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하면서 다른

사진 2018. 5. 15. 오후 1 27 43테이크아웃 커피를 주문하면, 열을 보존하고, 커피가 흐르지 않도록 일회용 컵 위에 플라스틱 리드(=뚜껑)를 끼워준다. 나는 최근 미국에 살았던 약 9년 동안 매일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시면서, 커피를 워낙 많이 흘려봐서 이 리드에 상당히 민감하다. 어떤 리드는 헐렁해서 조금이라도 컵이 출렁거리면 커피가 흘러나오고, 어떤 리드는 너무 타이트해서 잘 끼워지지 않는다. 종이컵과 리드의 교합이 조금이라도 잘 맞지 않으면, 커피가 스며 나와서 옷이나 차 안에 떨어지는데, 이게 여간 짜증 나는 게 아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스타벅스의 리드가 가장 훌륭하다. 외형도 튼튼하고, fit도 좋아서, 한 번에 끼울 수 있고, 끼운 후에는 웬만하면 커피가 흐르지 않아서 언제 어디서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다. 이와 반대로 한국 프랜차이즈 커피나 그냥 동네 커피숍은 거의 항상 컵과 리드 사이로 커피가 흐른다. 실은, 이게 어떤 사람들한테는 이슈가 아닐 수 있고, 어떤 이들은 이런 걸 알아차리지도 못 할 텐데, 내가 보기엔 디테일에 대한 세심한 관심의 차이고, 모든 고객이 나 같다면, 커피 가게의 생존과도 직결되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이다.

며칠 전에 우리 사무실 옆 동네 커피 가게에서 산 아메리카노를 마시는데, 커피가 새어 나와 새 바지 위에 흘렸는데, 이걸 보면서 – 물론, 엄청 짜증났다 – 창업가들이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직도 많은 창업가는 스스로 열심히 회의하고 고민하고, 전체 개발팀이 밤을 새워가면서 만든 제품을 론치 하면, 그 이후에는 돈만 써서 마케팅하면, 모든 게 해결되는 줄 알고 있다. 사용자 수가 증가하지 않고, 매출이 증가하지 않으면, 가장 큰 이유는 마케팅을 못 해서 아직 우리 제품을 남들이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시장에는 유사한 제품과 서비스가 많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투자를 많이 받고, 마케팅에 돈을 태워서,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고 많은 창업가가 주장한다.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위에서 말한 커피 리드의 경우와 같이, 겉으로 보면 다 똑같은 커피 리드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사용해보면 사용자가 느끼는 최종 사용자 경험은 하늘과 땅 차이다. 그리고 이런 하늘과 땅의 차이를 만드는 건 겉으로 대충 보면 절대로 발견할 수 없는 디테일이다. 이런 디테일은 수천 번의 시행착오 기반의 product iteration과 고객의 목소리에서 나온다.

누구나 자주 가는 단골 식당이 한두 개는 있을 것이다. 이 단골 식당에서 이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요리를 제공하진 않을 것이다.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냉면, 김치찌개, 짜장면이나 파스타 뭐 이런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일 텐데,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식당은 남들과 뭔가 다르고, 더 맛있게 요리하기 때문에 인기가 있다. 겉으로 보면 그냥 평범한, 서울에만 수 백 개가 있는 냉면집이지만, 다른 식당과는 다르고, 그래서 맛이 좋은 식당이 항상 돈을 잘 번다. 이와 반면에 똑같은 음식을 판매하지만, 어떤 식당들은 맛이 없어서 손님이 없다. 잘 되는 식당은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있어서 장사가 잘 되는 건 아니다.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많은 연구를 하고, 세심하게 디테일을 관찰하는 허름한 식당이 동네 상권을 일으키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너무 많은 창업가가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블루오션’을 찾으려고 한다. 그리고 남들이 이 분야로 들어오기 전에 빨리 뭔가를 해서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으려고 한다.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한다. 아무리 경쟁이 심하고, 겉으로 보면 포화된 시장이지만, 겉으로는 비슷하지만 뭔가 다른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 기회는 항상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큰 차이라기보단, 작은 차이가 이런 기회를 가져다주고, 이런 작은 차이는 팀의 비전, 확신, 그리고 실행력이 만드는 거 같다.

마찰력의 크기

창업가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시장의 크기,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 그리고 마찰력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실은 이 3가지가 거의 다 비슷한데, 최근에 만났던 꽤 멋진 창업가와 미팅을 하다가 나온 ‘마찰력의 크기’에 대해서 몇 자 적어본다.

