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VC가 되는 방법

요새 학생 또는 사회초년생을 만나면 이들이 VC라는 업에 관심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나의 20대, 또는 30대 초반을 기억해 보면 당시엔 투자가 뭔지도 잘 몰랐고 VC라는 업 자체가 너무 생소해서 이런 직업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요즘 젊은 분들과 만나서 이야기해 보면 가끔은 VC 업에 종사하는 나보다 이 직종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본인들의 커리어와 미래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부한다는 좋은 인상을 받는다.

이들이 VC에 관해서 공부를 많이 하지만, 실제로 현업 VC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아서인지 나를 만나면 그동안 직업으로서의 VC에 대해 갖고 있던 질문을 많이 한다. 역시 이 질문들의 수준이 높아서 매번 놀란다. VC라는 직업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과 어떻게 하면 본인들도 VC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가장 많은데, 이미 이 질문의 단계를 넘은 분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어떻게 하면 좋은 VC가 될 수 있나요?”

이 질문은 VC가 되고 싶은 분들이 많이 하지만, 이미 투자하고 있는 현업 VC 초년생분들도 나에게 자주 한다. VC를 2년 정도 해서 이 업무 자체가 뭘 하는 건지, 이 산업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투자는 어떤 프로세스로 돌아가는지 등에 대한 정량적인 지식과 경험은 어느 정도 습득했지만, 이 업계에서 정말 잘하고 존경받는 – 어떤 분들에겐 남에게 존경받는 게 중요한 듯 – 좋은 투자자가 되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하는지 나에게 자주 물어본다.

일단 이런 분들에게 참 고맙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은 VC인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수많은 투자자 중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해준다는 건 그래도 내가 나쁜 VC는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해도 되는 것 같다.

VC가 되고 싶어 하는 분들, 그리고 사회 초년 VC 분들에게 이 질문에 대해 내가 드리는 답변은 의외로 단순하다. 좋은 투자자가 되고 싶으면 그냥 정상적이고 상식적으로 행동하는 VC가 되면 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건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닌 것 같은데, 많은 분이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방법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걸 보면 조금만 노력하면 눈에 띄는 좋은 VC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좋은 VC가 되고 싶으면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 특히 창업가 – 나랑 똑같은 한 명의 성숙한 인격체로 대해줘라. 나는 돈이 있으니까 ‘갑’이고 이들은 내 돈을 받아야 하는 ‘을’이라는 생각을 완전히 몸과 마음에서 지워버려야 한다. 우리 돈도 아니고, 우린 어차피 남의 돈을 관리해주는 사람들이다. 내 돈이 아닌 남의 돈 때문에 내가 투자할 수 있고, 내가 관리하는 남의 돈 때문에 나를 많은 사람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어떻게 보면 큰 거품 속에 VC들은 살고 있다. 이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내가 만나는 창업가를 인간으로 대하고, 항상 친절하게 대해줘라.

그리고 언행일치를 해라.
미팅 일정을 정했으면 약속한 날짜와 시간에 나타나면 된다. 이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닌데 생각보다 많은 투자자들이 아무런 사전 통지 없이 약속을 어긴다.
약속을 지켜라. 언제까지 의사결정을 하고 더 이상 투자검토를 진행할지 안 할지에 대한 의견을 주겠다고 했으면, 그냥 약속한 그 날짜에 연락해 줘라. 만약에 검토가 늦어진다면 왜 늦어지는지, 변경된 일정은 어떻게 되는지 꼭 알려줘라.
투자하겠다고 했으면, 투자해라. 투자하겠다고 약속하고 잠수 타거나 연락 안 되는 VC가 너무나 많다. 혹시나 사정이 생겨서 투자를 철회해야 한다면, 쪽팔리고 불편하겠지만 솔직한 이유를 말해주고 미안하다고 사과해라.
무슨 말이라도 입 밖으로 꺼냈다면, 그 말을 지켜라. 이건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다. 만약에 못 지킬 말이라면 그냥 입 닥치고 있어라.

