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중요한) 투자자와의 소통

전에 내가 ‘투자자와 소통하기’라는 글을 썼다. 우리가 일하는 분야는 워낙 페이스가 빨라서 과거에 맞다고 했던 내용이 현재는 완전히 틀릴 수도 있고, 과거에 틀렸다고 했던 내용이 현재는 완전히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6년 전에 썼던 이 글은, 과거에도 맞았고 지금은 더 오지게 맞는 내용이라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가 않기 때문에, 비슷한 내용의 글을 한 번 더 쓴다.

우리 모두 인생과 직장에서의 소통, 즉,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고, 인생은 피드백이고 인생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특히, 스타트업 창업가라면,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고, 이 가장 중요한 자산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대화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안다. 아마도 대부분의 창업가에게 물어보면 사업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건 ‘사람’이라고 할 것이고, 이 사람들을 끈끈하게 본딩해줄 수 있는 건 소통이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건, 내가 아는 많은 창업가들이 입으로는 소통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정작 본인들은 이걸 참 못 한다. 아니, 어떤 분들은 일부러 안 하는 것 같다. 특히, 내부 소통보단 외부 소통, 외부 소통 중에서도 투자자들과의 소통에 있어서는, 어떤 분들의 – 우리 포트폴리오 포함 –  커뮤니케이션 점수는 빵점이다.

우리 포트폴리오 대표님들은 잘 아실 텐데, 우린 워낙 많은 투자사가 있어서, 이들의 사업 현황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든 회사를 매달 만나는 비현실적인 방법보단, 이메일로 월간 사업 업데이트를 받고, 이를 통해서 사업의 현황과 건강의 척도를 평가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래서 나는 매달 대표님들에게 사업 업데이트를 부탁하는데, 이걸 받는 분들은 징글맞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덕분에 대부분의 스트롱 대표님들은 이렇게 투자자들에게 월간 사업 업데이트하는 게 습관화되어 있다. 언젠가 우리와 몇 개 회사에 공동 투자한 다른 VC가 “스트롱 포트폴리오는 월간 업데이트를 정기적으로 잘하네요. 그리고 그 내용도 형식적인 보고가 아니라, 대표님의 고민, 생각, 그리고 투명한 회사의 실적을 공유해줘서 너무 좋습니다. 훈련이 잘된 것 같아요.”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실제로 그렇다고 생각한다.

전에도 내가 여러 번 말했는데, 투자자와의 이런 정기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스타트업 생태계에 종사하는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일단 회사가 투자를 받으면, 투자자들에게 사업 현황을 정기적으로 투명하게 공유하는 건 기본이자, 회사의 가장 중요한 책임이고 의무이다. 이 글을 보면, 너무나 당연한 거로 생각하겠지만,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창업가분들도 과연 본인의 투자자들과 소통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봐라. 안 그런 분들도 꽤 있을 것이다. 소통이 잘 안되는 사소한 문제가 나중에 엄청나게 커지고, 이게 서로의 감정싸움으로 번지면서 소송으로 가는 것까지 나는 본 적이 있다.

소통이 중요한 또 다른 점은, 이렇게 매달 투자자들과 사업 현황을 공유하다 보면, 그냥 단순히 커뮤니케이션 빈도를 높이고, 정기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은 투자자와 창업가의 관계는 한쪽이 다른 쪽에 원할 때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어야 하고, 또 실제로 대부분 그렇다. 투자자는 창업가에게 자금을 제공했기 때문에, 창업가는 싫든 좋든 투자자가 연락하면 언제든지 연락이 돼야 한다. 반대로, 창업가는 본인이 선장인 배에 탄 투자자들이 배가 목적지에 무사히 도달할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하게 만들어야 하므로, 필요한 게 있으면 투자자에게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게 자정이든 주말이든 투자자는 무조건 연락이 돼야 한다. 다른 VC는 잘 모르겠지만, 스트롱 전체 팀은 우리 포트폴리오 대표님들이 연락하면 언제든지 연락이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서로 자주 연락을 안 하는 게 또 투자자와 창업가의 관계이다. 시간이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자원이며, 이 부분을 서로 존중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창업가나 VC들도 비슷할 것 같은데, 아무리 서로 친해도 엄청나게 자주 만나거나 연락하진 않을 것이다. 이게 나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어쨌든 사람은 자주 연락하고 봐야지 친해지니까. 그래서 월간 업데이트를 하면 매달 소통할 수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매우 좋다. 우리는 이 월간 업데이트를 자세히 읽고, 우리의 피드백과 생각을 공유하고, 질문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상당히 많이 한다. 그러면 굳이 자주 만나지 않아도, 서로의 소식을 정기적으로 정하고, 포트폴리오의 사업 현황에 대해서 꽤 잘 숙지할 수 있다. 얼마 전에 우리 포트폴리오 대표님을 만났는데, 반갑게 이야기하다가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게 거의 1년 반 전이였다는 걸 알게 된 후에 깜짝 놀랐다. 매달 이메일로 소통하다 보니, 거의 매달 만난 것 같았으니.

