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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인가 아닌가?

bubble-779310또다시 떠오르는 벤처 거품론. 미국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한국 스타트업들의 밸류에이션도 많이 높아졌다는 걸 느끼고 있다. 돈 한 푼 못 버는 회사들의 높아져만 가는 밸류에이션과 이를 더욱 부추기는 VC 돈이 합쳐지면 나 같은 투자자들도 이해할 수가 없는 밸류에이션들이 나온다. 과연 거품(bubble)인가? 이 거품이 터지면 2000년도와 같은 위기가 올까?

솔직히 난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거품은 터져야지만 그게 거품이었다는걸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거품은 ‘블랙스완’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다. 블랙스완에 대해서 잠깐 짚고 넘어가면,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교수는 저서 ‘Black Swan’ 에서 ‘검은 백조’는 다음 3가지의 특성이 있다고 했다:
1/예측할 수가 없다
2/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진다
3/후에 곰곰이 생각하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었다고 분석된다

솔직히 현재의 tech 생태계가 거품인지, 거품이라면 언제 터질지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가 없다. 만약 거품이 터지면 그 파급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2000년도 인터넷 거품과 2008년도 금융위기 거품을 생각해보면 파급효과는 대략 짐작은 갈 것이다. 또한 – 그리고 이게 블랙스완의 가장 재미있는 특성인 거 같다 – 거품이 터지고 난 후에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게 너무나 당연하다고 느껴질 것이다. 많은 학자와 전문가들이 거품이 터지기 전까지의 일련 사건들과 현상들을 총정리해서 이미 거품은 예견되었고 일어날게 뻔한 거였는데 모두 너무 무심했고, 방심했고, 탐욕스러웠다고 우리 같은 tech 관련자들을 맹비난할 게 뻔하다.

거품이 블랙스완이라고 가정을 하면, 우리는 지금 스스로 틀린 질문을 하고 있다. 일어나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거품인가 아닌가?”라는 질문은 매우 어리석은 질문이다. 올바른 질문은 바로 “거품이 터지면 어떻게 대처할까?”일 것이다. 탈레브 교수도 블랙스완은 예측 자체가 불가능하므로 일어났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럼 거품이 터지면 어떻게 될까? 우리 회사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직 정상궤도에 오르지 못한 벤처기업들이 거품이 터진 후에도 살아남을 방법은 두 가지라고 본다.
가장 바람직한 거는 거품이 터지기 전에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거다. 여기서 말하는 자립은 자체적인 매출을 만드는 것이며, 비용보다 더 많은 매출을 만들어서 수익을 내는 걸 말한다. 거품이 터지면 유동성이 사라질 것이며, 현재 시장에 널려있는 벤처투자금이 순식간에 메마를 것이다. VC 돈에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수익성을 만들고 이를 계속 개선해야 한다. 더 중요한 건 외주나 정부 프로젝트 같은 거 말고 제품의 코어 서비스로 매출을 만들어야 한다. 그 외의 모든 건 거품이 터지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또 다른 방법은 지출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다. 수익을 만들지 못하면 매일 돈을 까먹을 텐데 까먹는 돈을 최소화 해야 한다. 불필요한 인력은 해고하고, 쓸데없는 회식은 없애라. 사무실도 가능하면 작고 저렴한 곳으로 옮겨라. 업계에서 흔히 말하는 burn rate를 낮춰서 runway를 최대한 연장해야 한다.

스타트업계에 겨울이 곧 올까? 거품이 곧 터질까? 잘 모르겠다. 터져야지만 거품이다. 하지만 돈 없고, 비즈니스 모델 없고, 매출 없는 스타트업들은 최소한 준비는 하고 있어야 한다.

