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투자하지 않는 비즈니스

회사들을 만나다 보면, 1년 이상 펀딩을 하고 있는데, 투자를 못 받는 회사도 자주 본다. 내가 보기엔 대표나 팀은 괜찮은데, 하려고 하는 사업이나 아이디어가 시장이 너무 작거나, 일반적으로 봤을 때 안 될 것 같은 아이템이라서 투자자 입장에서는 매력도가 많이 떨어져서 투자를 못 받는 것 같다. 안타깝게도 본인들도 그 사실을 잘 안다. 어떤 대표랑 조금 더 친해져서, 이야기해보니, “아무도 투자하고 싶어 하지 않은 비즈니스”를 1년 넘게 했는데, 자신감도 떨어지고 스스로에 대한 의문이 생겨서 포기할까 고민 중이라고 했다.

실은, 이분들의 마음과 고충을 나는 정말 잘 이해한다. 나도 뮤직쉐이크를 할 때 비슷한 생각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이다. 너무 좋은 아이디어와 사업이라고 생각해서, MBA도 그만뒀는데, 막상 투자받으러 다녀보니, 나만 좋다고 생각하는, 하지만, 아무도 투자하지 않는 비즈니스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실은, 아무도 투자하지 않는 비즈니스가 아니고 내가 잘 못 하고 있었던 것이었는데, 당시 절박했던 순간들을 생각해보면, 이런 고민을 참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포기하고 싶어 하는 대표들에게 그래도 나는 이런 긍정적인 생각을 해보라고 제안한다. 현재 하고 있는 비즈니스가 그 어떤 VC도 투자하지 않을 게 확실하지만, 이 사업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팀이 우리 팀인지 한 번 스스로 물어보라고 한다. 그리고 이게 확실하다면, 그냥 계속해보라고 응원한다. 왜냐하면, 아무도 투자하지 않으면 웬만한 다른 좋은 창업가(=경쟁사)도 이 아이디어로 창업을 하지 않을 확률이 높고, 같은 아이디어로 창업을 해도 투자받기 위해서 VC를 만나면, 결국 그 어떤 VC도 투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경쟁사가 나올 수 없는 구조가 이미 만들어진 것이다.

남들이 같은 아이디어로 창업해도 투자를 못 받기 때문에 돈이 없다. 나랑 같은 상황이다. 하지만, 내가 이 사업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창업가라면, 만약에 성공하면 내가 무조건 이기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쉬운? 게임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투자하지 않을 것 같은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면, 좌절하고 포기하기 전에 스스로 한 가지만 물어보자. “이 사업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나인가?”. 이게 맞는다면 그냥 시작하고 버텨라. 분명히 성공할 것이다.

이메일 수업

내가 새 정부의 교육부 관련 공무원이라면, 초/중/고등학교 정규 과목으로 “이메일 커뮤니케이션” 수업 개설하는 걸 제안해보고 싶다. 요샌 카톡과 같은 다양한 메신저들이 존재하지만, 아직 비즈니스의 주 커뮤니케이션 방법은 이메일이고, 나는 이 방법은 앞으로 꽤 오랫동안 지속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나도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커뮤니케이션하지만, 몇 가지 이유로 인해 이메일을 가장 선호한다.
일단 실시간이 아니라서 좋다.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은 그 실시간성 때문에, 어느 순간에는 끊길 수밖에 없는데, 그러다 보면 기억에서 사라지거나 실시간 커뮤니케이션 리스트에서 밀려서, 오랫동안 대화를 이어가는 게 힘들다.
이메일은 계속 과거 히스토리와 기록의 흔적을 남길 수 있어서 좋다. 어떤 이메일은 수백 개의 thread가 달려 있는데, 이걸 처음부터 읽어보면, 그 내용에 대해서 굳이 남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스스로 전방위적으로 이해할 수가 있다(물론, 시간이 좀 걸리긴 한다).
그리고, 이메일은 글솜씨를 완성해준다. 전화 통화를 하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말들을 하고, 쓸데없는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하게 되는 경우가 있지만, 이걸 글로 표현하면, 쓰는 사람도 생각을 하게 되고,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글로 표현하게 되면 내용이 명확하게, 그리고 컴팩트하게 전달된다. 누군가의 말을 들으면, 여러 사람이 이걸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지만, 글로 전달된 내용은 읽는 사람 모두가 대부분 한가지로 정확하게 이해한다.