사용자의 관점에서 보면, 마찰력은 사용자의 경험을 해치는, 흔히 말하는 창업가들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이다. “그 제품은 다 좋은데, 이 부분이 좀 어려워서…막상 사용하기는 쉽지 않지.”에서 그 어려운 부분이 바로 이 제품의 마찰점, 또는 마찰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마찰력을 확대해석해보면, 바로 많은 창업가가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이유인 ‘해결하려는 문제’가 되고, 이를 조금 더 확대해보면, 시장의 크기가 된다. 그냥 본인이 원래 좋아하는 걸 비즈니스로 만든 창업가도 많고, 특별한 시장에 대한 고민 없이 돈을 엄청 벌고 싶어서 창업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특정한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창업을 한다. 이 문제점은 창업가가 오래전부터 관찰했는데 아무도 관심 두지 않은 이슈일 수도 있고, 아무 생각 없다가 갑자기 “아, 바로 이거야!”라고 순간적으로 느낀 그런 문제일 수도 있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문제가 너무 많다. 아침에 눈을 떠서, 다시 밤에 잠들기 전까지, 심지어는 잠을 자는 동안에도 창업가의 눈으로 보면 조금 더 빠르고, 조금 더 싸고, 조금 더 좋은 방법으로 개선할 수 있는 프로세스가 너무나 많고, 좋은 창업가라면 이런 개선의 여지가 있는 문제를 비즈니스 기회로 연결한다. 이런 분들한테 내가 조금 더 강조하는 건, 이 문제점들의 마찰력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개선하고자 하는 프로세스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제공하는 대체제품을 사용할 정도로 그 문제점이 불편한지에 대해서 고민해봐야 한다는 점이다. 즉, 내가 제공하는 제품의 편리성이, 대체하고자 하는 기존 제품의 마찰력을 완전히 압도하지 못하면, 시장은 굳이 새로운 제품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관련해서 내가 자주 드는 예시는 모바일 결제이다. 애플페이와 삼성페이가 출시됐을 때 시장의 기대는 어마어마했다. 이제 곧 시장에서 신용카드는 없어질 것이고, 사람들이 더이상 현금을 가져 다닐 필요가 없기 때문에 지갑도 곧 없어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했다. 나도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고, 다만 상점들이 모바일 페이를 위한 하드웨어를 도입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수년 이 지난 이 시점, 아직도 절대다수는 신용카드와 현금을 사용하고 있다. 그 이유는 상점들이 기기를 도입하지 않기 때문은 아니다(물론, 기기의 비용도 장애물 중 하나이긴 하다). 가장 큰 이유는, 모바일 결제가 대체하려고 했던 신용카드 사용의 마찰력이 의외로 낮았기 때문이다.

실은, 나도 모바일 페이를 사용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꺼내서 한 번만 긁으면 결제가 되는 게 이미 쉬운데, 굳이 핸드폰을 사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신용카드가 더 가볍고, 작아서, 핸드폰을 사용하는 거보다 더 쉽다. 신용카드나 현금 대비 모바일 결제가 가져다주는 편리성에 대해서는 당연히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수십 년 동안 사용하던, 그다지 불편하지 않은 카드를 버릴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모바일 영수증도 비슷한 거 같다. 종이가 필요 없고, 나무도 덜 죽이고, 뭐 다 좋은데, 그냥 영수증 하나 받아서 주머니에 넣으면 되기 때문에 굳이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고 영수증을 문자로 받진 않는다. 오히려 이게 더 불편하기 때문이다.

창업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마찰력을 줄이는 건 너무 좋다. 다만, 입증되지 않는 신제품을 사용하는 거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히 큰 게 현실이다. 내가 제공하는 대체제품을 시장에서 간절히 필요할 정도로 기존 마찰력이 큰지는 잘 생각해봐야 한다.

텀블벅 채용 중

전에 내가 ‘팀 빌딩과 타이밍’이라는 글에서 회사는 성장 속도와 단계에 따라서 필요한 스킬과 인력이 다르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냥 맨땅에 헤딩하면서 회사를 창업하는데 최적화된 인력과 팀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 만들어 놓은 회사를 제대로 된 비즈니스로 성장시키는 걸 잘하는 인력과 팀이 있는데, 대표이사는 회사의 단계마다 필요한 스킬을 잘 알고 있어야 하고, 적시에 적절한 인력을 채용해야지만 성장통을 최소화하면서 비즈니스를 운영할 수 있다.

