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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벌레의 길

지난주 화, 수 이틀 동안 우리의 가장 큰 연례행사인 조합원총회(AGM: Annual General Meeting)를 서울에서 했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외국에서도 투자자분들이 많이 참석했고, 우리가 투자한 창업가분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참 바쁘기도 했지만, 나도 재미있었고, 우리 모두 의미 있고 보람찬 48시간이었던 것 같다.

이 행사에서 나는 해마다 스트롱벤처스가 그해에 했던 일들을 요약해서 투자자분들과 공유하는데, 이번 행사에서도 올해 좋았던 하이라이트와 별로 안 좋았던 로우라이트를 정리해서 발표해 봤다. 올해 내가 뽑은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우리가 투자하는 우리의 창업가들이었다. 12년 동안 우리의 포트폴리오 창업가분들과 같이 일했는데, 이렇게 incredible하고 extraordinary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내가 깊게 존경하는 분들이다. 이분들이 없으면 스트롱이 존재할 수 없다.

올해같이 어려운 환경에서 잘 버티면서 사업을 운영하는 우리 창업가분들을 나는 다시 “바퀴벌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실은, 그동안 주위 사람들이 바퀴벌레라는 단어가 혐오감을 준다고 싫어해서 잘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제 나는 우리 창업가들은 바퀴벌레 창업가라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다닌다. 물론, 엄청 좋은 의미에서.

바퀴벌레라고 하면 다들 싫어하지만, 이 곤충들은 대단한 특징을 몇 가지 가지고 있고, 신기하게도 우리 창업가들도 아주 비슷한,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1/ 강한 골격 – 바퀴벌레는 아주 견고하지만, 동시에 유연한 골격을 갖고 있다. 우리 창업가분들도 강한 정신력, 그리고 강한 체력을 갖고 있다. 동시에 이들은 충격을 완화하고 흡수할 수 있는 유연함도 있다.

2/ 강한 면역력 – 시간이 지날수록 바퀴벌레는 웬만한 살충제에 대한 내성을 스스로 만들어낸다. 우리 창업가들도 웬만한 어려움에 대한 내성이 생겨서 고난과 역경에 대한 강한 면역력을 갖고 있다.

3/ 강한 적응력 – 바퀴벌레와 창업가 모두 완벽하게 일치하는 속성이다. 바퀴벌레는 외부 환경에 따라서 DNA를 스스로 바꿀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있는데, 실은 우리 창업가들도 외부 환경에 따라서 지속적으로 스스로를 변화시킨다. 목표와 비전은 명확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전략을 수정하고, 실행 방법을 계속 바꾸는 게, 마치 자신의 DNA를 외부 환경에 따라서 바꾸는 바퀴벌레랑 크게 다르지 않다.

4/ 강한 생존력 – 바퀴벌레는 오랜 기간 동안 음식이나 물 없이 생존할 수 있다. 우리 창업가들은 음식이나 물 없이 살 순 없지만, 아주 적은 자원으로 매우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어쨌든, 이들은 척박한 환경에서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살아남을 수 있다. 특히, 바퀴벌레들은 머리가 날아가도 최대 일주일 동안 살 수 있다고 하는데, 뭐, 사람은 이렇게 할 순 없지만, 어쨌든 우리 창업가들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5/ 강한 기동력 – 이건 내가 강조할 필요도 없다. 바퀴벌레가 빠르다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우리 창업가들도 엄청 빠르고 민첩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가끔 이들보다 훨씬 더 돈과 인력이 많은 대기업도 이길 수 있다.

이 다섯 가지 놀라운 특징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바퀴벌레 창업가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이다. 이들은 아무리 밟아도 죽지 않고, 계속 다시 찾아오고, 계속 성장한다. 지난 12년 동안 매일 매일 이런 바퀴벌레 창업가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이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대단하다는 생각과 존경심이 생긴다.

우리는 이런 바퀴벌레들을 지원해 주는 사람들이다. 가끔은 이들이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게 뒤에서 계속 푸쉬한다. 어떤 날은 이들이 벼랑에서 떨어지지 않게 앞에서 끌어준다. 하지만, 주로 이들이 뒤로 처지지 않고, 번아웃 되지 않게, 옆에서 같이 걷거나 뛰면서 응원해 준다. 나는 어릴 적 바퀴벌레를 정말 싫어했는데, 투자하면 할수록 이들이 대단한 생명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오늘도 바퀴벌레같이 절대로 죽지 않고 허슬하는 한국의 모든 창업가들 파이팅하길. Never die!

