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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더리움과 forking

ethereum-forked비트코인과 같은 가상암호화 화폐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이더리움(Ethereum)에 대해서 들어봤을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이더리움 커뮤니티에서 큰 쟁점이 되었던 포킹(forking)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 것이다. 몇몇 독자들이 이더리움과 포킹에 대해서 설명을 해달라고 해서 나도 내 생각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글을 써본다. 비트코인에 대해서 내가 쓰는 글들을 보면 아시겠지만, 나는 이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다. 전문가들이 답글로 설명을 추가해 주면 많은 분들한테 도움이 될 거 같다.

이더리움은 비트코인과 같은 자체 가상화폐인 이더를 지원한다는 점에서는 블록체인과 비슷한 프로토콜이지만 한 가지 큰 차이점은 바로 스마트계약(=사전에 서로 합의된 조건들이 충족되면 자동으로 실행되는, 컴퓨터 코드로 만들어진 계약)을 지원한다는 점이다. 실은 블록체인도 이론적으로는 스마트계약서를 지원하고, 앞으로 블록체인을 활용한 스마트계약서가 큰 혁신을 가져올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지만, 내가 보기엔 아직도 말로만 존재하고 실체는 없다. 이더리움도 마찬가지였다. 비트코인보다는 유연하고 확장성이 좋은 코드로 만들었지만, 스마트계약서는 아직은 이론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2016년 4월 30일 이더리움은 DAO(Distributed Autonomous Organization) 라는 흥미롭고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다. 우리와 같은 VC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DAO의 목적은 사람의 개입이 없는 창투사(VC)를 만드는 것이었다. 투자 결정을 하는 파트너도 없고, 심사역도 없고, DAO는 오로지 코드로 만들어진 규칙을 컴퓨터 프로토콜이 실행하는, 스마트계약서를 통해서 모든 투자 결정이 되는 humanless venture capital을 지향했다. 출시한 지 한 달 만에 DAO는 11,000명의 투자자로부터 1.5억 달러를 유치했는데 아마도 역사상 가장 크고 성공적인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Vitalik Buterin과 같은 이더리움의 메인 개발자들은 앞으로 이더리움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이더리움이나 DAO도 기술적으로 완벽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6월 17일, 누군가 DAO를 해킹해서 5,000만 달러에 상당하는 이더를 훔쳐갔기 때문이다. 이더리움 개발자들은 결국 이 해커를 다시 해킹해서 훔쳐간 이더를 복귀하고 나머지 펀드를 모두 다른 스마트계약서로 옮겼다. 문제는 DAO의 특성상, 이 해커가 아직도 옮겨진 펀드에 대한 소유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실은,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간단하다. DAO의 코드를 다시 프로그래밍해서 다른 규칙이 적용된 새로운 이더리움 네트워크를 형성하면 된다 – 이게 포킹(forking)이다. 그러면 투자자들이 원하는 대로 투자금을 다시 투자자들에게 돌려줄 수 있다.

그렇게 하면 되지 않나? 문제가 있긴 있다. 그리고 이건 꽤 큰 문제이다. 이렇게 개발자들의 인위적인 개입으로 네트워크를 수정하는 건 이더리움의 근본적인 사상과 개념을 위배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더리움은 분산적이면서 분권화된 플랫폼으로 탄생했는데, 이는 그 누구도 중앙집권적 권력을 행사하여 이더리움 네트워크를 임의로 변경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네트워크의 권력은 네트워크상 모든 사용자에게 균등하게 분배되어 있는데, 소수집단이 개입해서 문제를 고친다는 거 자체가 이 분산적 사상을 위배하는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투자된 펀드는 스마트계약에 의해 특정 조건들이 충족되면 자동으로 집행되어야 하는데, ‘변질할 수 없는’ 성격을 가져야 하는 스마트계약서를 다수의 동의를 얻어서 임의로 변경하는 게 이더리움의 원칙을 위배한다는 의미이다.

