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undersAtWork

대나무숲

1606861334666

이미지 출처: 오후의사진관 / 크라우드픽

올해 팬데믹이 창궐하기 시작한 2월 말에 조지윤 책임심사역이 스트롱에 조인했다. 우리와는 5년 넘게 알고 지냈고, 스트롱 이전에 이미 다양한 경험과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한 수습기간 없이 바로 현장에 투입됐다. 그리고, 나와 함께 지금까지 9개월 동안 발로 뛰면서 회사 발굴하고, 투자하고, 기존 투자사들을 도와주고 있다. 전에 지윤님과 이야기할 때, 밖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일 하면서 느낀 점은, 스트롱은 파운더들의 ‘대나무숲’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나무숲의 의미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창업가들이 남한테 말 못할 힘든 점을 우리와는 솔직하게 계급장 다 떼고 이야기 할 수 있고, 이런 내용은 외부로 발설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 투자사 중 잘 하는 회사는 잘 되는 회사만의 고민을 창업가들이 갖고 있고, 못 하는 회사는 잘 안되는 회사만의 고민을 갖고 있다. 어떤 고민이 더 크고, 문제가 심각한지는 내가 점수를 매길 순 없지만, 그래도 주로 잘 안되는 회사 대표들의 고민이 더 심각하고, 우리의 즉각적인 도움과 지원이 필요하다. 해마다 비즈니스는 더욱더 어려워지지만, 올 해는 코비드19 때문에 훨씬 더 어려웠던 한 해였고, 이로 인해 우리도 가장 힘들고, 잘 안되는 투자사 대표들과 더 많이 만나고 이야기하는, 모두 다 고통스러웠지만, 결국엔 힐링되는 시간을 많이 가졌던 것 같다.

USV의 프레드 윌슨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얼마 전에 한 적이 있다. 초기 투자하는 펀드의 실적을 수년 후에 보면, 소수의 회사가 전체 펀드 실적의 90% 이상을 만드는 양상을 볼 수 있는데, 우리도 과거 펀드들을 보면 이와 다르지 않다. 파레토의 법칙은 펀드에도 존재하는데, 초기 펀드에는 이 80:20 법칙이 더 극단적으로 적용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VC가 이 소수의 잘 될 회사에만 집중하면 안 되는데, 프레드는 이런 현상을 한 반을 담당하고 있는 담임선생님에 비교한다. 내 기억으로는 나 초등학교 시절에도 우리 담임선생님이 우리 반에서 가장 이뻐했던 최애 학생들이 몇 명 있었다. 반장, 부반장, 그리고 공부 제일 잘하는 학우가 이런 친구들이었던 것 같은데, 그렇다고 선생님이 이 친구들만 신경 쓰지 않고, 우리 학급 모든 학생에게 골고루 관심을 주면서, 학교생활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여러 방면에서 모두를 도와줬다. 선생님이 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스타 학생들이 공부도 잘하고 학교생활을 잘 할 때 뿌듯함과 보람을 가장 많이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개인적인 보람은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선생님이 해야 하는 일은 소수의 학생에게만 관심을 주는 게 아니라 모든 학생들을 공평하게 지도하고 도와줘야 하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학교 생활에 적응 못 하고, 학습 진도가 더딘 학생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게 좋은 선생님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하는 일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스트롱의 수익률은 극소수의 투자사들이 만들고, 우린 이 회사와 창업가들에게 평생 고맙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의 진정한 일은 수익률에 전혀 기여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투자사, 창업가와 같이 진흙탕에서 구르면서 이들의 대나무숲 역할을 하는 것이고, 오히려 진정한 보람은 여기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Animoto 근황

