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ral

감사

참으로 희한한 한 해였다. 희한하다는 게 좋은 설명이 될진 모르겠지만, 2020년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형용사라고 나는 생각한다.

전 세계적으로 좋은 일보단, 좋지 않을 일들이 훨씬 더 많이 발생한 한 해였던 거 같다. 솔직히 어떤 측면에서 보면, 완전 개판이었던 2020년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개인적으로 감사해야 할 일들이 엄청 많은 한 해이기도 했다. 다 나열할 순 없지만, 그 중 몇 가지만 이 블로그에 공유하고 싶다.

나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한 번도 싫증 내지 않고, 코비드19 때문에 삼시 세끼를 다 준비해 준 사랑하는 와이프 지현이에게 감사한다. 항상 나를 응원하는 우리 가족, 장인, 장모님, 그리고 13년 동안 우리 가족과 함께 한 마일로에게 감사한다. 우리 스트롱 모든 식구들, 우리 창업가들, 그리고 우리 투자자들에게도 감사한다. 많은 걸 할 수 없는 환경에서도 많은걸 할 수 있었기에 감사한다. 많은 걸 가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지금 가진 모든 것에 감사한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긍정적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그리고 내년은 더 좋은 한 해 일 거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한다.

마지막으로, 올해 정말 많은 일을 했고, 많이 넘어졌지만, 매번 일어났음에 스스로에게 감사한다. 힘들었지만, 힘든 만큼 매사에 감사할 수 있었던 한 해였다.

SPAC 상장

이 분야에서 일하는 분이라면 올해 SPAC, 또는 스팩 상장이라는 말을 한 번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다. SPAC은 Special Purpose Acquisition Company의 약자인데, 찾아보니 우리말로는 ‘기업인수목적회사’로 많이 사용되는 것 같다. 실은, 나도 스팩상장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적은 없어서, 모든 디테일과 실무는 모르지만, 주위 많은 분이 올해 자주 물어봤던 내용이라 그냥 개괄적으로 몇 자 적어본다.

스팩은 1990년대부터 존재하던 개념인데, 올해 이 방식으로 IPO를 하는 회사들이 급증했고 앞으로 더 많아질 것 같다. 전통적인 IPO와는 달리 꽤 빨리 상장할 수 있는 방법이라서, 코비드 19로 인해 불확실성이 높아진 이 시기에 많은 분이 이 방식을 선호하는 것 같다. 검색을 좀 해보니, 작년 대비, 올해 스팩 상장한 회사 수가 4배가 넘는다고 한다.

스팩은 그냥 아무것도 없는 껍데기 회사인데, 딱 한 가지 목적(=special purpose)이 있다. 비상장 회사를 인수하는 게 그 목적인데, 일단 스팩 회사를 만들어 상장시키고, 특정 기간 안에 이 스팩 회사로 다른 비상장 회사를 인수하면, 피인수된 비상장 회사도 상장하게 되는 것이다. 아주 간단한 예로 설명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배기홍이 ‘마일로’라는 법인을 설립한다
2/ 이 회사를 상장 신청하고, 회사의 투자자를 모집한다
3/ 로드쇼를 통해서 만난 여러 투자자가 마일로 주식을 산다
4/ 주식회사 마일로가 IPO를 하고, 배기홍은 전체 주식의 20%를 갖는다(배기홍=스팩 상장 스폰서)
5/ 배기홍은 마일로를 통해 인수할 비상장 회사를 찾는다
6/ 이미 투자를 많이 받은, 탄탄한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구루’라는 스타트업을 인수하기로 하고, 이 회사의 경영진/이사회와 인수 조건을 네고한다
7/ 마일로의 주주들 또한 구루 인수에 대해 투표하고 이 딜을 승인한다
8/ 마일로는 IPO로 모집한 자금, 그리고 새로 투자받은 자금으로 구루를 인수한다
9/ 마일로와 구루가 합병하고 거래소에서 거래된다
10/ 만약, 마일로가 2년 안에 – 2년 이상인 경우도 있다 – 회사를 인수하지 못하면, 마일로를 청산하고 다시 주주들에게 투자금을 돌려줘야 한다

뭐, 대충 이런 방식으로 스팩 상장이 진행된다.

스팩 상장을 선호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일단 가장 큰 건 상장을 빠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IPO는 수년이 걸릴 수도 있는데, 스팩의 경우 빠르면 3개월 안에도 마무리할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는 전통적인 IPO 방식으로 회사를 상장시켜도 주식 가격에는 불확실성이 많이 존재한다. 원래 상장시장의 주가는 시장의 상황과 투자자들의 의향에 의해서 왔다 갔다 하고, 상장 가격 자체는 주로 투자은행의 뱅커들이 결정하는데, 뱅커들이 정한 가격은 대부분 너무 낮거나 너무 높아서 기존 주주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가 쉽지 않다. 스팩의 경우 이 가격을 사전에 정하고 인수 작업을 하므로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제거된다.

