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undersAtWork

차이를 인정하기

우리도 요새 새 펀드를 만들고 있고, 아무리 업력이 좀 있고, 숫자가 나쁘지 않아도, 역시 남의 돈 받는 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인거라는걸 매일 생생하게 체험하고 있다. 좋은 회사에 투자하는 것도 어렵지만, 투자하기 위해서 남의 돈 투자 받는 거에 비하면, 투자는 오히려 쉽다는 생각도 가끔 하고 있다. 스타트업 대표님들이 피칭할 때 느끼겠지만, VC도 매우 다양하다. 모두 성향이 다르고, 투자 분야, 스테이지 등에 따라서 선호하는 회사와 창업가가 다르다. 비슷한 맥락에서, 우리 같은 펀드에 출자하는 LP들도 모두 다르다. 이건 LP들 개인적인 성향에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그 회사의 역사와 색깔 등에 따라서도 아주 다르다는 점을 항상 느낀다. 예를 들면, 우리 같은 초기 투자자는 손실을 보호하는데(=downside protection) 너무 신경 쓰진 않는다. 초기 투자의 성격상 리스크가 크고 어차피 손실을 보호할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수익을 극대화하는데 모든 노력과 초점을 맞추는 편이다. 손실은 발생할 수밖에 없지만, 초기 투자에서 홈런을 친다면 이 손실을 모두 커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전략을 좋아하는 LP도 있지만, 엄청나게 싫어하고 이런 투자를 이해하지 못 하는 LP도 있다.

한국과 외국 LP 간에도 여러 가지 차이점이 존재하는데, 한국 LP는 거의 물어보지 않지만, 해외 LP는 항상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가 “스트롱벤처스 파트너들의 파트너십이 정말 strong 하냐? 내가 돈 맡겼는데, 너희 둘이 싸워서 파트너십이 깨지면 어떻게 하냐?” 이다. 우리 회사와 펀드의 수익률 등의 정량적인 수치도 당연히 중요시하지만, 내가 요새 느끼는 건, 큰 해외 LP는 수치보단 이런 파트너십의 역사와 견고함에 엄청 신경 많이 쓴다는 점이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많은 VC가 만들어졌다가 다시 해체되는데,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VC의 실적보단, 파트너십의 문제 때문이다. 파트너들이 서로 싸워서 헤어지면서, VC가 해체되는 걸 나도 꽤 많이 봤는데, 결국 이들을 믿고 돈을 맡긴 LP 한테는 치명적인 리스크가 된다. 또한, 담당 파트너가 만약에 회사를 나갔다면 투자사들도 문제가 발생했을 때 상의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져서 곤혹을 치르는걸 많이 봤다(전문용어로는 ‘고아’가 됐다고 한다).

실은, 이 질문을 받으면 나랑 존의 파트너십은 아주 탄탄하다는 걸 뭔가 정량적으로 증명하는 게 쉽진 않지만, 내가 강조하는 몇 가지 포인트가 있긴 하다. 일단 우리 둘을 모두 아는 분들은 공감하겠지만, 우린 정말 다르다. 성향도 다르고, 회사에 대한 시각도 다르고, 무엇보다도 성격 자체도 아주 다르다. 이런 다른 두 사람이 같이 사업을 하다 보면 엄청 많이 부딪히고, 엄청 많이 싸우는데, 우리도 실은 그렇다. 8년 동안 맨날 싸웠고, 서로 동의하지 못했고, 요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의 파트너십은 더욱더 strong 해졌고, 앞으로 더 strong 해질 것이다. 여기엔 내가 생각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 거 같은데, 일단 우린 비즈니스 동료이기 전에 초등학교 친구라는 점이 강하게 작용하는 거 같다. 워낙 어릴 적부터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자랐기 때문에 – John은 내 세컨드 와이프라는 농담도 자주 한다 – 아무리 의견 차이가 커서 대판 싸워도, 파트너십이 안 깨진다. 그리고 올해로 우리가 8년째 스트롱을 같이 운영하다 보니, 이미 그동안 너무 많이 의견충돌하면서 서로를 솔직하게 경험했고, 이게 8년 동안 지속하다 보니까 이젠 웬만하면 금이 가지 않는 파트너십이 만들어진 거 같다.

