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

셀미트

지난 주에 미국의 Memphis Meats가 1,900억 원 정도의 투자를 받았다는 기사가 발표됐다. 빌게이츠와 리처드 브랜슨과 같은 유명한 개인들도 투자한 이 회사는 2015년도에 창업된 회사인데, 배양육을 개발하고 만드는 최첨단 기술의 스타트업이다.

지구에는 약 80억 명의 인구가 살고 있고, 이들이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해서 1년에 소비하는 가공 육류는 – 소, 돼지, 닭만 – 3억 톤 이상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해마다 700억 마리의 가축이 도살되고 있다. 앞으로 늘어나는 육류 소비량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더욱더 많은 가축을 사육해야 하고, 죽여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가축사육 시스템으로는 늘어나는 육류 소비량을 막대한 경제적, 환경적, 윤리적 파괴가 없이는 만족시킬 수가 없기 때문에, 이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단백질을 만드는 방법을 근본적으로 새로 개발해야 한다.

여기서 대체육이 등장한다. 지금까지 우리한테 익숙한 대체육은 요새 고공비행하고 있는 Beyond Meat나 Impossible Foods가 만드는 식물성 단백질 기반의 ‘가짜’ 고기다. 나는 둘 다 먹어봤고, 비욘드 미트의 초기 제품부터 먹어봤는데, 그렇게 맛이 없던 가짜고기를 현재 수준까지 끌어 올린걸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 쪽으로는, 과연 과학의 힘으로만 진짜 고기의 맛과 질감을 식물성 단백질로 구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을 항상 갖고 있다.

환경, 경제, 윤리적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으면서도 동물성 단백질의 맛과 질감을 그대로 구현할 수 있는 게 바로 Memphis Meats와 같은 회사가 풀려고 하는 숙제이다. 바로 배양육(cultured meat)이라는 분야인데, 가축을 죽이지 않고 실험실에서 동물성 단백질을 만드는 분야이다. 즉, 실험실에서 진짜 고기를 만드는 기술이다. 나는 식물성 단백질 보단, 오히려 배양육 기술을 통해서 실험실에서 완벽한 동물성 단백질을 만들 수 있다면, 이게 진짜 고기의 맛과 질감을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런 최첨단 기술은 미국이나 이스라엘에서 오래전부터 연구되었고, 관련 스타트업도 몇 년 전부터 해외에서 생겨나기 시작했다. 한국은 대체 단백질 경주에 늦게 뛰어들었다. 시장은 충분히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기술력, 자본력, 인력 면에서 아직은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따라잡아야할게 많을 것이다. 우린 작년에 전라도 광주에 있는 배양육 스타트업 셀미트에 투자했다. 한국에도 이 정도 배양육 기술력을 가진 팀이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고, 우리에게 이런 좋은 팀에 가장 먼저 투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게 매우 감사했다.

실은, 이런 기술이 상용화 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긴 하다. 크게 보면 두 개의 큰 산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실험실에서 고기를 만드는 건 지금도 가능하지만, 저렴한 가격에 많은 사람이 구매해서 먹게 하려면 대량생산체제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건 큰 자본과 생산 노하우가 필요한 어려운 일이다. 또한, 이론적으로 보면 실험실에서 만든 고기가 도축한 고기보다 안전하고 맛있지만, 이걸 대중에게 판매하기 위해서는 관련 부처의 승인이 필요한데, 분명히 축산업계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정부에서는 규제하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양육이 대중화가 된다면, 이건 정말 우리의 라이프스타일 자체를 크게 바꿀 수 있는 기술이기 때문에 나는 셀미트와 배양육 시장에 거는 기대가 매우 크다.

집 밖은 위험해

bkk얼마 전에 이런 기사를 읽었다. 주로 밀레니얼이라고 하면, 구세대보단 훨씬 더 활동적이고, 뭔가 외부 활동을 많이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기사에 의하면 오히려 밀레니얼들이 가장 ‘방콕’을 선호한다고 한다. 여기에 의하면 18세~24세 미국 젊은이들이 평균 미국인 대비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70% 더 많다고 한다. 그리고 정확한 원인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지만, 그동안 오프라인에서 하던 많은 활동이 온라인으로 옮겨서 갔고, 넷플릭스, 배달 등과 같이 집을 떠나지 않고, 더 저렴하고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트렌드가 부상했고, 또는 외출해봤자 인생 별로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설 등이 있다.

