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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선순환시키는 스타트업 투자

얼마 전에 포스팅한 내용에서 나는 VC 사업의 본질은 결국 돈을 버는 것이라고 했다. 돈 버는 건 중요하고, 특히 자본주의 세상에 사는 모두에게 돈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리고 너무 당연하지만, 합법적인 방법으로 벌어야 하고, 이왕이면 사회에도 기여를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면 더 좋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VC 투자라는 업은 돈의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효용가치를 가장 극대화할 수 있는, 돈을 가장 바람직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단 돈을 버는 입장에서 한번 보자. 벤처 투자는 말 그대로 모험자본인 만큼, 성공보단 실패할 확률이 큰, 고리스크 투자임은 확실하다. 하지만, 전 세계 VC 투자 실적을 장기적으로 트래킹하고 통계를 내보면, 수익률과 실적 면에서는 우리가 아는 그나마 안전한 부동산이나 상장주식 투자와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진 않는다. 평균적으로 봤을 땐 다른 투자와 비슷한 수익률이 발생하지만, 상위 수익률을 비교해보면 다른 투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벤처투자가 높다.

돈을 투자받는 입장에서도 한 번 보면 좋을 것 같다. 돈이 좋은 창업가에게 투자되고, 이들이 잘 돼서 다시 투자자에게 회수되기까지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이게 오늘 내가 말하고 싶은 주제다. 일단 스트롱을 비롯해서, 내가 아는 모든 VC들은 깨끗한 돈으로 투자한다. 우리에게 출자하는 LP들은 정직하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고, 번 돈에 대해서는 정직하게 세금을 내고, 이 자금을 우리에게 준다. 우리도 이 돈을 정직하고 합법적인 사업을 하는 창업가들에게 투자한다. 이들은 이 돈으로 고용을 창출하고, 세상을 조금 더 좋게 만들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데, 어떤 이들은 성공해서 우리가 투자한 금액보다 훨씬 큰 수익을 창출한다. 이 수익은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고, 우리에게 자금을 제공한 LP들에게도 돌아간다. 이런 성공적인 상황이 발생하면, 돈이 더 큰 돈을 벌어서 벤처 생태계에 윤활유 역할을 한다. 이 돈이 다시 스타트업에 투자되고, 큰돈을 번 창업가들은 다시 사업을 하거나 좋은 곳에 또 투자한다.

그런데 잘 아시다시피 대부분의 사업은 망하고, 이 사업에 투자된 금액은 그냥 증발해버린다. 실은, 바로 위에서 말했던 성공사례보단 실패사례가 훨씬 더 많기 때문에 이렇게만 보면 내가 주장하는 돈의 선순환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현상을 조금 더 자세히 보면, 정량화하긴 힘들지만,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는 정성적인 작용과 반작용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성공과 실패 여부를 떠나서, 한 스타트업에 자금이 투입되면, 그 돈은 누군가의 꿈을 현실화하는 데 사용된다. 꿈이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좋은 사람들이 더 좋은 사람들과 연결되고, 이들이 더 좋은 제품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이러한 총체적인 노력은 모두에게 엄청난 배움과 동시에 좋은 경험을 만들어 준다. 이런 노력, 배움, 그리고 경험은 사업의 성공과 실패 여부와는 상관없이 만들어지는데, 이 모든 것의 시작을 가능케 한 건 바로 회사에 투입된 투자금이다. 궁극적으로 이 벤처투자금은 더 좋은 사람들이 더 좋은 배움과 경험을 기반으로 더 좋은 사회와 생태계를 만들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한다.

성공적인 엑싯을 한 창업가와 이 회사에서 일했던 직원분들은 이들의 배움과 경험을 기반으로 다시 회사를 만들고, 본인들이 번 돈을 다른 회사에 투자하기도 하고, 다른 창업가들을 멘토링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한 나라의 경제와 사회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간다. 엑싯하지 못하고 실패한 창업가와 이 회사에서 일했던 직원분들도 이들의 배움과 경험을 기반으로 계속 도전하고 노력하는 걸 나는 많이 봤다. 이런 도전정신과 선한 노력 또한 한 나라의 경제와 사회를 더욱더 강화할 수 있다.

