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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게 약이다

나는 스트롱벤처스를 2012년도에 존이랑 같이 시작했다. 그땐 둘 다 지금보단 젊었고, 조금 더 무모했고, VC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었기 때문에 맨땅에 헤딩이 가능했던 것 같다. 실은 둘 다 이전에 했던 스타트업에서 투자유치를 했기 때문에, 그냥 벤처 펀드 만들어서 여기에 투자(출자) 받는 것도 거의 똑같고, 그냥 하다 보면 되지 않겠냐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생각을 했다. 더 웃긴 건, 순진한 생각에서 멈춘 게 아니라, 이 순진한 생각이 굳은 신념으로 이어졌고, 신념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시작했던 스트롱이 이제 벌써 9살이 되어 간다. 지금도 우린 매일 새로운 걸 배우고 있는데, 초반에는 정말 하루하루가 새로울 정도로 밖에서 보던 VC 산업과 실제 VC 산업은 너무나 달랐다. 그리고 처음 스트롱 시작할 때 VC 산업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면, 절대로, 다시 한번 반복한다, “절대로” VC 펀드를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 힘들고, 복잡하고, 당시 우리같이 투자 경험이 전무한 사람들이 first-time 펀드를 만드는 건 거의 불가능한데, 둘 다 너무 몰랐기 때문에 시작했고, 역시 몰라서 무식했고, 무식했기 때문에 용감했었다. 우리에겐 모르는 게 약이었다.

우리가 투자하는 많은 창업가들이 지금은 본인들이 하는 분야의 전문가이고, 어떤 분들은 그 시장의 일인자이지만, 처음 그 시작할 땐 대부분 그 사업 또는 시장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던 분들이 많다. 그런데 짧은 시간 안에 그 분야에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사업을 하던 기존 플레이어들보다 더 빠르고, 더 좋고, 더 싼 서비스를 만들어서 산업을 파괴하면서 잘하는걸 보면, 오히려 이들이 이 시장과 산업에 대해서 전혀 몰랐기 때문에 이게 가능했던 것 같다. 이미 이 시장에서 오래 일을 하던 사람들은 그냥 ‘원래 그런’ 방식대로만 일했고, 새로운 접근 방법에 대해서는 생각도 못 했지만, 이 사업을 새로 접하는 창업가들은 완전히 백지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그들이 지금까지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서 봤던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원래 그런’ 방식을 이들은 계속 반문하면서, 다른 사업, 다른 시장, 그리고 다른 산업에서 보고 느낀 점들을 이 새로운 시장에 적용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하면서 풀어나가고 있다. 이분들에게도 모르는 게 약이 됐다.

그리고 또 다른 측면에서는, 사업을 시작하고 싶지만, 그 시장이나 사업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창업을 망설이는 분들이 있다. 이 분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오히려 모르는 게 더 도움이 될 수 있고, 모르기 때문에 용감할 수 있는데, 그 무식한 용감한 속에서 유식하고 회의적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창의적이고 기발한 생각과 행동이 나올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실은 많은 창업가들이 본인이 하려고 하는 사업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서 걱정하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는데, 이분들에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일단 지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기존 산업을 파괴하고, 완전히 새로운 플레이북을 쓰기 위해서는, 원래 그런 너무나 당연한 규칙을 하나씩 깨 부서야 한다. 그리고, 이걸 가장 할 수 있는 건 잘 몰라서 무식한, 그래서 용감한 사람들이다. 모르는 게 약이다.

선한 영향력

올해 나는 6년째 프라이머의 벤처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다. 스트롱도 프라이머만큼 많은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어서, 스트롱과 프라이머 투자사를 다 합치면, 아마도 400개가 넘을 것 같다. 이 회사를 내가 다 정기적으로 만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숫자가 이렇게 커지면 여러 가지 일 때문에 바빠지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얼마 전에 프라이머 19기 회사 모집이 끝났고, 액팅 파트너인 권도균 대표님, 이기하 대표님과 함께 회사 인터뷰까지 다 마쳤다. 매 기수마다 다르지만, 항상 수백 개의 회사가 지원하고, 이 중 10개~15개 정도의 스타트업을 선발하는데, 이번에도 크게 다르진 않다. 나는 웬만하면 밤 늦게, 또는 주말에는 일을 안 하려고 하는데, 프라이머 선발 기간에는 주말 내내 회사들 인터뷰하고, 밤 늦게까지 미팅을 한다.

솔직히 체력적으로는 힘들다. 그리고 갈수록 힘들어진다. 하지만, 반대로, 갈수록 재미있고 흥미롭다. 이제 이 세상에서 나올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은 다 나왔다고 생각하는 이 시점에서, “이런 사업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실행력, 그리고 정말 one of a kind인 창업가들을 단체로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한 기수 선발이 끝나면 몸은 녹초가 되지만, 정신은 맑아지고, 우리가 하는 투자라는 이 업에 대한 고마움이 넘치기 때문에, 내가 진심으로 즐기고 있는, 스트롱 외의 유일한 다른 일이 프라이머 벤처파트너 활동이다.

