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by Kihong Bae:

투자의 리듬

바로 이전 포스팅에서 직전 라운드보다 낮은 기업가치에 투자받는 다운 라운드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 시점에도 우리 투자사를 비롯한 너무 많은 회사들의 다운 라운드가 진행되고 있지만, 이전 글에서 말한 대로, 그나마 다운 라운드라도 누군가 우리 회사에 투자하겠다고 하는 현상은 긍정적이기 때문에 무조건 받으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이렇게 우리 주변에서는 다운 라운드도 많고, 아예 투자를 못 받아서 망하는 회사도 많아서 자연스럽게 이런 좋지 않은 경기를 의식하는 많은 투자자들이 돈이 있음에도 투자를 꺼리고 있다. 내 주변에도 지갑은 두둑하지만, 좀처럼 열지 않고 있는 VC들이 많이 있다.

스트롱은 조금은 다른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누군가 우리에게 스트롱의 투자전략에 대해서 물어본다면, 우린 매우 일찍, 매우 꾸준히, 그리고 매우 자주 투자한다고 말한다. 즉, 불경기든 호경기든 우리가 시장에 돈을 투입하는 빈도와 속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도 지난 11년 동안 다양한 실험을 해봤고, 지금도 계속 우리에게 가장 잘 맞는 투자 방법과 전략을 찾기 위해서 이 실험은 진행 중이다. 이 분야에서 영원한 건 없고, 정답도 없지만, 초기 투자를 하면서 배운 점이 몇 가지가 있다면, 실력보단 운이 중요하고, 실력보단 타이밍이 중요한게 초기 투자이다. 운과 타이밍이 중요한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면,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매번 이길 순 없기 때문에 실력에 의지하기보단 운과 타이밍 때문에 볼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게 제일 좋은 전략이고, 우리가 지금까지 찾은 답 중 타율이 가장 높은 건 그냥 꾸준히 좋은 창업가들을 찾아서 투자하는 것이다.

불경기든 호경기든, 민주주의 국가든 공산주의 국가든, 휴가철이든 아니든, 주중이든 주말이든, 근무 시간이든 오프시간이든, 시장의 기회는 항상 존재하고, 시장의 비효율성도 항상 존재한다. 그리고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언제든지 누군가는 이런 기회를 포착해서 창업한다. 이 중 잘 안되는 회사도 많겠지만, 유니콘이 되는 회사들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런 회사들에 초기 자본을 제공했을 것이다. 스트롱이 될 수도 있지만, 다른 VC들이 될 수도 있다.

이 현상을 조금 더 깊게 보면, 경기가 좋고 시장에 돈이 넘쳐흐를 때는 규모와는 상관없이 모든 투자자들이 대규모 자본을 많은 스타트업들에 투입했고, 이에 따라서 너무 많은 회사들이 너무 빨리 기업가치가 상승하면서 유니콘들이 역대급으로 많이 만들어졌다. 이 돈지랄의 부작용은 유니콘이 되면 안 될 회사들이 유니콘이 됐다는 건데, 시장이 급랭하면서 이들의 기업가치가 폭락했고 너무 많은 투자자들이 역대급 손실을 봤다. 이런 좋지 않은 경험을 한 투자자들은 – 그리고 규모나 단계 상관없이 모든 투자자들이 이런 좋지 않은 경험을 했다 – 불경기가 오니까 대부분 지갑을 닫았고, 경기가 좋아지길 기다리는 모드로 전략을 바꿨다.

그런데, 시장이 나쁘다고 좋은 회사가 창업되지 않는 건 아니다. 좋은 창업가들은 좋은 회사를 꾸준한 리듬과 페이스로 계속 만들고 있다. 이 중 어떤 창업가들은 수십조 원의 기업을 만들 것인데 그 시점을 우린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확률이 높은 방법은 그냥 지속적이고 꾸준한 리듬과 템포로 투자하는 것이다.

불경기든, 호경기든, 자기만의 철학과 색깔을 갖고, 리듬감 있게 꾸준히 투자하다 보면, 분명히 성공하는 회사가 나올 것이다.

다운 라운드

요새 모두에게 참 어려운 시기이다. 우리가 최근에 첫 투자한 회사들은 아직 너무 작고, 돈도 없고, 제대로 된 제품도 없는 곳들이 너무 많다. 스트롱에게 초기 투자를 받은 후, 여러 가지 실험을 하면서 제품의 product market fit을 찾고, 이렇게 찾은 fit을 확장하기 위해서 또 투자받고, 좋은 사람을 채용해서 계속 성장하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지만, 이제 이런 계획들은 당분간은 실행할 수 없는 계획으로만 남게 됐다. 시장에 워낙 돈이 없기 때문에 이 정도 작은 규모에 성장이 없는 스타트업은 후속 투자를 아예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올해 우리 투자사 중 망하는 회사들이 역대급으로 많이 나올 것 같다.

