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

AI 구현하기

artificial-intelligence-event-listing-pic-copy누구나 다 비즈니스에 인공지능(AI)을 포함하면서 거품이 생긴 건 맞지만, 그렇다고 AI가 반짝하다 사라질 유행은 아니다. AI는 앞으로 더 크게 성장할 것이고, 수많은 기업의 투자, VC 투자, 좋은 개발자 네트워크의 확산으로 인해 눈부신 기술적 발전이 있을 거라는데 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아직도 AI라고 하면, 머릿속에 그리는 그림이 모두 다르다. 나도 작년에 가장 많이 들었고, 내가 본 회사소개서 내용 중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건 AI와 ML인데, 너무 많이 접해서인지 나만의 편견이 생겼고, 상대방이 설명하기도 전에 내 머릿속에서는 “이 회사는 이렇게 AI와 ML을 적용하겠구나”라는 그림이 그려지고 있는걸 느낄 수 있다. 실은 나도 기술적으로, 그리고 비즈니스적으로 인공지능과 기계학습에 대한 정의를 명확하게 못 내리고 있다는 의미이다.

특히 기업의 실무 담당자는 더욱더 혼란스럽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위에서는 2018년은 무조건 AI를 모든 사업부서에 적용하라는 회장님의 명령이 떨어졌는데, 이걸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행해야 할지에 대한 아이디어는 그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인공지능은 더이상 공상과학에 나오는 유행어가 아니라,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에 적용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지만, 가장 효과적으로 AI를 적용하려면 이 기술을 실용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고급 인력을 채용할 수 있는 돈이 있고, 이 고급 인력들이 합류해서 기량을 맘껏 뽐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회사는 전 세계에 6개 밖에 없다고 한다(아마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구글, 페이스북, IBM).

위의 Big 6가 AI에 엄청난 투자를 집행하고, 앞으로 투자를 더 늘릴 거라는 계획은 작은 스타트업한테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좋은 기술력을 갖고 있으면, 높은 가격에 인수될 수 있고, 좋은 제품을 만들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기술이 mainstream으로 들어와서, 단순 유행으로 끝나지 않고 실제 산업을 만들려면 모든 이해관계자의 관심과 대규모의 투자가 필수인데, AI는 이미 이 기반이 만들어졌다고 생각된다. 내가 Fast Company에서 얼마 전에 AI 관련 좋은 기사를 읽었는데, 여기에 의하면 산업 분야를 막론하고 앞으로 더 생산적이고 분석적인 비즈니스를 하고 싶다면 반드시 사업에 AI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이 AI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이를 실제 비즈니스에 적용하려면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하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건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할지 정의하는거와 인공지능보다는 데이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고 한다.

문제를 정의할 때 가장 중요한 건, AI의 화려함에 현혹되지 말고, 우리 회사에 어떤 문제점이 존재하고, AI를 적용해서 어떤 결과를 만들고 싶은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머리보다는 몸으로 처리해야 하는 반복적인 수작업 프로세스에 인공지능을 적용하는 게 좋은 시작점이다. 항공권예약시스템을 제공하는 Sabre는 마이크로소프트 Azure가 제공하는 자연어처리 서비스를 페이스북 메신저 봇에 적용하여 고객의 기존 예약 관련된 질문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을 실험하고 있다. 이게 잘 돌아가면, 여행사 직원들은 고객들과 직접 통화해야 하거나 직접 만나야 하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단순하고 반복적인 요청은 인공지능을 통해서 처리할 수 있다.

몇 년 전에 ‘빅데이터’라는 말이 유행할 때가 있었다. 회사에서 발생하는 모든 거래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정리하고, 분석하면 비즈니스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많은 경영인이 깨닫는 순간이었다. 문제는 데이터를 수년 동안 서버에 저장해서 먼지만 쌓일 뿐, 이 데이터를 실제로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서는 아이디어가 없었다. 이제, AI가 등장하면서 드디어 수집한 데이터를 활용할 기회가 온 것이다.
데이터는 AI를 돌아가게 하는 밥과도 같은 존재이다. 인공지능이 더 많은 데이터를 소비할수록, 지능이 급격하게 상승한다. 3살짜리 어린이도 고양이 사진을 보면, 이게 고양이인지 바로 알아차리지만, 컴퓨터한테는 수십만 개의 고양이 사진을 보여주고 학습시켜야지만 이게 가능해진다. 하지만, 학습된 이후에는 인공지능이 사람보다 고양이를 더 빠르고 정확하게 식별할 수 있다. 비행기를 만드는 Airbus 사는 그동안 인공위성으로 수집한 구름과 눈의 사진을 인공지능에 입력하여, 머신러닝을 활용해서 구름과 눈을 구분하는데, 이건 사람보다 컴퓨터가 훨씬 더 정확하다. 대부분 기업은 인공지능을 효율적으로 학습시키기 위한 데이터의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도 하지만, 데이터가 많은 기업도 인공지능이 소비할 수 있는 형태로 데이터를 체계화하고 구조화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실은 알고리즘보다는 이 작업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 투자사인 당근마켓도 그동안 데이터를 잘 수집하고 분석 정리하여,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큰 비용과 시간을 절약하고 있다. 원래는 일일이 사람이 수작업으로 해야 하는 작업을 이젠 기계가 꽤 정확하게 처리해서, 사람은 더욱더 전략적인 일을 할 수 있다. 기계학습이 고도화되고, 인공지능이 더 똑똑해지면, 저비용 고효율의 이상적인 성장이 기대된다.