<이미지 출처 = http://www.dailykos.com/story/2009/03/19/710273/-Bubble-Economics-and-the-Cycles-of-Boom-and-Bust>

VC와 이야기할때 알면 도움되는 몇가지

창업가라면 VC들과의 만남은 항상 긴장되고 설렌다. 대부분 어렵게 잡았을 미팅일 확률이 크고, 바쁜 VC들과 친구 사귈게 아니라 지금 당장 또는 앞으로 언젠가는 투자를 받기 위한 목적으로 만나는거면 잘 계획하고 준비해야 한다. VC와 미팅할 때, 특히 첫 미팅 시 알고 가면 조금은 도움되는 몇가지 tip 이다.

1/기본적인 숙제 하기 – 내가 개인적으로 제일 싫어하는건데, 미팅하기 전에 가장 기본적인 숙제도 하지 않는 창업가들이다. 모든 VC들이 투자를 하지만 이들이 좋아하는 분야, 투자금액, 단계는 다르다. 동일한 자료를 가지고 모든 VC들에게 똑같은 피칭을 하는건 매우 어리석다. 구글이나 네이버에서 5분만 검색을 해보면 특정 VC의 성향을 알 수 있고, 웹사이트에서 포트폴리오 회사들을 자세히 보면 어떤 종류의 회사들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같은 제품을 보더라도 기술을 매우 중요시하는 VC 한테 서비스와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서만 강조를 한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리 없다. 최소한의 숙제는 하자.

2/발표는 간소하게 – VC와의 첫번째 미팅은 대부분 짧다. 이 짧고 귀중한 시간 내내 창업자가 일방적으로 발표만 하고 미팅이 끝난다면 이건 미팅이 아니라 발표가 된다. 미팅 시간의 절반만 발표를 하고, 나머지 시간은 Q&A에 활용하는게 좋다. 그래야지만 투자자는 창업팀과 비즈니스에 대해서 더 잘 파악할 수 있고, 창업팀도 그 VC에 대해서 조금 더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자료는 10장 – 15장으로 무조건 간소하고 visual한 수치 위주로 만드는걸 권장한다.

3/물어보는 질문에 대답하기 – 많은 창업가들이 물어보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지 못한다. 못 하는건지, 안 하는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투자자가 “작년 매출이 얼마였나요?” 라고 물으면 작년 매출이 얼마였는지 알고 싶은 것이다. 매출이 없으면 “없습니다” , 매출이 있으면 “얼마입니다” 라고 대답하면 끝이다. 물어보는 질문에 대답을 정확히 못 하면 창업가가 바보라고 생각할 것이고, 물어보는 질문에 대답을 정확히 안 하면 뭔가 구리다고 생각할 것이다.

4/과장하지 말기 – 절대로 과장하지 말자.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해라. 한번 과장하기 시작하면 계속 과장해야하고, 이는 아주 비참한 거짓말로 끝날 수가 있다.

5/몰라도 된다 – 많은 창업가들이 “잘 모르겠습니다” 라는 말을 투자자에게 하면 자신을 자신감없고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착각한다. 실제로는 이 반대이다. 아직 시작도 제대로 하지 않은 사업에 대해서 모든걸 알 수가 없다. 당연히 생각해보지 않고 모르는게 많을 수 밖에 없다. 투자자들도 창업가들에게 물어보는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기대하는건 아니다. 모르겠다고 하는건 절대로 약점이 아니다. 그건 그냥 사실 그대로 이야기 하는 것이며, 투자자들은 창업가들이 모르는걸 안다고 하는거 보다는 그냥 있는 그대로 잘 모르겠다고 하는걸 선호한다(다른 분들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내 주변의 투자자들은 대부분 이렇다).

