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런왕들

유명한 펀드 앤드리슨호로위츠의 파트너 Chris Dixon은 ‘베이브루스 효과’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야구를 좋아하지 않아도 1920년대의 전설적인 타자 베이브루스를 모르는 분은 없을 텐데, 이 선수의 특징은 삼진아웃도 많이 됐지만, 일단 배트에 공이 맞으면 엄청난 장타를 쳤다. 실은 전설적인 VC들과 전설적인 타자 베이브루스는 공통점이 많다. VC들도 많은 투자를 하는데, 대부분 망하지만, 소수의 회사가 대박 나서 전체 펀드를 만회해주고, 상당한 수익도 챙길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유명한 VC들의 역사를 보면, 삼진 아웃도 많이 되지만, 만루홈런을 치는 경우를 많이 본다.

CB Insights에서 역사상 가장 큰 홈런 28개를 분석해봤는데, 꽤 길지만 재미있다. 시간 되면 모두 읽어보길 권장한다. 이 중 내 눈길을 끌었던 홈런 2개가 있는데, WhatsApp과 한국의 넥슨이다.

WhatsApp은 2014년 Facebook이 약 25조 원에 인수했는데, 이는 역사상 가장 큰 비상장 회사의 exit이다. 총 650억 원 정도의 투자를 유치했는데, 놀랍게도 Sequoia Capital한테만 투자를 받았다. 스타트업이 성장하면서 주로 여러 명의 VC로부터 투자 받는 게 더 흔하지만, 왓츠앱의 경우, Sequoia로부터 시리즈 A 85억 원, 시리즈 B 565억 원을 모두 받았다. 그만큼 세쿼이아는 왓츠앱을 믿었고, 왓츠앱도 세쿼이아를 믿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반대로, 또 다른 홈런 딜인 트위터도 같이 총 650억 원의 투자를 받았지만, 15명 이상의 VC로부터 이 돈을 모았다. 결국, 페이스북이 왓츠앱을 인수했을 때 세쿼이아는 투자금액의 50배인 3조 원 이상을 회수했다.

넥슨의 이야기도 참으로 흥미롭다. 2011년도 일본에서 약 8조 원의, 당시로써는 가장 성공적인 게임회사 IPO를 했다. 넥슨의 알려진 투자사는 소프트뱅크코리아와 Insight Venture Partners밖에 없고, 투자 금액은 아직도 공개된 건 없지만 그렇게 크진 않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실은 넥슨이 상장했던 시점에 IPO를 한 또 다른 게임업체가 있었는데, 넥슨의 라이벌이라고 간주하였던 Zynga도 나스닥에 약 8조 원에 상장했다. 징가가 미국 회사이고, 당시 예상 시가총액이 더 높았기 때문에, 세계적인 관심은 넥슨보다는 징가의 IPO에 주목되었는데, IPO 이후에는 그 관심이 뒤바뀌었다. 상장 이후 넥슨의 주가는 230% 이상 올랐지만, 징가는 60% 정도 떨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넥슨이 훨씬 더 적게 투자를 받았지만, 투자자들의 수익률은 징가보다 훨씬 더 높은 홈런 딜 이였다.

이런 홈런을 VC들은 ‘fund maker’라고도 하는데, 말 그대로 회사 하나가 전체 펀드를 만회해준다는 의미에서 나왔다. 우리 첫 번째 펀드의 fund maker이자 홈런은 코빗이었는데, 앞으로 스트롱도 이런 만루홈런을 계속 칠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하나의 만루홈런을 치기 전에는 엄청나게 많은 삼진아웃을 당할 각오는 항상 하고 있다.

허락된 실패

나는 2000년도 초반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스트롱벤처스를 시작하기 전에 4개의 다른 회사에서 근무했고, 이 회사에서 좋은 상사들과 함께 일한걸 자랑스럽고 고맙게 생각한다. 인성도 모두 좋은 분들이었지만, 내가 가장 감사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모두 ‘말’과 ‘생각’ 보다는 ‘실행’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고, 이 부분을 부하/동료직원들한테 많이 강조했다는 점이다.

