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by Kihong Bae:

하는 사람들

이 세상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

이 업을 하면서 나는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앞으로도 더 만나지 않을까 싶은데, 더 많이 만날수록 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이런 생각을 매일 해서 그런지, 얼마 전에 하는 사람들의 끝판왕 시리즈 ‘매드 유니콘’을 넷플릭스에서 너무 재미있게 봤다.

‘매드 유니콘’은 2021년에 기업가치 1조 원이 넘은, 태국의 첫 번째 유니콘 스타트업 Flash Express의 창업과 성장 이야기인데, 개인적으론 지금까지 나온 전 세계 그 어떤 스타트업 드라마나 영화보다 재미있게 봤다. 이 전에 나온 스포티파이 이야기 ‘플레이리스트’도 재미있게 봤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트업 영화는 페이스북의 이야기 ‘소셜 네트워크’ 이지만였지만, 매드 유니콘은 7부작을 보는 내내 단 1분도 빠짐없이 몰입했고, 단 1분도 빠짐없이 즐겼다.

나는 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해 전혀 모르고, 이 드라마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지만 분명히 심하게 극화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13년 동안 수많은 창업가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울다 웃기를 반복하는 걸 너무 많이 봤고, 틀린 결정을 너무 많이 하는 걸 봤고, 이 틀린 결정을 바르게 만들기 위해서 개고생하고 개지랄 떠는 걸 너무 많이 봤고, 그런 과정에서 인간의 최악의 모습을 경험하면서 좌절하고, 반대로 인간의 최고의 모습을 경험하면서 기뻐하는 걸 너무 많이 본 초기 투자자의 관점에서 드라마의 매 순간에 공감했다. 그만큼 실제 스타트업 자체가 그 어떤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시리즈에는 재미있는 드라마를 만드는 모든 요소가 다 있다. 출세하고 싶어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전형적인 언더독 창업가 남주인공, 함께하는 공동창업가 여주인공, 그리고 이 둘 사이에 형성되는 약간의 러브라인. 우리의 창업가를 끝까지 괴롭히는 나쁜 대기업, 그리고 드라마틱한 언더독 창업가와 그가 만든 팀의 창업기. 이들이 죽도록 허슬하면서 보여주는 최악의 모습과 최고의 모습의 반복은 스타트업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재미있게 볼 것이고, 스타트업을 아는 분들은 진심으로 공감하면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주말에 7부작을 보면서 나도 정말 많이 공감하고 많이 배웠다. 나도 스타트업 경험이 있고, 그동안 수많은 회사를 간접적으로 봤지만, 오랜만에 옛날에 힘들었던 상황들을 생각하면서, “그래, 이런 게 진짜 스타트업이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한번 전열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모든 인물이 특색 있었지만, 가장 맘에 들었던 건 이 회사의 CTO였다. 많이 극화된 인물이긴 하지만, 이런 CTO가 유니콘을 만든다고 확신한다.

내가 이 드라마를 입에 침이 마르게 극찬하자 와이프는 도대체 뭐가 그렇게 재미있냐고 물었다. 아마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그런 것 같다. 그냥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될 때까지 죽어라 하는 그런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아무리 밟아도 절대로 죽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이, 더 세게 반격하는 바퀴벌레의 이야기라서 내가 더 열광했던 것 같다. 우리 포트폴리오 창업가분들과 스트롱 임직원분들 모두 이런 정신으로 사업할 수 있길, 그리고 내 주변 분들도 모두 이런 정신으로 인생을 살 수 있길 바란다.

이 세상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

2 퍼센트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환경에서의 행동 연구 결과에 의하면, 에스컬레이터 옆에 계단이 있을 때, 100명 중 2명만 계단을 이용한다고 한다. 이건 그 어떤 나라에서 연구해도 거의 비슷하게 2%라는 수치가 나오는데, 이 현상을 단순하게 설명하면 대부분의 인간은 게으르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나도 이 말엔 동의한다.

