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undersAtWork

한국 대기업은 스타트업을 죽이는가?

이거 참 민감하고, 의견이 가지각색인 주제라서, 실은 많은 분이 나랑 동의하지 않을 거라는 건 잘 안다. 요새 가는 곳마다 이와 비슷한 질문을 받고, 항상 같은 답변을 하는 나는 맹비난을 받는데, 그럼에도 불구하는 내 생각은 절대 다르지 않다.

한국의 exit 시장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좋은 이야기가 나올 수가 없다. 일단 exit 사례가 별로 없고, 우리가 매체를 통해서 접하는 수천억 원 또는 수조 원짜리의 exit은 – IPO보다는 인수 – 아직은 남의 나라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창업가의 수준이나, 한국 스타트업의 서비스나 제품의 수준은 시간이 갈수록 개선되고 있는데, 왜 높은 가치에 인수되는 성공스토리가 안 만들어지고 있느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인수를 해야 하는 대기업이 오히려 스타트업을 죽이고 있다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대화가 흘러간다.

물론, 선례들이 많으므로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삼성이 오랫동안 같이 일해왔던 협력업체의 기술을 카피하면서, 중소기업이 망한 사례나, 네이버가 작은 스타트업의 서비스를 그대로 베껴서 욕을 먹은 사건들은 누구나 다 하나 정도는 기억할 것이다. 미국은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활발하게, 아주 높은 가격에 인수하는데, 왜 한국 대기업은 항상, “저거 우리가 직접 하자”라는 마인드를 갖고 스타트업을 죽이는가에 대한 열띤 토론이 벌어지는 공적, 사적 자리에 있어 본 경험이 나도 여러 번 있다. 그리고 여기서 항상 내 생각을 물어본다.

실은, 나는 이걸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다. 대기업이 작은 회사의 서비스를 직접 카피하는 건 실은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한국만큼 자주 일어나거나, 오히려 더 많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자유롭게 경쟁하는 환경에서 대기업이라고 작은 기업이 하는걸 따라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대기업도 바보가 아닌 이상, 새로운 분야로 진출할 때 본인들이 직접 하는 거랑 기존 회사를 인수하는 걸 여러모로 따지면서 잘 검토한다. 그리고 인수하는 거보다 직접 하는 게 경제적이나 전략적인 면에서 더 낫다고 판단되면, 직접 팀을 만들어서 이 분야로 들어온다. 새로운 분야로 들어올 때, 이 분야에서 이미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가 있다면, 당연히 그 회사의 서비스를 벤치마킹하고, 심한 경우 아예 카피해버린다.

여기에 대한 내 생각은….작은 스타트업이 정말로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고객들을 매료시키고 있다면, 대기업이 아무리 막강한 화력을 갖고 공격을 해도,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제품의 껍데기는 카피할 수 있지만, 정말로 잘 만든 서비스라면 제품 내부에 녹아들어 간 수만 번의 iteration과 사용자 경험에 대한 고민은 돈만 있다고 단시간 내에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대기업이 작은 스타트업보다 단시간 내에 더 좋은 서비스를 만들었다면, 애초부터 그 스타트업의 제품은 고객에게 큰 감동이나 유용성을 제공하지 못 했다는 게 내 지론이다.

얼마 전에도 나는 이와 비슷한 말을 했는데, 청중으로부터 비난을 받은 기억이 난다. “한국 스타트업에 대한 애정을 가진 줄 알았다” , “한국의 생태계를 강화하고 싶어 하는 줄 알았는데 정말 실망이다” , “한국에 대해서 너무 모르는 거 아니냐”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도 내 생각은 변함없다. 수천억 원에 회사를 exit 하고 싶으면, 수천억 원 짜리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 그냥 돈 있는 회사가 베꼈는데, 우리 서비스보다 더 잘 만들 수 있다면, 이건 대기업이 우리를 죽이는 게 아니라, 어차피 결국엔 죽을 서비스를 우리가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맞다. 그리고 한국 회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없다고 하시는 분들은….내가 전에 쓴 포스팅을 여기서 다시 소개하니, 이걸 읽어 보시면 조금은 다르게 보실지 모르겠다.

