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 밑은 항상 어둡다

(이 블로그에 쓰는 글은 당연히 다른 사람이 다 읽을 수 있지만, 이 글은 남보단 내 스스로의 반성, 배움, 그리고 성장을 위해서 쓴다.)

우리가 2018년도에 투자한 Norae라는 미국 스타트업이 있다. Ryan이라는, 한국 분은 아니지만, 한국인 보다 더 한국을 좋아하는 창업가가 시작한 회사다. 회사 이름 Norae(노래) 자체가 이 팀이 얼마나 케이팝을 좋아하는지 그대로 보여주는데, 첫 번째 비즈니스는 틱톡의 모태가 된 Musical.ly랑 동일했다. 립싱크하는 동영상과 커버댄스 동영상을 남들과 공유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였는데, 여기에 올라오는 대부분의 콘텐츠가 케이팝이었다.

콘셉트는 재미있었지만, 사업 자체는 썩 잘되지 않았다. 아니, 잘 안된 게 아니라 진짜 별로였다. 똑똑한 창업가들이 정말 열심히 일했지만, 워낙 작은 회사라서 돈도 없었고, 나도 뮤직쉐이크를 통해서 배웠지만, 음악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소셜 미디어가 돈을 제대로 벌 수 있는 제대로 된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 건 매우 어려운 과제였다. 그래서 결국 우리의 작은 투자금은 다 썼고, 팀원은 대부분 떠났고, 그러면서 우리가 흔히 아는 스타트업 폐업의 길로 접어들었다. 물론, 이 창업가는 포기하지 않았다. 공동 창업가와 방법을 찾아서 계속 서버비를 벌고 앱 자체는 운영이 되게 정말 열심히 허슬했다. 중간에 한 명씩 차례로 다른 회사 업무를 해주면서 외주비도 벌고, 하여튼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은 동원해서 바퀴벌레같이 살아남았다.

그런데 틱톡이 너무 커지자, Norae의 가능성은 점점 더 없어졌고, 아마도 이 시점에 다다르면 대부분 창업가들이 그냥 회사 문을 닫을 텐데, 이 회사의 코파운더들은 피봇을 시도했고, Coverstar라는 어린이들을 위한 안전한 TikTok과 유사한 앱을 만들어서 출시했다.

미국 회사라서 한국 창업가만큼 자주 연락하거나 만날 순 없었지만, 그래도 정기적으로 계속 이야기하고, 상의할 게 있으면 조언도 하면서 이 팀의 변화를 나는 계속 지켜봤다. 내가 항상 바퀴벌레같이 절대로 죽지 말고 살아남으면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이라고 말했지만, 솔직히 맘속에서는 그냥 회사 문 닫는 게 모두를 위해서 맘 편할 텐데 또 안 될 앱을 새로 만드는 게 안쓰럽기도 했다.

어쨌든 이렇게 꾸역꾸역 조금씩 진도를 나아갔고, 우리가 첫 기관 투자자이기도 하지만, 초반부터 창업가의 허슬과 노가다를 가까이서 봤기 때문에, 사업 관련 모든 내용을 지속적으로 투명하게 공유해줬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우리에게 추가 투자해달라고 부탁했는데, 개인적으로 친한 주관적인 감정과 느낌을 배제하고 냉철하게 이 사업, 제품, 팀을 – 팀이라고 해봤자, 코파운더 두 명밖에 안 남았다 – 객관적으로 검토하고 판단하면 잘 될 가능성이 너무 낮은 사업이라고 판단해서 이 회사에 스트롱이 단독으로 추가 후속 투자하는 건 아니라는 결론을 매번 내렸다. 여러 번 검토했지만, 매번 우리 팀에서는 pass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다가, 최근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a16z에서 이 회사에 투자한 것이다. 그것도 단독으로. 이 투자자에게 피칭했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소식은 듣고 있었지만, 실제로 텀싯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내가 들었을 때, 즉시 내 머릿속에 “왜 우린 투자하지 않았지?” , “우리만 뭔가 못 봤던 건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크고 유명한 VC에게 투자받는다고 해서 사업이 잘되는 건 아니고, a16z가 잘 못 판단한 투자도 수두룩하게 많다. 그래도 이렇게 크고 경험이 많은 VC가, 우리가 수년 동안 잘 알고 있었지만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매번 투자하지 않은 우리 포트폴리오사에 후속 투자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기쁘기도 했지만, 뭔가 아쉽고 허전했다. 우리가 만약에 이전에 이 회사에 추가 투자했다면, 훨씬 더 싸고 좋은 조건에 투자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까 약간 배가 아프기도 했다.

