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기

누구나 감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건 매우 어렵다. 특히, 조회수를 늘려야지만 팔로잉과 광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유튜브에서는 좋은 콘텐츠보단 쓰레기가 훨씬 더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삶에 의미를 주는)목적이 있는 콘텐츠(purpose driven contents)’를 만드는 우리 투자사 Jubilee Media에서 최근에 “한국에서 흑인으로 살기란?(What Is It Like To Be Black In South Korea?)”이라는 영상을 만들어서 공개했다.

이 동영상은 특정 커뮤니티의 다양한 시각을 알아보기 위한 사회적 실험의 일환으로서 만들어졌는데, 한국에서 많이 알려진 샘 오취리를 포함해서 현재 한국에서 살고 있는 6명의 흑인 또는 흑인계의 남녀가 그동안 한국에서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에 관해서 물어보고, 각자의 느낌과 생각을 세련되고 재치 있는 영상으로 만들었다. 20분이 조금 넘는 영상이라서 짧진 않지만, 한국에서 외국인으로 – 특히 아직도 편견이 존재하는 유색인종 – 사는 건 어떤 느낌인지 평소에 궁금했던 분들이라면, 상당히 흥미롭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외국에서 좀 살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에 문화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영상을 보면서 내가 아직도 이해해야 할 게 이 세상에는 참 많다고 느꼈고 한국에서 태어났고 다른 한국인과 외모가 다르지 않은 한 사람으로서,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서 많이 배웠던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샘 오취리의 흑인 발언 사건에 대해서도 미디어의 내용만 봤을 땐 이 친구가 좀 심했다고 생각도 했지만, 또 이 영상에서 샘의 발언을 들어보니까, 역시 모든 이야기에는 여러 면이 존재하기 때문에 경솔하게 판단하지 말고, 모든 내용을 열린 마음으로 잘 들어보고 판단해야겠다는 반성도 살짝 했다.

영상을 다 본 후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이들의 생각과 의견에 공감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100% 다 동의 하는 건 아니다. 만약에 내가 이 영상에 직접 출연했다면, 나도 몇 가지에 대해선 반박을 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이건 그냥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기 때문에, 누가 맞고 틀리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런 의견을 존중하면서 듣고, 수용할 수 있냐가 핵심이다.

그래도 내가 여기에 출연한 분들에게 느꼈던 감정은 고마움이었다. 한국은 이제 길거리에서 외국인을 봐도 신경도 안 쓰고,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누가 영어를 해도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는 글로벌 국가가 됐다.(참고로, 20년 전만 해도 지하철에서 누가 영어를 하면, 모든 사람들이 다 쳐다봤었다.) 하지만, 이 영상을 보면서 느낀 건, 아직도 full globalization으로 가려면 우리가 해결하고, 이해하고, 수용해야 하는 점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물론, full globalization이 좋냐를 따진다면, 이건 또 다른 주제가 되겠지만. 내가 이들의 입장에 있었다면, 과연 나는 낯선 나라에서 가끔은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수용할 수 없는 시선과 의견들을 매일 접하면서 살 수 있을지 큰 의문이 있다. 하지만, 여기에 출연한 6명 모두 한국에 대한 좋은 감정이 훨씬 더 컸고, 한국인들과 한국에 대한 애정이 넘쳐흘렀다. 나는 이런 분들이 앞으로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유오피스, 공유하우스가 요새 많이 유행하는데, 어떻게 보면 한 나라는 세상에서 가장 큰 공유하우스이자 공유오피스인 것 같다.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함께 살아가야지만 우리에겐 밝은 미래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영상의 댓글도 매우 다양하고 인사이트풀하다. 그냥 밑도 끝도 없는 hate 댓글도 있지만, 대부분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내용들이고, 이 정도로 수준 높은 코멘트들이 달린 걸 보면, Jubilee Media에서 이 콘텐츠 자체를 잘 기획하고,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K-제조 2.0 – part 2

바로 이전 글 ‘K-제조 2.0 – part 1‘에서 한국이 원래 제조 강국이고, 화장품같이 누구나 다 한국이 잘 만드는 걸 아는 분야도 있지만, 콘택트렌즈나 콘돔과 같이 우리가 잘 몰랐던 분야도 한국이 제조를 잘한다는 내용에 대해서 적어봤다. 이런 새로운 분야의 스타트업에 우리가 투자하면서 계속 스스로 물어봤던 건, “그러면 왜 이 렌즈나 콘돔을 직접 생산하는 한국의 제조업체에서 본인들의 브랜드를 잘 만들어서 직접 판매하지 않을까?” , “이미 우리 투자사들이 이 공장에 OEM 생산을 맡기고 자신들의 브랜드로 잘 판매하고 있는데, 이걸 생산업체에서 직접 하면 되지 않을까? 어차피 동일한 제품인데.”와 같은 질문이었다.

