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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에 대해서

내가 가장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요새 어떤 분야가 뜨나요?” , “요새 스트롱은 어떤 분야에 투자하세요?”이다. 아마도 많은 VC가 비슷한 질문을 자주 받는 거로 알고 있다. 실제로 벤처투자자 중 그 시점에 가장 핫한 분야에만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사람들이 있다. 몇 년 전에 IoT로 인해 마치 모든 기계가 서로 소통하는 세상이 금방 올 것 같았던 때가 있다. 이때 하드웨어와 IoT에만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펀드도 있었고, 이 분야에 있는 스타트업에 투자하기 위해서 관련된 회사를 쥐잡듯이 찾아서 만나는 VC도 많았다. 그 이후에는 VR, O2O, 블록체인 등등 내 기억으로는 해마다 한두 개의 핫한 분야가 등장했다가 사라지고 있는 거 같다. 나도 투자를 시작할 때 이런 유행을 열심히 좇던 시절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화두가 되는 유행에 투자를 할 수 있을지, 그리고 이 분야에 있는 창업가는 누가 있는지를 조사해서 특정 분야의 회사를 전부 다 만났던 적도 있었던 거 같다. 뭐, 그래서 좋은 회사에 투자하기도 했다.

그런데 요새 누가 나한테 우린 어떤 분야를 보고 있냐고 물어보면, 그냥 특별하게 보는 분야도 없지만, 그렇다고 특별하게 안 보는 분야도 없다고 한다. 실은, 조금 더 극단적으로 말해보면, 오히려 남들이 별로 핫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야의 회사를 더 관심 갖고 본다고 하는 게 맞을 거 같다. 나는 세상을 갑자기 바꾸는 극단적인 혁신을 별로 안 믿는다. 지금도 당장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여러 기술과 과학은 연구되고 있고, 실험실이나 연구실에는 구현 가능한 기술이 여러 가지 존재한다. 하지만, 진짜 혁신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런 기술이 제품화가 되고, 대량으로 만들어져서 우리 삶에 깊게 적용되어야 하는데, 이 부분이 정말 너무 많은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그리고 시간과 돈이 많이 투자되어도, 실현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소위 말하는 점진적 혁신을 하는 기술이나 제품에 주로 투자한다. 이미 존재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많이도 아니고, 조금 더 빠르고, 조금 더 싸게 만드는 그런 스타트업들이다. 최근에 어떤 기사를 읽었는데, 이 기자는 토스, 배달의 민족, 타다, 미소 등과 같은 서비스가 무슨 혁신이냐면서 상당히 부정적인 톤으로 글을 썼다. 밑에 댓글들을 보면 역시나 스타트업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 기자가 병신이라는 내용의 댓글을 수없이 달았고, 스타트업이 아닌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기자가 맞고, 이 기자에 대한 부정적인 댓글을 단 사람들이 병신이라는 댓글을 달았다(다른 이야기지만…한국의 댓글 싸움을 읽는 건 항상 흥미롭다). 나는 둘 다 나름 맞다고 생각하지만, 아마도 이 기자는 혁신을 너무 과대평가했다고 생각한다. 실은 위에서 말한 토스, 배달의 민족, 타다와 같은 서비스는 한국인들이 대부분 매일 사용하는 서비스와 제품이기 때문에, 아주 조금만 바꿔서, 조금 더 빠르고, 조금 더 편하고, 조금 더 싸게 만들면 이게 엄청난 혁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나는 혁신은 우리 삶의 모든 분야에서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행하든 안 하든, 실리콘밸리에서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분야든 아니든, 정부에서’AI 펀드’ , ‘(핫한 분야)의 펀드’를 만들어서 이 분야에 투자하는 VC에 돈을 주든 안 주든, 어떤 VC들이 이미 유행이 지났다고 하는 분야와는 상관없이 모든 분야를 본다. 왜냐하면, 소수의 삶을 극적으로 바꿔주는 혁신보다는, 다수의 삶을 조금이라도 바꿔주는 혁신이 나한테는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Under-promise and over-deliver

