성장하기가 쉽지 않다.

휴지통, 그리고 본질

한국에 와서 느낀 점 중 하나는 – 다른 곳은 잘 모르겠고, 서울의 경우 – 길거리나 공공장소에 쓰레기통이 많이 없다는 점이다. 한 3-5 블럭 마다 휴지통이 있고, 지하철 화장실에는 아예 휴지통이 없는 곳도 많다.
사진 2015. 12. 30. 오후 6 23 58정자역 화장실에서 청소하시는 분들한테 물어보니 시민들이 공공장소의 휴지통에 쓰레기를 너무 막 버리고, 어떤 얌체같은 사람들은 심지어 개인 쓰레기를 공공 휴지통에 버리기 때문에 아예 휴지통을 없애는 극단적인 조치를 당국에서 취했다고 하는데, 오히려 일은 더 많아졌다고 하다. 왜냐하면, 휴지통이 없으니까 이제는 소변기 또는 세면대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많은 사람들이 그냥 화장실 바닥에 쓰레기를 버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청소하시는 분도 웃으시면서 “나 같아도 더러운 휴지나 쓰레기를 계속 가지고 다니라고 하면 아무래도 그냥 아무도 안 볼 때 버리지 않겠어요.” 라고까지 하시면서…

실은 나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항상 하고 있다.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시도는 좋다. 그리고 국가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 선택한 방법들이 오히려 역효과를 발생시키는거 같다. 휴지통이 부족해서 버려서는 안되는 곳에 시민들이 계속 쓰레기를 버려서 미적으로도 좋지 않고, 이를 처리하기 위한 인력이 더 많이 투입되어야 한다는 그런 역효과 말이다. 어떤 분들이 이런 정책을 만드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분들은 내가 항상 강조하는 ‘본질 파악‘을 제대로 못 하고 있거나, 알고 있으면서도 귀찮아서 나 몰라라 하고 있다.

휴지통을 아예 설치하지 않거나, 또는 일부러 띄엄띄엄 배치해 놓는 목적이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서라면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보면 좋을거 같다. 서울 시민들이 모두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논리는 맞다. 쓰레기 발생을 최소화하고, 자기 쓰레기는 주머니나 가방에 보관하다가 집에 가서 버릴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는 반대다. 휴지통이 없으니까 몰래 길거리에 버리고 있고 이로 인해서 더 많은 손해와 역효과가 발생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런 광경들이 서울 시내 여기저기서 보이는거다.Processed with MOLDIV나 같으면 아예 크고 견고한 쓰레기통을 여기저기 더 많이 배치를 하든지, 아니면 정말 제대로 쓰레기 무단투기를 관리할 의지와 생각이 있다면 CCTV를 설치하고 과태료를 아주 극적으로 올리겠다. 현재 담배꽁초나 휴지를 아무데나 버리는 경우 과태료가 5만원이고, 유원지나 공원등에서 쓰레기를 무단 투기한 경우 과태료가 20만원인데 이 금액을 한 50만원으로 확 올리고 관리를 제대로 하면 시민의식이 바뀌고 서울시 예산도 많이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그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본질을 파악하는 건 시간도 더 걸리고, 어쩔때는 고통스럽고 귀찮지만 문제의 뿌리를 공략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

IPO에 대한 단상

사진 2016. 3. 14. 오후 4 27 07얼마 전에 어떤 회의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회의의 주제는 한국 스타트업들의 미국 시장 상장이었고, 여러가지 좋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자리였다. 하지만 회의 내내 내가 주장하고 강조했던 건, 왜 충분히 상장을 할 수 있는 미국 회사들도 IPO를 일부러 하지 않으려고 하는 이 판국에 우리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한국 회사들에게 굳이 미국 시장 IPO를 강조하냐 였다.