요새 같이 힘든 시기엔, 스트롱 포트폴리오 대표님들이나, 내가 가깝게 교류하는 프라이머 회사 대표님들을 보면 마음이 짠해진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저렇게 힘들게 사업을 하는지, 가끔은 이렇게 사서 고생하는 걸 보면 내가 답답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남들이 입으로만 불평 불만할 때, 이들은 행동으로 뭔가를 직접 하고 있고, 이런 노력은 진심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이런 분들을 적극 돕고, 이런 분들이 더 많아지기 위해서는 우리 같은 투자자들이 돈을 더 풀어야 한다. 벤처 투자야말로 돈을 선순환시키는 가장 좋은 투자라고 나는 생각한다.

공감대 형성하기

우린 굉장히 많은 회사를 검토한다. 아직 정확한 통계를 내보진 않았지만, 작년에도 총 1,0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을 다양한 방법으로 검토한 것 같다. 워낙 다양한 창업가들이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업을 시작하기 때문에, 비즈니스의 종류도 너무나 다양하다. 극소수지만, 어떤 사업은 그전에 한 번도 접한 경험이 없는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이고, 어떤 사업은 과거에 본 적이 있거나 이미 우리가 투자한 회사와 비슷한 걸 조금 다르게 접근하고 있고, 어떤 사업은 너무나 뻔하지만, 빠른 실행력을 기반으로 더 싸고 더 좋은 서비스를 만드는 영역에 있다.

실은, 모두 다 나름의 매력이 있는 팀이 하는 사업이라서, 항상 진지하고 재미있게 검토하는데, 최근에 콜드이메일로 들어온 회사 자료의 표지만 보고도 매우 관심이 갔던 회사가 있었다. 내가 과거에 직접 경험했고, 누군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그런 문제를 해결하려는 스타트업이었다. Deck의 첫 장만 보고 바로 “아, 내가 찾던 딱 그런 서비스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자료를 자세히 보지도 않고 직접 만나보기로 했다.

뭐, 그렇다고 이 회사에 투자하겠다는 건 아니다. 실은 어떻게 보면 완전히 별개의 주제이긴 하지만, 워낙 많은 소개와 콜드 이메일을 받는 투자자와 이렇게 바로 대면 미팅이 성사되는 것 자체가 위에서 말한 스타트업 대표에겐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직접 경험하고 공감한 문제를 해결하는 스타트업이라서 바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스타트업이 풀려고 하는 문제를 투자자에게 셀링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수치인데, 초기 스타트업은 대부분 이런 수치가 없다. 수치 다음으로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투자자와의 공감대 형성이다. 내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이미 경험한 VC가 분명히 있을 텐데, 이런 투자자를 효과적으로 선별할 수만 있다면, 문제와 제품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더 수월할 것이고, 이 작업이 되면, 직접 만나서 우리 팀과 제품을 적극적으로 영업할 수 있다. 이 문제가 심각하고(=큰 시장),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설득해서 실제 투자 받는 건 완전히 다른 숙제이지만, 어쨌든 공감대를 형성할 수만 있다면, 이 작업이 조금 더 수월해진다.

그래서 경험이 많고, 다양한 제품을 사용해보고, 새로운 것들을 많이 시도해본 VC들에 접근하는 게 이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좋은 전략이다. 많은걸 경험해봤다면, 우리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경험해봤을 확률 또한 높을 것이다. 많은 제품을 사용해봤다면, 우리가 만드는 제품과 비슷한 제품을 사용해봤을 확률 또한 높을 것이다. 새로운 것들을 많이 시도해봤다면, 우리가 하려고 하는 것들을 이해할 확률 또한 높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투자자는 우리가 해결하려고 하는 문제에 대한 경험이 없어서 이런 공감대를 즉각적으로 형성하는 게 상당히 힘들다. 그러면 인위적으로 공감대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건 시간과 노력의 싸움이 될 확률이 높다. 그리고 창업가의 허슬, 집요함과 창의성이 필요하다. 문제는 VC들에겐 시간도 별로 없고 은근히 게으른 VC들도 많아서 이런 정보와 경험을 직접 떠먹여 주지 않으면, 이들의 고정관념을 바꾸는 건 굉장히 힘들다.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는데, 이런 고정관념을 단시간 내에 바꿀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지표를 보여주는 것이다. 즉, 적절한 지표와 공감대의 하이브리드 접근이 필요하다.

