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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의 가치

우리가 올해 투자한 회사 중 유아동복을 리세일(=중고위탁판매)하는 코너마켓이라는 스타트업이 있다. 미국에서는 엄청 커진 thredUP과 유사한 비즈니스다. 얼마 전에 코너마켓 새로 이사한 사무실에 갔다가 개인적으로 생각난 점이 있어서 몇 자 적어본다.

이 회사 김준모 대표님을 처음 만난 건 한 2년 전이다. 내가 벤처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는 프라이머에 지원했고, 그때 비즈니스는 자전거 관련 사업이었는데, 잘 안 될 것 같았고, 그냥 하다가 포기할 줄 알았다. 그런데 프라이머 그다음 배치에 다시 지원했다. 그게 코너마켓 모델이었는데, 이 비즈니스가 좋았다기 보단 포기하지 않고 계속 사업을 하고 있고, 프라이머 탈락했지만 다시 지원해준 게 고맙기도 해서 또 인터뷰를 했다. 나는 미국의 thredUP 이라는 비즈니스를 알고 있었고, 이 시장이 한국도 엄청 클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직 이 팀은 준비가 되지 않은 거 같았고, 과연 이 비즈니스를 제대로 시작할 수 있는 온라인/오프라인 실행력이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비즈니스는 좋고, 시장도 좋고, 타이밍도 좋은데, 조금만 더 지켜보자라는 결정을 내렸고, 일단 프라이머 두 번째 도전도 탈락시켰다. 그런데 그다음 배치에 다시 지원했고, 이번에는 코너마켓 모델을 꽤 날카롭게 다듬었고, 긍정적인 초기 시장 피드백을 갖고 왔다. 프라이머 권도균 대표님과 이기하 파트너님과 그때 아마도 내부적으로 “비즈니스는 실력보단 의지가 중요한데, 이 팀의 의지는 좋은 거 같다. 그리고 3번씩 프라이머 지원했으면, 우리가 도와줘야 하는 게 아니냐”라는 이야기를 했던 거 같고 이번에는 선발했다.

그리고 나랑 한 3개월 정도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비즈니스도 다듬고, 여러 가지 기초 작업하는 걸 옆에서 나는 조금 도와줬다. 실은 이게 앞단에서 보면 이커머스지만, 뒷 단에서 보면 노가다가 많이 들어가는 사업이다. 옷을 수거해야 하고, 수거한 옷을 정리하고, 사이트에 올리고, 판매될 때마다 또 배송해야 하기 때문에, 전형적인 물류, unit economics와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힘든 비즈니스라서, 돈 없는 작은 스타트업이 하기에는 참 어렵다는 걸 이 비즈니스를 옆에서 보면서 나도 매일같이 느꼈다. 그래도 조금씩, 계속 발전이 있었다. 외형적인 매출도 조금씩 증가했지만, founder들이 비용과 물류에 대한 감을 조금씩 잡아갔고, 아주 작은 operation이었지만, 나름대로의 공식을 찾기 위해서 계속 실험하는 모습은 꽤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우리가 이 회사에 투자를 해야겠다고 결정한 계기는, 수거한 옷이 증가하면서, 작은 창고로 사용할 수 있는 새로 이사한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였던 거 같다. 중랑구 중화동, 1층에 닭강정집이 있고, 3층에 과격한 순복음 교회가 있는 허름한 건물의 4층이었다. 작은 공간이었지만, 물류 과정을 최적화하기 위해서 나름 배치를 잘했고, 두 분의 남매 코파운더가 진흙탕에서(영어로는 shithole이라고도 한다) 구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몸으로 체험하면서 모든 걸 배워가고 있었다. 그때 나는 이런 프로세스를 자동화하고 더 크게 확장하면 어떤 모습이 될지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그림을 그렸고, 얼마 후에 스트롱에서 조금 투자를 했다.

