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shake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극단적 조치

작년 말 중국의 우한이라는 곳에서 처음 발생한 신종코로나 바이러스가 결국 3개월 만에 전 세계를 정지시켰다. 정말로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가장 큰 블랙스완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하기 시작했고, 나도 처음 겪어보는 글로벌 경제 위기에 전 세계가 휘청거리고 있다. 스타트업 분야는 그나마 거시경제의 영향을 가장 늦게, 그리고 적게 받는 분야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너무나 큰 스케일로 번졌기 때문에 그 누구도 안전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요새 부쩍 하고 있다. 우리가 투자하는 초기 스타트업들이야 항상 돈이 없지만, 대기업마저 스타트업과 같이 돈이 없어서 위태로운 이 시기에 스타트업은 어떻게 행동해야할까?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내 기억으로는, 내가 가장 처음 경험했던 경제대란은 1997년 IMF 사태였다. 솔직히 이때 나는 군인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제대해도 학생이기 때문에, 막상 직접 체감하진 못 했었다. 그 이후 2000년도 초반, 실리콘밸리에서 인터넷 거품이 터졌을 때 나는 첫 직장에서 정리해고 됐다. 이게 두 번째 경제대란 경험이었다. 그리고 미국에서 뮤직쉐이크 할 때, 대마불사였던 Lehman Brothers가 파산하면서 2008년~2009년에 경험했던 경제위기는 아직도 몸으로 기억할 정도로 처참했고 우울했다. 그런데 이번 경제위기는 2008년보다 더 파급력이 클 것 같다는 걱정이 매일매일 커지고 있다. 우리도 이런데, 경기가 좋아도 하루하루가 힘든 스타트업은 어떨까. 실은 이 와중에도 잘 하는 회사도 있고, 오히려 더 잘되는 회사도 있지만,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최악의 상황을 준비해야 한다. 대표이사들은 어쩌면 겉으로는 부인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분명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 경험에 의하면, 느낌이 좋지 않다면, 지금 당장 행동을 해야 한다.

얼마 전에 내가 2009년 세계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뮤직쉐이크가 망할뻔 했을 그 시절에 썼던 포스팅 시리즈를 다시 한번 쭉 정독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느꼈던 점들과 우리가 취했던 행동들을 창업가 분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내용을 편집/각색해서 여기서 공유해본다. 물론, 12년 전 이야기이고, 나는 그때 정말로 경험 없는 초짜 사업가였기 때문에, 정말 많은 실수를 했다. 하지만, 경기지수와 주식시장이 거의 10년 전으로 리셋된 걸 보면서, 어쩌면 내가 당시에 느꼈던 점들과 취했던 액션들이 지금 이 불확실성을 두려움과 공황으로만 버티고 있는 창업가들한테도 많은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이 섰기 때문에 여기서 공유한다(참고로 좀 길지만, 유용하다).

Chapter 9 스타트업이 망할것 같으면?

왜 Chapter 9인가? 2010년도에 출간 된 내 첫번째 책 스타트업바이블은 244쪽 분량의 책이다. 244쪽이 어떻게 보면 많고 어떻게 보면 적은 애매한 양이라서 출판사 분들과 한 개의 챕터를 더 추가할까 말까 하는 이야기를 하다가 일단은 타이밍 문제가 있어서 챕터 8로 책을 끝냈는데, 실은 내가 이 책에 추가하고 싶었던 마지막 챕터가 하나 더 있었다. 이게 출판되지 않은 챕터 9이다. 이 내용은 편집되지 않은 내용이라서 책과 같이 문장이 매끈하지 못하고, 문체도 정제되지 않았으니 이 부분은 양해를 부탁드린다. 그리고 내용 자체가 10년이 넘었기 때문에 여러가지 상황이 지금과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계속 2009년도 이야기를 하는데 2009년도는 정말로 뮤직쉐이크한테 힘든 한해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2008년 12월부터 우리 회사는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하였다. 이미 투자를 받기로 어느 정도 결정이 되었던 상황이었는데, 세계 경제가 완전히 개판 나면서 구두로 투자 약속을 하였던 투자자들이 불과 며칠 만에 투자를 보류하더니, 결국에는 투자 자체가 없던일이 되어버렸다. 참으로 황당했지만, 솔직히 황당해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이미 은행잔고가 뚝뚝 떨어지는 게 내 눈앞에 보였고, 잔고가 “0”이 되는 순간에 회사는 원하든 원치 않든 공식적으로는 망하는 거니까. 아마도 이런 경험을 직접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내가 무슨말을 하는지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월급쟁이가 월급을 꼬박 꼬박 받으면서 다니던 회사가 망하는거랑, 직접 스타트업을 운영하면서 은행 잔고가 뚝뚝 떨어지고 지출은 계속 발생하는데 수입은 그 지출을 받쳐주지 못하는 상황을 피부로 느끼는 거는 완전히 다르다. 마치 벼랑을 향해서 내리막길을 전속력으로 달리는 차의 브레이크를 젖먹던 힘을 다해서 밟아서 차를 멈추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더 더러운 거는 운전자는 이미 차가 서기전에 벼랑밑으로 차와 함께 모두가 다 떨어질 거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는것이다.

확실한 거는 앞으로 3-4개월 안으로 뮤직쉐이크가 신규 투자 유치를 못할 거라는 점과 – 이 3-4개월이 결국은 12개월로 연장되었다 – 그동안에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가 우리 회사를 인수하지 않을 거라는 것이었다. 즉, 무슨 결정을 하든 간에 빨리 결정을 해야 했다. 생각해야할거는 많이 있었지만, 크게 보면 2가지 선택권이 있었다. 여기서 그만 전기코드를 뽑는 쉬운 방법이 있었고, 또 하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발전기를 계속 돌려서 회사를 생존시키는 쉽지 않은 방법이 있었다.

나는 후자를 택하기로 했다. 왜?