뭔가 결론이 없는 글을 쓴 것 같지만, 하여튼 모두 굿 럭.

헌신

작년 연말에 오랜만에 미국에 잠깐 다녀왔다. 장기 비행은 항상 지루하고 힘들어서 책도 보고, 잠도 자고, 영화도 좀 봤는데, ‘라멘덕후(Ramen Heads)’라는 음식 다큐멘터리를 너무 재미있게 봐서 이 영상을 보면서 느꼈던 점을 나열해 보고 싶다.

일단 이 다큐멘터리는 2011년 작품인 ‘스시 장인: 지로의 꿈’과 비슷한 점들이 많은데, 안 보신 분들이라면 이 영상도 강추한다. 라멘덕후는 2017년 작품인데, 라멘의 본고장 일본에서 세계 최고의 라멘을 만들고 있는 장인들과 이들의 음식에 대한 헌신, 애정, 집착과 광기에 대한 내용을 영상으로 잘 담고 있다. 실은 영상으로 너무 잘 담아서, 어떻게 보면 아주 흔하고 평범한 음식인 라멘에 대한 경외심까지 갖게 할 정도였다.

여기서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다 설명하진 않겠다. 2013년부터 4년 연속 일본에서 ‘올해의 라멘 대상’을 수상한 치바현 마추도라는 곳의 ‘중화소바 토미타’ 식당의 라멘 장인 오사무 토미타씨의 라면에 대한 철학, 애정, 그리고 직업에 대한 헌신이 이 영상의 핵심이다. 이분은 본인이 식당을 운영하는 게 아니라 예술을 추구한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었고, 매일 먹어도 매일 맛있는 라멘을 만들어서 식당을 찾는 전 세계 손님들에게 단돈 8,000원에 세계 최고/최강의 식사 경험을 제공하는 마음으로 라멘을 만들고 있는 진정한 라멘덕후다.

특히 나에게 울림이 컸던 내용이 몇 개 있었다. 매일 최상의 라멘을 만들기 위해서 매일 같은 루틴을 반복하는 점이 그중 하나였는데, 토미타씨는 매일 10시에 출근하고 항상 같은 길을 이용해서 출근한다. 그리고, 본인이 가게 문을 직접 열어야 하고, 일이 생겨서 문을 열지 못하면 그날 영업을 아예 안 한다고 한다. 육수를 확인하는 등의, 출근 후에 하는 작업과 동작 또한 매일 같다. 이렇게 같은 루틴을 반복해야지만, 항상 최상의 라멘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점이 마치 최고의 운동선수나 사업가들이 매일 같은 루틴을 반복해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점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에 내가 라파엘 나달 선수에 대한 글을 썼는데 루틴 관련 내용은 매우 비슷하다. 라멘에서 가장 중요한 면과 육수를 만드는 과정은 무서울 정도의 집착과 광기라고밖에 설명을 못 하겠는데, 정말 모든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라멘을 예술로 승화한 이 장인의 영상을 보면서 나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그리고 현대인이 직업을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했다. 스스로 라멘에 미치지 않으면 절대로 감동을 주는 라멘을 만들 수 없다고 하는데 나는 과연 내가 하는 투자라는 업에 스스로 미쳐있는지, 그리고 미친 헌신을 하고 있는지도 생각해봤다.

본인이 하는 일에 대해서 집요하게 파고들고, 일을 종교와도 같이 믿고,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헌신하는 분들을 나도 살면서 몇 분 만나봤지만, 최근에는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러면서 요새 직업에 헌신하는 사람이 도대체 어디 있겠느냐는 생각을 하지만, 토미타씨 같은 사람이 분명히 어딘가에는 있고, 내 주변에도 분명히 이런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도 내 일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이 충분히 있지만, 집착과 헌신은 또 다른 이야기인데, 헌신을 갖고 투자하는 VC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직업에 대한 회의나 번아웃 증상이 온 직장인들, 또는 창업가분들에게 두 다큐멘터리 모두 권장하고 싶다. 느끼는 게 많을 것 같다. 나는 라면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감정이 동요하고 감동을 한다는 게 상상이 안 갔는데, 이날 태평양 상공에서 내가 이랬다.

헌신. 생각날 때마다 요새 생각해보는 단어이다.