그런데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보면, 이 현상은 인류의 진화 과정을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에 너무 당연한 것 같다. 우리는 불편한 것보단 편한 것을 항상 선택하는 DNA를 보유하고 있고, 인류의 모든 발전은 – 특히, 기술적인 발전은 – 우리가 더 편하게 살고 일하기 위한 방향으로 최적화 되어있다. 편하게 살 수 있는데, 굳이 불편하게 살 필욘 없지 않으냐.

맞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다. 편하게 할 수 있는걸, 굳이 왜 불편하게 하려고 하는가? 그래서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98%를 게으른 사람들이라고 욕할 순 없다. 오히려 계단을 선택하는 2%의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하는 게 더 자연스럽다.

그런데 이 행동 연구에서 더 재미있는 건, 계단으로 올라가든 에스컬레이터로 올라가든, 100명 모두 다 계단을 이용하는 게 에스컬레이터보단 본인들에게 장기적으로 훨씬 더 좋다는 걸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계단으로 올라가는 게 건강, 노화, 시력 등을 위해 장기적으론 여러 가지 면에서 몸과 정신에 좋다는 걸 알면서도 단기적인 편안함을 선택한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선, 난 이 98%가 게으르다는 생각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그럼, 계단을 선택한 2%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편안함보다 불편함을 더 좋아하는 변태들인가? 아마도 그렇진 않을 것이다. 이들은 장기적인 혜택을 위해서 단기적인 편안함을 잠시 접은, 하기 싫은 일을 일부러 했을 때 어떤 긍정적인 변화가 생기는지 잘 아는, 오히려 의지가 강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태어날 때부터 의지가 강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마도 이보단 살면서 주위 사람들의 98%가 편안한 방법을 택할 때 이들은 불편함을 택했는데, 이로 인해 장기적으로 큰 보상을 이미 받았기 때문에, 이 경험을 계속 기억하면서 불편함을 택하는 2%로 살아가기로 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데 위에서 말했듯이, 편안하게 살려고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버는 현대 사회에서 굳이 불편하게 사는 건 좀 그렇지만, 하루에 하나 정도는 일부러 불편하고 어려운 일을 하는 건 할만하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상대방에게 싫은 소리를 절대로 못 하는데 이 큰 불편함을 무릅쓰고 본인이 느끼고 생각하는 대로 남들에게 이야기하는 걸 택했고, 나는 이보단 약소하지만, 침대에서는 절대로 핸드폰을 보지 않는 불편함을 택했다. 장기적으론 나에게 좋다는 걸 잘 아니까.

실은 창업가들은 이미 이 2% 안에 들어왔다. 편한 길을 버리고 스스로 불편함을 택했으니까. 사업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나는 이 경험이 장기적으로 아주 큰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오늘부터 하루에 하나씩 편안함보단 불편함을 선택하는 걸 권장한다.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머리 쥐어짜기

2년 전에 ‘마른 수건 쥐어짜기’라는 글을 썼는데, 오늘은 머리 쥐어짜기라는 주제의 글을 써본다. 얼마 전에 어떤 미국 VC와 한국의 의료 시스템에 관해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내가 꽤 공감하고, 미팅 이후에 곰곰이 생각했던 그런 내용이다. 그리고 나는 한국에 계속 살고 있어서 잘 못 보고 못 느끼지만, 한국 밖에서 한국을 보면 이런 것들이 보인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 역시 숲 안에만 있으면 나무만 보이고, 숲이 안 보인다는 게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한국의 의료 시스템은 월드 클래스이다. 전 세계 어디 가도 한국의 의료보험과 같은 제도는 찾기 힘들고, 집 주변에 이렇게 다양한 병원이 많은 곳도 전 세계에서 찾기 힘들다. 미국에서 의료보험에 가입해 본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미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의료보험 시스템은 거의 미래에서 온 제도와 같이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직장인이라면 대부분 정기적으로 받는 건강검진은 다른 나라에 사는 외국인들에겐 상당히 생소하다는 점도 많은 한국분들이 잘 모르고 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아프기 전까진, 한국 스타일의 정기 건강검진은 한 번도 받아보지 않는다. 물론, 미국에도 좋은 건강검진 시스템이 있지만, 너무너무 비싸다. 우리는 필요하면 언제나 하는 위/대장 내시경을 미국에서 받아보면 보험에 따라 수백만 원 ~ 천만 원대의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

