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

재충전

지난주 부터 한 일주일 동안 여수의 시골 어촌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다. 웬만하면 월, 목 글을 포스팅하는 걸 빼먹지 않고, 이번 휴가 동안에도 글을 쓰려고 했지만, 쉬다 보니 몇 번 건너뛰게 됐다. 30대였을때만해도 나는 휴가나 재충전이라는걸 믿지 않았다. 그런 건 약한 사람들을 위한 거고, 정말 열심히, 열정적으로, 성공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항상 일 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바보 같은 개똥철학이었던 거 같다.

이제 나는 쉬는 거에 대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옹호자가 됐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시간을 내서라도 일에서 손을 좀 떼고 쉬는걸 주장하는, 휴가에 대해서는 유러피안 마인드를 고집하고 있다. 나도 짧게는 3개월에 한 번씩, 또는 6개월에 한 번 정도 짧게 쉬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데, 올 해는 한 번도 이런 시간을 갖지 못 해서 몸과 마음이 조금 지치긴 했다. 올 해는 예상치 못 했던 큰 변수가 코비드19 이었는데,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바뀔 때마다 재택 근무와 사무실 근무를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일 년이 거의 다 갔고, 이제 이렇게 스위칭 하는 게 익숙해졌으니, 조금 쉬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뭐, 그렇다고 일을 완전히 놓을 순 없다. 여기에서도 매일 일정 시간을 정해놓고 이메일 확인하고, 중요한 일들은 처리하고 있는데, 딱 정해진 시간에만 일을 하다 보니 우선순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일은 다 미루고 있다. 우리도 이제 투자사 숫자가 늘어나다 보니 해야 할 일도 많고, 챙겨야 할 것도 많고, 여러 가지가 8년 전에 존이랑 나만 사업을 할 때 보단 복잡해졌다. 그래서 스트롱 인원도 충원했지만, doing more with less 전략을 취하다 보니, 항상 일이 넘친다. 그래도 내 파트너 존, 그리고 조지윤 책임과 허연정 매니저와 같은 좋은 동료들이 있어서 큰 걱정하지 않고 편하게 쉬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몸과 마음을 재충전 하고 있다.

잠깐 쉬면서 재충전하는 게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는 말을 많이들 하는데, 이 말을 나는 요새 굳게 믿는다. 아니, 더 나아가서 십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고 하는 게 정확할 것 같다. 모두 너무 바쁘다 보니 쉴 시간도 없고 휴가 갈 시간도 없고, 며칠 자리를 비우면 큰 일이 날 것 같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그래도 아무 문제 없이 모든 게 잘 돌아가더라. 그래서 일부러라도 자주 채충전의 시간을 갖는걸 권장한다.

이 사진은 지금 에어비앤비로 머무는 숙소의 마당에서 찍은 사진이다. 아마도 콜하고 있는 거 같은데, 사진 제목은 ‘노인 VC와 바다’ 이다.

사진 2020. 10. 13. 오후 5 59 30

노인 VC와 바다

숫자 싸움

투자받는 순서에 따라서 우린 펀딩 라운드를 시리즈 A, B, C, D 등의 알파벳으로 표시한다. 여기에 특별한 의미는 없고, 그냥 말 그대로 순서에 따라서 구분하는 것이다. 스트롱은 주로 시리즈 A 이전에 투자하는 초기 투자자인데, 이때는 대부분의 사업이 완성된 제품도 없고, 제품이 없기 때문에 고객이 없고, 고객이 없기 때문에 사용자나 매출과 같은 수치가 거의 없다. 그래서 그 팀을 보고 투자하고, 팀을 보고 투자하기 때문에 창업가의 스토리, 성품, 실행력, 스트레스에 대한 면역력 등을 그 어떤 특징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시리즈 A부턴 투자자들이 숫자를 따진다. 미국의 경우 100억 원 이상을 주로 시리즈 A라고 하는데, 한국은 이보다 조금 작은 거 같고, 내가 봤던 한국의 시리즈 A는 30억 원 이상인 것 같다. 이 정도 규모의 투자를 받으려면, VC도 어느 정도 규모가 돼야 하고, 회사도 이 규모의 투자를 받기 위한 그릇이 돼야 하는데, 이 그릇은 대부분 숫자다. 전에 내가 미국의 Shark Tank 프로에 나왔던 창업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회사의 성장이 좋고 숫자가 좋으면 모든 투자자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요새 Y Combinator가 약간 맛이 간 거 같지만, 그래도 다른 악셀러레이터 출신 회사보단 아직 YC 출신 회사들이 훨씬 수준이 높다고 생각한다. YC 데모데이는 한국의 데모데이랑은 조금은 다른데, 일단 발표 시간부터 2분 30초로, 주로 5분 발표를 하는 다른 데모데이보다 짧다. 이 2분 30초 동안, 대부분의 창업가는 정성적인 이야기보단 정량적인 숫자 이야기를 한다. 즉, “우린 창업 후 15개월 동안 매달 20% 성장했습니다.”와 비슷한 이야기로 발표를 시작하는 스타트업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나머지 남은 시간도 거의 숫자로만 도배된 슬라이드로 발표를 한다. 발표 자료에 숫자가 없는 스타트업은 대부분 실적이 좋지 않은 회사들이다.