스마트계약서를 변경할 수 없다는 ‘코드 순수주의자’와 코드를 변경해서 투자자들에게 돈을 환급하자는 두 이더리움 그룹의 논쟁은 한동안 지속되다가 결국 포킹을 통해 해킹 이전의 DAO로 돌아가서 투자금을 돌려주기로 했다.

많은 분들이 포킹(forking)에 관해서 물어보는데,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의 포킹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여기를 참고하면 된다. 이번 이더리움 포킹이 특이한 점은, 여러 개발자가 같은 소스를 기반으로 개발하다가 우연히 코드의 포킹이 발생한 게 아니라, 네트워크의 규칙을 인위적으로 변경할 목적으로 – 즉, 강제적으로 포킹을 유발하기 위해서 – 새로운 버전의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포킹을 통해서 블록체인이나 이더리움의 규칙을 바꾸는 건 기술적으로는 어려운 게 아니지만, 한 번 포킹이 되면 – 특히 하드포킹 – 네트워크의 개념과 사상 자체가 바뀌기 때문에 이런 결정은 신중히 해야 한다. 재미있는 건 이 또한 네트워크의 사용자들이 결정한다는 점인데, 이는 마치 대통령 선거와도 비슷하다. 결국엔 국민이 투표를 통해서 대통령을 뽑지만, 이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 국민이 생기기 마련이고, 이들은 불평하면서 계속 한국에 살거나 아니면 이민을 가는 경우도 있다. 이더리움이나 블록체인도 마찬가지이다. 포킹이 일어나면 이 전략과 방향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 반대파들은 네트워크를 떠난다. 얼마 전에 내가 블록체인의 크기에 대한 논쟁에 관해서 쓴 적이 있는데, 본질적으로 보면 이 또한 이더리움 포킹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 이더의 가격은 약 11 달러이다. DAO의 해킹, 포킹 등과 같은 큰 사건들 때문에 대부분 전문가는 이더의 가격이 폭락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이더리움 커뮤니티는 이 상황을 상당히 잘 수습하면서 과학적인 접근과 개발 방법을 통해서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강화하고 있다. 비탈릭 부테린과 이더리움 커뮤니티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이미지 출처 = https://diginomics.com/news/forking-ethereum/>

Trust Disrupted: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TechCrunch에서 ‘Trust Disrupted‘라는 비트코인 관련 동영상을 자체적으로 시리즈물로 만들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봤다. 비트코인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분들도 이 동영상을 보면 비트코인, 블록체인, 가상화폐 등에 대한 개념은 쉽게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6편의 시리즈인데, 각 6분~8분이니까 그냥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캐주얼하게 보면 재미있다. 이 글 밑에 각 에피소드를 embed 했으니까 여기서 직접 봐도 된다.

이 시리즈를 보면 비트코인 분야에서 꽤 유명한 사람들이 다 등장하는데(BTCChina의 Bobby Lee, USV의 Fred Wilson, Ethereum을 만든 Vitalik Buterin, 비트코인의 메인 개발자 중 한 명인 Gavin Andresen, 그리고 R3의 Charley Cooper가 그 대표적 인물들이다), 6편까지 다 본 후에 나는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이 정말 뭔가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고 다시 확신할 수 있었다. 특히 1편 마지막 부분에서 R3의 대표 찰리 쿠퍼가 한 말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2년 후에 기술이 가져올 변화에 대해서는 과대평가하는 성향이 있지만, 10년 후에 기술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에 대해서는 과소평가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2년 전 비트코인이 처음으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비트코인 열풍이 불었다. 신문과 미디어에서는 비트코인이 곧 화폐를 대체할 것처럼 떠들어댔지만, 아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세상이 기다렸던 그런 혁신이 일어나지 않으면서,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은 시들시들해졌다. 하지만, 10년 후를 본다면 나는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이 정말로 엄청난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트코인에 대해서 공부를 해보면, 단순한 기술보다 훨씬 깊은 의미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기술, 문화, 사상, 시스템, 화폐, 권력, 정치, 이 모든 게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논란도 많고,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두 집단인 실리콘밸리와 월가가 열광하면서 동시에 싸우고 있는 거 같다. 이게 제대로 자리를 잡고 구현이 된다면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이 열리지 않을까 싶다.