[과거글: 나는 좇밥 회사들에 투자한다]

얼마 전에 올린 ‘한국 대기업들도 할 말 많다‘라는 글에 대해서 논란도 많았고 예상치 못했던 코멘트들도 많이 달렸다. 솔직히 나는 이 글을 나쁜 의도 보다는 좋은 의도에서 썼는데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분들도 많았나 보다. 전반적인 의견은 한국과 미국은 환경 자체가 다르므로 미국과 같은 exit을 한국에서 기대하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많은 댓글 중 솔직히 상당히 거슬렸던 내용이 있었는데, 여기서 한번 공유해 본다(내 블로그에 직접 올라온 거는 아니고 비석세스에 올라온 답글이다). 그런데 이 정도 소신으로 답글을 쓰시려면 왠만하면 ‘익명’이나 ‘가명’이 아닌 본명을 쓰라고 권장하고 싶다. 이딴 욕지거리를 익명으로 쓰는 사람들은 자기주장이 강하다기보다는 그냥 자신감이 부족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글을 읽어보면 기본적으로 그냥 너는 ‘미국 상황 잘모르는 병신’ ‘너는 자본주의 개념조차 모르는 jot밥’ ‘자유경쟁이 뭔지 모르는 개병신’ 이렇게 상대를 기본적으로 하대하고 글을 적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기업가 분이였는데 정말 큰 실망했습니다.

.중략.

미국식 자본주의 개념 많이 배우고 똑똑하셔서 좋으시겠습니다. 미국에서 창업 경험해보았고, 대 성공(?)은 모르겠으나 투자자로 활동하셔서 스타트업 평가하는 사회적 위치에 올라가셔서 좋으시겠습니다. 미국상황 잘 모르는 한국 스타트업에 ‘닥치고 개발해라’라고 좋은 말씀해주시면 ‘어익후’ ‘이런 좋은 말씀을’ 하고 립서비스 해주는 분들이 많아서 좋으시겠습니다.

.중략.

끝으로 배기홍님. 아무리 좆밥처럼 보이는 아시아 변방, 한국의 스타트업이라고 해도 인내심을 가지고 소통하시길 권합니다. 배기홍님이 좆밥처럼 생각한 한국 스타트업 중에서도 인고의 세월을 거쳐 훌륭한 기업들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얼마나 잘나셨는지 모르겠으나 겸손하시길 권합니다.

솔직히 난 이 분의 정확한 포인트를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이 분이 옳다 틀렸다는 것에 대해서는 판단하고 싶지도, 할 자격도 없다. 이건 각자의 판단에 맡기겠다. 어차피 우린 우리만의 의견이 모두 있다. 하지만, 한가지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고 싶다. 우리 Strong Ventures는 이 분이 말하는 ‘좇밥’같은 한국 회사들에 매우 활발하게 투자를 하고 있고, 어떻게 하면 이 좇밥같은 회사들이 빨리 글로벌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회사들로 성장할 수 있을까 대가리 터지게 1년 365일 고민하고 있다. 이 분이 말하는 “배기홍님이 좆밥처럼 생각한 한국 스타트업 중에서도 인고의 세월을 거쳐 훌륭한 기업들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 와, 제발 이렇게 되길, 그리고 제발 우리가 투자한 회사들이 이렇게 훌륭한 기업이 되길 나랑 내 파트너 John은 매일 기도하고 있다. 이 분은 뭘 하시는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우리가 투자한 한국 스타트업들의 결과에 따라서 천국으로 날아갈 수도 있고 지옥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우리의 인생과 커리어가 이 분이 말하는 ‘좇밥’같은 한국 스타트업에 달려있는데 내가 과연 ‘너무 잘나서’ 한국 회사들이 잘 안 되길 바라는 사람으로 보이는 건가?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우리가 투자한 한국 회사들이 잘 돼야 하지만, 이 중 너무 매력적이어서 대기업이 당장 큰 금액에 인수를 고려하게끔 하는 회사들은 아직 없다. 아니 – 우리가 투자해서 어떻게 보면 우리 얼굴에 침 뱉기지만 – 대부분의 회사는 한참 멀었다. 그렇지만 좋은 사람들로 구성된 회사라면 항상 가능성은 존재하며, 우리 모두 창업팀들과 같이 재미있게 일하고 있다.