6/조금 길게 봐라 – 정말로 대단한 창업가 또는 제품이 아니라면 한 번 만나고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길게는 수개월에 걸쳐서 여러번 만날 것이며, 이래도 투자가 성사되는 확률은 낮다. 그렇기 때문에 첫번째 미팅에서 너무 돈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는게 좋다. 오히려 투자 조건이나 돈 관련된 이야기는 투자자가 먼저 물어보면 꺼내지 먼저 이 주제를 꺼내지 않는게 좋다. 첫번째 미팅을 끝으로 보지 말고, 미팅을 한 번 더 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면 편하다. 첫번째 미팅에서 투자자의 관심을 유발해서 두번째 미팅에 대한 약속을 만들고, 두번째 미팅에서는 세번째 미팅에 대한 약속을 만드는걸 반복하다보면 최종 미팅까지 갈 것이고 잘 되면 이 후에 투자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7/투자자들도 질문을 받고 싶어한다 – 많은 창업가들이 VC와 미팅하면 발표하고 질문에 대해서 답하고 미팅을 끝낸다. 그런데 투자란 투자자와 창업가와의 결혼과도 같기 때문에 양쪽이 서로에 대해서 잘 알고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 어렵게 잡은 미팅이다. 최대한 이 미팅을 활용해야 한다. 창업자라면 이 투자자가 어떤 사람이고 나와 궁합이 맞는지 판단을 해야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질문을 많이 해야 한다. 나도 전에 창업팀과 미팅을 했는데, 나만 질문을 하고 미팅이 끝난적이 있다. 이들이 간 후에 나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아니, 이 사람들은 나에 대해서는 전혀 궁금하지 않나?”

사용자만 많으면 돈을 벌 수 있을까?

Photo Aug 09, 8 27 27 AM다른 지역은 잘 모르겠지만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스타벅스가 얼마전부터 무선 충전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Powermat 이라는 회사의 제품을 사용하는건데 나도 스타벅스에 조금 오래 있으면 항상 사용한다. 근데 커피가게에서 굳이 무선 충전까지 제공할 필요가 있을까? 이미 유선 충전할 수 있는 전기 콘센트도 있는데 말이다.

업계 분에게 물어보니 스타벅스에서 커피만 사서 가지말고 매장에서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게 하고, 최대한 편하게 그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한다. 그동안 스타벅스에서 많은 데이터를 축적하고 분석했겠지만, 결론은 일단 스타벅스 매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수록 커피를 비롯한 더욱 더 많은 음료수와 음식을 구매하기 때문에 고객들의 매장 방문 횟수 뿐만 아니라 체류시간을 늘리는건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커피가 당장 필요하지 않고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스타벅스 매장에서 할 수 있는 여러가지 거리를 제공하면 일단은 매장으로 들어와서 시간을 보낼 것이며, 시간을 보내면 자연스럽게 구매율이 증가할거라는 이론 때문이다. 편리한 무료 무선 충전도 이러한 견인 역할을 할 수 있을거 같다.

내가 아는 많은 회사들이 이와 비슷한 전략을 갖고 있다. 정확한 비즈니스모델은 아직 없지만 일단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어서 사용자 수를 늘리고, 이들을 서비스에 계속 lock 시키고 체류시간을 늘릴 수 있다면 언젠가는 이 많은 사용자들에게 뭔가를 팔아서 돈을 벌 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가장 쉽게 팔 수 있는건 광고일 것이다.

솔직히 나는 이런 모델을 별로 안 좋아한다. 창업 첫날부터 회사가 돈을 벌 수는 없지만 투자자 돈 까먹으면서 몸집만 불리고 너무 오랫동안 돈을 벌 생각이 없는 비즈니스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거와 돈을 많이 못 버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거랑은 다르다. 나는 개인적으로 1억 명의 유저가 있는 무료 서비스보다는 100명의 유저가 있는 유료 서비스를 선호한다.

그런데 스타벅스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쩌면, “일단은 사용자들을 엄청 끌어모으고 그 다음에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라고 하는 창업가들이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살짝 했다. 다른 분들은 이런 류의 비즈니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20년

katusa오늘로부터 정확히 20년 전, 1995년 9월 18일에 나는 카투사 복무를 위해서 논산훈련소에 입대했다. 그동안 몇 몇 동기들과 부대 사람들과는 계속 연락을 했었지만 얼마전에 카톡을 통해서 많은 동기들과 다시 연결되었다. 그리고 지금 조용한 새벽에 거실에 혼자 앉아서 입대한지 벌써 20년 됐다는 생각을 하니까 여러가지 생각이 머리와 가슴을 스쳐간다.

