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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공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블로그에 영어 관련 포스팅을 많이 했는데, 당시에 “영어 좀 한다고 영어 못하는 사람들 너무 무시하는 게 아니냐?”라는 비판과 이메일을 많이 받아서 몇 년 동안 영어 관련 잔소리를 중단했는데, 오늘 다시 한번 시작해 볼까 한다.

어떤 자리에서 회사가 성장할수록 가장 중요한 대표의 자질에 대해 대화했는데, 나는 이 자리에서 영어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했다. 스타트업 대표가 영어를 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규모 펀딩 때문이다. 초기 투자와 시리즈 A 정도까지는 국내 VC들로부터 받을 수 있고, 우리 같이 해외 VC이지만 한국 인력들이 풍부한 곳으로부터 받을 수 있다. 어느 정도 규모의 자금까진 대화가 가능한 국내 VC들이 충분히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가 계속 성장을 해서 수백억 원~수천억 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면, 그리고 이 자금을 수십 개의 VC가 쪼개서 투자하는 구조가 아니고, 전체 라운드의 50% 이상을 부담할 수 있는 큰 투자자가 필요하다면, 한국 보단 해외 쪽으로 눈을 돌리는 게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한국계가 아닌 해외 투자자들과 비즈니스에 대해서 자세하고 진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유창한 영어가 필수다.

실은 나는 이런 이야기를 11년 전부터 창업가 분들에게 했는데, 당시의 버전은 지금의 버전과 약간 달랐다. 대규모의 투자를 받아야 하고, 이 투자를 여러 개의 VC로부터 나눠서 받는 것 보다 소수의 VC에게 받고 싶다면 아무래도 펀드가 더 크고, 미래의 가능성에 더 용감하게 대규모 자금을 커밋할 수 있고, 한 번 들어간 이후에 계속 후속 투자를 할 수 있는 해외 VC로부터 투자를 받는 게 좋다는 버전은 동일하다. 그런데 당시에는, 혹시 대표이사가 영어에 자신이 없다면, 영어를 유창하게 하고, 회사의 역사와 비즈니스에 대해서 A부터 Z까지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다른 직원을 동반해서 해외 투자자와 미팅을 하는 것도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 대표가 영어를 못 하면, 영어를 잘 하는 경영진을 채용하라고 했는데, 이제 이 버전을 좀 바꿀 때가 된 것 같다.

회사를 책임지고, 사업을 하고, 재무를 책임지고, 직원을 채용해야 하는 대표이사가 직접 영어를 잘해야 한다. 창업자/대표이사만큼 우리가 하는 비즈니스와 시장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회사에 없고, 투자자는 본인들의 돈이 투입될 사업을 총괄하는 대표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미래를 보는지, 어떻게 전략을 만들고 있는지, 어떻게 사람을 채용하고 있는지, 뭐 이런 걸 아주 자세히 알고 싶어 한다. 특히나, 해외 VC에 투자받아야 하는 단계까지 온 회사라면, 수백 원 원 ~ 수천억 원의 자금이 필요할 텐데, 이렇게 큰돈을 투자하면서 내가 누구에게 투자하는지 안 궁금해할 수 없지 않은가.

투자자가 궁금해하는 이런 구체적인 이야기는 회사의 다른 사람이 전달할 수 없다. 회사를 직접 만들어서 처음부터 경영하고, 지금의 회사를 만든 창업가와 대표만이 제대로 전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대화를 대표가 아닌 영어를 잘하는 다른 임원, 다른 직원, 또는 통역사가 할 수도 없고, 설령 하더라도 그 임팩트는 크지 않다. 이런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대표가 한글만큼 영어를 잘해야 한다.