전형적으로 등잔 밑이 어두웠던 케이스였다. 우리가 제일 잘 알고, 제일 친하다고 생각했던 우리 포트폴리오사를 실은 우리가 제일 잘 몰랐던 것이다. 아니, 몰랐던 건 아니고, 오히려 너무 잘 알고, 너무 오랫동안 본 팀이고, 이 팀이 그동안 어떤 고생을 했는지 샅샅이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오히려 어쩌면 우린 그 뒤에 숨은 장기적인 가능성을 간과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크고 유명한 VC에서 투자했다고 그 회사가 장기적인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순 없지만, 어쨌든 난 스스로 이번 계기를 통해서 여러 가지 역발상적인 생각과 반성을 하기 시작했고, 우리가 지난 13년 동안 투자했던 모든 포트폴리오사를 다시 한번 검토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팀 전원이 좋은 창업가와 회사를 남보다 먼저 찾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는데, 어쩌면 스트롱 포트폴리오에 이런 분들이 있는데 등잔 밑이 어두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너무 가까이 있어서 너무 친하고, 너무 잘 알고, 너무 당연한 것들의 진가를 우린 못 알아볼 때가 있는 것 같다. 우리 투자사의 후속 투자가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됐는데, 이는 투자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쳐서 생각해서 봐야 하는 쉬워 보이지만 매우 어려운 숙제다.

세상은 노가다

몇 년 전에 넷플릭스에서 화제가 됐던 요리 다큐멘터리 ‘길 위의 셰프들’을 이제서야 난 봤다. 한국 편에서는 광장시장도 소개되고 칼국수와 빈대떡 같은 한국 요리도 하이라이트 돼서 한국에서도 꽤 인기가 많았던 다큐멘터리였던 것 같다.

태국 편에서 태국 길거리 음식의 여왕이라는 쩨파이라는 분이 소개됐다. 방콕의 ‘란쩨파이(=쩨파이네 식당)’ 식당의 오너셰프인데 길거리 식당 치곤 드물게 미쉐린 1스타를 받은 식당이라서 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식당이다. 항상 손님들이 줄 서 있고, 블랙핑크의 리사를 비롯한 웬만한 유명 인사가 방콕을 방문하면 꼭 들리는 필수 명소다. 이 식당은 원래 현지에서는 유명했지만, 2017년도에 미쉐린 별을 받으면서 란쩨파이는 세계적인 식당의 반열에 올라갔고, 쩨파이는 유명 인사가 됐다.

쩨파이씨와의 인터뷰를 보면 미쉐린 1스타를 받은 2017년도가 그녀의 인생이 완전히 바뀐 한 해(=transformational year) 였다고 한다. 그전에는 그냥 평범한 태국 요리를 재미있는 방식으로 요리하는 길거리 요리사였는데, 2017년 이후에 그녀는 평범한 태국 요리를 그녀만의 창의적인 방법으로 해석해서 재탄생시키는 글로벌 셰프가 됐고, 이후에 전 세계에서 방콕을 방문한 김에 란쩨파이에 오는 손님들에서 란쩨파이에서 먹기 위해서 방콕을 방문하는 손님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쩨파이씨는 전 세계 요리사들의 부러움의 대상이다. 한 번도 정식으로 요리 훈련을 받거나 요리 학교나 학원에서 공부한 적이 없이, 그냥 어릴 적부터 요리를 어깨 넘어 따라 하면서 배운 사람이 미쉐린 별을 받는 경우가 그렇게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요리사들이 그녀를 부러워하고, 어떤 분들은 시기하기도 한다. 어쩌다가 반짝 떴고, 운 좋게 개천에서 용이 탄생했다고 이들은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쩨파이씨는 1970년 말에 요리에 입문했고, 단 한 순간도 요리를 멈춘 적이 없다. 그녀는 매일, 매시간, 새로운 방식의 요리에 대해서 연구했고, 새로운 재료에 대해서 고민했다. 그녀는 미쉐린 별을 받은 2017년도가 인생을 바꾼 한 해였다고 하지만, 실은 그 1년 뒤엔 남들이 모르는 40년의 노력이 있었다. 40년 동안의 끊임없는 노가다, 즉 끊임없는 육체적 노동이 단련되고 쌓이면서 그녀의 인생을 바꾼 2017년도에 폭발한 것이다. 인생을 완전히 바꾼 이 일 년이 만들어지기까진 수십 년의 노력, 근면, 성실, 그리고 노가다가 있었다는 점을 많은 분들이 무시하거나 간과한다.

