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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의 차별화

O2O 비즈니스는 정말 어렵다. 뭐, 어렵지 않은 비즈니스는 없겠지만, O2O는 오프라인 비즈니스의 운영과 물류의 어려움, 그리고 온라인 비즈니스의 제품과 시장의 어려움을 모두 갖고 있어서 더욱더 쉽지 않은 거 같다. 우리도 이 분야에 투자했고, 계속 하고 있지만, 알면 알수록 이 비즈니스는 더 빨리 성장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걸 느끼고 있다.

얼마 전에 미국의 대표적인 온디맨드 세탁 서비스 Washio가 안타깝게 문을 닫았다. 집으로 찾아와서 세탁물을 수거하고 24시간 안으로 가져다주는 이 서비스는 5.99 달러의 배송비에 파운드 당 2.15 달러의 세탁 비용을 받았는데, 돈을 벌 수가 없는 비용구조였고, 아마도 이 때문에 망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3년 전에 창업됐고, 약 200억 원의 펀딩을 유치한 워시오가 문을 닫은 건 O2O 비즈니스들에는 큰 타격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진입장벽이 없고 마진이 적은 비즈니스가 얼마나 어려운지 다시 한 번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이제 성장을 시작한 온디맨드 세탁서비스들이 있는데, 한국은 미국같이 현금출혈이 심하지는 않지만, 워시오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전에도 ‘마이너스매출총이익’이라는 글에서 잠깐 언급을 했는데, 대부분의 O2O 서비스들은 빠른 고객 획득을 통한 시장 석권을 위해서 주문이 발생할 때마다 돈을 버는 구조가 아니라 돈을 잃는 구조의 비즈니스 전략을 택한다. 그리고 엄청난 펀딩을 통해서 성장을 시도하고, 성공적으로 시장을 독점하면 그 이후에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을 보고 사업을 전개한다. 우버는 이러한 시장 독점을 향해서 잘 가고 있지만, 많은 비즈니스가 워시오 같이 망하기도 한다.

이런 O2O 서비스들의 또 다른 고민거리는 전통 플레이어들과의 차별점이다. 정확한 개념의 ‘온디맨드’는 아니지만, 온디맨드 세탁이나 가사도우미 서비스는 한국에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스트롱도 온디맨드 가사도우미 서비스 미소에 투자해서 나도 자주 사용하고 있다. 솔직히 편리하긴 편리하다. 네이버 검색, 가사도우미 중개업체 전화, 전화로 날짜랑 시간 예약, 그리고 무통장입금하는 과정이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은근히 스트레스받는 일이다. 누구랑 전화 하는 거 자체가 불안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앱을 통해서 몇 번의 클릭으로 해결하는 게 얼마나 편리한가?”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모든 사람이 나와 동의하지는 않는다. 우리 와이프만 해도 이런 앱들이 뭐가 O2O냐고 물어본다. 그냥 옛날부터 있던 걸 앱으로 주문하는 게 뭐가 그렇게 대단한지 모르겠다고 한다 – 어차피 O2O 앱이나 인력소개서를 통해서 오는 아줌마들 모두 친절하고 일 잘한다고 한다. 오히려 앱 설치하고 가입하는 게 더 귀찮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워시오같은 온디맨드 세탁 앱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분들이 내 주변에 많다. 미국이야 다르지만, 한국의 경우 동네 세탁소 아저씨들이 20년 전부터 아파트 돌아다니면서 세탁물 수거해서 깨끗하게 세탁하고, 그다음 날 배송비 없이 다시 집으로 가져다줬다. 특히 오랫동안 한 동네에서 세탁하시던 분들은 동, 호수를 다 외우고 세탁물만 봐도 어떤 집인지 아신다. 물론 동네 세탁소는 자정까지 세탁물을 수거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늦게 세탁물을 맡겨야 하는 분들도 별로 없는 거 같다. 나는 솔직히 세탁특공대 같은 앱이 엄청 편해서 좋아하는데, 내 주변 분들은 앱으로 세탁 주문하는 거 외에는 동네 세탁소랑 뭐가 다르냐고 물어본다.