이렇게 서로의 의견 차이를 인정하면서 같은 방향을 보고 비즈니스 하는 걸 잘 표현한 영어가 있는데 바로, “agree to disagree”라는 말이다. 말 그대로, 서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걸 동의한다는 의미이며, 역사가 오래된 VC 파트너십의 관계를 잘 설명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하나의 브랜드를 갖고 비즈니스를 한다는 건, 파트너들이 모두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건 너무나 당연한 거 같다. 하지만, 같은 방향을 보더라도, 어떤 사람은 천천히 가고, 어떤 사람은 빨리 가고, 어떤 사람은 지름길을 택하고, 어떤 사람은 일부러 돌아가는 길을 택한다. 이런 방법론에서 상당히 많은 fine tuning이 필요한데, 여기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게 매우 중요한 거 같다.

우린 이제 VC로서 8살이 됐다. 솔직히 8년 경력으로는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민다. 한국은 찾기 힘들지만, 미국의 경우 파트너십의 역사가 20년 이상인 좋은 VC가 많은데, 이들에 비하면 우린 아직은 완전 주니어 VC이지만, 남이 만들어 놓은 하우스에 취직한 게 아니라, 우리가 만든 하우스를 8년 동안 잘 지켰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잘하고 싶다.

같이 성장하기

우리 투자사 중 온라인 취미 클래스를 모바일로 제공하는 클래스101이 얼마 전에 꽤 큰 시리즈 A 투자 유치를 했다. 내가 항상 강조하는 게 투자를 많이 받은 거와 회사가 성공하는 거랑은 상관관계는 약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큰 투자를 받으면 두 가지 측면에서는 확실히 도움이 된다. 일단, 직원들의 사기가 높아지고, 이로 인해 내부 자신감이 강해진다. 그동안은 스스로 열심히 한다고 모니터만 보고,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누군가 외부에서 100억 원 이상을 투자한다는 건, 이렇게 열심히 일 하는 게 헛짓은 아니라는걸 인정하는 거로 해석할 수 있다. 또 다른 건, 이렇게 큰 투자를 받은 내용이 보도되면, 좋은 인재를 채용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아무래도 경험이 많은 인재들은 몸값이 비싼데, 큰 투자를 받은 회사에 입사 지원 할 확률이 더 크기 때문이다.

클래스101은 내가 직접적으로 알고 경험한 스타트업의 컴백 스토리 중 가장 드라마틱하고 재미있다. 아니,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재미있고, 술 먹으면서 즐겁게 안줏거리 삼을 수 있는 이야기지만, 당시 힘들었을 때는 정말 절망적이었다. 이 컴백 이야기에 대해서는 내가 전에 잠깐 적이 있다. 클래스101 투자 소식이 발표되자마자 나는 미국에 있는 강광욱 교수님한테 카톡으로 감사하다는 문자를 전했는데, 오늘은 강교수님과의 인연, 유니스트와의 인연, 그리고 클래스101 투자에 대해서 좀 써보고 싶다.

2015년 2월 나는 한국에 잠깐 출장 나와 있었는데, 여기서부턴 강광욱 교수님이 페이스북에 쓴 내용을 그대로 공유한다:

당시 한국을 출장차 방문 중이셨던 Kihong Bae 대표님은 바로 답장으로 (2월 11일 밤 11시경) 유진과 나에게 이메일을 주셨다. 마지막 문장이 “I am actually in Korea right now but leaving on 15th back to LA. Would love to talk / email with you.”
방학이었던 나는 메일을 받고 바로 전화를 했는데 미팅중이었던 터라, 다음날 (2월 12일 밤 11시경)에 답변을 쓴다. “배기홍 선생님..”으로 시작하는..

그리고 일정이 맞지 않아 고민하던 차에 2월 15일 인천공항에서 출국하는 2층 어느 한식 집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 한 시간 여의 짧은 만남을 하게 된다. 창업교육센터를 시작하면서 답답한 마음에 처음 읽었던 책이 ‘스타트업 바이블’이었는데 당시 배대표님의 첫 소개 말씀이 ‘스타트업 바이블’이라는 책을 썼다 하셔서, 아 그럼 혹시 중앙대 출신 아니시냐며 여쭙다가 동문 선배님임을 알게 되었다. 그날 UNIST의 특강을 요청드리고 다음에 한국 나오실때 (당시에 LA에서 거주 하셨음) 울산에 와주십사 요청을 드렸는데 공항까지 쫓아나와준 수고로움 탓인지 기꺼이 응해 주셨고, 다음달인 3월 9일 UNIST에서 학생들 대상으로 처음 강의를 해주셨다.