그리고 실사를 하면서 공장에 이 질문을 직접 했는데, 해외 시장에 대해서는 대부분 그냥 본인들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애초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이미 한국에서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서 판매하는 업체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 제품을 엄청난 브랜드로 키우고, 대단한 이커머스 플레이를 할 의지가 별로 없었다.

여기서 우린 기회를 봤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수많은 제품 중 한국에서 가장 싸고, 빠르고, 품질 좋게 생산할 수 있는 제품이 상당히 많이 있을 것 같은데, 이런 제조업체가 어디에, 얼마만큼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다. 하지만, 이런 양질의 제조업체에서 만든 Made in Korea 제품을 북미 시장에서 잘 판매할 수 있다면, Dollar Shave Club과 같은 유니콘 스타트업이 여러 개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미 전 글에서 언급했던 우리 투자사들이 이 작업을 하고 있고, 아직 엄청나게 큰 회사로 성장하진 않았지만, 충분히 이런 가능성이 보인다고 생각한다. 미국 시장을 잘 알고, 영어가 가능하고, 미국에서 좋은 인재 채용이 가능한 이런 창업가들은 한국의 제조 공장과 글로벌 시장을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고, 이런 분들에게 집중적으로 투자할 수 있다면, 한국이 가진 작은 시장의 단점을 극복하면서, 훨씬 더 큰 글로벌 시장을 가장 잘 만든 제품으로 공략할 수 있는 공식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스타트업들이 크게 성장하면, 역으로 한국의 제조 업체를 인수하면, 업계에서 말하는 수직 통합을 통해서 더 큰 사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이런 사례를 우리가 직접 경험해보진 못 했지만,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

K-제조 2.0이 시작됐다. 이런 긍정적인 움직임을 통해서 한국이 계속 제조의 강국으로 남길 바란다.

K-제조 2.0 – part 1

스트롱벤처스에서 우리는 많은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하지만, 미국과 그 외 지역의 글로벌 회사에도 투자한다. 지금까지 우린 240개 이상의 스타트업에 투자했는데 이 중 30%가 한국이 아닌 곳에 본사를 두고 있다. 대부분 미국이지만, 동남아나 유럽에서 사업하고 있는 회사도 있다. 하지만, 지역을 떠나 이 모든 회사가 가진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한국’이라는 큰 테마이다. 해외 스타트업도 한인이 창업한 회사들이고, 한국이 잘하거나, 한국에서 어느 정도 입증된 컨셉을 기반으로 글로벌 비즈니스를 만들고 있는 회사가 대부분이다.

이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하다 보니, 한국이 전통적으로 잘하고, 오늘의 한국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 제조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우리가 투자한 꽤 많은 스타트업이 직접 제품을 만들어서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D2C / 이커머스 비즈니스를 하는데, 자체 제작하기보단 대부분 한국의 공장에 OEM을 맡기고 본인들의 브랜드로 판매한다. 뒤에서 이들의 제품을 직접 만드는 제조 분야를 보다 보니, 그동안 내가 몰랐던 것들을 하나씩 배우고 있다.

일단, 한국은 정말로 제조 강국이 맞다. 굳이 삼성이나 현대와 같은 재벌 대기업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좋은 제품을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만들고 있는 중소 제조업체와 공장이 이 작은 나라에 정말로 많다는 걸 매번 느끼고 있는데, 어떤 제품은 중국보다 더 저렴하게 만들고, 어떤 제품은 독일이나 일본보다 더 견고하고 우수하게 만드는 공장이 한국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마다 깜짝 놀라고 있다.

