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바이블 QA

석탄 기관차

옛날 만화를 보면 기관차에 동력을 제공하기 위해서 누군가 엔진에 계속 석탄을 투입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조금 과장된 면이 있지만, 더 빨리 가거나 언덕을 올라가기 위해서 동력이 더 필요하면 더 열심히, 더 많은 석탄을 삽으로 퍼서 계속 투입하고, 누군가 뒤에서 쫓아오는 추격전을 보면, 더 빨리, 더 많은 석탄을 투입하면 더 멀리 달아났다가, 또 추격자와 가까워지면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다시 석탄을 더 투입하는 장면이 나는 기억난다.

요새 우리 투자사 몇 군데를 보면 이 석탄 기관차가 생각난다. 우리가 투자한 회사는 이 석탄 기관차이고, 대표님은 동력을 얻기 위해서 열심히 삽질해서 석탄을 투입하는 힘센 노동자다. 그리고 이 회사에 투입된 투자금이 석탄이다. 창업 초기에는 회사에 자본이 없기 때문에 투자를 받아서 사람을 채용하고, 제품을 만들고, 마케팅하고, 사업 관련 모든 자금은 실은 외부에서 유치한 투자자의 돈으로 충당된다. 소위 말하는 VC sponsored business를 창업 초반 몇 년 동안은 하게 된다. 계획했던 대로 많은 일들이 풀리면, 어느 정도의 투자금을 태운 후엔 소소하게 자생할 수 있는 비즈니스를 극소수의 창업가는 만든다. 이 정도만 해도 절반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기관차를 예로 들면, 그냥 적당한 속도로 계속 철길을 따라 움직이기 위한 석탄은 자생적으로 내부에서 만드는 게 가능해진다. 엄청나게 빨리 가기 위해선 더 많은 석탄을 태워야 하는데, 이 정도의 석탄은 내부에서 만들지 못하지만, 그냥 멈추지 않고 계속 칙칙폭폭 가기 위한 석탄은 스스로 충당할 수 있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 외부에서 대량의 석탄을 공급받으면, 다른 기관차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고, 뭐, 계속 이런 과정이 반복된다.

순수 소프트웨어 사업을 하는 대표들은 이런 상황이 그렇게 익숙하진 않을 것이다. 한계 비용이 대략 제로이기 때문에 기관차를 움직이기 위해서 계속 석탄을 투입하는 시나리오가 그렇게 흔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뭔가를 직접 생산해서 판매하는 사업을 하는 대표들은 이 석탄 기관차 상황이 너무나 익숙할 것이다. 아마도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도 열심히 삽질해서 석탄을 투입하고 있을 테니까. 매출을 만들기 위해선 팔 수 있는 제품이 필요한데, 일단 제품을 만들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대부분 외부 투자를 통해서 생산 비용을 마련하는데, 직접 공장을 운영하지 않으면 – 대부분 외주 생산을 한다 – MOQ 라는 게 있어서 당장 판매에 필요한 제품보다 훨씬 더 많은 수량을 주문하고, 여기에 대부분의 투자금이 사용된다. 문제는 이렇게 주문한 제품이 아무리 마진이 높아도 실제 매출로 회사 통장에 입금 되기까진 상당히 긴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유통기한이 없는 제품이라면 수년 걸릴 수 있다.

예를 들어, 마진율이 80%인 제품을 10억 원어치 생산해서 판매하면 50억 원의 매출을 만들 수 있다. 이렇게만 보면 엄청난 사업이다. 그런데 이걸 조금 더 자세히 보면, 생산비용 10억 원은 한 번에 빠져나가는데, 이게 곧바로 50억 원의 매출로 회사 통장에 입금되지 않는다. 유통기한이 없는 제품이라면 2년에 걸쳐서 완판되고 50억 원이 2년 걸쳐서 현금화될 수 있다. 그 기간에 일부 제품이 더 잘 팔려서 재고가 소진되면, 중간에 또 주문이 들어가야 하고, 또 생산 비용이 발생하고, 마케팅도 하고 운영 자금도 필요하고 해서, 결국엔 계속 외부 투자를 받아야 하고, 어느 정도 수준까지 사업이 올라가기 전까진 이런 악순환이 계속 반복된다. 위에서 말한, 계속 가기 위해서 기관차에 석탄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 수년 동안 계속 지속된다는 말이다.

