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대한 타협은 없다

이 글에서 강조했듯이, 무에서 유를 만들고, 유에서 더 많은 유를 만드는 창업가의 필수 자질 중 하나는 유연함이다. 중장기 계획을 세우고, 이 계획에 따라서 일을 진행하는 건 좋은 습관이고, 일 잘하는 사람들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이제 시작하는 스타트업에서는 이런 계획에 따라서 일을 진행하는 게 쉽지 않다. 그렇다고 계획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는 건 아니지만, 모든 예측이 빗나가는 상황에서 원계획에 집착하는 건 회사를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모든 가설은 대부분 틀리기 때문에, 예측과 예상을 하기보단, 그냥 그때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결과를 위해서 타협해야 한다.

실은, 창업가들은 ‘타협’이라는 말을 정말 싫어한다. 전에 우리가 투자한 어떤 대표는 이 세상에서 본인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타협이라고 했는데, 남들이 만들어 놓은 틀에서 살지 않고, 본인이 만든 틀로 남을 인도하려고 창업한 분들이 왜 타협이라는 말을 증오하는진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싫든 좋든 스타트업을 운영하거나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은 그 어떤 것과도 타협하면서 일을 진행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내가 창업가분들에게 세상 모든 것과 타협해도, 이거 하나는 절대로 타협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데, 바로 ‘사람’이다. 모든 것에 대해서 유연해야 하고, 모든 것과 타협해도, 절대로 사람에 관해서는 타협하면 안 된다. 많은 경우에 우린 제품, 수치, 시장 등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이 모든 걸 실제로 만들고 가능케 하는 사람을 과소평가하는데 실은 모든 걸 이 반대로 봐야 한다. 사람을 가장 과대평가해야 한다.

사람 채용하는 게 너무 힘드니까, 어느 정도 맘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나머지는 회사에서 부족한 부분을 메꿀 수 있다는 논리로 채용을 진행하는데, 특히 초기 스타트업엔 이게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대기업이라면 조금 부족한 부분을 회사의 시스템이 채워주는 방법이 잘 작동하지만, 초기 스타트업은 초기 팀이 회사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므로, 오히려 이 반대이다. 회사의 부족한 부분을 사람들이 채워줘야 하고, 이렇게 해서 회사의 시스템이 만들어져야지만 나중에 회사가 사람들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수 있다. 그래서 우리 투자사 대표들에게 나는 100% 맘에 들지 않으면 되도록 채용하지 말라고 한다. 사람에 대해서는 타협하면 안 된다.

같이 일하는 동료에 대해서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같이 일을 좀 해보니까, 이 사람이 좀 아니다 싶으면 그 느낌이 주로 맞다. 조금 더 두고 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런 분들이 회사에 더 오래 있을수록 팀워크는 더 망가진다. 이런 분들은 바로 내보내는 게 맞다. 약간 다른 의미지만, 이 경우에도 사람에 대해선 타협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스타트업 할 때 타협은 주로 좋은 의미로 사용되지만, 사람에 대한 타협은 절대로 하면 안 된다.

피와 땀의 진입장벽

우리 투자사 중에 페이지콜이라는 9년 된 B2B SaaS 스타트업이 있다. 우린 페이지콜에 2017년에 첫 투자를 했고, 그 이후에 몇 번 더 투자했다. 지금은 B2B SaaS 분야가 한국에서도 조금씩 커지고 있지만 당시엔 투자를 업으로 하는 VC들에게도 이 분야는 생소할 정도로 인기도 없고, 한국에는 시장이 존재하지 않았다. 특히나 페이지콜은 B2B SaaS 분야에서도 API를 만들어서 기업에 판매하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데, 창업 초기엔 투자자들이 이 비즈니스를 이해도 못 했고, 관심도 두지 않았다.