스타트업은 종합 예술이다. 비전도 중요하고, 장기적인 전략도 중요하고, 어떻게 창업을 하게 됐는지에 대한 스토리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창업 초기에 시드 투자 받을 때는 이런 정성적인 내용을 투자자들이 많이 참고하게 된다. 하지만, 규모가 더 큰 투자를 받으려면 점점 더 이런 정성적인 부분의 중요도는 떨어지고, 숫자가 왕이 되기 때문에, 정량적인 수치가 중요하다는걸 모든 대표들은 명심해야 한다. 우리 투자사 대표 중에도 숫자를 유독 잘 보면서 관리하는 분들이 있는 반면, 기본적인 회사의 매출이나 MAU 조차도 잘 못 외워서 물어볼 때마다 다시 엑셀을 열어봐야 하는 분들이 있다. 심지어 대부분의 지표를 머리 속에 담가 다니면서, 누가 물어보면 기계적으로 줄줄 외우는 분들도 있는데, 이런 분들이 대부분 사업을 정말 잘한다. 외우기 위해서 이런 숫자를 외운 게 아니라, 하루에도 수십 번 확인하면서, 어떻게 하면 이런 수치를 개선할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하고 있기 때문에 자동으로 뇌에 박히는 것이다.

어떤 투자사들은 아예 실시간으로 비즈니스의 수치를 확인할 수 있는 대시보드를 내부용뿐 아니라 투자자들과도 공유한다. 이걸 보면 정말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KPI들이 보이고, 작은 회사지만 이런 깊이 있는 수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란다. 그렇다고 이런 수치만 계속 보고, 실시간으로 트래킹한다고 모두 다 사업을 잘 하진 않는다. 하지만, 내가 아는 대표 중 시리즈 A 이상의 투자를 받은, 사업을 정말 잘하는 분 중 본인들 비즈니스의 숫자를 잘 모르는 분 들은 단 한 분도 없다. 내 사업의 KPI를 모두 다 줄줄 외우고 있을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어딘가 계속 기록하면서 모니터링하고 트래킹하고 있어야 하며, 결국 이런 걸 하루에도 수십 번씩 확인하고 보면 기억력이 좋지 않아도 결국 외우게 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런 숫자를 잘 관리해야 하고, 결국 사업은 말로 하는 게 아니라 숫자로 보여주는게 중요하다는 그 마인드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베이브 루스 vs. 스즈키 이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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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Nchuccida / 크라우드픽

조지 허먼 루스 주니어는 베이브 루스(Babe Ruth)라는 별명으로 더 널리 알려진 메이저 리그 야구의 전설적인 홈런왕이었다. 베이브 루스는 메이저 리그에서 22시즌을 뛰며 통산 714개의 홈런을 쳤다.
우리한테 조금 더 친숙한 일본의 스즈키 이치로 선수는 현역때 별명이 ‘안타제조기’ 였는데, 일본과 미국에서 친 안타는 총 4,367개이다. 이걸 어떻게 보냐에 따라서 의견이 다르지만, 일단 숫자로만 따지면 야구 역사상 가장 많은 안타를 친 선수라고 할 수 있다. 안타를 잘 치는 선수라서 홈런은 베이브 루스보단 한참 떨어지는 118개를 쳤다.

나는 야구 보는걸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기록을 다 외우면서 특정 구단과 선수를 응원하는 그런 열성 팬은 아닌데, 오늘 이렇게 베이브 루스랑 이치로 선수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야구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요새 내가 계속 생각하는 것과 야구 선수들과 비슷한 점이 많아서 몇 자 적어보고 싶어서이다.