이후 처리해야 할 물량이 커지면서, 다시 한번 회사는 이사를 갔다. 돈을 아끼면서, 사람도 채용하고, 배송도 고려해서 경기도 남양주의 창고형 사무실로 이사 갔는데, 얼마 전에 내가 방문해서 찍은 사진 몇 개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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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창고에 들어가자마자 많이 놀랐다. 이젠 제법 옷이 많아져서 그럴듯한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사진 2019. 3. 6. 오후 8 02 43

사진 2019. 3. 6. 오후 8 03 40

그리고 원래는 단층이었던 창고를 김준모 대표가 직접 설계해서 – 과거에 설계를 좀 했었다 – 복층으로 만들었는데, 이 또한 운영의 최적화를 고려한 설계였다.

아직 갈 길이 너무너무 멀긴 하다. 앞으로 투자도 더 받아야 하고, 매출도 더 커져야 하고, 좋은 사람도 많이 채용해야 한다. 그래도 쉽지 않은 사업이다. 하지만, 누가 이미 만들어 놓은 회사에 들어가서, 이미 오랜 세월 동안 하던 일을 배운 팀이 아니고,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치열하게 경험하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스스로 직접 만들었기 때문에 나는 앞으로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좋다. 말 잘하는 사람도 멋있고, 말이 창출하는 가치가 있지만, 행동이 만드는 가치는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정말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외부 의존도가 100% 이면

요새 카카오와 타다/쏘카가 택시 조합과 정부와 싸우는 걸 보면서 정말 한국은 필요 이상의 규제가 너무 많다는 느낌을 받는다. 규제와 싸우는 것만이 최고의 방법은 아니지만, 나는 타다가 끝까지 버티면서 싸워주길 개인적으로는 내심 바라고 있다. 모빌리티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닌데, 이 분야 말고도 정부의 규제가 스타트업의 발목을 묶는 분야는 상당히 많다. 규제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미 이 분야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하고 있는 기존 플레이어가 존재하는 분야가 대부분이다. 이걸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하겠지만, 나는 정부의 규제가 소비자를 보호하기보단, 그냥 기존 플레이어들을 – 주로 대기업 또는 대량의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단체 – 보호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생각을 요새 더욱더 하고 있다.

규제가 심한 산업에서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에게는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다. 돈도 없고, 사람도 없고, 힘도 없는 스타트업은 더 큰 기존 플레이어와 경쟁하는 것도 벅찬데, 여기에 규제까지 골리앗을 돕는다면 작은 회사는 생존의 위협마저 느낄 것이다. 한 1년 전에 이런 규제 때문에 발목이 묶인 산업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대표를 만난 적이 있다. 좋은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지만, 사업을 너무 이상적으로 바라본다는 느낌을 계속 받았고, “정부에서 이것만 해주면…” 이라는 말을 계속했다. 대기업을 보호하고 자기 사업을 가로막는 규제를 정부 부처에서 곧 없앨 것이라는 발표를 했기 때문에, 규제가 없어지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고, 이렇게 되면 오랫동안 준비한 사업이 커져서 대박 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내가 이 분과 조금 더 이야기해보니, 정부에서 이와 비슷한 발표를 한 건 맞지만, “규제 완화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라고 말 한 거지 당장 규제를 없애겠다고 말한 건 아니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그 이후에는 실제로 스타트업한테 유리하게 규제를 완화하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거센 반대에 부딪혀서 1년이 넘은 이 시점에도 이분은 제대로 사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계속 정부가 이것만 해주면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라고 자신을 위안하고, 직원들을 설득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이분이 바라는 대로 정부가 규제를 곧 완화할까? 1년 동안 아무 변화가 없었는데, 앞으로 과연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그런데 운이 좋아서 정말로 규제가 완화됐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이분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정말로 사업이 대박날까? 실은, 그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안 그래도 불확실성 투성이인 벤처인데, 그리고 이런 불확실성을 되도록 최소화하는 게 사업의 목적 중 하나인데, 회사의 존재 자체를 내가 기본적으로 전혀 컨트롤 할 수 없는 남한테 의존해서 잘 된 사례를 나는 본 적이 없다. 그것도 그 ‘남’이 정부일 경우에는 더욱더 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가끔 회사들을 만나면 “앞으로 어떤 굵직한 일이 외부에서 발생하면, 회사가 크게 성공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하는데, 여기에 대한 답변인 “만약에 이게 되면, 사업이 잘될 것이다”에서 그 일이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내부적으로 전혀 컨트롤 할 수 없는 일이고, 그냥 잘 될 거라는 현실성이 부족한 희망이 만든 환상이라면,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상현실의 현주소와 미래

