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00년도 초반 당시에는 한국에서 유일한 – 지금도 유일한 – SCM(Supply Chain Management) 소프트웨어를 직접 만들어서 판매하는 자이오넥스라는 회사에서 영업과 마케팅을 했다. 그때는 한국에서는 B2B라는 용어도 생소했고, 스타트업이라는 말도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 회사가 요새 말하는 B2B SaaS 스타트업이었다. 당시에는 나도 직장 경력이 거의 없었고, 영업이나 마케팅 모두 태어나서 처음 하는 업무였다. 그리고, 아주 작은 회사여서 업무를 딱히 배울 사수도 없었다. 그냥 주변에 영업하는 분들에게 물어보고, 책도 많이 보면서 읽은 이론과 귀동냥한 내용을 직접 시장에서 시도해보고, 이렇게 시행착오를 하면서 일했었다.
영업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사람을 상대하는 일인데, 이게 어떤 분들에겐 상대적으로 쉬웠지만, 어떤 분들에겐 상대적으로 어려웠고, 같은 제품을 판매하는 영업인력이지만, 실적을 분석해보면 사람마다 천차만별이었던 기억이 난다. 나도 처음에는 전혀 감을 못 잡았고, 시도하는 것마다 실패했다. 좋은 제안서를 만들어서 발표하고, 담당자를 파악하고, 고객사 의사 결정 구조를 파악하고, 당시에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첫해에는 제대로 된 계약을 수주하지 못했다.
그때 우리 회사를 도와주던 고문이 한 분 있었다. 삼성에서 오랫동안 영업을 하셨던 분인데, 이분이 나한테 이런 조언을 해주셨다. “기홍아, 영업은 우리 회사 제품을 판매하는 게 아니야. 어차피 배기홍이라는 사람이, 고객사의 담당자인 다른 사람한테 물건을 판매하는 거잖아. 즉, 사람이 사람을 설득해야 하는 작업이야. 그러니까 우리 회사 제품을 판매하려고 하지 말고, 일단은 너 자신을 판매하고, 그 이후에는 회사를 판매하고, 마지막으로 제품을 판매해야 해. 첫 단추인 배기홍이라는 사람에 대한 신뢰를 담당자에게 주지 못하면, 절대로 계약을 수주할 수 없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책에서 읽었지만, 이렇게 직설적으로 조언을 들은 건 처음이었다. 이후에 나는 영업 전략을 완전히 바꿔서, 고객사 담당자를 만나면 우리 회사 이야기도 일절 하지 않았고, 제품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오로지 내가 믿을만하고 신뢰할만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었고, 나 자신을 영업했다. 상대방이 술을 좋아하면, 술도 같이 먹었고, 수영을 좋아하면 같이 수영도 하면서 나 자신이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걸 많이 셀링했다. 이렇게 나에 대한 신뢰가 쌓이면, 자연스럽게 내가 일하는 회사에 대한 신뢰도가 올라가고, 결국엔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에서 만드는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올라가고, 그때 의사결정권자들을 잘 설득하면 계약이 성사되는 걸 몇 번 경험한 후에 영업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고, 이후엔 꽤 잘하게 됐다.
흔히들 B2B 영업은 B2C에 비해서 너무 어렵다고 한다. B2C나 B2B나 결국엔 사람이 사람에게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다. B2C 서비스는 그냥 유저 개개인이 최종 의사 결정권자라서 즉시 결정하고 결제하는 성질이 있다. B2B는 기업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것이다. 기업을 대상으로 영업한다고 하면, 건물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게 아니라 고객사에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것이다. B2C와 다른 점이 있다면, 여러 단계를 거쳐서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는데, 이 단계조차도 여러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B2C에 비해서 B2B 영업이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그렇다고 영업의 본질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그냥 여러 명의 담당자를 상대해야 하고, 결국 이들 또한 사람이다. 영업의 기본은 항상 사람을 팔고, 브랜드를 팔고, 그리고 제품을 팔아야 한다. 이 순서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