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

DTC 회사의 밸류에이션

우리 포트폴리오에도 몇 개가 있고, 내가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는 프라이머는 조금 더 활발하게 투자하고 있는 영역 중 하나가 소위 말하는 DTC(Direct-to-Customer) 스타트업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최근 5년 동안 이 분야에 엄청나게 많은 VC 펀딩이 투자되고 있는데, 그냥 간단히 말하면 스타트업이 직접 만든 자체 브랜드를 – 주로 안경, 신발, 옷, 시계와 같은 소비재 – 이커머스 사이트나 앱과 같은 온라인 채널을 활용해서 백화점이나 마트 같은 중간 판매상 없이 직접 고객한테 판매하는 비즈니스다.

우리도 이 분야에 투자했는데, 여성 신발을 제조하고 판매하는 트라이문, 숙취해소 드링크를 제조하고 판매하는 82Labs, 유기농 생리대를 제조하고 판매하는 라엘 등이 있다. 나도 정확한 조사는 안 해봤지만, DTC 스타트업 중 1조 원 이상의 평가를 받는 유니콘 회사들도 많고, 우리 본사가 있는 LA 지역 출신으로는 유니레버가 1.2조 원에 인수한 남성 면도 제품 스타트업 Dollar Shave Club이 크게 성공했다. 그리고, 한때는 유니콘 회사였지만, 이후 밸류에이션이 많이 깎인 유명 배우 제시카 알바와 한인 Brian Lee가 공동 창업한 유아용 제품 스타트업 Honest Company도 LA 회사이다.

그런데 나도 이 카테고리의 회사를 검토하면서, 이런 회사를 기술과 소프트웨어가 주가 되는 이커머스 회사로 봐야 하는지, 아니면, 그보단 그냥 자체 제품을 더 빠르고, 싸고, 좋게 제조해서, 전혀 다른 방법으로 마케팅하고, 전혀 다른 채널을 통해서 유통하는 브랜딩/제품 회사로 봐야 하는지, 항상 고민하게 된다. 왜냐하면, 비즈니스의 코어에 소프트웨어가 있냐 없냐에 따라서 이 회사의 확장성(scalability)이 결정될 수 있고, 여기서 회사의 밸류애이션에 큰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Recode의 기사를 읽었는데, 여기에 재미있는 의견 몇 가지가 제시된다.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부분인데, 일단 DTC 스타트업은 테크 회사는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아주 매끈한 이커머스 플랫폼을 직접 만들고, 다양한 마케팅 자동화 기능을 도입하고, 간단한 인공지능 챗봇과 같은 CS 관련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회사도 있지만, 비즈니스의 코어에는 소프트웨어는 없다고 보는 게 맞다. 특히 미국의 Shopify나 한국의 카페24와 고도몰과 같이 이커머스에 최적화된 플랫폼을 싸고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이 시점에서 플랫폼을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건 lean 하지 않은 방법일 수도 있다.

이렇게 테크가 기반이 안 되는 회사의 비즈니스에는 네트워크 효과가 일어날 수 없다.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가 네트워크 효과 위에서 만들어진 대표적인 서비스인데, 더 많은 사람이 특정 서비스를 사용할수록, 그 서비스의 가치가 더욱더 빠르게 증가하는 효과다. 나 혼자 사용하면 아무 의미가 없지만, 더욱더 많은 사람이 페이스북을 사용할수록, 이 서비스의 가치는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이 기사에서는 네트워크 효과가 없기 때문에 DTC 스타트업의 밸류에이션이 VC들이 전통적으로 투자하던 소프트웨어 회사만큼 높을 수가 없다고 하는데, 실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는 동의하는 부분도 있지만,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런데도 이런 회사들의 밸류에이션이 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는 건, 제대로 된 시장조사나 실사를 하지 않고 엄청난 돈을 투자하는 VC들과 본인들이 운영하는 회사가 소프트웨어가 코어가 되는 테크회사라고 착각하고 있는 창업가들 때문이라고 한다. 실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좀 뜨끔하긴 했다. 우리는 초기 소액 투자지만, 이런 회사를 평가할 때 일반 소프트웨어 회사를 평가하는 기준을 적용해서 회사의 제품 자체에 큰 밸류에이션을 부여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뭐, 어쨌든 밸류에션이 낮은 거 보단 높은 게 무조건 좋은 게 아니냐고 반박할 수 있긴 하지만, 이런 DTC 회사한테는 밸류에이션이 높을수록 exit의 가능성은 낮아진다는 게 이 기사의 핵심이다. IPO보다는 다른 더 큰 회사에 인수되는 게 더 현실적인 exit 전략인데, 대부분의 큰 회사는 VC와 창업가가 만들어 놓은 터무니 없는 밸류에이션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직원 10명의 매출 한 푼도 없는 회사를 수조 원 주고 인수하는 현상이 너무 자연스럽지만, 매트리스나 신발을 판매하고 있는 대기업들은 이런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이 없고, 그런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 소비재는 진입장벽이 그렇게 높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카피할 수 있고, 카피를 많이 하다 보면, 더 좋은 제품을 더 싸게 만들어서 판매할 수 있는 회사가 분명히 나타난다. 그리고, 비슷한 제품을 만드는 여러 회사 중, VC 투자를 한 푼도 받지 않은 회사가 있을 것이고, 이 회사의 기업가치는 VC 투자를 받은 회사보다 현저하게 낮을 것이다.