우리 같은 VC는 주로 기술에 투자하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해야 하는 노가다를 경시한다. 우린 항상 자동화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빠른 스케일을 신격화한다. 우린 모든 걸 건너뛰고 미친 듯이 성장하는 제이 커브를 꿈꾸고, 투자하는 사람들이 맨날 이런 이야기만 하니까 이들에게 투자받기 위해서 창업가들도 무리하게 제이 커브로 성장하는 방향으로 모든 자원을 집중하고,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사업과 벼락 성공을 항상 꿈꾼다.

그런데, you know what? 이렇게 단시간 안에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건 이 세상에 없다. 우리 주위의 어떤 사업들은 하룻밤 만에 대박 난 것 같지만, 제대로 된 사업이라면, 그 대박 나는 하룻밤 뒤엔 성공과는 굉장히 먼 피와 땀으로 얼룩진 수천 ~ 수만 밤이 있었을 것이다. 결국엔 모든 성공은 아주 오랫동안의 – 어떤 경우엔 수십 년의 – 노가다로 만든 탄탄한 기초가 있을 것이다. AI의 세상이 오면서 모든 게 더 빨리 변할 것이고, 모든 게 더 빨리 자동화가 될 것이다. 하지만, AI가 세상을 지배해도, 그 밑엔 더 큰 노력, 근면, 성실, 그리고 노가다가 반드시 필요하다.

육체적 노동과 단순한 반복 작업을 무시하면 안 된다. 결국, 모든 성공을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보면, 그 폭발적인 성공의 순간을 만들기 위해서 수년, 또는 수십 년의 노가다가 반복됐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벼락부자와 벼락 성공을 바라지 말고, 지금부터 작은 노가다를 시작해 봐라.

Things take time. They just do. There is no shortcut.

빈곤 속의 기회

1월 말에 AI 업계를 발칵 뒤집는 일이 있었는데 거의 알려지지 않은 중국의 High-Flyer라는 헤지펀드에서 만든 DeepSeek라는 무료 오픈소스 언어모델의 발표였다. 발표하자마자 미국의 tech 기업들의 시가총액 $1T 정도가 증발했는데, 이건 한국 GDP의 절반이 넘는다. 이 큰 금액이 하루 만에 날아갈 정도로 DeepSeek이 대단한진 아직 잘 모르겠고, 이 회사에서 말하는 내용을 전부 다 믿기도 힘들다. 하지만, 딥시크가 비싼 GPU를 사용하지 않고 OpenAI의 성능과 비슷한 모델을 100억 원 미만으로 만들었다면, 그리고 이 기조를 이어서 앞으로 중국 회사들이 계속 AI 모델을 미국 회사의 10분의 1 가격 수준에서 개선해 나갈 수 있다면, 매우 흥미로운 일들을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들 힘들다고 하거나, 불가능하다고 한 걸 어떻게 중국 회사들은 할 수 있을까? 땅덩어리도 넓고, 사람도 많기 때문에 그만큼 똑똑한 엔지니어들이 많고, 인건비도 미국에 비해서 훨씬 저렴하므로 더 많은 엔지니어를 더 싸게 채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게 가능했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이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미국이 최신 하드웨어와 GPU를 중국으로 수출하는 걸 엄격하게 규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창업가들은 하드웨어가 아닌, 본인들이 직접 컨트롤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에 집중했고, 소프트웨어를 통해서 다양한 최적화 작업과 새로운 언어 모델 아키텍처를 만들기 시작했다.