우리도 큰 해외 VC와의 관계가 좋기 때문에, 스트롱 투자사들이 어느 정도 단계에 올라오면 해외 VC와 연결해 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리고 해외 VC를 소개해달라고 하는 스트롱 창업가들이 상당히 많다. 하지만, 항상 두려움과 망설임이 앞서는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의 영어 실력이다. 그래서 나는 요새 대표님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본다. “영어 잘하세요?” 그러면 대부분 “Writing은 괜찮은데 speaking은 자신이 없습니다.”라고 답을 한다. 이 말은 그냥 영어를 못한다는 것이다. 영어를 못하는 대표지만, 수치가 너무 좋다면, 내가 가끔 미팅에 동행해서 통역을 해주는데, 나도 바쁜 사람이라서 항상 이렇게 할 수도 없고, 투자자라면 기존 투자자를 통해서 듣기보단, 창업자와 대표이사로부터 직접 사업에 대해서 자세히 듣기를 원할 것이기 때문에 되도록 같이 참석하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선뜻 외국 투자자들 소개를 못 해주고 있다. 아니, 안 해주고 있다.

회사가 성장하면서 대표가 성장을 같이 해야 하고, 결국엔 대표가 회사보다 더 많이 성장해서 회사를 품든, 회사가 대표보다 더 성장해서 회사가 대표를 품는다. 회사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선 대표이사의 영어 공부와 실력이 생각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모든 스타트업 대표는 열심히 영어 공부하는 걸 적극 권장한다.

노가다

몇 달 전에 몹시 어려운 분야에서 오랜 시간 동안 사업을 해서 조 단위 기업가치의 스타트업을 만든 창업가의 이야기를 들을 귀한 기회가 있었다. 언론에 잘 노출되지 않는 분이라서 그런지, 그 이야기는 정말 참신했고 간만에 가슴 설레는 내용이었는데, 이 중 내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내용이 있었다.

이분이 창업가를 바라보는 시각이 참으로 신선했다. 본인은 창업가들이 전문 운동선수라고 생각하는데, 몸을 사용하는 운동선수가 아니라 뇌를 사용하는 운동선수라고 하는 점이 신선했다. 운동선수들은 꾸준한 훈련, 체중조절, 그리고 식단 조절을 하는데, 창업가들도 항상 뇌가 최적의 컨디션으로 작동할 수 있게 몸과 정신을 단련해야 하고, 그래서 운동선수와 비슷하게 창업가들도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 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운동을 해서 체력 관리를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몸이 건강해야지만 뇌도 건강해지고, 이런 각도로 사업을 바라보면, 거의 프로 운동선수 수준으로 창업가들도 몸과 뇌를 관리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많이 동의했고, 나는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운동선수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지만, 운동을 통해서 건강한 체력을 유지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내 생각과 근본적으론 크게 다르지 않은 철학인 것 같다.

뇌를 사용하는 운동선수인 창업가들에게 투자하는 VC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VC도 뇌를 많이 사용하는 운동선수인데, 우리 같은 초기 회사에 투자하는 VC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린 뇌만큼 몸을 많이 사용하는 운동선수인 것 같다. 아직 뚜렷한 제품도 없고, 비즈니스 모델도 없고, 좋은 팀과 에너지만 넘치는 창업가들에게 투자하는 건, 겉으로 보면 멋지고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도 안 멋있다. 우리는 노가다를 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속한 venture capital 업종은 대부류로서는 금융업에 속해있다. 결국 누군가의 돈을 스타트업에 투자해서 수익을 내야 하는 업이고, 우린 이 돈을 관리해 주는 사람들이다. 나도 VC가 금융업인 줄 알고 스트롱을 처음에 시작했다. 하지만, 초기 투자를 11년 이상 해보니까, 오히려 우린 금융도 아니고 tech도 아닌, 건설업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요샌 하고 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창업가들과 같이 고민하면서 제대로 된 비즈니스를 만드는 것이다. 마치 땅을 파서 건물을 올리는 작업과도 비슷하고,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무에서 유를 만드는 작업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 힘든 비즈니스 건설(=business building)에 동참할 의지가 없다면 초기 투자자 되는 건 쉽지 않다.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서 스스로 말해본다. 나는 노가다를 하는 사람이고, 뇌보단 몸을 많이 써야 한다고.