이러다 보니, 미국인들은 의료 보험이 있어도 큰 병에 걸리지 않으면, 웬만하면 병원을 찾지 않는다. 나도 미국 살 때, 꽤 비싼 의료보험이 있었지만 – 근데 나는 아직도 내가 미국에서 어떤 의료 보험이 있었는지 잘 모른다. 그 정도로 복잡하다. – 한국과 달리 보험이 있어도 의사를 한 번 만나면 돈이 너무 많이 깨져서 정말로 아주 아프지 않으면 병원을 아예 안 갔다.

이와 반대로 한국은 병원에 대한 접근성도 좋고, 가격도 저렴해서, 조금만 컨디션이 안 좋아도 병원에 간다. 간단한 건 양병원, 한방병원, 의료원 등, 그 어떤 동네 병원에 가도 간단한 검사를 받고 약을 처방 받으면 되니까, 한국인들은 병원을 정말 자주 찾는다. 한 약사한테 들었던 1년 365일 매일 병원에 가는 노인의 이야기는 나에겐 충격적이었다. 하루는 양병원, 그다음 날은 한방병원, 등의 순서로 매일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 받는 이런 분들이 한국에 의외로 많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이건 너무 좋은 의료제도의 어두운 면이기도 하다. 그리고 병원을 찾는 인구가 워낙 많아서 의사들이 어쩔 수 없이 하루에 너무 많은 환자를 진료해야 하고, 이로 인한 부작용인 의사들의 만성 피로, 불친절함, 피로도로 인한 의료 사고 등이 있지만, 어쨌든 나는 항상 한국의 헬스케어 시스템은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국 시장을 꽤 잘 아는 이 미국 VC는 나에게 한국의 현재 의료 시스템은 굉장히 발전되어 있지만, 이 시스템에 너무 물들어 있어서 미래의 의료 시스템에 대한 준비를 그 누구도 안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이 말을 하면서 Neko Health라는 회사를 언급했는데, 이 스타트업은 한국에서는 각각의 전문의들이 하는 건강검진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만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예약도 온라인으로 하고 검진 센터에서 스스로 체크인하고, 사람 크기만 한 캡슐로 걸어 들어가면, 이 안에서 여러 가지 센서와 소프트웨어로 꽤 깊은 건강검진을 할 수 있다. 아직 100% 무인화되진 않았고, 채혈이나 혈압 측정과 같은 검사는 실제 간호사가 하지만, 기술이 더 발달하고 연구를 더 하면 이 모든 게 무인화 및 자동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참 재미있는 게, 내가 이 일화를 한국의 친구한테 하니까, 바로 “야, 뭐 하러 그렇게 복잡한 시스템을 개발해. 한국은 그냥 병원 가면 일사천리로 사람들이 다 해주는데.”라는 답변이 날라왔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중국의 딥시크가 생각났다. 중국은 GPU가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엔지니어들이 머리를 쥐어짜 냈고, 결과적으로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 단에서 혁신을 만들었다. 왜 미국이나 유럽이나 한국에서는 이런 혁신이 없을까? 위의 내 친구와 같이, 뭔가 너무 풍요로운 환경에서 살면 “야, 뭐 하러 그렇게 머리를 쥐어짜 내? 그냥 엔비디아 칩 돈 주고 사면 되는데.”라는 숲속에서 나무만 보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인구가 급감하고 있고, 의사와 간호사의 숫자도 계속 감소할 것이다. 한국의 의료 제도가 미래에도 지금과 같이 월드클래스 일진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의사/간호사/병원의 수가 감소할 것이고, 의료보험도 예산 부족으로 인해서 훨씬 더 비싸질 것이다. 현재 우리의 의료 시스템은 기술의 질보단 풍부한 인력 위에서 돌아가고 있고, 계속 이 프레임에서 우린 최적화하려고 하는데, 이제부턴 나무도 좋지만, 숲도 봐야 한다. 현재 한국의 의료 시스템이 너무 잘 되어 있어서, 그 누구도 더 창의적인 생각을 하지 않고, 그럴 여유도 없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해보니까, 한국의 헬스케어 시스템은 장기적으로 보면 앞서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기 시작했다. 민관 차원에서 의대생만 더 배출할 생각만 하지 말고, 더 적은 의사로 어떻게 하면 더 저렴하게 국민들에게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동반되어야 한다. 비대면 진료, 로봇 수술, AI 의료 검사 등,,,할 게 너무 많은데 이 분야에서 더 많은 연구가 돼야 하고, 더 많은 좋은 스타트업이 나와야 한다. 머리를 쥐어짜서 창의력과 파생적 창의력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야 한다.

