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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채널의 진화

우리가 투자한 많은 이커머스 스타트업을 가까이서 보면서 배운게 하나 있다면, 온라인으로 뭔가를 파는 게 쉬워 보이지만, 실은 굉장히 어렵다는 사실이다. 쉬워 보이는 이유는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나 까페24와 같은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면 코딩을 못 해도 온라인 쇼핑몰을 만들 수 있고, 여기에 내가 팔고 싶은 물건을 등록해서 판매하면 매출이 발생하니까, 겉으로 보면 그래도 상대적으로 빨리 셋업해서 매출을 빨리 만들 수 있는 사업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쉽게 셋업해서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건 맞다. 그리고 거의 설립하자마자 매출이 발생하는 것도 맞다. 그래서 아마도 직장인들이 너도나도 부업으로 쇼핑몰에 관심을 갖는 것 같다. 하지만, 이걸 직접 해 본 분들이라면, 실은 굉장히 어려워서 대부분 얼마 안 가서 포기한다.

만약 이 단계를 지나서 어느 정도의 제품력을 기반으로 약간의 브랜딩이 만들어졌다면, 이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다양한 온라인 마케팅을 시도한다. 실은 모든 이커머스 업체들에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다른 유통업체를 통하지 않고, 이렇게 직접 내가 우리 고객들에게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고객과의 접점이 생기고, 이들에 대한 데이터도 많이 확보하면서, 계속 소통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신제품이 나와도 성장하고 확장하는 게 수월하다. 그런데 계속 우리가 직접 온라인으로 고객에게 판매하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온라인 마케팅의 비용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지면서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경쟁사도 계속 출현하고, 이들이 더 많은 마케팅 비용을 집행하면, 이제 시작하는 스타트업이 이 게임에서 이길 수 있는 확률은 더욱더 낮아진다. 가끔 마케팅을 전혀 하지 않아도 구언효과와 바이럴로만 시장을 다 먹어버리는 회사들이 나오는데, 요샌 이런 회사는 정말 드물다.

그래서 결국 이들은 다른 온라인 유통 플랫폼에 입점한다. 식품을 판매하면 마켓 컬리, 화장품이면 올리브영, 그리고 모든 제품을 취급하는 쿠팡 같은 곳들이 이런 대형 플랫폼/마켓플레이스다. 미국이라면 아마존에 대부분 입점할 것이다. 이런 대형 플랫폼을 통해서 우리 제품을 판매하면 노출과 트래픽은 극대화되지만, 고객과의 직접적인 접점이 잘 안 생기고, 우리 브랜드를 고객이 잘 기억 못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예를 들면, 나도 마켓컬리에서 물건을 구매하면, 제품 이름은 잘 안 보고 그냥 마켓컬리에서 구매한 제품이라는 것만 기억한다.) 그리고 사업적으로 더 좋지 않은 건 남의 채널을 통해서 판매하기 때문에 통행료(=수수료)를 내야하고, 이 수수료 또한 상황에 따라 매우 늦게 받는 경우가 있다. 노출이 잘 되고, 판매가 어느 정도 되지만, 결국엔 돈은 못 벌고, 이 돈 또한 늦게 받는 경우가 있어서 회사의 현금 흐름에 악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누가 우리 제품을 구매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이들을 대상으로 직접적인 마케팅을 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이 단계까지 왔다면 그래도 외형적으로는 어느 정도 성장하는 비즈니스가 됐을 것이고, 이런 성장을 이해하는 투자자들로부터 투자를 유치할 가능성은 높아졌을 것이다. 이후에는 계속 성장해야 하기 때문에 수익성의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계속 외부 플랫폼과 유통채널을 통해서 제품을 판매하는데, 이 비즈니스의 특성상 주문과 납기를 맞추기 위해서 초기 제조 비용이 들어가고, 여기저기서 다양한 수수료를 부담해야 하는 반면, 수금은 늦어지기 때문에, 수익성과 현금흐름의 개선을 기대하긴 쉽지 않다.