배고픔의 축복

최근 2년 동안 워낙 경기도 안 좋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좋아질 것 같진 않아서, 대부분의 VC들은 활발하게 투자하기보단, 계속 보수적으로 시장을 관망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업을 시작하는 날부터 마이너스가 발생하고, 앞으로도 수년 동안 마이너스가 예상되는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필요한 투자를 못 받고, 이로 인한 손실을 감당하지 못해서 하나씩 문을 닫고 있다. 아무리 좋은 창업가와 좋은 사업에 투자했더라도, 어느 순간까진 투자금으로 버텨야 하는 스타트업들이 적시에 필요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못 받으면 폐업 말곤 별다른 선택이 없다.

우리 투자사들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은 회사에 투자했더라도, 매크로 시장을 이길 수 있는 초기 스타트업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우리 투자사들도 하루가 멀다고 시장에 나와서 펀딩을 하고 있는데, 대부분 투자를 못 받거나, 받더라도 본인들이 원하는 조건이 아닌, 투자자들의 조건으로 투자를 받고 있다.

돈이 꼭 필요한데 투자유치에 실패한 회사의 미래는 암울하다. 펀딩을 포기한 순간부턴 이젠 생존이 이들의 유일한 목표이자 옵션이 되는데, 생존을 위한 가이드라인 같은 건 없다. 그냥 무조건 버티면서 비용을 절감하는 게 유일한 가이드라인이다. 대부분 스타트업 비용의 절반 이상이 직원들 월급이라서 일단 무조건 사람을 내보내야 한다. 전에 내가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이라는 을 쓴 적이 있는데, 실은 구체적인 방법이 있다기보단, 그냥 무조건 허리띠 졸라매고 돈을 아껴야 한다는 내용이다.

지난 2년 동안 매일매일 이런 위기 상황을 견디고 있는 우리 투자사들이 꽤 많다. 이 중 많은 회사들이 중간에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는데, 또 놀라운 건 이 비용절감 모드로 나름 잘 버티고 있는 회사들이 꽤 있다는 사실이다. 버티면서 아직도 생존하고 있는 회사들은 이제 더 이상 대규모의 마이너스가 발생하지 않고, 어떤 회사들은 흑자까지 경험하고 있다. 아직도 하루하루가 지옥 같지만, 이 회사 대표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다들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바로 2년 전에 투자를 받지 못했을 때, 그땐 너무 속상하고 세상이 끝날 것 같은 절망감에 휩싸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회사에겐 축복이었다고 한다.

그때 투자를 못 받았기 때문에, 그동안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않았던, 제대로 된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서 아주 깊게 고민했고,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 진짜 창업가의 마인드로 사업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고 모두 말한다. 그 과정 자체는 너무 힘들었고, 다시 반복하라고 하면 싫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투자를 받지 못해서 경험했던 배고픔이 회사에겐 오히려 더 단단하고 강하게 체질 개선을 할 수 있게 된 축복이라고 한다.

이 회사 중 힘든 시기를 지나면서 엄청 뾰족한 비즈니스 모델을 찾은 곳도 있지만, 아직도 제대로 된 비즈니스 모델을 못 찾아서 헤매는 곳들도 많다. 이런 회사들이 유동성이 풍부할 때, 대규모의 투자를 받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나는 요새 가끔 상상해 본다. 아마도 돈만 낭비하고, 사람만 쓸데없이 채용하고, 불필요하게 사업을 확장하면서 크게 망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요샌, 오히려 투자를 못 받아서 아주 배고프게 사업을 하는 건, 어쩌면 모두에게 축복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물론, 이 배고픔이 너무 오래 지속되진 않았으면 한다.

노가다에 대해서

투자자나 창업가나 스케일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우리가 자주 하는 질문은 과연 특정 사업이 얼마나 빠르게, 그리고 얼마나 효율적으로 성장이 가능할까인데 영어로 이 질문을 하면 “이 비즈니스가 얼마나 scalable 할까?”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대부분의 유니콘 회사가 아주 빠르게 성장을 했고, 스케일이라는 말을 스타트업 분야에서 워낙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많은 창업가들이 이 단어에 집착한다고 난 생각한다. 아주 효율적으로, 아주 빠르게 성장하는 건 당연히 좋고, 투자자로서 나도 스케일이 가능한 사업을 발견하면 좋아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쉽게, 그리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비즈니스는 요새 정말 찾기 힘들다. 나는 오히려 이런 비즈니스가 있다고 하면 약간 의심하고, 너무 많은 창업가들이 필요 이상으로 스케일이라는 말에 집착하는 것 같다.