마지막으로, 투자자와의 소통이 정말 중요한 가장 실용적인 이유는, 정기적인 소통이 됐다면 회사가 어려울 때 투자자들이 지체하지 않고 바로 도움의 손길을 뻗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0개월 동안 사업 업데이트가 없던 대표가 금요일 저녁에 다급하게 연락이 와서 다음 달 나갈 월급이 없다고 하거나, 경쟁사에게 소송을 당했다고 SOS를 치면 우리가 당장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 우리 투자사이니 당연히 같이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보겠지만, 우리도 이 회사가 그동안 뭘 했고, 현황은 어떤지, 그리고 대표님은 어떤 고민과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일단 회사의 현황을 파악하는 데만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소통하면서 회사의 상황에 대해서 잘 공유했다면, 회사에 현금이 고갈되고 있다는 사실을 수개월 전부터 알아서 즉각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이렇게 소통이 안 되는 대표는 우리도 우리와 친한 다른 VC에게 선뜻 소개해 주는 게 망설여진다. 다른 VC한테 투자받은 후에 또 이렇게 연락이 잘 안될 텐데, 이건 스트롱과 내가 욕먹을 일이기 때문이다.

뭔가 우리가 대단한 걸 매달 요구할까? 그건 아니다. 우리가 포트폴리오 대표들에게 요구하는 건 다음과 같다:
1/ 회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KPI(매출, UV, MAU 등…)
2/ 영업, 마케팅, 유통, 제조 등 관련해서 특별히 나쁘거나, 좋았던 내용들
3/ 특이 사항
4/ full-time 임직원 수
5/ 지금까지 유치한 총투자 금액
6/ 현재 회사에 남은 cash 상황
7/ 스트롱에게(또는 다른 투자사들) 부탁하고 싶은 내용

이건 솔직히 제대로 된 회사, 제대로 된 대표라면 매달 결산하고 스스로 정리하고 고민하는 내용들이다. 그냥 이 내용이 정제되지 않은 포맷으로 편안하게 공유해달라고 부탁하는 정도이다.

이 글을 읽는 창업가들은 모두 본인들의 투자자들과 월간 업데이트를 공유하면서 소통하는 걸 적극 권장한다. 한 일 년 이상 꾸준히 하다 보면, 커뮤니케이션의 빈도와 질에 매우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고, 더 신뢰받는 대표가 되어 있을 것이다.

잠수보단 거절

한국과 미국을 1대1로 비교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 문화가 다르고, 사람들이 다르고, 교육 내용과 환경이 다르므로 살아가는 방식과 일하는 방식이 너무 다르다. 그래서 무조건 미국은 좋고, 한국은 나쁘다고 하는 건 정말 구닥다리 사고방식이다. 오히려 나는 요새 무조건 한국은 좋고, 미국은 나쁘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물론, 이 또한 유연하지 못한 사고와 발언이다.

그래도 비즈니스 문화에서 한국이 미국보다 훨씬 못하다고 생각하는 게 바로 거절하는 문화다. 상대방이 나에게 뭔가를 간절하게 원하는데, 내가 못 하거나, 아니면 단순히 하기 싫다면, 그냥 거절하면 되는데, 이게 꽤 많은 한국 분에겐 참 어려운가 보다.