추가 투자를 받기 위해선 매출이 계속 발생해야 하고, 매출을 계속 만들기 위해선 그 매출보다 훨씬 더 큰 비용을 투입해서 생산해야 하고, 겉으론 고마진 사업이고, 매출은 증가하지만, 실제 회사의 현금 상황을 보면 항상 바닥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선 계속 석탄을 투입해서 기관차를 움직여야 한다. 계속 움직이다 보면 어느 순간 자체적으로 석탄을 지속적으로 만들 수 있는데, 대부분의 기관차는 이 시점이 오기 전에 영원히 멈춰서 더 이상 못 움직인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가 싫다면 사업을 안 하면 된다. 은하철도 999와 같이 어디에 있는지, 언제 도달할지, 목적지를 아무도 모르는 이 외롭고 힘든 여행을 계속하는 게 창업이고, 동력을 얻기 위해서는 석탄을 계속 투입해야 한다. 안 그러면 기관차는 멈추고, 거기서 모든 게 끝난다. 관건은 이 석탄을 외부에서 계속 지원받냐, 아니면 내부에서 석탄을 만들어서 다시 동력에 사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냐이다.

긴급 내부 브릿지 라운드

얼마 전에 글로벌 벤처 시장 관련 자료를 정리했는데, 가장 많이 인용되는 CB Insights 수치에 의하면 2021년도 전 세계 벤처 시장에 투입됐던 투자금은 자그마치 $644B이었다. 이때가 시장에 가장 많은 돈이 풀렸던 해였는데, 그 이후에 세계 경기와 벤처 시장이 어떤 방향으로 갔는진 모두 다 잘 알 것이다. 2022년도는 이 금액이 $418B으로 전 년 대비 35% 감소했고, 2023년은 어떻게 될지 잘 봐야 하지만, 시작부터 상당히 안 좋다. 2023년 Q1에 글로벌 벤처 시장에 투입된 벤처 투자금은 약 $60B인데, 이는 지난 5분기 연속 감소한 금액이다. 한국 시장과 글로벌 시장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보고 느끼는 현상에 의하면 2023년은 2022년 대비 최소 30% 감소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