그러면, 인수하는 대기업 사장이라면 어떤 회사를 인수할 것인가? 비슷한 수치와 실적이면, 당연히 더 싼 회사를 선호할 것이다. 인수하는 사장의 입장에서는 exit 시점에 그 회사에 투자한 VC가 돈을 벌어야 하므로 굳이 더 비싼 가격을 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외부 투자를 받지 않은 회사는 자체적으로 돈을 벌어서 생존해야 하기 때문에 수익성과 고객관리를 철저하게 하지만, 투자를 받은 회사는 손실이 나더라도 고객획득과 성장에 주로 집중하기 때문에, 인수한 후에 비용 관리가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최근에 보도된 DTC 회사 인수 건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대부분 외부 투자 유치를 하지 않았고, 인수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점이다. P&G는 Native라는 천연 데오드란트 스타트업을 1,100억 원에 인수했는데, 창업가가 회사의 90%를 소유하고 있었다. Movado는 MVMT라는 DTC 시계 스타트업을 2,200억 원에 인수했는데, 이 회사는 투자를 한 푼도 유치하지 않았고, 내부에서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었다. 데오드란트와 시계 분야에는 실은 다른 좋은 스타트업도 많았지만, 그중 가장 좋은 회사를 가장 저렴한 가격에 P&G랑 Movado가 인수할 수 있었던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인수한 회사들이 VC 투자를 받지 않아서 가격에 거품이 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뭐, 그렇다고 모든 DTC 회사가 투자를 받지 말고, 밸류에이션도 낮게 책정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모든 회사가 다르고, 모든 시장이 다르고, 모든 제품이 다르기 때문에, 그 상황에 맞는 비즈니스를 하는 게 맞지만, 그래도 자체 제품을 만들어서 고객에게 직접 판매하는 비즈니스를 하는 창업가라면 한번 곱씹어 보면 좋은 내용인 거 같다.

호기심에 대해서

온디맨드 가사도우미 서비스 플랫폼을 만들고 있는 우리 투자사 미소가 최근에 100억 원 규모의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했다. 한국에서 서비스하고 있지만, YC를 거친 회사고, 투자자들도 글로벌 VC라서 그런지, 시리즈 A 내용을 한국과 미국 tech 언론에서 보도했다.

한국 언론 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잘 써준 벤처스퀘어 기사를 보면, 누가 봐도 글을 쓴 분이 큰 고민하지 않고 회사에서 그냥 제공한 내용을 기반으로 기사를 썼다는걸 알 수 있다. 아주 짧고, 그냥 미소라는 회사가 이번에 어떤 VC들한테 얼마를 투자받았고, 이 돈을 어떤 용도로 사용할 거라는 내용이다.

미국 언론 중에서는 TechCrunch가 가장 잘 커버한 거 같은데, 이 기사를 보면 글을 쓴 분이 상당히 많은 고민과 질문을 한 흔적이 보이고, 미소라는 회사가 어떤 회사고, 어떻게 돈을 벌고, 왜 겉으로 보면 평범한 온디맨드 청소 서비스가 이런 투자를 받았는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나온다. 외국 기자지만, 한국 기자들보다 한국 서비스에 대해서 더 자세한 디테일과 독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내용을 아주 잘 다뤘다는 인상을 받는다.