누군가 스트롱은 어떤 스타일, 전략의 투자를 하냐고 물어보면, 이 질문의 의도에 따라서 답은 다양해진다. 이 업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한테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우린 이치로의 안타 전략 보단 베이브 루스의 홈런 전략에 더 가까운 스타일이라고 한다. 실은 투자를 시작할 때부터 존이랑 나랑 스트롱은 무조건 홈런을 치는 전략으로 투자하자고 합의를 본 건 아니다. 실은 그땐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좋은 tech 회사에 투자하기 위해서 펀드를 만들어서 시작했고, 다른걸 떠나서 우린 창업가 그 사람 자체에 투자하는 게 가장 성공 확률이 높은 투자라는 생각을 해서, 가급적이면 좋은 창업가에게 아주 초기에 소액을 투자하는 초기 투자를 했다(물론, 그렇게 했던 또 다른 이유는 돈 모으기가 힘들어서, 펀드가 작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투자를 시작했고, 막 크진 않지만, 펀드 규모가 조금씩 커지면서, 우리도 투자 전략이라는 게 조금씩 만들어져 갔다. 전략이라고 하면 좀 거창하지만, 우리는 소액의 자금을, 초기 단계의 회사에, 그리고 비즈니스/시장/숫자보단 창업팀을 보고 투자하는 전략을 실행하고 있다. 정확한 숫자를 세어보진 않았지만, 우리가 지난 8년 동안 투자한 150개가 넘는 회사 중 절반 이상의 회사에 스트롱이 첫 번째 또는 두 번째 기관투자를 했고, 심지어 어떤 회사는 우리 투자금으로 법인 설립을 할 정도로 우린 일찍 투자했다. 이 전략이 맞아떨어지면, 회사가 exit 할 때의 배수 자체가 어마어마하다. 워낙 일찍, 상대적으로 싸게 투자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exit이 많진 않았지만, 몇 개의 사례를 보면 모두 남들이 갸우뚱 할 때 우린 초기에 들어가서 회사가 잘 됐을 때 엄청 높은 배수의 위닝을 했다. 바로 위에서 말한 베이브 루스의 홈런 전략이다.

그런데 이렇게 투자해야 하고, 우린 너무 잘한다는 자랑을 하는 게 아니다. 실은 이렇게 투자하는 건 그만큼의 리스크가 동반된다. 베이브 루스가 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는데, 공을 치기 위해서는 무조건 배트를 휘둘러야 하고, 그는 이 말에 충실해서 홈런도 많이 쳤지만, 친 홈런의 두 배 이상인 1,300개 이상의 삼진 아웃을 당했다. 우리도 크게 다르진 않다. 홈런 exit이 하나 나오려면, 일단 exit이 가능한 회사가 많아야 한다. 그래서 그만큼 많은 회사에 투자하고 있는데, 현실은 이 중 많은 회사가 망한다. 그래도 계속 공을 제대로 보면서, 열심히, 힘껏 배트를 휘두르다 보면 언젠간 홈런을 칠 수 있고, 이렇게 믿고 계속 배트를 휘둘러야 한다. 투자를 보는 관점도, “여기 투자했다가 잘 못 되면 어떻게 하지”가 아니라 “여기 투자해서 잘 되면 엄청나겠는데”라는 쪽으로 봐야 한다.

하지만 이 베이브 루스 전략이 모두에게 맞는 건 아니다. 규모가 더 큰 투자를 하는 분들은, 오히려 큰 홈런보단, 작은 안타를 더 많이 치는 게 회사의 전략과 맞다. 이건 회사와 파트너의 성향, 펀드의 규모, 투자 철학 등과 맞물리기 때문에, 거기에 맞는 전략을 선택해야 한다. 티끌 모아 태산 전략을 선택하면 이치로와 같은 안타 전략이 더 맞고, 크게 벌려고 하면 크게 휘둘러서 홈런을 치는 베이브 루스의 홈런 전략이 맞다.

B2C와 B2B

우린 작년부터 B2B 회사에도 꽤 활발하게 투자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투자는 B2C 제품을 만드는 회사에 했다. 꼭 어느 쪽이 더 좋은 비즈니스라고 하긴 어려운데, B2C 회사가 조금 더 이해하기 쉽고, 바이럴성이 더 강해서 B2B 회사보단 폭발적인 성장이 더 잘 일어나긴 한다. 하지만, 이런 성장을 위해서는 많은 투자금이 희생되어야 하고, 엄청난 마케팅 싸움 또한 동반되야한다. 이렇게 피튀기는 싸움을 해도 더 큰 경쟁사가 더 많은 돈을 갖고 나타나면, 시장을 빼앗길 수도 있기 때문에 특히 진입장벽이 높지 않은 제품에게는 스피드가 매우 중요하다. B2B 회사는 바이럴을 타는 건 쉽지 않지만, 한번 고객을 확보해놓으면 꾸준히 매출을 발생하는 장기적인 기업고객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사업을 하다 보면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시 B2C 회사로 돌아오면, 어차피 똑같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기업고객한테도 판매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대표들이 B2C와 B2B 사업을 동시에 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물건을 만들어서 인터넷으로 개인들에게 직접 판매하는 D2C 비즈니스를 B2C로 시작했는데, 얼마 후에 기업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B2B 사업도 동시에 같이 하는 회사들이 우리 투자사 중에도 꽤 있는데, 이런 비즈니스를 관찰하면서 느낀 점이 몇 가지 있다.