그래서 이미 존재하던 오프라인 사업에 온라인을 적용하는 O2O 비즈니스라면 “옛날 방식과 뭐가 그렇게 다른데?”라는 의구심을 확실하게 잠재울 수 있는 ‘경험의 차별화’가 필요하다. 오프라인 부분의 차별화는 힘들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한 지역에서 오프라인 서비스를 제공하던 분들보다 (이 분야의 경험이 없고, 인터넷 비즈니스에 더 익숙한 분들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어렵다. 그러므로 온라인 부분을 정말 잘 만들어야 한다. 단순히 앱으로 서비스를 신청하거나 주문하는 걸 넘어서 정말로 부드럽고 마찰이 없는 완벽하고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면서 경쟁사들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시점에 지속적인 투자를 유치해야 하니 정말로 쉽지 않다.

이미 와 있는 미래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골고루 퍼져있지 않을 뿐이다.” -윌리엄 깁슨

공상과학 소설가 William Gibson의 명언이다. 안철수 씨가 대선 출마 선언문에도 인용했고, 잭도시도 인용을 해서 더욱더 유명해졌다. 요새 나는 이 말을 자주 떠올린다. 특히나 미래지향적인 기술이나 비즈니스를 검토하면서 “이거 분명히 될 텐데, 과연 언제 현실화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질 때마다 이 말을 떠올리면서 냉정하지만, 어느 정도의 주관을 갖고 곰곰이 생각해본다(참고로, “이게 과연 될까?”라는 의문을 갖는 비즈니스들도 많지만 이런 비즈니스는 또 다른 부류이다).

우리가 굳게 믿는 비트코인도 이 카테고리에 속한다. 아예 안 될 거라는 투자자들도 많지만 나는 비트코인이나 블록체인은 대량 상용화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 시기에 대해서는 확실치 않다. 가상현실 또한 마찬가지이다. 대부분 전문가나 투자자들은 앞으로 VR의 시대가 활짝 열릴 거라고 하지만, 선뜻 투자는 하지 않고 있다. 5년 후가 될지, 50년 후가 될지 그 시기에 대해서는 각각 의견이 다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챗봇에(bot) 대해서 공부를 좀 해봤는데, 이 또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페이스북이 챗봇에 대해서 발표했을 당시만 해도 앞으로 봇이 사람을 대체하고, 이게 미래이기 때문에, 모든 개발자가 이 분야로 뛰어들 거 같았지만, 아직 봇의 현실은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거 같다. 봇과 인간이 정상적인 대화를 할 수 있을 거라는 많은 스타트업의 약속이 일상생활 일부가 되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이 분야 많은 사람이 참고하는 가트너 그룹의 Technology Curve에 의하면 모든 새로운 기술은 비슷한 진화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새로운 기술이 시장에 나오고, 믿을만한 전문가들이나 기업들이 이 기술을 밀어주고 홍보를 하면 거품이 끼면서 엄청난 hype가 생긴다. 하지만 이런 기술들이 초기에 한 약속들을 지키지 못하고, 대중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곧이어 실망의 과정이 시작된다. 대량 투자가 중단되고, 신기술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던 많은 프로젝트가 종료되고, 개발을 진행하던 회사들이 문을 닫는 이 시기에는 “이거 사기 아냐”라는 의심까지도 나온다. 물론, 사기라면 거기서 끝나지만 그렇지 않고 정말로 뭔가 있는 기술이라면 바닥을 찍은 바로 이 시점부터 본격적인 개발과 가속이 붙으면서 대중의 동의를 받을 수 있는 상용화 과정이 시작된다. 위에서 언급한 기술들이 모두 이 단계에 와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미래의 기술들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조건들에 대해서도 각각 의견들이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대기업들의 장기적인 투자, 좋은 인력들로 구성된 개발자 네트워크의 활성화, 다양한 실험을 진행하기 위한 개방된 코드 베이스의 발전, 기술의 발전을 가능케 하는 하드웨어와 클라우드 인프라의 발전 등이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killer app의 등장이다 – 마치 포케몬고가 지난 수년 동안 되니 안 되니 말이 많던 AR을 대중 속으로 끌고 들어왔던 거와 같이. 어떻게 보면 우리 같은 투자자들은 굉장히 운이 좋고 특권을 누리고 있는 소수집단이라고 생각을 하는 게, 이런 미래의 기술들을 남들보다 훨씬 더 먼저 접하기 때문이다. 큰 힘과 자본이 있는 투자자들은 미래를 현실로 만들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