요새 ‘VR’이라는 말을 하면 마치 석기시대 이야기를 하는 것 처럼 들릴 정도로, VR에 대한 관심이 줄었다. 2014년도에 Facebook이 오큘러스를 거액에 인수했을 때는 곧 세상이 가상현실화될 것처럼 모든 투자자가 VR 회사를 검토하고 하나 정도는 투자했고, 많은 창업가가 VR이 미래라면서 가상현실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실은 이게 오래된 것도 아니고 5년 전 이야기인데, 이후 관심도가 급격히 줄면서, 최근 2년 동안 나는 VR 회사에 대한 피칭 자료는 거의 못 봤고, 이 분야에서 새로 창업한 팀도 많이 못 만나본 거 같다. VR과 엔터테인먼트와는 밀접한 관계가 있기에, 우리는 LA에 있으면서 VR의 파도를 몸소 체감할 수 있었고, 우리도 이 분야의 상당히 많은 회사를 봤고, 4개에 투자했다. 콘텐츠를 만드는 Penrose Studios, VR 기반의 의료수술을 스트리밍해 주는 GIBLIB, 그리고 나머지 두 개는 게임 회사였는데, 한 개는 망했고, 한 개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VR 시장에 대해서는 부정보다는 긍정적인 관점을 갖고 언젠가는 시장이 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요새도 누군가 VR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면, 관심을 두고 본다. 물론, 이 관심은 VR에 대한 궁극적인 믿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행이 아니라서 남이 관심 두지 않는 분야에 우리만 투자한다는 우리 철학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과연 VR 시장이 올까? 온다면 언제 올까? 이 질문은 아마도 모든 VC가 하는, 정답이 없는 질문이기도 하다. 2015년 8월에 내가 이 포스팅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스마트폰이 그랬듯이 앞으로는 – 그리고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 가상현실이 대중적인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물론, 그때가 되면 기기 자체도 지금같이 투박하지 않고 상당히 진화되었을 것이다.
내가 맞을까? 시간만이 알려줄 것이다. 5년 뒤에 이 블로그 포스팅을 재방문해 봐야겠다.”

5년 뒤가 되려면 아직 1년 6개월이 남았지만, 지금 속도와 분위기로는 가상현실이 현실화되긴 힘들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인데, 여기서 내가 그동안 듣고, 읽고, 경험하고, 느낀 점을 간단히 정리해본다.

