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

늦게 들어오는 코파운더

전에 낳아준 엄마와 키워준 엄마라는 글에서 회사를 만들기만 하고, 실제 성장에는 크게 기여하지 않고 퇴사한 코파운더에 대한 내 의견을 공유했다. 오늘은 그 반대 개념의 이야기인 나중에 회사에 조인한 코파운더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이것도 종종 보는 케이스이다. 예를 들면 원래 회사를 3명의 코파운더가 창업했고,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1명 또는 2명이 퇴사를 했고, 어느 순간에 제삼자가 높은 지분을 확보하면서 코파운더로 회사에 조인하는 경우인데, 나는 이런 걸 재혼한 코파운더 케이스라고도 한다.

주로 오리지널 코파운더인 대표이사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지인인데, 수개월 동안 여러 차례 만나면서 회사의 비즈니스에 대해서 상당히 잘 파악을 하고 있고, 이제 막 스타트업에 조인하기 때문에 의지와 파이팅도 넘치는 분이 C급 인력으로 회사에 오기로 이야기가 되는 경우이다. 그런데 본인이 연봉이나 혜택, 그리고 여러 가지 지위를 희생하면서 작은 스타트업에 조인하기 위해서는 뭔가 강력한 인센티브가 필요하고, 돈도 중요하지만, 회사의 지분을 상당히 많이 확보하고싶어한다. 스톡옵션도 아닌 코파운더 수준의 주식을 요구하고, 회사가 창업된 지 이미 시간이 지났지만, 실질적으로 코파운더로서 회사에 조인 하길 원한다.

나도 이런 사례를 여러 번 봤다. 그리고 코파운더가 늘어나는 건 회사에 정말 중요한 결정이기 때문에 이사회의 승인을 거쳐야 하는데, 승인한 경우도 있고, 강력하게 반대한 경우도 있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이런 재혼하는 코파운더 케이스는 결말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코파운더의 자리란 달라고 해서 얻는 게 아니다. 본인이 정말로 회사를 만들어서 코파운더가 되거나 아니면 코파운더 수준으로 열심히 해서 회사의 성공에 기여하고, 그리고 회사에 대한 오너십과 애정이 있어야 한다. 이걸 본인이 스스로 인정하는 게 아니라, 같이 일하는 동료와 다른 코파운더들이 인정을 해줘야지만 코파운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중에 회사에 조인하는 분들은 이런 마인드와 태도를 갖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현명한 파운더라면 본인의 주식을 주기보단, 역시 스톡옵션을 잘 활용한다. 아무리 오랫동안 알고 지낸 분이라서 믿음이 가고, 사업 능력이 뛰어나도, 이건 남의 회사에서 일할 때지, 우리 회사에서 일 했을 때의 결과나 성과는 아직 증명되기 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스팅 기간을 충분히 두면서 스톡옵션을 부여하면, 서로의 리스크를 충분히 줄이면서 원하는걸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페이플 허브

온라인에서 뭔가를 판매하려면 여러 가지를 준비해야 하지만, 잘 작동하는 결제 시스템은 필수이다. 한국은 온라인 결제가 꽤 잘 발달되어 있어서 여러 가지 옵션이 있지만, 개발 능력이 없는 회사에서 손쉽게 적용할 수 있는 API는 찾기가 힘들다. 이런 갈증을 우리 투자사 페이플이 해결하고 있는데, 최근에 페이플에서 ‘페이플 허브’라는 좋은 API를 출시했다.

페이플 허브는 수요와 공급을 중개하고 매칭하는 플랫폼이나 마켓플레이스 비즈니스를 위한 편리한 정산 API 인데, 이들이 수십 개 또는 수만 개의 하위셀러들에게 정산해야 하는 금액을 자동으로 지급할 수 있는 지급이체 대행 서비스라고 생각하면 된다. 지금까지는 이런 정산과 이체는 별도의 계좌를 통해서 회사의 직원분이 엑셀을 수작업으로 만들어서 관리했는데, 이렇게 하면 바이어와 셀러가 많아질수록 휴먼 에러가 잦고, 직원분들의 시간과 자원 낭비가 갈수록 심해진다.

페이플 허브를 사용하면, API를 통해서 모든 프로세스를 자동화하기 때문에 휴먼에러를 최소화, 주말이나 공휴일에도 지급이체, 예약 지급이체, 중복지급 방지 등이 가능하다.

단, 페이플 허브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페이플의 PG 파트너사가 되어야 하는데, sales@payple.kr 로 문의하면 자세히 안내해 준다.

페이플 허브 소개
페이플 허브 API

더 쉬운 결제 API를 개발하고 있는 페이플 팀의 앞으로의 다른 제품들도 기대가 많이 된다.

Growing Up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나이를 먹고, 나이를 먹으면서 대부분 성장한다. 어떤 사람은 몸만 성장하지만, 내가 아는 대부분은 몸과 정신 모두 성장하면서, 어릴 적엔 주위 사람들이 “얘는 커서 뭐가 될까?”라는 질문을 했지만, 훌륭한 인격체가 됐다.

