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C

교두보

전 세계가 오징어 게임에 난리가 났다. 개봉하기 전에 서울 여기저기서 택시와 버스에 오징어 게임 광고가 자주 눈에 띄었는데, 이름도 이상했고 익숙한 내용이라 그냥 웃고 넘겼었는데, 이게 이런 글로벌 히트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드라마 딱 9편만으로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콘텐츠가 될 기세이다. 실은 나는 아직 이 드라마를 못 봤지만, 관련 기사는 엄청나게 많이 읽었고, 이런 드라마를 만든 황동혁 감독과 한국 배우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이 드라마를 전 세계인에게 선보인 넷플릭스도 정말 대단한 회사라고 생각한다.

여러 기사 내용을 종합해보면, 황감독이 오징어 게임 아이디어를 생각한 건 10년 전인데, 그동안 한국의 투자자와 배우들은 내용이 너무 잔인하고 뻔해서, 흥행 못 할 거라고 하면서 모두 투자와 출연을 거부했는데, 이걸 넷플릭스가 픽업해서 투자하고 훌륭하게 배급해서 성공했다고 한다. 요새 워낙 OTT 전성시대라서 넷플릭스도 이제 끝났다고 하는 전문가들이 많았는데, 회사의 주가는 계속 상승하고 있고, 오리지널 콘텐츠의 수준은 더욱더 높아지고 있는데, 여기에 많은 공헌을 하고 있는 게 한국이라고 한다. 실은, 이 사실은 한국에 살고 있고, 한국의 콘텐츠를 계속 접하고 있는 나로서도 놀라운 일이긴 하다. 한국은 너무 유치하고 진부하고 예측가능한 콘텐츠만 생성한다는 오래된 기억과 편견이 있어서 그런지, 그동안의 한국 콘텐츠의 눈부신 성장과 발전을 나를 비롯한 많은 한국분들이 놓친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 트렌드를 넷플릭스는 2010년 초반부터 예의주시하고 있었던 것 같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5년 동안, 넷플릭스는 한국 콘텐츠에 약 8,000억 원 이상의 투자를 했는데, 이 금액은 우리보다 시장이 훨씬 더 크다고 알려진 인도시장에 투자한 금액의 두 배 이상이라고 한다.

같은 돈을 투자해서, 같은 수준의 콘텐츠를 만들어도, 넷플릭스가 아니라 다른 플랫폼이었으면, 오징어 게임이 이렇게 성공적으로 전 세계인의 디바이스와 화면을 통해서 알려졌을진 잘 모르겠다. 아마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좋은 콘텐츠의 가능성을 미리 알아본 선견지명, 많은 실패가 있었지만 결국 만들어진 좋은 콘텐츠, 그리고 다른 언어로 만들어졌고 다른 나라의 배우가 나오는 콘텐츠지만 글로벌 시장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글로벌 유통파워가 그 누구보다 좋은 플랫폼의 힘이 합쳐져서 탄생한 아주 기발한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넷플릭스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지만, 내가 보기엔 넷플릭스는 한국 콘텐츠의 글로벌 진출과 성공을 위한 교두보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건 스트롱벤처스가 한국 스타트업을 위해서 하고 싶은 역할이기도 하다. 우리도 9년 전부터 한국 스타트업의 가능성을 보고 미국 펀드로서 투자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꽤 많은 회사에, 꽤 많은 금액을 투자했다. 물론, 모든 스타트업이 오징어 게임만큼의 성공을 거두진 못 했지만, 몇 개는 해외로부터 큰 투자도 받으면서 상당히 큰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내가 보기엔 이런 교두보 역할을 많은 분들이 하고 싶어 하지만, 누구나 다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한국 시장도 잘 알아야 하고, 외국 시장도 잘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가지 예로, 한국 영화관에서는 이제 외국 영화의 더빙은 사라진 지 오래됐다. 대부분 한국 시청자는 외국 배우들의 오리지널 목소리를 선호하고, 한국인은 어릴 적부터 글을 읽는 교육을 잘 받았기 때문에, 자막처리를 해도 불편함 없이 잘 읽으면서 영화 내용을 이해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은 조금 다르다. 미국인은 글을 읽는 교육이 잘 안 됐기 때문에 영화를 자막처리하면 내용 자체를 잘 소화하지 못한다. 그래서 많은 미국인들은 오히려 더빙을 선호한다. 넷플릭스는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었고, 넷플릭스 사용자들의 취향을 이미 데이터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 맞춰서 자막과 더빙을 알아서 추천했다고 한다. 사소한 것이지만, 오징어 게임의 미국 성공에는 크게 기여한, 현지 시장을 잘 모르면 하기 어려운 그런 디테일이다. 한국 스타트업의 해외 교두보 역할을 하는 VC도 이러한 이유로 양쪽 시장을 매우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가장 한국적인 것을 가장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는 많은 분의 노력으로 인해서 이제 한국이 정말로 글로벌 메인스트림 시장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걸 요새 많이 느끼고 있다. 어쨌든 자랑스러운 순간이다.

