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undersAtWork

복리효과

며칠 전에 프라이머 23기 워크숍에 잠깐 참석했다. 마지막 날엔 프라이머 파트너들과의 Q&A 세션이 항상 있는데, 이번에도 다른 프라이머 파트너분들과 지금까지 우리가 보고 느끼고 경험한 내용을 진심을 다해서, 이 힘든 시기에 창업해서 험난한 여정을 떠나는 창업가분들과 공유했다.

이 세션의 마무리 부분에선 각 파트너분들이 프라이머 창업가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짧게 하는데 나는 매번 똑같은 걸 강조하곤 한다. 그건 항상 “복리(compounding)의 힘을 믿고, 복리의 힘을 잘 활용하세요.”이다. 실은 이 말은 프라이머 창업가분들뿐만 아니라 모든 창업가,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내 주변 모든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일주일에 20시간을 일 한다고 치자. 아마도 일주일에 20시간만 일하는 창업가들은 없겠지만. 그러면 월요일 하루만 20시간 일하고, 화 ~ 금 쉬는 것 보단, 월 ~ 금 매일 4시간을 정확하게 나눠서 일하는 게 훨씬 좋다. 이 루틴을 1주, 5주, 50주, 100주, 1,000주 반복한 후에 그 결과를 한 번에 몰아서 일했을 때의 결과와 비교해 보면 하늘과 땅의 차이가 날 것이다. 오랜 기간 동안 똑같은 일을 꾸준히, 그리고 규칙적으로 반복하다 보면 복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루에 20시간 일하면 일주일 동안의 생산성은 20시간이지만, 5일 동안 매일 4시간씩 일하면 20시간 이상의 생산성을 경험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이 일이 습관이 되면서 자기만의 루틴이 만들어지는데, 루틴이 고도화되면 일반인을 전문가의 영역까지 올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린 이 현상을 모든 분야에서 관찰할 수 있고, 나는 루틴의 동물인 창업가와 그렇지 않은 분들을 꽤 많이 관찰하면서 성공하는 창업가들은 자기만의 루틴을 통해서 복리 효과를 잘 활용하는 분들이라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위의 예시에서는 하루 20시간을 일하면 일주일에 한 번의 루틴이 만들어지지만, 5일을 4시간씩 일하면 5번의 루틴이 반복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복리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꾸준함이다. 꾸준하지 않으면, 반복하지 못하고, 반복하지 못하면, 루틴을 만들 수 없고, 루틴화 되지 않으면 복리의 힘은 작용하지 않는다.

다운 라운드

요새 모두에게 참 어려운 시기이다. 우리가 최근에 첫 투자한 회사들은 아직 너무 작고, 돈도 없고, 제대로 된 제품도 없는 곳들이 너무 많다. 스트롱에게 초기 투자를 받은 후, 여러 가지 실험을 하면서 제품의 product market fit을 찾고, 이렇게 찾은 fit을 확장하기 위해서 또 투자받고, 좋은 사람을 채용해서 계속 성장하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지만, 이제 이런 계획들은 당분간은 실행할 수 없는 계획으로만 남게 됐다. 시장에 워낙 돈이 없기 때문에 이 정도 작은 규모에 성장이 없는 스타트업은 후속 투자를 아예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올해 우리 투자사 중 망하는 회사들이 역대급으로 많이 나올 것 같다.

마지막 라운드 밸류에이션이 수백억이 넘는 회사들은 위에서 말한 완전 초기 회사보단 제품이나 비즈니스모델이 상당히 발전한 회사들이다. 하지만, 이 스타트업들도 돈을 많이 벌거나 흑자 전환을 한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계속 제품을 제대로 만들면서 비즈니스모델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선 투자를 받아야 한다. 이 회사들은 완벽한 product market fit을 아직 찾진 못했지만, 돈과 인력이 보강되면 꽤 확실한 성장이 보이기 때문에 완전 초기 회사들보단 투자받는 게 조금은 더 수월하다. 이렇게 투자받을 때 요새 자주 보는 게 기존 밸류에이션보다 더 낮은 기업가치로 투자받는 down round이다. 우리 투자사들도 예외는 아니다. 기존 라운드 대비 50% 할인된 밸류에 투자받는 회사도 있고, 심하면 70% 할인된 밸류에 투자받는 회사도 있다.

