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도 없는데 수익은 어떻게?

얼마 전에 TechCrunch에서 배양육 산업 관련 기사를 읽었다. 우리도 국내 최초의 배양육 스타트업 셀미트에 투자했기 때문에, 관심을 갖고 기사를 정독했다. 기사의 제목은 “Even after $1.6B in VC money, the lab-grown meat industry is facing ‘massive’ issues” 였고, 내용은 암울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너도나도 대체 단백질과 배양육 시장에 투자하기 바쁠 땐, 거의 묻지마 투자 수준으로 많은 돈이 이 시장에 투입됐지만, 연구개발에 생각보다 많은 돈과 시간이 필요하고, 이후에 관계 정부 부서의 승인 받는 것도 어렵다는 걸 이제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있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현실은, 연구개발을 하고 승인을 받아도, 결국 돈을 벌기 위해선 배양육 제품을 팔아야 하는데, 시장에서 수용할 수 있는 가격대에 대량 생산하기 위해서는 상상 이상의 돈이 설비와 공장에 투입돼야 하므로 투자자들이 이젠 이 분야를 등한시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실은, 순수 소프트웨어 사업이 아닌, 사람의 개입이 필요한 operation이 필수인 사업도 비슷한 문제에 항상 직면해 있긴 하다. 멀리 볼 필요도 없고 가까운 스트롱 포트폴리오 네트워크에만 보더라도 이런 회사들이 수두룩하다. 대표적인 예가 모바일 세탁소 세탁특공대인데, 앱으로 세탁을 맡길 수 있지만, 결국엔 회사에서 세탁물을 수거해서 본인들이 직접 운영하는 세탁공장으로 운반하고, 여기서 세탁한 후에 다시 고객들에게 배송해야 한다. 분명 소프트웨어 비즈니스이지만, 사업의 절반 이상이 전통적인 물류와 공장 운영이다. 굉장히 돈이 많이 필요하고, 상상 이상의 돈이 설비와 공장에 투입되어야 한다는 점은 위에서 언급한 배양육 회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세탁이라는 업은 첫 매출을 만들기 위한 R&D는 필요 없다. 사업을 개선해서 더 많은 매출을 만들기 위한 R&D는 있지만, 이게 없어도 세탁업은 시작할 수 있고, 매출을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만든 매출과 다른 의미 있는 수치를 기반으로 계속 적당한 밸류에이션에 투자 받으면서 사업을 키울 수 있다.

하지만, 배양육 사업은 오랜 기간 동안 아주 무거운 R&D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제품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돈을 버는 건 시작도 못 한다. 사업을 시작하지 못하고, 돈을 아예 못 벌면, 투자받는 게 쉽지 않다. 경기가 아주 좋을 땐, 기술력을 평가하고 미래의 수익성을 기반으로 좋은 조건에 큰 투자를 하는 투자자들이 꽤 있다. 실은 우리 투자사 셀미트를 비롯한 이 분야의 많은 회사들이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식으로 투자를 잘 받았다. 하지만, 요새 같은 불경기에 투자자들이 회사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매출이다. 투자자들은 매출을 선호하고, 더 나아가서 수익을 선호한다. 이 상황에서 팔 제품 자체가 없는 스타트업은 어떻게 수익을 만들고, 어떻게 투자를 받을 수 있을까?

아마도 이런 상황에 놓인 창업가들이 꽤 있을 것 같고, 최근에 이런 고민을 하는 분과 잠깐 이야기를 했는데, 이분이 나한테 열변을 토했다. “아니, 아직 제품도 없는데 어떻게 매출을 만드나요? 어떻게 우리 같은 회사의 밸류에이션을 매출을 기반으로 산정합니까? 그러면 우린 밸류에이션이 0인 회사인데요.”

이분은 시드 투자를 받아서 한 2년 동안 열심히 R&D를 해고, 연구 결과도 좋고 방향도 좋아서 실제 제품을 만들고 매출을 발생시키기 위해 추가 투자를 받아야 하는데, 만나는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매출이 없어서 거절하거나, 관심 있는 투자자는 매출이 없어서 (본인이 생각하기엔) 터무니없이 낮은 기업 가치를 제시하는 좋지 않은 상황에 부닥쳐있다.

