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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 수업

내가 새 정부의 교육부 관련 공무원이라면, 초/중/고등학교 정규 과목으로 “이메일 커뮤니케이션” 수업 개설하는 걸 제안해보고 싶다. 요샌 카톡과 같은 다양한 메신저들이 존재하지만, 아직 비즈니스의 주 커뮤니케이션 방법은 이메일이고, 나는 이 방법은 앞으로 꽤 오랫동안 지속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나도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커뮤니케이션하지만, 몇 가지 이유로 인해 이메일을 가장 선호한다.
일단 실시간이 아니라서 좋다.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은 그 실시간성 때문에, 어느 순간에는 끊길 수밖에 없는데, 그러다 보면 기억에서 사라지거나 실시간 커뮤니케이션 리스트에서 밀려서, 오랫동안 대화를 이어가는 게 힘들다.
이메일은 계속 과거 히스토리와 기록의 흔적을 남길 수 있어서 좋다. 어떤 이메일은 수백 개의 thread가 달려 있는데, 이걸 처음부터 읽어보면, 그 내용에 대해서 굳이 남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스스로 전방위적으로 이해할 수가 있다(물론, 시간이 좀 걸리긴 한다).
그리고, 이메일은 글솜씨를 완성해준다. 전화 통화를 하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말들을 하고, 쓸데없는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하게 되는 경우가 있지만, 이걸 글로 표현하면, 쓰는 사람도 생각을 하게 되고,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글로 표현하게 되면 내용이 명확하게, 그리고 컴팩트하게 전달된다. 누군가의 말을 들으면, 여러 사람이 이걸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지만, 글로 전달된 내용은 읽는 사람 모두가 대부분 한가지로 정확하게 이해한다.

그래서 나도 누군가 회사를 소개할 때, 카톡으로 소개를 받거나, 카톡으로 회사 자료를 전달해주면, 나한테 이메일로 다시 전달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왜냐하면 서로 이메일 몇 번 왔다 갔다 하다 보면, 그 창업가의 글 쓰는 스타일을 파악할 수 있고, 이분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에 내가 이런 을 쓴 적이 있는데, 창업가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가 바로 글을 잘 쓰고, 이메일을 잘 쓰는 것이다. 내가 아는 창업가 중 모두 다 말은 청산유수처럼 하진 못하지만, 이메일은 잘 쓴다. 팬시하게 쓴다는 뜻이 아니라, 본인의 생각을 글로 아주 명확하게 표현하고, 상대방이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잘 커뮤니케이션 한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어떤 분들의 이메일은 길긴 한데,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도저히 파악이 안 되는 경우도 많다. 나는 이런 이메일 몇 줄 읽어보고 이분을 만날지 안 만날지 결정하는데, 역시 가끔 이런 분들 만나면, 내가 투자하고 싶은 그런 분들은 아니다.

이메일 수업을 만든다면,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한 수업도 하지만, 언제 reply all을 하고, 언제 cc를 하고, 언제 bcc를 하고, 왜 비즈니스 이메일 id를 “iamsofuckinghot” , “haveagoodday” 등으로 하면 안 되는지, 이런 사소한 것도 가르치고 싶다. 나는 너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는걸, 상당히 많은 분이 잘 모르고 있다는 느낌을 매일 받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이든, 대기업이든, 남들과 같이 일하는 사회생활을 잘하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이메일 커뮤니케이션은 필수다. 그리고 이게 잘 안 된다면, 세상 모든 것과 비슷하게, 연습과 훈련을 해야 한다.

우리가 스타트업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요샌 투자 시장이 약간 진정되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것 같은데, 작년 한 해는 정말로 시장에 돈도 많고, 비상장 회사에 대한 투자 열기가 뜨거웠다. 개인들도 이 투자 시장에 많이 참여했지만, 몇 년 전부터 대기업들도 스타트업 투자 시장으로 진입했고, CVC(Corporate Venture Capital) 관련 법들이 하나씩 만들어지면서 이제 웬만한 중소기업은 모두 다 직접 투자할 수 있는 부서를 만들거나,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래서 더 많은 인력이 투자심사역이 되고 있고, 이 분야에서도 이직이 활발하게 –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그리고 자주 – 일어나고 있다.