페이지콜은 학원이나 학교의 digital transformation을 돕는 API를 만드는 회사이다. 이렇게 말하면 좀 애매모호한데, 조금 더 쉽게 말하면, 오프라인 사업을 주로 하던 교육업체들이 페이지콜의 제품을 사용하면, 쉽고 자유롭게 본인들만의 온라인 강의실과 강의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즉, 줌을 사용했을 때보다 훨씬 더 자유도가 높고, customization이 가능한 온라인 교육 환경을 구축할 수 있다. 특히, 이 회사의 강점은 9년 동안의 피와 땀이 투자된 연구, 개발, 그리고 삽질 위에 구축한 실시간 칠판(=캔버스) 기능인데, 수학과 같이 선생과 학생이 뭔가를 계속 보고 쓰면서 학습해야 하는 과목에는 없어서는 안 되는 어려운 기능이다. 척박한 SaaS와 API 시장에서 오랫동안 외로운 싸움을 했지만, 이젠 이 분야에서는 강자가 됐고 에듀테크 분야에서는 누구나 아는 설탭, 콴다, 대교, 튼튼영어 등과 같은 기업고객에서 페이지콜을 기반으로 실시간 화상 과외 솔루션을 구축해서 잘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이 분야에서의 사업, 그리고 펀딩은 어렵기만 하다. 아직도 B2B SaaS 시장을 한국의 투자자들은 회의적으로 보고, 특히나 API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많이 떨어지는 VC도 많다. 내가 이 회사를 다른 투자자분들에게 소개하면, SaaS나 API를 좀 아는 분들도 항상 하는 질문이 “어차피 WebRTC를 기반으로 만든 거라면, 누구나 다 비슷하게 만들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이다. 이분들의 주장은 큰 교육업체라면 개발 인력이 내재화 되어 있을 것이고, 구글에서 오픈 소스로 제공하는 실시간 커뮤니케이션 API인 WebRTC를 이용해서 페이지콜과 똑같은 걸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냥 외주업체에 맡겨도 금방 비슷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하는 분들도 있다.

이분들이 하는 말이 틀리진 않다. 누구나 WebRTC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고, 이 API를 기반으로 누구나 페이지콜과 “비슷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건 “비슷한” 제품이다.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하는 페이지콜과 비슷한 제품은 누구나 다 만들 수 있지만, 페이지콜을 만드는 건 굉장히 어렵다. 사용성에 대해 내가 항상 주장하는 점을 다시 한번 여기서 강조해 본다. 시장에는 비슷한 제품들이 널리고 널렸지만, 이 중 제대로 돈을 버는 제품은 극소수이다. 이 극소수의 제품과 다른 비슷한 제품의 껍데기만을 보면 다 비슷하다. 아니, 대충 보면 완벽하게 똑같이 생긴 제품들도 많다. 하지만, 이 제품들을 조금만 더 깊게 사용해 본 사용자들은 그 차이점을 금방 파악하고 어떤 제품을 돈을 내고 사용할지 결정하게 되는데, 이런 점들이 좋은 제품과 그냥 비슷한 제품을 구분하는 결정적인 요소들이다.

이 차이점을 표현하는 완벽한 단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걸 “사용자 경험의 오너십”이라고 한다. 오랜 세월 동안, 한 분야만 꾸준히 파고들면서 축적된 수천 ~ 수만 시간의 제품 개발과 운영, 그리고 수십 ~ 수백 명의 고객의 피드백을 다시 제품에 반영한 수백 ~ 수천 번의 product iteration 과정을 통해서 한 제품을 여러 고객이 여러 환경에서 사용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이 문제점에서 파생되는 또 다른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이 축적돼야지만 우리의 제품은 사용자 경험을 소유(=own)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껍데기는 다른 제품과 비슷하지만, 사용해 보면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미묘한 디테일과 사용자 경험이 내재화 되어 있는 좋은 제품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페이지콜은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API를 만들기 때문에, 인터넷 속도, 사용하는 브라우저, PC나 모바일 플랫폼의 환경, 이미 사용하고 있는 기존 시스템과의 충돌, 사용자 실수 등, 너무나 많은 변수 때문에 제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아직도 너무 많다. 하지만, 수년 동안 troubleshooting을 해왔고, 사용자들의 피드백과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계속 코드, 기능, UI, UX를 개선해 왔기 때문에 단순히 WebRTC를 기반으로 껍데기만 비슷하게 만든 제품과는 크게 차이가 난다. 그래서 나는 대기업이 이 분야에 들어와도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페이지콜 뿐만 아니라 우리가 투자한 많은 회사들의 제품이 이젠 다른 제품과의 “비슷함”을 넘어서 사용자들이 돈을 내는 제품으로 진화해 가고 있다. 이런 제품은 하루아침에 나오지 않는다. 아니, 절대로 나올 수가 없다. 오랜 시간 동안 본인들이 만드는 제품에 헌신하는 팀의 피와 땀이 들어가야 하는데, 쉽게 말하면 노가다가 필수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이 노가다는 피와 땀이 만든 진입장벽이 될 수 있고, 피와 땀이 만든 진입 장벽은 어쩌면 남들이 넘기 힘든 가장 큰 진입장벽이 될 수도 있다.

현실과 이상 어딘가에

스타트업을 할 때 중요한 마음가짐 중 하나가 바로 유연함이다. 그 어떤것도 – 많은것이 아니라 그 어떤 것도 – 생각대로 풀리지 않고, 모든 가설은 틀리기 마련이고, 예측과 예상이라는 것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그때 상황에 따라서 매우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창업가는 사업을 위한 장기적인 목표와 계획은 항상 갖고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그냥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계획을 계속 수정하고, 보완하고, 그리고 어떻게 보면 즉흥적으로 일을 처리한다.