매 기수마다 몇몇 창업가들은 프라이머에 지원한 계기가 권도균 대표님의 책 ‘권도균의 스타트업 경영수업‘이라고 하는데, 이번 기수에는 특히 이런 분들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또 고마운 건, 이제 완전히 고전이 된 내 책 ‘스타트업 바이블‘을 감명 깊게 읽고 프라이머에 지원한 분들도 있었다. 어떤 창업가는 과거 프라이머 데모데이에 우연히 왔다가,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의 길로 들어섰는데, 힘들지만, 인생이 바뀌는 정말 멋진 경험을 했기 때문에 프라이머에 지원했다고 했다. 그리고 권 대표님의 책을 읽고 인생이 바뀌었고, 내 책과 블로그를 읽고 짜릿한 감동을 받고 창업의 길로 들어섰다는 창업가들이 이번에는 과거보다 훨씬 많았던 것 같다.

이런 말을 들으면, 우리 같은 투자자들이 모범을 보이고, 잘 해야 한다는 다짐을 항상 한다. 우린 정치인은 아니지만, 직, 간접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을 가진 운이 좋은 사람들이다. 특히, 앞으로 이 나라와 사회에 지대한 기여를 할 수 있는 학생들과 젊은이들에게 이런 선한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기에 – 자랑하는건 아니고 – 그냥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스스로 하기 위해 몇 자 적어봤다.

노장들

1970년생, 올해 50살인 프로 골퍼 필 미켈슨이 얼마 전에 메이저 골프 대회 중 하나인 2021 PGA Championship을 우승했다. 나도 골프를 좋아해서, 볼 수 있는 중계는 웬만하면 생방송으로 많이 보는데, 타이거 우즈 부상 이후에는 골프 중계는 큰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PGA 대회 3라운드와 마지막 라운드는 상당히 흥분된 마음으로 봤다.

필 미켈슨은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골퍼 중 한 명이다. 타이거 우즈 만큼은 아니지만, 내가 보기에 미켈슨은 가장 미국인다운 아메리칸 골퍼다. 백인이고, 왼손잡이이고, 골프보다 가족을 항상 우선순위에 두는, 골퍼이자, 자상한 남편이자, 좋은 아빠이자, 그리고 좋은 아들이라서, 특히 미국 아저씨들이 정말 좋아하는 입담 또한 만점인 골퍼이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크게 부상 당하지 않고, 요란하지 않고,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는 롱러너이다. 롱러너라고하면, 대부분 실력이 별로인데 그냥 열심히만 하는 사람을 생각하겠지만, 미켈슨은 그 반대이다. 나이가 들면서 우승 횟수가 줄어들었을 뿐, 그동안 엄청나게 우승을 많이 했고, 지금도 꾸준히 우승하고 있고, 실력으로만 따지면, 가장 creative하고, 힘 좋고, 재능있는 골퍼이다. 이 아저씨가 50살에 최고령 PGA 챔피언이 됐으니, 전 세계는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나도 몇 년 있으면 50살이 된다. 요새 내가 많이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장기전과 꾸준함인데, 미켈슨의 이런 우승은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체력이 저하되고, 바디 코디네이션이 감소하는 건 운동선수에게는 정말 스트레스받는 일인데, 우리 같은 투자자에게도 달가운 소식은 아니다. 나이 들면서 연륜이 쌓이고, 경험이 쌓이는 장점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우리보다 더 젊은 인구가 지배하는 메인스트림 시장에 대한 감이 조금씩 떨어지고, 우리보다 더 젊고 똑똑한 심사역들이 과감한 투자를 하면서 시장을 리드하는 걸 보면, 더욱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와 오기도 생기지만, 또 한 편에서는 언젠가는 우리도 퇴물이 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한다. 뭐, 이게 슬프거나 그런 건 아니고, 그냥 현실이 이렇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아직까진, 나는 더욱더 체력 관리를 잘하고, 더욱더 시장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더욱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훨씬 더 많이 한다. 그래서 필 미켈슨의 우승 소식이 더 반가웠던 것 같다. 테니스의 노장 거물 로저 페더러에 대해서 전에 내가 을 쓴 적이 있는데, 여기서 우리 투자사 타파스 미디어 김창원 대표에 대해서도 잠깐 언급했다. 미켈슨, 페더러, 김, 모두 다 노장들이지만, 철저한 자기관리와 노력으로 아직 현업에 종사하는, 내가 존경하는 사람들이다.