그날 공항에서 짧은 시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중 하나가 내가 잘은 모르지만, 뭔가 실속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은데 도와주시라! 였다. 기계연에서 일하면서 정부 프로그램 들의 보여주기식을 좀 알던터라 그리 말씀드렸는데, 당시 Strong Ventures는 초초기 투자를 하고 있었고 남들이 서울할 때 지방의 가능성을 보고 계셨다.

아마도 ‘스타트업 바이블’ 책에서 그 고충과 치열함을 봤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학교라는 인연이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짧은 만남의 강렬한 인상때문일까.. 나 역시 자연스레 의지한 부분이 있었고,
서울에서 beGlobal 서울 컨퍼런스가 있는데 학생들과 와보면 어떻겠냐는 배대표님 말씀에 버스 한대를 이끌고 울산에서 DDP까지 가서 보면서 그 치열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이 무모함이 아마 배대표님께도 조금은 믿음을 주었던지 그 이후 계속 Skype 통화를 하면서 UNISTRONG이라는 프로그램이 탄생하게 되었다.

학생들 선발, 지원금, 숙소 선정, 비행기 등 한번도 대규모로 학생들에게 지원을 해준적도 없고 무모 했는데, 우한균 교수님은 뭐 해보지뭐, 내가 알아서 할께 해봐! 라고 하셨던것 같고 배대표님과 나의 실험은 그렇게 한발작씩 나가게 된다. 그 첫해 프로그램에 뽑힌 팀이 페달링, NPC, 그리고 Nspoons. 페달링과 엔스푼즈는 이미 교내에서 두각을 날리던 팀이라 이 팀이 해외연수(학생들에게는 그렇게 보였던것 같다. 해외연수로)가 아닌 Incubating을 가는데 상당히 반발이 있었던 것 같다.

여튼 그렇게 인연을 맺게되어 아마 학생들도 Strong Ventures의 배기홍 존남 대표님께서도 처음 프로그램이라 더욱더 많은 시간을 쏟으셨던것 같다. 4주 프로그램이 끝날 무렵 직접 내가 LA에 가서 보고 학생들과의 1:1 면담, 문제점 등을 물어보았고, 다들 힘들지만 만족스럽다고 했다. 그때 LA의 한 소주방에서 노래방 기기(?)를 앞에 두고 소주와 김치찌게가 놓인 긴 방에서 한국/미국인 투자자를 모시고 Pitching하던 장면도 잊을수가 없다. 배대표님께서 조금 웃기죠? 하시며 민망해 하셨던것 같은데 아무렴 어떠냐, 다들 저렇게 진지한데 라고 답변 했던것 같다. 다음날 아마 Strong Ventures와 StudyMode에서 페달링과 엔스푼즈에 5천만원 정도로 투자할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위의 강교수님 이야기를 내 버전으로 다시 해석을 좀 해보면…실은 한국 출장 나오면 엄청나게 바빠서, 원래 계획에 없던 미팅은 웬만하면 하지 않는 게 내 원칙이다. 주로 5일 한국 출장 나오면, 오찬 미팅부터 시작해서, 저녁 1차, 2차 까지 하면 하루에 미팅을 7개 정도를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한 3일 차 정도 되면 빨리 마무리하고 집에 가고 싶을 정도로 바쁘고 정신이 없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유니스트라는 학교의 교수가 시간을 내달라고 하니까 당연히 귀찮기도 하고, 몸도 피곤하니까, 다음에 한국 다시 나올 때 그때 보자고 한 거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 사람은 그냥 포기하는데, 강교수님은 좀 집요했다. 결국, 이분은 이번에 만나지 않으면 LA까지 쫓아오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출국하기 전 인천공항에서 잠깐 보기로 했고, 그 만남으로 인해서 유니스트와의 인연이 생겼고, 좋은 유니스트 창업가 회사들에 투자하게 됐다(클래스101, 엔스푼즈/헤이마일로, 10B/씀).