어쨌든 성장을 멈출 순 없기 때문에, 그동안 온라인 위주의 판매를 하다가 결국엔 오프라인 채널로도 확장하는 걸 우린 많이 봤다. 오프라인 채널은 또 다른 어려운 사업이지만, 편의점과 같은 궁극의 오프라인 채널에 입점하면 외형적인 매출 규모는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런데 오프라인 채널은 수익성의 면에서는 주로 최악인 경우가 많다. 수수료가 높고, 원치 않는 프로모션을 해야 할 때가 있는데, 우리 투자사를 비롯한 오프라인에서 활동하는 많은 분들이 오프라인은 돈을 버는 목적보단, 브랜드와 제품의 노출을 위해서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렇게 여러 곳에서 노출이 되면서 브랜딩이 확고해진 제품이 실제로 많이 있고, 이를 통해서 크게 성장하고 투자를 받은 곳도 있지만, 반대로 수익성에 전혀 도움이 안 되고, 어떤 경우에는 마이너스가 발생해서 오프라인 채널에서 완전히 발을 뺀 곳도 있다.

실은 여기까지 와서, 온라인이냐 오프라인이냐 고민하고 있다면, 그래도 월 매출이 수 억 ~ 수십억 원 단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단순한 제품보단 더 큰 브랜드와 사업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을 단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고민을 계속하면서, 오프라인에서 발자취를 계속 넓혀가면서, 여기서 발생한 규모로 원가를 계속 낮추면서 수익성을 개선하는 곳도 있고, 온라인을 오히려 더 강화하면서 고객과의 끈끈한 접점을 만들어서 계속 이들에게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는 곳도 있다. 어떤 D2C 스타트업은 결국 유통채널단에서 컨트롤할 수 있는 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제조원가를 줄여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자체 공장을 만들어서 수익성을 대폭 개선한다. 모든 비즈니스가 그렇듯이, 한가지의 정답은 없다.

그래도 내가 봤을 때, D2C 스타트업의 가장 이상적인 성장은 온라인 판매이다. 최고의 제품과 가장 창의적인 마케팅으로 우리를 사랑하는 고객과의 끈끈한 접점을 만들면서 D2C 왕국을 만드는 게 갈수록 힘들어지곤 있지만, 이런 성장을 할 수 있다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B2B SaaS의 해

내가 벤처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는 국내 1호 악셀러레이터인 프라이머의 22기 선발이 현재 진행 중이다. 매 기수마다 수백 개의 스타트업이 지원하지만, 올해는 더욱더 많은 회사가 지원했고, 창업가나 스타트업의 quality 또한 상당히 높았다. 경기는 더욱더 안 좋아지고 있지만, 위대한 회사들이 불경기 때 창업됐던 역사는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걸 요새 직접 실감하고 있다.

프라이머에 지원하는 스타트업을 검토하다 보면, 앞으로 한국에서 어떤 기술이 커질 것이고, 어떤 서비스가 시장에서 나올 것인지 어렴풋이나마 예측할 수 있다. 투자라는 게 뭔가를 콕 집어서 찾기보단, 어떤 매크로한 패턴을 찾는 일이라서 이런 예측이 항상 정확하진 않지만, 그래도 앞으로 시장에 닥칠 거대한 트렌드에 대한 맥을 짚을 수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런 굵직한 패턴이 몇 개 보였다.

깊게 들어가진 않겠지만, 한가지 트렌드는 바로 여성창업가의 증가이다. 이건 실은 프라이머 기수 선발뿐만이 아니라, 스트롱에서도 매일 느끼는 현상인데, 과거 대비 여성 창업가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좋은 학벌, 좋은 경력, 좋은 에너지, 그리고 좋은 태도를 가진 여성 창업가들이 이번에도 꽤 많았는데, 아주 긍정적인 현상이다. 앞으로 더 많은 여성들이 창업할 것이고, 언제가 될 진 모르겠지만, 남성과 여성 창업가의 비율이 일대일이 되는 그날을 기대하겠다.

