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내부 브릿지 라운드

얼마 전에 글로벌 벤처 시장 관련 자료를 정리했는데, 가장 많이 인용되는 CB Insights 수치에 의하면 2021년도 전 세계 벤처 시장에 투입됐던 투자금은 자그마치 $644B이었다. 이때가 시장에 가장 많은 돈이 풀렸던 해였는데, 그 이후에 세계 경기와 벤처 시장이 어떤 방향으로 갔는진 모두 다 잘 알 것이다. 2022년도는 이 금액이 $418B으로 전 년 대비 35% 감소했고, 2023년은 어떻게 될지 잘 봐야 하지만, 시작부터 상당히 안 좋다. 2023년 Q1에 글로벌 벤처 시장에 투입된 벤처 투자금은 약 $60B인데, 이는 지난 5분기 연속 감소한 금액이다. 한국 시장과 글로벌 시장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보고 느끼는 현상에 의하면 2023년은 2022년 대비 최소 30% 감소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

역사를 보면 한국의 벤처 시장과 글로벌 벤처 시장은 거의 비슷하게 움직이는데, 한 가지 다른 게 있다면 타이밍이다. 주로 미국이나 다른 글로벌 시장에서 먼저 시그널이 오고, 이 시그널이 한국 시장에 도달하는데 약 3개월~6개월 정도 걸리니, 솔직히 말해서 올 하반기 한국 벤처 시장의 미래는 굉장히 어둡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이 어두운 미래의 시그널은 우리 투자사들의 재무제표와 펀딩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금 많은 우리 회사들의 현금이 메말랐는데, 이 와중에 성공적인 펀딩을 하는 회사는 상대적으로 너무 적다. 일단 돈이 없어도, 펀딩 자체를 포기하거나 시도하지 않는 회사들이 있다. 이들은 주변에서 보고 듣는 이야기를 잘 참고해 보니, 지금 시장에 나가봤자 투자받는 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냥 비용을 바짝 줄이고 살아남자는 전략을 택한 회사들이다. 어쩌면 이게 현명한 전략일 수도 있다. 대단하지 않은 사업실적으로 요새 투자 받는 건 불가능하고, 괜히 펀딩에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기면 그나마 유지되는 사업 자체가 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미 비용은 줄일 대로 줄였고, 한 달 벌어서 한 달 먹고 사는 회사들은 살기 위해서 펀딩을 시도하고 있는데, 요새 정말 쉽지 않다. 이런 회사들을 위한 방법의 하나가 바로 긴급 내부 브릿지 라운드이다. 시간도 없고 회사의 런웨이도 짧고, 무엇보다 투자자들이 찾는 성장을 못 만들고 있는 회사들이라서 오히려 새로운 투자자들에게 피칭하고 펀딩을 시도하는 건 시간 낭비이지만, 비즈니스 모델은 꽤 괜찮고 무엇보다 팀이 좋은 회사들엔 시도해 볼 만한 방법이다. 특히, 폭발적인 성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좋은 팀과 비즈니스 모델이 있는 스타트업이라면, 기존 투자자들에겐 회사의 가능성을 어필해 볼 만하다. 이 회사의 진가를 조금이라도 알아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건 바로 이 팀과 비즈니스를 오랫동안 지켜봤던 기존 투자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존 투자자들로만 구성된 내부 브릿지 라운드를 시도할 땐, 이런 구조로 진행을 해보면 된다:
1/ 일단 회사가 단기적으로 필요한 최소 금액을 산정해 본다. 어떤 걸 기준으로 최소 금액을 산정할까? 1억 원이든 10억 원이든, 이 브릿지 금액을 다 소진했을 때, 반드시 흑자 전환을 통해서 외부 자금 없이 사업을 할 수 있거나, 또는 훨씬 큰 다음 라운드를 진행할 수 있을 정도의 수치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2/ 1번에서 최소 금액이 계산됐다면, 기존 주주 중, 유의미한 투자자들의 보유 주식 비율대로 브릿지 투자금을 할당해 본다. 아주 간단하게 예를 들어보겠다. 필요한 브릿지 투자금이 10억 원이고, 유의미한 투자자 4곳의 보유 주식 수가 순서대로 400주, 300주, 200주, 100주, 총 1,000주라면, 각 투자자에게 할당하는 금액은 4억 원, 3억 원, 2억 원, 1억 원이다. 즉, 지분이 가장 많은 기존 투자자가 이론적으로 가장 많은 브릿지 금액을 투자해야 한다.
3/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이 긴급 내부 브릿지 라운드에는 모든 유의미한 투자자들이 참여해야 한다. 모든 주주가 회사에 대한 support를 보여야 하며, 하나라도 빠지면 이런 브릿지 라운드는 그 의미가 빛이 바래고, 부러질 것이다.
4/ 이 브릿지 라운드의 의미는 가망이 없어서 죽어가는 회사를 일시적으로 살리기 위한 자금이 아니다. 설령, 회사를 잘 모르는 외부에서 봤을 땐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만, 결국엔 이 회사, 팀, 비즈니스를 가장 잘 아는 기존 투자자들이 일시적인 자금 문제만 해결하면 밝은 미래가 있다는 걸 인정하고 추가 자금을 투입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 3번의 모든 주주의 참여가 중요한 것이다.
5/ 주로 이런 긴급 내부 브릿지 라운드에 대한 대화는 기존 투자자 중 이사회 멤버가 리딩을 한다. 이사회 멤버가 다른 투자자들과 이야기하고, 이들을 설득해서 짧은 시간 안에 모든 투자자의 동의를 얻고 진행을 해본다.