클래스101 후속 투자로 인해 스트롱벤처스 투자사의 기업가치가 올라간 건 투자자로서 당연히 너무 좋다. 그런데 이런 밸류에이션을 떠나서,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행복하고 고맙게 생각하는 건, 바로 2015년 2월 강광욱 교수님과의 첫 만남 이후, 4년 동안 우리 모두 같이 성장했다는 점이다. 클래스101 창업멤버들은 우리가 처음 투자할 때는 사업에 대해서는 잘 모르던 순진한 학생들이었는데, 이젠 기업의 미션과 가치에 대해서 나랑 이야기하고, 직원들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모티베이트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그 4년 동안 진흙밭에서 구르면서 학생에서 사업가로 멋지게 성장한 것인데, 실은 나는 개인적으로 이게 너무너무 감동적이다. 뭐, 그렇다고 내가 뭘 해준 건 없지만, 그냥 옆에서 이 여정을 같이 한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 강광욱 교수님은 이제 한국을 떠나 미국의 Salisbury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시는데, 한국-미국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가장 좋은 네트워크와 산지식/산경험을 확보한 한국 교수님이 된 거 같다. 교편을 잡고 있는 교수님이지만, 내 눈에는 이미 본인은 entrepreneur로 성장하셨다.

나는? 나 또한 클래스101을 보면서 많이 배웠다. 일단, 사람의 힘은 대단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됐다. 누가 봐도 망한 회사를 이렇게 멋지게 컴백시킬 수 있었던 건 타이밍과 운이 중요한 역할을 하긴 했지만, 결국엔 이 젊은 친구들이 만든 작품이다. 그리고, 끝나기 전에는 끝나지 않았다는 다소 상투적인 이 말의 힘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남이 끝났다고 해도, 내가 끝나지 않았다고 하면, 아직은 끝나지 않은 것이고, 이런 자세와 마음가짐에서 변화는 시작되는 거 같다.

우리 모두 앞으로 같이 더욱더 성장하길.

고객마다 다르다

나도 자주 주장하고, 도 몇 번 썼지만, 나는 웬만하면 비즈니스 모델과 제품을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게 심플하게 가져가라고 한다. 여기에는 심플이 최고라는 뻔한 거 외의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창업가 스스로 자신이 하려고 하는 걸 너무 어렵게 설명하는 사람은 그 비즈니스에 대해서 아주 깊게 고민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복잡한 기술과 비즈니스라도, 오랫동안 곰곰이 고민하고, 여러 사람과 고객을 만나면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가장 명쾌하고 간략하게 설명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걸 나도 경험했기 때문에, 이런 분들한테는 조금 더 생각해보고 비즈니스를 쉽게 설명해보라는 조언을 한다. 또 다른 이유는 요즘 잠재 고객은 너무 바빠서, 조금이라도 설명이 길어지거나 어려워지면 더는 창업가의 말을 잘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주어진 짧은 시간 안에 내가 하려는 사업을 설명하려면 무조건 심플, 심플, 그리도 또 심플하게 설명해야 한다. 있는 앱도 지우는 게 요새 트렌드인데, 복잡한 건 정말 들으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위의 두 번째 이유는 일반 소비자들이 사용하는 B2C 제품에 해당하는 경우다. 기업이 사용하는 B2B 제품은 조금 다를 수도 있다. B2B 제품은 기술이랑 비즈니스 모델이 좀 복잡해도, 개인의 필요에 따라서 사용하거나 구매하는 게 아니라, 개인이 속한 회사가 필요한 제품이고, 이 제품을 분석하고 도입을 검토하는 게 업인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굳이 모든 걸 너무 심플 화해서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설명할 필요는 없는 거 같다.

가끔 머리가 너무 좋은 창업가를 만나는데, 이런 분들이 야망까지 크면, 주로 사업 초반부터 세상을 정복하려고 한다. 하드웨어도 만들고, 소프트웨어도 만들 수 있고, 자체 제품도 만들고 남의 제품을 OEM으로 할 수도 있다고 한다. 물론, B2C, B2B, B2G도 다 가능하다. 이분들의 논리는 이걸 그냥 패키징만 다르게 하면 된다는 건데, 내 경험에 의하면 이렇게 하면 아무것도 제대로 못 한다. 물론, 회사가 커지고 사람도 많아지만 결국엔 모든 걸 다 할 수 있겠지만, 일단 시작은 이 중 딱 하나만 선택하고 방향을 잘 잡아서 아주 깊게 들어가라는 조언을 나는 자주 한다. 이런 분들한테는 나는 그러면 오히려 B2B 쪽으로 사업 방향을 잡아보라고 한다. 생각하는 게 너무 많고, 비즈니스가 복잡해서 B2C 시장은 힘들지만, 그래도 기업이 돈을 벌거나, 비용을 절감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면, 아무리 복잡한 비즈니스 모델이라도 누군가 진지하게 검토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비즈니스 모델이 너무 복잡하냐 아니냐의 상대적인 기준은 내 제품을 과연 누가 구매할 것인가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을 거 같다. 물론, 이걸 잘 팔 수 있냐 없냐는 또 별개의 문제이긴 하다.