최근에 워낙 경기가 안 좋다 보니, 많은 창업가들이 성장보단 생존에 집중하고 있는데, 계속 성장을 하고 싶어 하는 창업가들은 이런 상황이 죽고 싶어질 정도로 답답할 것이다. 우리 투자사 대표 몇 분은 이런 답답함과 짜증 남에 대해서 우리랑 편안하게 자주 이야기하는 편인데, 최근에 했던 이런 대화가 기억난다. B2B 제품을 만들고 있는데 영업 속도가 느리고 매출 성장이 너무 더뎌서 매우 초조해하고 스트레스 받고 있는 분과의 미팅이었다.

일단, 기업에 판매할 B2B 제품은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B2C 제품보단 주로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간다. 우리가 투자한 어떤 B2B SaaS 회사들은 제품만 만드는 데 1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힘들게 제품을 만들었는데, 이 제품을 기업 고객에게 판매하는 건, 더 힘들고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첫 번째 B2B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 한 달 이상 영업하는 경우도 자주 보는데, 이렇게 해서 확보한 고객에게 발생하는 매출은 기대 이하이다. 이분은 이런 식으로 하면, 일 년 열심히 영업해도 유료 고객이 15개도 안 될 것이고, 이들로부터 나오는 매출도 크지 않아서, 과연 내가 맞는 방법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지, 이렇게 고객 한 명 한 명씩 영업하는 방법이 맞는 건지 스스로에 대한 불신이 있었다. 그리고 주위에서 ‘미친 성장’을 하는 다른 스타트업같이 아주 효율적으로 노가다 없이 스케일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회사는 아주 잘될 것이라고 믿는다. 내 솔직한 의견은, B2C 제품이나, B2B 제품이나, 노가다 없이 스케일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언론에서는 마치 쉽게 사업을 확장하고, 스케일이라는 말을 모든 스타트업이 가져야 할 필수 덕목같이 포장하는데, 나는 큰 스케일은 수많은 작은 노가다가 축적될 때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샌 웬만한 사람들이 다 사용하는 드롭박스 같은 제품도 사업 초반에는 창업자가 직접 지인들 사무실을 방문해서 이들의 PC에 제품을 설치해 주고, 사용법을 가르쳐주면서 성장했고, 에어비앤비도 창업자들이 직접 호스트의 숙소를 방문해서 사진을 찍어서 대신 올려주면서 성장했다. 우리 투자사 당근도 판교에서 아주 작게 시작했는데, 창업자들이 직접 물건을 하나씩 올려서 판매하면서 시작했다.

동네 가게를 위한 B2B 제품을 만들고 있다면, 우리가 만든 제품을 어떻게 하면 최소한의 노력으로 가장 많은 동네 가게 사장님들에게 한 방에 크게 노출할 수 있는지 고민할 시간에, 그냥 하루 종일 동네 가게 문 두드리고 찾아가서 영업하는 게 맞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하루 종일 뚜벅뚜벅 걸어 다니면서 고객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이들에게 직접 제품을 설치해 주다 보면, 진짜 사업에 대해서 배울 수 있고, 세상이 정확히 어떻게 돌아가는지 몸으로 배우게 된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고객 한 명씩 상대하면서 노가다 작업을 하는 게 맞는 방법인지 계속 스스로 의심하겠지만, 고객 한 명이 두 명이 되고, 두 명이 다섯 명이 되고, 다섯 명이 50명이 되면서, 그때부터 사업엔 스케일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스케일이 생기기 전 까진 그냥 옛날 방식대로 하나씩 해야 한다. 소위 말하는 노가다를 뛰어야 한다.

스케일은 가만히 책상에 앉아서 손가락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직접 발로 뛰어야 하고, 이런 노가다를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큰 스케일이 만들어진다. 대신, 멈추지 말고 계속 해야 한다. 내가 이전 포스팅에서도 말했지만, 세상의 모든 큰 일은 아주 작은 일을 계속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노력의 부족으로 실패하지 말자