실은 나도 어떤 과정을 통해서 취재가 일어났는지는 모른다. 어쩌면 미소에서 한국 언론보단 미국 언론에 더 많고 자세한 정보를 제공했을지도 모르고, 더 많은 인터뷰 시간을 할애해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건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보다는 그냥 글을 쓰는 분들의 호기심의 정도의 차이가 이런 다른 결과물을 생성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 경험에 비춰봐도, 한국 기자들은 회사에서 제공한 내용을 거의 그대로 기사화한다. 대부분 그 어떤 질문도 하지 않는다. 반면에 미국 기자들은, 제공한 내용에 대해서 이런저런 다양한 질문을 하고, 본인이 충분히 그 내용을 잘 숙직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면, 그때 기사를 쓴다. 취미가 아니라, 직업으로서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본인이 만드는 기사에 대해서는 일반인보다 훨씬 더 많은 호기심을 갖고 다양한 질문을 해야 하고, 그 질문에 대한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을 독자들한테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아직 한국은 이 부분이 매우 약한 거 같다. 이는 tech 분야뿐만 아니라, 전 분야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현상에 대해서 나는 한국 신문이나 언론보단 미국 신문을 보고 더 잘 이해한 경험이 상당히 많다. 북한 이슈도 마찬가지다. Tech 분야는 말할 필요도 없다. 내가 2012년도에 한국에는 제대로 된 tech 기자들이 없다는 을 썼는데, 안타깝게도 6년이 지난 오늘도 똑같다.

기자들이 조금만 더 호기심을 갖고, 깊이 있는 내용을 전달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교육의 재정의

최근 알리바바의 마윈이 곧 사업에서 은퇴하고, 교육 사업에 전념할 것이라는 발표를 했다. 과연 그가 알리바바를 무에서 만든 것처럼 교육 사업도 잘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충분히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는 경험, 의지, 그리고 자본이 마윈에겐 있기 때문에 전 세계가 그에게 거는 기대는 크다. 마윈 그 자신도 알리바바를 창업하기 전에 영어 선생님 이었으니, 학교 시스템이 얼마나 망가졌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마윈의 이런 결심에 큰 영향을 준 건 빌과 멜린다 게이츠가 재단을 통해서 하는 다양한 시도인데, 한국에도 사업을 통해 부를 창출한 선배 창업가들이 한국의 고장 난 교육 시스템을 고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다 긍정적인 신호다.

빌 게이츠와 마윈만큼 교육에 관심이 많은 Fred Wilson은 ‘Reinventing Education‘이라는 글에서 교육 시스템을 완전히 새로 설계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일단, 값싸고 질 좋은 교육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접근 가능해야 하며, 또 하나는 기업이 인재를 채용할 때 사용하는 전통적인 교육의 기준을 바꿔야 한다고 한다. 나는 교육 전문가는 아니지만,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미 많은 창업가가 사업을 통해 더 질 좋고, 더 싸고, 더 접근성이 좋은 교육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으며,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이런 움직임은 가속화될 것이고, 부자든 가난하든, 앞으로 전 세계 모든 사람이 같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나는 두 번째 이슈가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같이 출신 학교와 학벌 자체를 교육 수준과 동일하게 생각하는 사회에서는 명문대 나온 사람들이 비명문대나 지방대 나온 사람보다 모든 분야에서 특혜를 받는다. 또는, 채용에서는 대졸이 고졸보다 조건 없는 우위를 갖게 된다. 하지만, 이제 조금씩, 아주 조금씩, 기업이 인재를 채용할 때 수십 년 동안 적용하던 전통적인 기준을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대졸, 또는 명문대 졸업이 아니면, 아예 채용 대상에서 제외돼서 면접의 기회조차 갖지 못했지만, 점점 학벌-교육-지식-업무능력의 상관관계가 매우 약하다는 걸 인지하면서, 대기업도 서서히 다른 시각을 갖게 되는 걸 느끼고 있다. 물론, 시간이 걸리겠지만, 결국 바뀔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트롱 투자사만 해도 그렇다. 대부분 대학을 나오긴 했지만, 명문대 출신은 별로 없다. 우리 투자사 대표 중 고졸도 있다. 우린 투자할 때 창업가의 학벌을 절대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실은, 나는 우리 투자사 대표들의 출신 학교도 잘 모르고, 미팅할 때, “학교 어디 나왔어요?” 물어보지도 않고, 솔직히 별로 관심도 없다. 왜냐하면, 출신 학교와 비즈니스 능력은 상관관계가 없다는 걸 항상 피부로 느끼기 때문이다. 명문대 출신 창업가들이 사업을 잘하는 경우도 많지만, 비명문대 출신 창업가들이 사업을 잘하는 경우도 똑같이 많다. 이들의 공통점은 학벌이 아니라 업무능력, 지식, 그리고 호기심이다.