산 너머 산

정상인들이 보면 대부분의 창업가는 불가능한 일을 하려고 하는 비합리적인 사람들이다. 실은, 나같이 이런 회사와 창업가를 매일 만나는 사람도 항상 신기하게 생각한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고, 왜 굳이 이렇게 힘든 길을 가는지 항상 물어보는데, 그럴 때마다 매번 신기하고, 매번 존경스럽다. 하지만, 이런 비합리적이고 비현실적인 사람들이 상상하기도 힘든 엄청난 비즈니스를 만드는 걸 바로 옆에서 볼 기회가 많은 게 또한 내가 하는 일이기 때문에, 항상 “이건 안 되는 게 정상이지만, 만약에 정말로 이 친구가 그리는 미래가 만들어진다면?”이라는 질문을 스스로 많이 하는 편이다.

언젠가 전 세계 300개 이상의 유니콘 비즈니스 중, 한국에서는 거의 60개가 규제 때문에 불법이라는 기사를 봤다. 내가 생각해도 한국에는 이해하기 힘든 규제가 좀 많긴 하다. 규제가 무조건 필요 없다는 입장은 아니지만, 한국의 많은 규제가 특정 집단과 조직을 보호하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이 강하다는 걸 매번 느낀다. 그리고 이런 규제가 심한 산업에서 뭔가를 바꿔보겠다고 시작하는 창업가들은 시작하는 첫날부터 이런 규제의 무게를 온몸으로 체감한다. 그 무게가 너무 고통스럽고,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포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정면돌파를 시도하는 용감한 창업가도 가끔 만난다. 기존 은행과 제도권과 싸워야 하는, 돈이 관련된 핀테크나 암호화폐 분야, 택시조합 등과 싸워야 하는 모빌리티 등이 아마도 이런 대표적으로 규제가 강한 분야인 거 같다.

실은 이런 분야에서 이제 갓 시작하는 스타트업을 우리 같은 VC가 만나면, 어떤 조언을 해줘야 할지 나도 애매하다. 맘속으로는 스타트업은 세상을 바꿔야 하니까, 무조건 열심히 집중해서 하면 이런 규제는 넘을 수 있다고 강조하고 싶지만, 직접 손을 더럽히지 않고 사업을 하지 않는 제삼자의 입장에서 이런 말을 하는 건 너무 무책임하고 진정성이 없다. 그렇다고 뭔가 해보겠다고 하는 창업가한테 그 어떤 스타트업도 정부를 상대로 싸워서 이길 수 없으니까, 그냥 일찌감치 포기하고 규제가 없는 다른 사업을 하라고 하는 것도 미래, 혁신, 변화, 불가능에 투자하는 VC한테는 어울리지 않는 거 같다.

나는 그래도 굳이 한쪽을 택하라고 하면, 버티면서 하라는 쪽에 한표를 강력하게 주고 싶다. 실은 규제가 없는 분야에서 사업을 해도 너무나 많은 산을 넘어야 하는데, 규제가 심한 분야는 엄청나게 높은 산을 넘어야 하고, 이같이 엄청나게 높은 산이 한두 개가 아니라,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다. 그래도 나는 한번 해보라고 권장하고 싶다. 실은 등산도 비슷한데, 높은 산을 처음 넘을 때가 가장 힘들다. 체력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힘들지만, 자신의 체력을 안배하면서 중간마다 쉬면서, 시간이 오래 걸려도 일단 한번 높은 산을 정복하면 그다음 산을 넘는 건 더 수월해진다. 이게 아마도 체력도 쌓이고, 자신감도 쌓이고, 불가능해 보인걸 가능하게 만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겼기 때문인 거 같다.