솔직히 우버, 에어비앤비, 핀터레스트 같은 유니콘들은 원한다면 언제든지 미국 시장에서 IPO를 할 수 있는 회사들이지만 계속 비상장시장(private market)에서 자금을 가져다 쓰고 있다. 왜 그럴까? 아마도 최근 몇 년 동안 상장시장과 비상장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을 보면 굳이 이 회사들이 왜 IPO를 하지 않고, 왜 IPO가 가장 좋은 exit 전략이 아닐 수도 있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일단 스타트업들이 왜 IPO를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이 되면 좋을거 같다. 몇 년 전만 해도 많은 스타트업들이 비상장시장에서 시작을 해서 어느정도 성장을 한 후, 시장의 상황이 좋으면 상장을 했다(물론, 상장하는게 이렇게 쉽지는 않지만 이야기의 편의를 위해서 단순하게 적어본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상장을 하면 그동안 VC를 통해서 투자받던 금액과는 비교가 안 되는 큰 자금을 확보하는 동시에 주주들은 회사 주식을 즉시 사고 팔 수 있는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큰 장점들이 있다. 또한, IPO를 하면 ‘상장’ 이라는 훈장이 가져다 주는 기업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즐길 수 있었다. 일반인들 사이에는 상장한 회사가 그렇지 않은 회사보다는 더 믿을 만하고 왠지 상장기업의 제품이 더 좋을거 같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상장하면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위에서 말한 장점들도 많지만 단점들 또한 존재한다. 일단 회사가 상장을 하게되면,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비즈니스를 하기가 힘들다. 상장한 이후에는 회사의 장기적 비전이나 미션보다는 금융시장의 단기적인 관점에 입각한 재무제표 위주의 비즈니스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비상장 스타트업이면 재무적으로 손실이 발생해도 비즈니스의 기본이 탄탄하면 계속 높은 가치에 투자를 받을 수 있다. 투자자들도 회사의 장기적인 비전과 경영진의 능력을 중시한다. 하지만, 상장을 하게되면 주주들의 관심은 오직 매 분기마다 발표되는 회사의 실적이다. 아무리 장기적인 비전이 좋더라도 단기 실적이 나쁘면 그 회사의 주가는 반 토막 날 수 있다. 또한, 상장을 하게 되면 엄청난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일단 Sarbanes-Oxley와 같은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 때문에 상장할 때 엄청난 비용이 발생하게 되며, 상장 이후에도 다양한 감사 및 보고로 인한 (스타트업들한테는)천문학적인 비용을 써야 한다.

물론, 상장에 대한 이런 단점들이 갑자기 생겨난 건 아니다. 이미 존재하고 알려진 단점들이었지만 상장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이런 단점들 보다 많았기 때문에 그동안에 많은 스타트업들이 IPO를 선택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시장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비상장 시장은 더욱 매력적으로 변했고, 상장 시장은 더욱 더 엄격해졌다.

상장시장에는 너무나 다양한 매수와 매도 방법이 존재한다. 특히 최근에 각광을 받고 있는 기계와 알고리즘 기반의 트레이딩이나 공매(short selling) 등은 기업의 가치나 비전은 무시하고 단순히 숫자만을 보기 때문에 상장기업의 주가에는 예측할 수 없는 변동성의 위험이 내재되어 있다. 잘 나가던 회사들도 갑자기 단기 실적이 부진해지면 하루만에 기업가치가 반 토막 나는게 현재의 상장시장이다. 실적이 조금 부진하다고 해서 과연 이 회사의 비즈니스가 위험한가? 기업가치가 반 토막 날 정도로 그 회사가 갑자기 안 좋아졌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게 바로 상장시장이다. 상장시장의 투자자들에게 기업의 장기적인 비전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같은 비상장시장의 투자자들과는 완전히 반대이다. 그리고 상장기업을 유지하기 위한 법무비용과 회계비용은 갈수록 비싸지고 있다는 점도 IPO를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게 하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이와는 반대로 비상장시장은 스타트업들에게 매우 유리해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CEO들은 오히려 상장하지 않고 계속 비상장 상태에서 비즈니스를 잘 운영하고 있다. IPO의 가장 큰 강점이었던 대규모 자금 조달은 이제는 비상장 시장에서도 가능하다. 위에서 언급한 우버나 에어비앤비 같은 회사들은 IPO를 통해서가 아닌, 큰 헤지펀드나 뮤추얼펀드로부터 조 단위의 투자금을 받고 있다. 주로 상장시장에서 놀던 큰 펀드들이 낮은 이자율과 높은 변동성 때문에 오히려 비상장 회사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비상장 시장에서 더 유리한 밸류에이션에 대규모 자금 확보가 이젠 가능해졌다. 또한, (미국의 경우)비상장 회사들의 주식을 쉽게 사고 팔 수 있는 시장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주주들의 유동성 확보 면에서도 상장시장만큼 매력적인게 비상장시장이다.

현실이 이런데 굳이 우리는 투자사들에게 IPO를 강요할 필요가 있을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게 좋을거 같다. 물론, 위의 내용들은 주로 미국 시장에 적용된다. 한국은 자본시장이 미국만큼 발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아직은 이르고, 나는 코스닥 시장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모른다. 하지만, 결국 한국의 자본시장도 미국을 따라가기 때문에 몇 년 후에는 한국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