다운 라운드는 모두에게 고통스럽다. 특히 팬데믹 기간 동안 밸류에이션 거품에 흠뻑 젖어서 비싸게 투자한 시리즈 B, C 투자자들은 몇 달 만에 본인들의 지분 가치가 반토막 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모로 불편할 것이다. 다른 임직원과 심사역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본인이 소신 있게 주장해서 투자했다면, 회사 안에서의 입지도 약해졌을 것이다. 우리같이 일찍 들어가는 투자자에겐 다운 라운드가 진행돼도 돈을 잃는 경우는 별로 없다. 예를 들면 지분 가치가 20배가 아니고 3배가 되는 상황을 경험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작게 투자하기 때문에, 지분 가치가 20배 될게 3배가 되면, 우리 또한 많이 고통스럽다.

그런데 다운 라운드의 충격과 고통을 가장 많이 받는 분들은 바로 회사의 창업가, 대표이사, 경영진, 그리고 임직원들이다. 모두 다 개고생해서 0원짜리 구멍가게를 4,000억 원짜리 기업으로 만들었는데, 기업가치가 갑자기 400억 원으로 떨어진다면, 주인 의식을 갖고 열심히 제품을 만들어서 고객들에게 팔아야 하는 회사의 임직원들에겐 상당히 충격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런 다운 라운드라도 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회사를 계속 믿고 돈을 주겠다는 신호라서 아주 고맙게, 신속하게, 그리고 신나게 투자받아야 한다. 비상장 회사의 기업가치는 어차피 종이 가치라서, 계속 생존하면서 좋은 제품과 비즈니스모델을 만들다 보면 다시 충분히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높은 밸류에이션에 들어갔던 많은 후속 투자자들이 다운 라운드로 후속 투자를 받지 못하게 하는 이야기를 요새 여기저기서 듣고 있다. 본인들이 들어갔던 기업가치보다 낮은 다운 라운드는 무조건 막으면서, 극단적으로 본인들의 지분 가치가 하락할 바엔 그냥 회사를 폐업하라고 하는 투자자도 있다고 들었다. 뭐, 투자자마다 사정이 있겠지만, 나는 굳이 이럴 필요가 있나 싶다. 어차피 투자는 장기전이라서 좋은 팀이 좋은 제품을 만들고 있다면, 그리고 계속 살아남는다면 언젠가 경기가 다시 좋아지면 기업 가치는 다시 리바운드하기 마련이다.

세계 최고의 드라마

나는 스타트업 행사에도 잘 안 가고, 개인적인 성향 때문인지 사람들이 너무 많은 곳은 되도록 피한다. 그래도 스타트업 씬에서 10년 넘게 일해서 그런지, 아는 분들이 은근히 많아서 이분들이 많이 모인 행사에 가면 너무 말을 많이 해서 정신도 없고 에너지가 고갈되면서 몸이 아플 정도로 힘든 적이 몇 번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참석하는 정기 행사가 분기마다 두 개가 있는데 바로 우리가 주최하는 스트롱 행사이다. 하나는 우리에게 소중한 돈을 주는 LP 분들과 하는 분기 행사이고, 또 하나는 이 소중한 돈을 우리가 투입하는 스트롱 창업가들과 하는 분기 행사이다. 두 행사 모두 우리 사무실이 있는 구글스타트업캠퍼스에서 진행하고, 두 행사 모두 비공개 행사이다.