1997년 뉴욕 타임스지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컴퓨터가 바둑에서 인간을 이기려면 100년이 걸릴 것이다. 어쩌면 이보다 더 오래 걸릴 것이다.” 당시만 해도 우리는 인공지능은 먼 미래의 이야기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19년 후인 2016년도에 컴퓨터는 세계 최고의 바둑기사들을 이겼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미래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아직 소수만 미래에 살고 있다.

우리 회사와 남의 회사

그 어떤 것도 공식화할 수 없는 게 ‘투자’라는 게임인 거 같다.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창업가를 선택하는 기준도 항상 다르고, 지금 검토하는 게 잘 될 만한 비즈니스인지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이라는 것도 없다. 나도 자주 말하지만, 이 일을 하면 할수록 어떤 창업가들이 좋은 창업가인지, 그리고 어떤 비즈니스가 성공할 비즈니스인지에 대한 판단이 더욱 힘들어진다. 이런 거시적인 부분에서의 판단도 힘들고, 실제 미시적인 디테일로 들어가면 공식화할 수 없는 부분들이 너무 많은데, 그 중 하나가 회사의 밸류에이션이다. 창업한 지 1년도 안 된, 직장 경험이 없는 젊은 팀이 만든 매출이 없는 회사는 과연 얼마짜리 회사일까?

회사가 어느 정도 굴러가서 현금흐름이 명확하고, 미래의 현금흐름이 예측 가능해지면 DCF(=Discounted Cash Flow)와 같은 기업금융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방법으로 이 회사의 가치를 산정할 수 있다. 내가 만난 스타트업 중 이런 방법을 사용해서 회사의 밸류에이션을 정하는 회사들이 더러 있다. 물론, 내가 봤을때는 말이 안 되는 수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밸류에이션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앞으로 5년 동안 너무 극적으로 성장하는 그림을 그리는 이런 창업가들한테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권장하거나, 어떻게 이런 성장을 할 수 있는지 나를 조금 더 설득해달라고 부탁한다. 며칠 뒤에 다시 만나보거나 이메일로 연락해보면 어떤 창업가들은 조금은 더 수긍이 가능한 밸류에이션을 말한다. 하지만, 어떤 창업가들은 기존 밸류에이션을 끝까지 고수하면서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들을 제시한다.

이럴 때 가장 많이 듣는 건, “우리가 속한 분야에서 지금 가장 잘하고 있는 회사가 창업 후 초기 5년 동안 매년 200% 성장했습니다.” , “저희랑 비슷한 회사의 창업 2년 후의 밸류에이션이 이 정도였는데, 우리는 후발주자이니 더 잘할 수 있습니다.” 등과 같은 말인데, 항상 남의 회사와 비교를 해서 우리의 밸류에이션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실은 이런 방법을 CCA(=Comparable Company Analysis)라고 한다. 가치를 매기기 힘든 스타트업의 경우 비슷한 산업군의 기업 또는 유사한 비즈니스모델을 가진 기업을 벤치마킹해서 밸류에이션을 정하는 방법인데 나는 이 방법으로 스타트업의 밸류에이션을 정하는 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창업가도 전에 만난 기억이 난다. 새로운 개념의 소셜미디어를 만든다고 주장하는 분인데 – 실은 전혀 새로운 개념은 아니지만, 여기서는 넘어가기로 한다 – 과거 창업 경험도 없고, 제대로 된 팀도 없는 상태였다. 제품도 개발 중이라서 뭔가를 보고 판단하기가 상당히 모호한 단계였는데 이 분이 스스로 부여한 밸류에이션은 80억이었다. 왜 80억이냐고 물어보니까, “우리 비즈니스와 페이스북이 비슷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페이스북이 창업 초창기에 받았던 밸류에이션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랑 마크 저커버그랑 능력 면에서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뭐, 좀 기가 차고 웃음도 났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분이라서 이야기는 좀 하고 미팅을 끝냈다. 참고로 이 비즈니스에 우리는 투자하지 않았고, 그 이후에 관련 소식이 안 들리는 거 보면 사업을 제대로 시작도 못 한 거 같다.