내 지인 중 VR 기기를 모으는 분이 있다. 이 사람보다 VR 시장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많을지 몰라도, 이 사람보다 VR 기기를 더 많이 사용해 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분한테 VR에 관해서 물어보면, 다음과 같은 웃긴 말을 한다. “VR 기기를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많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한 번 이상 사용해 본 사람도 거의 없다.” 무슨 말이냐 하면, 그만큼 VR 기기를 세팅하고, 가상현실을 체험하는 그 과정 자체가 너무 고통스럽고 거추장스럽다는 의미이다. 기기가 너무 많고, 대부분 유선 제품이라서, 일단 기기들을 연동하고 세팅하려면, 세팅만을 위한 마음가짐과 다짐이 필요하다. 그리고 작은 아파트나 원룸에 살고 있다면, 공간도 많이 차지하고, 미관상 좋지 않기 때문에, 계속 연결해놓지 못하고 사용 후에는 다시 정리해놔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특히 다양한 HMD가 본체와의 호환성이 매우 떨어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러 VR 기기를 사용하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고, 귀찮음, 그리고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이 불편한 과정이 이 글에 잘 정리되어 있다. 여기서 이 현상을 “VR은 destination(최종 목적지)”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그냥 일상생활에서 우연히 VR을 쉽게 경험하는 게 아니라, VR이라는 최종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VR을 의식적으로 선택해야 하며,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아주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만 이 최종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 이 관점에서 VR을 스마트폰과 비교해보면, 스마트폰은 그 자체가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다른 목적지로 가는 동안에 항상 손쉽게 경험할 수 있는 “accompaniment(동행)”라고 표현한다. 이 destination과 accompaniment를 조금 더 풀어 설명해보면 다음과 같다. 누구나 다 하루에 24시간이 주어진다. 8시간은 침대에서, 8시간은 직장에서, 그리고 한 2~3시간은 삶과 직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처리하는데 보낸다고 하면,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은 5~6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는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최대한 생산적으로 활용해야 하는데, VR은 이 소중한 시간을 희생해야 하는 의식적인 행위인 destination이자, 레알 현실에서 벗어나야만 하는 가상 현실이지만, 스마트폰 대부분의 앱은 이 현실에서 다른 일을 하면서 동시에 편안하게 할 수 있는 행위인 accompaniment이다. 그리고 스마트폰은 잠잘 때는 못 하지만,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에도 하던 일을 굳이 멈추지 않고도, 상당히 많이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에 근무 시간 중에 VR을 굳이 하려면, 하던 일을 멈추고, 기기를 세팅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나는 VR에 대해서는 낙관적이다. 우리는 항상 기술이 가져올 수 있는 단기간 내의 혁신은 과대평가하지만, 장기간 내의 혁신은 과소평가하는 성향이 있는데 VR도 이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VR이 대중화되기 위한 인프라가 깔려야 하고, 하드웨어가 더 작고 편리해져야 한다. 소프트웨어와 콘텐츠는 그 다음 이야기고, 인프라와 하드웨어가 대중화되면 훨씬 더 쉽게 풀릴 수 있다.

Security Token 가이드

작년과 비교하면 확연하게 줄었지만, 요새도 코인과 토큰 발행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팀이 있다. 시장이 워낙 죽었고, 앞으로 암호화폐가 어떻게 규제될지 모르기 때문에, 다들 펀드레이징에 대한 고민도 많고, 비즈니스 방향에 대한 고민도 많고, 하여튼 골치가 아주 아플 것이다. 그래도 이 시장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믿고, 토큰 이코노미를 만들려고 한다면, 만들려고 하는 토큰이 security 토큰이 되지 않게 설계해야 할 것이다. 토큰이 증권(security)으로 분류되는 순간부터 증권법의 적용을 받게 되는데, 이러면 법의 규제를 받는 거래소에서만 거래될 수 있고, 특정 대상에게만 판매해야 하고, 토큰과 프로젝트에 대한 많은 정보를 공개하고 공시해야 한다. 실은, 증권에 적용되는 증권거래법은 암호화폐와 같은 오픈소스 프로젝트에는 말이 안되기 때문에, 가능하면 토큰을 설계할 때는 security token의 성격이 없게 해야 한다.

그럼 security 토큰의 성격은 어떤게 있을까? 여기서부터 상당히 모호해지고, 관련해서 다양한 논의가 현재 진행되는 거로 알고 있는데, 얼마 전에 Blockchain Association에서 이에 대한 꽤 명쾌한 글을 하나 올렸다. 일단 지금까지 공개된 내용에 의하면,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가 제시하는 프레임은, 어떤 토큰이나 그 네트워크가 비트코인 또는 이더리움보다 더 탈중앙화되어 있으면, 충분히 탈중앙화되어 있기 때문에 시큐리티 토큰으로 분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2018년 6월 14일, SEC의 기업금융국장 William Hinman에 의하면). 계속 법이 새로 만들어지고, 이에 따른 규제도 새로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 내용이 또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지만, 일단 현재로서는 내가 토큰을 설계하려고 하면, 스스로 물어볼 질문은, “이 토큰은 충분히 탈중앙화되어 있나?” 이다. 이 토큰의 네트워크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네트워크만큼 탈중앙화되어 있으면, 이 토큰은 ST로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증권법의 적용대상에서는 제외된다. 이 토큰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보다 덜 탈중앙화 되어 있으면(=더 중앙화), ST로 구분될 확률이 높다.