글로벌 벤치마크

투자자들이 스타트업을 검토할 때 물어보는 공통 질문들이 몇 가지가 있는데, 이 중 하나가 글로벌 벤치마크에 대한 질문이다. 특정 스타트업이 혹시 벤치마킹하고 있는, 이미 시장에서 잘하는 서비스나 제품이 있는지, 그리고 조금 더 확장해서 국내 벤치마크도 좋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잘하는 글로벌 벤치마크가 있는지를 VC들이 자주 물어본다.

이 질문을 하는 배경은 대략 다음과 같다. 물론, 이건 개인적인 생각이라서 투자자마다 다를 수 있다.

일단 투자자에게 서비스가 생소해서 시장성이 있는지, 시장성이 있어도 어느 정도 성장 가능성이 있는지 잘 파악할 수 없을 때 이런 질문을 많이 한다. 만약에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이미 이와 비슷한 제품이 존재하고, 잘 사업하고 있다면, 투자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장성과 성장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어느 정도 해결해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 개인적인 경험을 공유하면, 우리가 투자한 운전선생이라는 서비스가 있다. 주변의 운전학원을 찾고 예약하는 서비스인데, 겉으로만 보면 시장성에 대해선 의문을 품게 하는 제품일 수도 있다. 나도 처음엔 갸우뚱했지만, 창업가를 만나고 너무 좋았고, 이미 프랑스에 이와 비슷한 사업을 하는 Ornika라는 유니콘 스타트업이 있다는 걸 확인한 후에는 앞으로 운전선생이 어떻게 발전하고 성장하면 될지에 대한 조금 더 뚜렷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위에서 내가 검토하는 서비스의 시장성과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어느 정도”만 해결해 줄 수 있다고 한 이유는, 글로벌 벤치마크가 존재해도 그 서비스를 대부분 국내 VC들이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그 벤치마크 서비스를 VC들이 연구하고 공부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잘 된다고 한국에서 잘 된다는 보장도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대형 글로벌 서비스가 있으면 VC들의 검토가 전반적으로 좀 쉬워지긴 한다.

이 포인트랑 직결되는 이야기인데, 이렇게 이미 비슷한 서비스를 잘하는 글로벌 유니콘 기업이 있으면, VC들의 내부 투심위에서 이 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승인받는 게 조금은 수월해진다. 아무래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거나, 아직 그 어떤 시장에서도 증명되지 않은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승인하기보단, 이미 비슷한 사업으로 유니콘이 된 글로벌 벤치마크 스타트업이 존재하고, 이 회사가 특히나 Sequoia, a16z나 Benchmark 같은 곳으로부터 투자를 받았다면, 이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투심위에서 승인받는 게 더 쉽다. “이미 유럽에는 이 컨셉을 기반으로 3조짜리 유니콘을 만든 회사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최소 1조 원짜리 비즈니스는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는 주장을 그냥 상상력을 동원한 게 아니라 어느 정도 현실감을 동원했기 때문에 담당 심사역도 더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글로벌 벤치마크가 있는지, 이 회사는 어떤 식으로 성장했는지, 어떤 곳으로부터 투자받았는지, 제품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이런 걸 창업가가 알고 있다면, 이분이 시장 조사를 나름 면밀하게 했다는 의미이고, 이런 태도는 투자자들에게 조금 더 믿음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이런 서비스의 존재에 대한 기사를 읽었는지, 아니면 정말로 본인들이 벤치마킹할 수 있는 유니콘 기업을 A to Z로 알고 있는지는 자세와 태도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니, 글로벌 벤치마크 유니콘 스타트업이 있고, 이 스타트업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면 투자받을 확률이 더 높다는 내용 같은데, 그건 아니다. 외국에서 아무리 우리와 같은 서비스로 10조짜리 유니콘이 탄생했다고 해서 한국에서도 그 서비스가 잘 된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결국엔 다른 팀이 다른 시장에서 비슷한 서비스를 하는 건데, 이런 환경에는 너무나 많은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에 글로벌 벤치마크의 존재 여부는 투자의 가능성이나 성공의 가능성과 비례하지 않는다. 하지만, 창업가가 눈과 귀를 활짝 열어놓고 시장을 계속 보고 있다는 면에는 긍정적인 시그널을 VC들에게 보낼 수 있다.