2008년도에 미국에서 뮤직쉐이크를 할 때, 음악만큼 많은 사람이 몰입해서 보고 듣는 게 동영상이라는걸 알게 됐다 – 참고로, 요샌 숏폼 동영상이 대세라는 걸 어린 아이들도 모두 알지만, 당시만 해도 유튜브가 구글에 인수된 지 2년밖에 안 된 시점이고, 아직 PC에서 모바일로 플랫폼이 이전하기 전이였다. 그래서 뮤직쉐이크로 만든 음악을 가장 잘 홍보할 방법은 유튜브 동영상의 백그라운드 음악(=BGM: Background Music)으로 삽입하거나, 동영상을 제작하는 사용자들에게 우리가 만든 음악을 무료로 배포하는 전략이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시장에 어떤 동영상 제작 소프트웨어가 사용하기 쉽고, 대중적으로 인기 있을까 찾아보다가 Animoto라는 작은 스타트업을 알게 됐다. 이 서비스가 요샌 많이 진화했지만, 당시에는 정말 간단하게 사용자들의 사진을 올리고, 거기에 내가 가진 음악 또는 애니모토에서 제공하는 음악을 추가하면, 그 음악에 맞춰서 사진을 재미있게 동영상으로 제작해주는 제품이었다. 그땐 이게 너무 참신해서, 내가 우리 개 마일로 사진으로 동영상도 만들어서 블로그에 올리기도 했다.

그 이후 숏폼 동영상이 대세가 되면서 비슷한 종류의 서비스가 엄청나게 많이 출시됐다. 내가 알기로는 한국에도 비슷한 제품이 여러 개 있는 거로 알고 있다. 나도 가끔 이런 회사를 만나면 항상 애니모토 이야기를 하는데, 회사가 워낙 오래됐지만, 이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대부분의 창업가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 애니모토라는 회사가 살아있고 서비스도 계속 제공하고 있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우연히 올 3월 애니모토 관련 기사를 읽었는데, 그냥 살아있는 정도가 아니라 굉장히 잘 살아있고, 아직도 잘 성장하고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기사를 직접 읽어보면 되는데, 요약하자면, 애니모토는 2007년 뉴욕에서 4명의 개발 백그라운드의 공동창업가가 그냥 재미로, 남들이 그전에 만들지 않았던 제품을 파트타임으로 만들면서 시작됐다. 참고로 2007년도에는 아이폰이 막 세상에 태어났고, 페이스북보다 마이스페이스라는 소셜미디어가 더 인기 있던 시대였고, 사진을 드래그앤드롭하면, 이 사진들을 클라우드에서 프레임 단위로 동영상으로 렌더링 할 수 있는 제품이 없던 시대였다. 그 누구도 이걸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애니모토 팀은 이걸 해보고 싶었다.

약간 취미로 시작한 프로젝트였지만,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주변 가족과 친구들로 부터 약 7억 원 정도의 초기 펀딩을 받았다. 이 돈이면 1년 정도는 이 실험을 해 볼 수 있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모든게 미지수였다. 일단 이런 동영상 렌더링 제품을 누가 사용할지도 몰랐고, 이걸 만들어서 어떻게 마케팅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들이 1차 닷컴 버블이 터지면서 배운 점이 있었다면, 그냥 만들어 놓고 사용자만 엄청 모으면 뭔가 될 거라는 전략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이었다. 수백 개의 스타트업이 이런 전략으로 제품을 만들고 돈을 쓰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에, 본인들이 자신 있게 만든 제품을 무조건 첫날부터 유료로 제공하자는 결정을 했고, 당시 과금체계는 동영상 하나당 3달러, 또는 무제한 동영상에 연간 30달러였다. 많진 않았지만, 놀랍게도 애니모토를 돈 내고 사용하는 고객들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한 회사가 지금까지 350억 원 정도의 펀딩을 받았고, 올해 예상매출이 400억 원 이상인 꽤 괜찮은 회사로 성장했다. 물론, 1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이 기사에 다 적혀있진 않지만, 그 길은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애니모토 기사를 보면서, 내가 흥미롭다고 생각했던 몇 가지 사실이다:
1/ 4명의 평범한 월급을 받던 사람들이 평범하지 않은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창업했다.
2/ 일단 트래픽을 모은 후에 돈을 버는 전략을 버리고, 첫날부터 과금하는 과감한 전략을 택했다.
3/ 13년 동안 펀딩을 세 차례에 걸쳐 350억 원 이상 받았지만, 모든 펀딩은 2007년~2011년 사이에 받았다. 그 이후에는 한 푼도 투자받지 않았는데, 계속 수익이 나고 있다는 의미이다.
4/ 미친 성장은 없었다. 그냥 꾸준히 매해 성장했다.
5/ 100명의 직원이 있다. 대부분 뉴욕에 있고, 3분의 2가(=66명) 개발 또는 제품 관련 일을 하고 있다.
6/ B2B 비즈니스가 꽤 큰데, 전통적인(=목표매출이 할당된) 영업사원이 없다. 대부분 입소문과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홍보/판매하고 있다
7/ 매달 155만 명이 애니모토 사이트를 방문, 이 중 15만 명이 14일 무료 체험 신청, 이 중 7%인 10,500명이 일 년에 $250 정도를 내는 유료고객으로 전환된다. 매달 $2.6M의 ARR이 발생한다. SaaS 비즈니스의 특성을 고려하면, 매달 $1M 이상의 년간수익이 발생한다는 의미이다.
8/ Jason Hsiao 대표에 의하면, 올해 예상 매출이 $40M이고, 1년 후면 $50M이 될 거라고 한다.