다른 트렌드는 바로 B2B SaaS 창업이다. 이번 프라이머 22기에는 눈에 띌 정도로 B2B SaaS 스타트업이 많았다. 나는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도 B2B 유니콘이 조만간 나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었고, 스트롱에서도 상당히 많은 B2B 회사에 투자할 정도로 우린 이 한국에서도 이 시장이 커질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래서 2023년은 B2B SaaS의 한 해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까지 한다.

여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일단 불경기가 그 트리거 역할을 했다고 본다. 스타트업의 입장에서는 당장 매출을 만들 수 있는 사업을 만들어야지만 내실을 다질 수 있고, 펀딩을 받을 수 있다는 현 시장의 상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거대한 트래픽을 통해서 광고 매출을 만드는 B2C 사업보단, 꾸준하고 질 좋은 매출을 만들 수 있는 B2B SaaS 창업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그리고 막상 이 분야를 파고 들어가보니, 이제 한국에서 B2B 시장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에,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시장을 선점하면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 창업가들이 생기고 있다.

B2B SaaS를 돈 내고 사용해야하는 기업의 관점에서는, 불경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더 효율적으로 일해야 하고, 더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데, 이걸 가능케 하는 게 좋은 B2B 툴이라는 걸 깨닫고 있다. 그리고 대기업에서 주로 사용하는 외산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는 중소기업에겐 너무 비싸고, 업무 시스템에 통합하기엔 부담스럽기 때문에, 오히려 작은 스타트업의 SaaS 제품을 찾게 된다. 이렇게 스타트업과 고객사 서로의 니즈가 일치하면서 시장이 계속 좋아지고 있다. 내 기억으로는 현재 일본의 거대한 B2B SaaS 시장의 형성에도 과거 일본의 이러한 경제 상황이 한몫한 거로 알고 있다.

조만간 한국에서도 여러 개의 B2B 유니콘 기업들이 나오길 바란다. 그 전환점이 2023년이 됐으면 좋겠다.

비트코인의 죽음

비트코인은 이제 정말로 죽었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다시 많이 듣기 시작했다. 실은 과거에도 비트코인은 죽었고, 다시는 예전같이 가격이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이 말이 모두 다 사실이었다면 비트코인은 최소 5번은 죽었을 것이다. 나도 전에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정말로 이번엔 비트코인이 끝났다는 의심을 한 적도 있는데, 이젠 그렇게 신경 쓰진 않는다.

최근에 이 말이 다시 나온 이유를 자세히 보면, 정말로 이번엔 비트코인뿐만 아니라 모든 디지털자산에 큰 위기가 온 것 같고, 비트코인 사망설이 안 나오면 이상할 정도로 시장은 바닥을 향해서 가고 있다. 권도형 씨의 테라-루나 참사를 시작으로 암호화폐 대출 서비스인 Celsius Network가 파산했고, 이후에 암호화폐 헤지펀드 3 Arrows Capital도 파산했다. 모두 다 깊게 연관된 사업이라서 줄줄이 파산했는데, 그 정확한 원인은 아직도 파악 중이지만, 그냥 사업을 잘 못해서 파산한 것 이상의 이유가 있는 것 같다. 결정적인 파산 원인은 투명성의 부재, 창의적인 회계(=회계 부정), 그리고 경영진의 탐욕이다. 작은 거짓말이 큰 거짓말이 되고, 작은 실수가 큰 사기가 된, 전형적인 폰지 스킴의 냄새가 나는 사기성이 짙은 경영진의 부도덕성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사태를 수습하기도 전에 세계 3대 거래소인 FTX가 파산했는데, 이건 타격이 큰 사고다. FTX의 대표 SBF(Sam Bankman-Fried)가 이 분야에서 워낙 영향력이 있었고, 재계와 정계의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제2의 JP Morgan이 되려는 꿈을 하나씩 실행하는 걸 보면 정말로 그렇게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나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이 사건도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고 있는데, 불투명하게 얽히고 설킨 관계를 하나씩 풀어야하기 때문에 시간이 꽤 많이 걸릴 것 같다. 다만, SBF는 언론에 비쳤던 그런 인류의 구세주가 아니라 세기의 사기꾼으로 점점 더 몰리고 있고, 정황을 대략 보면 그의 FTX 왕국에서는 일어나선 안 될 말도 안 되는 부정, 부패와 사기가 판을 쳤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여파는 계속 커질 것이다. 이미 암호화폐 대출 서비스의 큰 손 Genesis가 파산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고, 더 끔찍한 건 Genesis를 소유하고 있는 DCG(Digital Currency Group) 또한 위험하다는 소문이다. DCG가 만약에 망하면, 암호화폐 시장은 겨울에서 빙하기로 바뀔 것이고, 다시 봄이 오기까진 시간이 상당히 많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이 글을 읽어보면, 이제 정말로 비트코인은 끝났고 곧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내 생각은 실은 그 반대이다. 위에서 나열한 사건, 사고들은 암호화폐의 문제라기보단, 특정 회사와 그 회사를 운영하는 경영진들의 문제라고 하는 게 정확할 것 같다. 중앙화/탈중앙화된 새로운 형태의 금융 비즈니스 모델의 실패이자, 비즈니스 투명성의 실패이고, 극단적으로 말하면 금융 사기의 문제이다. 최근에 워낙 큰 사고들이 많이 터져서, 이렇게 비트코인과 이런 사고들을 분리해서 보는 게 쉽진 않지만, 명확하게 분리해서 볼 수 있는 냉정함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맞는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누가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내면 음주하고 운전한 드라이버를 탓해야지, 자동차 자체를 탓하면서 자동차는 이제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진 않는다.