내가 못 하는 거면, 그냥 솔직히 내 능력이 안 되거나, 시간이 안 되거나, 뭐 여러 가지 합당한 이유를 – 상대방이 합당하다고 생각해서 나한테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는 – 대면서 그냥 못 한다고 하면 된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에서 정규 교육을 받고, 한국의 기업에서 일을 해 본 많은 분들이 실은 이것도 힘들어한다.
더 어려운 거절은 내가 할 수 있지만, 그냥 하기 싫을 때이다. 나도 이런 경우가 상당히 많다. 엄청 바쁘거나, 상대방의 부탁을 그냥 들어주기 싫거나, 아니면 그냥 굳이 내가 시간과 에너지를 쓰기 싫을 때가 있다. 상대방의 부탁을 그냥 들어주기 싫은 경우는, 그분이 미워서라기보단 그냥 잘 모르는 분이 불쑥 연락이 와서 뭔가를 해달라고 할 때다. 나한테 큰 도움이 되지도 않은데 굳이 내가 잘 모르는 분을 위해서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없고, 그냥 여기에 시간을 쓸 바에야 집에서 책을 읽거나 잠을 자는 게 더 좋을 때가 있다.

나는 거절을 꽤 잘 한다고 생각한다. 실은 과거엔 나도 남들이 부탁하면 웬만하면 다 들어줬다. 한때는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해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내가 거절했을 때 상대방이 나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하는 걸 좀 두려워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해보니,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보단 어느 순간 남이 나에게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 그 이후론 의식적으로 모든 걸 거절하기 시작했다. 못 하는 건 그냥 못 하므로 못 한다고 하고, 하기 싫은 건 그냥 하기 싫어서 안 한다고 한다. 이렇게 너무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면 꽤 많은 분들이 내가 인성이 나쁘고, 싸가지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뭐, 그렇게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상관없다. 심지어 전엔 어떤 분이 뭔가를 부탁했는데,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냥 못 한다고 했다. 그러자 이분은 일정이 안 맞는 줄 알고, 다른 여러 날짜를 제시했는데, 그냥 전부 다 못 한다고 하면서, 시간은 가능한데 내가 하기 싫다고 했다. 그 이후로 이분은 나를 사람 취급하지 않았는데, 뭐,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내 경험상, 오히려 이렇게 대차게 거절하는 게 상대방이나 나를 위해서 가장 좋은 관계 유지 방법이다. 거절하는 사람으로서도 처음엔 불편하고, 거절당하는 사람으로서도 기분이 상할 수도 있지만 – 솔직히 나도 거절을 정말 많이 당하는데, 거절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기분이 상할 이유는 전혀 없다 – 결국엔 서로 깔끔하게 교통정리가 되고, 각자의 인생을 살 수 있고, 각자 그냥 move on 할 수 있다. 이런 분들은 오히려 평생 친구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거절하는 걸 너무 힘들게 생각해서, 아예 상대방의 연락을 피하고 잠수 타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들이고, 인간관계에 있어서 잠수타기는 최악의 한 수이다. 이런 분들은 본인은 ‘원래’ 상대방에게 싫은 소리를 못 한다고 하는데, 이건 개소리다. 그냥 본인들이 상대방에게 싫은 소리를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싫은 소리 하거나, 거절하면 상대방이 본인을 안 좋게 생각하는 게 걱정되는 이런 분들의 또 다른 특성은 남이 그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지대한 관심이 많다는 점이다.

나도 가끔 이런 분들을 만난다. 잘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연락이 끊기는데, 내 성격상 이렇게 연락이 안 되면 나는 계속 연락한다. 끝까지 잠수 타는 분들도 있지만 – 참고로, 나는 이런 사람들은 인간 취급 안 한다 – 대부분 몇 달 뒤에 다시 연락된다. 그리고 왜 갑자기 잠수 탔냐고 물어보면 돌아오는 답변은 “바빴어요” , “원래 내가 싫은 소리 못 하잖아요” 또는 “내가요?” 정도이다.