스트롱 포트폴리오 모임에는 창업가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게스트 한 분을 항상 모시는데, 좋은 엑싯을 한 창업가, 유니콘을 만든 창업가, 크게 실패한 창업가 또는 우리보다 투자를 잘하는 좋은 VC들이 그동안 스트롱의 포트폴리오 분기 행사에 참여했었는데, 원래 일정은 40분이지만, 대부분 1시간을 훌쩍 넘기고, 어떤 유니콘 창업가분을 모셨을 땐, 그 이야기가 어찌나 재미있고 영감을 주던지 거의 2시간 넘게 지속됐다. 행사는 항상 우리 투자사 플레이팅에서 케이터링한 저녁으로 마무리한다.

게스트 세션은 fireside chat 스타일로 나와 아주 편안하게 1대 1 대화를 하는 형식인데, 내가 이 세션을 할 때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일단, 공개적으로 인터뷰나 행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분들은 초대하지 않는다. 큰 사업을 만들었지만, 공개 석상에는 잘 등장하지 않는 분들을 주로 초대한다. 그래야지 이야기가 참신하고 재미있다. 그리고 사전 질문을 공유하지 않고, 대본을 미리 만들지 않는다. 그냥 당일 즉흥적으로 대화를 한다. 이렇게 해야지만, 게스트의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데, 이런 이야기가 다른 후배, 선배, 또는 동료 창업가들에게 정말 도움이 많이 되고 엄청난 영감을 줄 수 있다. 대본 없는 대화라고 아무 생각 없이 무대에 오르진 않는다. 게스트분에 대해서는 나는 공부를 꽤 많이 하고, 내가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정제되지 않은 질문을 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분기마다 이 행사를 하면서 느끼는 건, 창업가들의 인생과 사업 이야기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재미있는 드라마라는 것이다. 드라마도 이런 각본 없는 드라마가 없을 정도로, 한 창업가가 수년, 또는 길게는 수십 년 동안 세상과 외롭게 싸운 이야기에는 희로애락과 기승전결 그 모든 것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얼마나 재미있는지 나는 이걸 ‘창업기’라고 한다.

이런 창업기는 같은 걸 여러 번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우리 투자사 당근마켓의 창업기를 나는 이미 수십번을 들었는데, 매 번 들을 때마다 새롭고, 그때마다 너무 재미있다. 어떤 창업기는 코미디이고, 어떤 건 빌어먹을 비극이다. 어떤 창업기는 한 편의 공포물과 같고, 심하면 블록버스터급의 재난영화이다. 어떤 창업기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는 마무리가 썩 좋지 않고, 좋지 않은 상태로 이야기는 그냥 계속 진행 중이다.

하지만, 장르를 불문하고 모든 창업기는 각각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이 있다. 모두 다 사연이 있는 자기만의 전쟁을 하고 있지만,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세계 최고의 드라마를 계속 만들고 있는 창업가들에게 오늘도 존경을 표시해 본다.

24시간 대기조

한국도 기업 문화가 많이 바뀌어서, 과거와 같이 8월에 전 국민이 휴가를 가진 않지만, 그래도 많은 직장인들이 이 기간에 휴가를 간다. 우린 작은 회사라서 특별히 휴가 기간이라는 게 없고, 그냥 쉬어야 할 때 쉬는 유연한 일정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모두 너무 바빠서 충분히 쉬진 못하지만, 되도록 쉬고 싶은 만큼 쉬라고 격려와 권장을 하고 있어서, 대부분 남들이 쉬는 바쁜 휴가철을 피해서 돌아가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얼마 전에 스트롱 동료분과 이야기하면서 쉼과 휴가에 대한 주제가 나왔는데, 우리가 너무 많은 회사에 투자했고, 특히나 요새 다들 힘들어하니까 휴가를 가도 계속 이메일, 전화, 카톡, 슬랙을 확인하면서 일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실은 휴가를 가면 완전히 스위치를 off 해야하는데,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이렇게 못 할 것이다. 대부분 스위치를 반 정도만 꺼놓고, 중간 중간에 계속 일을 하는 거로 알고 있고, 나 같은 경우에는 휴가를 가도 항상 스위치를 켜 놓고 있다. 나는 주로 매일 특정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에 급한 일들을 먼저 처리한다. 오랫동안 일을 해야 하면, 가족에게 양해를 구하고 휴가를 가서도 계속 일을 하고, 메신저는 항상 켜 놓는다.