실은, 벤처기업이나 대기업이나 미래는 모두 불투명하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여러 가지 가설을 세운 후, 일단 해보는 게 중요한데, 이런 점은 익숙한 일에도 적용된다. 일을 더 잘 하는 사람은, 아무리 수십 년 동안 같은 방식으로 해오던 일이라도, 항상 더 빠르고, 더 싸고, 더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연구하기 때문에, 이 또한 여러 가지 가설을 세우고 일단 해보는 게 중요하다. 이런 이유로 회사가 발전하려면, 다양한 시도를 해봐야 하고, 이러한 시도를 해보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많은 실패를 할 수밖에 없다. 실은 웬만한 회사의 임원들은 “실패를 많이 해야지 더 빨리 배울 수 있다”라는 말을 입에는 달고 살지만, 실제 행동은 이와는 반대로 한다. 누군가 실수를 하면, 이게 자기가 담당하는 부서의 실적에 악영향을 미치진 않을까, 승진이 늦어지지 않을까 등의 걱정을 먼저 하면서 실수를 응징한다. 그리고 그냥 하던 대로 하고, 발전은 없어도 되니까, 그냥 실수나 하지 않게 적당히 벌리면서 일하라는 말을 많이 한다.

나는 실리콘밸리의 보안/인증 스타트업 ValiCert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오래전에 다른 회사에 인수됐는데, 내가 조인하기 몇 개월 전에 IPO를 했고, 아직 1차 벤처 거품이 터지기 전이어서 분위기가 엄청 좋은 회사였다. 입사 첫 주에 내 보스가 나한테 다음과 같은 말을 해줬다. “Kihong.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그냥 내 허락이나 지시를 기다리지 말고, 그냥 해봐. 그게 뭐든지 상관없으니까. 해서 잘 안돼도 상관없어. 대신, 같은 실수는 하지 말도록. I give you my permission to fail.”

Permission to fail. 실패 허가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데, 실은 당시에 나는 이 말의 정확한 뜻을 몰랐다. 성공해도 모자랄 판에 보스라는 녀석이 실패를 권장하는 거 같아서 기분이 이상했다. 하지만, 이젠 이 말이 얼마나 파워풀한지,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는 매니저들이 그렇지 않은 매니저에 비교해서 얼마나 월등하게 일을 잘 하는지 매일 느끼고 있다. 실은 한국에서는 대기업이든 스타트업이든, 부하직원들한테 이 permission to fail을 주는 사람이 별로 없다. 입으로는 다 실패는 좋고, 실패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말을 번드르르하게 하지만, 막상 실패하면 엄청난 손가락질과 비난을 한다.

하지만 가끔 정말로 실패를 허락하고, 더 나아가서는 실패를 권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 잘하는 보스들이 다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부하직원들한테 스스로의 매니저가 되라고 하고, 새로운 일을 시도해보고 싶으면 그냥 바로 해보라고 한다. 물론, 그렇게 해서 실패하면 보스가 다 책임을 지지만, 이렇게 실패를 허락받은 부하직원들도 그런 보스를 실망하게 하지 않기 위해 엄청 열심히 일해서 성공시킨다.

결과는 모두가 발전하고, 모두가 서로를 존중하고 책임의식이 강한 문화의 회사가 만들어진다.

꾸준함에 대해

스타트업 분야에 있으면 돈 이야기도 많이 하고, 많이 들린다. 그것도 수억 단위가 아니라 수조 단위의 돈 이야기를 많이 접하는데, 이런 이야기만 듣다 보면 인터넷 백만장자들은 아주 쉽게 돈을 벌고, 젊은 프로그래머가 회사를 팔아서 갑부가 되면, 하룻밤 만에 벼락부자가 된 줄 안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다. 그냥 장난같이 만든 게임이나 앱이 갑자기 바이럴하게 퍼져서, 정말 운 좋게 회사를 매각해서 큰돈 번 사례도 있지만, 실은 이런 경우는 정말 드물다. 나도 개인적으로 이런 사례는 모른다.