페이스북은 페이스북이고, 우리 회사는 우리 회사이다. 즉, 남이 받은 밸류에이션은 그 회사의 밸류에이션이고 우리 회사의 밸류에이션은 우리 회사의 밸류에이션이다. 아무리 비슷한 분야, 비슷한 단계, 비슷한 비즈니스 같지만, 조금만 더 깊게 들어가 보면 비슷한 점 보다는 다른 점들이 훨씬 더 많다. 그러므로 남의 밸류에이션을 보면서 우리 회사의 밸류에이션을 산정하는 건 시간 낭비이자 부질없는 짓이다.

끝까지 이런 방식을 고수하는 전자상거래 하시는 분과 대화하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대표님, 요새 이커머스 시장이 전반적으로 좋지가 않습니다. 저희도 투자를 좀 했는데, 이커머스가 생각보다 어렵다는 걸 많은 투자자들이 깨닫고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요새 전반적으로 이 분야 회사들의 밸류에이션이 하향조정되는 추세이거든요.”
그런데, 비슷한 분야의 회사들의 대한 밸류에이션을 주야장천 주장하시던 분이 한다는 말이 “아, 우리 회사는 조금 달라요. 이커머스 방식도 다르고, 비즈니스 모델도 다르기 때문에 그런 프레임을 적용하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였다.

남의 회사랑 우리 회사는 다르다.

본질에 대해서

골프를 안 치는 분들도 리우 올림픽에서 박인비 선수가 달성한 커리어 골든슬램에(=4개의 메이저 대회를 ‘그랜드슬램’이라 하는데, 이 4개 대회를 모두 우승하고, 올림픽까지 우승하면 골든슬램 달성이라고 한다) 대해서는 이제는 귀가 아플 정도로 많이 들었을 것이다. 골프를 좀 치는 사람들이라면 이게 얼마나 달성하기 힘든 기록인지는 잘 알 것이다. 엄청난 역사를 새로 쓴 박인비 선수, 박세리 감독 그리고 한국 여자 골퍼들한테 진심으로 존경심을 보낸다.

나는 개인적으로 박인비 선수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박인비 선수의 스윙은 ‘폼’을 꽤 중요하게 생각하는 골프라는 게임에서 봤을 때, 교과서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정석 폼은 아니다. 백스윙도 연결성이 부족하고, 체중 이동도 어딘가 조금 어색해 보이고, 눈으로 봤을 때 뭔가 시원해지지 않아서 그런지 내가 즐겨 보는 선수는 아니다(운동 선수 치고는 체중이 과한 것도 한몫을 한다). 실은 많은 골퍼들이 박인비 선수의 스윙을 보고 다들 한마디씩은 하면서 뭔가 좀 이상하다고 지적하는 걸 나도 여러 번 들었다.