마지막 라운드 밸류에이션이 수백억이 넘는 회사들은 위에서 말한 완전 초기 회사보단 제품이나 비즈니스모델이 상당히 발전한 회사들이다. 하지만, 이 스타트업들도 돈을 많이 벌거나 흑자 전환을 한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계속 제품을 제대로 만들면서 비즈니스모델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선 투자를 받아야 한다. 이 회사들은 완벽한 product market fit을 아직 찾진 못했지만, 돈과 인력이 보강되면 꽤 확실한 성장이 보이기 때문에 완전 초기 회사들보단 투자받는 게 조금은 더 수월하다. 이렇게 투자받을 때 요새 자주 보는 게 기존 밸류에이션보다 더 낮은 기업가치로 투자받는 down round이다. 우리 투자사들도 예외는 아니다. 기존 라운드 대비 50% 할인된 밸류에 투자받는 회사도 있고, 심하면 70% 할인된 밸류에 투자받는 회사도 있다.

다운 라운드는 모두에게 고통스럽다. 특히 팬데믹 기간 동안 밸류에이션 거품에 흠뻑 젖어서 비싸게 투자한 시리즈 B, C 투자자들은 몇 달 만에 본인들의 지분 가치가 반토막 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모로 불편할 것이다. 다른 임직원과 심사역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본인이 소신 있게 주장해서 투자했다면, 회사 안에서의 입지도 약해졌을 것이다. 우리같이 일찍 들어가는 투자자에겐 다운 라운드가 진행돼도 돈을 잃는 경우는 별로 없다. 예를 들면 지분 가치가 20배가 아니고 3배가 되는 상황을 경험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작게 투자하기 때문에, 지분 가치가 20배 될게 3배가 되면, 우리 또한 많이 고통스럽다.

그런데 다운 라운드의 충격과 고통을 가장 많이 받는 분들은 바로 회사의 창업가, 대표이사, 경영진, 그리고 임직원들이다. 모두 다 개고생해서 0원짜리 구멍가게를 4,000억 원짜리 기업으로 만들었는데, 기업가치가 갑자기 400억 원으로 떨어진다면, 주인 의식을 갖고 열심히 제품을 만들어서 고객들에게 팔아야 하는 회사의 임직원들에겐 상당히 충격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런 다운 라운드라도 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회사를 계속 믿고 돈을 주겠다는 신호라서 아주 고맙게, 신속하게, 그리고 신나게 투자받아야 한다. 비상장 회사의 기업가치는 어차피 종이 가치라서, 계속 생존하면서 좋은 제품과 비즈니스모델을 만들다 보면 다시 충분히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높은 밸류에이션에 들어갔던 많은 후속 투자자들이 다운 라운드로 후속 투자를 받지 못하게 하는 이야기를 요새 여기저기서 듣고 있다. 본인들이 들어갔던 기업가치보다 낮은 다운 라운드는 무조건 막으면서, 극단적으로 본인들의 지분 가치가 하락할 바엔 그냥 회사를 폐업하라고 하는 투자자도 있다고 들었다. 뭐, 투자자마다 사정이 있겠지만, 나는 굳이 이럴 필요가 있나 싶다. 어차피 투자는 장기전이라서 좋은 팀이 좋은 제품을 만들고 있다면, 그리고 계속 살아남는다면 언젠가 경기가 다시 좋아지면 기업 가치는 다시 리바운드하기 마련이다.

강도, 지속기간, 빈도

지난주 출장 중에 호텔 헬스장에서 운동하다가 벽의 이런 문구를 봤다.

“Fitness = Intensity x Duration x Frequency”

건강한 체력은 운동의 강도(=얼마나 빡세게 하냐), 운동의 지속기간(=얼마나 오래 하냐), 그리고 운동의 빈도(=얼마나 자주 하냐)의 함수라는 의미인데, 이 공식에서 중요한건 곱셈이라고 생각한다. 강도, 지속기간, 그리고 빈도를 다 더하는 게 아니라, 이 세 가지를 곱해야지 우리가 원하는 건강한 몸과 체력이 만들어진다는 의미이다.