솔직히 말해서 쪽팔렸다. 성공한 창업가는 아니더라도, 다만, 뭔가를 한번 해보려고 열심히 노력했고 만만치 않은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던 그런 사람으로 나는 기억되고 싶었다. 여기서 그만두면 나는 막말로 여러 가지 옵션이 있었다. 그냥 대기업이나 다른 IT 회사의 VP로 갈 수도 있었고, 그냥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명문 경영대학원에서 MBA 학위를 따서 더 편안한 고액연봉의 삶을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학교를 과감하게 때려치우고 뭔가 한 번 해보겠다고 동부에서 서부로 이사했는데 칼을 뺐으면 두부라도 배야지 않겠냐. 그동안 싼 똥을 누군가는 치워야했고, 나는 그 작업을 한번 해보기로 했다. 문제는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였다.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고, 그러면서 비즈니스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DO I HAVE THE BALLS TO DEAL WITH THIS?

내 경험에 의하면, 밑에 나열한 9가지의 상황을 스스로 해결하고 극복할 자신이 없다면 지금 당장 그만두고 배를 갈아타야 한다고 본다:
1/ 전 직원의 50%를 해고
2/ 3개월 후에 다시 직원의 50%를 해고
3/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직원의 50%를 계속 해고(그때까지 해고할 직원들이 남아있다면)
4/ 12개월 동안 정신적인 스트레스 때문에 밤잠을 설침(첫 6개월이 가장 힘들다)
5/ 거의 모든 계약이 하루아침에 무산되는 상황을 그냥 바라만 보기
6/ 잘나갈 때는 제발 한번 만나달라고 구걸하던 사람들이 전화나 이메일을 10개 이상 보내도 무시
7/ 언제는 우리 스타트업이 마치 제 2의 Facebook인 마냥 보도하던 언론사와 연락이 아예 안됨
8/ 지인들 앞에서 “네, 뭐 그럭저럭 잘 되고 있습니다.”라면서 마치 비즈니스가 잘되는 것 같은 거짓말 하기
9/ 똥을 치우기 전까지는 회사로부터 단돈 일원의 월급도 가져가지 않기

뮤직쉐이크는 잘나갈 때는 35명의 직원이 있었는데 2009년도 어느 시점에 우리는 아마도 12명까지 내려갔던 거 같다. 현재 우리의 headcount는(한국+미국) 15명 이다. 2009년도 언젠가부터 나는 비용절감을 위해서 정말 필요한 출장도 더는 가지 않았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울리던 우리 사무실 전화는 언제부터인가 조용해졌다. 그러면서 우리의 똥 치우기는 계속 되었다. 뭐, 솔직히 그다지 자랑스러운 이야기는 아니다. 회사 운영을 못해서 스타트업이 망할 위기까지 온 게 뭐 자랑스러운 거라고 이렇게 책에 포함할 생각까지 했냐 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분명히 이런 원치 않은 상황을 경험한 사람들이 있을 테고, 현재 이런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시점에 와있는 대표들이 있을 것이다.

앞으로 내가 쓸 내용은 스타트업이 망해가고 있을 때 취해야 하는 행동들과 그러한 과정에서 내가 배운 중요한 교훈들에 관해서이다.

Chapter 9.1 우리의 활주로는?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현재 은행에 남아 있는 돈으로 회사가 언제까지 생존할 수 있는지를 계산하는 일이다. 즉, 활주로 (runway)를 계산해야한다. 스타트업 바이블 116쪽에 runway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내 수익을 만들지 못하는 스타트업이 현재 가지고 있는 돈으로 생존할 수 있는 기간을 활주로 (runway)라고 한다. 비행기가 활주로 끝에 다다르면 하늘로 이륙하거나 더 이상 운행을 하지 못하고 멈추거나 아니면 바다로 추락하듯이, 스타트업들도 돈을 다 소진하면 재투자를 받아 날아가거나 아니면 망하는 것이다. 벤처 캐피털들이 “활주로가 얼마나 남았습니까? How much runway do you have?”라는 질문을 많이 하는데, 이는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이 언제 떨어집니까?’라는 말이다.

솔직히 활주로를 계산하는 건 정말 쉽다. 대학교를 나오지 않았어도 웬만한 정규 교육을 받은 현명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손으로 할 수 있다. 매달 회사에서 발생하는 비용을(M) 계산하고, 현재 은행에 남아있는 잔액을 M으로 나누면 된다. 그러면 현재 은행에 남아 있는 돈으로 우리 스타트업이 과연 앞으로 몇 개월 동안 연명할 수 있는지 정답이 나온다. 스스로 하는 게 조금 버겨우면, 회계학을 전공한 친구나 주위에 있는 회계사한테 부탁하면 조금 더 자세하고 정교하게 계산해줄 것이다. 우리의 경우 M이 4개월도 채 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활주로가 정의되었으면, 대표는 이 활주로를 어떻게 해서든지 연장해야 한다. 활주로를 연장한다는 말은 비용을 절감하던지, 매출을 증가시키는 건데 아마도 이 시점에서는 비용을 절감하는 게 더 쉬울 것이다. 직원들을 과감하게 잘라야 하며, 건물 주인과 네고해서 사무실 월세를 깎아야 하고, 불필요한 청구서들을 대폭 줄여야 한다. 그리고 나서는 현재 매출을 어떻게 하면 더블할 수 있는지를 아주 심각하게 고민해야한다. 이렇게 해서 비용 절감과 매출 신장을 단기간안에 하였다면 아마도 활주로가 2배 연장되었을 것이다.