그런데 이게 항상 이렇게 진행되진 않는다. 기존 투자자들이 회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매우 다를 수 있고, 모두 다 긍정적으로 보더라도 각 투자사의 상황, 그리고 각 펀드의 상황이 있기 때문에, 내가 시도했던 이런 긴급 내부 브릿지 라운드는 성공적으로 진행된 적 보단, 중간에 부러진 경우가 훨씬 많다.

팀 셀링

사람과 팀의 중요성은 이 블로그를 통해서 내가 하도 많이 이야기하고 강조했지만, 이 부분은 아무리 강조해도 충분치 않을 정도로 중요하다. 우리가 스타트업을 검토할 때 가장 자세히 보는 게 팀과 관련된 슬라이드이며, 가장 많은 질문과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이 팀과 관련된 내용이다. 대표이사는 과거에 어떤 걸 했고, 어떤 사유로 창업하게 됐는지, 다른 팀원들은 어떻게 알게 됐고, 얼마큼 오랫동안 알고 지냈는지, 등등, 사소한 이야기부터 중요한 이야기까지 모든 걸 물어보는 편이다.

회사가 성장해서 매출과 같은 의미 있는 성과가 나오는 단계에서 투자하는 투자자는 팀도 보지만, 숫자와 시장도 많이 본다. 우리가 들어가는 초기 단계에는 이런 숫자도 없고 어떤 시장으로 진입할지 확실치 않기 때문에, 일단은 어떤 사업을 하냐 보단, 누가 이 사업을 하냐가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고, 이 부분만을 보고 투자했을 때 우리도 성공적인 투자를 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경험에 더욱더 올인 하게 된다.

이렇게 우리가 회사를 검토할 때 팀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하고, 우리가 투자한 이후에도 좋은 팀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하는데, 나도 요새 팀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몸소 체감하고 있다. 우리 같은 VC도 회사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데, 이걸 모두 스트롱 멤버들의 개인 돈으로 하면 좋겠지만, 우리도 그렇게 개인적으로 돈이 많지 않기 때문에 우리도 투자를 유치해야 한다. 스타트업이 우리 같은 VC한테 펀딩받아야 하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 같은 펀드에 출자 – 펀드에 투자할 땐 “출자”라는 말을 사용한다 – 하는 LP 들에게 펀딩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스타트업 펀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도 일단은 기존 출자자들에게 새로운 펀드를 만들건대, 또 투자할 건지(=팔로우 온 투자) 물어보고 일단 이들의 축복이 있으면, 기존 LP들의 출자금을 마치 전쟁터에 나갈 때 사용하는 총알과 같이 보유하고, 새로운 LP 들에게 피칭을 한다. 우리도 지금 신규 펀드를 만들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는데, 피칭해야 할 LP 리스트를 보면 거의 80개의 기관과 개인들이 있고, 결국 이들에게 미친 듯이 피칭하고 돈 달라는 앵벌이 싸움을 해야 한다.