가장 큰 배움은, 일단 똑같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그대로 판매하더라도, B2C와 B2B는 결국엔 완전히 다른 비즈니스가 될 확률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즉, 회사가 웬만큼 커져서 인력과 돈이 많이 없으면, 되도록 이 둘 중 하나에만 집중하는 게 더 잘 성장하고, 결국엔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태생이 B2C인 비즈니스가, 같은 제품으로 B2B를 하게 되면 우리의 실질적인 고객은 – 즉, 우리한테 돈을 내고 물건을 사는 사람 – 우리 제품을 최종적으로 사용하게 되는 C(Consumer)가 아니라 B(Business)가 되는데, 이렇게 되면 사업이 완전히 달라진다. D2C 비즈니스를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 이커머스 플랫폼을 통해서 소비자에게 직접 물건을 판매하면, 최종 소비자들이 많이 있는 곳에서 집중적으로 마케팅을 하게 된다. 아마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 미디어에서 다양한 기법을 통해서 마케팅을 할 것이다. 또는, 많은 소비자들이 사용하는 구글이나 네이버 같은 검색 엔진에서 SEO 등과 같은 기법을 통해서 마케팅하고, 이 잠재 고객이 우리 플랫폼을 방문하면, 이들의 데이터를 최대한 많이 확보해서 앞으로 계속 우리 물건을 더 많이 사고, 더 자주 살 수 있도록 모든 마케팅 역량을 집중할 것이다. 최대한 많은 개인들한테 우리 물건을 마케팅하고 이들이 더 많이 구매할 수 있게 하는 게 B2C 비즈니스의 목표다.

B2B로 전환을 하면 달라진다. 그냥 우리 물건을 대량으로 사입할 수 있는 기업에 우린 팔면 된다. 그 다음에 이 기업이 최종 소비자한테 어떻게 판매하는지는 우리와는 큰 상관이 없다. 우리는 이 기업에 돈을 받고, 이들이 우리의 고객이 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B2C 비즈니스보단 더 간단한 것 같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일단 영업이라는걸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 전에 하던 갑과 을이 존재하는 그런 고전적인 영업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기업의 담당자를 만나서 우리 회사와 제품 설명을 해야 하고, 계속 판매를 하기 위한 영업 활동을 해야 한다. 실은 이렇게 해서 B2B 고객이 많이 생기면 회사 매출에는 도움이 되는데, 장기적으로 보면 이 B2B 고객들이 실제로 우리 물건을 판매하는 최종 소비자들에 대한 그 어떤 데이터도 우리가 확보할 수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요새같이 인터넷이 발달하여 있는데, 우리의 최종 소비자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사는 곳은 어디인지, 연락처는 어떻게 되는지(이메일, 전화 등), 얼마나 자주 우리 제품을 구매하는지, 신용카드 정보 등과 같은 고객의 정보는 앞으로 우리가 이 분들한테 더 많은 물건을, 더 자주 판매할 수 있는 기회를 창출하는데 우리는 그냥 다른 기업에 물건만 팔면 되는 경우에는 이런 데이터를 확보하는 게 힘들다.