또한, 경영진과 매일매일 머리를 맞대고 마른 수건을 짜듯이 비용구조를 더 개선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야한다. 솔직히 작은 스타트업의 비용구조가 뭐 그리 복잡하겠냐…여기서 말하는 비용구조 개선이라 함은 그냥 무조건 아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라는 말이다. 월세를 100만원 내고 있다면, 건물 주인한테 가서 사정을 설명하고 앞으로 몇 개월 동안은 50만 원으로 해달라고 구걸해라. 직원들 핸드폰 비용의 50%를 회사에서 내주고 있었다면, 앞으로 몇 개월 동안은 중단하고, 한 달에 회식을 2번 했다면 이제부터는 회식을 하지 말아라. 어떻게 보면 직원들한테는 정말 치졸하고 더럽게 느껴지겠지만 어쩔 수 없다. 일단은 회사가 살아야한다. 회사가 망하면 모든 게 끝이니까.

Chapter 9.2 해고, 그리고 또 해고

제조업과 같이 생산시설과 설비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인터넷 사업의 비용 구조를 분석해보면 비용의 절반 이상이 인건비이다. 특히 실리콘 밸리와 같이 능력 있는 사람들을 데려오기 위해서라면 돈을 아끼지 않는 미국의 스타트업의 경우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타트업이 위기를 맞이해서 비용을 절감하려면 해고는 어쩔 수 없이 감행되어야 하는 절차이다.

해고는 글로 쓰면 너무나 쉬운 단어이지만,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 중 하나를 꼽으라면 아마도 부하직원을 해고했을 때인 것 같다. 당장 눈앞에서 해고를 말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개인적으로 친했던 사람과 어쩔 수 없이 멀어지는 상황도 견디기 쉽지 않았다. 아무리 친했던 사람이라도 스타트업의 자산이 되기보다는 부채가 된다고 판단이 되면 경영진의 입장에서는 해고를 결심할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그 사람과 인간적으로도 멀어지게 되고 감정의 골은 날이 갈수록 깊어진다. 공과 사를 구별해야 한다는 사실쯤은 잘 알고 있지만, 현실은 말처럼 간단하지가 않다. 그런데 어찌 보면 이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들이며 인생의 한때를 전부 바친 회사가 아닌가. 해고하는 사람이나 해고를 당하는 사람이나 모두 쓰디쓴 배신감을 맛볼 수밖에 없고, 이런 감정의 상처는 아무리 노력해도 좀처럼 낫지 않는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참고로 내가 같이 일하다가 해고했던 사람들과는 현재 나는 인간적으로도 완전히 멀어졌다. 이들은 아직도 나를 이 세상 어디선가에서 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나도 너희 아직도 속으로 욕하고 있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해고할 때 매니저들이 항상 습관처럼 말하는 게 있다.
“너는 정말 내 동생같아서 인간적으로는 내 옆에 항상 두고 싶은데,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건 아닌 거 같다. 절대로 개인적인 감정은 없으니까 우리 밖에서 만나면 소주 한잔하면서 형, 동생같이 지내자.”
이거 완전 개소리다. 해고하는 사람이나, 해고당하는 사람이나 이런 상황까지 왔다면 그 이후로는 인간적으로도 멀어질 수밖에 없다. 매니저들은 나중에 사적인 자리에서 마주치지 않기를 기도해야한다. 졸라게 얻어맞을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일을 하다 보면 적을 만들 수도 있고 사람들과 감정의 골이 생길 수도 있다. 그게 인생이니까 그냥 let’s get on with life.

자, 만약에 활주로를 계산했는데 스타트업이 앞으로 12개월 동안은 매출을 만들 확률이 전혀 없고, 현재 은행에 남은 돈으로는 6개월 정도밖에 버틸 수 없을 거 같다면 어쩔 수 없이 현재 직원의 3분의 1, 많게는 절반을 잘라야 할 것이다. 그리고 추가로 남은 사람들의 연봉도 삭감해야 할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결심을 했다면 다음의 절차를 한번 밟아봐라:

1/ 회사의 절대적 생존에 필요하지 않은 직원들의 리스트를 만들어라. 인터넷 서비스를 하는 스타트업이라면 홍보, 마케팅, 경리 등이 이런 직책이다. 솔직히 이런 분들이 있으면 좋지만, 그렇다고 없어도 인터넷 스타트업의 생사를 결정할 만큼 중요한 보직은 아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홍보, 마케팅, 경리 담당자들한테는 죄송하지만, 솔직히 본인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들이 하는 일이 영업부서와 같이 회사의 매출이나 수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걸. 이런 보직은 미안하지만 당장 없애야 한다. 그게 여의치 않으면 계약직으로 전환하는 걸 생각해봐라.

2/ 남은 직원들의 연봉을 잘 분석해보고 현재 시장에서의 평균 연봉과 비교해봐라. 시장에서의 평균 연봉보다 훨씬 더 많은 월급을 받는 직원들을 없애고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을 현재 시장 평균 연봉에 구할 수 있는지 한번 알아봐라. 이 직원이 우리랑 몇 년 같이 일한 사람이 아니라 오늘 새로 고용할 사람이라면 이 연봉에 채용할 생각이 있는지를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고, 그렇다면 그냥 유지하고, 아니라면 교체해라. “와, 정말 이렇게 치사하게까지 나가야 되나?”라고 문의하는 대표들이 있겠지만 우리는 지금 6개월 후에 망할 스타트업을 어떻게든지 살려보려고 바둥거리는 위치에 있다는걸 반드시 기억해야한다. 이런 결정이 하루 늦어질 때마다 회사의 수명은 일주일씩 짧아진다는 사실과 함께.

3/ 평균 시장가보다 더 많은 몸값을 받는 직원들과 1대1 면담을 해라. 그리고 현재 상황을 설명하면서 연봉을 삭감할 것이며, 대신 그만큼 스톡 옵션을 더 주겠다는 제안을 해봐라. 어떤 직원들은 오히려 회사의 지분을 더 받게 되어서 좋아하지만, 어떤 직원들은 연봉 삭감은 죽어도 안된다고 할 것이다. 직접 물어보기 전까지는 모른다.

4/ 위의 1, 2, 3번 절차를 3개월 후에 다시 한번 반복해라.