‘카투사’ 라고 하면 “그게 무슨 군대냐” 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전반적으로는 한국군보다 – 엄밀히 말하면 카투사도 한국군이다 – 카투사 생활이 조금 편한건 사실이지만, 한국군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편한 보직이 있는가 하면 카투사도 최전방에서 엄청 힘들고 고생하는 보직도 있다. 솔직히 말해서 내 군생활은 카투사 중에서도 육체적으로는 많이 편했다. 용산 미8군 본부중대 의전실에서 근무했는데(통합섹션이라는 그룹에 속함) 주 업무는 한국을 방문하는 군과 민간 VIP들을 의전하는 거였다. 하지만 나는 내가 담당했던 업무에 대해서는 나름 자부심을 갖고 있다. 총을 들고 북한과 마주보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것만이 군 생활이 아니고 애국은 아니다. 내가 근무할때 한국을 방문했던 해외 VIP들 중 기억나는 사람들은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현 대통령 후보, 조 바이덴 미국 부통령, 콜린 파웰 장군과 같은 정치인들부터 브루스 윌리스와(Planet Hollywood라는 테마식당 홍보 차 방문) 달라스 카우보이스 치어리더들(미군 위문 공연) 같은 연예인들이 있었다. 나는 이들을 최대한 professional 하게 모셨고, 필요할때는 주말에 서울 관광도 시켜주면서 비공식적인 민간 외교활동을 조금이나마 했다는 사실에 개인적으로는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20년이 지난 오늘, 미군부대에서의 좋은 일들은 추억이 되었고 나쁜 일들은 경험이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한테는 카투사 생활 2년 2개월이 시간낭비였다기 보다는 발전을 위한 좋은 플랫폼이 되었던거 같다. 아직도 자주 연락하고 가끔씩 보는 좋은 동기들과 부대 사람들을 만났고, 한국에서 고등학교/대학교를 다니면서 약간 녹슬었던 영어에 다시 기름칠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또한, 미군의 시스템을 보면서 미국이라는 나라의 대단함과 왜 절대강국인지를 조금이나마 배웠고 – 반면에 쓰레기 중 이런 개쓰레기 같은 아메리칸들도 있다는것도 배웠다 – 이는 내가 미국 유학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요새 리더쉽이 다시 화두가 되고 있는데 나같은 이등병한테도 너무나 자상하고 진지하게 대해주셨던 당시 주한미군사령관 Gary Luck 대장님은 지금까지 내가 본 리더 중 최고의 리더쉽을 보여주셨다.

한국 출장가서 삼각지에서 이태원쪽으로 가다보면 용산기지가 보이는데 그때 생활이 많이 생각나고 부대 안으로 다시 들어가서 사무실도 찾아가고 막사도 다시 가보고 싶다. 97년 제대할 때만 해도 이태원에는 지하철도 없었고, 이렇게 좋은 식당과 문화가 있는 거리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리고 배고플때 가끔 나가서 낙지소면 먹던 경리단길이 이렇게 멋진 길이 될 줄….

왜 가끔 살다보면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괜히 옛 일이 생각나고, 그때 사람들이 생각나고…..아마도 오늘이 그런 날인거 같다. 디게 그립네…어떤 사람들은 같은 서울에 살아도 평생 다시 못 보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거 자체가 좋은 추억인거 같다. 단결!


<이미지 출처 = 한미경제협의회>

[리블로그] 서명을 작대기로 바꿔야 하나?

2주 한국 출장 후 이제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다. 인천공항에서 3시간 정도를 보내면서 면세점 2군데, 던킨도너츠와 잠바쥬스에서 물건을 구매했다. 신용카드를 5번 긁었고, 서명을 4번 했는데 이 중 4번 다 내 full 서명을 하지 못 했다. 고객서명을 하라고 해서 진지하고 열심히 서명하는데 카운터 직원이 중간에 끊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한 번은 카운터 직원이 아주 친절하게 내 서명을 대신 해줬다. 이번에는 동그라미가 아니라, 작대기 하나로.