이 기사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진 않지만, 아마도 인수 오퍼를 많이 받은 것 같다. 대표이사에 의하면 인수에는 큰 관심이 없다고 한다. 그냥 많은 돈이 필요 없고, 지금 하고 있는 게 좋아서 계속 좋은 제품 만들고 싶다고 하는데, 애니모토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자주 언급하는 메일침프가 생각났다. 그동안 펀딩 한 푼도 안 받고 연 매출 1조 원짜리 회사로 성장하면서 revenue funding을 하고 있는 메일침프만큼 재미있고, 매력적인 회사인 것 같고, 천천히 성장하지만, 언젠간 유니콘 중 유니콘인 ‘흑자 유니콘’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수천억 원 펀딩 소식과 출혈하는 유니콘 소식이 좀 지겨워질 때, 이런 알짜배기 회사 이야기를 접하면 뭔가 머리가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배울 점이 많은 회사인 것 같다.

다름의 힘

사진 2020. 11. 18. 오전 7 34 19

Together We are All Strong!

초등학교 친구 존이랑 스트롱벤처스를 2012년도에 창업했고, 이후 4년 정도는 우리 둘이서 회사와 펀드를 운용했다. 처음에는 펀드도 작았고, 투자한 회사도 몇 개 없었기 때문에 둘이 열심히 하면 어느 정도 운영이 가능했지만, 2016년도부터 우리도 사람을 조심스럽게 채용하기 시작했고, 이제 스트롱 팀이 어느덧 6명까지 커졌다. 그리고 그동안 너무 열심히 뛰기만 해서, 11월 초에 존이 한국에 나온 기회를 이용해서, 조금 숨도 쉬고, 주위도 보는 기회를 갖는 차원에서 스트롱 창립 이후 최초의 워크숍을 부산으로 갔다. 굉장히 알찬 1박 2일이었고, 그동안 우리가 왔던 길을 다시 돌아볼 수 있었고, 앞으로 갈 길은 어떨지에 대한 생산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다.

워크숍에서 각자의 성향을 파악해 볼 수 있는 간략한 MBTI 테스트를 했는데, 나는 오래전에 했던 거와는 다른 결과인 ISTJ가 나왔고, 내 파트너 존은 ENFP 성향이 나왔다. MBTI를 해보신 분들은 잘 알 텐데, ISTJ랑 ENFP는 4개의 각 항목(=알파벳)에서 완전히 극과 극으로 다른 성향을 나타낸다. 실은, 둘이 굉장히 다른 성향을 가졌다는 걸 그동안의 우정과 업무 경험으로 둘 다 매우 잘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수치로 이걸 확인하니 참 신기하긴 했다. 이런 다른 성향 때문에 실은 스트롱 초반에는 둘이 엄청 싸웠다. 물론, 지금도 의견 차이가 크고, 많이 싸우기도 하지만, 워낙 오랫동안 같이 일하면서 서로에 대한 믿음이 쌓였기 때문에, 이 극과 극의 성향으로 인해 발생하는 다름은 내가 그동안 그 어떤 조직에서도 볼 수 없었던 상호보완적인 장점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다름의 힘을 내가 자주 경험하고 있는 또 다른 팀은 프라이머 파트너팀이다. 프라이머에는 여러 명의 훌륭한 파트너가 있는데, 주로 앞단에서 회사들과 교류하는 파트너는 권도균 대표님, 이기하 대표님, 그리고 나, 이렇게 세 명이다. 우리 셋도 비슷하기보단, 다른 성향을 훨씬 더 많이 갖고 있다. 특정 회사나 창업가에 관해서 이야기 할 때마다 매번 느끼지만, 어떻게 같은 파트너십에서 이렇게 다른 의견이 나올 수 있겠냐는 생각을 할 정도로 각자의 생각과 의견이 다르다. 하지만, 그동안 오랫동안 호흡을 같이 맞춰왔고, 기본적으로 바탕에는 서로에 대한 믿음, 신뢰와 존경이 깔려있기 때문에, 이런 다름이 항상 프라이머의 장점으로 작용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이런걸 ‘다름의 힘’이라고 부른다. 일하면서, 서로 다름에서 나오는 힘은, 비슷하거나 같음에서 나오는 힘보다 훨씬 더 크다는걸 스트롱과 프라이머를 통해서 항상 느끼고 있어서, 우리도 투자할 때 창업멤버들의 다름을 많이 강조하고 있는 편이다. 물론, 아주 비슷한 성향이 있는 창업가들이 만든 회사가 잘 되는 경우도 많지만, 유니콘 가능성을 가진 회사는 항상 극과 극의 성향을 지닌 창업가들이 만든 회사일 확률이 더 높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하지만, 명심해야 하는 점은, 이 다름의 힘을 잘 다스리면서 이걸 장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과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름으로 인한 분열, 혼돈, 그리고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고,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면, 적정한 수준에서 합의 또한 볼 줄 알아야 한다. 이 다름으로 인해서 분열이 생기면, 이건 완전히 재난으로 끝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스어폰어타임인 실리콘밸리