아직 한국은 이런 논의 자체도 없고, 규제를 만드는 분들이 중앙화/탈중앙화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지도 미지수이지만, 아마도 미국을 따라가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되면, 한국에서도 새로운 토큰을 만들면, 정부에서는 이 토큰의 탈중앙화 정도를 판단할 것이고,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만큼 탈중앙화되어 있으면, ST로 분류하지 않을 것이고, 반대로, 중앙화되어 있다고 판단되면, ST로 분류할 것이다.

여기서 미국 증권거래법이 생겨난 배경을 잠깐 설명하면 좋을 거 같다(미국증권거래법 설명은 위키피디아 참고). 증권을 발행하는 측과 증권에 투자해서 이익을 보려는 투자자 간의 정보의 비대칭을 해결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게 증권거래법이다. 내가 주주인 나이키의 예를 들어보자. 나이키의 창업자인 필나이트 회장과 마크파커 대표이사는 나이키에 대한 정보를 나 같은 투자자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다. 우리가 전혀 모르는 내부 정보를 다 알기 때문에 이들이 원한다면, 이런 내부정보를 기반으로 부당하게 나이키 주식 거래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나이키 회사의 미래와 실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이들이 나쁜 마음을 먹으면, 본인의 이익을 위해서 주가를 조작할 수 있다. 즉, 나이키와 투자자 간의 네트워크는 나이키라는 회사와 그 회사의 내부자를 중심으로 중앙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나이키의 주식은 증권거래법의 적용을 받고, 나이키는 해마다 큰 비용을 지급하면서 회사의 많은 정보를 직접 또는 중개인을 통해서 공시해야 한다. 또한, 나이키 주식은 법의 규제를 받는 증권거래소에서만 사고팔 수 있다.

이와 반대로, 금의 예를 들어보자. 금의 가격과 정보는 상당히 탈중앙화되어 있다. 모든 사람이 금에 대한 시장 정보를 거의 비슷한 수준에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위의 나이키의 예와 같이 특정인이 금의 가격을 조작하는 게 쉽지 않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도 비슷하게 탈중앙화되어 있다 – 물론, pump and dump와 같은 위험은 존재한다.

즉, 새로 만드는 토큰 네트워크가 소수의 내부자한테 의존하고, 이들이 조종 가능하다면, 이 네트워크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보다 덜 탈중앙화(=더 중앙화)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그러면, 이 토큰은 security 토큰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고, 증권거래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 오픈소스 프로젝트라도 법으로 요구되는 많은 정보를 공시해야 하며,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특정 거래소에서만 거래되어야 할 것이다.

이 ‘탈중앙화 정도’에 대한 정량적 내용은 아직 없지만, Blockchain Association에서 Hinman 가이드에 대한 꽤 자세한 기능적 분석을 도표로 정리하긴 했다. 물론, 이 내용은 계속 논의되면서 수정될 것이다.

Raw 데이터와 정보

머신러닝이라는 말을 우리는 남발하는 거 같다. 워낙 핫 한 단어이고, 마치 ML 기술이 없으면, 시대에 뒤떨어지는 거 같아서, 데이터를 조금이라도 활용하는 비즈니스의 대표들은 모두 ML을 잘 활용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현실은 이와 반대이다. 공개된 데이터와 비공개된 데이터는 넘쳐흐르지만, 이 raw 데이터를 유용한 information으로 전환해주는 머신러닝을 제대로 활용하는 회사는 거의 없는 거 같다.

주말에 스탠포드 대학에서 진행한 연구에 대한 기사를 읽었는데, 기술을 데이터에 적용해서,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되는 바람직한 정보를 생성한 사례인 거 같아서 잠깐 소개한다. 어느 지역에 사는 어떤 미국인들이 왜 지붕에 태양열 패널을 설치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국가의 전력 시스템을 더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 재생 에너지 사용을 저해하는 요소를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 이 정보는 정확도가 떨어지는 추정치밖에 없었다.