섣부른 판단

며칠 전에 미디어 커머스라는 분야를 개척한 블랭크코퍼레이션에 대한 이런 기사를 읽었다. 요약하면, 미래 유니콘 가능성이 있던 회사가 임직원의 대규모 퇴사와 이직 문제 때문에 인사관련 문제가 커지고 있고, 무분별한 사업확장으로 인해서 회사의 적자 폭이 커지고 있다는 부정적인 내용이다.

이 기사에 대한 스타트업 관계자들의 의견은 다양하지만, 내 주변 많은 분들은 대부분 “그럴 줄 알았다” , “이상한 제품 만들어서 마케팅만 하더니, 결국…” 과 비슷한 반응이었다. 솔직히 나는 이 기사 내용도 그렇지만, 이런 부정적인 반응에 대해서도 조금 불편했다. 모든 일에는 음과 양이 있고, 좋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는데, 블랭크에 대한 이 기사는 현재 회사의 상황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가 없이, 특정인들에게 들은 이야기와 부분적인 조사를 기반으로 쓰인 게 아닌가 싶다.

물론, 나도 블랭크라는 회사에 대해서 잘 모른다. 이 회사의 반려동물 브랜드 아르르의 제품을 몇 번 사본 것 외에는 나는 블랭크와는 그 어떠한 이해관계도 없다. 그런데, 내 경험에 의하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빙산의 일부만 보고, 그게 마치 빙산의 전부라고 착각하는 실수를 범한다. 거기서 멈추면 좋을 텐데, 이걸 또 온 세상에 공개하고 방송하고, 소셜 미디어의 힘을 빌려, 근거가 전혀 없는 소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100% 맞는 사실도 아닌 내용을 빠른 시간 안에 퍼뜨린다. 이렇게 한 번 바이럴을 타면, 이후엔 이걸 다시 되돌릴 방법은 없다.

그동안 이런 피해를 본 회사가 너무 많지만, 우리도 아주 작은 주주인 쿠팡이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다. 미디어의 내용과 기사가 모두 맞았다면, 쿠팡은 이미 망했어야 할 회사이다. 현금이 바닥이라는 기사, 내부 갈등 때문에 경영진이 모두 퇴사한다는 기사, 등…대부분의 기사가 완전히 근거 없진 않았지만, 상당히 많이 틀린 내용들이었고, 이런 내용이 공개되고, 급속하게 퍼지면서 파생 소문까지 만들어지고, 순식간에 쿠팡은 이제 곧 망할 회사가 된 적이 너무 많다. 현실은, 뉴욕증시에 이미 상장까지 했고, 더 잘 성장하고 있는데 말이다.