역대 최악의 성적이 예상됐지만, 반대로 한국이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둔 파리 올림픽이 지난주에 잘 마무리됐다. 나는 대부분의 올림픽 종목을 별로 안 좋아하지만, 국가 대표들이 열심히 경쟁하는 경기라서 그런지 매일 저녁 한국이 참여하는 대부분의 종목을 와이프랑 정말 재미있게 봤던 즐거운 2주였다. 한국은 금 13개, 총 32개의 메달을 따면서 8위로 끝났는데 너무 잘했고, 모두 너무 자랑스럽다. 안세영 선수의 발언과 더불어 그동안 변화를 수용하지 못한 여러 협회에 대한 불미스러운 일들도 있었지만, 나는 이런 과정이 체육협회와 선수들이 모두 다 한 단계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하는데,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도 다양한 이변이 많았고, 메달이 당연시됐던 선수들이 형편없는 성적으로 예선 탈락했고, 전혀 기대되지 않았던 선수들이 선전해서 메달을 따기도 했다. 우리나라 태권도 김유진 선수가 그중 하나였던 것 같은데, 세계 랭킹 12위가 세계랭킹 1위와 2위를 모두 이기고 금메달을 획득한 건, 태권도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이변 중 대이변이었다.

이 선수 외에도 랭킹이 한참 아래였거나, 거의 무명의 선수들이 메달을 획득한 사례가 다른 나라에도 몇 개 있었는데, 이 중 몇 명의 경기 후 인터뷰를 보면, 다들 하는 말이 거의 비슷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 선수들의 외부 랭킹만 보고 승패를 예측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스스로가 얼마나 열심히 연습하고 훈련했는지 알기 때문에, 충분히 우승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고, 이런 땀과 노력은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남들은 이변이라고 하는 결과가 본인에겐 전혀 놀랍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어떤 선수는 이런 말을 했는데 이 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내 연습량을 내가 잘 알고 있고, 훈련의 양에 있어서는 그 어떤 선수도 나를 능가할 수 없다는 걸 내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메달이 전혀 신기하지도, 놀랍지도 않다. 당연히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질 수도 있다. 하지만, 패배의 원인이 노력의 부족이면 절대로 안 된다. 노력의 부족 때문이 아닌 다른 이유로 진다면, 아쉽겠지만 절대로 후회는 안 한다.”

실은 내가 우리 창업가분들과 자주 하는 말과 너무 비슷해서 나에겐 더욱더 인상 깊었던 말이었던 것 같다. 우린 모두가 항상 최선을 다해야한다는 말을 밥 먹듯이 하지만, 또 한 편으론 내가 봤을 때 최선을 다하지 않는 분들도 종종 본다. 물론, 이건 굉장히 주관적인 입장이고 최선의 개념은 모두에게 다르다. 어쨌든, 정말로 사업과 본인의 미션에 헌신(=commitment)을 보이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업도 올림픽 경기와 같이, 아무리 열심히 하고 죽기 살기로 노력해도 잘 안될 수도 있다. 아니, 성공의 확률이 낮기 때문에 잘 안되는 게 오히려 어쩌면 정상적이다. 그래서 사업은 실패할 수도 있고, 실패한 사업가들이 욕을 먹는 건 가혹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실패의 원인이 노력의 부족이라면,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포트폴리오 회사들이 더는 버티기 힘들어서 폐업을 결정하면, 이런 대화를 많이 한다. “최선을 다했나요? 대표님만큼 치열하고 열심히 노력한 사업가가 주위에 없을 정도로 열심히 했나요? 그랬다면 잘했습니다. 실패의 원인이 노력의 부족이 아니었다면 편안하게 사업 접고 좀 쉬세요.”

실패의 원인이 노력의 부족이 되지 않게 모두 다 치열하게 헌신하는 하루, 일주, 그리고 일 년이 되길.

전력 증강자

미국 사업가들이 자주 하는 말과 비즈니스 관련 글을 보면 가끔 등장하는 어휘 중 force multiplier라는 단어가 있다. 원래 군대에서 유래된 말인데 찾아보니 우리말의 정확한 어휘는 ‘전력 증강자’ 또는 ‘전력 승수’이고, 사전적인 의미는 전투 부대에 추가적으로 사용되었을 때 부대의 전투력을 두드러지게 증가시키고 나아가서 부대의 임무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역량 혹은 능력이다. 이런 전력 증강자의 대표적인 사례가 특수부대, GPS와 같은 기술, 또는 육해공군의 연합 등이다.

이 단어는 스타트업 분야에서도 꽤 다양한 의미로 자주 사용되는데, 2주 전에 미국에서 어떤 창업가와 이야기하다가 이 force multiplier라는 말을 내가 오랜만에 언급됐다.