물론, 누군가 나에게 “그건 이해가 가는데, 왜 맨날 암호화폐 쪽에서만 이런 대형 사고가 터지나요? 과거에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는데, 왜 이 바닥에서만 이런 말도 안 되는 사기가 반복되나요?”라고 물어보면, 나도 할 말은 없다.

네이버의 왕관 뺏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스타트업은 어느 정도의 유료 마케팅을 한다. 가장 인기 있는 유료 마케팅은 광고인데, 스타트업이라면 모두 다 검색 광고와 소셜미디어 광고에 돈을 쓰고 있다. 스타트업이 검색광고와 소셜광고에 집행하는 비용이 어느 정도일까? 공식적인 연구나 조사를 한 적은 없지만, 투자자들에게 물어보면, 포트폴리오 회사들이 VC 투자금의 절반 정도를 구글, 네이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에서 마케팅 비용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나도 생각해보면, 우리 투자금의 절반 정도가 구글, 네이버와 페이스북으로 흘러?들어가는 것 같다. 엄청난 돈이다.

본인들의 서비스를 홍보하기 위해서 이렇게 남의 플랫폼에서 돈을 과하게 사용하는 걸 스타트업 대표들이 모를 리 없고, 이야기해보면 모두 다 아까워하지만, 현재로서는 네이버, 구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만큼 좋은 온라인 마케팅 채널이 없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마케팅 비용을 집행하고 있다. 아마도 한국에서는 구글보단 네이버에서 광고비를 많이 쓰는데, 대부분 창업가의 마음속엔 언젠가는 네이버의 왕관을 본인들이 뺏어와서 스스로가 네이버와 같은 대형 플랫폼이 되는 목표가 있을 것이다.

네이버의 왕관은 엄청 무겁다. 이 왕관을 뺏기 위해서는 시장에서 우리 서비스의 브랜딩이 확실하게 만들어져야 하고, 사용자들이 네이버가 아닌 우리 제품을 먼저 실행해야 한다. 현재의 유저 시나리오는, 사용자들이 무의식적으로 네이버로 들어가서, 본인들이 원하는 걸 검색하고, 검색 결과를 클릭해서 운 좋으면 우리 서비스로 전송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사용자들이 네이버가 아닌 우리 서비스를 먼저 열고, 여기서 필요한 걸 검색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이건 정말로 많은 돈, 시간, 그리고 인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이렇게 많은 돈, 시간과 인력을 투입해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네이버의 왕관을 뺏는데 일부 성공한 내가 아는 회사들이 몇 개 있다. 일단 쇼핑 분야에서 쿠팡이 어느 성도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가장 좋은 물건을 가장 싼 가격에 사기 위해서 네이버에서 먼저 검색하고, 이 검색 결과 중 하나를 클릭해서 쿠팡이나 다른 이커머스 서비스로 넘어가는 과정이 온라인 쇼핑의 일반적인 프로세스였다. 이젠 많은 사용자들이 그냥 쿠팡 앱을 실행하고, 여기서 물건을 검색해서 구매한다. 즉, 이커머스 분야에서는 쿠팡이 네이버와 같은 검색, 발견, 그리고 구매의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쿠팡은 아직도 네이버와 다른 소셜 마케팅 플랫폼에서 마케팅 비용을 엄청나게 많이 집행하는 거로 알고 있지만, 어쨌든 이커머스 분야에서는 확실한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네이버의 왕관을 뺏는 시도를 계속할 것이다.