겉으로만 보면 벼락부자가 된 것 같지만, 이런 회사의 스토리를 자세히 파고 들어가 보면, 성공 뒤에는 창업팀의 끈기와 한 우물만 팠던 꾸준함이 있다. 오늘은 이런 이야기를 하나 해보려고 한다. Tech 분야에서 종사한다면 CB Insights라는 미디어/시장조사 기관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역사는 짧지만, 실력 있는 편집력과 기발한 마케팅 전략으로 8년 만에 테크계를 대표하는 시장조사/연구 기관이자 플랫폼으로 급부상했다. 유료 서비스는 가격이 좀 있어서 나는 그냥 무료 뉴스레터만 구독해서 읽지만, 무료 뉴스레터 내용도 quality가 정말 높다. CB Insights는 Anand Sanwal이 2008년도에 창업했고, 다우존스와 톰슨로이터스보다 더 통찰력 있는 양질의 데이터와 정보를 제공하면서, 벤처투자를 한 번도 받지 않고 10년 동안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다. 이 많은 걸 직원 15명이 처리하면서 연 매출 20억 ~ 50억 원 정도를 만들고 있다. 절대적인 매출 수치는 그렇게 놀랍진 않지만, 돈 벌기가 힘들다 못해 거의 불가능하다고 간주하는 콘텐츠와 미디어 분야에서는 상당히 놀랄만한 수치이다.

CB Insights의 무료 뉴스레터는 2010년 7월 처음 발송됐다. 첫 번째 뉴스레터는 489명의 구독자에게 발송됐다. 2013년 2월에 구독자 수는 10,000명으로 성장했는데, 9,500명의 신규 구독자를 확보하는데 2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릴 정도로 더디게 성장했다. 그런데 요새는 하루에 1,000명 이상이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현재 422,000명 이상이 CB Insights를 전세계에서 구독하고 있다. 실은 우리도 비석세스, 스타트업위클리, 그리고 더핀치라는, 미디어 콘텐츠 투자사가 있지만, 이 회사 대표들이 항상 고민하는 부분이 구독자 수 늘리기와 수익화이다. 한국에서는 온라인 미디어 플랫폼이 광고가 아닌, 본연의 콘텐츠로 돈을 버는 게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CB Insights는 어떻게 했을까?

CB Insight가 잘 한 게 여러 가지 있지만, 꾸준함이 가장 큰 성공 요소이다. 2010년 7월 첫 번째 뉴스레터가 나간 이후로, 한 번도 빠짐 없이 매주 6번 이상의 뉴스레터가 구독자들한테 발송되고 있다. “컴퓨터가 뻑 났어요” , “미팅이 너무 많아서 바빴어요.”와 같은 변명은 이 회사에 존재하지 않는다. CB Insights 팀원들이 가장 잘 하는 건, 제시간에 뉴스레터를 shipping 하는 건데, 이 뉴스레터는 지구가 망하기 전까지는 계속 꾸준하고 일관성 있게 발송될 것이다.

이 외에도 몇 가지 포인트가 있다. 일단 뉴스레터의 제목이 항상 참신하다. 그렇다고 자극적이진 않다. 객관적이지만 다른 뉴스레터와는 달리 재미있는데, 제목이 재미있으면, 뉴스레터를 읽을 확률이 상당히 올라간다. 또한, CB Insights 팀원들은 이 뉴스레터가 모두를 위한 내용도 아니고, 모두가 좋아할 만한 내용이 있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독자들이 특정 내용에 대해서 욕을 하는 것도 이들은 okay 다. 아주 좋아하거나, 아주 싫어하거나, 독자들이 이 두 개의 카테고리에 속하는 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무관심한 독자보다 좋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어쨌든, 기사의 내용 자체가 사실 기반이고, 유용하기 때문에 CB Insights는 사랑받고 있는데, 이런 양질의 내용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은 바로 ‘꾸준함’ 이다. 나도 항상 꾸준함을 강조하는데, 이 세상에서 꾸준함을 이길 수 있는 건 그 어떤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지역 스타트업 생태계 키우기

2017년 3월 2일 LA에 본사를 두고 있는 스냅챗이 상장했다. 이 글을 쓰는 2018년 4월 초 스냅챗의 시총은 상장 시점 대비 거의 반 토막 난 20조 원이지만, 1년 전 상장했을 때 시총은 무려 40조 원이었다. 이는 아직도 장난 같은 10대용 앱을 LA 지역에서 세 번째로 시총이 높은 상장회사로 단숨에 등극시켰다(1, 2위는 디즈니와 Amgen이다).