역사를 보면 한국의 벤처 시장과 글로벌 벤처 시장은 거의 비슷하게 움직이는데, 한 가지 다른 게 있다면 타이밍이다. 주로 미국이나 다른 글로벌 시장에서 먼저 시그널이 오고, 이 시그널이 한국 시장에 도달하는데 약 3개월~6개월 정도 걸리니, 솔직히 말해서 올 하반기 한국 벤처 시장의 미래는 굉장히 어둡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이 어두운 미래의 시그널은 우리 투자사들의 재무제표와 펀딩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금 많은 우리 회사들의 현금이 메말랐는데, 이 와중에 성공적인 펀딩을 하는 회사는 상대적으로 너무 적다. 일단 돈이 없어도, 펀딩 자체를 포기하거나 시도하지 않는 회사들이 있다. 이들은 주변에서 보고 듣는 이야기를 잘 참고해 보니, 지금 시장에 나가봤자 투자받는 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냥 비용을 바짝 줄이고 살아남자는 전략을 택한 회사들이다. 어쩌면 이게 현명한 전략일 수도 있다. 대단하지 않은 사업실적으로 요새 투자 받는 건 불가능하고, 괜히 펀딩에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기면 그나마 유지되는 사업 자체가 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미 비용은 줄일 대로 줄였고, 한 달 벌어서 한 달 먹고 사는 회사들은 살기 위해서 펀딩을 시도하고 있는데, 요새 정말 쉽지 않다. 이런 회사들을 위한 방법의 하나가 바로 긴급 내부 브릿지 라운드이다. 시간도 없고 회사의 런웨이도 짧고, 무엇보다 투자자들이 찾는 성장을 못 만들고 있는 회사들이라서 오히려 새로운 투자자들에게 피칭하고 펀딩을 시도하는 건 시간 낭비이지만, 비즈니스 모델은 꽤 괜찮고 무엇보다 팀이 좋은 회사들엔 시도해 볼 만한 방법이다. 특히, 폭발적인 성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좋은 팀과 비즈니스 모델이 있는 스타트업이라면, 기존 투자자들에겐 회사의 가능성을 어필해 볼 만하다. 이 회사의 진가를 조금이라도 알아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건 바로 이 팀과 비즈니스를 오랫동안 지켜봤던 기존 투자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존 투자자들로만 구성된 내부 브릿지 라운드를 시도할 땐, 이런 구조로 진행을 해보면 된다:
1/ 일단 회사가 단기적으로 필요한 최소 금액을 산정해 본다. 어떤 걸 기준으로 최소 금액을 산정할까? 1억 원이든 10억 원이든, 이 브릿지 금액을 다 소진했을 때, 반드시 흑자 전환을 통해서 외부 자금 없이 사업을 할 수 있거나, 또는 훨씬 큰 다음 라운드를 진행할 수 있을 정도의 수치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2/ 1번에서 최소 금액이 계산됐다면, 기존 주주 중, 유의미한 투자자들의 보유 주식 비율대로 브릿지 투자금을 할당해 본다. 아주 간단하게 예를 들어보겠다. 필요한 브릿지 투자금이 10억 원이고, 유의미한 투자자 4곳의 보유 주식 수가 순서대로 400주, 300주, 200주, 100주, 총 1,000주라면, 각 투자자에게 할당하는 금액은 4억 원, 3억 원, 2억 원, 1억 원이다. 즉, 지분이 가장 많은 기존 투자자가 이론적으로 가장 많은 브릿지 금액을 투자해야 한다.
3/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이 긴급 내부 브릿지 라운드에는 모든 유의미한 투자자들이 참여해야 한다. 모든 주주가 회사에 대한 support를 보여야 하며, 하나라도 빠지면 이런 브릿지 라운드는 그 의미가 빛이 바래고, 부러질 것이다.
4/ 이 브릿지 라운드의 의미는 가망이 없어서 죽어가는 회사를 일시적으로 살리기 위한 자금이 아니다. 설령, 회사를 잘 모르는 외부에서 봤을 땐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만, 결국엔 이 회사, 팀, 비즈니스를 가장 잘 아는 기존 투자자들이 일시적인 자금 문제만 해결하면 밝은 미래가 있다는 걸 인정하고 추가 자금을 투입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 3번의 모든 주주의 참여가 중요한 것이다.
5/ 주로 이런 긴급 내부 브릿지 라운드에 대한 대화는 기존 투자자 중 이사회 멤버가 리딩을 한다. 이사회 멤버가 다른 투자자들과 이야기하고, 이들을 설득해서 짧은 시간 안에 모든 투자자의 동의를 얻고 진행을 해본다.

그런데 이게 항상 이렇게 진행되진 않는다. 기존 투자자들이 회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매우 다를 수 있고, 모두 다 긍정적으로 보더라도 각 투자사의 상황, 그리고 각 펀드의 상황이 있기 때문에, 내가 시도했던 이런 긴급 내부 브릿지 라운드는 성공적으로 진행된 적 보단, 중간에 부러진 경우가 훨씬 많다.

중간은 없다

얼마 전에 “시대의 1등주를 찾아라”라는 책을 읽었다. 실력 있는 펀드매니저가 이 업계에서 17년 동안 롱런하면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의 일부를 책으로 써서 공유한 내용인데, 나는 이분이랑은 다르게 비상장 회사에 투자하고 있어서, 시장을 보는 방법과 투자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많이 다르긴 하다.

하지만, 상장회사에 투자하든 비상장 회사에 투자하든, 결국 모든 투자의 기본은 비슷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일단 기본적으로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공부 못지않게 어떻게 투자할지에 대한 자기만의 철학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공부도 중요하지만 자기만의 철학이 좋은 투자자와 그렇지 않은 투자자를 구분할 수 있는 가장 핵심 잣대라고 생각한다. 이분은 상장기업에만 투자하는데, 사람, 감, 그리고 비공개 데이터를 보고 투자하는 우리와는 완전히 다르게 오롯이 데이터, 시장, 그리고 보고서만을 기반으로 투자한다. 이런 전략이 맞는지 틀렸는진 나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분의 실적을 보면 결론적으론 어느 정도 맞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매번 이런 전략이 맞는 건 아니다. 분명히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할 것이지만, 가장 중요한 건 17년 동안 작가가 이 사업을 하면서 자기만의 전략과 철학을 스스로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불확실성투성이인 주식 시장이나 이보다 불확실성이 훨씬 높은 초기 스타트업 시장에서 항상 승리하진 못 해도, 미치지 않고 롱런할 수 있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자기만의 생각과 철학이다.

