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ategy

입장료

우리는 주로 최초의 투자는 2억 원 정도를 한다. 이후, 금액은 크진 않지만, 몇 번 더 후속 투자를 하는 방식으로 투자를 한다. 실은 초기 투자금 1~2억 원은 요새는 큰돈은 아니다. 워낙 경쟁이 심해졌고, 인력이 비싸져서, 이 돈으로 뭔가 엄청난 제품을 만들거나, 초고속 성장을 하는 회사는 드물다. 실은, 이 돈으로 MVP도 못 만드는 회사도 많고, 이런저런 실험을 하면서 삽질만 하다가 자금을 다 소진하고, 후속 투자가 필요한 회사도 있다.

나도 처음 투자를 시작할 때는, 1억 원 정도 투자하면 이 돈으로 엄청난 제품을 만들고, 막강한 매출과 사용자 수를 달성해서, 훨씬 큰 밸류에이션에 후속 투자를 받고, 곧바로 유니콘 회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다. 그런데 7년 동안 90개가 넘는 회사에 투자하면서, 내가 참 순진하고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는 걸 자주 경험하고 있다. 요새 나는 우리의 이 작은 초기 투자금은 일종의 입장료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설명해보면, 너무 초기 회사라서 제품과 비즈니스, 그리고 시장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좋은 대표와 팀이라서 자주 만나서 이야기하면서 이 팀과 개인적으로 더 친해지고, 알아가고 싶은 경우가 자주 있다. 한 두 번 정도는 내가 회사 사무실로 찾아가고, 팀이 우리 사무실로 찾아와서 한 두시간 정도 이야기 하는 건 괜찮지만, 투자도 하지 않으면서 계속 이 팀의 시간을 뺏는 건 서로한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정말로 이 팀을 내 곁에 조금 더 가까이 두면서, 회사에 대해서 배우고, 제품에 대해서 배우고, 팀에 대해서 배우고 싶다면, 그때 소액의 초기 투자를 한다.

이 투자금으로 회사가 비약적으로 성장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고, 실은 이게 모든 VC의 꿈이긴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게 안 된다. 다만, 우리는 회사에 소액 투자를 해서 주주가 되었고, 이 팀은 우리의 돈을 받아서 우리와 가끔 만나서 비즈니스에 대한 업데이트와 시장에 대한 정보를 줘야 하는 어느 정도의 의무가 있기 때문에, 우리도 이분들한테 연락해서 조금은 귀찮게 하는 거에 대해서는, 투자를 전혀 하지 않았을 때 보단 덜 미안하다.

그래서 나는 소액의 초기 투자금은 이 회사를 더 알아가고, 회사의 성장을 가까이서 자세히 보기 위해 우리가 지급해야 하는 일종의 입장료라고 생각한다. 입장료는 말 그대로 어느 곳에 들어가기 위해 지급하는 돈이다. 클럽이라면, 입장료 내고 들어가서 또 돈 내고 술을 먹어야 하고, 놀이동산이라면, 입장료 내고 들어가서 놀이기구를 타려면 또 돈을 내야 하듯이, 초기 투자를 한 후에, 회사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후속 투자를 할 수 있다.

이 후속 투자를 할 때, 초기에 이미 투자했으면, 여러 가지 면에서 유리하다. 일단, 초기에 투자했기 때문에 후속 투자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pro-rata 권리), 이미 회사의 대표와 창업팀과 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왔기 때문에 혹시나 이런 권리를 확보하지 않았어도, 재투자를 할 수 있는 인간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회사 시작부터 비즈니스를 같이 봤고,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도 어느 정도 참여를 했고, 시장과 고객을 분석하는 과정도 옆에서 봤기 때문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팀, 제품, 시장의 장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 팀을 처음 보는 투자자의 관점에서는 회사의 성장이 더디고, 매출이 없고, 수치가 약하더라도, 오랜 시간 이 팀을 본 투자자는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더 자신 있게 재투자를 할 수 있다.