더 정확한 접근을 하기 위해서, 스탠포드 대학 과학자들이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이용해서 10억 개가 넘는 고화질 위성 이미지를 분석해서, 미국 48개 주에 설치된 솔라패널을 거의 모두 확인해봤다. DeepSolar라는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위해서, 프로젝트 멤버들은 일단 태양전지판의 유무가 라벨링 된 37만 개의 이미지 세트로 기계를 학습시켰고, 이 과정을 통해서 색깔, 크기, 질감과 같은 솔라패널의 특징을 기계가 확인하고 지적해낼 수 있었다. 이런 학습을 통해서 DeepSolar는 10억 개가 넘는 위성 이미지의 태양 전지판 유무를 93%의 정확도로 판단할 수 있게 됐다. 과거의 기술로는 수년이 걸렸을 텐데, 딥솔라는 한 달 만에 미국 전역에 설치된 약 147만 개의 태양 전지판을 발견했다. 연구원들이 여기에 미국통계국의 다양한 데이터를 접목해보니, 상당히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과거에는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일수록 태양 전지판 도입을 많이 하는 거로 알려졌었고, 이게 어느 정도까지는 맞지만, 그 소득 수준이 연봉 $150,000 이상을 넘어가면 소득 수준과 태양 전지판 도입 결정에는 큰 상관관계가 없는 거로 밝혀졌다. 실은, 저소득 지역이야말로 – 특히, 일조량이 많지만, 전기세가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 – 태양 전지판을 설치하면, 전기세를 절감할 수 있지만, 이 지역 주민도 이 사실을 모르고, 정책을 만드는 사람도 이걸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물론, 저소득 지역이 태양전지판 도입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높은 설치비용 때문이라고 예상되지만, 사실 전기세 절감 효과가 설치 비용보다 훨씬 더 크다. 이런 데이터를 기반으로 태양 전지판 업체들은 효과적인 대출이나 리싱 프로그램을 새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다른 건, 동네의 태양 전지판이 특정 임계치를 넘어서면, 그 동네 모든 사람이 태양 전지판을 설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건 어떻게 보면 자연스럽지만, 이 동네의 소득수준 편차가 심하면, 태양 전지판 확산이 굉장치 더디다는 사실 또한 알아낼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데이터를 계속 분석해보면, 태양 전지판 설치를 가속하기 위한 일조량, 소득수준의 편차, 설치의 임계치 등과 같은 지수를 더욱 고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구를 진행한 스탠포드 대학교수들은 연구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며, 이를 또 다른 기관이나 개인들이 활용해서, 더 많은 태양 전지판 관련 패턴을 발견하길 바라고 있다. 궁극적으로 이를 통해서 전기가스업체가 전기의 수요와 공급을 더 효율적으로 조절하고, 정부의 규제기관 또한 더 정확한 에너지 관련 법안과 정책을 만들고, 미국이 더 탄탄한 경제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우리 모두 ‘raw 데이터’가 중요한 건 잘 알고 있다. 특히 많은 VC가 특정 비즈니스를 검토할 때, 실제 그 비즈니스보단, 이 비즈니스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얻을 수 있는 데이터가 얼마나 가치가 있냐에 따라서 투자 결정을 하는 경우도 많을 정도로 데이터는 중요하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raw 데이터가 중요한 이유는, 이 데이터를 잘 분석해서 특정 패턴을 찾을 수 있다면,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유용한 결정을 하기 위한 ‘정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보를 만들지 못하면, 세상의 모든 데이터가 있어도 소용없다.

그런데 너무 많은 회사가 이 방대한 데이터를 강조하고, 정보에 대한 언급은 전혀 하지 않는 걸 많이 경험했다. 그래서 나는 머신러닝 알고리즘 자체를 강조하기 보단 – 물론, 획기적인 알고리즘만 개발하는 좋은 회사도 있지만 – 어떤 데이터가 들어가서, 이 데이터가 어떤 정보가 되어서 나오는지를 강조하고, 그런 정보를 어떤 방식으로 만들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팀이 실생활에 유용한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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