이 책에서 계속 등장한 전략 중 하나가 “중간은 없다”이다. 작가가 계속 주장 하는 내용 중 내가 많이 공감했던 건, “매수냐 매도냐, 선택은 둘 중 하나이다. 중간은 없다.”라는 건데, 이건 우리가 투자하는 창업가들도 갖고 있는 마인드셋이긴 한다. 우리가 투자한 창업가들을 보면, 창업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건, 아이디어도 아니고, 돈도 아니다. 나한테 물어본다면 나는 창업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건, “시작” 그 자체와 시작을 했으면, 여기에 완전히 “올 인”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 속담 중 “시작이 절반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내가 보기엔 창업에 있어서는 “시작이 전부이다.” 시작하는 것 자체가 제일 어렵지만, 일단 시작하면 다른 건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단 시작했으면 여기에 올 인 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책에서는 “매수냐 매도냐, 선택은 둘 중 하나이다. 중간은 없다.”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스타트업 분야에서는 “창업을 하거나, 하지 말거나, 선택은 둘 중 하나이다. 중간은 없다.”라는 철학이 매우 중요하다. 어떤 창업가들을 보면 창업을 한 것도 아니고, 안 한 것도 아닌, 매우 애매한 상황에서 사업을 하는데, 이렇게 해서 잘 되는 사업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이럴 바에 그냥 창업하지 않고 인생을 더 편안하게 사는 걸 권장한다.

이렇게 쓰고 보니, 이런 중간은 없는 철학은 주식이나 창업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이 철학은 인생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가 있다. 인생에 있어서 뭘 하든, 하거나 안 하거나, 둘 중 하나이지, 애매하게 중간을 가는 건 실패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채용과 골든 타임

이 블로그에는 오늘 자로 1,395개의 포스팅이 개시되어 있다. 한때 외부 기고 글도 몇 개 올렸지만, 10개 정도를 제외하곤 전부 다 내가 직접 쓴 글이다. 메타태깅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각 주제나 소주제로 글의 내용을 분류하거나 검색하는 게 쉽지 않지만, 포스팅 중 많은 글들이 ‘사람’에 대한 내용이다. 모든 일에 있어서 사람은 매우 중요하고, 특히 스타트업에서 사람보다 더 중요한 게 없다는 게 내 지론인데, 경험이 쌓일수록 사람보다 중요한 건 없다는 생각은 더욱더 강해진다. 스타트업의 시작도 사람이고, 과정도 사람이고, 끝도 결국엔 사람이다.

사람과 채용에 대한 고민은 우리 투자사 대표님들이 가장 많이, 그리고 매일 하고 있지만, 워낙 어려운 문제라서 정답이 없다. 스타트업의 매 단계마다 우리에게 채용 관련된 도움을 요청하지만, 나 또한 작은 조직이 큰 조직으로 성장하면서 각 단계의 골든 타임에 그 성장에 맞는 사람을 직접 채용하거나 관리해 본 경험이 거의 없어서, 내가 줄 수 있는 도움에는 한계가 있다.