요샌 많이 좋아지고 있는데, 현금 흐름 면에서도 B2C 비즈니스가 B2B를 하다 보면 불리한 점이 가끔 있다. 제품의 최종 소비자 가격은 항상 같거나 거의 비슷해야 하는데, 우리가 고객에게 직접 판매하는 B2C 모델과는 달리 B2B로 판매를 하면, 우리 고객이 되는 기업이 중간에 가져가야 하는 마진도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우리한테 떨어지는 매출은 많게는 50% 이상 줄어들 수가 있다. D2C 비즈니스의 경우, 백화점에 입점하는 B2B 시도를 할 때 이런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백화점은 수수료의 명목으로 상당히 높은 할인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사몰에서 물건을 직접 고객에게 판매하면, 판매가 완료된 후에 바로 우리 계좌로 입금이 되는데, 기업들과 거래를 하다 보면, 심한 경우 90일 후에 결제해주는 곳도 있어서 장부상 매출은 잡히지만 실제 현금은 3개월 후에 들어오는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하는 경우도 나는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물론, 그렇다고 B2B 비즈니스가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약점도 있지만, 큰 기업이 우리 제품을 구매한다는건 우리한테는 상당히 좋은 브랜딩이 될 수도 있고, 그래도 한 번에 대량의 구매를 하는 경우가 많이 있어서 일시적으로는 매출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보면, B2C와 B2B를 모두 잡아야하는게 맞다. 결국, 이렇게 시장을 선점하면서 성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원이 턱없이 부족한 초반부터, 태생 자체는 B2C 비즈니스인데 B2B도 같이 하려고 하면, 처음에는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규모가 더 커질수록, consumer와 business는 완전히 다른 성격과 행동패턴을 가진 다른 고객이라는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 초반에는 선택과 집중을 잘 해야 한다.

1,000만 MAU

당근마켓 10M

이미지 출처: 당근마켓

우리 투자사 당근마켓의 MAU(Monthly Active Users: 한 달 동안 서비스를 이용하는 unique한 이용자 수)가 1,000만 명을 돌파했다는 기사가 며칠 전에 보도됐다. 회사의 상황을 남들보다는 더 깊게 알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의 성장 속도를 봤을 때 1천만이라는 수치는 당연한 산출물이지만, 막상 이 숫자를 돌파 했을 때는 조금 먹먹해졌다. 한국 인구 5,200만 명, 스마트폰 인구 5,000만 명인데, 이 중 20%인 1,000만 명이 당근마켓을 매달 사용한다는 건 이제 갓 5년 된 앱이 만든 대단한 실적이다. 작년 7월 MAU가 300만, 이후 9개월 만에 2배가 넘는 700만, 그리고 다시 4개월 만에 1,000만 MAU 고지를 점령했다. 우리가 첫 투자를 했고, 분명히 잘할 팀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 몰랐는데, 항상 우리의 예상과 기대를 가뿐히 넘어주는 당근마켓 팀이 너무 자랑스럽다.

이 1,000만이라는 숫자도 엄청나지만, 당근마켓은 중고거래를 기반으로 동네 주민의 문화, 생각, 태도를 확실히 바꾸고 있고, 이게 실은 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최근에 당근마켓 거래를 하면서 경험하고 느꼈던 점을 공유하고 싶다. 오래된 계산기를 18,000원에 판매한다고 올렸는데, 잠원동 분이 아파트 정문으로 오겠다고 했다. 배터리가 오래 돼서 액정이 깜박거렸는데, 그냥 배터리는 알아서 교체하라고 설명에 적었다. 아주 발랄한 여대생 분이 따릉이를 타고 왔고, 개강해서 회계용 계산기가 필요했는데 너무 고맙다고 여러 번 인사하면서 물건을 받아 갔다. 나는 계산기 배터리가 수명이 다 돼서 교체해야하는데(3V 배터리 실물까지 보여주면서), 계산기 특성상 배터리 교체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에, 유튜브 영상보고 그대로 따라 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집으로 오면서 걱정이 됐다. 혹시 배터리가 문제가 아니라 계산기가 너무 낡아서 액정이 문제면? 저렇게 밝고,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크게 실망하지 않을까, 그리고 숙제하는데 지장이 생기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했는데, 이런 걱정은 솔직히 중고거래 판매자가 하는 그런 일반적인 걱정은 아니다. 그냥 팔면 장땡이고, 문제가 있어도 난 몰라하는 마인드가 일반적인데 우리 동네 사람이고, 돈 없는 학생이고, 내 매너온도가 걸려있는 문제이고, 등등 이런 것들이 다 마음에 걸렸다.

아니나 다를까, 배터리를 힘들게 교체했는데도 액정이 깜박거린다고 다음날 당근을 통해서 연락이 왔다. 나는 고민 한번 하지 않고, 계산기값 18,000원에 배터리값 3,000원까지 해서 21,000원을 환불해드렸다. 솔직히 나는 막 착한 사람도 아니고, 손해 보는 거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런데 이런 내 행동을 봤을 때, 확실히 당근마켓은 독특한 동네, 로컬, 중고거래 문화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더 좋은 건 이게 net negative가 아니라 net positive한 좋은 문화라는 점이다. 이런 디테일이 모여서 1,000만 MAU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