그러면 스트롱은 투자받을 때 뭐를 강조하고 뭐를 셀링하는가? 우리야말로 정말 팔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우리가 무슨 앱을 만드는 회사도 아니고, 컨설팅을 제공하는 서비스 회사도 아니라서, 매출, MAU 등의 KPI를 보여줄 수 없다. 물론, 투자를 어느 정도 하면 투자 수익률이라는 실적이 있지만, 이건 정말로 시간이 오래 걸리고, 항상 수익이 발생하는 게 아니다.

결국엔 스트롱이 투자유치를 할 때, 우리가 팔 수 있는 유일한 제품은 바로 우리 ‘팀’ 그 자체이다. 스타트업이 펀딩 할 때도 결국엔 팀을 셀링하지만, 그래도 제품이 있고, 뭔가 보여줄 수 있는 수치가 어느 정도 있다. 우리는 정말로 100% 우리 팀을 팔아야 하고, 유일한 투자 가부 결정은 스트롱 팀으로 판단된다.

항상 느끼지만, 요샌 정말로 우리 팀의 소중함과 중요함을 매일, 매 순간 느끼고 있다. Go Strong.

무지개 다리 건너편

사진 2016. 9. 7. 오후 6 50 08몇 년 전에 개를 데리고 산책하고 있었는데, 모르는 분이 나한테 다가와서 “배기홍 대표님?”이라고 해서 얼떨결에 인사를 했다. 내 페이스북 친구인데, 내가 그동안 포스팅 한 우리 개 마일로 사진을 보고, 마일로를 알아봤고, 나를 길거리에서 알아봤다. 그리고 많은 창업가분들이 나를 처음 만나면 나보다 마일로의 안부를 먼저 물어보는 분들이 상당히 많다. 요새도 마일로 안부를 물어보는 분들이 있고, 그냥 궁금해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 실은 마일로는 올해 1월 1일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마일로는 우리 가족과 15년을 함께 했다. 우리가 연애할 당시, 와이프는 동물 보호시설에서 자원봉사를 했었고, 그때 주인으로부터 버림받아서 포천에 있는 동물보호소에 살고 있던 똥개가 마일로다. 결혼하고 우린 바로 미국으로 출국했는데, 몇 달 후에 보호소에서 이 친구를 미국으로 보내줬고, 우린 LA 공항 화물터미널에서 마일로를 입양해서 올해 초까지 같이 살았다. 입양 당시 개가 3~5살 정도로 추정되니, 사망 당시 추정 나이는 18~20살이다.

어른이 돼서 내가 처음으로 키운 개가 마일로인데, 그동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맙고 즐거운 일이 많았고, 사람이 아닌 동물을 진정한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 아주 괜찮은 친구였다. 마일로는 태평양을 4번이나 횡단했고, 2년 전만 해도 매우 건강한 슈퍼 할머니 개였는데, 나이가 들면서 신장과 같은 장기도 망가지고, 결국엔 치매까지 왔다. 사람과 비슷한 노화 과정을 거치는 걸 옆에서 자세히 지켜보면서 나랑 지현이는 번갈아 가면서 수발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모두 다 즐거운 추억이다.

실은 개가 워낙 늙어서, 우린 항상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고, 나는 노견의 죽음 관련 책도 꽤 많이 읽어서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5개월이 지난 이 시점에도 계속 생각난다. 시간이 지나면 잊힐 거로 생각했지만, 이제 확실해진 건, 내가 죽을 때까지 잊히진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도 이젠 좀 놓아주고 싶다. 그래야지 이놈도 편안하게 무지개 다리를 건너겠지.

노견 관련 책 중 “고마워, 너를 보내줄게(당신의 반려동물과 행복하게 이별하는 법)”에 가장 현실적인 조언이 많았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은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개가 주인에게 하는 말인데, 마일로도 우리 가족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했을진 모르겠지만, 비슷한 감정을 가진 채 무지개 다리 건너편으로 잘 갔길 바란다. 우리에게 준 15년 동안의 즐거움과 고마움은 항상 기억할 것이다.

See you again my friend, on the other side.

“친구에게,

이제 작별할 시간입니다. 내 다리는 약해지고 시력은 나빠지고 코의 감각도 희미해졌습니다. 나는 약해지고 있습니다. 정신은 점점 흐려지고, 이제 당신 곁을 떠날 때가 되었다는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다시 건강해져서 더러운 데서 뒹굴고 기름투성이 뼈를 잡아채고 당신이 내가 먹지 않았으면 바라는 음식들을 모두 먹고 싶어요. 그리고 항상 배에는 긁힌 상처가 그치지 않도록 들판과 숲을 뛰어다니고 삶의 이야기들을 감지하고 바람을 향해 코를 세우고 세상을 또다시 보고 싶어요.
이제 나는 돌아갑니다. 당신을 외로움과 고통 속에 두고 간다는 것을 압니다. 사람들은 작별할 때 그렇게 느끼지요. 개들은 다르답니다. 우리는 후회하지 않아요. 다르게 살았더라면 하는 바람이 없지요.