당근마켓 또한 중고 거래 분야에서는 네이버의 왕관을 확실하게 뺏었다고 생각한다. 당근마켓 초기 시절에는 네이버 검색을 통해서 당근마켓의 중고 거래 물품을 발견하고, 그 이후에 당근마켓으로 트래픽이 전송되는 프로세스가 일반적이었다. 지금은 대부분 사용자가 바로 당근마켓을 열고, 여기서 본인들이 필요한 용품을 검색하고 거래한다. 유저들에겐 중고 거래 분야에서는 당근마켓이 바로 네이버가 된 셈이다. 정확한 수치를 밝힐 순 없지만, 당근마켓에서 쿼리되는 검색 수가 이런 시장의 트렌드를 잘 반영해주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당근마켓은 중고 거래에서 다른 분야로 계속 영역을 확장하면서 네이버의 왕관을 야금야금 뺏어 먹을 것으로 예측된다.

홈 서비스 영역의 우리 투자사 미소와 생활 솔루션 영역의 숨고 또한 궁극적으로는 네이버의 왕관을 뺏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가사도우미가 필요하면 일단 대부분의 유저는 네이버에서 ‘가사도우미’ , ‘집안 청소’ 등으로 검색한다. 그러면 미소나 청소연구소 링크가 검색 결과로 나오고, 이 중 하나를 클릭해서 운 좋으면 실제 사용으로 전환된다. 숨고 또한 비슷하다. ‘피아노 레슨’ , ‘파워포인트 작성’ 등과 같은 생활 업무를 해줄 분이 필요하면 일단은 네이버를 먼저 실행해서 검색부터 한다. 여기서 나오는 수많은 결과 중 하나가 숨고에 등록된 프로들이고, 운 좋으면 숨고를 클릭해서 전환된다.

숨고나 미소나, 이렇게 중간에 네이버를 거치는 과정을 없애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즉, 사용자들이 청소 또는 집과 관련된 그 어떤 서비스가 필요하면 네이버로 가서 검색하는 게 아니라 미소를 먼저 실행하고 마치 홈서비스를 위한 검색 엔진처럼 사용하게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미소는 홈서비스라는 버티컬에서 네이버의 왕관을 뺏기 위한 전쟁을 하고 있다.

숨고도 마찬가지다. 살면서 “어떡하지?” 상황이 발생하면 네이버로 가서 검색하는 게 아니라 숨고를 마치 검색 엔진처럼 가장 처음 사용하게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숨고는 국민 생활 솔루션이라는 다소 큰 버티컬에서 네이버의 왕관을 뺏기 위한 전쟁을 하고 있다.

엄청 힘들고, 돈과 시간이 아주 많이 필요해서,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시도하다가 망할 것이다. 하지만, 성공하면 10년 넘게 시장을 독점 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플랫폼 스타트업은 네이버의 왕관을 뺏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감동을 주는 서비스

내가 마지막으로 비행기를 타고 출장을 갔던 게 2020년 2월이니, 아주 오래된 2년 반 전이다. 이후에 코로나가 창궐하면서, 한 번도 한국 밖으로 나가지 못했고, 요샌 별로 나가고 싶지 않아서 웬만하면 출장을 자제하고 있었다. PCR 검사도 고통스럽지만, 이전에는 꼭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야지만 일이 진행되는 줄 알았는데, 2년 넘게 그냥 전화, 이메일, 그리고 필요하면 화상 미팅으로 일해 보니, 사람을 꼭 만나야지만 되는 일은 없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다. 물론, 직접 만나면 당연히 더 좋고, “역시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야!”라는 말을 연발하지만, 이렇게 안 해도 특별히 일이 잘 안 풀리진 않았다.