하기 싫으면 그냥 하기 싫다고 해라. 못 하겠으면 그냥 못 한다고 해라. 그리고 만약 거절하는 게 내가 미안해야 할 일이라면, 아주 솔직하게 미안하다고 해라. 특히 나 같은 사람한텐 그냥 대차게 거절해야 한다. 안 그러면 나는 희망을 갖고 계속 귀찮게 하고, 계속 연락할 것이다. 어쨌든 절대로 잠수는 타지 마라.

잠수 타면서 오랫동안 마음이 불안한 것보단, 그냥 거절하고 그때 한순간만 살짝 미안함을 느끼는 게 스트레스 관리에도 훨씬 좋다.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싸움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직업은 무엇일까? 내가 전 세계의 모든 직업을 알진 못하지만, 내가 아는 한,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직업은 창업가이고, 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전투싸움을 하고 있다. 전투라고 썼다가 지운 이유는, 그래도 같이 싸워주는 부대가 있어서 어느 정도는 쪽수가 맞아야지 전투라고 할 텐데, 대부분의 창업가들은 온 세상을 상대로 혼자 외롭게 싸우기 때문에 이건 싸움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안쓰럽지만, 대부분의 창업가 주변 지인들은 이들을 믿지 않고, 이들이 하는 것도 믿지 않는다. 실은, 이 글을 읽고 있는 분 중 대단하게 큰 스타트업을 만든 분들이 아니라면 – 즉, 이 글을 읽는 대다수 – 당신들이 하는 일을 당신들 친구도 믿지 않고, 심지어는 가족들도 믿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서 이렇게 외로운 직업이 어디 있을까? 그리고 매일 온 세상을 상대로 외롭게 싸워야 하는 이런 직업이 어디 있을까?

얼마 전에 이런 외로운 싸움을 5년째 하고 있는 창업가를 만났다. 그리고 며칠 후에 10년 넘게 큰 성장 없이 사업을 하는 분을 만났다. 이분들과 조금 더 깊게 이야기해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든 것 같다. 처음 시작할 땐, 자신을 불신하고 무시했던 사람들을 엿먹이고 싶었고, 그들이 틀렸다는 걸 증명해 주고 싶었다고 한다. 세월이 흘렀고, 5년,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도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세상 그 누구도 안 믿어도 굳게 자신을 믿었던 본인에 대한 불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와 세상과의 외로운 싸움이, 어느 순간 나와 나와의 싸움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나마 계속 이 힘든 일을 할 수 있던 몇 가지 계기가 있었는데, 그건 가끔, 아주 가끔 본인을 믿어주는 사람들을 만났고 – 직원과 투자자 – 이들과 같이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말 하면 좀 그렇지만, 솔직히 좀 안쓰럽고 짠하고, 미련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이들을 존경하고 응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세상에는 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 이렇게 두 부류의 사람이 있는데, 이들은 하는 사람들이고, 이들을 비난하는 모든 사람들은 안 하는 사람들이다. 안 하는 사람이 하는 사람을 어떻게 비난할 수 있겠는가.

오늘도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창업가들 파이팅. 결과가 어떨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당신들은 본인의 믿음으로 삶을 살아가는 인생의 승자들이다.(하지만, 사업에서 승자가 될진 잘 모르겠다.)

누구를 위한 법이고, 누구를 위한 규제인가?

우리가 투자한 회사 중 콘택트렌즈 사업을 하는 옵틱라이프라는 곳이 있다. 이 회사는 본인들이 직접 콘택트렌즈를 제조하고, 다른 회사의 제품 또한 유통하고 있는데, 한국은 콘택트렌즈의 온라인 판매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어서, 옵틱라이프에서 고객이 원하는 렌즈에 대한 결제를 하고, 실제 픽업은 전국 가맹점 중 하나에서 한다. 가맹 안경점은 특별한 회비나 수수료는 내지 않고, 옵틱라이프가 구매 건당 이들에게 수수료를 지급한다.