솔직히 나도 이분에게 특별히 해 줄 말이 없었다. 경기가 좋고 시장에 돈이 넘쳐흐를 땐, 제품도 없고 매출이 없어도 기술 그 자체나 시장의 가능성에 투자하는 VC들이 많았지만, 이젠 대부분의 VC들이 매출이 발생하는 회사를 선호하고, 어떤 VC는 매출로도 부족하고 손익분기를 해서 이익이 발생하는 회사에만 투자하고 있기 때문에 위에서 말한 창업가가 투자받는 건 정말 힘들기 때문이다. 만약에 이런 상황에 처한 창업가가 있다면, 그냥 최대한 많은 투자자를 만나서 제품과 매출이 없는 회사에도 투자하는 곳을 찾는 수밖에 없다. 만약에 운 좋게 이런 곳을 찾더라도, 회사의 밸류에이션과 투자 조건을 결정하는 건 전적으로 투자자의 특권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말을 쉽게 해석해 보면, 투자받는 것도 mission impossible이고, 운 좋게 우리 회사에 관심 갖는 투자자를 찾더라도 좋지 않은 조건에 투자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입장 바꿔서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 싶다. 즉, 이런 회사들을 자주 만나는 VC의 입장에서,,,실은 지금 이런 상황에 부닥친 회사에 투자하면, 정말 매력적인 조건에 투자할 수 있다. 이 회사에 살아 남아서 정말로 좋은 기술로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면,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매출이 발생하기 시작하면 확실한 해자를 만들면서 성장하기 때문에 멈출 수 없을 정도로 매출이 잘 나올 것이다. 특히나, 이런 기술을 잘 이해하고, 이 시장을 잘 이해하고 있는 대기업의 전략적 투자 부서가 이런 플레이를 스마트하게 하면, 그 대기업의 미래 먹거리를 생각보다 쉽게 확보할 수도 있다.

노력의 부족으로 실패하지 말자

역대 최악의 성적이 예상됐지만, 반대로 한국이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둔 파리 올림픽이 지난주에 잘 마무리됐다. 나는 대부분의 올림픽 종목을 별로 안 좋아하지만, 국가 대표들이 열심히 경쟁하는 경기라서 그런지 매일 저녁 한국이 참여하는 대부분의 종목을 와이프랑 정말 재미있게 봤던 즐거운 2주였다. 한국은 금 13개, 총 32개의 메달을 따면서 8위로 끝났는데 너무 잘했고, 모두 너무 자랑스럽다. 안세영 선수의 발언과 더불어 그동안 변화를 수용하지 못한 여러 협회에 대한 불미스러운 일들도 있었지만, 나는 이런 과정이 체육협회와 선수들이 모두 다 한 단계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하는데,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도 다양한 이변이 많았고, 메달이 당연시됐던 선수들이 형편없는 성적으로 예선 탈락했고, 전혀 기대되지 않았던 선수들이 선전해서 메달을 따기도 했다. 우리나라 태권도 김유진 선수가 그중 하나였던 것 같은데, 세계 랭킹 12위가 세계랭킹 1위와 2위를 모두 이기고 금메달을 획득한 건, 태권도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이변 중 대이변이었다.

이 선수 외에도 랭킹이 한참 아래였거나, 거의 무명의 선수들이 메달을 획득한 사례가 다른 나라에도 몇 개 있었는데, 이 중 몇 명의 경기 후 인터뷰를 보면, 다들 하는 말이 거의 비슷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 선수들의 외부 랭킹만 보고 승패를 예측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스스로가 얼마나 열심히 연습하고 훈련했는지 알기 때문에, 충분히 우승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고, 이런 땀과 노력은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남들은 이변이라고 하는 결과가 본인에겐 전혀 놀랍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어떤 선수는 이런 말을 했는데 이 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내 연습량을 내가 잘 알고 있고, 훈련의 양에 있어서는 그 어떤 선수도 나를 능가할 수 없다는 걸 내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메달이 전혀 신기하지도, 놀랍지도 않다. 당연히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질 수도 있다. 하지만, 패배의 원인이 노력의 부족이면 절대로 안 된다. 노력의 부족 때문이 아닌 다른 이유로 진다면, 아쉽겠지만 절대로 후회는 안 한다.”