투자의 본질

얼마 전에 내가 ‘긍정의 단련’이라는 글을 썼는데, 이 글을 보고 나에게 따듯한 메시지를 많은 분들이 보내주셨다. 요새 워낙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 마인드를 가지고 계속 사업을 하는 창업가분들을 나는 지지하고 응원하고 존경한다는 내용이었고, 이 글의 내용은 100% 진심이다. 실은, 시간이 갈수록 창업가들과의 접점이 더 많아지고, 새로운 창업가도 많이 만나지만, 오래된 창업가분들을 계속 볼수록, 이들에 대한 존경심은 더욱더 깊어진다. 사업을 하는 분들은 일반 사람들과는 조금은 다른 DNA를 가진 분들인 것 같고, 나는 왠지 이런 분들에게 끌리는 DNA를 가진 것 같다.

그런데 나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신 몇 분들은 내가 “따뜻하고” , “인간적이고” , “다른 VC는 돈 버는 데 혈안이 되어 있지만, 스트롱은 다른 것 같은” 투자자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마치 내가 돈과는 상관없는 따뜻한 투자를 하는 자선사업가인 것처럼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이후에 많은 분들이 나한테 개인적으로 메시지를 보내거나, 회사 자료를 이메일로 보내는데, 간혹 보면 돈을 버는 것과는 상관없는 비영리사업에 투자 검토를 해달라고 하는 분들이 있다. “이번에 쓰신 글을 보면, 스트롱은 확실히 다른 투자자들과는 다른 것 같아서”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우리는 차가운 투자자보단 따뜻한 투자자에 훨씬 더 가까운 게 맞다. 아무래도 초기 투자를 하다 보니, 제품과 시장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딱 하나의 투자 기준만 선택하라면 당연히 ‘사람’이기 때문에 따뜻한 마음으로 투자를 접근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따뜻한 접근이 돈과는 상관없는 접근이라고 생각하는 건 완전히 틀린 생각이라고 이분들에게 명확하게 알려주고 싶다.

우리는 철저한 자본주의자이다. 남한테 돈을 받아서, 이 돈을 다른 분들에게 투자하는 사람들이고, 이렇게 할 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목적은 투자한 것보다 훨씬 더 큰 돈을 버는 것이다. 실은 우리의 밸류체인에 있는 모든 이해관계자의 가장 중요하고 유일한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다. 우리에게 자금을 제공하는 LP도 스트롱에게 투자하는 금액보다 더 큰 돈을 벌기 위해서 투자하는 것이다. 이 돈을 우리는 스트롱의 포트폴리오 회사에 투자하고, 우리 또한 우리가 투자하는 금액보다 훨씬 더 큰 돈을 벌기 위해서 투자하는 것이다. 우리 포트폴리오 회사들도 결국엔 스트롱의 투자를 받아서 회사를 키우고, 큰돈을 벌기 위해서 열심히 사업을 하는 것이다. 물론, 돈이라는 것으로 모든 걸 너무 단순화하긴 했지만, 솔직히 투자는 그렇게 복잡한 게 아니라 단순한 것이다.

이렇게 먹고 먹히는? 투자의 사슬 속에서 우리는 사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면서 따뜻한 투자를 하려고 항상 노력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사람에 대한 존경심과 인간관계가 당연히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모두 다 같이 돈을 벌어야지만 이 관계는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다.

결국엔 사업의 본질은 돈을 버는 것이고, 투자의 본질도 돈을 버는 것이기 때문이다.

규제, 스타트업, 그리고 투자

작년 12월에 산업은행의 KDB넥스트라운드 클로징 행사에 다녀왔다. 이날의 주제는 핀테크였는데 우리가 초기에 투자한 핀다의 이혜민 대표님이 키노트 스피치를 해서 나도 뿌듯했다. 키노트 스피치 끝나고 곧바로 핀테크 관련 패널 토론이 있었는데, 고맙게도 나도 패널리스트로 초청해주셨고, 패널을 진행하신 KDB 팀장님이 나한테 물어본 질문 중 하나가 “핀다는 규제가 엄격한 핀테크 분야의 회사인데, 스트롱은 왜 초기에 투자했는가?” 였다.