즉각적인 결정

몇 달 전에 우리 내부 미팅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날 우리가 뭔가를 결정해야 하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 충분한 데이터의 부족, 확신의 부족 등 – 조금 더 생각해 보고 그다음 주 미팅에서 결론을 내리자는 의견이 나왔는데, 나는 그냥 당장 결정하고 끝내자고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이게 맞는 결정이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마도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 같은데, 그래도 나는 시간을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뭔가 결정했다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결정이 틀리든, 맞든.

우리 인생은 크고 작은 결정의 연속 과정이고, 특히나 창업가들은 일반인보다 곱절이나 더 많은 결정을 해야 하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며, 그 결정에 의해서 직접 영향을 받는다. 결정이라는 게 이렇게 중요한데 최대한 많이 고민하고, 최대한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모든 발생 가능한 시나리오를 생각한 후에 결정해야 하는 게 아닌가?

이론적으론 맞지만, 현실적으론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한다. 창업가의 가장 중요한 자질 중 하나는 ‘즉각적인 결정’인데, 아마도 초기 스타트업 창업가가 해야 하는 수많은 결정의 대부분이 그 결정을 위해 필요한 정보가 5%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아무리 더 고민하고 생각을 해도, 5% 이상의 정보를 얻는 건 쉽지 않고, 이런 상황에서 시장 조사나 공부에 시간을 더 쓰면, 그나마 없는 옵션들이 모두 다 없어진다. 그래서 창업가에겐 결정의 질보단 결정의 속도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빨리 결정하고, 만약에 그 결정이 틀리면, 다시 결정하고,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하면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 하지만, 줄에서 가급적이면 떨어지지 않는 – 해야 한다. 틀린 결정을 하더라도, 이 결정을 빨리했다면, 그다음 결정을 할 수 있지만, 너무 느린 결정을 했고, 이게 틀렸다면, 해야 할 그다음 결정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MBA 과정 중 Decision Analysis(DA)라는, 결정을 과학적, 통계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수업이 있는데 나도 이 수업을 상당히 재미있게 들었다. 하지만, 빠른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스타트업 대표에겐 비추하는 수업이다. 왜냐하면 현장에서는 의사 결정 분석을 하기 위한 인풋 자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냥 즉각적으로 결정하고, 또 즉각적으로 결정하고, 계속 이 과정을 반복하는 게 한 번 더 결정할 수 있는 옵션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솔직히 처음부터 맞는 결정이란 어차피 이 세상에 없다. 오히려 즉각적인 결정을 하고, 그 결정이 맞는 결정이 되게 운과 실력을 모두 다 한 방향으로 집중하는 게 올바른 결정을 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정말로 좋은 결과가 만들어지는 걸 나는 여러 번 경험했다.

즉각적인 결정을 잘 못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너무 신중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결정을 하는 게 불편하고 거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다음에, 다음에, 다음에 하고 뭉개는 경우를 나는 너무 많이 봤는데, 이렇게 결정을 미루다가 회사가 망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험을 나는 몇 번 해봤기 때문에, 혹시 우리 투자사 대표님이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즉각적인 결정을 하라고 계속 압박하는 편이다. 불편함과 거북함을 무릅쓰고 지금 당장 결정해서 회사를 살리겠는가, 아니면 즉각적인 결정을 하지 않아서 그냥 마음은 조금 더 편하겠지만 회사가 망하는 걸 선택하겠냐고 말하면서. 솔직히 즉각적인 결정을 하지 않으면, 잠시나마 조금 마음은 편하지만, 이로 인해서 회사가 망하면 평생 마음이 불편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표가 할 수 있는 최악의 결정은 “일주일만 더 두고 보자”이다.