물론 장점이 있지만, 단점도 명확하게 존재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단점은 스팩 상장의 성패가 스폰서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점이다. 위의 예제에서 스폰서는 ‘배기홍’이라는 사람이다. 즉, 마일로라는 스팩 회사는 아무것도 없는 껍데기 회사라서, 이 회사의 투자자들은 회사가 아니라 배기홍이라는 사람을 믿고 투자하는 건데, 이 인간이 사기꾼이거나, 인수할 회사를 잘 못 선정하면 돈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올 해 스팩 상장 중 사기로 판명된 건 (아직)없지만, 과거에는 이런 문제가 많이 발생했다고 들었다. 스폰서는 본인 돈은 아주 적게 투입하지만, 스팩 회사 지분의 20%를 갖게 된다. 위의 예에서, 배기홍은 마일로 회사의 지분을 20% 갖게 되는데, 마일로가 구루를 인수하게 되면, 이 20%는 구루 지분의 1~5% 정도가 되기 때문에, 인수가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항상 돈을 벌게 된다. 이런 이유로 투자자들은 스팩 상장의 스폰서에 대한 실사나 스크리닝을 잘해야 한다.

이런 스팩 회사들은 종목코드도 간단하다. IPOA, IPOB, IPOC – IPOZ 까지 있는 거로 알고 있다 – 등의 이름을 사용한 스팩회사들이 있는데, IPOA는 Virgin Galactic을 인수해서 상장했고, IPOB는 OpenDoor, 그리고 IPOC는 Clover Health를 같은 방법으로 인수해서 상장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 스팩상장이 일어나고 있고, 조만간 많은 회사들이 이 방법을 통해서 상장하지 않을까 싶다. 워낙 광고를 많이 해서 우리한테 친숙한 ‘TS샴푸’를 만드는 TS트릴리온도 12월에 스팩상장을 한다고 발표했는데, 잘 될지 개인적으로 매우 궁금하다.

어쨌든 스팩 상장 외,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시장과 투자자들에게 유동성을 제공하는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통계의 맹점

어떤 분야에서 일하든, 우린 숫자를 좋아한다. 나도 이전 포스팅에서 비즈니스를 증명하고, 투자자를 설득하려면, 여러 가지 요소가 중요하지만, 결국엔 숫자가 최고의 무기라는 점을 여러 번 강조했다.

숫자는 거짓말을 안 하고, 숫자는 객관적이라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자 믿음이고, 나도 이걸 굳게 믿고 있다. 하지만, 이 에서 강조했듯이, 숫자는 거짓말을 하진 않지만, 이걸 포장하는 방법에는 약간의 거짓말과 거품이 끼어 있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발견한다. 얼마 전에 내가 경제상식 관련 책을 읽다가 이런 숫자와 통계의 맹점을 발견한 게 있어서 여기서 공유한다.

경제학을 공부하신 분들은 이런 내용을 잘 알고 있을 텐데, 나는 항상 경제라는 게 어렵다고 생각했고 – 실제로 어렵다 – 그래서 기본적인 경제 상식이 별로 많지 않다. 이 책을 읽다가 취업률과 실업률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알게 되었는데, 내가 생각했던 실업률과 통계적으로 말하는 실업률의 정의가 꽤 다르다는 걸 배웠다.

이 책에 다음의 예제가 나왔다.

“한 가족이 있다. 정리해고를 당한 후 몇 년 째 집에서 놀고 있는 아버지, 반찬값이라도 벌기 위해 아는 친구네 식당에서 잠깐씩 일하는 어머니, 대학 졸업 후 직장을 잡지 못해 영어 학원에 다니는 첫째, 전문대 졸업 후 임시로 편의점 알바를 하는 둘째, 이 가운데 취업자와 실업자는 각각 몇 명일까?”

언뜻 보면 너무 뻔하다. 나는 4명 다 실업자라고 생각해서 취업자 0명, 실업자 4명이 답이라고 생각했는데, 취업자 2명, 실업자 0명이 정답이다. 통계에서 말하는 실업률에는 이들 그 누구도 실업자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업률의 정의는 ‘경제활동인구’ 중에서 실업자가 차지하는 비율인데, 위의 예시에서는 아버지와 첫째는 이력서를 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하고 있지 않다고 분류되기 때문에, 경제활동인구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리고 어머니랑 둘째는 지속성이나 금액과는 상관없이 어쨌든 돈을 벌고 있어서 취업자로 분류된다. 즉, 실업률 100%라고 보이는, 이 가족의 통계상 실업률은 0%이다.