하지만, 나는 ‘교육’ 자체의 중요성은 항상 강조한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교육은 꼭 학교에서 선생님이나 교수님한테 뭔가를 배우고 습득하는 게 아니다. 과거에는 그랬지만, 이제 세상이 많이 변했다. 좋은 교육은 오히려 학교 밖에서 습득하는 게 훨씬 쉽다. 책, 구글, 유튜브, 수많은 인터넷 무료 콘텐츠, 사업현장, 길거리 등, 본인이 맘만 먹고 의지와 호기심만 있다면 학교에 가지 않고도 웬만한 전문가보다 더 훌륭한 지식으로 스스로를 교육할 수 있다. 인터넷에 얼마나 많은 정보가 있으면 구글에서 검색해서 열심히 공부하면 노벨상도 탈 수 있다는 농담까지 하겠는가. 우리 투자사 대표나 CTO도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별로 없다. 그냥 스스로 코딩을 배운 분들이 훨씬 많고, 어떤 분들은 대학도 안 가고 그냥 중학교 때부터 책 보고 프로그래밍을 배웠다.

모두가 원하는 만큼 빠르진 않지만, 교육의 재발명과 재정의는 현재 진행 중이다.

Fuerte Strong

요새 우리도 새로운 펀드를 만들고 있어서, 많고 다양한 LP를 만나고 있다. 그동안 만나기 힘들었던 미국에서 온 분과 토요일 조찬 미팅을 했는데, 좋은 미팅이었고, 펀드와 투자뿐 아니라, 그냥 스포츠부터 북한까지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뭐, 어떻게 될진 모르지만, 스트롱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다면서 굿바이를 했다. 펀드가 지금까지 한 일, 그리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일도 다 좋지만, 어쨌든, 존과 내가 회사를 만들고, 이 회사의 이름을 짓는 과정조차도 심사숙고하면서, 좋은 스토리를 만들려고 하는 그런 노력은, 상당히 높게 평가하고 믿음이 간다는 든든한 피드백을 남기고 헤어졌다. 스트롱벤처스는 강한 회사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우리 회사 이름에는 이보다 더 재미있는 스토리가 있다. 잘 모르는 분을 위해서 과거 내용을 다시 붙여본다.

[과거글: Strong Ventures 유래]

우리 회사 이름은 Strong Ventures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이름이 그냥 ‘강한(strong)’에서 유래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에는 이보다 조금 더 깊은 의미가 있다.
(VC들은 잘 아실 텐데 일반인들은 잘 모를 것이다) 대부분의 벤처 펀드들의 이름은 창투사가 위치한 지역과 밀접한 연관이 있거나 창투사 founder들의 이름/학교/지역/고향 등과 관련된 경우가 많다. 즉, 대부분의 펀드는 단순한 이름을 넘어서 더 개인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 몇 가지 예를 들면:
–Sequoia Capital은 캘리포니아를 대표하는 Sequoia 나무에서 유래
–Palo Alto Investors는 회사가 위치한 동네 Palo Alto에서 유래
–DFJ는 펀드 창업자 3명의 이름 앞 자에서 유래 (Draper, Fisher, Jurvetson)
–Menlo Ventures는 회사가 위치한 동네 Menlo Park에서 유래

등등 대부분 벤처펀드의 이름을 보면 이런 경우가 많다(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John이랑 나도 펀드를 처음 만들 때 우리랑 개인적으로 연관된 재미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둘 다 어릴 적부터 스페인의 까나리아 군도에서 자랐기 때문에 (이 글 참고) 여기서 뭔가 영감을 얻자고 했고 이런저런 지명을 생각해 봤다. 우리가 자란 곳의 영문 이름이 Canary Islands이니까 처음에는 Canary Ventures라는 이름을 생각했는데 ‘카나리아’ 새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고 – 조금 약한 느낌 – 한국사람들 한테는 까나리 액젓도 연상되는 거 같아서 pass. 까나리아 군도의 라스팔마스(Las Palmas)라는 도시에 살았으니까 Las Palmas Ventures도 고려해봤지만(영어로는 Palm Trees) “라스팔마스”는 너무 길어 발음하기가 힘들어서 pass.

그러다가 까나리아 군도의 다른 섬들 이름을 생각해봤다(참고로 까나리아 군도는 7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Fuerteventura라는 섬이 있는데, 이 섬의 이름에서 우리 회사 이름이 나왔다. Fuerteventura를 영어로 옮기면 “fuerte = strong” , “ventura = venture(이 번역은 아주 깔끔한 번역은 아니지만 비슷하다)” 라서 Strong Ventures로 정했다.
fuerteventura
다행히도 strongvc.com 도메인이 구매 가능했고(아주 운이 좋았다), “스트롱 벤처스”라는 이름이 누구나 한번 들으면 거의 잊지 않는 이름이며 한국 사람들이 발음/기억하기에도 아주 쉬운 이름이었다. 이게 Strong Ventures 이름의 유래이다.