이렇게 한국에서 만든 제품을 기반으로 한국과 미국에서 사업을 하는 스트롱 투자사들이 꽤 많은데, 이 중 어떤 회사는 한국이 원래 잘하는 거로 유명한 아이템으로 사업을 하고, 어떤 회사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이 잘하는 아이템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

화장품은 한국이 원래 잘 만드는 거로 유명하다. 뉴욕에 있는 Cardon은 한국에서 제조한 남성용 뷰티 제품을 북미 시장에서 잘 판매하고 있다. 한국에 있는 율립은 한국에서 제조한 클린 뷰티 립스틱을 한국과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하고 있다. 한국이 화장품 제조 강국이라는 점은 굳이 내가 강조하지 않아도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고, 많은 업계 관계자가 인정하고 있다. 앞으로도 화장품 제조 강국으로의 포지션을 우리가 계속 잘 지켰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하지만, 한국이 잘 만드는 게 또 있다. 아니, 굉장히 많다.
우리 투자사 옵틱라이프는 루킹굿이라는 콘택트렌즈 이커머스 플랫폼을 운영하는데, 자체 렌즈 브랜드도 같이 판매하고 있다. 우린 이 회사를 검토하면서 이 시장의 여러 가지 문제점과 재미있는 점을 동시에 발견했는데, 한국이 콘택트렌즈 제조 강국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왠지 유럽이나 일본에 OEM 생산을 의뢰할 것만 같은 렌즈같이 정교한 제품도 한국의 공장에서 소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로웠다.
또 다른 우리 투자사는 뉴욕에 있는 Issawrap이라는 스타트업이다. P.S. Condoms라는 브랜드를 이커머스로 판매하고 있는데, 이름에서 금방 알 수 있듯이 콘돔을 섭스크립션으로 판매하는 서비스다. 그리고 이 제품은 한국에서 만들고 있다. 이 회사를 우리가 검토하면서 비즈니스 모델 면에서도 미국의 Dollar Shave Club과 유사성을 많이 봤는데, Dollar Shave Club의 면도기도 한국의 도루코에서 생산하고 P.S. Condoms의 콘돔도 한국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는 점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이 회사의 창업가들 말에 의하면, 한국은 전 세계에서 콘돔을 가장 잘 제조하는 기술과 생산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콘택트렌즈와 콘돔뿐만이 아니다. 제조업이 과거의 가장 큰 성장 동력이었던 한국이 만드는 제품 중 글로벌 시장에서 1등을 할 수 있는 제품과 시장이 이 외에도 상당히 많다고 생각하고, 이런 제품이 글로벌 시장에서 브랜딩, 마케팅, 그리고 판매할 수 있는 좋은 창업가들과 연결되면 엄청나게 큰 비즈니스가 여러 개 나올 수 있다고 난 요새 생각하고 있다.

K-제조 2.0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우린 가장 앞단에서 한국의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면서, 이런 큰 흐름을 요새 몸으로 직접 느끼고 있다.

요샌 글을 길게 안 써서, 이번 포스팅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다음 포스팅에서 내 생각을 더 텍스트화해 보겠다.

공감대 형성하기

우린 굉장히 많은 회사를 검토한다. 아직 정확한 통계를 내보진 않았지만, 작년에도 총 1,0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을 다양한 방법으로 검토한 것 같다. 워낙 다양한 창업가들이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업을 시작하기 때문에, 비즈니스의 종류도 너무나 다양하다. 극소수지만, 어떤 사업은 그전에 한 번도 접한 경험이 없는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이고, 어떤 사업은 과거에 본 적이 있거나 이미 우리가 투자한 회사와 비슷한 걸 조금 다르게 접근하고 있고, 어떤 사업은 너무나 뻔하지만, 빠른 실행력을 기반으로 더 싸고 더 좋은 서비스를 만드는 영역에 있다.

실은, 모두 다 나름의 매력이 있는 팀이 하는 사업이라서, 항상 진지하고 재미있게 검토하는데, 최근에 콜드이메일로 들어온 회사 자료의 표지만 보고도 매우 관심이 갔던 회사가 있었다. 내가 과거에 직접 경험했고, 누군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그런 문제를 해결하려는 스타트업이었다. Deck의 첫 장만 보고 바로 “아, 내가 찾던 딱 그런 서비스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자료를 자세히 보지도 않고 직접 만나보기로 했다.