페이스북이나 링크드인과 같은 long form 콘텐츠를 쓰고 공유 가능한 소셜미디어에는 정말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이 있고, 이 들은 온갖 종류의 생각, 글, 동영상과 사진을 공유한다. 내가 스타트업 분야에서 일하고 있어서인지, 내 페이스북 친구의 절반 이상은 아마도 일과 연관된 사람들일 것이다. 너무 많아서, 어느 순간 친구 수락 자체를 나는 포기했다. 나도 하루에 여러 번 페이스북에 습관처럼 들어가서 이런저런 글들도 포스팅하고, 남이 포스팅한 글도 보는데, 정말 유용한 정보도 많이 있지만, 대부분 자기자랑글이라는걸 부인할 순 없을 거 같다. 나도 여기에 포함된다.

내가 요새 우리 투자사 대표들한테 좀 자제해달라고 부탁한 부분은, “나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다” 내용의 자랑글은 가능하면 포스팅하지 말아달라 이다. 팀원들과 하루 20시간 이상 일하고 있다는 글, 미친 성장을 위해서 폭풍 야근을 하고 있다는 내용, 제품 론치하기 위해서 매일 밤샘하고 새벽 4시에 집에 가는 걸 자랑하는 글, 주문이 폭주해서 최고의 일매출 도달한 스크린샷, 등등…뭐 이런 내용의 글이다. 뭐, 이게 나쁜 건 아니고, 스스로 어필하고, 회사를 마케팅하는 방법의 하나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대한 게 높을수록 실망도 크듯이, 이렇게 계속 대표이사가 페이스북 펌프질하는걸 보고 뭔가 대단한 게 있을 줄 알고 투자자들이 미팅한 후, 숫자를 까보니까 별거 없는 경우가 더 많아서, 크게 실망하고, 오히려 그 대표와 회사에 대한 믿음을 잃는 경우가 더 많은 거 같다. “1년 365일 전 직원이 폭풍야근을 하고, 미친 열정을 갖고 일만 생각하면서, 매월 엄청난 매출 성장과 ROAS를 만들고 있는 회사가 이것밖에 못해?”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가만히 있었으면 본전은 하는데, 오히려 본전도 못 챙기는 상황이 발생한다.

내가 아는 대부분 창업가는 진짜 열심히 일한다. 우리 투자사 대표 중 몇 년째 하루 20시간 일하는 사람도 있고, 이분들한테는 스타트업이 인생 그 자체다. 이렇게 깊은 사명감으로, 정말 열심히 일하면, 솔직히 소셜미디어에 하루가 멀다고 주저리주저리 포스팅할 시간도 없다. 이런 분들은 말이나 글로 표현하지 않고, 행동으로 실행하고 숫자로 보여준다.

내가 우리 대표들한테 드리는 충고는 “under promise, over deliver(덜 약속하고 더 해주어라)”이다. 여기저기 너무 과장 광고를 많이 하고 다니면 어쩔 수 없이 더 약속하고 덜 해주게 되는데, 열심히 일했다는 내용의 긴 포스팅을 쓸 시간에 고객 한 명 더 만나거나, 그냥 잠을 더 자는 게 회사에는 훨씬 더 좋다고 생각한다.

홍보가 후진 제품을 살리지 않는다

내가 자주 강조하는 내용인데, 최근에 비슷한 이야기를 여러 창업가와 해서, 몇 자 또 적어본다. 홍보에 관한 이야기다. 너무 좋은 제품과 기능을 만들었는데, 아무도 이런 게 있다는 걸 잘 모르니 홍보를 해야 하는데, 본인도 개발자고 다른 팀원도 개발자라서 홍보나 마케팅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기 때문에, 홍보 담당자를 풀타임으로 채용하거나, 아니면 외주업체에 돈을 주고 PR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대표를 몇 분 만났다.

