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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자산에 대한 생각 – 2021년 12월

2021년도의 매달 마지막 블로그 포스팅에서는 디지털 자산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2013년도에 우리가 코빗에 투자하면서 이 매력적인 시장과 기술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됐고, 이후에 계속 꾸준히 공부도 하고 회사들도 만나서 나름 최신 업데이트를 접하곤 있지만, 워낙 빨리 변하는 분야이고, 디지털 자산에만 투자하는 투자자와 펀드들도 있어서, 나는 아직 이 분야에 대해서 공부할게 상당히 많다. 이런 취지로 매달 한 번 정도는 관련해서 글을 쓰기로 했는데, 이게 올해의 마지막 디지털 자산에 대한 포스팅이다.

나는 비트코인과 디지털 자산을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알게 된 것에 대해서 상당히 고맙게 생각한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일찍이 비트코인을 사서 돈을 많이 벌어서 고맙게 생각하는 줄 알지만, 그게 아니라 디지털 자산을 일찍 알게 되면서 돈에 이해도가 높아진 것에 대해서 감사한다. 디지털 자산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점점 더 돈에 대한 호기심과 의구심이 들었고, 이는 돈에 대한 공부로 이어졌다. 돈에 대한 공부는 화폐에 대한 이해로 이어졌고, 화폐에 대한 이해와 궁금증은 경제에 대한 호기심으로 번졌다. 나는 경제학자도 아니고, 아직도 금리가 오르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돈과 경제에 대해 그동안 전혀 몰랐고, 알려고 노력도 하지 않았던 내용에 관심을 갖게 됐다. 만약에 비트코인과 디지털 자산을 몰랐다면, 이런 부분에 대한 관심조차 갖지 않았을 것이다.

올해 이 분야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고, 내년은 아마도 더 다이나믹한 한 해가 될 텐데, 내 개인적인 기준으로는 큰 위기가 두 번 있었는데, 뒤돌아보면 이 리스크는 모두 제거됐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리스크는 중국이었다. 그동안 중국은 디지털 자산에 대한 압박을 정기적으로 행사했었지만, 올해는 마음먹고 강한 제동을 걸었다. 디지털 자산 거래는 물론, 채굴까지 불법화했고 그동안 말로만 하던 규제가 아니라 정말로 행동을 취했다. 중국은 전 세계 비트코인 채굴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는데, 비트코인 오퍼레이션의 핵심 중 하나인 채굴을 중국이 불법화하면서 이 네트워크의 속도가 느려졌고, 이러다 디지털자산의 블루칩인 비트코인이 완전히 망가지는 게 아니냐는 걱정을 전세계가 심각하게 했다. 일시적으로는 비트코인 채굴 속도를 보여주는 hash rate이 확 떨어지긴 했지만, 서서히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고 완전히 정상 속도로 복귀했다.

중국의 압박을 피해서 대부분의 채굴업자들이 미국이나 캐나다, 또는 러시아로 법인과 채굴기기들을 옮겼고,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긍정적인 결과가 만들어졌다. 중국의 채굴업은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석탄 에너지로 운영돼서 심각한 환경과 ESG 문제를 야기했고, 이 또한 비트코인에 대한 공격 포인트였는데, 중국을 탈피하면서 이제 채굴의 60% 이상이 조금 더 깨끗한 클린, 대체 에너지로 대체됐다. 하지만, 가장 큰 장점은 채굴자들이 중국 밖으로 나가면서 디지털 자산의 중국 의존도가 현저하게 낮아졌고, 어느 순간 디지털 자산 산업이 탈중국화에 성공했는데, 이 시장의 가장 큰 불안 요소가 제거됐다고 보면 된다.

또 다른 리스크는, 이러한 중국의 행보를 미국도 따르지 않겠냐는 걱정이었는데, 미국은 이 이슈에 대해 자본가 답게 대처했다. 계속 규제를 만들면서 디지털 자산 이해관계자들과 갈등이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지만, 중국과는 반대의 전략을 선택한 것 같다. 미국은 이 새로운 기술과 시장을 받아들이면서, 그동안 중국에 뒤졌던 많은 것들을 다시 빼앗고 싶어 하고, 크립토/블록체인/웹3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그동안 주춤했던 혁신의 엔진을 다시 한번 가동하려는 것 같다.