나도 이런 트렌드를 요새는 직접 체감하고 있는데, 강남 일대의 늘어나고 있는 빈 빌딩과 “임대” 사인을 보고 특히 이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고, 와이프랑 이런 현상에 대해서 종종 대화를 나누곤 한다. 일단 압구정동과 청담동 쪽으로 다니다 보면, 가장 인기가 많다고 하는 대로변에 있는 건물 중 1층이 빈 곳이 상당히 많다. 대부분 사람들이 이걸 보면 요새 경기가 너무 안 좋다고 하는데, 나는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한다. 경기가 정말로 좋은지, 안 좋은지는 내가 경제학자가 아니라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이젠 사람들이 과거와 같이 오프라인 매장이나 식당에 물리적으로 잘 안 오기 때문에, 오프라인에 들어올 만한 가게나 매장이 없는 게 조금 더 정확하다고 본다.

대로변 1층 매장에 옷가게가 들어와도 금방 망해서 빠지고, 식당이 들어와도 금방 망해서 또 빠지는데, 이 현상을 보고 경기가 좋지 않아서 사람들이 외식을 안 하고, 옷을 안 산다고 하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요샌 더 맛있는 음식을 더 많이 먹고, 더 많은 사람이 쇼핑을 하고, 더 많은 사람이 영화를 본다. 내가 보기엔, 그 이유는 점점 많은 사람들이 – 특히, 밀레니얼들 – 집에서 배달 시켜 먹고, 집에서 인터넷으로 옷을 구매하고, 집에서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기 때문이다. 이 글 처음에서 언급한 대로 과거에는 집 밖으로 나가서 물리적으로 어딘가를 가야 했지만, 이젠 집 안에서 손가락 몇 번 클릭해서 많은걸 할 수 있다. 더 많은 선택권을 가지면서, 먹고 싶은걸 집에서 시켜 먹을 수 있고, 해외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제품까지 집에서 주문할 수 있고, 극장에 가지 않고도 훨씬 더 많은 영화를 더 저렴하게 집에서 볼 수 있다.

이런 대세는 배달과 쇼핑에만 국한되진 않는다. 실은 은행/뱅킹 또한 이런 트렌드를 타고 있는 대표적인 서비스다. 나도 요새 웬만하면 은행에 직접 안 가는데, 꼭 가야 할 때만 간다. 꼭 가야 할 때만 가면, 은행에 젊은 사람은 거의 없다. 직접 은행 안가도 모바일 또는 인터넷으로 필요한 대부분의 업무를 볼 수 있는데, 굳이 은행에 가서, 번호표 뽑고, 모르는 은행 직원과 말을 섞는 게 싫기도 하지만, 부담스럽기도 하다. 역시 엄청나게 많은 오프라인 은행지점들이 폐업하고 있다.

기존의 많은 오프라인 서비스가 점점 더 모바일화, 온디맨드화(=O2O화), 그리고 개인화되고 있고, 우리가 이런 트렌드를 미리 파악하고 이 분야에 투자를 한 건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이런 분야에 꽤 많이 투자하게 됐다. 대표적인 회사가 온디맨드 세탁 서비스 세탁특공대와 최근에 투자한 온디맨드 피트니스 서비스 홈핏이다. 세탁특공대는 우리가 한 3년 전에 첫 투자를 했고, 당시에 내가 느꼈던 건, 이젠 가족의 규모와 의미가 바뀌면서 많은 집에서 세탁기를 구매하지 않고, 세탁기가 집에 있어도 바쁘고 귀찮아서 오히려 이런 쉽고 간단한 모바일 서비스를 통해서 세탁을 외주하는 변화였다. 여기에다가 젊은 세대는 집 밖의 세탁소에 가서 세탁물을 맡기는걸 귀찮아 하고, 요샌 동네 세탁소 사장님이 집에 와서 세탁물을 수거하지만, 다른 사람과 대면하고 말을 섞는 것 조차 이들은 싫어하기 때문에, 이런 비대면 모바일 서비스는 잘 될 거라고 생각했다.