우리도 자주 경험하는데, 스트롱 투자사가 후속 투자가 필요할 때, 대부분의 VC가 관심 없어서 우리만 후속 투자를 하는 경우가 있다. 남들은 왜 이런 회사에 또 투자하냐고 의아해하지만, 위에서 말한, 단시간 안에는 파악할 수 없는 회사의 장점을 우리는 알고, 또 믿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예상대로 잘 되는 회사도 있지만, 잘 안 되는 회사가 훨씬 더 많다 🙂

습관을 바꾸는 훈련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쿠팡이 소프트뱅크로부터 2조 원이 넘는 투자를 새로 받으면서, 한국 최초 데카콘(=기업가치 10조 원 넘는 비상장 스타트업)의 영광을 곧 차지하게 될 것 같다. 우리도 쿠팡의 소액주주로서 상당히 기쁘고 자랑스럽다. 대단한 기업이지만, 아직 경쟁도 많고, 넘어야 할 산도 많다. 기업가치는 엄청나게 커졌지만, 아직도 쿠팡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이커머스 서비스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난 쿠팡이 망하지 않고 계속 잘 성장할 거라고 믿는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는 다른 서비스가 하지 않았던 새로운 방법으로 시장을 직접 훈련시켰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렇게 직접 시장과 고객을 훈련하는 비즈니스를 하면서,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시장과 고객의 습관을 바꾸고 있다는 점이 매우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쿠팡이나 티몬 이전에도 한국에는 지마켓을 비롯한 다양한 온라인 쇼핑몰이 있었다. 하지만, 기존 이커머스 사이트는 누가 봐도 깔끔 과는 거리가 멀었고, 이로 인해 사용자 경험이 불편했다. 쿠팡과 티몬의 창업자들은 미국식의 UI와 UX를 많이 도입해서 단순하고 직관적인 이커머스 플랫폼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내 기억으로는 처음에는 한국 시장에서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렸다. 이걸 보고 전문가들은 원래 한국 시장은 미국같이 깔끔한 디자인보다는 아기자기하고 복잡한 UI를 선호한다고 했는데, 그건 아마도 그렇게 사용자들이 길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티몬과 쿠팡, 그리고 그 이후에 나온 수많은 이커머스 플랫폼들은 매우 직관적이고, 깔끔하고, 눈에 피로도를 최소화하는 UI를 사용함으로써, 쉽고 재미있는 온라인 쇼핑의 경험을 제공했다. 여기에다가 모바일 플레이까지 합쳐지면서, 인터넷/모바일 쇼핑은 단순 구매가 아닌, 보는 즐거움까지 제공해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국 시장의 온라인 쇼핑 습관도 바뀌었다. 쿠팡은 사용자들이 쉽고 깔끔하게 온라인 쇼핑을 하도록 시장을 훈련했다.

쿠팡맨의 경험도 비슷한 선상에서 설명해볼 수 있었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쿠팡맨 이전에는 대부분의 택배기사가 고객의 물건을 문 앞에 던지다시피 하고, 빨리 다음 배달장소로 가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쿠팡맨이 등장하면서 그전에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고객과 회사의 마지막 접점인 last mile 담당자 택배기사들의 중요성을 시장이 인식하기 시작했다. 쿠팡은 고객들이 자신들이 구매한 물건을 친절하고 책임감 있는 택배기사들한테 받도록 시장을 훈련했다. 쿠팡맨 정도까진 아니지만, 많은 택배기사가 요샌 조금 더 친절해진 거 같다.

시장의 습관을 바꾸는 건 정말 어렵다. 처음엔 고객의 저항도 있고, 경쟁사의 저항도 있지만, 새로운 방법으로 뭔가를 하도록 시장을 훈련하는 비즈니스는 결국 시장에서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바꾸기 힘든 걸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서 바꾸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마존은 책과 세상의 모든 물건을 온라인으로 사고팔도록 세상을 훈련시켰기 때문에, 한번 훈련된 아마존의 고객을 빼앗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미국의 Craigslist는 중고제품을 개인들이 직거래할 수 있도록 세상을 훈련시켰기 때문에, 그 오래된 UI와 최적화되지 않은 UX를 기반으로 아직도 중고거래의 일인자 자리를 빼앗기지 않고 있다.

우리 서비스는 기존 방식을 조금 더 싸고, 빠르고, 좋게 개선하고 있는지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시장을 훈련하고 있는지 한 번 정도 고민해봐도 좋을 거 같다.