하지만, 지적질은 거기서 멈춘다. 왜냐하면, 골프는 작은 공을 막대기로 쳐서 남들보다 더 적은 타수로 구멍에 집어넣는 게임이고, 폼이 좋든 나쁘든 더 낮은 점수로 18홀을 끝내면 장땡이기 때문이다. 이 맥락에서 봤을 때 박인비 선수만큼 이 게임을 잘하는 사람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박인비 선수가 리디아 고를 제치고 아주 가뿐하게 금메달 따는 걸 보고 앞으로 더는 이 선수의 스윙에 대한 지적질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비즈니스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들을 볼 수 있다. 경험의 유무를 떠나서, 우리 모두에게는 겉만 보면 절대로 안 될 거 같은 비즈니스들의 고정관념들이 나름 머릿속에 박혀있다. 논리적이지 못한 사장, 학벌이 없는 창업가, 왠지 이상한 비즈니스 모델 등….하지만, 중요한 건 이런 게 아니다. 비즈니스의 본질은 이런 껍데기가 아니라 이 회사가 얼마나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고객을 확보하고, 이 고객들이 기꺼이 돈을 쓰게 만드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박인비 선수와는 완전히 반대의 선수들도 있다. 외모는 화려하고 스윙도 FM인 골퍼들도 많은데, 막상 가장 중요한 수치인 점수가 별로다. 아무리 폼이 좋고 스윙이 좋아도 골프라는 게임에서는 점수가 높으면 우승하지 못한다. 이런 비즈니스들도 많다. 엄청난 경력과 학벌의 창업팀이 수십억 원의 펀딩을 받은 사례들이 우리 주변에도 꽤 있다. TV나 지하철역에 비싼 광고를 집행하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비즈니스의 성공에 대해서 확신하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비즈니스의 본질 자체가 부실하기 짝이 없는 경우가 많다.

내가 전에 블로깅 했던 샤크 탱크 일화도 똑같다. 잘 나가는 투자자들이 “저게 과연 될까?” , “내 경험에 의하면 저런 아줌마들은 사업 성공 방정식에 들어갈 자리가 없는데” , “말하는거나, 생긴 거나, 사고하는 게 스타트업을 잘 할 것 같지는 않은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모두 다 한마디씩 지적을 했다. 나도 이 방송을 보면서 이들과 똑같은 생각을 했으니까. 하지만, 비즈니스는 결국 고객들을 확보하고 매출을 만들면 이길 수 있는 간단한 게임이고, 이 게임에서 이 아줌마 CEO는 월등하게 잘하고 있었다.

샤도우 복싱에 대한 과거 글도 비슷한 맥락이다. 화려한 샤도우 복싱이랑 링에서의 실전은 완전히 다르다. 복싱의 본질은 상대방을 제대로 쳐서 쓰러뜨리는 거다. 외모와 자세가 아무리 둔해 보이고, 투박해 보여도 펀치를 잘 날려서 쓰러뜨리고 이기면 이 게임에서 이기는 것이다.

우리는 껍데기를 꿰뚫어서 그 안에 들어있는 본질을 파악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본질 외의 나머지 모든 것들은 잡음이다.

섹시한 비즈니스

B2B이번 여름 정말 덥고 습하지만, 이 무더위 속에서도 좋은 회사들은 계속 창업되고 있다. 나는 아주 다양한 스타트업들을 계속 만나고 있는데 B2B 회사들의 무덤인 한국에서도 최근 들어 괜찮은 기업용 솔루션을 만들고 있거나, 만들려고 하는 스타트업들이 출현하고 있다. 우리도 B2B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하지는 않았지만, 항상 관심과 애정을 갖고 보는 분야이다. 총 4개의 B2B 스타트업에 투자했는데, 의류도매를 위한 플랫폼 Brandboom, MCN 용 분석툴과 대시보드 ChannelMeter, 실내위치 플랫폼 로플랫, 그리고 Sarbanes Oxley 프로그램 애플리케이션인 SoxHub 이다. 이 중 로플랫을 제외한 나머지 회사들은 미국의 스타트업들이다.