블랭크코퍼레이션의 내부에서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진 실은 외부인은 그 누구도 정확히 모른다. 그냥 대부분 기사 내용이 ‘카더라’ 기반으로 유추되고 만들어진 이야기일 것이다. 물론, 회사는 이제 어느 정도 연식이 됐고, 성장도 꽤 많이 했기 때문에, 많은 기업이 경험하는 성장통을 경험하고 있겠지만, 그렇다고 위 기사에서 묘사된 것 처럼 상황이 심각해서 조만간 망하는 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 섣부르게 판단하고, 섣부르게 말하는 게 아쉽긴 하다.

그런데, 남의 회사에 대해서 이렇게 우리가 왈가왈부하면서, 이렇다 저렇다 할 필요도 없고, 솔직히 그럴 시간도 없다. 그냥 내 비즈니스 신경 쓰고, 내 비즈니스만 잘하면 된다.

찰나의 순간

요새 워낙 좋은 창업가와 회사가 많아져서, 우리도 어쩔 수 없이 투자 기준 자체가 높아진 것 같다. 몇 년 전만 해도 제품도 없고, 과거 창업 경험이 전혀 없는 똑똑하고 패기 있는 팀에 자신있게 투자를 하곤 했다. 요새도 안 하고 있진 않지만, 과거만큼 많이, 그리고 빨리하진 못 한다. 우리도 투자할 수 있는 총알은 한정되어 있고, 상대적으로 너무 많은 좋은 팀들이 시장에 있기 때문에, 선별적으로 투자를 잘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VC들이 하는 게 rejection일 것이다. 많은 회사를 만나지만, 대부분의 회사에는 투자를 못 한다. 우리도 숫자를 보니, 2020년도에 약 1,000개 정도의 초기기업을 검토하고 만났는데, 실제로 투자로 이어진 회사는 50개 정도이니, 5%에만 투자를 한 셈이다. 이 숫자는 VC마다 다르겠지만, 투자하는 회사보단 투자하지 않는 회사가 더 많은 건 공통사항일 것이다.

어떤 분들은 더 많은 회사를 만나고, 더 많은 회사에 투자할수록, 더 많은 경험이 쌓이기 때문에, 투자를 더 잘 할 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오히려 이 반대의 현상을 요새 자주 경험한다. 투자사가 몇 개 안 될 땐, 어떻게 투자하면 좋은 회사를 선택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강했는데, 오히려 이 회사들이 잘 안되고, 내가 한 판단이 대부분 틀렸다는걸 숫자로 본 후부턴, 투자를 하면 할수록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든다. 그래서 완전 초기 회사를 만나면, 미팅 후 우리 스트롱 동료들과 이야기를 하면, “잘 모르겠네요””라는 말을 요샌 정말 많이 한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정말 이 팀이 하고 싶은걸 할 수 있을지 판단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럴 땐, 우리가 아주 오랫동안 알고 지내서 이분들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가지면 투자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일단은 패스하고 고민해본다. 이후에 이분들이 다양한걸 시도하면서 제품이 다듬어지고, 시장에서 반응이 생기고, 뭔가 찾은 것 같으면, 그때 주로 투자한다. 처음 만났을 때보단 기업가치는 조금 높아져서 아쉽긴 하지만, 이때 투자하지 않고 더 지켜보면, 이 회사가 이 단계를 지나서 제품이 더 좋아지고, 시장에서의 인지도가 더 높아지면, 그땐 훨씬 더 비싸지고, 최악의 경우 투자자 경쟁에서 밀려서 투자를 못 하는 경우도 있다.

즉, 완전 초기 단계와 시장에서 인지도가 생기는 단계의 중간 지점에서 투자하는 게 우리 같은 초기 투자자들의 홈런율이 가장 높아지는데, 그럼 그 미묘한 찰나의 타이밍과 기회를 어떻게 포착하는지가 관건이다. 그리고 요새 시장이 워낙 과열되어있기 때문에 이런 순간은 오래 가지 않는다. 말 그대로 찰나의 순간이고, 이 찰나의 기회를 잘 포착해야지 투자할 수 있다. 안 그러면 이미 다른 투자자들이 투자한다.