직접 투자 부서를 만들지 않아도, 내가 만나는 모든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스타트업 투자에 관심이 많다. 결국엔 회사의 성장과 관련된 고민을 하다가 본인들이 모든 걸 직접 다 못 하니까, 다른 회사에 투자하면서 같이 협업하거나, 아니면 결국엔 인수를 통한 비유기적 성장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은 겉으로 보면 너무 다르고, 궁합이 안 맞을 것 같지만, 조합과 밸런싱을 잘하면, 상당히 이상적인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스타트업은 뭔가를 빨리, 자주 시작할 수 있고,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데, 이런 실험을 스케일 할 수 있는 규모가 없다. 반면에 기업은 빨리, 자주 시작하고, 여러 가지 실험을 할 수가 없지만, 확실히 된다고 생각하는 실험은 크게 유통하고 스케일 할 수 있는 규모가 있다. 이 두 가지를 잘 혼합할 수만 있다면, 성공의 방정식이 완성된다.

CVC를 만들거나, 아니면 직접 투자를 몇 년 전부터 시작한 선견지명을 가진 기업들도 많고, 나도 이들과 오랫동안 이야기하면서 가끔 공동투자도 하고,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이런 기업 중 투자를 시작하고 한 1~2년 후의 성적표를 보면, 천차만별이다. 어떤 곳은 투자를 너무 잘해서, 시장에서도 인지도가 높아졌고, 투자한 회사들도 잘 성장해서 유니콘이 된 곳도 있다. 우리도 이런 곳들과는 자주 이야기하고, 공동 투자의 기회를 계속 만들어 보려고 노력한다.

이와 반대로, 어떤 기업은 그 성적이 처참하다. 투자도 거의 못/안 하고 있고, 시장에서의 인지도 자체가 아예 없거나, 아니면 엄청 안 좋아서, 대부분의 창업가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우리도 가급적이면 이런 회사와는 공동 투자를 하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력한다.

내가 몇 년 동안 이런 회사 담당자들과 일을 해보니까, 왜 이렇게 성적이 다른지 확연히 눈에 보인다. 일단 투자를 잘하는 CVC 분들을 보면, 투자를 잘하는 VC의 특성과 성향을 그대로 갖고 있다. 이들은 투자업을 이해하고, 파운더 분들을 존중하고, 절대로 갑질을 하지 않는다. 물론, 대기업이라는 큰 조직에서 투자를 하므로, 스트롱같이 단독으로 투자 결정을 할 순 없고, 항상 기업의 전략과 방향을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의사 결정이 조금 느리긴 하다. 그래도 최대한 빨리 의사결정을 하고, yes와 no를 아주 명확하게 말해준다. 그리고 이메일이든 전화든, 모든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굉장히 프로페셔널하다.

이런 분들의 성적표는 너무 훌륭하다. 이렇게 투자를 2년 정도 했다면, 일단 시장에서 창업가와 다른 투자자들이 인정해주고, 결과도 좋다. 투자한 회사들이 꽤 잘하고 있고, 이미 투자한 회사를 좋은 가격에 인수해서 모기업의 사업에서 전략적인 시너지가 발생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와 반대로, CVC 설립하고,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생태계를 잘 만들겠다고 크게 선언하고 투자를 시작한 기업 중 성적을 매기자면 F 학점인 곳들도 은근히 많다. 그런데 실은 이런 회사의 투자담당자들과 한 번이라도 이야기하거나 미팅을 했다면, 이런 초라한 결과는 전혀 놀랍지 않다. 담당자들은 투자에 대해서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본인들 명함을 믿으면서 갑질을 너무 많이 한다. 특히 이런 분들의 특징은 의사결정을 아예 하지 않거나, 굉장히 느리다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형편없다. 본인들이 필요하면 자료 달라고 닦달하지만, 남들이 필요한 답변은 절대로 해주지 않고, yes도 아니고 no도 아닌, 항상 애매한 이야기만 한다.

이런 분들이 기업에서 투자업무를 담당하면, 그 CVC는 그냥 망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런 담당자를 투자업무에 배치한 회사의 문제가 더 크다. 결국, 그 회사의 채용 역량과 회사가 인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능력없는 기업과 그 기업의 투자 담당자들을 만나면, 오히려 미소가 절로 생긴다. 이런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이 이렇게 큰 기업이 됐고, 지금은 잘하고 있다면, 우리가 투자하는 스타트업들은 더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꿈을 꾸기 때문이다. 더 좋은 사람들로 구성된 스타트업이 이런 대기업들을 수년, 또는 수십 년 내에 완전히 파괴하고 갈아 엎어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결국엔 모든 건 사람이 하는 거니까, 이게 꿈이 아니라 곧 현실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자부한다.

실은 큰 기업은 스타트업의 속도로 갈 수가 없다. 스타트업의 속도로 갈 수가 없다면, 그래도 따라가려고 노력하거나, 아니면 완전히 비켜주거나 해야 하는데, 그 길목을 막는 경우가 너무 많긴 하다.