마지막으로, 좋은 투자자가 되고 싶다면, 투자해라. 너무나 많은 투자자가 무늬만 화려한 VC다. 온갖 미사여구로 본인 자랑을 하고, 과거에 어떤 회사에 투자해서 돈을 얼마나 벌었다는 자랑은 실컷 하는데, 막상 자세히 물어보면 최근 몇 년 동안 단 한 건의 투자도 집행하지 않은, 돈도 없는 VC인 경우가 너무 많다. 이건 실은 좋은 투자자가 되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그냥 자신을 VC라고 하고 싶다면 좋은 투자든, 나쁜 투자든, 일단 투자해라. 이건 기본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나열한 내용은 전혀 어려운 게 아니다. 그냥 정상적인 사람이 되고, 정상적인 직장인이 되고, 다른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고, 말과 행동을 일치하면 좋은 VC가 될 수 있는데, 이걸 또 많은 투자자가 잘 못 하는 게 현실이다. 거꾸로 해석하면, 좋은 VC가 되는 건 생각보다 쉽다. 그냥 정상적으로 행동하면 된다.

사람이 그리워지는 시대

우린 전체 투자금의 10% 정도를 미국 회사에 투자한다. 과거에는 이 비중이 더 높았지만, 요샌 오히려 한국에 더 좋은 창업가가 많다고 느껴서 한국에 모든 자원을 집중하고 있다. 몇 개의 미국 투자사는 주주명부를 Carta를 통해서 관리하는데 나에게는 아직도 이 제품이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 투자사들이 이 회사의 제품을 사용해서 어쩔 수 없이 나도 수년 동안 사용하곤 있지만, 아직도 정확한 사용법을 잘 모르겠고 매번 사용할 때마다 불편하고, 내가 찾고 있는 회사가 안 보이고, 회사는 보이는데 이 회사에 투자한 우리 펀드가 안 보이는 등의 문제점이 있다.

며칠 전에 우리가 투자한 회사의 주식 수와 지분율을 확인하기 위해 오랜만에 Carta에 들어갔다. 회사쪽에서는 이미 스트롱에 주식을 발행했고, 그쪽에서는 이게 보이는데 우리쪽에서 보면 발행된 주식이 안 보여서 대시보드에서 이것저것 누르면서 확인해봤지만, 결국엔 해결하지 못해서 Customer Support으로 갔다. FAQ도 열심히 읽었지만 내가 원하는 답이 없어서 그냥 CS 이메일을 보내려고 했는데, Carta가 이젠 고객지원 이메일을 없애고 이걸 AI 챗봇으로 대체해버린 것 같다.

그동안 내가 경험했던 모든 AI 챗봇은 최악이었고, Carta의 봇도 역시 나의 이런 낮은 기대 수준을 실망하게 하지 않았다. 10분 정도 AI 봇과 이야기하다가 짜증나서 Carta에 직접 전화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개거지 같은 시스템이었다. 전화번호도 꼭꼭 숨어있어서 찾는 데 한참 걸렸고, 미국과 시간차가 있어서 아직 전화는 못 했는데, 사람의 도움과 사람과의 통화가 정말 그리웠던 순간이었다.

Carta는 이렇게 해놓고 아마도 AI를 통해서 고객지원 비용을 대폭 절감했다고 자랑할 것이다. 물론, 회사 입장에서는 맞다. 사람을 없애고 이걸 시스템으로 대체했으니까, 돈은 많이 아꼈을 것 같은데 이건 근시안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고객지원 비용은 아꼈겠지만, 나같이 화난 고객들은 결국엔 이탈할 것이고 아낀 비용보다 더 많은 매출이 빠질 수도 있다. 그리고, 화난 고객은 그냥 이탈하지 않는다. 특정 서비스에 만족하는 고객은 그냥 혼자서 만족하고 주변 사람에게 그 서비스 칭찬을 안 할 확률이 높지만, 이와 반대로 특정 서비스에 실망한 고객은 화가 나서 최소 3명의 주변 사람에게 이 회사 제품 사용하지 말라고 한다. 내가 그런 케이스였다. 이렇게 되면 과연 장기적으로 이 회사가 고객지원에서 절감한 비용이 이익으로 돌아올진 잘 모르겠다. 오히려 평판이 나빠지면서 고객 이탈이 대거 발생해서 비용이 줄어드는 속도보다 매출이 더 빨리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생각해도 나는 좀 까칠한 고객이긴 하다. 웬만하면 만족을 잘 안 하니까. 내가 Carta에서 경험한 일을 다른 분들에게 이야기해보니까, 대부분 동의했고, 최근에 비용절감과 자동화 차원에서 AI를 도입하는 제품을 사용하면서 나와 비슷한 상황과 짜증을 경험하고 있다고 말해줬다.