실은 내가 우리 창업가분들과 자주 하는 말과 너무 비슷해서 나에겐 더욱더 인상 깊었던 말이었던 것 같다. 우린 모두가 항상 최선을 다해야한다는 말을 밥 먹듯이 하지만, 또 한 편으론 내가 봤을 때 최선을 다하지 않는 분들도 종종 본다. 물론, 이건 굉장히 주관적인 입장이고 최선의 개념은 모두에게 다르다. 어쨌든, 정말로 사업과 본인의 미션에 헌신(=commitment)을 보이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업도 올림픽 경기와 같이, 아무리 열심히 하고 죽기 살기로 노력해도 잘 안될 수도 있다. 아니, 성공의 확률이 낮기 때문에 잘 안되는 게 오히려 어쩌면 정상적이다. 그래서 사업은 실패할 수도 있고, 실패한 사업가들이 욕을 먹는 건 가혹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실패의 원인이 노력의 부족이라면,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포트폴리오 회사들이 더는 버티기 힘들어서 폐업을 결정하면, 이런 대화를 많이 한다. “최선을 다했나요? 대표님만큼 치열하고 열심히 노력한 사업가가 주위에 없을 정도로 열심히 했나요? 그랬다면 잘했습니다. 실패의 원인이 노력의 부족이 아니었다면 편안하게 사업 접고 좀 쉬세요.”

실패의 원인이 노력의 부족이 되지 않게 모두 다 치열하게 헌신하는 하루, 일주, 그리고 일 년이 되길.

“인공” 지능

우리는 요새도 한 달에 한두 개의 신규 투자를 꾸준히 하고 있다. 스트롱은 특별히 한 분야에만 관심을 두고 투자하는 전략으로 움직이진 않는다. 우린 제품이나 시장에 투자하기보단, 창업가들에게 투자하기 때문에, 그냥 뭘 하든 상관없이 좋은 창업가라면, 가급적 다양한 분야에 투자한다. 이들이 만드는 제품의 시장 규모는 수백조 원인 경우도 있고, 수백억 원인 경우도 있다. 또한, 매우 흔한 분야인 경우도 있고, 굉장히 독특하고 재미있는 분야인 경우도 있다. 우린 이런 건 특별히 신경 안 쓰려고 노력하고, 창업가가 어떤 사람이고, 이 사람이 뭘 하든 아주 큰 사업을 만들 수 있는 능력과 운이 있는지를 나름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투자를 결정한다.

우리 같은 전략으로 투자하는 VC들도 있지만, 이와는 반대로 특정 분야에만 투자하는 전문적인 투자자들도 있고, 어떤 분들은 그때 유행에 따라서 투자할 분야를 정하고, 이를 위한 펀드를 만들어서 투자한다. 요새 거품론이 계속 대두되고 있지만, AI는 가장 핫한 분야이고 이건 그동안 반짝하고 사라졌던 단순 유행은 아닌 게 확실한 것 같다. 물론, 너무 과열되거나, 반대로 너무 식을 순 있겠지만.