1편: In the Beginning

2편: Mines and Miners

3편: In Search Of Itself

4편: Blockchain on the Rise

5편: Ethereum’s Blockchain

6편: Co-opt vs. Disrupt?

새로운 플랫폼들

%ec%82%ac%ec%a7%84-2016-9-13-%ec%98%a4%ed%9b%84-1-48-49나는 주로 비즈니스 출장을 가면 가격과는 상관없이 호텔을 선호한다. 어차피 잠만 자고, 어디를 가나 같은 quality가 보장되는 체인형 호텔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 LA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Palm Springs라는 사막에서 2주 동안 휴가를 즐겼는데, 이번에는 에어비앤비로 집을 통째로 빌렸고, 에어비앤비 단기투숙할 때와는 다르게 몇 가지 새로운 경험을 했다.

초기의 에어비앤비는 집주인이 장기 출장을 가거나, 오랫동안 집을 비울 때, 또는 집에 남는 방이 있을 때 이 과잉공급공간을 필요로 하는 타인에게 돈을 받고 빌려주는 모델이었다. 물론, 기업가치 30조 원 에어비앤비는 지금도 이 비즈니스 모델로 성장하고 있지만, 이 플랫폼이 엄청난 수요와 공급을 창출하는 거대한 마켓플레이스가 되면서, 에어비앤비를 통해서 임대업을 본격적으로 하는 비즈니스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수요가 많은 지역에 다양한 부동산을 매매하여, 에어비앤비 플랫폼에서 상당히 수익성이 높은 임대업을 하는 비즈니스들이 미국에는 상당히 많이 생겨나고 있다. 한국은 아직 미국만큼 크진 않지만, 우리 아파트에 사는 어떤 젊은 친구도 강남에 아파트 3개를 확보해서 에어비앤비에서 계속 돌리고 있는데, 공실률이 10% 안 된다고 하니까 단순하게 계산을 해도 수익성이 상당히 좋은 거 같다.

그런데 에어비앤비에 집을 등록만 해 놓으면 수요가 발생하는 건 아니다. 수많은 옵션 중 우리 집을 선택하게 하려면 나름 집을 잘 꾸며야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집들을 리모델링한다. 특히 우리가 묵었던 지역의 전체 인테리어와 리모델링 비즈니스의 30% 정도가 에어비앤비 때문에 발생한다고 하니 이 동네 경제에 상당한 이바지를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에어비앤비를 통해서 대여를 계속한다면 이런 리모델링을 정기적으로 해야 하니 업체들에는 예측 가능한 신규 비즈니스가 될 수 있다.

에어비앤비에 많은 부동산을 올려놨다면 관리의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도 이 집을 예약하고 체크인을 하기 전에 집주인한테(=호스트) 이미 여러 가지 질문을 했고, 2주 동안 묵으면서도 자잘 구리 한 요청과 질문을 많이 했다. 이럴 때마다 호스트는 상당히 빠르게 우리의 요청에 매우 친절하게 응대해줬는데, 이렇게 하지 않으면 손님들은 좋은 리뷰를 써주지 않고, 좋지 않은 리뷰는 호스트의 비즈니스에 큰 타격을 준다. 그런데 많은 집을 소유하고 있으면 이렇게 빠른 고객 응대를 하는 게 어렵다. 특히 손님들이 외국에 있으면 시간대도 맞지 않고, 집주인이 만약에 다른 full-time 직업을 갖고 있다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분들을 위해서 에어비앤비 집들만 따로 관리해주는 비즈니스들이 미국에는 존재한다. 이들은 고객 응대 뿐만 아니라, 집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문제를 – 고장, 물품 부족, 전구 교체 등 – 제때 해결해주고, 체크인과 체크아웃을 원활하게 운영하면서 청소와 빨래 같은 업무까지 모두 알아서 해준다.