콘택트렌즈의 온라인 판매가 불법인 이유는 렌즈가 각막에 직접 접촉하는 의료기기로 분류되어서, 잘 못 사용 시 시력 저하나 감염 등의 위험이 있으므로 대면 판매를 통해 사용법 안내와 건강 상태 확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규제의 취지는 잘 이해하지만, 국민 건강을 너무 과하게 강조하는 반면, 소비자의 편의성과 선택권은 너무 과하게 무시한다는 점에서는 반드시 바뀌어야 하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보다 더 불평등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이 법은 국민들의 건강보단, 대한안경사협회라는 특정 단체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안경사협회 회원 5만여 명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걸 보면, 내 생각이 맞는 것 같다.

어쨌든, 이런 법이 있기 때문에, 온라인으로 더 좋고, 더 다양하고, 더 저렴한 콘택트렌즈를 중간상인 없이 고객에게 직접 판매하려고 하는 스타트업들은 위에서 설명했던, 가맹점에서 렌즈를 픽업하는 복잡한 사업을 하고 있다. 실은, 이 모델을 좋아하는 안경사들도 상당히 많다. 안 그래도 오프라인 안경사의 트래픽과 매출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는데, 픽업 서비스를 통해서 수수료 매출이 발생하기도 하고, 렌즈를 픽업하기 위해서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들은 안경이나 다른 제품들을 구매할 확률이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추가 매출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이런 모델은 서로에게 유익한, 상생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에 안경사협회가 렌즈 픽업 서비스를 하는 스타트업 몇 곳을 의료기사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여기에다 안경사협회 회원사 중 픽업 네트워크에 가맹한 안경원에 내용증명도 보내고, 계속 이 네트워크에 가입해 있으면 안경사 면허정지까지 실시하기로 했다고 한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안경사협회는 국민 눈 건강을 위한 특단의 조치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이들은 국민 눈 건강 걱정은 별로 안 한다. 그런 사람들이 안경원을 방문할 때마다 더 저렴하고 좋은 제품도 있는데, 무조건 비싼 제품을 불투명한 가격에 판매할 리가 없다. 이들은 국민 눈 건강 때문이 아니라, 쿠팡이 이마트 같은 오프라인 유통업체를 무력화했듯이, 새파란 스타트업에 잠식돼 이들의 렌즈 보관함으로 전락하는 걸 훨씬 더 우려한다. 즉, 오랫동안 스스로 노력도 안 하고, 변화하지 않아도 아주 단단했던 철밥그릇을 빼앗길까 봐 이런 싸움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피해를 보는 건, 옵틱라이프와 같은 스타트업이 아니라. 바로 콘택트렌즈가 필요한 국민들이다. 온라인 플랫폼에서 선택하고, 안경원에서 픽업한 렌즈를 착용해서 각막이 손실되거나 눈 건강을 잃었다는 소비자는 거의 없는 것 같은데, 국민 눈 건강을 운운하면서 이런 서비스들을 다 막아버리면, 결국엔 소비자들이 오프라인 안경원에서 한정된 종류의 제품을 훨씬 더 비싼 가격에 구매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이건 안경사협회가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는데, 이런 건 이분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다.

전에 타다에 대한 글을 내가 꽤 많이 썼는데, 그때와 비슷한 생각이 든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이고, 누구를 위한 규제인지 잘 모르겠다. 이 산업을 자세히 보면, 한국에서 온라인 안경/콘택트렌즈 유니콘이 아직 안 나온 가장 큰 이유는 이런 규제 때문인 것 같은데, 이들도 세월의 흐름을 평생 막을 순 없을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법이나 규제는 다수의 국민과 소비자들의 편의를 위한 방향으로 수정될 것이고, 결국 법이 바뀌면, 기존 안경사들은 많이 망할 것이다.

전 세계 그 어떤 나라에서도, 회사나 단체의 해자가 규제라면, 그리고 규제가 그 유일한 진입장벽이라면, 이런 조직들은 오래가지 못하고, 규제가 없어지는 그 순간에 단숨에 쓰러진다. 내가 이들이었다면, 소송에 시간과 에너지 낭비하지 말고, 그냥 자신의 체질 개선에 사활을 걸겠다. 왜냐하면, 소송에 이기든 지든 결국 세상은 바뀔 것이다.

