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초반에 LA를 대표했던 B2C 회사 중 남성 면도기를 정기구독으로 배송했던 Dollar Shave Club(DSC)이라는 스타트업이 있었다. 나는 이 회사의 고객이기도 했고, 이 회사의 창업가 마이클 두빈을 직접 여러 번 봤는데, 참 재미없고 평범한 제품인 남성 면도기를 창의적인 마케팅을 통해서 재미있는 사업으로 만든 인상적인 회사였다. 유니레버가 2016년도에 이 회사를 $1B에 인수했다. 그 가격표도 엄청났지만, 개인적으로 내가 더 재미있다고 생각한 건, 이 회사의 면도기는 한국의 도루코에서 OEM 제조했고, 도루코도 이 회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엑싯이 마무리됐을 때 도루코가 번 돈은 재무제표에서 눈에 확 띌 정도로 도루코의 수익성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사실이었다.
많은 회사가 그렇듯이, DSC의 사업도 예전만큼 잘 되진 않아서 유니레버도 몇 년 전에 이 사업을 다른 사모펀드에 매각했다.
얼마 전에 DSC의 창업가 마이클 두빈의 인터뷰를 참 재미있게 들었는데, 15년 전에 내가 LA에서 이분에게 직접 들었던 여러 가지 이야기와 일화들이 서로 겹치면서 “아 맞다. 그때도 이 친구가 이런 내용을 강조했었지!”라는 아하 모멘트가 있어서 여기에 몇 자 남겨본다.
인터뷰에서 사회자가 마이클에게 물었다. “그런데 대표님같이 창의적인 사람이 어떻게 이런 지루한 산업에서 창업할 생각을 했나요? 다른 더 재미있는 사업은 생각 안 해봤었나요?”
이 질문에 대한 긴 답변이 있었는데, 요약하자면, 마이클은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데이터보단 본인의 직감을 믿었는데, 본인의 경험에 의하면 과거에 오히려 생각을 많이 하고 심사숙고한 후에 내린 결정은 100% 잘못된 결정이었기 때문에, 복잡한 문제일수록 직감에 의존해 심플하게 의사결정을 한다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지루하고 섹시하지 않은 남성 면도기 구독 이커머스 사업을 이 친구는 본인의 직감을 십분 활용해서 가장 재미있고 가장 섹시한 사업으로 만들었는데, 이 회사의 마케팅이 당시 얼마나 재미있고 파격적이었나 하면, 이 유투브 광고 영상을 보면 금방 이해할 것이다. 지금 봐도 상당히 잘 만든 광고 영상인데, 창업가의 직감이 여간 좋지 않으면 이런 콘텐츠는 나올 수 없을 것이다.
DSC의 시작도 직감에 의한 창업 결정이었다고 한다. 본인은 wet 면도를 매일 해야 하는데, 질레트와 쉬크는 너무 비싸고,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은 사용하면 항상 상처가 나서, 가성비가 좋은 면도기와 면도날은 없을까 계속 스스로 질문했다고 한다. 또한, 남성들이 거의 매일 사용하는 제품이라서 정기구독 서비스가 시장에 많을 줄 알았는데, 막상 찾아보니 UI/UX가 깔끔하고 사용성이 좋은 서비스가 없었고, 무엇보다 실제 제품을 받아보니 면도기의 성능이 모두 다 별로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두 가지 고민점이 있었다고 한다.
첫째는, 분명히 매일 면도하는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다른 남성들도 이와 비슷한 문제점을 경험하고 있어야 하는데, 주변에 그 누구도 이런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한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었다. 본인이 생각하기엔 가성비 좋은 면도기를 정기적으로 집에서 받을 수 있는 사업은 대박이었는데, 왜 이런 간단한 아이템을 그 누구도 제대로 해 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혹시 존재하지 않는 문제가 아닐까 하는 고민을 했다고 한다.
둘째는, 이 사업에 대한 피드백을 주변에 물어보니, 대부분 반응이 별로였다고 한다. 하지만, 면도기 정기구독 서비스뿐만 아니라, 웬만한 새로운 사업에 대해서는 일반적이고 이성적인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이 이슈에 대해서는 큰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첫 번째 고민이 문제였다. 세상의 절반이 남성이고, 면도기는 너무 많은 남성이 사용하는 제품이고, 면도는 이들이 매일 하는 행위인데, 그 누구도 가성비 좋은 면도기가 없다는 불평을 안 하고, 그 누구도 가성비 좋은 면도기를 집으로 정기배송해주는 서비스가 없다는 불평을 안 하면,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냐는 의문을 그는 계속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그냥 직감에 의존하기로 했다. 직감으로 그가 내린 결정은 모든 남성이 이런 문제가 있고, 이건 아주 큰 불편함이지만, 이 세상 대부분 사람은 이성적이고, 이들은 세상이 만들어 놓은 틀에 본인을 적응시키려는 관성이 있기 때문에 “원래 그런 거야”라면서 그냥 불편하게 살고 있을 확률이 크다고 생각했다.
참고로, 위에서 말하는 “이성적인”에 대한 정의는 조지 버나드 쇼의 설명을 인용해보겠다.
“이성적인 사람은 자신을 환경에 적응시킨다. 비이성적인 사람은 환경을 자신에게 적응시킨다. 고로 모든 변화와 진보는 비이성적인 사람에게 달려있다.”
그의 직감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고, DSC는 당시 미국 남성 대부분이 아는 브랜드로 초고속 성장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마이클은 사업하는 과정에서 힘든 결정을 정말 많이 했는데, 그때마다 그는 데이터나 다른 사람들의 말에 의존하기보단 본인의 직감을 믿었고, 이런 그의 직감에 의한 결정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회사의 성공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