뭐, 그렇다고 이 회사에 투자하겠다는 건 아니다. 실은 어떻게 보면 완전히 별개의 주제이긴 하지만, 워낙 많은 소개와 콜드 이메일을 받는 투자자와 이렇게 바로 대면 미팅이 성사되는 것 자체가 위에서 말한 스타트업 대표에겐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직접 경험하고 공감한 문제를 해결하는 스타트업이라서 바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스타트업이 풀려고 하는 문제를 투자자에게 셀링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수치인데, 초기 스타트업은 대부분 이런 수치가 없다. 수치 다음으로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투자자와의 공감대 형성이다. 내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이미 경험한 VC가 분명히 있을 텐데, 이런 투자자를 효과적으로 선별할 수만 있다면, 문제와 제품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더 수월할 것이고, 이 작업이 되면, 직접 만나서 우리 팀과 제품을 적극적으로 영업할 수 있다. 이 문제가 심각하고(=큰 시장),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설득해서 실제 투자 받는 건 완전히 다른 숙제이지만, 어쨌든 공감대를 형성할 수만 있다면, 이 작업이 조금 더 수월해진다.

그래서 경험이 많고, 다양한 제품을 사용해보고, 새로운 것들을 많이 시도해본 VC들에 접근하는 게 이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좋은 전략이다. 많은걸 경험해봤다면, 우리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경험해봤을 확률 또한 높을 것이다. 많은 제품을 사용해봤다면, 우리가 만드는 제품과 비슷한 제품을 사용해봤을 확률 또한 높을 것이다. 새로운 것들을 많이 시도해봤다면, 우리가 하려고 하는 것들을 이해할 확률 또한 높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투자자는 우리가 해결하려고 하는 문제에 대한 경험이 없어서 이런 공감대를 즉각적으로 형성하는 게 상당히 힘들다. 그러면 인위적으로 공감대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건 시간과 노력의 싸움이 될 확률이 높다. 그리고 창업가의 허슬, 집요함과 창의성이 필요하다. 문제는 VC들에겐 시간도 별로 없고 은근히 게으른 VC들도 많아서 이런 정보와 경험을 직접 떠먹여 주지 않으면, 이들의 고정관념을 바꾸는 건 굉장히 힘들다.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는데, 이런 고정관념을 단시간 내에 바꿀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지표를 보여주는 것이다. 즉, 적절한 지표와 공감대의 하이브리드 접근이 필요하다.

뭔가 결론이 없는 글을 쓴 것 같지만, 하여튼 모두 굿 럭.

저전력 모드

올해 내내 불경기가 지속될 것 같고, 이런 시장 상황을 감안해서 투자자들이 매우 보수적으로 자금을 집행하고 관리하고 있다.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이미 모든 대표들이 직접 경험하고 있거나, 주변에 있는 다른 대표들한테 요새 투자 받는 게 얼마나 힘들고, 받더라도 원하는 조건의 투자를 받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을 것이다.

우리 투자사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모두 다 힘들어하고 있다. 이 힘든 시기에 어떻게 회사를 운영해야할지, 편딩은 어떻게 해야 할지, 그리고 그냥 어떻게 하면 올해 살아남아서 내년에 다시 성장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을지, 이런 고민을 모두 다 하고 있고, 우리에게 자주 물어보면서 미팅을 요청한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잘 모르기 때문에 정답을 줄 수가 없어서 항상 미안한 마음만 가득하다. 나도 자주 말하지만, 우리가 스트롱을 시작했던 2012년도 이후 2023년까지 경기가 나빴던 해가 실은 없었다. 살짝 경제 위기가 올 뻔한 적이 몇 번 있었지만, 운 좋게 경기는 나름대로 계속 좋았기 때문에 투자하기엔 너무나 좋은 지난 10년이었다. 우리도 투자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경험하는 불경기라서 나도 참고할 과거의 경험이 없어서 나보다 경험이 많은 선배 VC들에 조언도 구하고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고 있지만, 이분들도 모든 불경기가 다르고, 모든 회사가 다르기 때문에 아주 뾰족한 답을 제공해주진 못한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시기엔 돈을 최대한 아끼고, 확실한 매출이 예상되는 일이 아니라면 새로운 걸 벌리지 않는 게 정답이라는건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요새 우리 투자사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거의 매일 하고 있다. 경기가 좋을 때는 런웨이가 6개월 정도 남았을 때 펀딩을 시작하면 그래도 돈이 떨어지기 전에 투자받을 수 있었지만, 이젠 불면증 걸리지 않고 사업하려면 12개월 이상의 런웨이를 확보해 놓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인위적으로 런웨이를 확보하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고통스럽다. 매출을 늘리거나 비용을 줄여야 하는데, 비용을 줄이는 게 더 쉽고, 스타트업에서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유일한 방법은 정리해고다. 최근에 내가 몇몇 대표들에게 직원 수와 상관없이 가능하면 회사 인력의 절반을 정리하라고 조언하고 있는데, 실은 직원을 정리하는 과정에서도 돈이 꽤 들어가기 때문에, 아무리 어려워도 직원의 절반을 내보낼 정도로 우리가 힘들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대표들은 다시 한번 심사숙고 해보길 바란다.