어쨌든, 중국이라는 가장 큰 리스크가 제거됐고, 이 리스크를 미국은 기회로 만들고 있으니, 가장 좋은 결과가 만들어진 게 아닐까 싶다. 2022년은 디지털 자산이 메인스트림 자산이 되고, 이를 기반으로 여러 가지 새로운 기회가 생길 거라고 희망을 해본다.

스트롱한 한 해

우리는 매주 화요일 오전에 스트롱이 검토하고 있는 모든 딜들에 대해서 충분히 이야기 할 수 있는 꽤 긴 전체 미팅을 한다. 처음엔 1시간이면 충분하던 게, 딜 수도 많아지고 각자의 생각과 시각도 다양해지면서 가끔 3시간 넘게 회의할 때도 있다. 다들 아주 바쁘지만, 우리의 존재 이유 자체가 우리 투자사들과 우리가 검토하는 회사들이라서, 화요일 오전만큼은 모두 충분히 시간을 내서 회사 이야기를 많이 한다.

11월에 존이 한국에 출장 나왔을 때 우리 팀은 당일치기로 북촌 한옥 마을 집을 하나 빌려서, 이 전체 미팅을 외부의 방해 없이 여기서 하루 종일 했다. 멀리 가볼까 생각도 했지만, 하루 이상 시간을 낼 수가 없었고, 하지만, 사무실이나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마음의 여유를 갖고 오랜만에 얼굴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1일 워크숍을 했다. 우린 이걸 ‘소풍숍’이라고 한다.

일 이야기도 하루 종일 했지만, 서로 바빠서 그동안 못 했던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고, 삼청동에서 맛있는 음식도 먹었다. 거의 2년 동안 화상 미팅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같은 공간에서 얼굴 보면서 이야기 하는 게 얼마나 좋은지 다시 한번 느꼈다.

2021년 우리 팀은 정말 바빴다. 쓸데없는 일은 웬만하면 다 쳐내고, 우리가 해야 하는 일, 즉, 창업가들과 우리 LP들과 같이 일하는 데에 모든 에너지와 시간을 투자했지만, 그래도 시간은 항상 모자랐다. 우리 팀원 5명이 올해 한 일을 모두 나열할 순 없지만, 모두 일 당 삼 백의 일을 했다. 이렇게 적은 인력으로, 이렇게 많은 회사에 투자하고, 그 회사들을 최선을 다해 도와줬다. 그리고 이렇게 적은 인력으로, 이렇게 많은 LP들과 소통하고, 서로가 모두 스트롱해지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북촌 워크숍에서 찍은 이 사진을 보면 이 스트롱한 팀이 정말 자랑스럽다.

사진 2021. 12. 1. 오전 7 41 07

우린 엄밀히 말하면 금융업이라기보단, 사람을 연구하는 인문업에 종사하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람’인데, 우리가 투자하는 창업가, 우리에게 투자하는 LP, 우리가 어울리는 파트너들, 그리고 스트롱 팀원 모두에게 해당한다. 올해는 정말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우리도 많이 배우고, 더 겸손해졌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이 스트롱 팀원들과 후회 없는 2021년을 보내서 영광이다.

Together, We are ALL Strong!

더 좋은 사람되기

얼마 전에 내 파트너 존이 한국에 잠깐 들어왔었다. 우리가 워낙 적은 인력으로 많은 투자를 하다 보니, 우린 모두 divide and conquer 전략으로 일을 한다. 쉽게 말하면 서로 각개전투하고, 각자 본인의 싸움에 집중한다. 특히 존이랑 나는 스트롱을 7년 동안 둘이서만 운영했기 때문에, 서로 할 일 하고, 만나야 할 회사들 따로 만나고, 그리고 중간 중간에 sync 하면서 일하는 스타일에 매우 익숙하다. 요새도 우린 웬만하면 한 미팅에 둘이 같이 참석하지 않는다. 그 시간에 서로 따로 두 개의 회사를 만나는 게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후에 조인한 조지윤 수석과 신득환 심사역도 마찬가지로, 가급적이면 모두 따로 움직이면서 여러 개의 회사를 만나고 중간 중간에 다 같이 이야기하면서 서로를 업데이트한다.