좋은 판단의 형성

지난 주에 벤치마크에 대해 포스팅했는데, 여기서 언급한 WSJ 기사에서 벤치마크의 파트너 Bill Gurley가 – 참고로, 많은 동료 VC의 존경을 받는 투자자다 –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올바른 판단은 경험에서 나오고, 경험은 틀린 판단에서 나온다(good judgment comes from experience, which comes from bad judgment).”

이걸 내 탐라에 올렸는데, 상당히 많은 호응을 얻었고, 많은 분이 이 말에 동의했다. 실은, 일을 좀 해 본 사람들이라면 – 특히, 스스로 뭔가를 시작한 후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창업가 – 누구나 다 경험해 봤을 것이다. 단지, 이렇게 세련되고 멋진 말로 표현을 못 했을 것이다.

아마도 빌 걸리 본인이 벤치마크에서 좋은 회사에 많이 투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과거에 그만큼 실수를 많이 했고, 나쁜 투자를 많이 했고, 거기서 나온 통찰력과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을 하려고 하는 거 같다. 이 업계에서 “이왕 실패할 거면, 빨리 실패하고, 이왕 할 거면 아무도 모르는 작은 실패보단, 누구나 다 아는 그런 큰(=spectacular) 실패를 해라”라는 말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데, 같은 맥락인 거 같다. 실패가 커야지만, 그로 인한 쓰라린 아픔과 기억이 생기고, 이게 몸과 마음속에 남았을 때 소위 말하는 ‘경험’이 되는 거 같다. 그리고 이렇게 힘들게 얻은 경험은 미래의 좋은 결정과 판단을 위한 자양분이 된다.

투자를 해 본 분이라면 누구나 다 이런 경험이 있을 텐데 나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7년 동안 한국과 미국의 90개 이상의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이 중 잘 엑싯한 회사도 있고, 비즈니스를 아주 잘 하는 회사도 있지만, 실은 망한 회사도 많고, 잘 안 되는 회사가 더 많다. 대부분의 펀드 상황은 비슷할 텐데, 우린 극초기 투자라서 그런지 시간이 갈수록 그 편차는 더욱더 커지는 거 같다. 우리 투자사 중 망했거나, 또는 현재 힘든 회사들을 보면 기업이 창업 순간부터 갖게 되는 태생적인 리스크를 극복하지 못 한 거 같다. 시장의 리스크, 팀의 리스크, 펀딩의 리스크, 기술의 리스크 등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이는 비단 벤처기업뿐만 아니라 모든 기업에 적용될 수 있다. 이런 리스크는 누구도 언제, 어떤 강도로 회사에 닥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다가 회사가 잘 안 되면 정말로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을 하게 된다. 무책임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정말로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내가 판단을 초기부터 잘 못 한 경우도 있다. 개인적인 편견, 과거의 경험, 쓸데없는 고집, 경직된 사고 등으로 인해 잘못된 투자 결정을 해서 이 회사가 잘 안 되는 경우인데, 솔직히 말해서 나도 이런 경험이 적다곤 할 수 없다(여기서 구체적인 예를 하나씩 들진 않겠다). 확신을 하고 성공할 거라고 믿은 회사에 투자했는데, 앞에서 언급한 그런 통제할 수 없는 리스크 때문이 아니라, 나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투자 때문에 회사가 망한 경우가 있다. 또한, 확신을 갖고 절대로 안 된다고 판단해서 투자하지 않았는데, 이 회사가 완전 잘 된 경우도 수없이 많다. 이럴 때마다 나는 “다시는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아야지”라는 다짐을 하고, 이후 비슷한 회사나 창업가를 볼 때 그 이전의 경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한다. 즉, 실수로 인해 경험이 생기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더 좋은 판단을 하는 것이다.

이런 배움의 과정은 시작과 끝이 없다. 죽을 때까지 계속 반복되면서, 경험이 더 풍부해지고, 이로 인한 판단의 정확도 또한 정교해지는 거 같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내가 투자할 기회가 있었지만, 투자하지 않은 회사가 굉장히 잘 되면, 후회하면서 다음에는 이런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을 한다. 그리고 이와 거의 같은 회사를 다시 검토했을 때는,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투자를 할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그런데 또 잘 안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똑똑한 투자자라면 왜 이전 회사는 잘 됐는데 이 회사는 안 됐을까라는 고민을 하고, 계속 생각과 연구를 하면서 더 수준 높은 경험을 축적하게 된다.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하다 보면 완벽한 판단을 할 순 없어도, 나중에 죽을 때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판단에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