특히, 요새와 같이 경기가 안 좋고, 비즈니스 환경이 한 치 앞을 예측하기 힘든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을 땐, 이런 사고와 행동의 유연함이 더욱더 요구된다. 내가 얼마 전에 구면인 창업가를 아주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분을 마지막으로 2년 전에 만났을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당시엔 시장에 돈이 넘쳐흘렀고, 이땐 창업가들이 모든 레버리지를 갖고 있던 seller’s market이었다. 부르는 게 값이었고, 말도 안 되는 밸류에이션에 투자가 진행됐다. 이 분도 내가 그때 봤을 땐, 현실보단 이상에 가까운 비전과 밸류에이션을 주장했다. 나는 패스했지만, 결국 본인이 원하는 이상적인 조건으로 다른 곳의 투자를 받았다.

그런데 얼마 전에 만났을 땐, 이상보단 현실에 매우 가까운 비전과 밸류에이션 이야기를 했다. 그때 그 창업가가 맞나 스스로 물어볼 정도로 매우 ‘겸손’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돈이 시장에 넘쳐흐를 때 너무 높은 밸류로 너무 많은 투자를 받았고, 너무 많은 사람을 채용했고, 어영부영하다 보니 돈은 금방 다 썼고, 제품은 아직 제대로 안 나왔고, 결국 대부분의 인력을 정리하면서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는 내용이다. 꿈과 이상 속에서 붕 떠 있다가 2년 만에 다시 현실이라는 냉혹한 세계로 돌아왔는데, 그래도 내가 놀랐던 건,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계속 열심히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업을 잘하고 못 하고를 떠나서,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춰서 최선을 다하는 이 유연함은 높게 평가해 주고 싶었다.

이분과 같이 창업가들은 항상 현실과 이상 사이, 그 어딘가에서 계속 왔다 갔다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그렇게 할 때마다 정신력이나 체력이 고갈되지 않고 항상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사업이 너무 잘 되거나, 경기가 너무 좋거나, 시장에 벤처 자금이 넘쳐흐를 때는, 저 높이 이상에 더 가까운 곳에서 활동하지만, 요새와 같이 사업도 안 되고, 경기도 안 좋고, 돈줄이 마르고 있을 땐 현실과 매우 가까운 곳으로 기꺼이 내려와야 한다.

사업이라는 게 항상 이렇고, 실은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업과 인생 모두 현실과 이상 그 어딘가에서 계속 분주히 왔다 갔다 하다 보면 내가 원하는 최적의 결과를 가끔은 경험할 수 있다.

포기해도 괜찮아

바로 이전의 포스팅을 읽고 몇 분들이 코멘트와 문의를 개인적으로 주셨다. 너무 공감하면서 읽었고, 창업가들에 대한 스트롱의 태도와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의지는 참 따뜻하고 고맙긴 한데 솔직히, 사업하면서 그동안 너무 많이 자빠져서 이제 더 이상 일어날 힘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경우엔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나에게 조언을 구한 분들도 있다.

좀 의외일 수도 있는데, 이분들에게 나는 그냥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너무 심하게 넘어져서, 또는 너무 지쳐서 그냥 누워 있고 싶다면, 나는 이분들에겐 그냥 누워있으라고 한다. 사업이 뭐라고, 이게 뭐 그렇게 대단한 거라고, 소중한 내 자신을 갈아 넣으면서, 육체와 정신이 망가질 때까지 스스로를 학대하는 건 우리도 바라지 않는다.

오롯이 투자자의 입장에서 말해 본다면, 우리도 힘들게 앵벌이 한 남의 돈을 창업가들에게 투자한다. 우리에게 매우 소중한 돈이다. 그리고 아주 냉정한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힘들어도 계속하라고 강요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돈과 사업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들도 많다. 사업보단 가족이 더 중요하고, 친구가 더 중요하다. 그런데 가족과 친구보다 더 중요한 건 나 자신이다. 열심히 일하는 건 좋지만, 그렇다고 스스로를 해칠 정도로 열심히 할 필요는 없다. 이 정도의 상황까지 왔다면, 포기하는 것도 괜찮다.

포기. 이 말을 우린 정말 싫어한다. 특히, 창업가들에겐 사망 선고와도 같은 말이고, 지금까지 인생을 걸었던 단 한 가지에서 영원히 손을 떼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많은 창업가들에게 이 사업은 딸이나 아들을 낳기 전에 낳았던 첫 번째 자식이기도 하다. 그만큼 소중하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그렇다고 사업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필요는 없다. 목숨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들이 우리 인생에는 많기 때문이다. 이까짓게 뭐라고.