그래서 요즘 내가 드는 생각은, 기업의 정형적이고 반복적인 내부 업무는 AI로 자동화하는 게 의미가 있지만,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업무는 오히려 사람이 처리하는 게 모두 다 AX로 가는 이 시점에 그 회사의 경쟁력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그나마 아직 한국은 고객센터에 전화하면 몇 번의 과정을 거치면 사람과 통화할 수 있는데, 과거에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요샌 고객센터의 사람직원과 통화하면 이렇게 반갑고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우리 투자사 대표님들에게도 이제 나는 웬만하면 고객을 응대하는 건 AI로 하지 말라는 조언을 해주고 싶다. 심지어 과거보다 더 인력중심이지만 더 높은 수준의 외주 콜센터 서비스를 하는 회사에 투자하고 싶다는 생각을 요샌 하고 있다.

참고로, 나는 아직도 Carta의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운의 외주화

테크 분야의 소식을 계속 관심 있게 보는 분이면 이탈리아 밀라노에 본사를 두고 있는 Bending Spoons라는 회사에 대해서 잘 알거나, 들어봤을 것이다. 또는 이 회사의 이상한 사명은 잘 모르더라도 최근 몇 년 동안 이 회사가 인수한 브랜드는 들어봤거나 오랫동안 돈을 내고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Vimeo, Eventbrite, Evernote, Brightcove, meetup, AOL 등이 그런 브랜드다. 벤딩스푼즈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서비스지만 이젠 추억의 이름이 된 회사들을 상당히 싼 가격에 인수, 통합, 재정비해서 매출과 이익을 극대화하는 회사이다. 얼마 전에 상장한 이 회사는 어떻게 보면 과거에 야후나 한국의 옐로모바일과 유사한 점이 많고, 또 다른 각도로 보면 회사를 인수해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기업가치를 극대화하는 PE와도 유사한 부분이 많다.

벤딩스푼즈에 대해 여러 기사를 읽었고, 읽을 때마다 이 회사의 기업 문화, 채용 방식, 운영 방법이 특이하고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중 대표이사의 운과 실력에 대한 철학이 가장 인상 깊었다. 그는 사업을 시작할 땐 운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고 하면서 시장과 고객이 열광하는 제품을 만든다는 건 – 즉, 이 바닥에서 말하는 product market fit을 찾는 건 – 실력보단 운이 더 크게 작용한다고 한다. 하지만, 운 좋게 product market fit을 찾은 사업을 운영하는 건 실력이라고 한다. 벤딩스푼즈의 논리에 의하면 이들이 인수한 우리가 잘 아는 한물간 브랜드들은 모두 창업가들이 초반에 운 좋게 product market fit을 찾았지만, 운영 실력이 부족해서 더 크게 성장시키는 데엔 실패했다. 그래서 이 회사의 전략은 본인들이 제어할 수 없는 운은 – 즉, 사업을 시작하고 product market fit을 찾는 – 그냥 철저히 다른 창업가들에게 외주화하고, 본인들이 100% 제어할 수 있는 실력에만 – 운 좋게 product market fit을 찾은 사업을 성장시키는 – 집중하는 것이다.

말은 그럴싸하지만, 이걸 실행하는 건 말처럼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어쨌든 현재까지 벤딩스푼즈의 성적표를 보면 이들의 방식이 잘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이 회사의 이런 독특한 전략에 대해서 업계의 다른 분들과 이야기해보면, 이 방식 자체는 그렇게 새로운 게 아니고 이미 많은 PE 회사의 철학과 전략과 흡사한 것 같은데 그냥 이들이 실행을 더 잘하는 것 같다 – 현재까지는. 장기적으로도 계속 이 방식이 작동할진 더 지켜봐야할 것 같지만, 어쨌든 이런 흥미로운 회사가 실리콘밸리나 뉴욕이 아니라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다는 것도 매우 흥미롭다.