10년이면, 새로운 기술이 계속 나오는 스타트업 세계에서는 한평생이고, 이 기간 동안 세상이 바뀐다. 그래서 내가 10년 전 이야기를 하는 건 정말 의미 없고, 어떻게 보면 꼰대스럽지만, 그래도 나는 본질이라는 건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10년 전 미국에서 뮤직쉐이크 할 때 이야기를 좀 해보겠다. 아이폰이 나오기 전이었기 때문에, 초기 뮤직쉐이크 제품은 PC 기반의 설치형 애플리케이션이었다. 그 이후에 플래시 기반의 웹 앱을 출시하고 – 당시 플래시 기술이 우리가 추구하는 기능을 다 지원하지 않아서 정말 애먹었던 기억이 난다. 아이폰이 나온 후에는 모바일 앱까지 출시했다. 모바일 앱은 단순히 음악을 쉽게 만드는 툴을 넘어서, 기존 유명곡을 재미있게 리믹스 할 수 있었는데, 음악에는 저작권이라는 골치 아픈 권리가 있어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이야기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오래된 명곡 Jackson 5의 “ABC” 리믹스 앱을 시작으로, 여러 가지 모바일 앱을 출시했다.

위에서 말한 각 마일스톤을 도달할 때마다 우리 팀의 분위기는 흥분 그 자체였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참신한 도전이었고, 시장에 소문만 나기 시작하면, 이제 우린 떼돈 벌고 대박 터질 거라는 생각에 잠도 잘 못 잤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우리 예상과는 달리, 출시하고 시간이 한참 지나도 시장에서는 별 반응이 없었다. 플래시 앱도 그랬고, 모바일 앱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내렸던 결론은, 너무 잘 만든 제품이지만 우리의 약한 홍보력으로 인해 시장이 아직 모르기 때문에 포텐이 터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기의 대부분 스타트업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홍보나 PR을 해주는 담당자가 없어서 외부 PR 회사와 계약하고 홍보와 PR을 아웃소싱하기 시작했다. 우리 담당 홍보 컨설턴트까지 배정이 됐다. LA 쪽에서는 신생 회사였지만, 꽤 잘하기로 소문났었기 때문에 비용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홍보만 잘하면 대박 날 거라서 이 정도 비용은 충분히 지불할만하다고 판단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모든 미디어에 뮤직쉐이크 관련 PR 활동을 했지만, 트래픽이나 매출에는 변화가 없었다. 몇 개월 동안 “이렇게 하면 되겠지” , “조금만 더 알려지면 될 거야” 등의 생각을 하면서 참 많은 시도를 했는데, 그럴 때마다 잘 안 됐다. 그리고 서서히 현실을 인지하게 됐다. 제품이 완벽하지 않으면 아무리 홍보를 많이 해도, 절대로 시장에서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렇다고 우리가 후진 제품을 만든 건 아니다. 정말 참신하고 재미있었지만, 시장에서 제품을 보는 시선과 우리가 내부에서 봤던 시선에는 차이가 있었는데, 우리는 이걸 지속적인 제품 개발과 개선으로 풀어야 했는데, 홍보에서 찾으려고 하는 실수를 범했던 것이다.

최근에 만난 많은 대표가 뮤직쉐이크 시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뭔가 잘 만든 거 같은데, 시장에서 반응이 없으니, 홍보로 해결하려고 하고, 내부에 홍보력이 없으니까 외부 마케팅/PR 에이전시에 비싼 돈 주면서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이건 홍보의 문제가 아니라, 제품과 product-market fit의 문제이다. 고객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는 제품은 수백억 원을 써서 TV나 지하철 광고를 해도 말짱 헛거다. 일시적인 상승효과는 경험할 수 있겠지만, 돈을 쓰는 홍보를 멈추는 그 순간 트래픽과 매출은 곤두박질칠 것이다.

제품이 완벽해지기 전까지는 홍보와 마케팅에 너무 돈을 많이 쓰지 않아도 된다. 제품이 좋으면, 알아서 고객이 알게 되고, 알아서 사용하게 된다. 요샌 모두가 바쁘고, 비슷한 제품도 너무 많아서, 홍보를 해야 한다고 하기도 하지만 – 그리고, 이건 과거에 비해서 일부 맞다고 생각한다 – 시대를 초월하는 절대불변의 본질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맛있는 식당은 안 알려도 사람들이 찾아와서 줄을 서고, 좋은 제품은 안 알려도 사용자들이 찾아서 사용하고, 돈을 쓰게 되어 있다.