스냅챗의 IPO가 LA의 스타트업 생태계에 기여하는 바는 어마어마하고, 이제 1년이 조금 지난 시점에 그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고 있는걸 나는 직접 체감하고 있다. 가장 큰 효과는 LA 창업가들의 마인드와 태도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실은 LA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벤처경제권 중 하나이고, 그동안 많은 양질의 스타트업이 탄생했고, exit을 했다. 여기서 말하는 exit은 인수가 대부분이지만, IPO도 있었다. 하지만, 스냅챗 규모의 IPO는 이전에는 없었고, 대부분의 LA 창업가들은 그냥 적당히 회사를 키운 다음에 더 큰 회사에 수백억 ~ 수천억 원에 매각하는 걸 목표로 사업을 했다. 하지만 스냅챗 IPO가 이런 시장의 판을 바꿨다. LA에서도 이 정도 규모의 대형 IPO가 가능한 스타트업을 만드는 게 가능하다는 걸 스냅챗이 입증해준 셈이기 때문에, 이젠 많은 창업가가 더 큰 꿈과 비전을 갖고, 이왕 시작한 회사를 가능하면 대형 IPO 규모로 키울 생각으로 사업을 더 진지하게 한다. 나는 이게 엄청난 긍정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또 한가지 눈에 띄는 변화는 바로 캘리포니아공대(Caltech) 학생들의 창업이다. 사람마다 의견은 다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칼텍 학생들이 MIT나 스탠포드 보다 훨씬 똑똑하고 유능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들은 전통적으로 창업보다는 학업이나 연구에 더 관심이 많았다. 칼텍 졸업생들은 대부분 석사/박사 과정까지 하고, 이후에는 교수, 또는 NASA나 JPL(제트추진연구소)에 취직해서 인류의 미래를 위해 인생을 바치는 커리어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아는 유일한 칼텍 출신의 이름있는 창업가는 페이스북의 초대 CTO이자 Quora의 창업가 Adam D’Angelo인걸 보면 칼텍 출신은 창업을 많이 안 하는 게 맞는 거 같다. 그런데, 스냅챗 IPO 이후에는 칼텍 학생들도 창업에 조금 더 관심을 갖게 된 거 같다. 최근 들어 칼텍 출신 창업가를 좀 만났는데, 칼텍 졸업생은 다 연구하는데 왜 창업을 하게 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스냅챗을 보고 우리도 좀 재미있는걸 해보자는 생각으로 창업했다고 한다. 이건 LA한테는 축복과도 비슷한 좋은 징조이다. 물론, LA를 대표하는 대학인 UCLA와 USC는 스탠포드와 버클리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지만, 여기에 세계 최고의 공과대학인 칼텍이 합세하면 엄청난 인재들이 LA 창업 커뮤니티에 뛰어들게 되는 것이다.

스냅챗 IPO로 인해, 상당히 많은 백만장자의 탄생이 기대된다. 실은, 여기서 또 다른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되는데, 다른 산업과는 달리, 스타트업 분야에서는 사업으로 돈을 벌면 이 돈을 다른 곳에 쓰지 않고 다시 스타트업 분야에 재투자하는 걸 자주 본다. 주로 다른 스타트업에 개인 투자를 하거나, 후배양성을 위한 악셀러레이터나 VC 펀드를 설립해서 본인이 사업하면서 남들한테 받았던 도움을 다시 ‘갚는다’. 이런 사이클이 몇 번 돌아가다 보면 LA도 실리콘밸리와 같은 두터운 창업가와 투자자의 인프라가 형성될 것이다. 그리고, 스냅챗 IPO로 큰돈을 못 번 직원들도 작은 회사가 고속성장해서 IPO까지 가는 걸 경험했기 때문에, 이러한 경험과 배움을 다른 스타트업으로 그대로 가져가서 스냅챗과 같은 성공 케이스를 계속 만들 가능성이 크다. LA를 대표하는 Upfront Ventures의 마크 서스터 대표도 스냅챗의 개발자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그 이유는 언젠가는 이들이 회사를 나와서 새로운 회사를 창업할 것이고, 이는 또 다른 유니콘 회사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효과 때문만은 아니지만, 스냅챗 IPO의 영향이 이미 수치로 나오기 시작했다. 2017년도에만 LA에는 376개의 스타트업이 창업됐고, 여기에 5조 원 이상의 투자가 집행됐다. 지난 2년 동안 LA에는 17개의 새로운 VC 펀드가 만들어졌고, 현재 LA에는 15개의 유니콘 회사가 있다. 참고로, 2017년 수치는 없지만, 2016년도에 LA에서만 80개의 exit이 있었다.