우리 투자사도 이제 다음 단계로 진입하기 위해, 창업단계와는 조금 다른 스킬을 보유한 인력을 찾고 있는데, 한국을 대표하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VP of Product와 Operation Engineer 채용 중이다. 모두 시니어 직책이며, 작은 회사로 시작해서 engineering과 operation을 크고 빠르게 확장해 본 경험이 있는 분을 찾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텀블벅의 미래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고 고속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포지션이다.

이런 실력과 배짱이 있고,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서 지원할 수 있다:
VP of PRODUCT(제품 부사장)
SENIOR OPERATIONS ENGINEER(책임 운영 엔지니어)

Keep it Simple, Stupid

영어에 KISS 라는 말이 있다. Keep it Simple, and Stupid의 약자인데, 이 말은 1960년대 미 해군에서 나왔다고 한다. 복잡하게 만들기보단, 멍청할 정도로 단순하게 만든 시스템이 훨씬 잘 작동한다는 미 해군의 디자인 원칙인데, 스타트업계에서도 자주 언급된다.

며칠 전에 USV의 Fred Wilson이 비슷한 맥락의 에서 이걸 다이빙에 비유했다. 올림픽 다이빙 선수는 우승하려면 공중에서 최대한 어렵고 복잡한 동작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정확한 지점에서 입수해야 하지만, 스타트업은 그냥 단순한 동작으로 물에 입수하는데 집중하라는 내용이다. 동작을 너무 복잡하게 하면 수영장 물밖에 떨어질 수 있는데, 그러면 죽을 수 있으니까, 완벽하진 않아도 계속 물에만 떨어질 수 있게 간단한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더 복잡한 동작을 소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나도 이 말에 동의한다. 아직도 가끔 한 시간 이상 창업가의 이야기를 들어도, “죄송한데요, 그래서 뭐 하는 회사라고요?”라는 질문을 하는 경우가 많다. 비즈니스 모델도 복잡하고,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너무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런 비즈니스는 주주명부와 법인구조조차 상당히 복잡하다.

소위 말하는 유니콘 회사 중 비즈니스 모델을 이해하려면 공학박사 학위가 필요하고, 모든 게 다 복잡한 회사도 있지만, 내가 아는 대부분의 잘 하는 회사는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비즈니스를 하고, 그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실행력으로 엄청난 진입장벽과 해자(垓字)를 만든다. 그리고, 성장하는 비즈니스를 계속 단순하게 만들려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정확히 구분해서 다 쳐내는 게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잘 하고, 해야만 하는 일에 회사의 모든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초등학교 과학실험 중 돋보기로 햇빛을 모아서 종이를 태워본 분은 경험적으로 알 것이다. 햇빛이 모이는 면적이 작을수록 종이가 잘 탄다. 면적이 너무 넓으면 그냥 그을리기만 한다. 아주 단순하게, 햇빛을 모아서, 그냥 한 곳에만 집중하면 된다. 비즈니스도 마찬가지이다. Keep it simple, and keep it stupid가 좋다.

오늘도 나는 “그래서 뭐 하는 회사라고요?”라는 질문을 했고, 이 비즈니스에는 아마도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State of Tokens

Fred Wilson의 블로그에 소개된 블록체인 업계에서는 꽤 유명한 William Mougayar의 ‘State of Tokens‘라는 자료를 봤다. 36장짜리 슬라이드로 길진 않아서 20분 만에 봤지만, 이후 한 시간 정도 생각을 했다. 요새 너무 혼란스러운 크립토, 블록체인, 토큰 분야에 몇 안 되는 본질주의자라고 항상 생각했는데, 이 슬라이드에는 ‘본질’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좋은 내용이 많다고 생각한다. 안 읽어 보신 분들한테는 추천한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부분은 21장이다. 토큰이 정말로 유용한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다음 3개의 질문을 해보라고 한다:
1/ 이 토큰이 없으면 비즈니스가 어떻게 될까?(=토큰이 없어도 상관없는 비즈니스가 아닌가?)
2/ 블록체인이 왜 필요한가?
3/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게, 블록체인이 어떻게 가능케 하는가?

안타깝지만, 내가 아는 ICO와 토큰 중 이 3가지 질문의 테스트를 통과하는 게 하나도 없다. 2가지 질문을 통과하는 토큰은 한 5% 정도 되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