기존투자자가 주는 총알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당장 매출을 만들 수가 없다. 그래서 몇 가지 예외 케이스를 제외하면, 투자를 받아야 한다. 투자를 안 받거나, 못 받는 경우도 너무 많지만, 받기 시작하면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성장하는 스타트업이라면 투자를 여러 번 받아야 할 것이다. 요새 내가 자주 경험하는 초보 창업가들이 후속 투자를 받을 때 저지르는 실수는 기존 투자자들을 잘 활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미 투자를 받은 회사고, 이미 주주명부에 투자자들이 있다면, 후속 투자를 받기 위해서 본격적인 펀드레이징을 시작하기 전에 가장 먼저 상의하고, 가장 먼저 돈 달라고 부탁할 사람은 신규 투자자가 아니라 기존 투자자라는 말이다.

얼마 전에 그렇게 친하지 않은 VC한테, “스트롱 투자사 A사 요새 라운드 돌고 있더라고요”라는 말을 들었는데, 좀 쪽팔리지만 나도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다. 대표한테 연락하니까, 지난 몇 개월 동안 본인들 실적이 별로 좋지 않아서 스트롱이나 다른 기존 투자사들이 당연히 관심 없고 투자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결국 이 회사는 원하는 금액을 추가 투자받지 못했다. 실적도 좋지 않았지만, 내 생각에는 펀드레이징 접근 방법이 좀 틀렸던 거 같다. 관심 있는 VC도 있었다고 들었고, 내가 이분들과 직접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분명히 “이미 다른 기존 투자사들이 있는데, 왜 이 회사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주주들은 추가 투자를 하지 않을까? 대표 말대로 그렇게 회사가 좋으면, 기존 투자자들이 가장 먼저 커밋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고, 이건 좋지 않은 방향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후속 투자를 받을 계획이 있으면, 그리고 펀드레이징 시점과 조건과 같은 기본적인 계획이 만들어지면, 기존 투자자들과 이 부분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하는 게 좋다. 만약에 10억 원의 후속 투자를 받을 계획이라면, 많든 적든, 어느 정도는 기존 투자자들로부터 미리 확보해서, ‘총알을 어느 정도 장전’하고 전쟁터에 나가서 새로운 VC와 협상을 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고 프로페셔널한 전략이다. 어떤 경우에는 기존 투자자들이 원하는 금액을 모두 투자해서 굳이 새로운 투자자들 만나서 시간 낭비하는 걸 대폭 줄여주는 경우도 있다(전문 용어로는 inside round 라고 한다). 하지만, 위에서 말 한 전체 10억 원을 기존 투자자들이 하진 않더라도, 한 절반인 5억 원 정도만 기존 투자자들이 재투자해 준다고 하면, 이 창업가의 펀드레이징은 훨씬 더 수월해진다. 이 회사를 가장 잘 아는 기존투자자들이 재투자한다는 의미는, 금액과는 상관없이 이 회사를 잘 모르는 신규 투자자들한테 큰 믿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신규 투자자한테도 믿음을 줄 수 있지만, 기존 투자자들이 일부 보태준 총알로 총을 장전해서 나가면 싸우는 사람한테도 자신감이 많이 생긴다.

간혹, 기존 투자자들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 이분들한테 재투자를 아예 받고 싶어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 대부분 투자자는 우선매수권과 pro-rata 권리 등이 있어서, 어쨌든 무조건 먼저 물어보는 게 맞는 방법이다.

고객이 항상 옳을까?