오랜 기간 동안 한 방향만 보면서 열심히 같이 일했던 직원들을 해고하는 것 자체가 정서적으로 힘들지만, 실은 대표이사들이 또 고민하는 게 있다. 이렇게 많은 인력을 내보내면, 매출 자체가 줄어들 것이고, 성장이 정체되는 것도 문제지만, 이렇게 매출이 줄어들면서 마이너스 성장을 하게 되면, 투자받는 건 더 힘들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에 정리해고에 대해서 즉각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을 망설이게 된다.

나는 그래도 무조건 하라고 한다. 사람을 절반 이상 정리하면 매출은 줄어들겠지만, 비용은 더 줄어들 것이고, 이렇게 하면 BEP를 맞추면서 동시에 운이 좋으면 흑자 전환할 수 있다. 그 어떤 VC도 성장하지 못하는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걸 꺼리겠지만, 투자는 나중에 고민할 일이고, 일단은 살아남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이렇게 해서 사업을 유지하면서 살아남으면서 다시 성장할 방법을 계속 모색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핸드폰이나 노트북의 배터리가 거의 다 소모되면, 불필요한 기능과 프로세스를 다 죽여서 전력 소모를 최소화하는 저전력 모드라는 게 있다. 나도 핸드폰 배터리가 얼마 안 남았고, 휴대용 충전기가 없으면, 되도록 폰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 정말로 필요한 이메일과 카톡만 확인하면서 충전할 수 있는 곳을 찾는다. 저전력 모드에서는 페이스북이나 쓸데없는 브라우징 같은 건 아예 하지 않는다.

많은 스타트업 대표에게 지금이 이렇게 저전력 모드로 사업을 운영해야 하는 시기이다. 불필요한 모든 비용을 최소화하고, 재충전이 가능한 시점까지 살아남기 위해서 정말로 해야 할 일만 해야 한다.

얼마 전에 내가 페이스북에 포스팅한 내용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개인적인 의견과 스트롱의 의견이 많이 반영된 내용이지만, 다른 VC 들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포트폴리오 대표들에게 할 것이다. 파이팅.

요새 내가 우리 투자사 대표님들에게 많이 하는 말:
1/ 불경기에 성장은 쉽지 않다. 성장 안 해도 괜찮다.
2/ 그래도, 가급적이면 수치가 떨어지지 않게 유지하면 좋겠다.
3/ 수치가 떨어지더라도, 너무 많이 떨어지지 않게 해주면 좋겠다.
4/ 불경기에 펀딩 어렵다. 무리하게 펀딩 시도하지 말아라.
5/ 지난 라운드랑 동일한 밸류인 flat round도 괜찮다. 요샌 이렇게 받아도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6/ 지난 라운드보다 낮은 밸류인 down round도 괜찮다. 돈 주겠다는 귀인이 있으면, 그냥 무조건 받아라.
1/ ~ 6/번의 내용이 자신만만하고 야심 찬 창업가들에겐 김빠지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서 속상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존심 상하고, 속상해하려면, 일단 회사가 있어야 한다. 회사가 망하면 자존심도 안 상하고 속상할 일도 없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건 살아남는 거다. 2024년까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자. 그리고 그 이후에 다시 성장이나 펀딩이나 밸류에이션 이야기를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