다른 나라의 창업가들은 언어모델을 더 빠르고 좋게 만들기 위해서 그냥 돈을 써서 성능 좋은 GPU를 마음껏 구매한다. 돈이 없어서 문제지, 돈만 있으면 이들은 계속 최신 하드웨어를 구매한다. 하지만, 하드웨어의 부족으로 인해서 – 돈이 없어서 못 사는 게 아니라, 돈이 있어도 못 사는 부족 – 소프트웨어 단에서 언어모델의 최적화를 추구하는 나라는 중국밖에 없기 때문에 딥시크라는 걸출한 제품이 나왔다고 판단한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하는데, 딥시크를 보고 딱 이 말이 생각났다. 어쨌든, High-Flyer와 중국은 그 누구도 깊게 고민하지 않았던 분야에서 대단한 업적을 이룩했다. 이걸 보고 한국은 이제 절대로 미국과 중국을 AI 분야에서 따라잡을 수 없다는 부정적인 의견이 여기저기서 보였고, “우리도 이게 되면…” , “한국도 이런 게 있으면…” , 우리도 딥시크와 같은 시도를 해 볼 수 있지만 결국엔 못 한다는 아쉬운 이야기도 간혹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난 여기서 큰 희망을 봤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이다. 더 열심히 고민하고, 더 열심히 연구하고, 더 열심히 일하면, 우리도 척박한 환경에서 더 잘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한국 스타트업은 미국과 중국 스타트업만큼 돈이 없다. 우린 이 두 나라만큼 많은 수의 엔지니어가 없다. 우린 미국보다 모든 분야에서 규제가 심하다. 우린 R&D 예산이 크지 않다…이 외에도 한국이 AI 분야에서 뒤떨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으려면 수백만가지 이유가 있는데, 내가 보기엔 이건 대부분 변명이다. 딥시크가 나온 중국은 실은 우리보다 훨씬 더 불리한 환경이다. “원래 그런 거야” 방식으로 생각하면, 하드웨어가 없으면 AI 인프라를 못 만들기 때문에, 그냥 포기해야 하지만, 이제 우린 여기서 한 단계 더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사례를 딥시크가 만들었고, 빈곤 속에서 충분히 거대한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올해는 시장에 정말 돈이 없을 것이다. 이런 빈곤 속에서 많은 회사들이 사라지겠지만, 반면에 적은 자본으로 살아남으면서, 심지어 돈까지 잘 벌 수 있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 회사도 분명히 등장할 것이다. 이렇게 위기 속에서 기회를 만드는 창업가들이 계속 혁신을 만들면서 시장을 개편할 수 있길 바란다.

말하고 싶은 건, 안 될 것 같은 상황에서도 더 좋은 방법은 반드시 있다는 것이다. 다만, 남들보다 더 열심히 고민하고, 더 노력해서 더 좋은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도 할 수 있다. 머리를 쥐어 짜내고, 몸을 갈아 넣어서, 방법을 찾아보자.

채용하지 말아라

내가 만약에 투자자에서 다시 창업가로 돌아간다면, 해보고 싶은 게 정말 많지만, 안 하고 싶은 것도 많다. 그중 정말 하고 싶지 않은 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가능하면 투자를 받지 않고, 둘은 웬만하면 사람을 뽑지 않고 싶다. 본인은 열심히 투자하면서, 창업하면 투자를 안 받겠다는 말은 도대체 뭐지라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VC가 싫다는 말이 아니라 그냥 다른 사람의 자본 없이 내가 스스로 좋은 비즈니스를 만들어서 첫날부터 매출을 만들 수 있는 사업을 하고 싶고, 아무리 좋은 VC라도 투자를 받으면 사업에 간섭할 수 있기 때문에 그냥 내가 만들고, 남의 돈 안 받고, 정말로 그동안 내가 보고, 느끼고, 실수한 배움을 그 누구의 간섭 없이 모두 다 사업에 적용해 보고 싶다. 이런 의미에서 웬만하면 외부 투자를 받지 않겠다는 말이다.