곱셈의 의미가 참 재미있다. 이 세 가지 변수의 범위가 1 ~ 10이라고 가정해보자. 즉, 제일 설렁설렁 운동하면 1 , 빡세게 하면 10 / 제일 짧게 운동하면 1, 오래 하면 10 / 띄엄띄엄하면 1, 매일 하면 10이라고 가정해보자. 제일 빡세게, 아주 오래, 매일 운동하면(=10 x 10 x 10) 1,000이라는 가장 높은 수치를 달성할 수 있다. 반대로, 제일 설렁설렁하게, 짧게, 띄엄띄엄 운동하면(=1 x 1 x 1) 1이라는 가장 낮은 수치가 나온다. 그런데 아주 빡세게, 아주 오래 운동을 해도, 자주 하지 않고 띄엄띄엄하면 체력은 100밖에 안 되고, 아주 빡세게, 매일 운동을 해도 운동 시간이 너무 짧아도 체력은 100이 된다. 그런데 세 가지 모두 균형을 맞춰서 적당히, 그리고 꾸준히 하면 (5 x 5 x 5), 체력은 125가 되는데, 이 125라는 수치는 두 가지를 미친 듯이 했을 때의 결과인 100보다 좋다.

여러 가지 수치를 대입해 봐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곱셈의 함수이기 때문에, 운동의 강도, 시간, 빈도 중 하나라도 다른 변수 대비 너무 낮으면 체력의 수치가 낮게 나온다. 두말할 필요가 없지만, 강도, 시간, 빈도 모두 최상위로 유지하는 게 최고의 체력을 만들고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다. 하지만, 매일 세 시간씩, 세 시간 내내 빡세게 운동할 순 없다. 직업 운동선수도 항상 이런 컨디션을 유지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면 아주 오랫동안 좋은 체력을 꾸준히 유지하려면 일주일에 3번 정도 운동하고, 적당한 강도로 매번 30분 이상 운동을 하는 게 더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하면 위에서 말 한 125 정도의 체력 수치를 유지할 수 있다.

일하는 것도 똑같고, 실은 인생도 다르지 않다. 모든 걸 균형 있게 하되, 꾸준히,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하는 게 건강하고,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 수 있는 인생의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공공의 이익, 개인의 이익

소비자 동향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설문과 보고서를 맛깔나게 잘 만드는 The New Consumer에서 2023년 상반기를 정리하는 보고서를 얼마 전에 출시했다. ‘Consumer Trends 2023 상반기 정리’라는 보고서인데 정확한 제목은 “AI, Ozempic, and the Economy” 이다. 회원 가입하면 무료로 받을 수 있는 보고서는 100장이 넘지만, 쉽게 읽히는 내용이라서 15분이면 다 볼 수 있다.

여러 가지 재미있는 내용이 많지만, 여기서 이 보고서를 요약하진 않겠다. 그런데 몇 가지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는데, 이 중 젊은 세대에 대한 이런 설문 결과가 있었다.

“틱톡이 중국 제품이어서 싫다고 하는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틱톡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틱톡을 활발하게 사용하는 MZ 세대는 이게 중국 제품이든 미국 제품이든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미국의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틱톡을 미국에서 금지하고 추방하려는 움직임들이 많은데, 정작 틱톡을 활발하게 사용해서 스스로를 표현하고 친구들과 소통하고, 더 나아가서는 틱톡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틱톡 사용자들은 틱톡이 중국제품이어도 본인들의 생활과 생계에 도움이 되면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즉, 개인의 이익을 공공의 이익보다 우선시하는 젊은 세대의 성향을 잘 보여주는 설문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얼마 전에 스타벅스에서 들었던 모르는 사람들의 대화 내용인데, 통일에 대한 이야기였고, 위의 틱톡 관련 설문을 보고 이 대화가 갑자기 생각났다. 같은 팀에서 일하는 회사원들인 것 같았고, 직급이나 나이 차는 많이 나지만 개인적으론 아주 친한 분들 같았다. 나이 든 분은 인구절벽으로 인해서 한국의 미래가 위태롭기 때문에 통일해야지만 인구 문제가 해결되고, 본인의 자식 세대가 잘 살기 위해선 통일이 꼭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다른 젊은 분은 완전히 반대 이야기를 했다. 통일의 과정은 복잡하고, 힘들고, 북한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남한이 경제적으로 파탄되면 본인의 삶이 너무 암울해질 게 뻔한데 통일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미래 세대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가장 중요한 건 본인인데, 남을 위해서 왜 내가 희생해야 하는지 절대로 이해할 수 없고, 인구절벽 문제는 국가와 공공의 문제인 건 알겠지만, 더 중요한 건 개인의 이익이라는 이야기였다.