5/ 위의 1, 2, 3번 절차를 필요할 때마다 계속 반복해라.

근데 참으로 신기한 건, 이렇게 직원들을 대량 감원한 후의 회사의 output과 감원하기 전의 output을 직접 비교해보면 그 결과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음을 많은 대표들이 발견하고 의아해한다. 아니, 어떤 경우에는 100명의 직원이 있을 때보다 20명의 직원이 있을 때의 회사의 실적이 더 좋은 사례가 수두룩하다. 뮤직쉐이크도 경기가 좋을 때는 30명 이상의 직원이 있었지만, 2009년 말에는 거의 절반 수준인 15명이 남았는데 회사의 매출이나 performance는 오히려 더 좋아진 걸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이런 현상들에 대해서는 산업공학과 조직심리학과의 교수들과 학자들이 다양한 논문까지 발행한걸로 알고 있다.

마지막으로…해고는 하는 사람이나 당하는 사람이나 유쾌하지 않다고 했는데 여기에는 한가지 예외가 있다. 나같이 인정사정없고 냉혈동물 같은 놈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이 있으면 당장 해고하고도 밤에 편하게 잘 수 있지만, 모든 스타트업 대표가 이렇지는 않다. 특히, 우리나라 문화상 남한테 싫은 소리는 죽어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분들한테는 불경기와 위기는 그동안 맘에 들지 않았던 직원들을 해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가 있다.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몇몇 직원들을 감원해야 하는 상황이 저절로 왔는데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어디있는가? 실제로 내 주위에는 2009년의 불경기를 잘 leverage해서 맘에 들지 않던 직원들을 다 자르고 2010년도에 새롭게 시작해서 요새 잘나가고 있는 스타트업들이 더러 있다.

Chapter 9.3 전직원의 영업 – 뭐라도 팔아라

회사가 만드는 제품을 팔 수 없다면, 그건 제품도 아니고 당신들이 하는 건 비즈니스가 아니다. 단지 취미 생활일 뿐이다. Dallas Mavericks 농구팀의 억만장자 구단주 Mark Cuban은 “영업은 모든 걸 해결한다”라는 말을 버릇처럼 하곤했다. 그만큼 스타트업이 살아남으려면 영업만큼 중요한 건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스타트업의 활주로가 6개월도 채 남지 않았을 때만큼 영업이 중요한 시기는 없을 것이다. 솔직히 상황이 이 지경까지 왔다면 3년 치 계획이니 회사의 장기적인 전략같은건 다 필요 없다. 곧 자금이 고갈되어 회사가 망할판에 장기적인 비전이나 전략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이때는 영업사원들뿐만이 아니라 스타트업의 전 직원이 영업 전선에 뛰어들어서 자사 제품을 팔아야한다. 개발자, 마케팅, 회계, 경리 상관없다 –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전원, 전방위적 공격을 해야 한다.

활주로가 6개월 남은 이 시점에서는 유감스럽게도 회사의 비전, 장기적인 전략 그리고 스타트업 창업 당시의 비즈니스 모델은 전혀 의미가 없다. 이 모든 걸 버리고 무조건 지금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영업활동에 전 직원의 혼과 정신이 집중되어야한다. 옷을 파는 회사인데 옷이 잘 팔리지 않고 활주로가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면 옷감을 팔던지, 옷 사진을 팔던지, 뭐라도 단기적으로 돈을 회사에 벌어줄 수 있는걸 해서 조금이라도 회사의 생명을 연장해야 한다.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저들이 곡을 만들어서 돈을 내고 MP3를 구매하게 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우리의 비용을 충당할 정도로 잘 돌아가지 않아서 어떻게 하면 당장 돈을 벌 수 있겠냐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떠오른 아이디어가 바로 유저들이 만들어서 뮤직쉐이크에 올린 10만 개 가까이 되는 곡들을 CD로 구워서 파는 것이었다. 하지만 CD를 만들어서 인터넷에서 팔 수 있는 인프라가 우리한테는 갖추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회사 근처에 있는 초/중학교 앞에서 직접 학생들을 대상으로 CD를 팔아보기로 하였다. 이때부터 회사가 아닌 근처의 초/중학교로 출근하기 시작하였다. 학생들 등하교 시간에 큰 박스에 CD를 꽉꽉 담아서 매우 싼값에 코 묻은 돈이라도 벌어 조금이라도 회사를 연명시키려는 절박한 심정이었다.

결과는 당연히 좋지 않았다. CD가 잘 팔리지도 않았지만, 한 학교에서 1시간 이상 서 있으면 항상 누군가는 신고해서 경찰한테 쫓긴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내가 못 배운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능력이 없는 사람도 아니고…. 그때 생각만 하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지금까지 뮤직쉐이크에서 일하면서 “그냥 여기서 그만할까.”라는 생각을 딱 한 번 한 적이 있는데 그게 바로 이렇게 LA 경찰들한테 불법 이민자 취급받으면서 고생할 때였다.

여기서 전달하고자 하는 포인트는 스타트업의 현금 보유량이 바닥나고, 그렇다고 수십억짜리 계약이 성사되거나 갑자기 비즈니스가 확 뜰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 현실을 빨리 인정하고 전 직원은 영업모드로 전환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의 기존 전략이나 비즈니스 모델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뭐라도 팔아서 당장 현금을 계속 창출하는 게 중요하다. 마치 물이 2/3 정도 차올라서 가라앉고 있는 배에서 가장 중요한 거는 모든 선원과 승객이 물을 배 밖으로 퍼 내는거지, 배가 목적지 쪽으로 잘 가고 있는지 아니면 적당한 속도를 유지하고 있는지는 크게 상관없는 상황과 비슷한 거다.