손님이 체크아웃하면 다음 손님을 맞기 전에 집을 청소하고 침대 시트나 수건 등을 세탁한다. 일반 가정집은 청소나 빨래는 대부분 외주를 주지 않고 – 물론, 가정부가 하는 경우도 있고 요새는 온디맨드 서비스들도 많지만 – 집주인이 직접 하지만, 에어비앤비의 특성상 청소와 세탁은 외주업체들이 처리한다. 에어비앤비 집들만 전문적으로 청소하고 세탁을 해주는 비즈니스들이 존재하고, 기존 청소업체나 세탁소들에는 엄청난 신규 비즈니스의 기회를 에어비앤비가 제공하는 셈이다. 우리가 있던 동네는 워낙 더운 사막이라서 모든 집에 수영장이 있다. 남한테 돈을 받고 집을 빌려주기 때문에 수영장의 청결 또한 중요하기 때문에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멕시코 아저씨가 와서 수영장 청소하고 수질관리를 해주셨는데, 이런 분들도 에어비앤비 때문에 더 많은 신규 비즈니스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또 한가지 재미있었던 거는 에어비앤비를 통해서 장기투숙을 하면 그 지역이나 동네에 대한 경험을 많이 할 수 있는데, 그 경험이 좋으면 그 지역의 부동산에 관심을 갖게 된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 지역의 부동산 중개업자들한테도 신규 비즈니스의 기회가 주어지게 된다. 우리가 있었던 집에도 “이 집에서의 숙박이 마음에 드셨나요? 저한테 연락 주시면 고객님에게 딱 맞는 좋은 부동산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라는 전단지와 함께 중개업자 명함이 입구 옆에 놓여있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에어비앤비는 이제는 단순한 대형 마켓플레이스가 아니라, 수많은 비즈니스들과 사람들에게 새로운 수입원을 제공하고 고용을 창출하는 대형 플랫폼이 되었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인테리어업자, 리모델링 업자, 에어비앤비 관리사, 청소업체, 세탁업체 및 수영장관리사는 에어비앤비가 없었으면 존재하지 않거나 훨씬 더 적은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내 주변에도 지금은 아직 미약하지만, 에어비앤비와 같은 큰 플랫폼이 될 가능성을 가진 비즈니스들이 있는데, 기대가 많이 된다.

새로운 제2외국어

programming-languages얼마 전에 초등학교 아이의 아빠인 내 친구한테 연락이 왔다. 아이한테 본격적인 제2외국어 교육을 하려고 하는데 메인으로 배워야 하는 게 영어인가 중국어인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중국은 잘 모르지만, 미국은 좀 안다. 그리고 내가 아는 지식이나 한정된 경험에 의하면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으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무조건 영어를 메인으로 하라고 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 지금부터 코딩을 가르치라고 했다.

전 세계 12억 명이 중국어를 사용하고, 비슷한 인구수가 영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사용하는 언어는 ‘코딩’이라고 생각한다. 프로그래밍이나 코딩이라고 하면 아직도 너무 많은 사람이 복잡하고 어려운 기술이나 학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코딩을 단순하게 보면 사람과 기계를 연결해 주는 일종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지만, 앞으로는 기계들이 더욱더 많은 분야에서 인간을 대체할 것이다. 과거에는 고도의 판단력이 필요하지 않고 반복적인 일들을 수행하면서 로봇과 같은 기계들이 사람을 대체했지만, 앞으로는 고도의 사고력과 결정력이 필요한 업무 또한 기계들이 대체 가능할 것으로 예측된다. 인공지능, 로보틱스, 자율주행 자동차 등…. 이 모든 기술은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으며, 페이스북,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세계 최고의 기술 회사들이 수조 원의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 기계들이 우리 삶의 일부가 될수록 우리는 이 기계들과 원활하게 소통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데, 기계와 소통할 수 있는 언어가 코딩이다.