언론에서 많이 보도 돼서 대부분 알고 있지만, 카카오가 타파스 미디어를 인수한다는 소식이 발표됐다. 금액도 6,000억 원이라는 큰 엑싯인데, 우리 투자사의 엑싯이라서 당연히 기쁘지만, 김창원 대표라서 실은 더 기쁘고 감회가 남달랐다. 나이와 체력과는 상관없이 이렇게 계속 도전하고, 실패하고, 넘어지고, 또 일어나고, 달리고, 그리고 훨훨 날 수 있었던 이분 정말 존경스럽다.

나이는 단지 숫자라는 이야기를 많이들 하는데, 실은 나이는 숫자 그 이상이다. 나이 들면, 체력도 떨어지고, 시력도 떨어지고, 감도 떨어지고, 운동능력 등 모든 게 감소한다. 그리고 스포츠에는 체력이 당연히 중요하지만, 사업에도 굉장히 중요하다. 창업이나 투자나 결국엔 체력싸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건, 다치지 않고 현역 생활을 계속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계속 현역을 뛰다 보면, 언젠간 운과 실력이 만나고, 한 번 더 우승할 수 있으니까. 필 미켈슨, 로저 페더러, 김창원, 모두 뛰어난 노장들이지만, 계속 현역 생활을 했기 때문에 이겼다.

창업가의 미안함

지난 9년 동안 우린 꽤 많은 회사에 투자했다. 이미 투자사 수가 150개를 훌쩍 넘었는데, 정확한 숫자를 계산해보진 않았지만, 워낙 초기 회사에 투자하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이 중 많은 회사가 폐업한다. 스타트업의 실패율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연구결과가 있지만, 통상적으로 창업 1년 안으로 10% 정도가 망하고, 2년~5년 안에 70% 정도가 망한다고 한다. 우리같이 초기에 투자하면, 이 실패율은 더욱더 올라간다.

이런 생리를 잘 알고, 매일 이런 사례를 접하기 때문에, 우리 투자사가 폐업한다고 해도 우린 그렇게 놀라진 않는다. 물론, 안타깝고, 우리도 손실 처리를 해야 하는 거에 대한 걱정은 당연히 있지만, 실패와 폐업 자체는 투자 과정의 일부이기 때문에, 이젠 VC 초년 시절같이 스트레스받고, 잠을 설치진 않는다.

하지만, 창업가의 입장에서는 상황은 다를 수가 있다. 우린 이미 이 경험을 9년 동안 많이 했기 때문에 면역력이 어느 정도 생겼지만, 대부분의 창업가들에게는 신체의 일부와 같은 스타트업의 폐업은 창업 인생 최초의 실패이고, 최초이기 때문에 그만큼 더 아프다. 창업하고 스타트업 운영하는 거 자체가 큰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의 연속인데, 이게 망하면 그 스트레스는 10배가 된다는 이야기를 우리 투자사 대표들에게 자주 들어서 나도 이게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는 간접적으로 알고 있다.

얼마 전에 우리 투자사 대표랑 이 힘든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오랫동안 고생했고, 이분도 스스로 잘하고, 웬만하면 본인의 힘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성격이라 그런지, 나한테 어느 날 할 이야기가 있다고 연락 왔을 때, 직감적으로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을 하고 미팅을 했다. 역시, 그동안 정말 모든 걸 다 해봤지만, 회사는 성장하지 못했고, 펀딩도 안 됐고, 이젠 이 상태에서는 본인이 제대로 된 생활을 못 하기 때문에 그만해야겠다는 말을 했다.

위에서 말 한대로, 내가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라서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지만, 이분이 그 말을 하면서 울먹거리는 걸 보니까 마음이 참 좋지 않았다. 그리고, 나한테 정말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미안함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나를 보는데, 순간적으로 나도 속으로 울컥했다. 내 머리와 가슴 속에서도 여러 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작용을 했던 것 같다. 실은, 우리한테 미안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 얼마 되지도 않는 투자금을 날렸다고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마음이, 몇 년 동안 본인의 인생을 걸고 한 스타트업이 망했을 때의 엄청난 스트레스를 더 무겁게 한다고 생각하니까 나도 마음이 무거워졌던 것 같다.

투자를 받고, 이 돈을 헛되게 쓰지 않고, 최선을 다했는데도 사업이 잘 안 됐으면, 창업가들이 투자자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지 않았으면 한다. 결국 우리 같은 투자자는 창업가와 비즈니스를 보고 자신 있게 투자한 것이고, 그 누구도 우리한테 투자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오롯이 우리의 판단에 의해서 자의적으로 투자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가 투자하고 싶어서 돈을 투입했으면, 사업이 잘 안돼서 회사가 망해도 우린 별로 할 말은 없다. 이건 창업가의 잘못도 아니고, 투자자의 잘못도 아니고, 그냥 실패 확률이 훨씬 높은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일상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다.