어떻게 보면 회사의 대표이사로서 아주 나쁜 모범을 보이는 것이고, 남들은 나한테 병이라고 할 정도로 이런 루틴을 반복한다.

하지만, 투자하다 보면 이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Fred Wilson도 나랑 비슷한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 같은 초기 투자자는 기업보단 사람에게 투자하고, 이 사람들이 지치지 않고 계속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한다. 그리고 사람은 항상 스위치가 on 되어 있고, 24시간 숨을 쉬기 때문에, 이들을 지원하는 우리도 24시간 같이 일을 해야 한다. 우리만 스위치를 완전히 off 할 수가 없다.

특히 요샌 사건, 사고가 많이 터지기 때문에 더욱더 긴장하고 우리가 투자한 사람들을 지원해야 하고, 우린 한국과 미국에 투자하기 때문에 잠시라도 스위치를 완전히 끌 수가 없는, 멈출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하는 일이 119 소방대원같이 실제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건 아니지만 – 하지만, 가끔은 정말로 우리가 하는 일이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죽이기도 한다 – 요샌 점점 더 VC의 업무 중 가장 중요한 건 24시간 대기조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타트업은 24시간 돌아간다. 멈추지 않는다. 그러면 이들에게 투자하고 지원하는 VC의 업 또한 24시간 돌아가야 한다. 멈추면 안 된다.

피와 땀의 진입장벽

우리 투자사 중에 페이지콜이라는 9년 된 B2B SaaS 스타트업이 있다. 우린 페이지콜에 2017년에 첫 투자를 했고, 그 이후에 몇 번 더 투자했다. 지금은 B2B SaaS 분야가 한국에서도 조금씩 커지고 있지만 당시엔 투자를 업으로 하는 VC들에게도 이 분야는 생소할 정도로 인기도 없고, 한국에는 시장이 존재하지 않았다. 특히나 페이지콜은 B2B SaaS 분야에서도 API를 만들어서 기업에 판매하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데, 창업 초기엔 투자자들이 이 비즈니스를 이해도 못 했고, 관심도 두지 않았다.

페이지콜은 학원이나 학교의 digital transformation을 돕는 API를 만드는 회사이다. 이렇게 말하면 좀 애매모호한데, 조금 더 쉽게 말하면, 오프라인 사업을 주로 하던 교육업체들이 페이지콜의 제품을 사용하면, 쉽고 자유롭게 본인들만의 온라인 강의실과 강의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즉, 줌을 사용했을 때보다 훨씬 더 자유도가 높고, customization이 가능한 온라인 교육 환경을 구축할 수 있다. 특히, 이 회사의 강점은 9년 동안의 피와 땀이 투자된 연구, 개발, 그리고 삽질 위에 구축한 실시간 칠판(=캔버스) 기능인데, 수학과 같이 선생과 학생이 뭔가를 계속 보고 쓰면서 학습해야 하는 과목에는 없어서는 안 되는 어려운 기능이다. 척박한 SaaS와 API 시장에서 오랫동안 외로운 싸움을 했지만, 이젠 이 분야에서는 강자가 됐고 에듀테크 분야에서는 누구나 아는 설탭, 콴다, 대교, 튼튼영어 등과 같은 기업고객에서 페이지콜을 기반으로 실시간 화상 과외 솔루션을 구축해서 잘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이 분야에서의 사업, 그리고 펀딩은 어렵기만 하다. 아직도 B2B SaaS 시장을 한국의 투자자들은 회의적으로 보고, 특히나 API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많이 떨어지는 VC도 많다. 내가 이 회사를 다른 투자자분들에게 소개하면, SaaS나 API를 좀 아는 분들도 항상 하는 질문이 “어차피 WebRTC를 기반으로 만든 거라면, 누구나 다 비슷하게 만들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이다. 이분들의 주장은 큰 교육업체라면 개발 인력이 내재화 되어 있을 것이고, 구글에서 오픈 소스로 제공하는 실시간 커뮤니케이션 API인 WebRTC를 이용해서 페이지콜과 똑같은 걸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냥 외주업체에 맡겨도 금방 비슷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하는 분들도 있다.