홈핏은 온디맨드로 트레이너를 내가 있는 곳으로 – 주로 집 – 불러서, 헬스장에 안 가고 집에서 PT를 받을 수 있는 모바일 서비스다. 나도 운동을 즐기고, 일주일에 3~4번 아파트 헬스장에서 운동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헬스장에서 점점 더 여성분이나 젊은 분들이 안 보이기 시작했다. 나 같은 아저씨, 또는 나이 많은 시니어 분들이 주로 헬스장에 보이는데,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이런 사람들과 같은 장소에서 익숙하지 않은 기구로 운동하는 거 자체를 밀레니얼들은 선호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젊은 세대가 몸매에 관심이 없거나, 운동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러면, 이들은 분명히 집으로 헬스장을 옮기고싶어할텐데, 이에 대한 해답을 홈핏이 어느 정도 제공해준다고 생각했다.

이런 트렌드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바로 돈 보다 시간, 그리고 편리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밀레니얼들의 사고방식이다. 이렇게 집에서 뭔가를 하고, 누군가를 부르는 건, 내가 직접 가는 것 보다 조금 더 비싸긴 하지만, 그렇게 해서 내가 더 편하고, 시간을 조금 아낄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는 게 요새 젊은 친구들의 생활방식인 거 같다. 앞으로 많은 오프라인 비즈니스가 이런 트렌드를 타면서, 파괴되고 변화할 거라고 생각한다.

<이미지 출처 = 크라우드픽>

책 읽는 한 해

내 가족이나 친구들은 잘 알 텐데, 나는 신년 계획이나 결심같은걸 아주 오래전부터 아예 세우지 않고 있다. 한 해, 두 해라는 시간은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연의 순리대로 그냥 흘러가는데, 사람들은 여기에 너무 큰 의미를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본인의 계획에 시간을 맞춰야 하는데, 이렇게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시간에 본인의 계획을 억지로 맞춘다는 게 큰 의미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차피 1년 동안 뭔가를 완성하기에는 인생은 너무 어렵고 복잡하기 때문에 그냥 나는 신년 계획을 아예 안 세우고, 항상 하던 것을, 항상 하던대로 하는 편이다.

그래도 새 해가 되면, “올 해에는 이걸 조금 더 잘 해야지.”라는 생각을 하는 게 두 가지가 있는데 바로 운동이랑 독서다. 작년 초에도 이 생각을 했고, 실은 2019년에 운동이나 독서나 어느 정도 잘 실천하긴 했지만, 년초에 목표했던 독서량 50권에 많이 못 미친 39권으로 작년을 마감했다. 매주 1권을 읽으면, 대략 1년에 50권을 읽을 수 있는데, 작년에 나는 월평균 3.3권, 총 39권의 12,116 페이지를 읽었다. 이건 플라이북 앱의 2019년 내 독서량 페이지 화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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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내가 독서에 대해서 포스팅한 적이 있는데, 이 프로세스가 이젠 습관화가 됐다. 그때그때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우리 투자사 플라이북 앱에서 “읽고싶은책”으로 등록해놓고, 또 다른 우리 투자사 국민도서관에서 이 책들을 빌려 본 후에, 다시 책에 대한 서평과 내가 기록해놓고 싶은 내용을 플라이북에 남긴다. 한가지 바뀐 습관이 있다면, 과거에는 국민도서관에 없는 책이라면, 입고될 때까지 기다렸는데, 이젠 동네 도서관에도 가끔 가서 책을 빌리고 있다. 실은, 귀찮아서 물리적인 도서관에는 이젠 안 가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직접 가서 책장에 차곡차곡 쌓인 책들을 보고, 책들을 냄새 맡고,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찾는 재미를 다시 발견하게 된 후로는, 오히려 시간을 내서 도서관을 찾아가고 있다. 글로 구체적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 종이책이 삶에 주는 재미가 상당히 쏠쏠하다.