24시간 피칭

지난주에 미국 출장을 갔는데, 정말 오랜만에 실리콘밸리에 며칠 있었다. 이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샌프란시스코 공항까지 우버를 탔는데, 이 우버 기사가 엄청 수다스러운 백인 아저씨였다. 내가 타자마자 실리콘밸리 지역은 아주 위험한 곳이기 때문에 빨리 이 동네를 벗어나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무슨 말인지 물어보니, 너무 많은 VC들이 너무 많은 돈을 낭비하고 있기 때문에 아주 위험한 곳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그리고 공항 가는 내내 벤처캐피탈, 스타트업, 매크로/마이크로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많이 시끄럽긴 했지만 – 우버 기사분이 특수 분야에 대해서 이렇게 해박한 것에 놀랐고, 역시 우버 기사님들의 성향이 그 동네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 – 나에게 “Are you in the VC industry by any chance?”라고 물어봤다.

그렇다고 하면 너무 피곤해질 것 같아서 그냥 한국의 중소기업에서 무역업무를 하고 있다고 했고, 이분의 VC/스타트업 독백은 계속됐다. 조용히 가긴 글렀다는 생각에 나도 그냥 가벼운 대화를 하기로 했고, 몇 마디 나누면서 꽤 재미있는 사실들을 알게 됐다. 나이는 한 50대 중반 추정, UC 버클리 다녔는데 졸업은 안 했고, 데이터베이스 회사에 취직해서 세일즈를 오랫동안 했다고 한다. 그리고 로봇과 자동화 분야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 이 분야에서 창업하기 위해서 관련 전공책들을 보면서 스스로 로보틱스에 대한 기초 지식을 배웠고, 현재 창고 자동화 로봇 분야의 회사를 창업했는데, 돈이 없어서 펀딩을 하는 동안에 먹고 살기 위해서 우버 기사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세일즈를 오래 해서 그런지 정말로 말을 잘했고, 상대방을 혹하게 하는 면도 있었다. 본인이 만들고 싶어 하는 회사의 글로벌 벤치마크는 소프트뱅크가 투자한 Symbotic이라는 상장 회사인데 이 회사의 기술, 비즈니스, 펀딩 현황을 모두 줄줄 외우고 있었다.(귀찮아서 팩트체크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랑 이야기하면서 중간 중간에 본인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했는데, 꽤 흥미로운 사람이긴 했다.

내가 이분한테 하루에 손님들이 꽤 많을 텐데 모든 손님들에게 이렇게 에너지 넘치게 당신의 스토리와 회사에 관해서 이야기하는지 물어보면서, 마치 투자자에게 피칭(pitching)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이 분은 내가 정확하게 봤다고 했다. 실리콘밸리에는 워낙 돈 많고 투자하는 VC나 개인들이 많아서, 승객을 태우면 이 사람이 투자자일 확률이 30%가 넘기 때문에, 본인은 24시간 피칭하는 자세로 우버에 임한다고 했다. 바쁘고 약속 잡기 힘든 VC들이 내 차에 타면 이동 시간만큼은 오롯이 본인이 이들에게 피칭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투자받을 때까지 언제든지 피칭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희망찬 표정으로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바로 전에 인생 쏟아내기라는 포스팅을 올렸는데, 이분이 매일 매일 인생을 쏟아내고, 다시 채워넣기를 반복하는 삶을 사는 것 같다. 우리는 투자하지 않겠지만, 이런 끈질기고 긍정적인 자세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언젠가 투자자와 좋은 접점이 생겨서 본인이 원하는 사업을 하면서 인생을 살 수 있길. 그런데 공항 오는 내내 너무 시끄럽긴 했는데, 내가 VC라고 말을 했으면 아마도 제시간에 비행기를 못 탔을 것 같다.