이분들이 하는 말이 틀리진 않다. 누구나 WebRTC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고, 이 API를 기반으로 누구나 페이지콜과 “비슷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건 “비슷한” 제품이다.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하는 페이지콜과 비슷한 제품은 누구나 다 만들 수 있지만, 페이지콜을 만드는 건 굉장히 어렵다. 사용성에 대해 내가 항상 주장하는 점을 다시 한번 여기서 강조해 본다. 시장에는 비슷한 제품들이 널리고 널렸지만, 이 중 제대로 돈을 버는 제품은 극소수이다. 이 극소수의 제품과 다른 비슷한 제품의 껍데기만을 보면 다 비슷하다. 아니, 대충 보면 완벽하게 똑같이 생긴 제품들도 많다. 하지만, 이 제품들을 조금만 더 깊게 사용해 본 사용자들은 그 차이점을 금방 파악하고 어떤 제품을 돈을 내고 사용할지 결정하게 되는데, 이런 점들이 좋은 제품과 그냥 비슷한 제품을 구분하는 결정적인 요소들이다.

이 차이점을 표현하는 완벽한 단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걸 “사용자 경험의 오너십”이라고 한다. 오랜 세월 동안, 한 분야만 꾸준히 파고들면서 축적된 수천 ~ 수만 시간의 제품 개발과 운영, 그리고 수십 ~ 수백 명의 고객의 피드백을 다시 제품에 반영한 수백 ~ 수천 번의 product iteration 과정을 통해서 한 제품을 여러 고객이 여러 환경에서 사용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이 문제점에서 파생되는 또 다른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이 축적돼야지만 우리의 제품은 사용자 경험을 소유(=own)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껍데기는 다른 제품과 비슷하지만, 사용해 보면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미묘한 디테일과 사용자 경험이 내재화 되어 있는 좋은 제품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페이지콜은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API를 만들기 때문에, 인터넷 속도, 사용하는 브라우저, PC나 모바일 플랫폼의 환경, 이미 사용하고 있는 기존 시스템과의 충돌, 사용자 실수 등, 너무나 많은 변수 때문에 제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아직도 너무 많다. 하지만, 수년 동안 troubleshooting을 해왔고, 사용자들의 피드백과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계속 코드, 기능, UI, UX를 개선해 왔기 때문에 단순히 WebRTC를 기반으로 껍데기만 비슷하게 만든 제품과는 크게 차이가 난다. 그래서 나는 대기업이 이 분야에 들어와도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페이지콜 뿐만 아니라 우리가 투자한 많은 회사들의 제품이 이젠 다른 제품과의 “비슷함”을 넘어서 사용자들이 돈을 내는 제품으로 진화해 가고 있다. 이런 제품은 하루아침에 나오지 않는다. 아니, 절대로 나올 수가 없다. 오랜 시간 동안 본인들이 만드는 제품에 헌신하는 팀의 피와 땀이 들어가야 하는데, 쉽게 말하면 노가다가 필수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이 노가다는 피와 땀이 만든 진입장벽이 될 수 있고, 피와 땀이 만든 진입 장벽은 어쩌면 남들이 넘기 힘든 가장 큰 진입장벽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