Chapter 9.4 결론. 무조건 살아남아라

마지막 챕터의 마지막 장이다. 솔직히 이 외에도 많은 내용이 있는데 너무 길고, 그리고 나도 글로 생각을 정리하려면 시간이 좀 걸려서 여기서 마무리를 하려고 한다. 절망, 걱정, 슬픔, 기쁨(가끔), 감동 등의 감정이 롤러코스터와도 같이 요동쳤던 2009년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지만, 우리는 2009년 중반까지도 별다른 탈출구를 찾고 있지 못하였다. 오전 8시부터 밤 8시까지 내 머릿속은 온통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활주로를 연장할 수 있을까?”와 “어디서 몇십억 빌릴 때가 없을까?”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고, 불안하고 초조하게 나날을 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미친 짓이었는데, 언젠가 나는 스탠포드 대학 동문 주소록을 A부터 Z까지 훑으면서 언론에서 우리가 접하고 들어본 스탠포드 출신 유명인사와 부자들의 연락처를 적어 놓은 다음에 하나씩 연락을 시도해봤다.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은 대부분 비서 연락처를 적어놓거나 연락처를 아예 적어놓지 않는데 여기저기 연락을 시도하는 와중에 나는 스탠포드 MBA 출신인 나이키 창업자이자 회장인 Phil Knight의 개인 핸드폰 번호를 얻을 수 있게 됐다. 아무리 얼굴에 철판을 깔고 영업을 해왔던 나였지만 나이키 회장한테 직접 전화를 한다는 게 매우 부담스러웠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몇 번이나 연습을 한 후에 나는 전화를 걸었다:

Phil Knight(PK): 여보세요?
배기홍(KB): 안녕하세요. 나이트 회장님이신가요?
PK: (귀찮은 어투로) 네, 맞습니다. 누구시죠?
KB: 안녕하세요. 저는 스탠포드 동문인 Kihong Bae라고 합니다…
PK: 네, 안녕하세요. What can I do for you?
KB: 정신 나간 소리 같지만, 우리 회사가 매우 어렵습니다. 200 불만 투자하시면 5년 후에 5배 이상의 수익률을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PK: (껄껄껄 웃으면서) Son, you have some balls! (얘야, 너 참 용감하구나!). 너한테 돈을 주지는 못하지만, 너 이름은 반드시 기억해 두마. 이름이 뭐라고?
KB: Kihong Bae. 그런데 저는 제 이름을 기억하는 것보다 돈이 필요합니다. 회장님도 회사를 운영하시는 마당에 제 입장과 심정을 충분히 잘 이해하시리라 생각됩니다.
PK: 미안하지만 지금 바쁘고, 말했듯이 돈을 줄 수는 없다. I will remember your name though. Call me some other time and let me know how you are doing.

*몇 년 뒤에 나는 필 나이트 회장한테 다시 한번 전화를 해볼 거다. 정말로 내 이름을 기억하는지.

위와 같은 전화를 나는 다양한 스탠포드 출신의 유명인사들에 해봤지만, 당연히 매번 뺀찌를 먹었다. 이런 전화를 받고 투자를 하면 오히려 그게 미친놈이지. 하지만, 하늘도 뮤직쉐이크를 불쌍히 여기셨는지 2009년 12월에 정말 기적과도 같이 우리는 18억 원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물론, 하루아침에 투자가 성사된 거는 아니었다. 무려 9개월의 투자유치 노력과 기다림의 결과였다. 2010년 1월 실제로 돈이 통장에 입금된 거를 확인하고 나는 내 친구이자 직장 동료인 철이와 포옹을 했다.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남자들 간의 뜨겁고 힘찬 포옹이었다. 그리고 둘 다 별말 없이 한창 그러고 있었다. 뭐라도 크게 celebrate를 해야 할 것 같았지만, 솔직히 그동안 돈이 없어서 우리가 해야 하지만 못한 일들이 산더미 같았기에 다시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전화를 붙잡고 열심히 sales call들을 시작하였다. We were back in business.

자, 여기까지가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이다. 2009년도는 뮤직쉐이크뿐만 아니라 이 블로그를 읽으시는 모든 분들한테 힘들었던 한 해였을 것이다. 운이 따르지 않아서 사업이 망한 분들도 있을 것이고, 나와 같이 운 좋게 살아남은 분들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거는 우리 모두가 많은 걸 느꼈고, 배웠고 앞으로는 더 잘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 오하라는 “결국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니까”라는 말을 하는데 이 말은 정말 맞는 거 같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며 오늘이 어제보다 낫고, 내일이 오늘보다 낫게 만들 수 있는 건 우리 개개인의 마음가짐이다. Success is really a mind game.

성장과 배움의 기울기

board-1044088_640전에 내가 이런 내용을 쓴 적이 있다. 초기 스타트업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KPI는 회사마다 다르지만, 그 KPI를 매주 5%씩 성장할 수 있다면, 매달 20% 성장할 수 있고, 1년 동안 9배 성장할 수 있고, 이걸 해마다 반복할 수 있다면 투자자들이 제발 투자하게 해달라고 애걸할 것이라고.

많은 유니콘 회사들이 이렇게 성장한다. 이렇게 창업 초기 3년~5년 안에 말도 안 되는 미친 성장을 하는 회사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지만, 조금은 걱정되기도 한다. 너무 높이 날면, 언젠가는 내려올 수밖에 없고, 요새 이 동네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위워크와 같은 유니콘들의 기업가치가 인정사정없이 깎이는걸 보면 – 그 원인은 다양하지만 – 꼭 미친 성장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성장’ 자체는 스타트업의 존재 이유이자, 투자를 받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는 점도 절대로 간과할 수 없다.