내가 자주 하는 말이고, 가끔씩 관련해서 글도 쓰는데, 우리가 하는 초기 투자는 운이 너무 크게 작용해서 실력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거의 없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벤딩스푼즈에 대해서 더 많은 자료와 기사를 읽을수록 혹시 우리도 운을 외주화하고 실력에만 의존할 방법이 있을지 조금씩 고민했었다.

며칠 뒤에 내가 내린 결론은 이건 우리에겐 해당 사항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직접 사업을 운영하지 않기 때문에 벤딩스푼즈처럼 확실한 운영 실력을 발휘할 수가 없고, 우리가 만약에 실력이라는 게 있고, 실력이 우리가 하는 초기 투자에 적용된다면, 이건 오히려 벤딩스푼즈가 말하는 운의 영역에서 작용해야 하는 실력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product market fit을 찾아야 하는 운의 영역에서 열심히 구르는 창업가와 우리는 한배를 탔기 때문에 우리가 운을 외주화하는 처지가 아니라 오히려 그 운을 외주 받는 처지다.

그래서 다시 고민의 방향을 바꿔봤다. 우리가 남에게 운을 외주화할 순 없고 오히려 그 외주를 받는 처지니, 운의 영역에서조차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는 실력을 키울 방법에 대해서 고민해 보기로 했다.

하지만, 결론은 매번 크게 다르지 않다. 운의 영역에서 실력을 발휘한다는 말 자체가 모순된 표현이자 답이 없는 질문인데, 그나마 이걸 하고 싶다면 결국엔 이 운의 열쇠를 잡고 있는 창업가를 더 잘 선택하고, 더 좋은 분에게 더 잘 베팅해야 한다는 게 단순한 결론이다.

시작도 못 하는 사람들

영어에 “Ready forever, starting never”라는 말이 있다. 내가 꽤 자주 사용하는 문구인데 말 그대로 평생 준비만 하고, 시작은 못 한다는 뜻이다. 우리 포트폴리오에도 이런 창업가가 있는데,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도 내가 혹시 준비만 하고 시작은 못 하는 사람인지 스스로 물어보고 점검해 보길 바란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은 뭐 하나 시작도 못 하고, 시작을 못 하기 때문에 그 어떤 일도 끝낼 수가 없고, 그 어떤 일도 끝낼 수 없다면 솔직히 별로 쓸모없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준비를 철저히 하는 건 모두 다 연습해야 하는 좋은 습관이다. 내가 그나마 다른 분야보다 조금 더 잘 아는 창업과 사업 분야의 예를 들어보자. 현재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는 안정적인 직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만족스럽지 못해서 창업을 고민하고 있다면, 이건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큰 결정, 또는 도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창업을 위해 퇴사하기 전에 돌다리도 다시 한번 두드려 봐야 하고, 안 그래도 낮은 성공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서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시장 조사도 해야 하고, 경쟁사가 있다면 이들의 제품도 면밀하게 사용해보고, 초기 고객은 어떻게 모으고, 돈을 벌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과 준비를 해야 한다.

하지만, 준비에는 한계가 있다. 스타트업이라는 것 자체가 항상 불확실성과 함께하는 여행이고, 필요한 정보의 4분의 1만으로 대부분의 결정을 해야 하는 위험한 게임이다. 실은, 필요한 정보의 4분의 1만 확보해도 꽤 많은 준비를 한 것이다. 완벽한 준비란 어차피 없어서 우리보다 이 길을 더 먼저 갔던 선배창업가들은 시간을 정해놓고 그때까지 최대한 많은 준비를 하되, 그 시간이 되면 준비가 되든 안 되든 일단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링크드인을 만든 리드호프먼의 이 유명한 말이 모든걸 요약한다.

“창업은 절벽에서 뛰어내리면서 떨어지는 동안 비행기를 조립하는 것과 같다.”

이 논리는 창업을 결정해서 시작할 때뿐만 아니라 이후에 제품을 만들고 서비스를 출시할때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 투자사 중에도 수년 동안 새로운 제품을 준비만 하다가 결국 출시도 못 한 곳도 있는데, 전형적으로 준비만 하다가 시작도 못 한 사례다.