무의식적 브라우징

우리 투자사 당근마켓은 모바일 기반의 지역주민 중고거래 서비스를 만들고 있다. 실은 중고나라나 헬로마켓과 같은 굵직한 서비스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 시장이지만, 후발 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빠르고 질 좋게 성장하고 있다. 당연하지만, 많은 분이 당근마켓에 대해서 가장 많이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가 기존 서비스들과의 차이점이다. 실은 중고나라에 비해서는 판매되는 물건 수가 절대적으로 작아서 유동성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고객들의 체류 시간과 engagement 자체는 상당히 높다. 오히려 기존 서비스들보다 더 높지 않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나는 그 이유가 항상 궁금했었는데, 얼마 전에 당근마켓 대표님과 이야기하면서 힌트를 얻었다. 중고나라에 접속하는 사용자의 행동 패턴을 보면, 서비스에 접속하기 전에 “오늘 밤에 중고나라에 들어가서 xxx 있는지 한 번 봐야겠다”라는 마음의 결정을 하고, 접속한 후에 내가 이미 생각하고 있던 그 필요한 제품을 열심히 검색한다. 싸고 좋은 제품을 찾으면, 구매를 시도하지만, 없으면 그냥 다시 나온다. 무슨 말이냐 하면, 특정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서비스를 브라우징한다.

당근마켓은 다르다. 당근마켓을 사용하는 분들은 특별히 뭔가를 찾거나, 또는 구매하기 위해서 앱을 실행하는 게 아니고, 그냥 시간 날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이 앱을 열고, 그리고 그냥 올라와 있는 물건들을 계속 스크롤 하면서 본다. 마치 뭔가를 구매하는 중고거래가 아닌, 모바일 잡지나 페이스북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패턴과 유사한 행동 패턴이 보인다. 여기서 엄청난 차이가 발생한다. 이런 무의식적이고, 머리가 아닌 손가락이 주도하는 브라우징이 가능한 큰 이유는 당근마켓이 모바일 플레이를 워낙 잘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모바일이 아닌 데스크톱 기반이었다면, 이렇게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앱을 실행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실은, 이러한 패턴은 데이팅 앱에서도 극명하게 보인다. 데스크톱 기반의 1세대 데이팅 사이트인 eHarmony.com이나 한국의 듀오와 같은 제품은 회원 등록하고, 서비스를 사용하려면, 비장한 마음의 각오가 필요하다. 내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기 위한 심각한 목적으로 이 서비스를 사용하는 것이고, (지금은 모바일 플레이도 하지만) 데스크톱 기반이기 때문에, “오늘 밤에 집에 가면, 세수하고, 책상에 앉아서 듀오 들어가서 꼭 내 반쪽을 찾아야지” 또는 “지금은 바쁘지만, 이따 시간 좀 나면, PC 앞에서 차분히 eHarmony 좀 둘러봐야지”라는 각오한 후에 서비스에 접속한다.

하지만, 틴더 같은 모바일 앱이 탄생하면서, 이런 데이팅 앱의 패턴이 달라졌다. 일단 모바일 앱이기 때문에, 굳이 시간을 정하거나 데스크톱이 있는 물리적인 공간이 필요 없게 됐다. 그냥 사무실이든, 지하철이든, 길거리든, 식당에서 주문받기 전에, 아무 곳에서나 손가락 하나로 앱을 실행하고, 내 취향에 맞을법한 이성을 아주 가볍고 캐주얼하게 브라우징할 수 있다. eHarmony나 듀오와 같은 서비스는 머리와 이성이 주도하는 브라우징이 되어야 하지만, 틴더는 그냥 손가락이 주도하는 무의식적인 브라우징이 가능하다.

당근마켓이나 틴더와 같은 모바일 앱은, 중고거래와 데이팅이라는 최종 목적을 위한 서비스지만, 사용자들의 이용 방법은 그냥 재미있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패턴과 같다. 이렇게 하면 체류 시간이 절대적으로 늘어나고, 결국 체류 시간이 늘어나면, 서비스가 최종적으로 목표로 하는 결과를 다양한 방식으로 달성할 수 있다. 같은 버티컬이라도, 세련된 모바일 플레이와 조금 다른 접근방법이 엄청난 차이를 만들 수 있다.