요새 엘리베이터와 TV의 광고를 보면 참 신기하고 흐뭇하다. 특히 시청률이 높은 프라임 타임의 광고는 전통적으로 대기업이 독차지했었는데, 요샌 내가 아는 스타트업의 광고가 너무 많이 보인다. 심지어 우리 투자사의 광고도 거의 매일 방송 타는걸 보면, 이 회사들이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다가, 망할 위기를 여러 번 거치면서, 얼마나 단단하고 스트롱하게 성장했는지, 다시 한번 느끼고 생각하게 된다.

아직 TV 광고는 안 하지만, 이제 1,600만 명의 한국인이 사용하는 당근마켓 광고는 엘리베이터 안의 포커스미디어를 통해서 매일 여러 번 볼 수 있다. 실은 당근마켓도 창업 초기엔 “이 사업이 한국에서 과연 될까?”라는 의문을 여러 번 했었는데, 이제 전 국민이 사용하고, 이렇게 멋진 광고까지 하는 걸 보면 감회가 새롭다.

한국을 대표하는 취미와 클래스 앱 클래스101은 가수 박재범 씨가 광고도 하고 클래스도 제공하고 있다. 제이팍의 “배우지마, 101해” 광고를 TV에서 처음 봤을 땐 정말 비현실적인 느낌까지 들었다. 사업을 막 시작한 4명의 울산과기원 학생팀에 우리가 7년 전에 투자했는데, 그 팀이 이제 박재범 씨를 광고 모델로 사용하다니!
클래스101도 창업 초기엔 “이 사업은 과연 어떻게 될까?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많이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면서, 광고를 볼 때마다 짜릿하기까지 했다.

연예인 파워보단, 광고의 내용과 스토리에 신경을 많이 쓴 세상에 없던 대출 플랫폼, 핀다의 광고도 매우 인상적이다. 핀다도 힘든 시기가 여러 번 있었고, “살아 남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스트롱 내부에서도 여러 번 했었는데, 요샌 국민대출앱이 됐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핀다 광고 너무 재미있다고 하는걸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다.

전 국민 생활 솔루션 숨고도 최근에 TV 광고를 시작했다. 드라마와 영화에서만 보던 성동일 씨와 라미란 씨가 “어떡하지? 숨고하지!”를 외치는 걸 보면 숨고 또한 많이 성장했다는 생각을 한다. 숨고 역시 여러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역경을 잘 극복하고 성장해서 감회가 새롭다.

이 외에도, TV는 아니지만, 포미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세탁특공대와 라이클의 광고를 볼 때마다 너무 반갑고, 엘리베이터를 같이 탄 모르는 이웃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항상 꾹 자제하곤 한다. 실은 포미에서 보는 광고의 회사들은 내가 전에 직접 만나봤거나, 잘 아는 스타트업이 대부분이라서, 항상 신기하다고 생각한다.

창업가의 굳은 의지와 믿음을 기반으로 맨땅에서 시작한 스타트업이 이제 대기업을 위협하고 있고, 어떤 스타트업은 이미 대기업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과거에는 전통적 기업만이 독점하던 매스 미디어에서 누구나 다 아는 연예인을 섭외해서 메인스트림 광고를 집행하는 걸 보면, 이 회사들이 정말 빠르게 성장하면서 시대를 바꾸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헤이딜러 광고에 김혜수 씨와 한소희 씨가 나오는 걸 보면, 정말로 스타트업 전성시대인 것 같다.

빠른 거절

얼마 전에 어떤 회사의 자료를 검토했는데, 자료만 봐도 우리가 투자하고 싶은 회사가 아니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고, 굳이 서로의 시간을 낭비할 필요 없이 미팅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이러이러한 이유로 우린 더 이상 검토를 하지 않겠다고 거절을 했다. 나야 워낙 거절을 많이 하고, VC는 주로 Yes보단 No를 더 많이 하는 직업이라서 관련해서 더 이상 큰 고민을 하진 않았다.

그런데 이 회사의 대표에게 답변이 왔다. 다른 투자자는 만나도 아무런 피드백이 없고, 거절은 안 하지만 그냥 빙빙 돌려서 말하거나 대충 뭉그적거리는데, 그냥 확실하게 관심 없어서 안 만나겠다고 거절해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본인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해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솔직히 이런 이메일도 자주 받기 때문에 이분이 정말로 고마워서 답변을 한 건지, 아니면 감정이 상한 걸 돌려 말 한 건진 잘 모르겠다(그리고 솔직히 그런 것까지 생각하고 고민하면 난 이 일을 못 한다). 하지만, 아주 투명하고, 솔직하고, 빠른 커뮤니케이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로서는 이분이 진심이었다고 믿고 싶다.