그래, 어쩌면 전에 쓴 글에서 내가 한국 스타트업들을 ‘좇밥’으로 보고 있다는 냄새를 풍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야말로 이 회사들에 활발하게 투자하고 같이 일하고 있고 한국 회사들이 잘되길 가장 바라는 사람 중 한 명이라는 점도 제발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분은 이렇게 열정적으로 댓글을 쓸 수 있는 에너지를 제발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용하시길. 벤처를 운영하시는 분이라면 자신의 회사가 ‘좇밥’이 되지 않도록 좋은 서비스를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다. 정말로.

끝없는 달리기

keep_running_by_phat7-d9mbo4x이제는 고인이 된 인텔 창업자 앤드루 그로브 관련 책은 개인적으로 모두 즐겨 읽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Only the Paranoid Survive(편집증 환자만이 살아남는다)’이다. 이 책에서 그로브는 비즈니스가 살아남으려면, 좋든 안 좋든 계속 변화해야 하는데, 이 변화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편집증 환자같이 항상 모든 걸 의심하고, 경계하고, 조바심 내야 한다는 걸 강조한다. 물론, 여기서 편집증은 좋은 의미로 사용된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능력 있는 대표이사들은 이런 편집증 환자의 기질을 갖고 사업을 한다.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사업이 잘 안 되면 말할 것도 없이 위기의식을 갖고 열심히 일하지만, 사업이 너무 잘 될 때에도 힘들 때와 마찬가지로 위기의식과 조바심으로 무장하고 미친 듯이 달린다. 실은, 내 주변에는 사업이 정점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내일 망할 거 같은 자세로 긴장하면서 비즈니스 하시는 분들이 있다. 이들은 통장에 현금이 넘쳐 흐르지만, 곧 자금이 소진될듯한 자세로 투자자들한테 절실하게 피칭하고, 매출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곧 고객이 떠날 거 같은 자세로 영업하고, 아직 발생하지 않은 위기에 대한 시나리오를 만들면서, 이런 위기에 대비할 계획을 만들고 있다.

우리 속담에 건강도 건강할 때 챙겨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건 기업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거 같다. 회사가 잘 될 때 정신 바짝 차리고, 모든 걸 A부터 Z까지 하나씩 다시 짚으면서 기초를 탄탄히 하고, 우리가 가고 있는 방향이 맞는지 계속 점검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뭔가 적신호가 잡히면, 제대로 된 방향으로 다시 갈 수 있게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갑자기 매출이 급격하게 떨어지거나, 고객들이 우르르 떠나가기 시작하면, 이때 잘못된 걸 고치려면 이미 늦었다. 모든 질병은 예방이 최고이고, 그다음이 조기 치료인데, 비즈니스도 마찬가지다. 예방과 조기 치료가 가능하게 하려면, 사업이 가장 잘 될 때 내일 망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지면서 일해야 한다.

나도 가끔, 굳이 저런 강박관념을 가지면서 사업을 해야 할까 하는 질문을 하지만,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약자도 없는, 너무나 빨리 변하는 분야라서, 스타트업에 발을 담갔다면 이런 끝나지 않는 달리기 시합을 계속 해야 한다. 안 그러면 그 순간 모든 게 끝난다.

<이미지 출처 = DeviantArt>

마이듀티

우리 투자사 중 잘 하는 회사들이 더러 있고, 이들은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많은 고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포휠스가 만드는, 간호사를 위한 일정관리 앱 ‘마이듀티‘도 이런 좋은 제품인데, 이 앱은 간호사 일정관리 앱 분야에서는 글로벌 No. 1 이다. 한국 간호사들의 60%, 홍콩 간호사 90%, 및 대만 간호사 80% 이상이 매일 마이듀티를 사용하고 있으며, 영국과 독일 같은 유럽 국가에서도 좋은 성장 곡선이 만들어지고 있다.