이런 이유로 AI 사업을 시작하는 창업가들이 폭발적으로 많아지고 있고, 최근에 우리가 본 회사 자료에서 AI라는 말이 안 쓰이는 자료는 거의 못 본 것 같고, 미팅에서 AI라는 말을 언급하지 않는 창업가들은 아예 없었던 것 같다. 이런 트렌드에 부응하기 위해 AI에만 투자하는 펀드가 만들어지고 있고, 몇몇 VC는 AI가 아닌 분야에는 거의 투자를 안 하는 곳들도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우리도 AI 관련 회사들을 엄청 많이 만나고 있다. 전에 내가 ‘AI 창업가 현황’이라는 글에서 몇 자 적었듯이, 대부분 이 글의 세 가지 카테고리에 포함되는 회사들인데 아무래도 한국이 항상 가장 잘하는 분야가 애플리케이션 레이어라서 그런지, 이 부분의 창업가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 같다. 우린 조금 더 이 시장을 잘 이해하고 싶은 생각에 관련 회사들을 많이 만나고 공부도 하고 있지만, 실제로 AI 분야의 회사에는 많이 투자하진 않았다.

내 생각도 계속 바뀌고 있고, 실은 스트롱 내부에서도 AI에 대한 생각과 의견이 아주 다른데, 개인적으론 AI가 사람을 완벽하게 대체해서 사람을 쓸모없게 만들 확률은 0%라는 쪽으로 점점 더 수렴하고 있다. AI는 말 그대로 ‘인공’지능이고, ‘인공’이라는 딱지를 절대로 떼지 못할 것 같다. 이 생각을 조금 더 설명해 보면, 어쩌면 인공지능이 인간지능의 97%는 따라 할 수 있겠지만, 사람의 위대한 창의성과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은 남은 마지막 3% 영역에 속하고, 이 3%가 인간지능을 인공지능과 99.99% 다르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이 마지막 3%는 기계가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내가 하드코어 인공지능 과학자들과 이런 내 의견을 공유한 적이 있었는데, 이 중 몇 명은 동의했지만, 대부분 내가 아직 AI 기술을 잘 몰라서 이런 말을 한다고 하면서 정말로 앞으로 영화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의 세상이 올 것이라고 공격을 받은 적이 있다. We will see about that.

우리가 AI에 투자하는 이유는 기계가 별로 창의적이지 못하고 반복적인 일을 인간 대신 해주면, 인간이 더욱더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하루 24시간인데, 인공지능이 많은 반복적인 일을 처리해 주면, 이 한정된 24시간을 인간이 극대화해서 더욱더 창의적이고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요새 미국에서 많은 VC들이 관심을 두는 수명 연장 분야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인공지능이 더 발달하고,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면 인간지능은 더 위대해질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 사업의 기본은 영어

한국에서도 제대로 작동하고 돈을 버는 제품을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매일 느끼는 사람의 입장에서 한국 스타트업이 미국 시장에 바로 진출해서 4년 만에 매출을 1,000억 원 이상 하겠다는 회사의 자료를 보면 어쩔 수 없이 희망적이기보단 회의적인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래도 사업의 방향성이나 팀이 괜찮으면, 이런 팀들은 일단 만나본 후에 내부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을 거친다.

얼마 전에 이런 창업팀의 자료를 보다가 세 번째 페이지에서 그냥 PDF를 닫고 만나보지도 않고 pass 하기로 결정했다. 북미 시장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팀이었고, 자료 자체도 모두 영문으로 만들었는데, 자료의 영어 수준이 형편없었다. 어떤 분들은 이런 나의 태도를 이해 못 하고, 그 정도 문법이나 철자는 틀릴 수도 있는데, 뭘 그렇게 까칠하게 구는지 구박하기도 한다. 자료에서 영어 좀 틀렸다고 사업을 못 하는 것도 아닌데 내가 너무 오바한다고 뭐라고 하는 분들도 있다.