이런 찰나의 기회를 잘 포착하려면, 일단 이분들과 계속 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이분들이 우리에게 연락을 자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스트롱이라는 VC의 첫인상이 창업가들에게 매우 좋아야지만, 이분들이 편안하게 우리에게 자주 연락한다. 그래서 모든 미팅이 중요하고, 매사에 진지하고 겸손해야 한다. 그리고 이분들이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를 보내주면, 항상 진지하게 읽고, 좋은 피드백과 의견을 공유해줘야 한다. 이 과정이 지속되면, 굉장히 좋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관계가 만들어지고, 그러면서 서로에 대한 신뢰가 생긴다. 우리 같은 초기 투자자는 너무 많은 회사를 만나기 때문에, 우리가 이 회사들에게 매번 “요새 어떻게 지내시나요?” , “펀딩은 어떻게 진행되나요?”를 물어볼 수가 없기 때문에, 반대로 창업가들이 우리에게 계속 정기적으로 연락해서 업데이트를 해줘야 하는 구도를 이렇게 인위적으로라도 만들어야 한다.

이후엔, 회사가 투자자들에게 많은 내용을 공유하고,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그 업데이트를 잘 읽고, 분석하고, 생각하다가, 투자할 찰나의 기회가 보이면, 그땐 투자하면 된다. 이 시점에는 이미 서로에 대한 신뢰가 구축됐기 때문에, 서로가 만족하는 조건에 투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과정이 없어서, 나중에 후회하는 분들을 많이 봤다. 창업가가 태어나서 처음 만난 VC 였는데, 이후에는 전혀 연락이 없었고, 이 VC가 미디어를 통해서 회사가 엄청난 투자를 받은 사실을 알게 되면, “아, 나 저 분 법인 만들기 전에 만났었는데, 그땐 아무것도 없었는데, 엄청난걸 만들었네. 근데 왜 나한테는 다시 연락을 안 했을까?”라는 질문을 하면서 후회한다.

현미경 지옥

오래된 영화라서 어린 분들은 모를 수도 있는데 윌 스미스 주연의 Enemy of the State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의 시작과 끝에는 우주에서 본 지구가 나온다. 정말 블루마블같이 아름답다. 그리고 화면이 빠르게 줌 인 되면서, 세계, 미국, 그리고 더 확대되면서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볼티모어의 한 거리를 보여준다. 아마도 이런 식으로 촬영된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모두 한 번 정도는 봤을 거다. 지구를 우주에서 보면 매우 조용하고 평화로운데, 더 가까이 확대해서 뉴욕의 타임스 스퀘어나 동경의 시부야 횡단보도를 보면, 사람들이 개미같이 바글바글하다. 아주 시끄럽고 혼란스럽고, 한 마디로 개판 오 분 전이다.

회사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고속 성장하는 스타트업은 더욱더 그렇다. 우리 투자사 당근마켓도 얼마 전에 2,000억 원 정도의 투자를 받았는데, 요새 시장에 돈이 많고, 스타트업의 혁신 속도가 시장의 유동성을 능가하기 때문에, 엄청난 밸류에이션에 엄청난 투자를 받는 한국 스타트업이 더 많아졌다. 이렇게 큰돈을 투자받은 유니콘 회사들은 기가 막힌 내부 시스템이 있고, 모든 일이 질서정연하게 진행된다고 생각한다. 실은, 겉으로 보면 이게 맞다. 돈도 많고, 이 돈으로 좋은 사람도 많이 채용하고, 물론, 큰 사업을 하고 있으니 좋은 시스템도 있다. 그래서 이런 회사가 뭔가 큰일을 하면 우린 대부분, “역시 큰 회사가 하니까 다르네” , “역시 제대로 된 회사답게 일 처리를 하네” , 뭐, 이런 말을 한다.