내가 모든 지표를 다 공유하지는 못하지만, 현재 40만 명의 회원이 20만 개의 비공개 그룹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서 22만 MAU와 10만 DAU라는 상당히 높고 끈적끈적한(=sticky) 수치가 별다른 마케팅 없이 잘 유지되고 있다. 프라이머 회사이기도 한 마이듀티 정석모 대표를 처음 만났을 때는, 시장의 크기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 간호사 시장에 대한 개인적인 무지도 있었지만, 앞으로 절대적인 시장 자체가 더 크게 성장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개월 동안은 이 시장과 앱을 지켜봤는데, 그동안 내가 본 내용이 상당히 맘에 들었다. 10조 원짜리 시장은 확실히 아니지만, 그래도 의미 있는 이 시장을 마이듀티가 야금야금 먹으면서, 빨리 시장의 일인자가 되는 걸 직접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무료 버전에 필요한 많은 기능이 내재하여 있어서, 앱을 유료화할 수 있는 빠른 길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몇 달 전부터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기반으로 실험하고 있고, 다행히도 반응은 나쁘지 않다. 시장이 필요로 하는 No. 1 필수 앱이 되니, 고객들의 다양한 피드백들을 수집하고, 이를 다시 제품에 반영할 수 있는 실험들이 사용자 경험을 헤치지 않는 범위에서 끊임없이 유지될 수 있었는데, 만약에 이런 유료화 실험들을 어설픈 시장 점유율을 달성했을 때 했다면, 고객의 충성심보다 앱에 대한 실망감이 더 빠른 속도로 증가했을 거 같다.

얼마 전부터 스타트업의 growth hacking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몇 가지 꼼수를 이용해서, 단기간의 해킹은 가능하겠지만, 장기적인 growth를 위한 해킹이라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많은 사용자가 열정적으로 좋아하고, 매일 사용할 수 있는, 아주 완성도 높은 제품을 만들고, 회사가 원하기보다는 시장과 고객이 원하는 제품과 기능을 만드는 게 growth hacking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1만 시간과 연쇄 창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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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안젤라 덕워스 교수의 ‘Grit’이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유명한 책이라서 다들 많이 읽어봤을 거 같은데,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타고난 지능이나 재능이 아니라, 후천적인 노력과 끈기라는 게 이 책의 핵심 내용이다. 나도 이 책의 내용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책에서도 언급되었지만, 그릿의 내용은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다. 아웃라이어에서 글래드웰은 ‘1만 시간의 법칙’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하는데, 특정 분야에서 남들보다 더 잘하고, 이 분야의 대가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같은 일을 1만 시간 동안 연습해야 한다는 법칙이다. 한 분야에서 제1인자가 된 학자, 작가 또는 운동선수는 대부분 1만 시간 동안 같은 연구, 집필, 또는 운동을 반복적으로 한 사람인데, 이는 10년 동안 매주 20시간씩 같은 일을 반복하는 거랑 같다. 즉, 성공은 타고난 게 아니라 꾸준한 노력과 반복을 통해서 달성하는 것이라는 의미이고, 이는 ‘그릿’의 시사점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미국의 이커머스 회사 Jet.com이 월마트에 약 3.5조 원에 인수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Jet은 이커머스 분야에서 꽤 유명한 Marc Lore가 창업한 스타트업인데, 창업 초기의 후광에 비해서 비용구조가 너무 좋지 않아서 비즈니스가 잘 안되는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월마트가 이 회사를 조 단위 금액을 쓰면서 인수했을까? 바로 창업가 Marc를 영입하기 위해서였다는 게 업계의 소문이다. 아마존 때문에 큰 타격을 입고 있고, 더는 온라인 비즈니스를 이대로 둘 수 없다고 판단한 월마트는 마크를 영입하기 위해서 그의 회사를 통째로 인수해버렸고, 인수 후 마크를 Walmart eCommerce의 대표이사로 승진시켰다. 참고로 마크는 Jet을 창업하기 전에 Diapers.com과 Soap.com과 같은 이커머스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Quidsi를 창업해서 아마존에 약 6,000억 원에 매각한 경력이 있다.