너무 힘들어서 다시 못 일어날 것 같으면 그냥 푹 쉬어도 괜찮다. 포기해도 괜찮다. 포기한다고 실패자가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평생 자빠져 있지 않길 바란다. 충분히 쉬고, 언젠간 다시 일어나고 싶으면, 그땐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다시 일어나고, 다시 한번 도전해 보길.

미친년 미친놈들의 세상

우린 250개가 넘는 스타트업에 투자했고, 이 중 70% 이상이 아직도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워낙 포트폴리오 회사들이 많다 보니, 모든 회사를 자주 따로 만나지 못한다. 대신, 우리만의 방법으로 조금 더 체계적으로 우리 도움이 필요한 대표님들을 지원하고 있고, 분기별로 모든 투자사 창업가들이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코로나 기간에는 못 모이다가 작년부터 다시 분기별로 모이기 시작했고, 많이 모이면 100명, 그리고 적게 모여도 60명 이상이 한자리에 모여서 같이 이야기하고, 밥 먹고, 그리고 힐링한다. 뭔가 특별한 활동을 해서 힐링을 하는 건 아니고, 다양한 고민을 가진 창업가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이야기하다 보면, 나만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나보다 훨씬 더 힘든 다른 대표도 있다는 걸 느끼면서 스스로 위로를 받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2분기 모임은 5월에 했는데, 한 공간에 모인 60명 이상의 창업가분을 단상 위에서 보니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이 “와, 미친년 미친놈들로 가득 차 있구나” 였다.

스타트업 바이블인 이 신성한 블로그에서 욕을 해서 미안한데, 나는 아주 건강하고 좋은 의미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이렇게 똑똑하고, 일도 잘하는, 이 많은 남녀가 그냥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기업에 취직해서 평범하게 살아도 아주 잘 살 텐데, 굳이 이 힘든 창업의 길을 택한 걸 보니까, 정말로 미치지 않고선 절대로 할 수 없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미치지 않은 정상적인 인간들은 어차피 세상이 만들어 놓은 틀과 규율에 스스로를 맞추기 때문에 정상인은 그 어떤 것도 바꿀 수가 없다. 미친 인간들만이 본인들이 만든 틀과 규율에 세상을 맞추려고 하므로, 성공한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그날 내 눈앞에는 본인들이 뭔가를 바꿔보겠다고 단단히 미쳐버린 인간들이 60명 이상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미친 인간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건 너무 힘들다. 간혹, 이 중 정말로 본인들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고 길들이고 있는 창업가들이 있다. 이분들은 이미 산 정상에 올랐고, 여기서 멈춰도 될 듯한데,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가서 하늘까지 가려고 한다. 이 또한 미친 짓이다. 하지만, 대부분 산 정상에 도달하지 못한다. 어떤 분은 입구에서 계속 넘어지고, 어떤 분은 중간에서 넘어지면서 넘어질 때마다 크게 다친다. 대가리가 깨지는 창업가도 있고, 다리가 부러지는 분들도 있고, 간혹 완전히 회복 불능의 불구가 되는 분들도 있다.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나서 이 미친 짓을 계속할 의지가 있으면, 스트롱은 언제든지 손을 내밀어 일어나는 걸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다. 이게 우리가 하는 일이니까. 우린 언제든지 우리가 투자한 미친 인간들을 200% 지원해 줄 준비가 되어 있다.

역시 이번 주에도 여러 문제가 터져서 우리 투자사 대표와 이런저런 이메일을 교환했고, 통화도 하고, 나도 여기저기 이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걸었다. 이분이 계속 나한테 죄송하다면서, 어떻게든 팀원들이 개인적으로 희생하면서 살려보겠다고 나한테 여러 번 말해주는데, 오히려 내가 너무 죄송하고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똑똑하고 젊은 친구들이 주말에 아무것도 못 하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이렇게 스스로를 학대하는지…하지만 이분들은 크게 자빠졌지만, 분명히 일어날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나도 최선을 다해서 부축하고 다시 일으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미치지 않으면 못 할 짓이다.

좀 이상하게 들리지만, 나는 이렇게 미친년, 미친놈들과 같이 어울리는 게 좋다. 서로 힘들긴 하지만, 이건 내 인생의 동력이기도 하다. 우리가 투자한 250개가 넘는 투자사 대표들, 그리고 코파운더까지 합치면 500명이 부쩍 넘는 미친년과 미친놈들이 한국의 대기업에 취직했다면 10년 안에 모두 다 임원이 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분들인데, 그렇게 하지 않고 세상을 본인들의 틀과 방식으로 바꾸기 위해서 오늘도 열심히 삽질하고, 산을 오르고, 기관차를 돌리고 있음에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미친년, 미친놈들로 득실거리는 세상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