오랜 출장 공백을 깨고, 9월에 미국에 갈 일이 생겼다. 마침, 추석도 껴있는 기간이라서, 출장 전에 오랜만에 미국에서 며칠 쉬려고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예약했고, 대한항공으로 비행기표까지 예매해놨다. 항공권 가격은 거의 두 배가 됐고, 에어비앤비 숙소도 상당히 많이 올랐지만, 오랜만에 겸사겸사 미국에 갈 생각을 하니까 꽤 기대됐다. 그런데, 며칠 후에 미국 출장에서 참석하려고 했던 행사가 다시 심해지고 있는 코로나 때문에 취소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와이프랑 상의 후에, 그냥 미국 일정을 완전히 취소하기로 했고, 일단 에어비앤비를 취소하기로 했다. 에어비앤비는 숙소마다 주인에 따라서 취소/환불 정책이 다르다. 어떤 숙소는 며칠 전에 취소하면 전액 환불 받을 수 있지만, 어떤 숙소는 일부밖에 환불받을 수 없고, 안타깝게도 우리가 예약했던 집은 50% 부분 환불만 해주는 정책이었다. 집을 통째로 빌리는거라서, 비용이 적지가 않았는데, 예약한 지 2주도 안 됐고, 그 집에 아예 들어가지도 않을 건데 숙박비의 절반을 내야 하는 게 좀 불공평한 것 같아서, 집주인과 잘 소통해서 전액 환불해주겠다는 승낙을 받았다.

그런데, 실제 환불 받는 건 생각보다 쉽진 않았다. 일단 주인의 동의를 받아도, 에어비앤비 CS 쪽과 이야기해야 했고, 우리가 전체 숙박비의 절반만 선불해 놓은 경우라서, 조금 복잡도가 높은 환불 사례였다. 이런 비슷한 작업을 한국과 미국에서 수없이 해본 경험자로서, 이번 건을 제대로 처리하려면 굉장히 많은 통화와 설명이 필요하겠다는 각오를 하고 에어비앤비 FAQ를 읽으면서 하나씩 처리했는데, 내 기우와는 달리 환불 절차의 90%는 에어비앤비 시스템으로 비대면 처리가 가능했다.

나도 우리 투자사 대표들에게 CS를 전화나 카톡으로 다 처리하지 말고, 되도록 아주 종합적인 FAQ 리스트를 만들어보라고 권장하는데, 에어비앤비의 FAQ 리스트와 문제를 해결하는 내부 시스템은 입이 쩍 벌어질 수준으로 잘 만들어 놨다. 낯선 사람이 낯선 사람의 집에서 잘 때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문제점에 대한 내용과 해결책이 아주 상세하게 나열되어 있고, 누구의 도움도 없이 회사의 내부 시스템을 통해서 이런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절차가 상세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마지막엔 에어비앤비 CS 쪽에 전화해서 최종 100% 환불 처리를 해야 했는데, CS 담당자 또한 상당히 경험이 많고 숙련도가 높았다.

100% 환불 처리를 한 후에, 나는 에어비앤비의 찐팬이 됐다. 오래된 서비스이고, 많은 투자를 받은 상장 회사이고, 그동안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었기 때문에 이런 좋은 플랫폼으로 성장했겠지만, 그렇지 못한 허접한 서비스도 이 세상엔 너무나 많다. 모든 창업가라면, 에어비앤비와 같이 고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 앞으로 나는 숙소 예약할 때 호텔이 아니면 무조건 에어비앤비를 이용할 것이다.

이후에 대한항공을 통해서 항공권을 취소했다. 대한항공도 과거보다는 많이 좋아졌지만, 에어비앤비에 비하면 내부 시스템이나 CS 담당자들의 수준은 아직은 멀었다는 느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