미국 못지않게 한국도 이러한 추세를 잘 파악하고 있는 거 같다. 최근에 검토한 많은 회사가 이 분야에 있는데, 언어교육과 마찬가지로 코딩도 어릴 때 시작하는 게 좋으므로 어린이들을 위한 코딩 교육 게임이나 학원 비즈니스를 생각하고 있는 창업가들이 많은 거 같다. 내 또래 분 중 80년 후반 – 90년 후반에 유명했던 비트 컴퓨터 학원과 같은 물리적인 코딩 학원에 다니면서 실력을 키운 분들도 있을 것이다. 당시에는 ‘코딩’이라는 말 자체가 없었고, ‘프로그래밍’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나도 C++를 배우러 컴퓨터 학원에 몇 달 다녔던 기억이 나는데, 자리마다 컴퓨터가 한 대씩 있었고 교실 앞에서 선생님이 수업하고 과제를 시켰던 전형적인 강의실 포맷으로 강의가 진행되었다. 5.25″ 나 3.5″ 플로피 디스크에 과제를 담아서 제출했었던 기억도 난다.

이후 물리적인 학원은 없어지고 Codecademy나 Lynda와 같은 인터넷 강의의 시대가 왔다. 더는 칙칙한 학원에 직접 가지 않아도 집이나 사무실 또는 내가 편한 그 어느 곳에서 내 페이스대로 코딩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런 인터넷 동영상 강의는 아직도 인기가 많다. 하지만, 인터넷 강의를 통해 100% 자율적으로 학습하다 보니까 학습에서 가장 중요한 진도와 실력의 향상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단점도 발견되었다. 그래서 새로 등장한 포맷이 물리적 학원의 강제성과 인터넷 동영상 강의의 자율성을 잘 혼합한 하이브리드 코딩 학원이다. 한국도 이미 이런 비즈니스들이 창업되어서 잘 운영되고 있는 스타트업들이 몇 군데 있다.

애가 있는 친구들한테 나는 항상 제2외국어로써 코딩 교육을 권장한다. 국어·영어도 중요하고, 그 이후의 토익이나 토플 시험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가장 많은 세계인이 사용할 언어는 코딩이 될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내 주변에 엄마와 아빠가 모두 개발자인 많은 가족조차 애들한테는 코딩을 절대로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직도 한국에서 개발자의 삶은 배고프고 대우를 못 받는다고 하면서, 아이들한테는 변호사나 의사의 길을 권장하고 있다. 이분들이 코딩을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이 아닌, 사람과 기계가 소통할 수 있는 언어로 본다면 조금은 다르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미지 출처 = http://www.serendipity35.net/index.php?/archives/3278-Coding-as-a-second-Language.html>

경험의 차별화

O2O 비즈니스는 정말 어렵다. 뭐, 어렵지 않은 비즈니스는 없겠지만, O2O는 오프라인 비즈니스의 운영과 물류의 어려움, 그리고 온라인 비즈니스의 제품과 시장의 어려움을 모두 갖고 있어서 더욱더 쉽지 않은 거 같다. 우리도 이 분야에 투자했고, 계속 하고 있지만, 알면 알수록 이 비즈니스는 더 빨리 성장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걸 느끼고 있다.