월마트의 Jet 인수는 실은 한국 비즈니스 정서로 보면 약간 이해하기 힘든 딜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주위에도 그냥 이커머스를 잘 이해하는 사람을 채용하면 되지, 굳이 3조 원 이상의 돈을 주고 회사를 인수할 필요가 있었겠느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분이 많은데, 위에서 말한 1만 시간의 법칙과 그릿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살짝 이해가 간다. 마크 로레와 그의 친구 비닛 바라라가 Quidsi를 창업한 게 2005년이다. 즉, 그는 10년 이상 1년 365일, 하루 24시간 동안 이커머스에 대해서만 생각했고, 이를 시간으로 환산하면 1만 시간이 훨씬 넘는다. 1만 시간 이상을 한 분야만 파고들면서, 남들보다 더 열심히 고민하고, 연구하고, 실험하고, 뭔가를 만들었다. 이렇게 하면서 그는 이커머스의 달인이 되었고, 이 분야에 관해서는 남이 보지 못하는 걸 볼 수 있게 되었고, 남이 얻지 못하는 통찰력을 얻게 되었다. 마크는 물론 좋은 학교를 나왔고, 머리도 좋은 창업가지만, 그의 이커머스 성공신화는 타고난 게 아니라 끊임없는 투지와(=그릿) 1만 시간의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런 이커머스의 달인을 데려오기 위해서 월마트가 3조 원을 투자한 건데, 앞으로 월마트 이커머스가 어떻게 변할지 매우 궁금하다.

마크 정도로 성공하지는 않았지만, 내 주변에는 같은 분야에서 계속 비즈니스를 하는 연쇄 창업가들이 몇 명 있다. 실은 많은 전문가가 첫 번째 exit은 운이 강하게 작용하지만, 그 이후의 exit은 실력이라는 말을 한다. 아마도 이 실력은 10년 이상의 그릿과 1만 시간의 노력의 산출물인 거 같다. 한 분야에 대해서 오랫동안 파고들다 보면, 10년이라는 시간이 금방 지나가고,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거 같다. 한 분야에서 계속 창업하는 연쇄 창업가들을 보면서, “아직도 저 분야에서 할 게 또 있나?”라는 질문을 하지만, 대가들은 한 분야를 파고 들어가면 갈수록 남들이 보지 못하는 기회를 포착하게 된다.

“난 1만 가지 발차기를 한 번씩 연습한 상대는 두렵지 않다. 내가 두려워하는 건 단 한 가지 발차기만 1만 번 반복해 연습한 상대를 만나는 것이다.” -이소룡

지금은 너무 힘들지만, 죽지 않고, 쓰러지지 않고, 한 분야에서 10년 이상 버티다 보면, 내가 갑자기 앞서나가거나, 경쟁사들이 없어지는데, 이렇게 되면서 시장의 강자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미지 출처 = Pinterest>

창작자와 소비자의 마켓플레이스

two-sided-marketplace-800px마켓플레이스를 운영하는 분들의 지상과제는 수요와 공급의 유동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조금 더 쉽게 말하면, 물건이나 서비스를 공급/판매/생산하는 공급자들과, 이를 원하는 수요자들을 충분히 확보하고, 이들을 원활하게 매칭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도 많은 마켓플레이스에 투자를 했고, 모두 다른 비즈니스를 운영하지만, 공통적으로는 수요와 공급을 잘 밸런싱해야하는 숙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 중, 뭔가를 만드는 창작자와 이들이 만든 창작물을 소비하는 소비자들을 위한 마켓플레이스를 운영하는 창업가들을 위해, 내 경험을 일부 공유하고 싶다.