그럼 어떻게 성장해야 할까? 나도 이 질문을 자주 받는데, 우리 투자사 중 다른 회사들보다 비즈니스를 잘하는 대표들을 보면, 그 방법이나 형태는 모두 조금씩 다르지만, “기울기가 일정한 의도된 성장”을 하는 분들이 있다. 조금 더 쉽게 말하면, 3개월 동안 300% 성장하기보단, 이걸 의도적으로 12개월 동안 300% 성장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진 않다. 일단 무조건 성장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 걱정하자가 대부분 창업가가 가진 태도이고, 굳이 3개월에 300% 성장할 수 있는 걸, 왜 일부로 제한을 하느냐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실은 일차원적으로 보면, 이게 맞다. 나도 미국에서 스타트업을 할 때 성장을 의도적으로 컨트롤 하자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고,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물 들어올 때 노 젓고, 무조건 성장할 수 있을 때 성장하자는 전략이었다(그래도 별로 성장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하다 보면, 나중에 항상 문제가 생기는 걸 자주 경험했다. 일단 단기간 내에 너무 빨리 성장을 하면, 창업자도 왜 회사가 그렇게 많이 성장했는지 원인 파악을 하기가 힘들다. 그럴 시간도 없고, 원인 파악을 하는 동안에도 계속 성장을 하니까,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행위에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게 행복한 고민이긴 한데, 나중에 성장이 멈춘 후에, 과거의 성장을 반복해야 할 텐데, 왜 그렇게 성장했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다시 이런 성장 사이클을 반복하지 못하는걸 여러 번 봤다. 그리고 적절한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그때마다 적절한 인력이 보강되어야 하는데, 너무 빨리 성장을 하면, 너무 빨리, 그리고 신중하지 못하게 사람을 뽑는데, 이게 항상 나중에 문제가 되는 걸 봤다. 어떤 성장을 할 때, 어떤 인력이 필요한지를 정확하게 알아야지만, 미래에도 계속 좋은 인재를 채용할 수 있는데, 이걸 생각할 시간도 없고, 고민할 여유도 없기 때문이다.

성장의 기울기와 배움의 기울기가 일치해야지만,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시스템을 회사 내부에 만들 수 있다. 성장의 기울기가 너무 가파르면, 배움이 그 기울기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항상 배움의 기울기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만큼만 성장의 기울기를 조정해보라고 권장한다. 물론,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여기서 또 하나 나오는 게 성장의 공식이다. 어떤 방식으로든지, 회사의 성장을 공식화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성장을 제한하거나, 또는 더 가속할 수 있는 거 같다. 우리 투자사, 또는 주위에 내가 아는 회사 중, 정말 비즈니스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스타트업은 모두 이런 성장의 공식을 어느 정도 내재화하고 있다. 그래서 목표와 계획보다 성장이 더디면, 이 중 몇 개의 변수를 조정해서 성장을 조금 더 촉진한다. 이와 반대로, 회사 내부 배움의 기울기보다 성장이 너무 가파르다 싶으면, 또 변수를 조정해서 성장을 조금 더 늦춘다. 나는 이런 걸 실제로 봤기 때문에, 가능하면 모든 창업가에게 이런 성장의 공식을 찾아보라고 조언한다.

물론, 이런 성장과 배움의 기울기는 순전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내가 아는 많은 VC는 초기에는 무조건 미친 성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매달 업다운이 심하더라도 일단은 성장할 수 있는 만큼 무조건 성장해야 하고,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유니콘 회사는 없다고 한다. 이 말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일단 투자자 돈으로 유니콘 되고, 어떻게 돈 벌고, 어떻게 제대로 된 회사를 만들지는 그 이후에 고민해보자는 식의 생각과 태도는 요새 참 위험천만하다고 매일 느끼고 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마음에서 우러러나오는 편지

157196504812610월은 많이 바쁜 한 달이었다. 뭐, 우리 같은 투자자는 기본적으로 다 바쁘지만, 이번 달은 스트롱 미팅, 프라이머 16기 선발 미팅, 그리고 두 번의 짧은 해외 출장이 있었다. 일본과 동남아에 도착하자마자 미팅만 몇 개 하고 바로 다시 서울로 오니까, 시차는 거의 없지만, 역시 체력적으로 상당히 힘들었다. 그 와중에 한국에서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을 정도로 빡빡하게 회사들과 미팅하니까, 집에 오면 온종일 노가다 한 사람같이 쓰러졌다.

그중 하루는 집에 오니까 목이 쉬어서 목소리도 안 나오고 기가 다 빠진 그런 날이었다. 나는 아직도 이메일 받은편지함을 비우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밤늦게까지 이메일을 하나씩 확인하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이런 긴 하루를 보내면, 중간에 이메일 확인할 시간이 없어서, 엄청나게 많은 이메일이 읽히길 기다리고 있는데, 특히 이날은 보기만 해도 토할 정도로 많았다. 그래서 그냥 중요한 내용만 답변해주고,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이메일은 읽기만 하고, 모르는 사람한테 온 이메일은 그냥 대충 넘어가고 빨리 자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중 유독 한 이메일이 내 눈길을 끌었다. 모르는 주소에서 온 이메일이라서 그냥 대충 보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그 진정성 있는 내용과 창업가의 구구절절한 스토리에 잠이 확 달아났고, 나는 어느새 그 긴 이메일을 한 자도 놓치지 않고 읽고 있었다. 이메일의 단어 하나하나, 그리고 매 줄에서 묻혀 나오는 절박함에서 이분의 얼굴과 표정, 그리고 심정까지 생생하게 떠오를 정도였으니, 이건 엄청나게 잘 쓴 하나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왜 그랬을까? 피곤해서 목소리도 잘 안 나오는 그런 하루였고, 빨리 자고 싶었고, 솔직히 모르는 사람이 나한테 장황한 이메일에 사업계획서를 첨부해서 보내는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굳이 이 이메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한 이유는?