리퍼럴 게임

새로운 제품을 출시할 때 가장 고민되는 것 중 하나는 초기 고객 모집이다. 제품이 아무리 좋아도, 우리 제품을 시장에 알려야 하고, 한 번 사용해본 고객이 다른 고객한테 서비스에 대해서 좋은 이야기를 해주는 선순환 사이클을 만들어야 하는데, 워낙 새로운 서비스가 홍수같이 출시되기 때문에 이게 말만큼 쉽지가 않다. 물론, 제품이 좋으면, 알아서 마케팅되고 많은 고객이 몰리는 건 사실이지만, 이 과정을 더욱더 가속해서 성장하기 위한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리퍼럴(=referral) 프로그램이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사용한 서비스를 다른 지인한테 알려주고, 그 지인이 내 소개를 받아서 서비스를 사용하면, 나도 뭔가 혜택을 받고, 그 지인도 혜택을 받고, 이 방법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다단계 마케팅과 비슷한 방법으로 널리 확산하면서 서비스가 성장한다.

우리가 잘 아는 많은 회사가 – 아니, 대부분 유니콘 회사들이 – 리퍼럴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신규 고객을 모집하고, 기존 고객을 유지한다. 드롭박스의 경우, 나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sign up 하면, 더 많은 저장공간을 제공해주고, 우버는 우버 크레딧을 제공해준다. 이 외에도 수많은 리퍼럴 방법과 프로그램이 있고, 어떻게 보면 너무 뻔하지만, 아직도 나름 효과가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게 새로 생기는 수많은 서비스의 확산과 성장이 증명해주고 있다.

나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통해서 여러 번 올렸는데, 최근에 내가 알게 된 Morning Brew라는 소식지가 있다. 실은 뉴스레터라는 말을 듣기만 해도 토할 정도로 소식지가 많은데, 모닝브루는 내용 자체가 상당히 좋아서 거의 매일 읽는 몇 안 되는 이메일이다. 월가의 금융 소식부터 워싱턴 DC의 정치 소식, 그리고 실리콘밸리의 tech 소식 중 읽을 가치가 있는 내용을 간추려서 매일 보내주는 소식지인데, 너무 길지도 않고, 너무 짧지도 않고, 너무 심각하지도 않고, 너무 가볍지도 않고, 하여튼 딱 알맞게 큐레이션 해서 보내준다. 누가 이걸 만드는지 좀 조사해보니, 2015년도에 미시간 대학교 학생이었던 젊은 친구들이 만든 서비스다. 채용 인터뷰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면접을 잘하기 위해서 가장 많은 정보를, 가장 짧은 시간 동안, 가장 재미있게 흡수할 방법을 연구하던 중 모닝브루가 탄생하게 된 거라고 한다. 즉, 밀레니얼들을 위한 “일일 비즈니스 브리핑 소식지”라고 보면 딱 맞을 거 같다.

모닝브루도 리퍼럴 프로그램을 통해서 구독자를 모집하는데, 상당히 세련되게 한다. 그렇다고 다른 서비스같이 소개 당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몇 명이 모이면, 회사의 머그잔이나 티셔츠를 주는 건데, 이걸 진행하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고, 계속 이 소식지를 내 주변 지인들에게 알려서 뭔가를 내가 계속 받게끔 자극하는 방법이 재미있다. 실은 나도 의도한 건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분이 나를 통해서 구독해서, 티셔츠부터 스웨터까지 다 받았다 🙂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3가지이다:
1/ 리퍼럴 프로그램이 좀 오래된 방법이지만, 아직도 효과적이다
2/ 어떻게 사용하냐에 따라서 그 결과에 차이가 크게 날 수 있는데, 이건 디테일의 싸움이다
3/ 기본은 서비스의 품질이다. 모닝브루가 재미있는 리퍼럴 프로그램을 도입했지만, 이게 성공할 수 있는 배경은 사람들한테 유용하고, 남과 공유하고 싶어 하는 그런 콘텐츠를 만들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이 작동할 수 있는 거다. 뉴스레터 내용이 허접했다면, 나도 그 누구한테도 추천하지 않을 것이다