얼마 전에 아담 피셔의 “원스어폰어타임인 실리콘밸리(Valley of Genius)”라는 책을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 미국에서 출간된 지는 2년 됐는데, 이런 책이 있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다가, 내 지인분이 다른 친구 VC 분들과 같이 번역을 해서 곧 한국에서도 출간될 예정이며, 현재 텀블벅에서 크라우드펀딩 진행 중이다. 정말 고맙게도 이 책에 대한 추천사를 부탁했는데, 처음에는 좀 망설이긴 했다. 추천사를 쓰려면, 책을 다 읽어봐야 하는데, 책 분량이 적지 않았고, 내가 요새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솔직히 그냥 정중하게 거절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냥 호기심에 책 초반부 몇 장을 읽다가 매우 재미있어서 금방 책의 절반을 읽었고, 결국 짤막한 추천사를 썼다.

나도 이 분야에서 활발하게 일하고 있고, 실리콘밸리와 창업에 대한 책을 그동안 많이 읽었고, 실리콘밸리에서도 몇 년 살아서 이 동네 이야기는 웬만하면 다 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되도록 실리콘밸리 관련 책은 더는 안 읽었다. 실은 “실리콘밸리의 xxx” 또는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렇게 한다.” 부류의 책을 나는 정말 싫어한다. 그런데 이 책을 재미있게 끝까지 다 읽은 이유는, 다른 책들과 크게 두 가지 부분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일단 책의 독특한 전개 방식이다. 특정 회사 또는 특정 사건과 실제로 관련이 있는 인사이더의 대화, 대본 위주로 전개되는 방식인데, 매우 독특하다. 아마도 이 많은 사람을 한 번에 한 곳에 불러서 작가가 인터뷰한 것 같진 않고, 따로따로 각각 인터뷰했는데, 그 내용을 취합해서 나열한 방식은 마치 모두 한 방에 모여서 대화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아직 미개봉된 영화나 연극의 대본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또 다른 점은 내용의 깊이 그 자체이다. 실리콘밸리의 유명한 회사들이 어떻게 창업됐고, 어떻게 성장했는지에 대한 많은 이야기는 이미 공개적으로 알려졌는데, 이런 알려진 내용보다 훨씬 더 깊고 사실적인 내용이 실제 그 회사에 일했고, 그 역사를 만들었던 장본인들의 입으로 전달된다. 예를 들면, 트위터가 실제로는 Odeo라는 스타트업의 여러 가지 실험적인 제품 중 하나였고, 사장될 뻔한 제품이 어떻게 바이럴하게 펴졌는지에 대한 일반인들에게 이미 알려진 내용과는 다른, 그런 인사이드 이야기를 나는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즉, 남들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창업가, 회사, 그리고 그들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이야기를, 실제 주인공 또는 내부자가 아니면 절대로 알 수 없는, 그런 누구나 다 안다고 생각하는 이야기에 대한 그 누구도 모르는 찐 이야기다.