얼마 전에 맨손으로 1,000억 원 매출 규모의 회사를 만든 대표님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고, 자연스럽게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회사의 역사를 보면 큰 성장이 일어났던 중요한 변곡점들이 있었는데, 그 변곡점에 맞는 사람들이 적시에 채용돼야지만 성장이 제대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잘 찾아서 회사로 영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변화의 기미가 보일 때,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고 너무 늦지 않게 이분들을 영입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이 골든 타임을 놓치면, 필요한 만큼 성장을 못 하기도 하고, 그 이후에 계속 성장 기회가 왔을 때를 대비한 최적의 인재를 채용할 수 있는 내부 역량이 계속 준비가 안 되기 때문에 좋은 인재들의 유출이 발생한다. 인재가 계속 유출되면, 성장의 변곡점도 줄어들 것이고, 여기서부턴 역성장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성장의 기회를 잘 포착하고, 이때마다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고 좋은 분들을 영입해서 지속적으로 성장한 기업의 대표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게 있다. 바로, 기업의 단계마다 다른 성향과 능력의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된 내용 중 내가 자주 언급하는 사례는 쿠팡 이야기다. 쿠팡은 정기적으로 경영진들을 교체하는 거로 유명한데, 이걸 나쁜 시선으로 보면 회사가 사람을 부품같이 생각하고, 쓸모없어지면 인정사정없이 버린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실은, 냉정하게 보면 틀린 말은 아니고, 돈을 벌어야 하는 기업임을 감안하면 욕먹을 일도 아니다.
그런데 이 현상을 위에서 내가 말한 성장과 골든 타임의 관점에서 보면, 회사를 창업한 사람과 이 회사를 1,000억 원짜리 기업으로 만들 사람의 경험과 능력치엔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때마다 지속적으로 인재를 내보내면서 새로 영입하는 건 당연하고, 오히려 꼭 해야 하는 일이다. 1,000억 원짜리 회사를 만들고, 이 회사를 1,000억 원짜리 회사같이 운영하는 인력은 이 회사를 1조 원짜리 기업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더 나아가서, 1조 원짜리 기업을 운영하는 인력이 10조 원짜리 기업을 만들 수 있는 경험과 능력이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선 단계마다 여기에 맞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어떤 대표들은 이런 사람들을 계속 외부에서 찾는다. 왜냐하면, 1,000억 원 가치 기업이 1조 원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1조 원 기업의 성장을 경험해 본 인력이 필요한데, 이런 사람들은 현재 회사의 내부에서 충원하기엔 어렵기 때문이다. 쿠팡도 이런 각도로 사람들을 채용하는 거로 알고 있다. 그다음 단계로 성장하기 위해선 이커머스 플랫폼을 크게 성장시켜 본 경험을 가진 사람이 필요한데, 이런 사람들이 한국에 별로 없어서 아마존이나 월마트에서 조 단위의 성장과 운영을 경험한 인재를 적시에 채용해서 적소에 배치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렇게 더 큰 경험을 한 인재를 외부에서 영입하는 건 자연스럽지만, 위험한 방법일 수도 있다. 회사의 변곡점에서 큰 성장을 만들기 위해선 경험도 중요하지만, 이 회사의 기업문화와도 잘 맞는 사람들이 필요한데, 외부에서 인재를 영입하면 이 부분에서 자주 시행착오를 겪는 스타트업을 많이 봤다. 그래서 어떤 창업가와 대표들은 다른 차원의 성장에 대한 경험은 없지만, 그동안 회사 내부에서 일을 잘했던 분들을 승진시키는 방법을 사용한다. 기업 문화와의 fit은 더할 나위 없이 잘 맞는데, 내부 영입 전략의 리스크는 실력과 경험의 부재이다.

그래서 오늘도 많은 창업가들이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인재 영입에 엄청나게 노력하면서 계속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있다.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특정 단계마다 필요한 인재가 다르고, 이 다른 인재들을 내부든 외부든 영입해야 하는데, 영입하는 타이밍도 기가 막히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마른 수건 쥐어짜기

최근에 동남아를 다녀왔는데, 우려했던 대로 글로벌 경기는 아직 바닥을 치지 않았고, 시간이 갈수록 계속 안 좋아지는 걸 몸소 체감하고 왔다. 올해 하반기에는 조금 좋아질 거로 생각했지만, 매크로 경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불안하고, 나보다 더 큰 자금을 관리하고, 거시 경제를 잘 아는 분들은 2024년 하반기가 돼야지 경기가 회복할 거로 예측하는 것 같았다. 실은 올해 초에 동남아에서 큰 투자자들과 만났을 땐, 이것보단 분위기는 좋았었는데, 그동안 상황은 많이 악화된 것 같다. 우리에게 돈을 주는 LP들도 자금을 모집하는 게 쉽지 않다면, 우리 또한 펀드를 만드는 게 만만치 않고, 결국엔 우리가 투자한 회사들, 그리고 투자할 스타트업은 투자받는 게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다.

실은 시장에 돈이 넘쳐흘러도 대부분 스타트업은 투자받는 게 어렵고, 어차피 투자받는 건 항상 어려웠는데 경기가 나빠진다고 얼마큼 더 어려워지겠느냐고 생각하는 창업가분들도 많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분들에게 내가 말해주고 싶은 건, 생각보다 훨씬 더 시장 상황이 안 좋고, 엄청나게 좋은 성장이나 가능성을 보이지 못한다면, 아예 투자받을 생각조차 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그 시간에 그냥 사업에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입해서 투자금으로 런웨이를 연장하지 말고, 자체적으로 오랫동안 살아남을 방법을 찾으라고 하고 싶다.