얼마 전에 미국의 대표적인 온디맨드 세탁 서비스 Washio가 안타깝게 문을 닫았다. 집으로 찾아와서 세탁물을 수거하고 24시간 안으로 가져다주는 이 서비스는 5.99 달러의 배송비에 파운드 당 2.15 달러의 세탁 비용을 받았는데, 돈을 벌 수가 없는 비용구조였고, 아마도 이 때문에 망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3년 전에 창업됐고, 약 200억 원의 펀딩을 유치한 워시오가 문을 닫은 건 O2O 비즈니스들에는 큰 타격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진입장벽이 없고 마진이 적은 비즈니스가 얼마나 어려운지 다시 한 번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이제 성장을 시작한 온디맨드 세탁서비스들이 있는데, 한국은 미국같이 현금출혈이 심하지는 않지만, 워시오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전에도 ‘마이너스매출총이익’이라는 글에서 잠깐 언급을 했는데, 대부분의 O2O 서비스들은 빠른 고객 획득을 통한 시장 석권을 위해서 주문이 발생할 때마다 돈을 버는 구조가 아니라 돈을 잃는 구조의 비즈니스 전략을 택한다. 그리고 엄청난 펀딩을 통해서 성장을 시도하고, 성공적으로 시장을 독점하면 그 이후에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을 보고 사업을 전개한다. 우버는 이러한 시장 독점을 향해서 잘 가고 있지만, 많은 비즈니스가 워시오 같이 망하기도 한다.

이런 O2O 서비스들의 또 다른 고민거리는 전통 플레이어들과의 차별점이다. 정확한 개념의 ‘온디맨드’는 아니지만, 온디맨드 세탁이나 가사도우미 서비스는 한국에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스트롱도 온디맨드 가사도우미 서비스 미소에 투자해서 나도 자주 사용하고 있다. 솔직히 편리하긴 편리하다. 네이버 검색, 가사도우미 중개업체 전화, 전화로 날짜랑 시간 예약, 그리고 무통장입금하는 과정이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은근히 스트레스받는 일이다. 누구랑 전화 하는 거 자체가 불안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앱을 통해서 몇 번의 클릭으로 해결하는 게 얼마나 편리한가?”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모든 사람이 나와 동의하지는 않는다. 우리 와이프만 해도 이런 앱들이 뭐가 O2O냐고 물어본다. 그냥 옛날부터 있던 걸 앱으로 주문하는 게 뭐가 그렇게 대단한지 모르겠다고 한다 – 어차피 O2O 앱이나 인력소개서를 통해서 오는 아줌마들 모두 친절하고 일 잘한다고 한다. 오히려 앱 설치하고 가입하는 게 더 귀찮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워시오같은 온디맨드 세탁 앱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분들이 내 주변에 많다. 미국이야 다르지만, 한국의 경우 동네 세탁소 아저씨들이 20년 전부터 아파트 돌아다니면서 세탁물 수거해서 깨끗하게 세탁하고, 그다음 날 배송비 없이 다시 집으로 가져다줬다. 특히 오랫동안 한 동네에서 세탁하시던 분들은 동, 호수를 다 외우고 세탁물만 봐도 어떤 집인지 아신다. 물론 동네 세탁소는 자정까지 세탁물을 수거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늦게 세탁물을 맡겨야 하는 분들도 별로 없는 거 같다. 나는 솔직히 세탁특공대 같은 앱이 엄청 편해서 좋아하는데, 내 주변 분들은 앱으로 세탁 주문하는 거 외에는 동네 세탁소랑 뭐가 다르냐고 물어본다.

그래서 이미 존재하던 오프라인 사업에 온라인을 적용하는 O2O 비즈니스라면 “옛날 방식과 뭐가 그렇게 다른데?”라는 의구심을 확실하게 잠재울 수 있는 ‘경험의 차별화’가 필요하다. 오프라인 부분의 차별화는 힘들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한 지역에서 오프라인 서비스를 제공하던 분들보다 (이 분야의 경험이 없고, 인터넷 비즈니스에 더 익숙한 분들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어렵다. 그러므로 온라인 부분을 정말 잘 만들어야 한다. 단순히 앱으로 서비스를 신청하거나 주문하는 걸 넘어서 정말로 부드럽고 마찰이 없는 완벽하고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면서 경쟁사들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시점에 지속적인 투자를 유치해야 하니 정말로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