<이미지 출처 = Self-Aware Systems>

Strong CEO들

최근에 ‘워렌버핏이 선택한 CEO들(The Warren Buffett CEO)’이라는 책을 읽었다. 실은 2003년도에 발행된 책이라서 연식도 있고, 당시 내용과 2017년 현실과는 다른 부분도 분명 존재하지만, 전반적으로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워렌버핏 관련 책을 많이 읽었고, 인수할 회사를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는지 책으로는 배웠는데 바로,
1/ 이해할 수 있는 기업
2/ 장기 전망이 밝은 기업
3/ 정직하고 유능한 사람들이 경영하는 기업
4/ 가격이 매력적인 기업
이다. 그런데 3번의 정직하고 유능한 CEO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에 대한 해답을 이 책은 제공한다.

버크셔해서웨이의 회사 CEO의 인생은 기업 인수 전과 후가 별반 다르지 않다. 버핏이 회사를 인수한 이후에도(주로 통째로 인수) 변하는 건 없고, 그냥 지금까지 하던 대로 회사를 잘 운영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월가와 같은 외부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본인이 하는 비즈니스만 잘 하면 되기 때문에, 인수 이후 오히려 사업에 대한 집중도는 높아지고, 실적은 대부분 향상한다. 대부분 자신을 지극히 평범한 사람으로 설명하지만, 본인의 업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기도 한다. 외부의 잡음에 신경 쓰지 않고, 본인이 컨트롤 할 수 있는걸 가장 잘하는 이런 모습은 실은 워렌버핏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20명 이상의 CEO들이 버핏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같은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다. 이들이 서로 만난 적도 없으며, 같은 주인을 모시지만, 서로의 비즈니스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는 점을 고려하면, 버핏이 모든 사람을 한결같이 대하는 게 사실인 거 같다. 아, 물론, 버핏을 욕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모두 다 칭찬만 하는데, 그 디테일이 너무 같아서 신기할 뿐이다.

이 책을 덮고, 과연 스트롱 대표님들은 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졌다. 우리도 이제 투자사 숫자가 거의 90개에 육박하는데, 이 중 나랑 대화를 많이 하는 분도 있고, 거의 안 하는 분도 있을 텐데, 그래도 지금까지 내가 모든 분들한테 보여준 모습과 태도는 한결같았는지 생각하고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나는 버핏과 같이 남한테 좋은 인상만 보여주지는 않았을 것이다(버핏은 의도적으로 남들한테 좋은 인상만 보여주길 원하는 거로 알고 있다). 실은, 모든 사람이 나를 좋게 보리라는 기대도 하지 않고, 그렇게 하는 것도 싫다. 살면서 남 눈치 보지 않고 자신만의 목소리와 캐릭터를 가지는 건 나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든 나쁘든, 모든 사람이 나를 한결같이 보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쨋든 스트롱 대표님들,
올해도 1년 동안 죽지 않고 살아남았고,
내년에도 죽을 각오로 살아남으려는 의지가 불타고,
열심히 한다고 잘 되는 건 아니지만,
잘 되는 회사들은 모두 열심히 합니다.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THANK YOU.

1백만

sketchware_1M install안드로이드 모바일 앱을 쉽게 만들 수 있는 모바일 앱 스케치웨어가 얼마 전에 백만 다운로드를 달성했다. 실은, 요새 워낙 좋은 앱들이 많아서 1백만 다운로드는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닐 수도 있지만, 이 숫자가 나한테 의미하는 건 조금 특별하다. 프라이머와 스트롱이 같이 투자한 이 회사에 우리가 어떻게 투자하게 되었는지 여기서 잠깐 적어본다.