앱 정리

나는 오래된 아이폰 6을 사용하는데, 용량이 한참 모자라서 이제는 더는 새로운 앱을 설치하지 못한다. 새 앱을 설치하려면, 기존에 깔린 앱을 지워야 하고, 새 사진을 찍으려면, 기존 사진을 좀 지우거나, 드롭박스로 옮겨야 한다. 처음에는 너무 불편해서, 메모리가 더 큰 새 폰으로 바꿀까 했는데, 이렇게 사용하는 게 점점 익숙해졌고, 이젠 오히려 생활이 더 단순하고 편해졌다. 즉, 용량 문제로 여러 앱을 설치하지 못하니까, 정말로 필요한 앱만 깔고, 그 외의 앱은 거의 다 지우게 된다.

특히, 미국 출장 가면 한국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에어비앤비, 우버, 옐프, 구글맵스, 미국 스타벅스 등의 앱을 다시 설치하고, 이 앱들을 설치하기 위한 공간확보를 위해 일단 몇 개의 앱들을 없애야 해서 얼마 전에 미국 출장 가기 전에 대대적으로 폰의 앱과 사진 정리를 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앱을 만들어서 출시하고, 사람들한테 알리고, 사용하게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일단 가장 먼저 지운 앱들은 결제 관련된 앱들인데, 내가 주로 사용하는 메인 앱 외에는 특정 상점에서 뭔가 할인받기 위해서 설치했던 앱들이다. 우리 집 앞에 아티제 빵집이 있는데, 페이코로 결제하면 50%까지 할인해 줘서 당시 가게 안에서 열심히 설치하고, 회원 가입을 했던 기억이 나는데, 신용카드보다 사용하기 불편하고, 다른 가게에서는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지웠다. 이렇게 상당히 많은 앱을 삭제해서 공간 확보를 했다.

검색을 해보니, 애플과 구글 앱스토어에는 현재 400만 개 이상의 앱이 있다고 한다. 앱 홍수 속에서 내가 새로 만드는 제품이 발견되고, 설치되고, 사용되고, 사랑받게 하는 건 이제 정말 어려워졌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런데도, 매일매일 사람들의 입에 오르고, 손가락으로 만져지는 좋은 제품들이 새로 시장에 진입한다. 이런 앱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일단 자주 사용하고,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유틸리티 성격의 앱이다. 위에서 페이코 이야기를 했는데, 실은 결제 앱이야말로 유틸리티 성향이 강하지만, 자주 사용하게 만들기 힘든 서비스다(우리나라는 신용카드 사용이 워낙 쉽기 때문에). 참고로 난 페이코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좋은 앱이고, 잘 만들었겠지만, 단지 나한테는 별로 유용하지 못할 뿐이다.

또 다른 카테고리는 자주 사용하진 않지만, 언젠가는 꼭 필요한 성격의 앱이다. KTX나 SRT와 같은 앱이 여기에 속한다. 솔직히 썩 잘 만든 앱은 아니고, 사용할 때마다 아쉽지만, 가끔 기차를 이용해야 하고, 이럴 때는 가장 편하고 어떨 땐 유일한 표 구매 방법이기 때문에 자주 사용하진 않지만, 꼭 폰에 갖고 있어야 하는 앱이다.

이 두 카테고리에 확실히 끼지 않고, 중간에 어정쩡하게 위치하면, 앱을 성공시키긴 쉽지 않다. 많은 사람이 마케팅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fake 마케팅으로 끝날 확률이 상당히 높고, 마케팅 예상이 소진되면, 사용도와 트래픽 자체도 같이 없어질 것이다. 실은 자주 사용하는 앱, 또는 가끔 사용하지만 꼭 필요한 앱, 외에도 그냥 새로 출시되면 신기해서 사용해보는 앱도 있다. 하지만, 이런 앱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주 사용하거나 반드시 필요한 카테고리로 진입하지 못하면, 그냥 반짝 유행하고 사라질 것이다.

좋은 제품을 만드는 건 기본이지만, 포지셔닝 또한 매우 중요하다. 결론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