우리도 우리 투자사 대표님들에게 이렇게 강력하게 조언하고 있다. 런웨이가 12개월 이상 남았다면, 비용을 더 줄여서 이걸 18개월로 늘려보라고 하고 있고, 런웨이가 18개월 남았다면, 24개월로 만들라고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런웨이가 6개월~12개월 남은 회사들이 실은 요새 가장 힘들 것이다. 이 기간에 비즈니스 모델을 더 견고하게 만들고, 마케팅을 조금만 더 해서 필요한 고객군을 모집할 수 있으면 런웨이가 떨어질 때쯤 흑자 전환이 가능하고 이후에는 자생하면서 더 좋은 조건에 추가 투자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시장이 이렇게 불안한 상황에서 모든 예측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는다는 가정하에 사업하는 건 너무 무모하다. 그리고 앞으로는 좋은 성장이 예측되는 사업이지만, 현재의 모습은 그냥 나쁘지 않은 사업이기 때문에 지금 펀딩을 시도하면 조건과는 상관없이 투자 자체를 받을 수 있는 확률이 너무 낮아서 이런 대표들에겐 펀딩을 시도해 보자는 말도 잘 안 한다. 대신, 최대한 비용을 더 줄여서 일단은 마이너스가 나지 않는 비용구조를 만들어 보자고 권장한다.

어쨌든, 은행에 현금이 많든 적든, 모든 대표들은 비용을 절감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사업을 하는 대부분 스타트업의 비용은 인건비와 마케팅비라서 많은 대표들이 극적으로 사람을 해고하고 있고, 마케팅 비용을 줄이고 있다. 어떤 분들은 일주일 만에 인력의 절반을 내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많은 스타트업이 마케팅 비용을 줄이고, 극적인 경우에는 마케팅에 아예 돈을 안 쓰기도 한다. 이렇게 인력도 줄이고 마케팅도 안 하면, 회사의 비용은 줄겠지만 이에 따라 매출 또한 확 감소하는 게 정상일 텐데, 오히려 나는 요새 반대의 상황을 목격하고 있어서 자주 놀라고 있다.

우리 투자사 중 인원을 20명에서 4명으로 줄인 회사가 있다. 놀랍게도 이 회사는 20명일 때보다 더 많은 매출을 소화하고 있고, 비용은 극적으로 줄였기 때문에 몇 달째 연속 흑자 경영을 하고 있다. 통장 잔고 또한 늘어나고 있다. 어떤 투자사는 월 2,000만 원 이상 집행하던 마케팅 비용을 80% 이상 줄여서 350만 원의 마케팅 비용을 쓰고 있다. 신기하게도 이 회사의 매출도 거의 안 떨어졌지만, 비용은 확 떨어져서 현재 흑자로 사업이 운영되고 있다.

공장과 같은 오프라인 자산을 소유하면서 운영이 핵심인 비즈니스는 위에서 말 한 소프트웨어 사업들보다 훨씬 더 극적으로 비용을 줄이면서 비용 구조를 개선하는 사례도 우리 투자사와 다른 스타트업에서 볼 수 있다. 어떤 창업가들은 공장에서 아예 몇 달을 먹고 자면서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구멍을 하나씩 다 점검하면서 마른 수건을 짜듯이 비용을 줄였다. 이게 재미있는 게, 그 구멍 하나만 보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런 구멍들이 운영 각 과정에서 정말 많이 보였고, 여기서 파악된 비효율을 모두 다 합쳐서 보니 어마어마한 비용 절감과 운영의 효율화를 추구할 수 있었다.

이렇게 절대로 줄일 수 없을 것 같던 비용을 확 줄이고, 창업 이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흑자 운영을 경험한 대표들은 새로운 긍정의 힘과 자신감을 얻게 된다. 그리고 이는 다시 또 새로운 싸움을 하기 위한 용기가 된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비용이라는 수건을 짜야 한다. 마른 수건이라도 계속 쥐어짜다 보면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공간이 분명히 보일 것이다.

Let’s make it happen and live to fight another 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