채용에 대해서도, 내가 그동안 280개 넘는 회사에 투자하면서 옆에서 간접적으로 배운 점이 정말 많은데, 그 중 딱 하나의 배움을 뽑자면, 가급적이면 채용하지 말자는 것이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시작할 땐 소수 인원으로 모든 걸 한다. 영어의 do more with less 정신으로 서로의 계급이나 직책 따지지 않고, 그냥 그때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일을 처리한다. 개발자가 화난 고객의 전화를 받아서 고객 서비스를 할 때도 있고, 영업 사원이 포토샵을 배워가면서 웹사이트 디자인을 할 때도 있다. 이 시기에 대표이사는 회사의 모든 잡일을 한다. 그리고 전원 모두 정말 열심히 일한다. 내가 아는 잘 되는 회사의 초기 멤버들은 창업 초기엔 일주일에 거의 100시간씩 일 했다. 이 단계에서는 사람을 더 채용하는 게 오히려 회사에 부담을 안기는데, 돈이 없기 때문에 사람을 더 채용한다는 건 회사에 큰 재무적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새로 채용한 사람에게 업무를 가르칠 시간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오히려 기존 인력이 일을 더 많이 하는 게 더 생산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에 어떤 회사는 투자를 받고, 어떤 회사는 매출을 만들면서 스스로 돈을 버는데, 대부분의 창업가들은 가장 먼저 사람을 채용한다. 그것도 한, 두 명이 아니라, 대규모 채용을 하는데, 이때부터 회사는 망가지기 시작한다. 특히, 정말로 필요해서 사람을 채용하는 전략이 아닌, 일단 사람을 채용하고 이 사람에게 업무를 할당하는 전략을 실행하는 회사는 생산성에 적신호가 오기 시작한다.

일단, 현금이 상당히 빠르게 소진된다. 스타트업 운영비의 상당 부분이 인건비인데 사람을 많이 채용할수록 비용 구조가 악화된다. 그리고 너무 빨리, 너무 많이 채용하다 보니까, 제대로 된 채용을 못 한다. 70% 정도만 맘에 들면, 그냥 나머지 30%는 회사에서 채워준다는 생각으로 채용한다. 결과는, 나머지 30%를 채워주기 위해서 돈은 더 많이 써야 하고, 이 30% 채우기에 동원되는 다른 사람들의 업무가 지장 받으면서, 여기서 생산성 손실이 발생한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채용하다 보면, 결국엔 회사에서 노는 사람들이 생긴다. 한국의 경우, 사람을 마음대로 해고하지도 못해서, 노는 사람들이 회사의 시스템 뒤에 숨어서 일하는 척하기 시작하면 정말 골치 아프다.

이렇게 갑자기 커진 회사들이 문제가 발생해서, 사람을 대량 해고하면, 신기하게도 매출은 오히려 더 증가하고 비용은 내려가는데, 이런 경험을 해본 창업가들은 이제 되도록 사람을 안 뽑으려 한다.

스타트업의 첫 번째 채용 전략은 “웬만하면 채용하지 말아라.”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100% 맘에 드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냥 채용하면 안 된다. 조금 부족하지만, 그 부족한 부분은 회사가 채워주면 된다는 생각은 직원의 절반 이상이 놀아도 시스템으로 잘 굴러가는 대기업에만 해당한다. 100% 맘에 드는 사람을 못 찾으면, 그냥 현재 임직원들이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힘들겠지만, 이렇게 하면 오히려 생산성이 더 올라가고, 실적이 훨씬 더 잘 나온다. 이건 내가 수년 동안 커지는 회사들을 옆에서 보고 배운 점이다.

그래서, 일단 가급적이면 채용하지 말아라. 임직원들이 모두 200% 캐파로 일해서 더 이상 더 많은 일을 못 한다면, 그리고 100%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으면, 그때 한 명씩, 아주 천천히 채용해라. 그리고 정말 개 같이 일 할 수 있는 사람만 뽑아라.