실은,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얼마 전에 울산에 내려가서 울산 지역 창업 관련 담당자분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서울 외 지역에서의 창업, 투자, exit, 그리고 커뮤니티 만들기가 너무 어렵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지방과 다른 지역에서도 좋은 창업가들이 만든 좋은 회사들이 나와야 하는데, 모든 인재와 돈이 서울에 몰려있는 한국의 특성상, 이게 참 갈 길이 멀다는 걸 나도 울산에 갈 때마다 느낀다. 그래도, 같은 캘리포니아주에 있지만, 실리콘밸리보다 항상 과소 평가받고 무시당하던 LA 지역의 스타트업 커뮤니티가 스냅챗의 IPO로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잘 연구하고 벤치마킹하면 뭔가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시간이 오래 걸리고, 지역의 모든 구성원이 합심해서 노력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이지만, 꾸준한 관심과 자원을 투자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에도 매우 우호적인 LA의 시장 Eric Garcetti가 스냅챗의 IPO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LA tech 커뮤니티에 스냅챗의 IPO가 의미하는 바는 엄청납니다. 새로운 꿈을 꿀 힘을 주고, 더 많은 기회를 창출하고, 새로운 혁신을 도모할 힘을 줄 수 있습니다.”

한국의 지방/지역 커뮤니티에도 이런 움직임이 조금씩이라도 만들어지면 좋겠다.

자신을 바꿔라

책에서도 여러 번 읽었고, 나도 살면서 배운 건데, 이 세상에서 절대로 바꿀 수 없는 게 두 가지 있는 거 같다. 하나는 과거이고, 다른 하나는 남이다. 과거를 바꿀 수 없다는 건 잘 이해 갔지만, 남을 바꿀 수 없다는 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원하면 남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해본 경험이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생/비즈니스 경험이 더 쌓이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남을 마음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없고, 남을 내가 바꿀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절대로. 투자사 대표들이 뭔가 잘 못 하고 있다고 느낄 때, 과거에는 나는 이들을 어떻게든 설득해서, 내가 바르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끌고 오려는 노력을 엄청 했던 거 같다. “내가 보기에는 이렇게 하는 게 맞는데, 왜 저렇게 할까?” , “도대체 저 팀은 무슨 생각으로 이걸 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엄청 많이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지금도 경험이 턱없이 부족하지만, 처음 투자할 때는 우리가 투자한 회사의 대표들이 내가 생각하는 방향과 반대로 비즈니스를 하는 걸 보면서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던 거 같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걸 하나씩 다 바꾸려고 시도했다.

이야기도 하고, 밥도 먹고, 술도 사주면서 설득을 했지만, 결국 내가 원하는 결과를 한 번도 얻지 못 했던 거 같다. 결국엔 본인들이 생각하는 방향대로 비즈니스를 했고, 내 예상대로 잘 안 된 사례도 있었지만, 내 예상과는 완전히 반대로 굉장히 잘 된 사례도 많은 걸 보면 내가 맞기보다는 틀렸던 거 같다. 이렇게 하면서 나는 점점 내가 원하는 대로 남의 마음을 돌릴 수도 없고, 이들의 행동을 바꿀 수도 없다는 걸 배웠다.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하나 있었다. 바로 나 자신을 바꾸는 거였다. 나를 위해서 남을 바꾸는 건 불가능하지만, 남을 위해서 나를 바꾸는 건 가능하고 오히려 쉬웠다. 처음에는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지만, 이젠 시각을 이렇게 바꾸니까 더 편해지고, 더 긍정의 마인드를 갖게 되고, 실은 이로 인해서 모든 일의 결과도 좋아진다는 걸 경험하고 있다.

뭔가 마음에 안 든다면, 그 원인을 남한테 찾아서 그를 바꾸려고 하지 말고, 그냥 원인을 나한테서 찾고, 나를 바꾸려고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