우리나라의 실업률이 현재 4% 초반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낮아서, 나는 그나마 실업률을 잘 방어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통계의 맹점인 것 같다. 통계적 실업률에 포함되지 않지만, 고려되어야 할 요소가 취준생과 구직 포기자라고 난 생각하는데, 이 두 그룹이 한국에는 다른 나라보다 꽤 많은 거로 알고 있다. 예를 들면, 스페인의 작년 실업률은 거의 14%여서 굉장히 높지만, 이 숫자를 조금 더 깊게 파보면, 스페인 사람들은 취업이 잘 안 되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이 계속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면서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하고 있어서 이 수치가 높아진 이유도 있다. 아예 취업하기를 포기하는 거 보다 이렇게 계속 노력하고 있는 게 더 좋은 신호가 아닐까 난 생각한다.

결론은…실업률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건 아니고, 많은 숫자에는 이런 통계의 맹점이 존재하니, 통계를 너무 믿기보단 그냥 참고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다.

침묵은 금

얼마 전에 이발을 했다. 내가 다니는 이발소는 shop in shop 개념으로, 원래 가게는 미용실인데, 이 미용실의 3칸 중 한 칸을 젊은 친구가 개조해서 이발소로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2 칸은 여자 미용사 고객들이고, 한 칸은 나 같은 이 젊은 바버의 고객들이 사용한다. 나는 원래 이발사나 이런 서비스 해주시는 분들과 크게 말을 섞지 않고 인사 정도만 하고 그냥 가만히 머리만 하는데, 많은 분들이 사적인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 공간이 미용실이기도 하다.

바로 옆이다 보니 실은 귀를 닫고 있어도 어쩔 수 없이 옆 사람이 하는 말이 다 들리는데, 이 날 이후 나는 절대로 이런 공공장소에서 내 개인적인 이야기, 또는 내 친구들 이야기, 또는 내가 하는 일이나 회사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내 옆에 어떤 젊은 남자분이 머리를 하는데, 미용사분이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계속 본인 개인사와 회사 이야기를 너무 세세하게 말하는 바람에 나는 이 분의 얼굴도 모르지만, 이 사람이 외국 어떤 지역의 학교 출신인지 알게 됐고, 외국이 본사인데 최근에 여의도에 한국 지사를 만든 작은 투자사에서 일 하는 사실까지 알게 됐다. 그리고 원래 다른 미용실에서 6만 원짜리 컷을 하는데, 미용사가 마음에 안 들어서 이번에 우리 동네 미용실로 바꾼 사실까지 알게 됐다. 내가 이 사람의 보스였다면, 공공장소에서, 일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한테 회사의 준기밀 내용까지 다 발설했다는 이유로 해고했을지도 모를, 그런 이야기를 동네 미용실에서 하고 다니는 것이다.

실은, 이런 경험이 과거에도 몇 번 있긴 하다. 목욕탕 안의 마사지 샵에서 마사지 받고 있는데, 옆 칸 아저씨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당시에 다니고 있던 회사와 경쟁 입찰이 붙은 경쟁사의 영업 담당자였던 적도 있고, 신사동 고깃집에서 식사하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내 MBA 동기에 대해서 험담하는 그룹에 한마디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을 다 종합해보면, 결국엔 모든 게 자기 과시와 자랑을 하기 위한 이빨까기다. 원래 이런 곳에서 사적인 이야기를 잘 안 하지만, 이 경험 이후에는 그냥 무조건 입 닥치고 있고, 사적인 내용을 물어봐도 그냥 대답을 안 하고 있다.

웅변이 은이라면, 침묵은 금이다. 말을 많이 해서 패가망신 한 사람은 여러 명 있지만, 입 닥치고 있어서 손해 본 사람은 역사상 한 명도 없다.

월성장 vs. 누적성장

이 차트는 어떤 회사의 2019년도 월 누적 매출 성장을 보여주는 그래프다. 1월에 10억 원 매출을 달성했고, 이후 그래프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 그냥 대충 보면 아름다운 그래프이고 성장하는 회사처럼 보인다.

cumulative sales

이젠 이 그래프를 한번 보자. 이 그래프는 같은 회사의 2019년도 월매출 성장을 보여준다. 같은 회사, 같은 매출이지만, 누적이 아닌 1월부터 12월까지의 개별 월매출인데, 성장은 없고 오히려 회사는 퇴보하고 있다.

monthly sales

보시다시피, 같은 회사의 수치지만, 완전히 다른 그림이 그려진다. 그래서 누적 수치는 회사가 정말로 건강한지 아닌지를 파악하는데 별로 도움이 안 된다. 가끔 회사 자료들을 보면, 월 수치는 없고, 이런 누적 수치로 도배된 장표만 보이는데, 대표가 잘 모르고 누적 수치만 강조한 거면 가급적이면 월 수치로 수정하길 권장한다. 만약 알면서도 회사에 불리하니까 월 수치를 일부러 제거한 거라면, 대부분의 투자자는 그렇게 멍청하지 않다는 걸 다시 한번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