그래서 존이 한국에 나와도 서로 얼굴 볼 시간이 많지 않다. 이번에도 너무 바빠서 다시 미국 갈 때쯤 호텔에서 아침을 먹으면서 그동안 얼굴 보고 하지 못했던 이야기 하면서 파트너 회의를 했다. 일 이야기를 다 끝내고, 그리고 미국은 Thanksgiving 기간이기도 했고, 연말이기도 해서 서로 각자 올해 고마웠던 사람들과 사건들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존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VC라는 업에 대해서 항상 고맙게 생각하는데, 그중 제일 고마운 건, 투자를 하면서 나 스스로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이게 무슨 말이나 하면, 지난 9년 동안 투자를 하면서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이보다 더 다양한 상황을 경험했는데, 이 모든 걸 겪으면서 내겐 그동안 없었던 다양한 능력, 감정, 시각, 그리고 태도가 생겼다. VC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회사원 생활을 했다면, 절대로 만날 수 없는 별의별 사람을 만났고, 시키는 일만 하는 직업이었다면 절대로 접할 수 없는 별의별 경험을 다 했다. 물론, 좋은 경험도 있었지만, 정말로 스트레스받았던 좋지 않았던 경험도 많았다.

그러면서 나도 참 많이 변했는데, 전반적으로는 아주 좋은 방향을 변한 것 같다. 9년 전의 나보다는 훨씬 더 긍정적이고, 인내심있고, 감사하고, 끈기 있고, 이해심있고, 공감하고, 그리고 이 좋은 특징들은 끝없이 나열할 수 있다. 어쨌든, 투자라는 업무를 하면서 나는 과거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이 된 것 같고, 이 부분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너무나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조금 더 감상적인 말을 해본다면, 우리가 하는 업은 돈을 좇기 보단, 사람을 좇는 일인데, 다양한 사람을 만나다 보니, 사람에 대한 불신보단 확신이 많이 생겼다. 즉, 인류에 대한 믿음이 확실하게 내 안에서 자라고 있다. 그리고 이건 좋은 현상이다.

그릿(grit)

Yulip 0

2주 전에 우리 투자사 율립의 새로운 립스틱과 립밤을 받았다. 프리오더는 그 전에 했고, 실제 생산하기까진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잘 해결해서 무사히 나 같은 고객에게 배송됐다. 얼마 전에 내가 율립 2.0 이라는 글에서 이 제품의 탄생 배경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을 했다. 원혜성 대표님을 나는 수년 전부터 알았고, 사업 시작 초반부터 율립을 봤었고, 이번 제품이 얼마나 힘들게 탄생했는지 잘 알기 때문에, 내가 주 고객은 아니지만, 실제 물건을 받아보니 감동이었다.

일단, 이렇게 제품 하나씩 개별 포장되어 배송된다.

Yulip 1

생분해 케이스의 형상은 지구와 생명을 상징하는 씨앗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소셜 미디어에선 로켓과 비슷하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고 있다. 겉 포장지를 벗기고 보니 정말 우주로 날아가면서 케이스가 하나씩 분리되는 로켓과도 비슷하다.

실은 이 포장에도 정말로 많은 고민과 생각이 담겨있다. 잘 보면, 그 어떤 접착제나 테이프 없이 그냥 종이 자체로만 립스틱을 보호하는 포장인데, 율립 팀은 그만큼 환경을 생각하면서 이런 부분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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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스는 생분해 소재로 만들었다. 분해 되려면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지구에 영원히 남지 않고 서서히 분해돼서 언젠가는 완전히 없어지는 지속 가능한 소재이다. 생분해 소재로 만들었기 때문에 강렬한 색을 표현하는 게 힘들었지만, 최선을 다해서 earth friendly한 파스텔 톤의 케이스를 만들었다. 그리고 립스틱을 다 사용하면, 심지만 빼서 버리면 된다. 리필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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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는 스타트업이라서 여러 가지 부분에서 어느 정도의 타협과 절충이 필요했지만, 지속가능성과 ESG에 대해선 율립 팀원분들이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으면서 영혼을 갈아넣어 만드는 걸 옆에서 내가 직접 봤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정말 많은 응원과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이미 소셜미디어에선 아주 긍정적인 반응들이 올라오고 있고, 재활용, 비건, 지속가능성이라는 키워드를 사용하는 다른 회사의 제품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립스틱이라는 칭찬을 받고 있는걸 보면, 율립 팀의 노력과 그릿(grit)이 헛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주문해서 직접 사용해 보고, 공존하는 아름다움을 경험하시길.