내가 미국에서 운영하던 뮤직쉐이크도 크게 보면 마켓플레이스다. 음악을 만드는 창작자와 이들이 정성스럽게 만든 음악을 즐기는 소비자들이 존재하는 전형적인 양면 음악 마켓이다. 처음 서비스를 시작할 때, 창작자와 소비자의 비율은 1:9 정도였다. 즉, 10명 중 한 명은 정성껏 우리 제품을 사용해서 음악을 만들고, 나머지 9명은 음악은 만들지는 않지만, 남이 만든 음악을 들었다. 우리의 초기 가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창작 본능을 갖고 있지만, 음악을 만든다는 거 자체가 너무 어려우므로 음악 창작 활동을 못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음악을 모르고, 악기를 연주하지 못 하는 사람도, 뮤직쉐이크를 사용해서 누구나 다 수준 높은 음악을 만들 수만 있다면, 세상 모두가 다 창작자가 될 것이라는 게 우리 서비스의 가장 근본적인 가설이었다. 우리는 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서, 음악을 만드는 창작자 집단에 모든 자원을 투입했다. “어떻게 하면 나같이 음악을 전혀 모르는 일반인들이 음악을 재미있고 쉽게 만들 수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을까? 뮤직쉐이크를 어떻게 더 쉽게 만들 수 있을까?”가 우리가 해결하고자 하는 과제였다.

첨단 기술과 많은 노가다를 투입해서 우리는 더 좋은 음악창작 제품을 만들어서, 더욱더 많은 일반인이 창작자가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다. 위에서 말한 1:9의 비율이 9:1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하지만, 많은 시간과 돈, 그리고 3년이라는 시간을 투입한 후에 내가 배운 점이 있다면, 음악을 만드는 과정을 아무리 쉽고 재미있게 해도, 대부분의 사람은 음악을 만드는 거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오히려 남이 만든 좋은 음악을 감상하고 소비하는 데 관심이 있지, 본인들이 음악을 만들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었고, 이런 경향은 꼭 음악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창작활동에도 적용되는 거 같았다. 창작이 아무리 쉬워도, 창작자 대비 소비자의 비율을 3:7 이상으로 만드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급하게, 창작자가 아닌, 우리 서비스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소비자’한테 초점을 옮겨서 남이 만든 음악을 더 잘 발견하고, 듣고, 즐길 수 있는 쪽으로 서비스의 방향을 틀었다. 다양한 커뮤니티, 소셜 기능, 그리고 다른 일을 하면서도 계속 뮤직쉐이크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플레이어와 플레이리스트 기능을 대폭 강화했다.

아마도 창작자와 소비자가 존재하는 마켓플레이스를 운영하는 팀이라면, 이와 비슷한 고민을 할 것이다. 위에서 내가 말한 내용이 절대로 절대 진리는 아니지만, 뮤직쉐이크를 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점은, 창작자-소비자의 마켓플레이스에서는 항상 소비자가 절대적으로 많다는 거다. (내 경험에 의하면) 이 마켓플레이스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려면, 소수의 창작자보다는 다수의 소비자가 최대한 이 플랫폼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돈을 쓸 수 있도록 회사의 자원을 투입하는 게 효과적인 방법인 거 같다. 소셜기능이 강화된 커뮤니티 관련 기능들이 잘 구현되면, 이런 소비자 기반 마켓플레이스의 완성도가 더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뮤직쉐이크같이 창작자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든다면, 창작자의 비율을 소비자보다 더 높게 만들고(6:4 정도?), 이들이 기꺼이 돈을 내고 사용할 수 있는 완성도가 높은 기능을 지속해서 출시하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해보면 알겠지만, 이 각도로 접근하는 건 상당히 어렵다. 소수의 까다로운 입맛에 호소하는 제품을 잘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의 양면을 다 충족해야 하는 마켓플레이스를 운영하는 건 어렵다. 그런데, 공급자들이 뭔가를 창작해서 올려야 하고, 그 창작과정을 도와주는 툴까지 우리가 만들어서 제공을 해야 하면, 이는 단순 양면마켓플레이스보다 훨씬 더 복잡해진다.

<이미지 출처 = Reason Stre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