왠지 이분의 이메일을 읽으면서 나도 뮤직쉐이크 할 때가 생각났던 거 같다. 솔직히 그땐 정말로 돈이 절실하게 필요할 때였지만, 내가 스타트업 경험이 없어서 아는 투자자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스탠포드와 워튼 동문 주소록을 뒤지면서, 현재 직업이 VC인 동문들한테 하나씩 이메일을 했다. 이때 내 심정은 정말 절실했다. 2008년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리만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세계 경제는 곤두박질쳤고, 우리한테까지 돌아올 투자금은 더는 없었다. 그래서 한 명의 VC한테 이메일을 쓰기 위해서, 이분과 이 VC에 대해서 정말 자세히 공부하고 뒷조사를 한 후에야 이메일을 썼는데, 하나 쓰는데 한 시간 넘게 걸린 적도 있었다. 썼다 지우기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내 마음이 0과 1의 바이너리가 아닌, 정말 진심으로 상대방에게 비치고 내 간절함이 전달되길 기원하는 (전자)편지를 썼다. 이 중 90%는 답장을 못 받았고, 아마도 읽히지도 않았겠지만, 10%는 어떤 형태로든 나한테 답장을 해줬다. 물론, 이 10%도 결국 “우린 관심 없다” 였지만, 이 중 몇 명의 투자자는 당시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나한테 조금만 더, 하루만 더 버틸 수 있는 큰 힘이 되는 지원과 위로의 답변을 해 줬는데, 지금 생각해도 감동이다.

“아, 나도 뮤직쉐이크 할 때 이런 심정이었지. 이분들은 정말 얼마나 절실하게 나한테 본인들의 사업과 인생 이야기를 하고 싶을까. 꼭 답해주고, 가능하면 만나봐야겠다.” 아마도 위에서 말한 그 이메일을 읽으면서 내가 이런 생각을 했던 거 같다. 손가락으로 치고, 이게 0과 1로 표시되고, 네트워크를 통해서 나한테 화면으로 전달됐지만, 나한테는 진짜로 마음에서 우러러나오는 편지였다. 그리고 굉장히 피곤한 하루였지만, 이 이메일을 읽은 후에는 참 평온하게 잘 수 있었다.

<이미지 출처 = 크라우드픽>

홍보가 후진 제품을 살리지 않는다

내가 자주 강조하는 내용인데, 최근에 비슷한 이야기를 여러 창업가와 해서, 몇 자 또 적어본다. 홍보에 관한 이야기다. 너무 좋은 제품과 기능을 만들었는데, 아무도 이런 게 있다는 걸 잘 모르니 홍보를 해야 하는데, 본인도 개발자고 다른 팀원도 개발자라서 홍보나 마케팅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기 때문에, 홍보 담당자를 풀타임으로 채용하거나, 아니면 외주업체에 돈을 주고 PR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대표를 몇 분 만났다.

10년이면, 새로운 기술이 계속 나오는 스타트업 세계에서는 한평생이고, 이 기간 동안 세상이 바뀐다. 그래서 내가 10년 전 이야기를 하는 건 정말 의미 없고, 어떻게 보면 꼰대스럽지만, 그래도 나는 본질이라는 건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10년 전 미국에서 뮤직쉐이크 할 때 이야기를 좀 해보겠다. 아이폰이 나오기 전이었기 때문에, 초기 뮤직쉐이크 제품은 PC 기반의 설치형 애플리케이션이었다. 그 이후에 플래시 기반의 웹 앱을 출시하고 – 당시 플래시 기술이 우리가 추구하는 기능을 다 지원하지 않아서 정말 애먹었던 기억이 난다. 아이폰이 나온 후에는 모바일 앱까지 출시했다. 모바일 앱은 단순히 음악을 쉽게 만드는 툴을 넘어서, 기존 유명곡을 재미있게 리믹스 할 수 있었는데, 음악에는 저작권이라는 골치 아픈 권리가 있어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이야기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오래된 명곡 Jackson 5의 “ABC” 리믹스 앱을 시작으로, 여러 가지 모바일 앱을 출시했다.

위에서 말한 각 마일스톤을 도달할 때마다 우리 팀의 분위기는 흥분 그 자체였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참신한 도전이었고, 시장에 소문만 나기 시작하면, 이제 우린 떼돈 벌고 대박 터질 거라는 생각에 잠도 잘 못 잤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우리 예상과는 달리, 출시하고 시간이 한참 지나도 시장에서는 별 반응이 없었다. 플래시 앱도 그랬고, 모바일 앱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내렸던 결론은, 너무 잘 만든 제품이지만 우리의 약한 홍보력으로 인해 시장이 아직 모르기 때문에 포텐이 터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기의 대부분 스타트업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홍보나 PR을 해주는 담당자가 없어서 외부 PR 회사와 계약하고 홍보와 PR을 아웃소싱하기 시작했다. 우리 담당 홍보 컨설턴트까지 배정이 됐다. LA 쪽에서는 신생 회사였지만, 꽤 잘하기로 소문났었기 때문에 비용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홍보만 잘하면 대박 날 거라서 이 정도 비용은 충분히 지불할만하다고 판단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모든 미디어에 뮤직쉐이크 관련 PR 활동을 했지만, 트래픽이나 매출에는 변화가 없었다. 몇 개월 동안 “이렇게 하면 되겠지” , “조금만 더 알려지면 될 거야” 등의 생각을 하면서 참 많은 시도를 했는데, 그럴 때마다 잘 안 됐다. 그리고 서서히 현실을 인지하게 됐다. 제품이 완벽하지 않으면 아무리 홍보를 많이 해도, 절대로 시장에서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렇다고 우리가 후진 제품을 만든 건 아니다. 정말 참신하고 재미있었지만, 시장에서 제품을 보는 시선과 우리가 내부에서 봤던 시선에는 차이가 있었는데, 우리는 이걸 지속적인 제품 개발과 개선으로 풀어야 했는데, 홍보에서 찾으려고 하는 실수를 범했던 것이다.

최근에 만난 많은 대표가 뮤직쉐이크 시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뭔가 잘 만든 거 같은데, 시장에서 반응이 없으니, 홍보로 해결하려고 하고, 내부에 홍보력이 없으니까 외부 마케팅/PR 에이전시에 비싼 돈 주면서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이건 홍보의 문제가 아니라, 제품과 product-market fit의 문제이다. 고객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는 제품은 수백억 원을 써서 TV나 지하철 광고를 해도 말짱 헛거다. 일시적인 상승효과는 경험할 수 있겠지만, 돈을 쓰는 홍보를 멈추는 그 순간 트래픽과 매출은 곤두박질칠 것이다.