나는 모르는 사람이랑 절대로 말을 안 한다. 특히나 비행기에서는 조용히 가는 걸 선호해서 옆 사람이랑 눈도 되도록 맞추지 않고, 누가 말을 걸어도 두 번째 질문은 못 하게 아주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편이다. 이날은 어떤 젊은 백인 여성분이 내 옆에 앉았고, 3시간 반 비행을 같이 하게 됐다. 비행 내내 둘 다 각자의 노트북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었는데 불규칙한 키보드 타격 소리와 속도로 봤을 때 아마도 글을 쓰거나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비행 내내 글이 잘 안 써지거나, 생각이 정리가 안 되거나, 영감이 안 떠오르는지 혼자 계속 한숨을 쉬면서 중얼거렸다. 실은 나도 뭔가를 쓸 때, 정리가 안 되거나, 영감이 안 떠오르면 이런 행동을 하므로 금방 알 수 있었는데, 이분은 이런 행동과 동작이 좀 과격했다.

그래서 이분에게 “그냥 궁금해서 그런데, 뭐 쓰고 있어요? 잘 안되나 보죠?”라고 물어봤고 그때부터 한 15분 정도 우린 이야기를 나눴다. 본인은 시카고 외곽 동네에서 수공예품을 직접 만들어서 파는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인데, 그동안 오프라인 가게에서만 제품을 판매하다가 이제 미국의 다른 도시나 주에서 구매 문의가 와서 Shopify로 만든 사이트로 최근에 이커머스를 시작한 초보 창업가라고 소개했다.

돈이 별로 없어서, 직원 고용은 아직 생각도 못 하고 있고, 혼자서 제품을 직접 만들고, 혼자서 사이트도 운영하고, 혼자서 포장과 배송도 직접 하고 있는데, 어쨌든 힘들지만, 굉장히 재미있고 보람찬 일이라고 자랑했다. 온라인 마케팅 예산이 없어서 공짜이면서 동시에 효율이 좋다고 하는 블로그와 뉴스레터 기반의 콘텐츠 마케팅을 이제 3개월째 하고 있는데, 막상 없는 콘텐츠를 만드는 작업이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투입되는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이고, 이렇게 투자하는 에너지와 시간 대비 눈에 띄는 결과가 전혀 안 보여서, 이런 콘텐츠 마케팅이 정말 될까 굉장히 회의적이라고 고민을 토로했다. 그리고 지금 이 비행기에서도 다음 주에 발송할 뉴스레터에 실을 내용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고, 격주로 포스팅하는 블로그에 올릴 소재가 이미 다 떨어져서 계속 한숨만 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VC라는 말은 안 했다. 하지만, 내 블로그에 관해서 이야기를 좀 해줬다. 내가 운영하는 개인 블로그를 2007년부터 쓰기 시작했고, 지금도 꾸준히 17년째 쓰고 있는데, 이게 확실히 개인적이든 사업적이든 force multiplier가 될 수 있다는 건 내가 경험적으로 보장할 수 있다고 해줬다. 그런데 이게 진정한 전력 승수가 되려면, 최소 2년은 꾸준히 해야 하고, 여기서 명심해야 하는 건 블로그의 첫 2년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만드는 force multiplier가 아니라 그 반대인 force divider라는 점도 알려줬다.

전력 승수를 위한 기반을 만들기 위한 첫 2년은 콘텐츠를 만드는데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지만, 그로 인한 효과는 눈에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일단 아무도 이런 콘텐츠가 있다는 걸 모르고, 아무리 좋은 포스팅이라도 이런 블로그가 존재한다는 것도 모른다. 이 기간 동안엔 블로그나 뉴스레터를 활용하는 콘텐츠 마케팅은 전형적인 force divider가 된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결국 복리의 마법은 항상 작동한다. 꾸준히, 정기적으로, 그리고 오랜 기간 동안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면, 누군가는 읽을 것이고, 남들과 계속 공유할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이나 어떤 계기를 통해서 그동안 꾸준히 만들었던 양질의 콘텐츠는 엄청난 전력 증강자가 될 것이다.

뭐, 대충 이런 이야기를 비행기에서 옆 좌석 분과 했다. 그리고 이제 시작했고, 아직은 결과가 나오지 않지만, compounding과 force multiplier라는 단어를 무조건 기억하라고 했다.

누구나 다 인생에서, 또는 직장에서 이런 전력 증강자를 원할 것이다. 실은, 누구에게나 가능하고 누구나 스스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약간의 노력과 꾸준함이 필요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