공공의 이익이 먼저냐, 개인의 이익이 먼저냐, 이건 실은 아주 오래된 논쟁이다. 이 문제에 대해선 그 누구도 맞고 틀렸다고 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하고, 위에서 이야기한 틱톡이나 통일에 대해서는 그냥 모두 다 개인적인 생각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한테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을 누군가 묻는다면, 그리고 굳이 딱 한 표만 있다면, 나는 개인의 이익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긴 한다.

위에서 이야기했던 회사원분들은 어쩌면 큰 싸움으로 번질 수 있는 내용을 아주 차분하고 어른스럽게 이야기했지만, 우리 모두 한 번쯤은 이 공공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에 대해서 생각하고 갈등한 적이 있을 것 같다. 정답은 없고, 그냥 개인의 생각과 취향의 문제일 듯 싶다.

세계 최고의 드라마

나는 스타트업 행사에도 잘 안 가고, 개인적인 성향 때문인지 사람들이 너무 많은 곳은 되도록 피한다. 그래도 스타트업 씬에서 10년 넘게 일해서 그런지, 아는 분들이 은근히 많아서 이분들이 많이 모인 행사에 가면 너무 말을 많이 해서 정신도 없고 에너지가 고갈되면서 몸이 아플 정도로 힘든 적이 몇 번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참석하는 정기 행사가 분기마다 두 개가 있는데 바로 우리가 주최하는 스트롱 행사이다. 하나는 우리에게 소중한 돈을 주는 LP 분들과 하는 분기 행사이고, 또 하나는 이 소중한 돈을 우리가 투입하는 스트롱 창업가들과 하는 분기 행사이다. 두 행사 모두 우리 사무실이 있는 구글스타트업캠퍼스에서 진행하고, 두 행사 모두 비공개 행사이다.

스트롱 포트폴리오 모임에는 창업가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게스트 한 분을 항상 모시는데, 좋은 엑싯을 한 창업가, 유니콘을 만든 창업가, 크게 실패한 창업가 또는 우리보다 투자를 잘하는 좋은 VC들이 그동안 스트롱의 포트폴리오 분기 행사에 참여했었는데, 원래 일정은 40분이지만, 대부분 1시간을 훌쩍 넘기고, 어떤 유니콘 창업가분을 모셨을 땐, 그 이야기가 어찌나 재미있고 영감을 주던지 거의 2시간 넘게 지속됐다. 행사는 항상 우리 투자사 플레이팅에서 케이터링한 저녁으로 마무리한다.

게스트 세션은 fireside chat 스타일로 나와 아주 편안하게 1대 1 대화를 하는 형식인데, 내가 이 세션을 할 때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일단, 공개적으로 인터뷰나 행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분들은 초대하지 않는다. 큰 사업을 만들었지만, 공개 석상에는 잘 등장하지 않는 분들을 주로 초대한다. 그래야지 이야기가 참신하고 재미있다. 그리고 사전 질문을 공유하지 않고, 대본을 미리 만들지 않는다. 그냥 당일 즉흥적으로 대화를 한다. 이렇게 해야지만, 게스트의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데, 이런 이야기가 다른 후배, 선배, 또는 동료 창업가들에게 정말 도움이 많이 되고 엄청난 영감을 줄 수 있다. 대본 없는 대화라고 아무 생각 없이 무대에 오르진 않는다. 게스트분에 대해서는 나는 공부를 꽤 많이 하고, 내가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정제되지 않은 질문을 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분기마다 이 행사를 하면서 느끼는 건, 창업가들의 인생과 사업 이야기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재미있는 드라마라는 것이다. 드라마도 이런 각본 없는 드라마가 없을 정도로, 한 창업가가 수년, 또는 길게는 수십 년 동안 세상과 외롭게 싸운 이야기에는 희로애락과 기승전결 그 모든 것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얼마나 재미있는지 나는 이걸 ‘창업기’라고 한다.

이런 창업기는 같은 걸 여러 번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우리 투자사 당근마켓의 창업기를 나는 이미 수십번을 들었는데, 매 번 들을 때마다 새롭고, 그때마다 너무 재미있다. 어떤 창업기는 코미디이고, 어떤 건 빌어먹을 비극이다. 어떤 창업기는 한 편의 공포물과 같고, 심하면 블록버스터급의 재난영화이다. 어떤 창업기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는 마무리가 썩 좋지 않고, 좋지 않은 상태로 이야기는 그냥 계속 진행 중이다.

하지만, 장르를 불문하고 모든 창업기는 각각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이 있다. 모두 다 사연이 있는 자기만의 전쟁을 하고 있지만,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세계 최고의 드라마를 계속 만들고 있는 창업가들에게 오늘도 존경을 표시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