미국보다는 한국에서 자주 경험하는 현상인데,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B2B 소프트웨어 회사들에 투자하는걸 꺼린다. 그 이유야 투자자마다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다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1/ 섹시하지 않다 – 왠지 B2B 딱지가 붙으면 비즈니스가 굉장히 unsexy 해 보이고, 재미가 없는 거 같다. 빠르게 변화하는 일반 고객 시장에(=B2C) 비해서 느리고 변화가 거의 없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제품을 만들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이런 이미지가 생긴다.
2/ Scale의 문제 – 잘 만든 소셜앱이나 사진앱들은 폭발적인 속도로 바이럴하게 번져서 기본 수 백만 명의 유저를 단시간 안에 확보할 수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의 네트워크 효과가 제대로 적용될 수 있는 분야가 B2C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B2B 제품들은 기업들이 사용하기 때문에 고객 수에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네트워크 효과나 바이럴 효과보다는 기업 내부의 다양한 요소에 도입영향을 받기 때문에 단 시간내에 엄청난 성장이 상대적으로 힘들다. 슬랙 같은 B2B 제품의 급성장은 예외라고 보는 게 맞다.
3/ 긴 영업 주기 – B2C 제품의 경우, 내 친구가 재미있는 앱을 사용하면 나도 앱 스토어에 가서 받아서 설치하면 된다. 안타깝게도 B2B 제품은 이렇게 할 수가 없다. 개인적이 아니라 기업의 업무 효율을 위해서 도입하는 제품이기 때문에 기업의 승인과 결제가 있어야지만 제품이 설치된다. 기업의 승인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B2B 제품들의 특성상, 중요한 기업 프로세스를 새로운 방식으로 간소화하는 서비스이기 때문에 여러 부서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영업사원들은 최종 의사 결정을 하는 사장부터 실무를 담당하는 말단 직원들 모두를 대상으로 영업해야 한다. 나도 2001년 부터 2004년까지 제조업의 기간 업무인 생산계획을 효율화하는 공급망관리(SCM = Supply Chain Management) 솔루션을 한국의 중소제조업체 대상으로 영업한 경험이 있는데, 최소 3개월에서 길게는 1년까지도 걸리는 작업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B2B 제품들은 나름 확실한 매력이 있다. 팔기가 어렵고, 계약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영업을 위한 인력을 유지해야하는 부담이 따르지만, 일단 한 번 팔아 놓으면 꽤 오랫동안 예측 가능한 안정적인 매출이 발생한다. 위에서 말 한대로 B2B 제품은 기업의 많은 부서에 영향을 미치는 프로세스를 자동화하고 간소화하기 때문에 한 번 도입하면 웬만하면 걷어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한번 설치된 제품은 지속적인 사용료 뿐만 아니라 정기적인 유지보수 매출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이렇게 심플하고 좋은 비즈니스도 찾아보기 힘들다.

전에 우리가 투자한 B2B 스타트업 Brandboom에 대해서 몇 번 블로깅 한 적이 있다. 이 회사가 연 매출 100만 달러에 도달하는 데에는 7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의류업계에 새로운 기업용 솔루션을 판매하는 건 힘들었다. 얼마 전 LA에서 Brandboom을 방문했을 때 이 회사는 연 매출 200만 달러를 눈 앞에 두고 있었다. 2년 만에 매출이 100% 성장했고, 앞으로도 지속해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모바일 앱도 아니고, 화려한 B2C 앱도 아니지만, 제대로 돈을 벌고 있는 섹시한 비즈니스이다.

섹시한 비즈니스는 겉만 화려하고, 출시한 지 한 달 만에 수천만 명의 사용자들이 달라붙지만, 구체적인 비즈니스모델이 없거나 단순히 광고에만 의지하는, 그런 비즈니스가 아니다. 우리 제품의 본 기능들을 사용하기 위해서 사용자들이 기꺼이 돈을 지급하는 비즈니스가 바로 섹시한 비즈니스이다.

<이미지 출처 = http://b2bcon.asia/why-b2b-startups-are-suddenly-so-sex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