내 생각을 나름 정리해서 답은 했지만, 주어진 시간이 2분 정도밖에 안 돼서 아주 짤막하게 했는데, 그날 더 하고 싶었던 이야기와 내 생각을 여기서 조금 더 길게 글로 한 번 설명해본다.

핀다를 비롯해서 규제가 엄격한 분야의 극초기 스타트업에 우리가 투자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이런 분야는 규제가 심하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더 보수적으로 시장을 보고, 훨씬 더 엄격한 기준으로 실사한다. 이런 과정에서 대부분 투자하지 않는다. 아무리 뛰어난 팀이 큰 시장을 공략해도 절대로 법을 뛰어넘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결과는 소수의 투자자만 이런 회사에 투자하는데,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서 투자 수요가 별로 없기 때문에 굉장히 합리적인 밸류에이션에 투자할 수가 있다. 즉, 좋은 밸류에이션에 투자하기 때문에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회사들이 잘 되면, 더 높은 지분율은 더 높은 수익을 만든다.

그런데 규제가 심한 분야에서는 – 특히 핀테크나 모빌리티 같이 규제가 빡센 분야 – 스타트업의 성공 확률이 현저히 낮아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많은 분들이 갖는다. 나는 이건 절반만 맞는 의문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스타트업의 성공 확률은 5% 미만이다. 규제가 심한 분야의 스타트업 성공 확률이 규제가 없는 분야의 스타트업 성공 확률의 20%라고 보면, 성공 확률이 1%인데, 솔직히 이 영역 안에서는 1%나 5%나 비슷하다. 둘 다 낮은 확률이고, 그냥 스타트업은 어렵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런 회사들이 성공한다면, 그냥 성공이 아니라 대박 성공할 확률이 높다. 왜냐하면, 아주 오랫동안, 아주 심한 규제가 존재하는 산업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하고 있는 기존 플레이어들은 경쟁력이 매우 약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예를 든 핀테크나 모빌리티 분야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핀테크 분야의 대표적인 기존 플레이어라면 우리가 잘 아는 대형 은행들이다. 은행들이 과연 경쟁력이 있냐고 하면, 나는 전혀 없다고 말하고 싶다. 특히나 기술적인 경쟁력은 정말 약하기 때문에 토스나 카카오뱅크 같은 새로운 서비스가 나왔을 때 시장에서 열광한 것이다.
모빌리티 분야의 대표적인 기존 플레이어라면 택시회사들이다. 택시야말로 경쟁력이 전혀 없는 대표적인 산업이라고 생각하는데, 타다와 같은 새로운 서비스가 나왔을 때 시장에서 열광한 점, 그리고 카카오택시를 출시하자마자 대한민국 택시 산업을 카카오가 접수한 것만 봐도 기술적인 면이나 서비스적인 면에서 전혀 경쟁력이 없는 산업이다.

안타깝게도 이들의 유일한 경쟁력은 규제 그 자체이다. 규제라는 경쟁력 때문에 거대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규제 때문에 새로운 경쟁사들의 진입이 거의 원천 봉쇄됐기 때문에, 시장은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객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만약에 이런 규제가 조금 더 현실적으로 바뀌거나, 없어진다면, 경쟁력 없는 기존 플레이어들은 무너질 수밖에 없고, 새로운 기술을 기반으로 더 싸고, 더 좋고, 더 빠른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들이 수조 원 ~ 수십조 원짜리 시장을 다 장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여러 개의 유니콘이 탄생한다.

이런 이유로 우린 굉장히 힘들고, 어쩌면 불가능하지만, 규제가 강력한 시장의 스타트업을 응원하고 계속 투자한다. 이렇게 투자한 회사들이 망하면, 그냥 일반적으로 망하는 스타트업과 똑같이 손실이 발생하지만, 잘 되면 그냥 잘되는 게 아니라 만루홈런 스타트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는 규제를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금융과 모빌리티와 같이 돈과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산업에는 규제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일인이다. 하지만,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진 규제는 현실을 반영해서 이제 은퇴 되거나 수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린 2023년도에 살고 있다. 자동차가 스스로 자율주행하고 있고, 하늘을 날고 있는데, 말과 마차가 주 교통수단이었던 시대에 만들어진 규제는 이제 바뀔 때가 되지 않았을까? 누군가는 해야 하는 건데, 용감한 스타트업과 용감한 투자자들이 이 변화에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