너무나 대조적이다. 얼마전에 예스24.com 에서 책 2권 구매를 시도했는데 고객의 안전과 금융 보안을 위한 불필요한 각종 플러그인들과 누더기같은 프로세스 때문에 포기했는데, 상점에서 물리적으로 신용카드로 구매하고 서명함에 있어서는 사람들의 태도와 프로세스가 이렇게 허술한게 이해가 잘 안간다.

관련해서 이미 과거에 글을 쓴 적이 있다. 나는 물건을 구매하고 신용카드 서명을 하기전에 항상 “제 서명이 좀 길거든요. 다 할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라고 말을 했는데 이젠 귀찮고 입이 아파서 포기할 시점이 온 거 같다. 이제 한국에서만 사용할 서명을 하나 새로 만들어야 할거 같고, 내 주위의 수많은 사람들과 똑같이 작대기 하나로 바꿔야할거 같다.

[과거글: 동그라미 서명]

최근 3년간 한국에 여러 번 출장 다니면서 의아하기도 하고 짜증도 났던 신용카드 서명 관련된 이야기다. 과거에는 실제 신용카드 전표에 펜으로 서명을 했지만 이제는 모두 기계로 바뀌면서 스타일러스 펜으로 기기의 화면에 서명을 한다. 그런데 미국과 약간 다름점이 있다면 미국의 경우 서명을 한 후에 누르는 ‘확인’ 버튼이 서명을 하는 기기에 있어서 신용카드 소비자가 누르게 되어 있지만 한국의 경우 서명하는 기기에 ‘확인’ 버튼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일부러 봤는데, 내가 갔던 식당이나 가게는 거의 이랬다). 대신 이 ‘확인’은 카운터에 있는 분이 알아서 누르게 되어 있다.

난 서명이 좀 길고 복잡해서 그냥 대충 동그라미나 줄 한두게 긎는 사람들보다는 서명하는데 훨씬 더 오래 걸린다. 그런데 서명을 끝내지도 않았는데 카운터에서 그냥 ‘확인’을 눌러버려서 반쪽짜리 서명으로 신용카드가 결제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솔직히 이건 엄밀히 말하면 불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신용카드 주인이 서명을 하지 않았는데 – 카드사용을 승인하지 않은거랑 동일 – 가게에서 승인을 해버리는거랑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막말로 내가 나중에 이 가게에 와서 이거 내 서명이랑 다르고, 내가 서명한게 아니라고 따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몇몇 가게 주인들한테는 이렇게 따져봤는데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는 커녕 다들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면서 “손님 서명이 너무 길어요 ㅎ”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분명히 신용카드 뒷면을 보면 카드주인이 서명하는 란이 있다. 그리고 이 밑에 보면 “이 카드는 상기란에 서명된 회원만이 사용할 수 있으며, 타인에게 양도, 대여할 수 없습니다.”라고 적혀있다. 미국은 신용카드로 물건을 사면 카드 뒷면의 서명과 실제 서명을 비교해보는 경우도 종종 있고, 신분증도 보여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한국의 경우 이런 적은 한번도 없었다.

문화 차이인가? 뭐, 그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신용카드를 도둑맞았다고 생각해보자. 도둑놈이 내 신용카드를 막 긁고 다니면서 내 서명이 아닌 다른 서명을 하는데 그 누구도 이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이건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금융사기와 신용카드 정보유출 관련 사고 소식이 계속 들려오는 요새는.

더 재미있는 건, 어떤 커피샾에서 계산하면서 내가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카운터 알바생이 나 대신 그냥 다음과 같이 지가 서명하고 내 신용카드 승인을 해준 경우가 있었다. 뭐라 하니까 “원래 다 그렇게 해요”라는 성의없는 답변만 돌아왔고 그 알바생은 그날 나한테 험한 말 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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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건 원래 엄밀히 말하면 불법이 아닌가? 내가 너무 까칠한건가? 이런 생각을 아무도 해보지 않은건지 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