하지만, 현미경이 있어서, 이런 회사를 확대해서 본다면, 또는, 직접 회사로 찾아가서 회사에서 몇 시간 동안만 사람들이 어떻게 일을 하고, 어떻게 분주하게 움직이는지 관찰해보면, 이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걸 알게 된다. 겉으로는 모든 게 너무 평화롭고 질서 있게 돌아가는 회사이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서 보면, 개판이다. 실은, 지옥도 이런 개판 지옥이 없다고 난 생각한다. 이런 스타트업은 주로 단 시간안에 빠른 성장을 했는데, 이렇게 빨리 성장하다보니 채용, 제품개발, 영업, 마케팅, 기획 등의 모든 일이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엄청난 속도로 진행된다. 이렇게 전사적인 차원에서 모든 일들이 빨리 진행되면 정말로 정신없고, 비행기를 만들고 나는 게 아니라, 날면서 동시에 공중에서 비행기를 만드는 일을 매일 매일 해야 한다. 이러다 보니, 이 과정을 아주 가까이서 보면 정말 혼돈 그 자체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개판 지옥은 좋은 의미에서의 개판 지옥이다. 그만큼 기업이 빨리 성장하고 있고, 그만큼 내부 멤버들이 지속해서 그 성장에 맞춰서 변화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뭔가 계속 새로운 걸 시도하지 않거나, 외부 변화에 민감하게 자신을 변화하지 않는다면, 현미경으로 회사를 확대해서 봐도 아주 조용하고 평화로울 것이다. 이런 회사는 오래가지 못하고 주로 망한다.

이제 창업해서 시드 투자를 받고, 하루하루가 새롭지만, 이 익숙하지 않은 새로움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대표들이 우리에게 항상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스트롱 회사 중 수백억 원대 가치인 회사는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어떻게 해결하나요? 우리같이 노가다로, 무식하게 해결하진 않겠죠?”
“당근마켓과 같은 유니콘 회사는 어떤 시스템이 있길래 기름칠 잘 된 베어링같이 잘 돌아가나요?”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은 항상 똑같다.
“거기도 다 똑같아요. 완전 개판입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신없어요.”

고속 성장하고 있는 우리 투자사 사무실에 갔는데, 이런 큰 포스터가 보였다. “If everything’s under control, you’re moving too slow(모든 게 잘 통제되고 있다면, 우리가 너무 느리게 일하고 있다는 의미다)”

작은 스타트업이나, 큰 스타트업이나, 잘 되고 성장하는 회사라면 모두 다 똑같이 개판이다. 위에서 말한 대로 현미경으로 보면 개판도 이런 지옥 같은 개판이 없다. 하지만, 그래서 발전이 있고, 그래서 고속 성장하는 것이다.

유연성과 준비성

7월, 8월은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가 오랫동안 지속됐다. 이미 많은 분들이 지난 1년 반 동안 거리 두기 단계가 강화됐다가 완화되는 걸 몇 번 경험했고, 이제 위기 대응 능력이 어느 정도 생겼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누구나 다 힘들고 결국엔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된다.

우리 투자사들도 다시 한번 명암이 갈리는 걸 나도 목격하고 있다. 비대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들은 큰 타격을 입지 않고, 오히려 더 잘되는 곳들이 많다. 기업용 B2B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들도 잘 된다. 많은 기업이 다시 재택근무 체제로 돌아가면서, 원격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이런 솔루션을 도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프라인과 대면이 사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비즈니스는 아무리 비상대책을 마련하고 준비를 철저히 해도, 이렇게 4단계가 발표되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그냥 매출이나 실적이 줄어드는 걸 손 놓고 볼 수밖에 없다.