늦게 들어오는 코파운더

전에 낳아준 엄마와 키워준 엄마라는 글에서 회사를 만들기만 하고, 실제 성장에는 크게 기여하지 않고 퇴사한 코파운더에 대한 내 의견을 공유했다. 오늘은 그 반대 개념의 이야기인 나중에 회사에 조인한 코파운더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이것도 종종 보는 케이스이다. 예를 들면 원래 회사를 3명의 코파운더가 창업했고,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1명 또는 2명이 퇴사를 했고, 어느 순간에 제삼자가 높은 지분을 확보하면서 코파운더로 회사에 조인하는 경우인데, 나는 이런 걸 재혼한 코파운더 케이스라고도 한다.

주로 오리지널 코파운더인 대표이사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지인인데, 수개월 동안 여러 차례 만나면서 회사의 비즈니스에 대해서 상당히 잘 파악을 하고 있고, 이제 막 스타트업에 조인하기 때문에 의지와 파이팅도 넘치는 분이 C급 인력으로 회사에 오기로 이야기가 되는 경우이다. 그런데 본인이 연봉이나 혜택, 그리고 여러 가지 지위를 희생하면서 작은 스타트업에 조인하기 위해서는 뭔가 강력한 인센티브가 필요하고, 돈도 중요하지만, 회사의 지분을 상당히 많이 확보하고싶어한다. 스톡옵션도 아닌 코파운더 수준의 주식을 요구하고, 회사가 창업된 지 이미 시간이 지났지만, 실질적으로 코파운더로서 회사에 조인 하길 원한다.

나도 이런 사례를 여러 번 봤다. 그리고 코파운더가 늘어나는 건 회사에 정말 중요한 결정이기 때문에 이사회의 승인을 거쳐야 하는데, 승인한 경우도 있고, 강력하게 반대한 경우도 있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이런 재혼하는 코파운더 케이스는 결말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코파운더의 자리란 달라고 해서 얻는 게 아니다. 본인이 정말로 회사를 만들어서 코파운더가 되거나 아니면 코파운더 수준으로 열심히 해서 회사의 성공에 기여하고, 그리고 회사에 대한 오너십과 애정이 있어야 한다. 이걸 본인이 스스로 인정하는 게 아니라, 같이 일하는 동료와 다른 코파운더들이 인정을 해줘야지만 코파운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중에 회사에 조인하는 분들은 이런 마인드와 태도를 갖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현명한 파운더라면 본인의 주식을 주기보단, 역시 스톡옵션을 잘 활용한다. 아무리 오랫동안 알고 지낸 분이라서 믿음이 가고, 사업 능력이 뛰어나도, 이건 남의 회사에서 일할 때지, 우리 회사에서 일 했을 때의 결과나 성과는 아직 증명되기 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스팅 기간을 충분히 두면서 스톡옵션을 부여하면, 서로의 리스크를 충분히 줄이면서 원하는걸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분열

요샌 USV의 Fred Wilson도 반 은퇴한 삶을 살고 있어서, 블로깅 주기가 점점 더 길어지고 있지만, 올라오는 글들은 역시 통찰력이 넘쳐흐른다. 나는 주로 비상장 시장에서 활동하고 있어서, 상장 시장의 상황을 다각도에서 분석하는 능력이 없는데, 이 을 읽으면서 그동안 과열된 시장에 대한 내 생각과 고민을 하나씩 다시 비교해 볼 수 있었다.

아마도 이런 내용인듯싶다. 상장 시장에서의 기업 가치와 비상장 시장에서의 기업 가치는 비슷한 회사를 비교하면, 항상 차이가 난다. 특정 분야의 회사는 그 차이가 더욱더 크다. 여러 가지 이유와 이론이 있는데, 내가 가장 수긍이 잘 가는 내용은, 비상장 시장은 소수의 투자자들이 회사의 주관적인 수치와 미래의 가능성을 기반으로 기업 가치를 정하고, 상장 시장은 다수의 투자자들이 회사의 객관적인 수치와 현실을 기반으로 기업 가치를 정하기 때문에, 이렇게 기업 가치에 차이가 나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여러 data를 분석해보면, 실제로 상장 시장과 비상장 시장의 기업 가치에는 항상 어느 정도의 차이가 존재했다. 그런데 이 ‘어느 정도의’ 차이의 간격이 몇 달 전부터 상당히 벌어지기 시작했다(또는, 어떻게 보냐에 따라서, 좁혀지기 시작했다).