비록 나는 떠나지만 우리가 함께 한 추억을 남깁니다.

창밖으로 바람이 휘몰아치고 눈이 흩날리던 어느 추운 겨울밤 당신이 나를 위해 노래를 불러줬던 일을 기억합니다. 나는 당신의 외로움을 느꼈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알았지요.

나를 바라볼 때 당신의 입꼬리가 올라가고 당신에게서 다른 냄새가 나고 무언가 다르게 보였어요. 더 밝고 행복해 보였어요. 그것이 내 삶이고 내 일이었습니다. 다른 어떤 것도 내 목적을 이보다 더 분명하게 해주는 건 없었습니다. 당신이 미소 지을 때 나는 내가 당신 곁에 있는 이유를 알았지요.
나는 당신이 일을 하는 동안 당신과 함께 있거나 지켜보는 일이 결코 싫증나지 않았어요. 나는 그 순간의 분위기에 빠져들어 당신 곁에 앉아 있었지요. 나는 당신 삶이 어떻게 되든 당신이 어떻게 느끼든 무엇을 하든 당신을 지지했어요. 나는 당신의 증인이자 증거예요.

나는 눈 속을 걷던 일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당신과 함게 뛰던 일도 기억합니다. 그리고 공과 프리스비, 막대기를 쫓아 뛰어다니던 것도 기억합니다. 추운 밤 따뜻한 난롯불도 기억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책을 읽거나 야구를 볼 때 당신 곁에 앉아 있던 것도 기억합니다.

당신이 집에 돌아와 내 이름을 부르거나 공을 집어 들거나 나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거나 나에게 먹이를 주면 좋아서 심장이 터질 듯 쿵쿵 뛰었던 것도 기억합니다. 내가 그 모든 일들을 정말 많이 사랑했다는 것을 당신이 알아줬으면 합니다. 당신이 내게 무엇을 가져다주든, 나와 함께 어떤 시간을 보내든 나는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감사합니다.

나는 당신이 나를 잊어버리고 있을 때도 당신이 나를 볼 수 없을 때도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항상 알고 있었어요. 당신은 내게 비밀이 없었지요. 내게 모든 것을 보여줬잖아요. 우리는 서로 신뢰했습니다. 사람들과 달리 나는 당신을 결코 해치지 않았습니다. 나는 당신을 절대 해칠 수 없었어요. 내겐 그런 본능이 없어요.

나는 인간의 삶에서 모든 근심거리를 냄새 맡고 느끼긴 했지만, 그래도 인간과는 다르답니다. 다른 여느 동물들처럼 나는 내게 꼭 필요한 것만 원해요. 당신의 삶은 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당신 삶 속에는 내겐 의미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나는 당신보다 훨씬 더 단순합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우리 집의 모든 사람들과 동물들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나는 음식과 숲속의 냄새 나는 것들을 사랑하고 공과 프리스비와 뼈다귀를 사랑해요. 그 외에 내게 더 소중한 건 별로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혹시 그런 이유가 아니라 하더라도 당신은 나를 사랑해주었습니다.

이제 당신은 개의 그림자에는 항상 작별이 맴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겠지요. 우리는 영원히 혹은 충분히 오래 머무르지는 않아요. 당신 인생이 끝날 때까지 함께 보내게 되어 있지 않아요. 단지 당신의 생에 흔적을 남길 뿐입니다. 우리는 왔다가 갑니다. 우리를 필요로 할 때 우리는 옵니다. 시간이 되면 우리는 떠납니다. 죽음은 필요한 일이에요. 죽음이 삶을 정의하지요.

우리는 다시 만날 거예요.
나는 당신을 지켜볼 거예요.

바라건대 당신이 슬프고 외로울 때, 우리가 이 모든 시간을 함께 나누지 못했다면 서로에게 그토록 많은 것을 주지 못했다면 얼마나 더 슬펐을지 떠올리길 바랍니다.