제품이 완벽해지기 전까지는 홍보와 마케팅에 너무 돈을 많이 쓰지 않아도 된다. 제품이 좋으면, 알아서 고객이 알게 되고, 알아서 사용하게 된다. 요샌 모두가 바쁘고, 비슷한 제품도 너무 많아서, 홍보를 해야 한다고 하기도 하지만 – 그리고, 이건 과거에 비해서 일부 맞다고 생각한다 – 시대를 초월하는 절대불변의 본질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맛있는 식당은 안 알려도 사람들이 찾아와서 줄을 서고, 좋은 제품은 안 알려도 사용자들이 찾아서 사용하고, 돈을 쓰게 되어 있다.

No, Maybe, 그리고 Yes

사진 2019. 5. 19. 오후 3 22 13대기업 라이프에도 적용되지만, 특히 벤처업계에서 일하다 보면, ‘거절(rejection)’에 익숙해져야 한다. 실은, 이건 인생에도 그대로 적용되지만 – 어릴적 갖고 싶은 장난감을 부모님이 사주지 않거나, 가고 싶은 학교에 떨어져서 못 들어가거나 하는 게 다 이 거절이라는 범주에 들어간다 – 내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스타트업을 하면서 남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NO’ 인 거 같다. 미국에서 뮤직쉐이크 5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도 NO였고, 이에 따른 거절을 정말 많이 당했던 거 같다. 실은, 그땐 정신적으로 정말 힘들었고, 우울하기까지도 했다. “이렇게 좋은 회사에 저 VC는 왜 투자하지 않을까” , “저 인간은 나보다 잘난 것도 없고, 운 좋아서 저 위치에 있으면서, 왜 나를 개무시할까” , “왜 이렇게 나는 되는 게 없을까” 뭐, 한번 거절 당할 때 마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나를 정말 괴롭혔고, 자다가도 이 생각을 하면 열 받아서 벌떡 일어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깨달은 건, 스타트업하면서 YES를 NO보다 더 많이 들으면 오히려 진짜 이상한 거고, 내가 거절 당하는 건 내가 개인적으로 부족한 것도 아니고, 상대방이 ‘배기홍’이라는 인간을 무시하는 게 아니고, 내가 하는 비즈니스와 실적을 무시하고 거절하는 거라는 사실이었다. 아니, 어쩌면 정말로 나를 개인적으로 거절하고 무시하는 걸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면서 계속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을 자가발전 했던 거 같다. 좌절할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고, 그리고 완벽하게 떨구는 건 힘들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떨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다 보니까, 어느 순간 내가 이런 거절에 굉장히 무덤덤해지고 면역력이 생긴 사람이 됐다는걸 느꼈다. 그리고 미팅-피칭-거절이라는 과정을 하루에도 여러번 경험하다보니까 이젠 중요한 미팅이 있어도, 크게 기대하지 않고, 크게 기대하지 않으니까, 거절당해도 크게 실망하지 않고, 혹시나 잘 되도 크게 기뻐하지 않는, 일희일비하지 않는 최적화 된 태도를 스스로 개발하게 됐다.

그러다가 투자를 하는 VC가 되었고, 나는 스타트업을 할때보단 거절당하는 일이 없겠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투자금을 모집하기 위해서 스타트업할 때 VC한테 피칭하듯이, 이젠 LP들한테 피칭을 해야 했다. 회사를 VC한테 피칭할 때는 뭔가 제품도 있고, 수치도 조금 있고, 이걸 기반으로 이야기를 하면 되는데, VC는 뭔가 수치를 만들려면 길게는 10년이 걸리는 업인 관계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그냥 오롯이 나와 존이라는 인간을 믿고 돈을 달라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이게 잘 될 리가 없었다. 결과는 엄청난 NO와 거절이었고, VC한테 뺀찌 먹을때와 LP한테 뺀찌 먹을때의 그 느낌이 묘하게 달랐다. 그러면서, 나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부족, 자존감 상실, 남에 대한 원망 등의 과정이 다시 처음부터 시작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또한, LP한테 거절 당하는 것 보다 그 빈도는 낮지만, 좋은 회사에 투자하고 싶은데, 대표이사한테 거절당해서 투자를 못 하는 경험도 몇 번 겪어 봤는데, 이 또한 꽤 자존심 상하고 순간적으로 좌절하는 상황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거절에 아무리 익숙하다고 해도, YES라고 할 줄 알았던 사람이나 기관으로부터 NO 라는 답변을 받을 때는 기분이 좋지 않다. 특히, 연속적으로 거절을 당하면 – 심할땐, 30번 연속으로 –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육체적으로 타격을 받는다. 그런데도, 계속 앞으로 전진해야 하는데, 이럴 때 내가 스스로 다짐하면서 최면을 거는 말이 있다. 이는 아마도 많은 운동선수와 사업가가 이런 거절을 극복하는 방법이다. NO라고 말하는 많은 사람이 실제로 의미하는 건 NO가 아니라 MAYBE이다. 그리고 MAYBE라고 말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실제로 의미하는 건 YES이다. 여기서 핵심은, NO라고 말을 했을 때 이걸 MAYBE로 해석을 해서, 다시 일어나서 계속 문을 두드리는 것이고, MAYBE를 YES로 확실히 전환하는 방법은 또다시 일어나서 계속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모든 거절을 이 프레임으로 생각하면, 거절이 결국엔 YES가 되기 때문에, 좌절하지 않고 계속 전진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오늘도 많이 거절당하지만, 매번 다시 일어나서 NO가 MAYBE가 되고, MAYBE가 YES가 되는 스트롱한 하루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