2년 동안의 팬데믹을 거치면서 상상 이상의 돈이 비상장 회사에 – 특히, 테크 스타트업 – 투자되면서, 이 회사들의 기업가치는 천문학적으로 높아졌다. 전 세계 유니콘 기업 수가 1,000개가 넘은 게 그 직접적인 산출물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상장 회사들의 시총은 타격을 받고 있고, 특히 팬데믹 수혜주들의 주가가 급격하게 빠지고 있다. 아마도 이제 오미크론 변이가 우세종이 되면서 팬데믹이 곧 끝날 거라는 기대심리가 시장에 영향을 미치면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게 아닐까 싶고, 그동안 올라갔던 상장 시장의 시총이 모두 빠지진 않겠지만, 어느 정도 수준으로 내려올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비상장 시장과 상장 시장의 기업가치의 간격은 다시 한번 일정 수준을 유지할 텐데, 그러기 위해선 비상장 기업가치가 내려오지 않을까 싶다. 내가 봐도 현재 스타트업 시장은 너무 과열되어 있는데, 올해 하반기 정도가 되면 이 열기는 조금 식지 않을까 싶다.

얼마 전에 Index Ventures의 Mark Goldberg의 트윗이 이런 현상을 잘 설명한다(마크는 드롭박스에서 일 한 경험이 있다)

“내가 2013년도 드롭박스로 이직했을 때, 당시에 $10B 밸류에이션에 시리즈 C 투자를 마무리했었다. 지금 드롭박스의 매출은 수조 원인데, 2013년도에 비하면 거의 1,000%의 매출 성장인 셈이다. 그런데 현재 상장 시장에서 드롭박스의 시총은 $9.5B이다…최근에 유니콘 된 스타트업들도 조심해야 할 것이다.”

빠른 거절

얼마 전에 어떤 회사의 자료를 검토했는데, 자료만 봐도 우리가 투자하고 싶은 회사가 아니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고, 굳이 서로의 시간을 낭비할 필요 없이 미팅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이러이러한 이유로 우린 더 이상 검토를 하지 않겠다고 거절을 했다. 나야 워낙 거절을 많이 하고, VC는 주로 Yes보단 No를 더 많이 하는 직업이라서 관련해서 더 이상 큰 고민을 하진 않았다.

그런데 이 회사의 대표에게 답변이 왔다. 다른 투자자는 만나도 아무런 피드백이 없고, 거절은 안 하지만 그냥 빙빙 돌려서 말하거나 대충 뭉그적거리는데, 그냥 확실하게 관심 없어서 안 만나겠다고 거절해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본인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해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솔직히 이런 이메일도 자주 받기 때문에 이분이 정말로 고마워서 답변을 한 건지, 아니면 감정이 상한 걸 돌려 말 한 건진 잘 모르겠다(그리고 솔직히 그런 것까지 생각하고 고민하면 난 이 일을 못 한다). 하지만, 아주 투명하고, 솔직하고, 빠른 커뮤니케이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로서는 이분이 진심이었다고 믿고 싶다.

현대인은 정말 바쁘다. 그리고 혼자서 수백 가지 일을 처리해야 하는 창업가들은 바쁜 사람 중에 제일 바쁜 사람들이다. 나는 이렇게 바쁜 사람들에게 우리 같은 투자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투자해서 한배를 타는 것이지만, 투자하지 못 하면, 최소한 이렇게 솔직하고 빨리 거절을 해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야지 이들도 move on하고 다른 투자자와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Yes도 아니고, No도 아닌, 애매한 상태로 이 관계를 계속 유지하면, 투자자로서는 큰 손해를 보지 않지만, 창업가로서는 이게 희망고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린 아니다 싶으면, 가급적이면 빨리 답변을 하면서 최대한 자세한 피드백을 주려고 노력한다. “최대한 자세히”라고 말하는 이유는, 가끔 우리 내부의 생각을 완전히 투명하게 공유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인데, 그래도 공유할 수 있을 정도의 내용을 솔직하게 알려주려고 노력한다. 우리와는 2시간 정도 미팅했고, 투자자는 2시간을 사용했지만, 이 미팅을 위한 준비 과정까지 합치면 창업가는 10시간 정도의 시간을 썼을 것이기 때문에, 이 시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솔직함과 신속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가끔, 이렇게 빨리, 그리고 솔직하게 거절을 하면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역반응이 오는 경우도 있다. 너무 빨리 답변을 준 것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야기도 안 하고 그냥 귀찮아서 거절한 게 아니냐는 불평을 하는 분들도 있었고,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이렇게 직설적인 피드백을 주면서 자신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냐 하면서 서운해하신 분들도 있다.

혹시 나/우리한테 이런 부분 때문에 서운하거나 빡친 분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사과하고, 그런 의도는 전혀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어쨌든, 투자거절의사는 표현 안 하는 것보단 확실하게 해주는 게 더 좋고, 이왕 해주려면, 최대한 빨리 알려주는 게 가장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