50권 – 2021

사진 2021. 12. 3. 오전 7 05 22작년 이 맘 때쯤, 1년 독서량 50권을 돌파하면서 이런 을 썼다. 목표를 달성해서 기분이 매우 좋았고, 지식이 쌓이는 것 같아서 더욱더 뿌듯했다. 독서는 남들이 수십 년, 또는 수백 년 동안 축적한 지식을 짧은 기간 안에 내 지식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너무 쉽고 간단해서, 이렇게 쉽게 지식을 습득하는 게 가끔 미안할 정도이다.

올 초에도 50권을 목표로 세팅했는데, 올해는 이 목표를 조기 초과 달성해버렸다. 해가 다 가기 전에 2권 정도 더 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올해는 이미 52권의 책을 읽었다. 자랑하려고 이런 포스팅을 하는 건 아니지만, 바쁜 일정 속에도 마음의 양식을 많이 먹었다는 점, 그리고 고민 끝에 세운 목표를 계속 달성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스스로 대견해서 나에게 선물이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이다.

여러 번 쓴 내용이지만, 내 책 읽는 패턴은 단순하다. 소셜미디어, 언론, 그리고 지인들로부터 추천받은 책은 우리 투자사 플라이북 앱의 ‘읽고 싶은 책’ 카테고리에 등록한다. 이 책들을 먼저 우리 투자사 국민도서관에서 검색해서, 대여할 수 있으면 여기서 대여하고, 못 찾은 책은 동네 도서관에서 직접 대여한다. 국민도서관에도 없고 동네 도서관에도 없으면, 다른 분들에게 빌려보거나, 아니면 대여 가능할 때까지 기다린다. 그냥 한 권 사서 읽으면 되는데, 나는 더는 책을 사서 보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책을 안 산지 한 4년이 넘은 것 같다.

올해는 동네 도서관을 직접 방문해서 책의 냄새를 맡고 – 요샌 마스크를 써서 책 냄새를 맡기가 힘들지만 – 물리적인 도서관만이 줄 수 있는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끼는 즐거움을 많이 경험하면서, 책 시장은 완전히 이북으로 넘어가진 않을 것 같고, 리테일이 망하고 있다고 하지만 도서관은 망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 정신없고 바쁜 일상 속에서 도서관 방문은 나에게 마음의 여유와 정신적 평온을 주는 일종의 성스러운 의식이 되어버린 것 같다.

1년에 50권을 읽으려면,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1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 사람들이 요새 책을 너무 안 읽어서 그렇지, 이게 대단한 건 전혀 아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나에게 하루에 주어진 24시간을 잘 활용해야 하고, 가끔 다른걸 희생해야한다. 나는 웬만하면 저녁 약속을 올해도 잡지 않았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모일 수도 없었지만, 사람 많은 걸 싫어하고 술도 즐기지 않아서, 그냥 가급적이면 저녁을 집에서 조용히 보냈다. 집에서 저녁도 먹고, TV도 보고, 책도 읽고, 이렇게 하다 보니 일주일에 한 권 정도의 책을 읽게 된 것 같다.

올해도 스타트업이나 비즈니스 관련된 책은 거의 읽지 않고, 소설, 에세이, 그리고 수필 위주로 읽으면서 다양한 글쟁이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고, 소소한 내용을 읽으면서 스스로 생각도 정리하고 정화할 수 있었다. 어쨌든, 나에게 독서는 자신을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훌륭하고 저렴한 최고의 도구이다.

좋은 책을 올해 많이 읽었는데, 홍정욱 씨의 에세이 50에서 발견한 다음 문구가 매우 맘에 들었다.

“5년 후의 나를 결정하는 두 가지는 만나는 사람과 읽는 책”

Amen to th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