창업가도 최선을 다했고, 투자자도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는 좋지 않았다면, 실은 그 누구도 미안할 필요는 없다. 투자자의 입장에서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여기에서의 값진 배움을 기억하고, 다시 사업을 하면 같은 실수를 최대한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했으면 한다(그런데, 내 경험에 의하면, 같은 실수를 여러 번 반복하긴 한다. 이 또한 스타트업의 일상이며, 인생이다).

현금 대신 스톡옵션

아직도 쿠팡의 50조 원 이상의 시가총액이 맞냐 아니냐는 논쟁을 많은 사람들은 하고 있고,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는 특별히 할 말은 없다. 그냥, 각자의 판단에 맡기겠다. 하지만, 어쨌든, 쿠팡이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고 생각한다. 쿠팡이 상장한 후에 많은 창업가, 투자자, 그리고 스타트업 직원들의 인식이 바뀌고 있다는 걸 내가 요새 직접 몸소 체험하고 있는데, 오늘은 스타트업 직원들과 스톡옵션에 대해서 내가 최근에 느낀 점에 대해서 몇 마디 적고 싶다.

몇 명이 될진 모르겠지만, 앞으로 쿠팡 출신 백만장자들이 상당히 많이 탄생할 것이다. 쿠팡의 주주명부를 내가 자세히 보진 않았지만, 스톡옵션을 받은 직원분들이 꽤 있는 거로 알고 있고,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분들도 사원으로 조인했지만, 이젠 쿠팡의 임원이 됐는데, 이분들도 스톡옵션을 잘 받아서, 옵션을 행사하고 팔면, 돈을 꽤 많이 벌 것이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스타트업계에 종사하는 파운더가 아닌 다른 분들도 분명히 쿠팡에 일하고 있는 개발자 친구, 프러덕트 오너 친구, 마케터 친구가 있을 것이다.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술자리에서 이런 친구들 만나면 다들 “너네 회사 망하는 거 아냐?” , “투자자 돈으로 연명하는 회사인데 월급은 제대로 나와?”와 비슷한 농담 섞인 질문을 했었는데, 이 친구들이 갑자기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을 벌어서 집도 사고 좋은 차도 사려고 하는 걸 옆에서 보면서 많은 걸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몇 년 전만 해도 한국의 스타트업 직원들은 스톡옵션에 대한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냥 월급 받고 회사에서 일하는 거지, 이 회사가 나중에 잘 되면 본인이 가진 스톡옵션이 큰돈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된 회사가 한국에 별로 없고, 본인 주변에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연봉 많이 받는 건 봤지만, 스톡옵션으로 대박이 터지는 걸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초기에 작은 회사에 조인해서, 몇 년 만에 수백억 원을 벌었다는 이야기는 그냥 저 먼 실리콘밸리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연봉 협상을 할 때는 스톡옵션보단 그냥 현금을 더 선호하는 게 내가 그동안 느꼈던 현실이다.

하지만, 쿠팡이 상장하면서 실리콘밸리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지금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친구의 친구의 친구 이야기도 아니고, 나랑 친한 고등학교 동창 또는 컴퓨터 공학을 같이 공부했던 대학 동기들이 백만장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망하는 사기 회사에서 일 한다고 손가락질했던 그 친구들이 말이다. 그래서 이젠 많은 스타트업 직원분들도 스톡옵션의 힘을 서서히 믿게 되는 것 같다. 연봉 협상할 때도 현금보단 스톡옵션을 더 많이 달라고 하는 현상이 눈에 띄게 보이고, 이런 이야기들이 우리 투자사에서도 들리고 있다.

이는 사람이 전부인 스타트업의 창업가/대표들에게는 좋은 현상이다. 좋은 사람 채용하는 게 워낙 어려운데, 요샌 토스나 크래프톤과 같은 큰 스타트업에서 수천만 원의 프리미엄을 더 주고 사람을 채용하거나 기존 인력을 잡아두고 있어서 더욱더 어려워지긴 했다. 하지만, 이젠 더 많은 분들이 스톡옵션의 가치를 이해하고 있어서, 돈이 없는 스타트업도 조금은 더 스톡옵션의 힘을 쓸 수 있다. 이미 유니콘이 된 토스와 크래프톤도 스톡옵션을 적절히 잘 활용하지만, 지금은 이미 기업가치가 많이 올라갔기 때문에 나중에 돈을 벌어도 그 upside는 그렇게 크지 않을 수 있다. 이제 시작하는 작은 스타트업의 스톡옵션의 upside는 훨씬 더 클 수 있으니, 이걸 대표들은 잘 활용해야 한다.

물론, 회사가 망하면 그냥 휴짓조각이 되는데, 뭐 이건 모든 회사에 적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