작년에 읽은 39권의 책은 특정 장르나 작가와는 상관없이 그냥 잡식성으로 읽었다. 어느 순간 부터 비즈니스 관련 책들 보단, 소설이나 에세이와 같은 말랑말랑한 내용을 읽기 시작했는데, 오히려 여러 가지 면에서 나한테 도움이 된다는 경험을 해서 이젠 가능하면 5권 중 1권 만 비즈니스 관련 책을 읽고 나머지는 조금 더 다양한 내용의 책을 읽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측정할 수 없으면, 개선할 수 없다는 말이 있는데, 그래서 올 해도 나는 독서 목표량을 50권으로 설정했다. 한국이 망한다면, 인구절벽이 오기 훨씬 전에, 국민들이 책을 너무 안 읽어서 나라가 무식해져서 망할 거라는 말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는 하는데, 이게 현실화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매일 들고 있다. 모두 책을 읽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겸손해질 수 있는 영광

스타트업 분야에서 일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로 고마운 점이 많아서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특히, 대기업 또는 이 업과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는 매일 경험하기 때문에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되는 경우가 꽤 많다.

다 나열하면 너무 많지만, 올해 이런 생각을 가장 많이 했을 때가 두 가지 경우다. 둘 다 창업가들과 이야기할 때 느낀 점들이다. 내가 만나는 창업가 중 95%가 소위 말하는 고생하는 바퀴벌레형 창업가이다. 나도 투자하는 사람 입장에서 원래 사업은 힘들고, 앞으로 더 힘들어 질 것이기 때문에, 항상 버티면서 허슬링 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을 하지만, 나도 짧게 경험을 해봐서 알지만, 이게 정말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스타트업이 진짜 전쟁도 아니고, 조폭과 사업하는 것도 아니라서, 일 하다가 정말로 죽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마음가짐만큼은 정말 죽을 각오를 하고 덤비는 창업가들을 보고 있자면,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사서 고생하고, 힘든길을 가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질 때가 많다. 그리고 정말 가끔 그런 질문을 하기도 한다. 최근에 내가 누가 봐도 곧 망할 것 같은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분한테 “대표님, 그냥 이건 투자자로서 하는 질문이 아니라, 같은 사람으로서 궁금해서 물어보는데요, 이거 대체 왜 하시는 건가요? 그동안 잘 안 됐고, 앞으로도 잘 안 될 거 같은데요.”라는 질문을 했다. 이분이 조금 생각하더니,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글쎄요. 저는 제가 왜 이걸 하는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하고 싶은 일이고, 그냥 매일 일어나서 최선을 다하고 있고, 그러다 보면 계속 살아남으면서 앞으로 나가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그만두면 이 힘든 여정이 끝나겠지만, 저는 그냥 계속할 거예요.”

이럴 때는 내가 왜 이런 바보 같은 질문을 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많이 겸손해진다. 저렇게 힘들지만, 계속 앞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도 불평불만 없이 내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고, 내가 가야 할 길을 묵묵히 가야겠다는 다짐을 항상 하게 된다.

또 항상 겸손해질 때가 있는데, 이미 성공 경험이 있는 창업가들이 다시 창업해서 역시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걸 볼 때다. 이 분들이야말로, 좋은 엑싯을 해서 평생 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물질적으로 여유가 있고, 어떻게 보면 나 같은 투자자한테 돈 달라고 부탁하지 않아도 되지만, 내가 아는 그 어떤 창업가보다 열심히 일 한다. 이런 분들이 아직도 매일 15시간씩 일하고, 주말에도 회사에 나오고, 자나 깨나 사업 생각만 하는걸 보면, 그냥 반자동적으로 나를 돌아보게 되면서 겸손해진다. 전에 내가 개인 자산이 수천 억 원이 넘는 연쇄 창업가의 짐승피칭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이 분야에 있다 보면 이런 분들을 꽤 자주 접할 수 있다. 대기업이나 다른 분야에서는 솔직히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아직 미완성 소프트웨어를 베타 제품이라고들 하는데, 인생도 미완성이고, 삶의 묘미는 이 미완성 인생을 계속 개선해나가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는 인생은 항상 베타라고 할 수 있다. 성공을 이미 했든, 실패를 여러 번 했든, 앞으로 성공을 하고 싶든, 창업가들이야말로, 상황과는 상관없이 항상 최선을 다하면서 정말 베타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는 멋진 사람들이다.