다시 한번, 우린 현재 어려운 상황의 투자사 대표들과 적극적인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이분들에게 드리는 조언은 작년 3월 코비드 19가 시작했을 때와는 조금 다르다. 나도 그동안 여러 가지를 경험했고, 봤고, 느꼈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나는 상황을 가장 보수적으로 보고, 경비는 즉시 절감하라고 우리 투자사에 조언했다. 불필요한 경비는 당연히 절감해야겠지만 매출에 직접적으로 기여하지 않는 필요한 경비조차 절감하라고 했다. 그리고 대부분 스타트업의 비용은 인건비이기 때문에, 매출과 직접 연관이 없는 분들은 해고하는 게 이 불확실한 상황을 조금이라도 오래 버틸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 당시에 내가 쓴 글을 보면 이런 내 생각이 잘 정리되어 있다.

내 말을 듣고 한 귀로 흘린 대표들도 있고 – 실은, 지금 와서 보면, 이분들이 가장 올바른 결정을 했다 – 아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행동으로 옮긴 분들도 있다.
어떤 분들은 즉시 인력을 해고하고 비용을 줄였다. 어떤 팀은 참 힘들게 사람을 채용했는데, 이분들을 다시 해고했고, 어떤 팀은 인력의 80%를 해고하기도 했다. 비용은 많이 줄여서 runway는 꽤 늘어났지만, 더 이상의 개발이나 마케팅은 못 하고 그냥 오래 버티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또 다른 부류는, 사람은 해고하지 않았지만, 비즈니스를 잠시 피보팅 했고, 이 새로운 걸 하는데 기존 인력을 재배치했다. 예를 들면, 주 비즈니스 모델이 사람들이 직접 만나서 뭔가를 해야 하는 거였다면, 어차피 이걸 못 하니까, 이 모델과 관련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어떤 회사는 B2B 비즈니스를 하다가 B2C로 피보팅을 하기도 했다. 인력이 그대로여서 비용구조는 그대로 가져가지만, 그래도 뭔가 돈을 벌 수 있는 새로운걸 해보자는 취지였다.

나는 둘 다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어쨌든 이렇게 버티면 불확실성의 충격을 최대한 흡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 한 일이 벌어졌다. 최소 2년은 전 세계가 shut down 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코로나로 인한 최악의 상황이 빨리 종료됐다. 그동안 새로운 변이도 나오고,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도 좋아졌다 심해지기를 반복하긴 했지만, 사람들도 이 패턴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서, 예상보다 빨리 비즈니스 세계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마도 우리뿐만이 아니라, 많은 투자자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을 텐데,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완화될 때마다 투자사들이 매출 기록을 경신했을 것이다.

그러자 사람을 해고했던 회사는 다시 사람을 채용하기 시작했지만, 해고하는 것 보다 훨씬 오래 걸리고 힘들었다. 다른 사업으로 피보팅 했던 회사도 원래 비즈니스로 급하게 유턴을 했지만, 그동안 손을 놓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준비하고 감을 잡는데에는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소위 말하는 전환비용(=switching cost)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전에 그 시장의 1등 또는 2등이던 회사가, 사람을 해고하거나 다른 비즈니스로 피보팅을 하는 동안에 비슷한 사업을 시작한 신규 스타트업이 나왔다. 시장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자, 원래 사용하던 서비스가 없어지거나, 아니면 회사가 다른데 집중했기 때문에 서비스가 더는 맘에 들지 않자, 다른 대안을 찾던 고객들이 새로운 서비스로 갈아탔다. 그러면서 시장의 판도가 금세 바뀌는 걸 우린 보기도 했다.

다시 4단계이다. 이번에는 나는 우리 투자사 대표들에게 위의 사례를 설명하면서, 그냥 돈 아끼면서 버틸지, 아니면 극단적으로 사람을 해고하거나 다른 사업을 할지, 심각하게 생각해보라고 한다. 왜냐하면, 극단적인 조처를 했는데, 상황이 너무 빨리 회복되면 다시 사람 채용하는 것도 힘들고, 본업으로 돌아오는데 너무 큰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이번에는 그냥 조금만 참고 버텨보라고 한다. 하지만, 항상 유연하게, 그리고 준비된 자세로 상황을 예의주시하라고 한다. 이게 맞을지 틀릴지는, 시간이 흐르면 또 알게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