내가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던 또 다른 더 큰 이유가 있었다. 이 책은 큰 걸 만들기 위해서는 아주 작게 시작해야 한다는 걸 잘 아는 사람들, 자신을 환경에 적응시키기보단 환경을 자신에게 적응시키려 했던 사람들, 천재지만 멍청이라는 소리를 더 많이 듣던 작은 사람들, 끝까지 괴짜로 남길 원했던 사람들, 대담한 아이디어를 가졌지만, 매번 무시당하고 조롱받았던 사람들, 하지만 결국엔 이겼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서 그렇다. 즉, 창업가에 대한 이야기다.

마지막 장의 주인공은 스티브 잡스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이 책의 엔딩과 딱 맞는 사람이다.

다음 생과 꾸준함

올해도 이제 거의 다 끝나간다. 정확히 세어 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6개월 이상을 집에서 줌과 함께 살았던 거 같다. 그래도 코비드19이 없을 때만큼 많은 회사를 만났고, 그 이상의 회사에 투자한 걸 다행으로 생각한다. 워낙 많은 분, 그리고 참 다양한 창업가를 만났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몇몇 분들이 있다.

실은 대부분의 VC가 젊은 창업가에게 투자하는 걸 선호한다. 차별을 두는 건 아닌데, 그냥 경험상으로 신체적 나이가 어릴수록 체력이 좋고, 경험이 없는데, 창업에 있어서는 경험이 없는 게 오히려 더 과감한 새로운 시도를 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반대로 나이와 경험이 있는 창업가들은 본인들만의 고집이 센 편이고,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아서, 같이 일하는데 상당히 애를 먹은 경험이 개인적으로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은 모두 다르고, 사업도 항상 다르기 때문에, 올해도 40대 창업가, 심지어는 50대 창업가도 몇 분 만나서 좋은 이야기를 했다.

그중 우리가 투자한 회사는 실은 하나도 없지만, 이분들과의 미팅에서 많은걸 느끼고 배웠다. 내 주변의 많은 40대와 50대분들은 뭔가 새로운 도전에 대해 고민하다가 항상 “이 나이에 뭘 시작해. 이생망이고 그냥 이대로 살래.” 또는 “젊었을 때 고민했어야 하는데, 이제 나는 너무 늙었어. Too late.”라는 말을 하면서 현실에 안주하는데, 이런 쉽지 않은 도전을 하는 분들이 매우 존경스러웠다. 그중 한 분에게 지금 시작하면 너무 늦지 않냐고 물어봤는데, 이런 대답을 했다. “우리 나이 되면, 대부분 지금 시작해서 언제 사업 성장시키고 돈 벌겠냐라는 걱정을 하면서 아무것도 안 하는데, 실제로는 1년 정도만 꾸준히, 매일 한두 시간만 투자해서 한 분야를 파고 들어가 보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에요. 물론, 나이가 있으니까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하지만, 지금까지 47년 살았는데 이깟 1~2년이 대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에 나는 너무 동의했다. 다들 시간 없고, 바쁘고, 이미 늦었다는 핑계를 대면서 새로운 시도는 안 하고 나이 탓만 하면서 후회하는데, 그럴 시간 있으면 뭔가를 꾸준히 한번 해보길 권장한다. 이 중 한 분은 이커머스를 하고 싶은데, 사람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카페24를 몇 개월 동안 파고들어서 꽤 근사한 이커머스 사이트를 만들기도 했다. 나도 코딩을 배우고 싶지만, “지금 코딩 시작해서 언제 배우냐.”라는 핑계를 하면서 한 번도 제대로 시작해 본 적이 없는데, 스스로 반성을 많이 하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매일 꾸준히 시간을 투자할 의지만 있다면, 특정 학문에 대해서 유튜브와 구글로만 열심히 공부하면, 노벨상까진 아니지만, 석 박사급 정도의 지식을 얻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전에 어떤 대학교수가 한 적이 있다.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의지와 꾸준함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특히, 매일 매일 꾸준히 뭔가를 하는 게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생을 기다리지 말고, 그냥 지금 시작해보자. 그리고 꾸준히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