창업가나 투자자한테 사업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뭐냐고 물어보면, 다양한 의견과 답변이 오겠지만, 아마도 대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건 ‘고객’일 것이다. 비즈니스를 오랫동안 성공적으로 하고 있는 경험 있는 사업가들도 아마도 수십 년 동안 사업하면서 배운 게 있다면, 고객의 목소리를 무조건 잘 들어야 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나도 100% 동의한다. 아무리 좋은 기술, 좋은 제품, 좋은 서비스라도 시장에서 고객이 사용하지 않으면, 그건 좋은 기술도 아니고, 좋은 제품도 아니고, 좋은 서비스도 아니다. 그냥 시간 낭비, 돈 낭비 한 거다. 스타트업바이블이 나온 지 10년이 넘었지만, 책에서도 나는 “좋은 제품”의 정의는 시장에서 잘 팔리는 제품이라고 했고, 그만큼 고객의 목소리와 고객의 생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또 스티브잡스와 같은 창업가는 반대 의견을 항상 강조하긴 했다. 잡스는 항상 고객은 본인이 뭘 원하는지 모르고, 고객은 멍청하기 때문에, 고객의 의견을 물어보거나 고객의 목소리를 들으면, 절대로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 수 없다고 강조하기로 유명했다. 아마도 내 기억으로는, 고객을 가장 철저하게 무시했던 사업가는 스티브 잡스였던 거 같다. 실은 포드 자동차의 헨리 포드도 그 옛날에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포드가 한 말 중 이런 그의 생각을 가장 잘 반영하는 게 바로 이 말이 아닌가 싶다. “사람들에게 원하는 게 뭔지를 물어봤다면, 더 빠른 말을 원한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고객이 항상 옳을까? 고객의 목소리가 정말 중요할까? 나는 아직도 고객의 목소리에 귀를 잘 기울이면, 절대로 사업이 망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잡스와 포드의 입장에서는 왜 그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지도 이해는 간다. 만들고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이미 존재하고 있고, 우리는 이걸 조금 더 싸고, 빠르고, 좋게 만드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면, 고객의 목소리는 매우 중요하다. 말 그대로, 이미 존재하는 제품이지만, 이걸 더 싸고, 빠르고, 좋게 만들려면, 점진적인 발전과 수정이 필요한데, 이런 변화는 주로 수많은 사용자들의 경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장에 이미 존재하는 제품보다 더 좋은 제품을 만들려고 창업한 많은 스타트업이 설문조사나 고객 인터뷰를 통해서 데이터를 수집한 후, 개발을 시작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와 반대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완전히 새로운 서비스나 제품을 만드는 창업가는 잡스나 포드와 같이 고객의 목소리에 크게 귀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아니, 오히려 고객의 목소리에 너무 집중하면, 세상을 바꿀만한 new new thing은 만들 수 없을 거 같다. 왜냐하면, 포드가 말했듯이, 존재하지 않는 제품이기 때문에 고객한테 물어보면, 그들은 본인들이 아는 범위 안에서만 생각하고, 그 범위 안에서만 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플이 물리적인 키보드를 없애고, 터치스크린으로 작동되는 아이폰을 만든다고 선언하고,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앞으로는 사람들이 폰으로 전화보다 이메일, 게임, 그리고 다른 애플리케이션을 더 많이 할 거라고 했을 때, 노키아나 모토로라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고 비웃었다. 왜냐하면 노키아와 모토로라는 외부 컨설팅 업체를 통해서 광범위한 글로벌 고객 인터뷰를 했는데, 이 고객 중 그 누구도 터치스크린 폰이나 애플리케이션 같은 건 필요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내가 자주 언급하는 블랙스완의 성격을 지닌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면, 오히려 고객의 목소리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도 있다.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평범한 사고방식을 가진 일반 대중(=고객)에게서는 절대로 답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실은 이런 현실은 창업가들을 상당히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 고객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것인가, 아닌가? 완전히 무시할 순 없겠지만, 어느 정도까지 참고해야 하는가? 우리 투자사들도 이런 고민을 많이 하는데, 최근에 이 두 가지를 어느 정도 적당히 잘 혼합하는 대표와 이야기하다가 재미있는 방법을 발견했다. 이 회사는 1년 365일 고객의 목소리를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받고 있는데, 가장 많은 요청을 받는 기능은 그다음 업데이트에 가장 먼저 적용한다고 한다. 많은 고객이 원하는 기능이기 때문에, 점진적인 제품 개선을 위해 서는 필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요청이 적은 내용에 대해서도 전사적으로 열띤 토론을 한다고 한다. 현실적으로는 우선순위에서 밀려야 하는 게 당연하지만, 이런 것들이 어쩌면 위에서 말 한, 블랙스완의 성격을 지닌, 회사의 운명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기능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가끔 이런 기능도 적용해보기도 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