마지막으로, 솔직히 그렇게 오래 고민해야 하는 결정은 이 세상에 없다. 내 경험에 의하면 대부분의 결정은 5분 안에 할 수 있다.

공부 좀 합시다

우린 고등학교 때까진 전 세계 그 어떤 민족보다 열심히 공부한다. 공부로 따지면 2등은 어떤 나라인진 모르겠지만, 그 양과 깊이로 따져보면 1등인 한국과 2등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차이가 날 것 같다.

그런데 고등학교 이후엔? 책과는 담을 쌓고, 그렇게 열심히 하던 공부의 양과 질도 점점 평균 이하로 떨어지면서, 아마도 한국은 100위 권 밖으로 밀려나지 않을까 싶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든 안 하든, 공부량은 압도적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이 패턴이 크게 변하지 않고 유지된다. 한국 성인의 연간 평균 독서량은 4권이 안 되고, 60%가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데, 이건 선진국과 후진국 모두를 통틀어 전 세계 최하위이고, 직장인이나 자영업자나 모두 코인 투자 같은 얕은 잡기 습득 외엔 거의 공부를 안 한다.

내가 종사하고 있는 이 스타트업 분야도 마찬가지다. 일들은 정말 열심히 하지만 더 extraordinary 하게 일을 하거나, 더 extraordinary 하게 성장하려면 공부해야 하는데, 공부하는 사람을 찾는 건 쉽지 않다. 창업가나 투자자나 모두 본인들이 하는 일에 대한 얕은 경험과 지식은 있지만, 여기서 더 깊게 들어가거나 제대로 뭔가를 알려고 하는 분들은 갈수록 유니콘처럼 희귀한 존재가 되고 있다.

창업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사업, 고객, 직원이지만, 경쟁사에 대한 현황 파악도 잘하고 있어야 하고,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의 매크로 시장은 어떻고, 어떤 글로벌 벤치마크가 존재하는지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한국의 창업가들과 이야기해 보면 같은 분야에서 비슷한 사업을 하는 회사나 서비스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특히나 해외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는 걸 자주 경험한다. 전에는 정보의 접근성이 낮아서 외국에는 어떤 비슷한 제품이 존재하고, 이 제품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그 회사의 성장 전략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접하는 게 어려웠지만, 요샌 그냥 검색하거나 AI에 물어보면 웬만한 건 다 찾을 수 있다. 얕은 지식의 대명사인 나 같은 VC도 아는 유명한 미국의 회사와 서비스에 대해서, 이 분야에서 치열하게 사업하면서 유니콘을 만들고 싶다는 창업가가 본인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할 때마다 나는 속으로 짜증이 난다. 공부를 전혀 안 하기 때문이다.

사업은 종합 예술이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완벽하게 알아야 하지만, 내 주변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내가 사업하는 영역에는 국내/국외에 어떤 플레이어들이 있는지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책도 봐야 하고, 잡지도 봐야 하고, 한글과 영문 기사도 열심히 읽고, 팟캐스트도 들어야 한다. 그리고 벤치마킹해야 할 제품이 있다면, 대충 겉으로만 보지 말고 되도록 이 제품의 모든 기능을 다 써봐야 한다. 그러면서 관련 기사, 책, 팟캐스트, 인터뷰 등을 하나씩 복기하면서 내가 속한 분야에 대한 큰 그림을 내 지식을 기반으로 하나씩 재구성하다 보면, 사업에 정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모두 고등학교 때 치열하게 공부했던 경험을 살려서 다시 공부 좀 해보자. 하지만, 제발 이런 콘텐츠를 NotebookLM이나 ChatGPT에 때려 넣고 요약본으로 학습하려고 하지 마라. 남의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드는 데엔 별로 도움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