투자의 리듬

바로 이전 포스팅에서 직전 라운드보다 낮은 기업가치에 투자받는 다운 라운드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 시점에도 우리 투자사를 비롯한 너무 많은 회사들의 다운 라운드가 진행되고 있지만, 이전 글에서 말한 대로, 그나마 다운 라운드라도 누군가 우리 회사에 투자하겠다고 하는 현상은 긍정적이기 때문에 무조건 받으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이렇게 우리 주변에서는 다운 라운드도 많고, 아예 투자를 못 받아서 망하는 회사도 많아서 자연스럽게 이런 좋지 않은 경기를 의식하는 많은 투자자들이 돈이 있음에도 투자를 꺼리고 있다. 내 주변에도 지갑은 두둑하지만, 좀처럼 열지 않고 있는 VC들이 많이 있다.

스트롱은 조금은 다른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누군가 우리에게 스트롱의 투자전략에 대해서 물어본다면, 우린 매우 일찍, 매우 꾸준히, 그리고 매우 자주 투자한다고 말한다. 즉, 불경기든 호경기든 우리가 시장에 돈을 투입하는 빈도와 속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도 지난 11년 동안 다양한 실험을 해봤고, 지금도 계속 우리에게 가장 잘 맞는 투자 방법과 전략을 찾기 위해서 이 실험은 진행 중이다. 이 분야에서 영원한 건 없고, 정답도 없지만, 초기 투자를 하면서 배운 점이 몇 가지가 있다면, 실력보단 운이 중요하고, 실력보단 타이밍이 중요한게 초기 투자이다. 운과 타이밍이 중요한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면,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매번 이길 순 없기 때문에 실력에 의지하기보단 운과 타이밍 때문에 볼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게 제일 좋은 전략이고, 우리가 지금까지 찾은 답 중 타율이 가장 높은 건 그냥 꾸준히 좋은 창업가들을 찾아서 투자하는 것이다.

불경기든 호경기든, 민주주의 국가든 공산주의 국가든, 휴가철이든 아니든, 주중이든 주말이든, 근무 시간이든 오프시간이든, 시장의 기회는 항상 존재하고, 시장의 비효율성도 항상 존재한다. 그리고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언제든지 누군가는 이런 기회를 포착해서 창업한다. 이 중 잘 안되는 회사도 많겠지만, 유니콘이 되는 회사들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런 회사들에 초기 자본을 제공했을 것이다. 스트롱이 될 수도 있지만, 다른 VC들이 될 수도 있다.

이 현상을 조금 더 깊게 보면, 경기가 좋고 시장에 돈이 넘쳐흐를 때는 규모와는 상관없이 모든 투자자들이 대규모 자본을 많은 스타트업들에 투입했고, 이에 따라서 너무 많은 회사들이 너무 빨리 기업가치가 상승하면서 유니콘들이 역대급으로 많이 만들어졌다. 이 돈지랄의 부작용은 유니콘이 되면 안 될 회사들이 유니콘이 됐다는 건데, 시장이 급랭하면서 이들의 기업가치가 폭락했고 너무 많은 투자자들이 역대급 손실을 봤다. 이런 좋지 않은 경험을 한 투자자들은 – 그리고 규모나 단계 상관없이 모든 투자자들이 이런 좋지 않은 경험을 했다 – 불경기가 오니까 대부분 지갑을 닫았고, 경기가 좋아지길 기다리는 모드로 전략을 바꿨다.

그런데, 시장이 나쁘다고 좋은 회사가 창업되지 않는 건 아니다. 좋은 창업가들은 좋은 회사를 꾸준한 리듬과 페이스로 계속 만들고 있다. 이 중 어떤 창업가들은 수십조 원의 기업을 만들 것인데 그 시점을 우린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확률이 높은 방법은 그냥 지속적이고 꾸준한 리듬과 템포로 투자하는 것이다.

불경기든, 호경기든, 자기만의 철학과 색깔을 갖고, 리듬감 있게 꾸준히 투자하다 보면, 분명히 성공하는 회사가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