솔직히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남의 영문 자료에서 이런 실수를 잘 발견하는 편이다. 그리고 이런 건 그냥 넘어가도 창업팀과 그 사업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전혀 지장이 없기 때문에 굳이 피치 미팅의 흐름을 중간에 끊으면서 지적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영어에서 문법이나 철자의 실수가 눈에 들어올 때마다 굳이 흐름을 끊고 지적질을 한다. 왜냐하면, 사업을 이해하는 데 지장은 없지만, 미국에서 사업을 하겠다고 하는 이 팀의 자세와 태도에는 이런 사소한 실수가 매우 큰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어권에서 사업을 하고 싶다면, 가장 기본 중 기본은 영어라는 그 언어 자체이다. 영어를 하는 사람들이 돈을 내고 사용하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면, 그 누가 보더라도 이 제품은 비영어권 창업가들이 만들었다는 티가 전혀 나면 안 된다. 그런데 내가 만난 미국 시장을 공략하고 싶어 하는 많은 한인 창업가들이 만든 회사의 자료나 제품을 보면, 엉터리 영어가 너무 많다. 이 자료를 미국 VC들이 봤을 때 과연 어떤 생각을 할지, 이 창업가들은 한 번이라도 생각을 해봤을까. 엉성한 영어로 만들어진 이 제품에 미국인들이 과연 돈을 낼지 한 번이라도 생각을 해봤을까. 이런 생각을 해봤는데도 영어가 이 수준이면 팀의 역량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런 생각을 한 번도 안 해 봤다면 이 팀은 정말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실은, 요샌 AI가 발달해서 번역의 수준은 좋아졌고, 특히나 문법적으로 틀린 영어는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영어라는 게 단순히 단어만을 번역해서 완성되는 게 아니라 이 단어들이 어떻게 문장을 만들고, 이 문장들이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는지 잘 파악해야지만 진정한 영어가 완성되는데, 아직 AI는 이걸 완벽하게 하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단순하게 기계로 번역한 문장을 보면 단어들은 잘 번역됐지만, 미국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일상적인 언어라고 하기엔 굉장히 어색한 게 많다.

이 현상을 거꾸로 한번 생각해 보자. 유럽인들이 한국 시장을 타겟으로 하는 서비스를 만들었는데, “이 응용 제품을 받아주세요.”라는 한국어를 보면 누구나 다 이건 이상한 번역이라는 걸 알 것이다. 각각의 단어는 잘 번역됐지만, 한국에서 실제로 이런 말은 사용하지 않는다. “이 앱을 설치해 주세요”가 훨씬 더 컨텍스트에 맞는 우리말이다. 전에 한 회사의 한글 자료를 봤는데 어떤 현상이 바이럴하게 퍼진다는 문장을 단어 그대로 번역해서 “바이러스같이 퍼진다”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물론, 의미상으론 번역이 틀린 건 아니지만, 한국에서도 그냥 ‘바이럴’이라는 영어를 그대로 사용하는데, 이걸 모르고 번역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 문장을 보면, 이 자료는 한국인이 안 만들었다는 걸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그래서 미국 시장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고 싶다면, 일단 영어부터 제대로 하자.

평판 만들기

작년에도 12개월이 참 빨리 지나갔는데, 올해는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 같다. 우린 올해도 창업가들 많이 만나고 있고, 투자도 열심히 하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새로운 펀드도 만들고 있는데, 요새 워낙 경기가 안 좋아서 남의 돈을 받는 게 정말 어렵다는 걸 매번 느끼고 있다. 특히, 미국 투자자들은 미국의 주식 시장이 워낙 좋고, 미국 VC들의 성적도 좋기 때문에, 그냥 미국에 투자하면 돈을 어느 정도 벌 수 있어서, 굳이 우리같이 한국 시장에 투자하는 펀드에 투자할 이유가 매우 강하진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우린 돈을 모아야 하기 때문에, 나는 정기적으로 해외 투자자들을 만나서 열심히 영업하고 있는데, 그동안 스트롱의 성적이 그렇게 나쁘지 않음에도 투자자들을 시원하게 설득하는 게 매우 어렵다. 그래서 한 2~3주 외국 나갔다 다시 한국 들어올 때 빈손이면(=돈을 한 푼도 못 받음) 힘이 많이 빠지긴 한다.