작년 6월 말, 나는 스케치웨어 김기한 대표의 cold 이메일을 받았다. 우리는 웬만한 콜드이메일은 다 읽으려고 노력하지만, 많이 오면 어쩔 수 없이 놓치는 것도 있는데, 다행히도 이 이메일은 내가 봤고, 첨부한 사업계획서도 읽어봤다(간결했다). 나도 이 분야를 잘 모르지만, 괜찮다고 생각해서 일단 화상으로 통화를 하고, 프라이머 파트너십과도 공유했다. 한국에서 나오기 쉽지 않은 순수 소프트웨어 비즈니스, 그리고 시장 자체가 한국보다는 해외가 훨씬 더 크다는 점을 모두 높게 평가했지만, 그만큼 더 어려운 시장이고, 이 팀이 해외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그래서 아쉽지만 이번에는 투자를 하지 않겠다고 메일로 답변을 드렸다.

보통 여기까지 오면, 대부분 창업가는 다른 투자사를 찾아보는데, 며칠 뒤에 스케치웨어로 부터 이메일을 하나 더 받았다. 솔직히 투자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그냥 대충 보고 넘길 수도 있었지만, 나는 사무실에서 큰 모니터로 이메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읽었다. 스케치웨어의 간절함과 절실함이 글로 나한테 그대로 전달이 되었다. 하지만, 비굴한 어조는 전혀 없었다. 왜 지금 회사는 투자가 필요하고, 그나마 여기까지 온 투자사는 프라이머와 스트롱 밖에 없고, 이 비즈니스의 진가를 알아보는 VC를 만나는 게 너무 힘든데, 그동안의 대화가 즐거웠고, 이런 대화를 앞으로 계속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메일을 읽자마자 지금은 쿠팡에 인수된 우리 투자사 Recomio의 창업가 태호한테 스케치웨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좀 알려달라고 했다. 참고로, 내가 소프트웨어 기술을 잘 모르기 때문에, 순수 기술 회사에 대해서는 내가 믿는 사람들의 조언을 항상 구하는데, 태호는 그중 내가 가장 믿는 엔지니어다. 태호는 굉장히 좋은 반응을 보였고, 왜 스케치웨어가 크게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공유해줬다.

나는 이런 내용을 정리해서 프라이머 파트너십에 다시 투자제안을 했고, 결국 프라이머와 스트롱이 공동 투자하기로 하면서 스케치웨어에 작은 초기 투자를 했다. 이후 우리는 한 번 더 추가 투자를 했고, 다행히도 회사는 이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1백 만 다운로드는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더 많은 사용자의 꿈을 실현해 주 수 있는 좋은 제품으로 성장하길 바라며, 5백만 다운로드가 벌써 기대된다.

튼튼한 다리

추석 연휴를 미국에서 보내기 위해 약간 일찍 출국했다. 그런데 미국에 내리자마자, 엄청나게 많은 페이스북 노티가 떠서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 줄 알고 급하게 확인해보니, 우리 투자사 코빗이 넥슨의 지주회사 NXC에 인수된 기사로 내 담벼락이 도배되어 있었다. 모든 인수가 그렇듯이, 상당히 오랫동안의 물밑 작업이 수반되었기 때문에, 그냥 속으로 “이제 기사화되었구나” 라면서 연휴를 즐겼다.

귀국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이번 인수는 2개의 기록을 달성했다. 일단 국내 가상화폐 업계의 최초 인수합병 사례이자, 국내 스타트업 피인수 사례로는 최고 기록이다(이전까지 기록은 카카오의 626억 원 록앤올 인수). 나도 이 블로그를 통해서 코빗 이야기를 꽤 많이 했는데, 스트롱은 코빗의 첫 번째 투자자였다. 이 딜이 완전히 체결되었을 때, 2013년 5월 유영석 대표와의 첫 번째 만남을 살짝 떠올렸다. 모든 사업이 그렇듯이 참 쉽지 않은 사업이었고,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인수되는 게 모든 사업의 최종 목표이자 종착점은 아니지만, 그래도 글로벌 비즈니스 경험이 많은 좋은 회사에 합류해서 아주 뿌듯하고 기뻤다.

코빗 분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나는 우리가 코빗 초기 투자자로서 우리 역량이 되는 만큼 적극적으로 지원사격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름 회사가 언제든지 필요할 때 밟을 수 있고, 반대편 먼 곳으로 연결해주는 튼튼한 다리 역할을 하려고 항상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이번 인수는 스트롱한테도 아주 좋은 exit 사례가 되었지만, 이 외에도 우리가 처음부터 지향하고자 한 ‘창업가들의 든든한 파트너’ 역할을 한 계기가 되었다. 실은, 이 점이 제일 좋다.