현대인은 정말 바쁘다. 그리고 혼자서 수백 가지 일을 처리해야 하는 창업가들은 바쁜 사람 중에 제일 바쁜 사람들이다. 나는 이렇게 바쁜 사람들에게 우리 같은 투자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투자해서 한배를 타는 것이지만, 투자하지 못 하면, 최소한 이렇게 솔직하고 빨리 거절을 해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야지 이들도 move on하고 다른 투자자와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Yes도 아니고, No도 아닌, 애매한 상태로 이 관계를 계속 유지하면, 투자자로서는 큰 손해를 보지 않지만, 창업가로서는 이게 희망고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린 아니다 싶으면, 가급적이면 빨리 답변을 하면서 최대한 자세한 피드백을 주려고 노력한다. “최대한 자세히”라고 말하는 이유는, 가끔 우리 내부의 생각을 완전히 투명하게 공유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인데, 그래도 공유할 수 있을 정도의 내용을 솔직하게 알려주려고 노력한다. 우리와는 2시간 정도 미팅했고, 투자자는 2시간을 사용했지만, 이 미팅을 위한 준비 과정까지 합치면 창업가는 10시간 정도의 시간을 썼을 것이기 때문에, 이 시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솔직함과 신속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가끔, 이렇게 빨리, 그리고 솔직하게 거절을 하면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역반응이 오는 경우도 있다. 너무 빨리 답변을 준 것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야기도 안 하고 그냥 귀찮아서 거절한 게 아니냐는 불평을 하는 분들도 있었고,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이렇게 직설적인 피드백을 주면서 자신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냐 하면서 서운해하신 분들도 있다.

혹시 나/우리한테 이런 부분 때문에 서운하거나 빡친 분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사과하고, 그런 의도는 전혀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어쨌든, 투자거절의사는 표현 안 하는 것보단 확실하게 해주는 게 더 좋고, 이왕 해주려면, 최대한 빨리 알려주는 게 가장 좋다.

당신의 문제가 아니다

“대표님은 너무 좋고, 하고 계신 사업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가 너무 작은 팀이고, 봐야 할 딜들이 많아서요, 이 딜은 우리가 시간을 투자하기엔 너무 작네요. 죄송하지만, 우리의 이러한 사정 때문에 투자는 못 할 것 같습니다.”

창업가라면, 그리고 펀딩을 좀 해봤다면, 이런 이야기나 비슷한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절 당하는 건 스타트업의 일부이기 때문에, 좋든 싫든 무조건 익숙해져야 하지만 내가 정말 투자받고 싶었고, 우리 회사랑 합이 잘 맞을 거라고 기대했던 VC에게 이런 거절을 당하면 의기소침해지고, 위축되는 것도 사실이다.

나도 뮤직쉐이크 시절에 이런 말 많이 들었고, 거절도 많이 당했다. 그리고 수십 명의 VC에게 이미 거절당한 경험이 있음에도,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긴 했다. 당시 나는 이런 거절을 일단 부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말은 이렇게 본인들의 사정 때문에 투자를 못 한다고 하지만, 투자자라는 사람은 돈 벌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이유를 불문하고 무조건 투자해야하는데, 나나 회사가 그만큼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에 거절당했다고 생각했다. 나도 지금 투자를 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이 말도 맞다. 우리도 내부 규칙과 절차가 있고, 투자 철학이라는 게 있지만, 그런데도 너무 매력적인 기회가 있다면 이런 절차와 철학을 건너뛰고 투자를 집행하는 경우가 가끔 있긴 하다.

하지만, 이런 거절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런 종류의 거절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즉, 우리 회사와 비즈니스도 너무 좋고, 나도 너무 좋은 사람인데, 내가 만난 VC의 사정으로 인해서 우린 투자를 못 받은 거라서 이건 내 잘못이 아니고 저 투자자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이렇게 생각하니까, 그럼 저런 내부 상황이나 문제가 없는 투자자를 찾기 위한 노력을 더 열심히 했고, 정말로 좋은 투자자를 만나서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

내가 직접 투자를 해보니까, 실은 이 말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니라는 걸 직접 느끼고 있다. 특히 스트롱도 굉장히 작은 조직이기 때문에, 너무 좋은 회사인 것 같아도 투자를 안 한 경우가 꽤 있다. 창업가도 잘하는 것 같고, 비즈니스도 나쁘지 않은데, 이 분야 자체를 우리가 전혀 모르거나, 이 창업가에 대한 평판 확인을 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없으면, 우린 투자를 꺼린다. 투자 검토를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선, 이 분야에 대해서 조금 더 공부해야 하고, 이 창업가를 아는 사람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데, 우리같이 적은 인력으로 많은 딜을 보는 VC에겐 이게 매우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특히, 투자 규모가 크지 않고, 동시에 검토하고 있는 딜들이 많은 바쁜 시기라면 더욱더 그렇다.

그래서 정말로 괜찮은 창업가와 사업이라고 생각하지만, 위의 VC가 말한 동일한 이유로 우리가 투자하지 않는 경우도 간혹 있다. 이런 경우엔 정말로 창업가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내부 상황과 타이밍으로 인해 투자자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창업가들은 자책하면서 스트레스를 그렇게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회사와 대표에게 문제가 있어서 투자를 못 받으면, 이건 문제가 되고 고쳐야 하지만, 어떨 땐 투자자의 문제 때문에 투자를 못 받는다. 이럴 땐 우리와 궁합이 맞는 투자자를 계속 찾아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