나는 열심히 하는 것보단,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아직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도, 어제보다 나은 오늘, 그리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하는 분들한테는 일어서서 기립박수를 밤새 쳐주고 싶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 분들과 같이 일하면서 항상 겸손해질 수 있는 건, 그 자체가 영광이다.

언더독

box-1514845_640지난주에 록키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록키에 항상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underdog’이라는 단어인데, 스포츠에서 이길 확률이 적은 팀이나 선수를 두고 언더독이라고 한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언더독이 갑자기 등장해서, 그동안 패권을 잡고 있던 챔피언을 이기는 건 통쾌하고 짜릿하다. 우린 힘 있고, 항상 이기는 강자에 대해서 환호하지만, 갑자기 등장하는 약자의 대반격에 대해서는 이와는 다른 차원의 희열을 느낀다. 이건 아마도 인간의 DNA에 프로그램되어 있는 것 같다.

여기서 한가지 명확하게 하고 갔으면 하는 게 있다. “언더독 = 약자”라고 많은 분이 생각하는데, 실은 언더독은 약자는 아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르지만, 큰 무대에서 이길 수 있다는 건 이들이 약자가 아니라 오히려 강자라고 해석할 수 있다. 단지 언더독들한테는 이전에는 자신의 능력과 실력을 증명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은 경쟁조차 하지 못 했을 뿐이다. 록키의 경우에도, 정신적/체력적으로는 훌륭한 선수였고, 정식 트레이닝을 받을 형편이 되지 않아서 제대로 훈련을 못 했지만, 아주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연습했다. 하지만,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이런 아마추어가 데뷔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식 시합을 하기 위해 링 위에 올라갈 기회가 한 번도 없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그 기회가 왔고, 그 이후에는 모두가 잘 알듯이 세계적인 챔피언이 됐다.

올 한 해만 우리는 한국과 미국에서 30개가 넘는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우리가 투자한 창업가는 대부분 록키와 같은 언더독이다. 모두 다 똑똑하고, 능력 있고, 웬만한 경쟁과 붙어도 이길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가진 창업가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뭔가 시작하고, 만들고, 증명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돈이 필요한데, (아직은) 화려한 경력이나 대단한 빽이 없는 분들이라서 시작하기 위한 자금 확보가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분들이다. 대단히 큰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의 투자금이 이들에게는 뭔가를 시작해서 세상이라는 무대로 나갈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투자를 했던 거 같다.

내가 항상 이야기하는 게, 어차피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평등과 공평은 완전히 다른 말이고, 실은 이 세상이 평등하긴 한건가라는 의문까지 요샌 생기고 있다. 어떤 운 좋은 친구들은 100미터 인생을 80미터 지점에서 시작하고, 어떤 이들은 50미터 지점에서 시작한다. 평범한 보통 사람들은 0미터 지점인 출발선에서 시작한다. 안타깝게도 운이 좋지 않은 친구들은 출발선에 설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더 안타깝고 화나는 건, 이건 유전자적으로 결정되는 거라서 내가 선택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이들에게 능력이나 실력이 없는 게 아니다. 오히려 80미터 지점에서 시작한 선수들보다 더 빠르고, 힘차고, 멀리 달릴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건 달릴 수 있어야지 의미가 있는데, 이 언더독들에게는 그런 기회가 잘 오지 않는다.

나는 우리가 제공하는 작은 투자금이 이 언더독들이 링에 올라갈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언더독이 링에 올라간다고 해서 모두 록키같이 예상을 뒤엎고 이기진 않는다. 실은, 대부분 현실의 벽 앞에서 처참하게 박살 난다. 왜냐하면, 상대는 실전 경험도 많고, 돈도 많고, 모든 자원이 월등하게 많은 회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이들이 자신의 능력 또는 무능력을 증명할 수 있게 링에 올라갈 수 있는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누구나 다 열심히 살면, 한 번 정도의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초기 투자를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언더독을 많이 만나게 된다. 실은 매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을 좋아하게 되고, 투자하게 되고, 결국 사랑하게 된다. 그래서 내가 록키라는 실존하지 않는 인물을 그렇게 좋아하고, 생존하는 인간들한테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이 가상 인물한테 배우나 보다. 언더독들 파이팅이다.

<이미지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