일본의 1940년 체제. 한국은?

올해 내가 한국의 직장인 분들은 모두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글을 여러 번 썼다. 예상친 못했지만, 이 주제가 상당히 민감한 주제이고, 몇몇 포스팅에는 엄청나게 많은 댓글이 달렸다. 댓글 다신 어떤 분이 ‘1940년 체제’라는 책을 추천해서 꽤 흥미롭게 읽었고, 나도 이 책에서 뭔가 배우고 참고할 만한 점들이 있는 것 같아서 내 생각을 여기서 그냥 특별한 흐름이나 순서 없이 적어본다.

일단 이 책의 제목과 부제는 ‘1940년 체제 (일본 전후 경제사의 멍에를 해부하다)’ 이고 저자인 노구치 유키오는 일본에서는 꽤 유명한 분이라는 걸 주변 일본 친구들을 통해서 확인했다. 경제학자, 교수, 그리고 일본 재무성에서도 일했던 분인데, 반골 엘리트 기질이 상당히 강한 분이라서 이분을 열렬히 옹호하는 분들도 많지만, 죽도록 싫어하는 분들도 많다. 내가 일본이라는 나라를 잘 몰라서 요목조목 따질 순 없지만,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한 때 최강국이었던 일본이 왜 요새 이렇게 힘을 못 쓰는지에 대한 저자의 개인적인 분석이다. 이걸 꽤 재미있게, 그리고 설득력 있게 설명했다. 일본이 1980년대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였는데 – 나도 이 정도인 줄은 몰랐지만, 당시에 미국보다 더 잘 살았고, 일본 대학교수가 미국 대학교수보다 연봉이 높았다고 한다 – 그 영광은 오래 못 갔고, 오히려 지금은 30년~40년을 잃어버린 “이미 끝난” 나라라는 비난을 받는데, 그 원인은 2차 세계대전을 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1940년 체제 때문이라고 한다.

한 권의 두꺼운 책으로 설명되는 1940년 체제를 간략하게 요약하는 건 힘들지만, 이 체제는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만든 강력한 중앙집권화 체제이다. 이 시스템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제도가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이며, 이 제도가 전후에도 그대로 이어지면서 궁극적으론 일본 경제의 침체로 이어졌다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책이다. 우리나라도 많은 제도와 시스템을 일본으로부터 가져왔는데, 이 종신고용과 연공서열 제도는 그대로 한국으로 수입됐다. 그리고 이건 이 책을 보고 느낀 내 생각인데, 일본에서 그랬듯이, 한국에서도 초반에는 이 제도가 경제의 고속 성장을 이뤘지만, 한국이 경제적 후발주자에서 선발주자가 된 이 시점에선, 더 이상 성장 동력을 제공하기보단, 오히려 침체의 원인이 되는 것 같다.

이런 제도가 그동안 몇 차례 변형되면서 만들어진 게 사람을 쉽게 해고할 수 없는 경직된 노동 시스템, 무능력한 직원도 자리에서 오래 버티면 자동으로 승진하는 시스템, 그리고 싫든 좋든 지켜야 하는 52시간 근무 제도이다. 이것도 모자라서, 어떤 분들은 주 4일제 근무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런 분들은 이 블로그 독자가 나에게 권장했듯이, 나도 이분들에게 1940년 체제를 꼭 읽어보라고 권장하고 싶다.

이제 한국은 강대국의 대열에 들어왔다. 자국이 잘 살고,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문화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힘 있는 나라가 된 걸 누가 싫어하겠는가? 하지만, 이 유리한 위치를 우리가 오랫동안 지키고 싶다면, 나라의 성장에 방해되는 오래된 시스템은 빨리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분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한국이 인당 GDP 5만 달러의 시대에 최대한 빨리 도달하고, 더 나아가서는 미국을 넘어 10만 달러의 초강국이 되길 정말 간절히 바란다.

개개인들은 아무것도 안 하고, 국가만 뭔가를 해주길 기다리면 절대로 그날이 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 개 같이 노력하고, 개 같이 일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개 같이 노력하는 걸 막는 법과 제도는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