나는 애통해하거나 슬퍼하지 않지만 당신과 함께 걸었던 삶의 길을 그리워하겠지요. 다른 개들이 내 자리를 대신해 당신과 함께 살기를 바란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말이에요.

감사합니다. 당신과 함께한 시간은 선물이었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나를 기억해주세요.
나를 축복해주세요.
나를 위해 슬퍼해주세요.

그런 다음 그럴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를 기꺼이 편하게 놓아주세요.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 다른 개를 데려와서 키워주세요. 그래서 당신이 다시 이 선물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내겐 큰 영광일 거예요.”

중간은 없다

얼마 전에 “시대의 1등주를 찾아라”라는 책을 읽었다. 실력 있는 펀드매니저가 이 업계에서 17년 동안 롱런하면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의 일부를 책으로 써서 공유한 내용인데, 나는 이분이랑은 다르게 비상장 회사에 투자하고 있어서, 시장을 보는 방법과 투자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많이 다르긴 하다.

하지만, 상장회사에 투자하든 비상장 회사에 투자하든, 결국 모든 투자의 기본은 비슷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일단 기본적으로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공부 못지않게 어떻게 투자할지에 대한 자기만의 철학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공부도 중요하지만 자기만의 철학이 좋은 투자자와 그렇지 않은 투자자를 구분할 수 있는 가장 핵심 잣대라고 생각한다. 이분은 상장기업에만 투자하는데, 사람, 감, 그리고 비공개 데이터를 보고 투자하는 우리와는 완전히 다르게 오롯이 데이터, 시장, 그리고 보고서만을 기반으로 투자한다. 이런 전략이 맞는지 틀렸는진 나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분의 실적을 보면 결론적으론 어느 정도 맞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매번 이런 전략이 맞는 건 아니다. 분명히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할 것이지만, 가장 중요한 건 17년 동안 작가가 이 사업을 하면서 자기만의 전략과 철학을 스스로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불확실성투성이인 주식 시장이나 이보다 불확실성이 훨씬 높은 초기 스타트업 시장에서 항상 승리하진 못 해도, 미치지 않고 롱런할 수 있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자기만의 생각과 철학이다.

이 책에서 계속 등장한 전략 중 하나가 “중간은 없다”이다. 작가가 계속 주장 하는 내용 중 내가 많이 공감했던 건, “매수냐 매도냐, 선택은 둘 중 하나이다. 중간은 없다.”라는 건데, 이건 우리가 투자하는 창업가들도 갖고 있는 마인드셋이긴 한다. 우리가 투자한 창업가들을 보면, 창업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건, 아이디어도 아니고, 돈도 아니다. 나한테 물어본다면 나는 창업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건, “시작” 그 자체와 시작을 했으면, 여기에 완전히 “올 인”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 속담 중 “시작이 절반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내가 보기엔 창업에 있어서는 “시작이 전부이다.” 시작하는 것 자체가 제일 어렵지만, 일단 시작하면 다른 건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단 시작했으면 여기에 올 인 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책에서는 “매수냐 매도냐, 선택은 둘 중 하나이다. 중간은 없다.”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스타트업 분야에서는 “창업을 하거나, 하지 말거나, 선택은 둘 중 하나이다. 중간은 없다.”라는 철학이 매우 중요하다. 어떤 창업가들을 보면 창업을 한 것도 아니고, 안 한 것도 아닌, 매우 애매한 상황에서 사업을 하는데, 이렇게 해서 잘 되는 사업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이럴 바에 그냥 창업하지 않고 인생을 더 편안하게 사는 걸 권장한다.

이렇게 쓰고 보니, 이런 중간은 없는 철학은 주식이나 창업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이 철학은 인생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가 있다. 인생에 있어서 뭘 하든, 하거나 안 하거나, 둘 중 하나이지, 애매하게 중간을 가는 건 실패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국산 소프트웨어의 강점

아마도 많은 한국의 스타트업이 만들고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미국이나 해외에 이미 존재하는 제품의 한국 버전일 것이다. 우리가 만나는 스타트업도 이런 플레이를 하는 곳들이 엄청 많다. 쿠팡은 한국의 아마존이고, 토스는 한국의 Venmo이고, 실은 많은 한국의 유니콘이 이미 미국에서 잘되고 있는 회사들의 제품을 카피해서 시작했고, 시작은 이렇게 했지만, 사업을 뾰족하게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원래 버전과는 상당히 다르게 성장한다. 어떤 차이가 나는지 조금 더 자세히 보면, 한국 시장에서는 아예 작동하지 않는 모델임이 밝혀지면서 완전히 방향을 바꾸는 경우가 있고, 한국 시장에서는 작동하지만, 원제품과는 상당히 다른 현지화(=localization) 작업이 동반되는 경우가 있다.