기본기

올해도 첫 번째 그랜드슬램 테니스 대회인 호주 오픈이 잘 끝났다. 마지막에 노장 노박 조코비치가 컨디션 난조로 기권하면서 내가 응원하는 선수들은 모두 탈락했지만, 좋은 젊은 선수들의 경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이번에도 다양한 선수들이 등장했고, 예상치 못한 다크호스들이 발굴됐는데, 당분간은 남자 테니스도 계속 물갈이를 반복하며 운이 좋은 선수와 실력이 있는 선수가 확실히 구분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근 몇 년 동안 반짝 떴던 선수들이 올해는 초반에 많이 탈락했는데, 이들은 겉으론 화려하고, 본인들이 스스로 PR을 매우 잘해서 항상 이슈 메이킹을 하지만, 경기 내용을 보면 단단하지가 않고 뭔가 항상 불안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모두 다 젊고, 포핸드이든 백핸드이든 강력한 무기는 하나씩 갖고 있는데, 왜 항상 불안한 플레이를 하는지 조금 자세히 보면, 이들의 기본기가 탄탄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기본기가 탄탄하지 않으면 잘하는 선수한테 절대로 못 이기는데, 이들이 최근 몇 년 동안 떴고, 어떤 이들은 그랜드슬램 대회에서 우승까지 했던 – 물론, 딱 한 번이다. 그 이상은 힘들다. – 이유를 생각해 보면, 그냥 운이 좋았다. 진짜 잘하는 상위 랭커들이 어쩌다 초반에 탈락해서 이들과 대진표에서 만나지 않았거나, 붙었는데 컨디션 난조 때문에 진 걸 운 좋은 선수들이 실력으로 이겼다고 착각했던 것이다.

이반 렌들, 피트 샘프라스, 로저 페더러, 라파엘 나달, 그리고 노박 조코비치. 이들은 내가 생생하게 기억하는 근대 남자 테니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들인데, 이들의 공통점은 완벽한 기본기 위에 자기만의 무기를 개발했다는 것이다. 테니스의 기본기에 대해서 말하면 항상 생각나는 인터뷰가 있다. 라파엘 나달의 인터뷰인데 아마도 이 인터뷰도 오래전 호주 오픈에서 치열한 5세트 접전까지 가서 우승한 후에 했던 걸로 기억한다. 어떻게 이런 훌륭한 경기를 했고, 멋지게 이겼는지 사회자가 물어보자, 나달은 이렇게 짧게 대답했다. “I ran very fast and I hit very hard.”

그 인터뷰를 봤을 때, 뭐 저런 초등학생 같은 이야기를,,,이라고 생각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굉장히 심오한 이야기고, 테니스나 다른 운동이나, 또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탄탄한 기본기’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다. 빨리 뛰고, 세게 치는 건 너무나 당연한 테니스의 기본이지만, 이 기본기가 완벽한 프로 테니스 선수들이 몇 명 안 된다. 그 몇 안 되는 선수들이 지금 상위 랭커들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기본기가 없는 사람들은 인생에서 성공할 수가 없다. 인생의 기본기가 뭐냐고 나에게 물어본다면, 자기만의 철학, 생각, 근면, 성실, 루틴, 규율 등이라고 생각한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기본기가 없는 사업은 잘 될 수가 없다. 우리가 투자하는 초기 스타트업의 기본은 주로 제품, 고객, 매출 등이다. 이런 기본기를 제대로 만들지도 않고 겉만 화려한 창업가나 사업은 운 좋게 한두 번은 반짝 뜰 수 있지만, 지속 가능한 사업이 될 순 없다. PR을 얼마나 잘하는지, 투자를 얼마나 크게 받았는지, 어떤 유명한 VC에게 투자받았는지, 대표이사의 팔로워 수가 몇 명인지 등은 사업의 기본기와 지속가능성과는 큰 상관은 없다.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어서, 돈을 내는 고객을 많이 확보하고, 이에 따라서 매출을 만드는 게 사업의 기본이다. 안타깝지만, 이런 사업의 기본기에 대해 아예 모르거나, 아니면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기본기를 잊어버리는 창업가들이 꽤 많다.

기본기가 탄탄하면 경기의 95%는 이길 것이다. 나머지 5%까지 이기고 싶다면 탄탄한 기본기 위에서 오랫동안 다양한 실험과 실수를 하면서 자기만의 무기를 완성해야 한다. 하지만, 기본기가 탄탄하지 않으면 경기의 95%는 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