며칠 전에 교수님 선배들과 만났는데, 똑똑한 제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실험실 제자가 너무 똑똑해서, 그 지도 교수보다 더 잘 나가면 진심으로 뿌듯해하면서 이끌어주는 교수도 있지만, 이와 반대로 시기심으로 인해 그 제자를 밟고, 앞날을 방해하는 교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우리 같은 VC한테는 이런 엇갈린 답변이 나올 수가 없다. 우리는 무조건 우리보다 월등하게 똑똑한 창업가한테 투자해야지만, 모두 다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코빗은 아주 좋은 사례다. 우리 다른 투자사들도 마찬가지지만, 유영석 대표와 김진화 이사는 나보다 훨씬 더 훌륭하고 능력이 출중한 분들이다.

바람이 있다면, 코빗이 넥슨의 글로벌 경험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더 좋은 가상화폐 서비스로 성장하고, 코빗의 창업팀과 직원분들이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계속 후배 창업자들을 자극하고 격려해주면 좋겠다.

모험

직업을 대하는 태도의 경우, 내 주변 사람들과 내가 많이 다른 건,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즐긴다는 점이다. 실은, 나도 어떻게 하다가 VC를 하고 있는지 신기한데, 다른 건 잘 모르겠지만, 인생에서 중요한 시점마다 큰 모험을 했기 때문에 내가 즐기는 이 일을 할 수 있게 된 거 같다.

2008년 1월 나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워튼스쿨에서 MBA 1학년 1학기를 마쳤다. 실은 생각보다 수업도 어려웠고, 프로그램도 학비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한테는 큰 도움이나 영감을 주지 못 했다. 그리고 학교에 다니는 동안 계속 뮤직쉐이크의 미국 일을 도와주면서 뭔가 내 인생의 기회가 왔고, 이걸 이번에 잡지 못하면 나는 평생 후회할 거라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얼마 후 2008년 2월에 나는 학교를 그만두고 LA로 와서, 미래가 불확실했지만 그래도 그 어려움과 불확실함을 남이 아닌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2009년 자금줄이 마르면서, 1년을 무급으로 일했다. 다시 학교로 갈 수 있는 옵션도 있었고, 실은 당장 다른 회사에 취직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난 내가 시작한 걸 한번 마무리 지어 보고 싶었다. 큰 모험이었지만, 내가 잘하면 결과가 좋을 것이고, 못 하면 결과는 나쁠 것이기 때문에, 실은 이건 무모한 모험이라기보단 계산된 모험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2012년까지 뮤직쉐이크를 운영했는데, 이후에 몇 가지 커리어 옵션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다시 한번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지금까지의 경험과 배움을 바탕으로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해서 이들의 글로벌 시장 확장을 도와줄 수 있는 작은 펀드를 만들기로 했다. 펀드를 만드는 건 내가 예상했던 거 보다 훨씬 더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많은 분의 도움으로 잘 시작해서 좋은 회사에 투자할 수 있었다. 이후 규모가 조금 더 큰 두 번째 펀드도 결성했고, 앞으로 또 어떤 게 될진 모르겠지만, 우린 계속 모험을 하면서 나가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적절한 시기에 감행한 큰 모험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현재 내가 즐기고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거 같다. 당시 이런 모험이 없었다면, 솔직히 지금 나는 뭘 하고 있을지 잘 모르겠다.

우리가 투자한 모든 회사와 팀도 나와 같은 이야기가 최소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안전한 길을 가고 있다가, 인생의 어느 시점에 이들은 모험하기로 결심했을 것이다. 실은 이렇게 하면서 주위의 격려나 부러움보다는 질타와 손가락질을 더 많이 받았을 것이고, 아직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밥은 먹고 다니니?”라는 질문을 매일 받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모험을 한 다는 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우리 어깨 위에 스스로 더 많은 짐을 실으면서, 안 받아도 되는 스트레스로 자신의 몸을 과부하 시키는 거다. 실은 조금 미친 짓이다. 하지만, 이들은 살면서 지금까지 축적한 기술, 지식, 인맥, 그리고 운이 잘 합쳐지면 언젠가는 더 큰 보상을 맛볼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고,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고 책임질 수 있다는 큰 비전에 의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이런 모험을 한다. 물론, 이런 시도는 대부분 무모한 도전으로 끝날 확률이 더 높지만, 이런 모험을 할 때야 말로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결과만 봐서는 실패와 성공은 하늘과 땅 차이다. 실패는 좋지 않은 결과고, 성공은 좋은 결과다. 하지만, 모험이 우리에게 주는 설렘, 흥분, 그리고 가능성은 실패와 성공을 초월한 그 이상의 정신상태를 우리에게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