왜 그랬는지는 이해한다. 막상 출시하려고 보니, 제품이 완벽하지 못했고, 이미 비슷한 제품을 경쟁사가 출시하면서 시장이 바뀌었고, 갑자기 우리가 타겟했던 MZ 세대가 더 이상 돈이 없는 등,,,수 많은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완전히 출시 기회를 놓치면서 길게는 2년 이상 야심차게 준비하던 제품을 아예 시작도 못 한 경우를 나는 꽤 많이 봤다.

이렇게 준비만 하고 시작을 못 하는 창업가도 있지만, 준비는 거의 안 하고 시작은 잘하는 분도 있다. 실은 이런 분도 이상적인 창업가는 아니다. 너무 준비를 안 하고 시작하면 오히려 더 세게 다치거나 망하는 경우가 많다. 위의 리드호프먼의 말을 이런 분에게 적용하면 그냥 아무 생각없이 절벽에서 뛰어내리는건데, 그러면 그냥 바로 뒈진다.

그래서 나는 완벽한 준비와 빠른 시작, 이 양극단 사이의 적당한 선에서 창업가는 타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본인이 할 수 있는 만큼 준비하되, 완벽한 준비는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잘 파악하고, 최대한 빨리 출시하되 최소한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시작하고, 이후에 시장과 고객의 요청 사항에 맞춰서 수정하고, 다시 출시하면서 이걸 계속 반복하는 창업가가 성공 확률이 높다는 걸 나는 매일 보고 느끼고 있다.

최악의 결말은 준비만 하다가 시작도 못 하고 끝나는 것이다. Ready forever, starting never를 하는 창업가는 절대로 되지 말자.

있는 그대로의 나

나는 일과 관련된 저녁식사인 ‘비즈니스 디너’를 잘 안 한다. 주 중 일정이 워낙 빡빡해서 하루라도 루틴과 컨디션이 무너지면 그날은 당연히 힘들고, 이게 일주일 내내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되도록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내가 매일 하는 루틴을 지키는 노력을 한다. 저녁 약속이 있으면 늦게까지 뭘 먹고, 많이 먹진 않지만, 술도 먹고, 그리고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이러면 그다음 날 컨디션이 영 별로라서, 식사를 해야 하는 자리라면 점심 약속, 또는 오히려 조찬을 선호하는 편이다.

며칠 전에 업계 지인분이 오랜만에 저녁 식사를 제안했다. 위와 같은 이유로 내가 거절했고 대신 점심이나 커피타임을 하자고 했는데, 이 말을 하면서 내 입에서 자동으로 “죄송합니다. 제가 저녁 약속을 잘 안 잡아서요…”라는 말이 나왔고, 사과하자 상대방은 나에게 이런저런 불평불만을 표시했고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식의 훈계까지 했다. 솔직히 이 분이 나에게 저녁을 몇 번 제안했는데 내가 매번 거절해서 약간 미안한 마음이 있기도 해서 다시 한번 죄송하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대신 점심 약속을 잡은 후에.

그런데 전화를 끊고 이 점심 약속을 캘린더에 넣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왜 내가 이분에게 미안해야 하고 사과를 해야 하지? 그냥 원래의 나답게 행동하는 건데?”

생각해 보니 나도 한국 사회에 너무 익숙해진 것 같다. 내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것보다 남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더 중요하고, 내 감정이 상하는 것보다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게 더 큰 죄악이라고 인식되는 전반적인 한국 사회의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휩쓸리고 있었다. 지금도 평균적인 한국인보단 남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을 잘 안 쓰는 편이지만, 나도 모르게 점점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에 동화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요새 다시 스스로를 리셋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실은 과거에는 이런 걸 그냥 하면 되지 ‘노력’까지 할 필요는 없었지만, 전반적인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와 소위 말하는 사회적 규범을 점점 더 인식하고 신경 쓰게 됐기 때문에 이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이제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인생의 모든 다른 것들처럼.

있는 그대로의 나답게 사는 것을 미안해하거나 남에게 사과할 필요는 전혀 없다. 한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는 이게 잘 안되는 분위기지만, 잘 생각해 보면 이건 전혀 남에게 미안해할 게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법을 어기거나 사회적 규범을 완전히 거스르는 반사회적인 사람이 되겠다는 건 아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고 나에게 맞는 방식대로 살면 된다.

Do not apologize for being yourse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