실은, 자세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투자한 많은 스타트업이 “한국의 xyz”라고 간략하게 설명할 수가 있는데, 껍데기를 보면 해외 제품과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현지화가 상당히 많이 됐기 때문에 “한국의 xyz”라고 하기보단 그냥 별개의 제품이라고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현지화라는 단어는 애매모호한 단어이다. 어떤 회사는 외국 소프트웨어를 그대로 카피하고, 인터페이스만 한글로 제공하는 걸 현지화한 국산 소프트웨어라고 하고, 어떤 회사는 위에서 말한 대로 별개의 제품이라고 할 정도로 한국의 시장만을 위한 제품을 만들고 이걸 현지화한 국산 소프트웨어라고 한다. 나는 외국 소프트웨어를 번역만 해도, 번역을 잘하면, 이 또한 훌륭한 현지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 어떤 제품을 보더라도 거의 동일한 기능을 제공하는 국산과 외산 제품이 있다. 요새 우리가 관심을 두고 보는 분야가 ERP와 CRM인데, “국산” , “현지화”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는 대표적인 B2B 소프트웨어 제품들이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글로벌 제품인 SAP와 Oracle과 같은 외산 소프트웨어도 한국 시장에 많이 깔려 있는데, 이 제품들을 벤치마킹한 매우 유사한 인터페이스와 기능을 제공하는 국산 ERP와 CRM 솔루션도 꽤 많다. 내가 전에 일했던 자이오넥스라는 회사에서는 국산 SCM 솔루션을 개발하고 판매하는데, 이미 이 분야에는 엄청나게 큰 글로벌 기업들이 존재하고, 이들이 한국에서 제품을 잘 판매하고 있다.

역사도 오래됐고, 회사의 규모도 훨씬 크고, 브랜딩이 더 잘 된 글로벌 기업의 제품을 도입하지 않고 국산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한국 기업 또는 소비자들은 왜 메이드인코리아 제품을 사용할까? 몇 가지 명확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가장 기본적이고, 너무 당연하지만, 일단 국산 제품은 기본 언어가 한글이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상당히 중요하다. 솔직히 소프트웨어가 영어로 되어봤자, 어려운 영어도 아니고, 그냥 기본적인 영어 단어 위주라서 웬만한 한국 분들은 다 읽을 줄 알고 이해한다. 하지만, 그래도 한글 UI보단 어렵고, 머릿속에서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작업 자체가 번거롭다. 혹시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을 영문버전으로 사용해 본 분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전부 다 쉬운 영어지만, 한글 버전보단 사용하기가 불편하고 어렵다.

UI와 UX에서도 꽤 차이가 크게 나는 경우를 나는 봤다. 위에서 말한 ERP나 CRM은 기업용 소프트웨어인데, 같은 사업을 하는 회사라도 한국 회사와 미국 회사의 사내 프로세스는 상당히 다르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그 나라의 독특한 업무 문화가 반영됐기 때문인데, 이런 미묘한 특성을 잘 살린 국산 소프트웨어가 한국 회사엔 훨씬 더 편리할 수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국산 제품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장점이 바로 고객 지원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시간대에, 같은 언어로, 언제든지 고객지원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아무리 작은 한국의 스타트업이 개발하는 제품이라도 엄청난 글로벌 제품을 이길 수 있는 강력한 무기라고 난 생각한다. 우리가 투자한 상당히 많은 한국 스타트업의 제품은 이미 이들보다 훨씬 더 잘하는 글로벌 벤치마크 제품이 존재하고, 이런 글로벌 제품들이 이미 한국에서 판매가 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투자사의 제품을 사용하는 고객들에게 가끔 물어보면, CS가 잘 된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우리 투자사의 열혈 고객이 된 경우가 많다.

한국어로 된 인터페이스, 한국 문화와 프로세스에 특화된 UI/UX, 그리고 현지화된 고객지원 서비스, 이게 바로 국산 소프트웨어의 강점이라고 생각하고, 이 분야를 계속 더 파고 들어가면 한국에서 꽤 규모가 나올 수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 Older Ent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