사업도 비슷한 거 같다. 높은 산을 하나 넘고, 두 개를 넘고, 세 개를 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체력, 경험, 자신감이 생긴다. 그리고 운 좋으면 같이 산을 넘을 수 있는, 옆에서 서로 격려해주는 좋은 동료도 생긴다. 그러다보면 높은 산을 여러개 넘을 수 있고, 이렇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주변에는 우리 팀 말고는 아무도 안 남게 된다. 경쟁사들이 알아서 하나씩 나자빠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높은 산들을 꾸준히 넘다가 나 혼자만 남게 됐을때, 그리고 운도 어느정도 우릴 도와주면, 그때 우린 새로운 유니콘이 탄생하는걸 가끔 경험할 수 있다.

즐기며 일하기

올해 초였던 거 같은데,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에 22살의 종이접기 달인 청년에 대한 이야기가 방송됐다. 그냥 일반적인 종이접기가 아니라, “한장종이접기”라는 분야의 달인인데, 말 그대로 종이 한장을 자르거나 분리하지 않고, 도면 하나 없이 온전히 한 장을 접어서 이 세상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는 청년이었다. 일반인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오타쿠의 경지에 오른 이 젊은 친구가 한장종이접기 하는 걸 보면 정말 예술 그 자체였다. 원래 이 프로는 내가 보는 방송은 아니지만, 이날만큼은 TV에 눈을 고정하고 끝까지 다 봤다. 전에 내가 올렸던 텀블러 창업가 David Karp의 부모님같이, 이 친구의 어머니도 일반 한국 부모님과는 달리, 아들이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할 수 있게 적극적으로 아들을 지지하고 지원해주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동안 이 친구가 여러 번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던 프로젝트가 바로 호랑이 접기 였는데, 이 프로에서 다시 한번 도전을 하고, 여러 번 실패 후, 성공했다. 성공하면서 이 주인공은 “어떤 것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죽을 때까지 종이접기를 할 것 같다. 이 세상에서 종이접기를 제일 좋아하니까 그만둘 생각은 없다”라는 말을 했는데, 이 말은 나한테는 울림이 매우 컸던 거 같다. 이 말을 하면서 이 청년의 얼굴에서 내가 봤던 그 뿌듯한 성취감과 기쁨의 표정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거 같다. 내가 일하는 이 스타트업 분야에서도 대부분의 창업가는 하는 일을 진심으로 즐기기 때문에 힘들어도 버티면서 계속 전진하지만, 이런 완벽한 성취감의 표정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다.

“즐기면서 일하고, 하는 일을 즐겨라”라는 말에 대한 해석도 여러 가지고, 이게 틀렸다고 하는 전문가도 많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이 말을 전적으로 믿는다. 이 말이 틀렸다면, 내가 가장 가까이서 매일 보는 창업가들은 미친 사람들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 좋은 학교 나오고, 그 좋은 직장 다니다가,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해도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부족한 자원으로 사업을 한다는 건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이다. 그래도 이분들이 힘든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건, 하는 일을 즐기기 때문이다. 물론, 즐긴다고 다 잘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어차피 비현실적이고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은 일을 하려면, 최소한 그 일을 즐겨야 한다.

우리 집 앞에 내가 애용하는 이발소가 있다. 바버는 젊은 청년인데, 아직 경험도 적고, 돈도 별로 없어서, 좌석 3개짜리 미용실의 자리 하나를 바버샵으로 개조해서 운영하는데, 개업 첫날 부터 나는 다니기 시작했고, 이젠 꽤 친해져서 이발하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한다. 이 친구도 사업에 관심이 많아서, 언젠가는 독립해서 바버샵을 차릴 계획을 갖고 있고, 소위 말하는 unit economics에 대해서 우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발소 같은 비즈니스는 기본적으로 돈벌이가 이발사가 일하는 절대적인 양에 비례하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비즈니스와 같이 크게 확장하는 게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 친구도 당연히 그 말을 잘 이해하고 있고 나한테 다음과 같을 말을 했다. “그렇죠. 그래서 기본적으로 바버를 오랫동안 즐기면서 하려면 노동 자체를 즐겨야 해요. 노동을 싫어하는 사람은 바버를 절대로 오래 못 하죠.”

농구선수였던 서장훈씨는 일을 즐기면서 하라는 말을 버릇처럼 반박하면서 그건 말도 안 된다고 하는데, 나는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곰곰이 생각해보면, 서장훈씨가 신체적으로 월등했지만, 농구선수로서의 커리어는 그렇게 빛나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하는 일을 즐기지 못해서 그랬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