하지만, 최근에 내가 외국 투자자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당장 돈을 주진 않지만, 아주 기분 좋은 피드백을 주는 분들이 있었다. 처음 만나는 어떤 투자자가 악수하면서 “우리 이미 Strong에 대해서 들어봤어. Your reputation precedes you.”라는 말을 하는데, 먼 땅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으니까, 기분이 묘하게 좋긴 했다. 실은 이 말은 부정적으로 사용될 수도 있고, 긍정적으로 사용될 수도 있는데, 내 앞에서 이 말을 직접 했으니까 아마도 긍정적인 의미였을 거로 생각한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스트롱의 평판은 익히 들었기 때문에 너희 믿을 만 한 거 알고 있어.” 정도의 의미일 것 같다.

아마도 이 말은 우리가 투자를 엄청나게 잘해서라기 보단, 10년 넘게 크게 욕먹거나 나쁜 짓하지 않고 꾸준히 투자하고 있어서 들었던 것 같다. 평판이라는 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고, 오랜 시간에 걸쳐서 조금씩 만들어지는 것이고, 이 또한 내가 자주 강조하는 복리의 힘이 제대로 작용하는, 정량화하기 힘들지만, 우리 같은 VC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인생/직장에서의 KPI가 아닐까 싶다.

투자하다 보면 성적표가 계속 왔다 갔다 한다. 누구나 다 아는 유니콘 회사에 투자해서 돈을 벌 수도 있고, 누구나 다 아는 대박 망하는 회사에 투자해서 돈을 잃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부침을 반복하면서도 자기만의 철학으로 투자를 꾸준히 해야지만, 투자자로서의 평판을 만들 수 있다. 그냥 계속 한 우물을 꾸준히 파다 보면, 그 분야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할 수 있고, 오랫동안 사업을 하면서 살아남으면 항상 좋은 기회가 생기는 걸 나는 몇 번 경험했다. 그리고 이렇게 오랫동안 좋은 사업을 하면 평판이라는 게 조금씩 만들어진다.

이건 우리 같은 투자자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투자하는 창업가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 주변에는 유행만 쫓아가면서 3년 만에 돈 좀 벌어서 엑싯하고 싶어 하는 창업가들도 너무나 많고, 이 중 똑똑하고 사업 잘하는 분들도 많다. 하지만, 스트롱이 투자하고 싶어 하는 창업가들은 최소 10년은 바라보면서 꾸준히 사업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는 유행에 너무 민감해서 한 우물을 못 파는 창업가들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물론, 우리가 투자한 창업가들도 이런 분들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쉽게 사업을 하고 싶어 하고, 유행을 좇고, 피보팅을 끊임없이 한다. 물론, 이렇게 해서 잘 되는 경우도 가끔 봤지만, 대부분 그냥 맥없이 망한다. 그리고 이런 분들은 평판이란 것 자체가 안 만들어진다.

한국에서도 이런 말을 요새 들었는데, 미국에서도 이제 창업가들이 일만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본인을 홍보하고, 소셜미디어에서 하루 종일 떠들어야 하고, 여기저기 강연도 다니고, 다른 회사에 개인 투자도 하고, 딴짓도 많이 해야지 사업도 잘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뭐, 누구나 다 자기만의 생각이 있지만, 나는 이 말에 별로 동의할 수 없다. 내가 아는 좋은 사업을 만든 모든 창업가는 절대로 딴짓하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고, 사업가로서의 평판은 본인의 사업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제품과 고객에게 집착하고, 좋은 사람들을 회사로 데려오는데 시간을 쓰는 대신, 행사만 다니고 자기 홍보만 하면 초반에는 바이럴을 만들고, 어쩌면 펀딩은 크게 받을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10년 이상 가는 사업을 만드는 창업가는 없었던 것 같다. 창업가나 VC나 펀딩을 크게 받거나 큰 펀드를 만들면 단기적으론 유명해지겠지만, 장기적인 평판을 만드는 건 좋은 사업과 좋은 투자이고, 이건 인내심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아무리 복싱 연습을 열심히 해도, 실제 링 위로 올라가는 건 정말 어렵다. 하지만, 링 위에 올라가는 것도 어렵지만, 더 어려운 건 링 위에서 12라운드 동안 계속 버티면서 싸우는 거다. 평판은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