그래서 나도 누군가 회사를 소개할 때, 카톡으로 소개를 받거나, 카톡으로 회사 자료를 전달해주면, 나한테 이메일로 다시 전달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왜냐하면 서로 이메일 몇 번 왔다 갔다 하다 보면, 그 창업가의 글 쓰는 스타일을 파악할 수 있고, 이분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에 내가 이런 을 쓴 적이 있는데, 창업가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가 바로 글을 잘 쓰고, 이메일을 잘 쓰는 것이다. 내가 아는 창업가 중 모두 다 말은 청산유수처럼 하진 못하지만, 이메일은 잘 쓴다. 팬시하게 쓴다는 뜻이 아니라, 본인의 생각을 글로 아주 명확하게 표현하고, 상대방이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잘 커뮤니케이션 한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어떤 분들의 이메일은 길긴 한데,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도저히 파악이 안 되는 경우도 많다. 나는 이런 이메일 몇 줄 읽어보고 이분을 만날지 안 만날지 결정하는데, 역시 가끔 이런 분들 만나면, 내가 투자하고 싶은 그런 분들은 아니다.

이메일 수업을 만든다면,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한 수업도 하지만, 언제 reply all을 하고, 언제 cc를 하고, 언제 bcc를 하고, 왜 비즈니스 이메일 id를 “iamsofuckinghot” , “haveagoodday” 등으로 하면 안 되는지, 이런 사소한 것도 가르치고 싶다. 나는 너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는걸, 상당히 많은 분이 잘 모르고 있다는 느낌을 매일 받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이든, 대기업이든, 남들과 같이 일하는 사회생활을 잘하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이메일 커뮤니케이션은 필수다. 그리고 이게 잘 안 된다면, 세상 모든 것과 비슷하게, 연습과 훈련을 해야 한다.

로봇 기사

타다가 처음에 출시됐을 때,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 여러 번 페이스북에 올렸고, 블로그에 이런 포스팅도 했었다. 타다가 무슨 모빌리티 혁신이냐는 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기술력 측면에서도 혁신이었고, 서비스와 승객의 경험 면에서는 당시엔 혁신을 넘어선 혁명이었다. 그래서 타다가 불법이 됐을 땐, 나도 꽤 화가 났고 그런 법을 만든 사람들에게 상당히 실망했었다.

그 이후에는 일반 택시보단 비싸지만, 타다 플러스를 애용했고, 카카오 택시, 파파, 일반 택시, 모범 택시, 아이.엠택시 등 모든 택시를 다 이용하면서 업무를 했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타다 플러스랑 파파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택시기사와 택시회사가 택시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청결, 서비스, 커뮤니케이션, 이동경험을 개선할 의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공급량도 부족하고, 가격도 비싸지만, 웬만하면 타다 플러스나 파파만 한동안 이용했고, 지금도 그렇게 이동하고 있다. 그리고 스타리아 밴으로 구성된 타타 넥스트 서비스가 출시됐을 때,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고, 요샌 타다 넥스트, 플러스, 그리고 파파를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몇 개월 동안 느낀 점은, 타다나 파파도 이제 약발이 떨어진 건지, 드라이버들의 수준이 낮아진 건지, 일반 택시랑 크게 다른 점이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기사들은 모두 다 과속하고, 급출발과 급제동을 하지 않는 기사를 최근에 만난 적이 없으며,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자고 하면 살살 짜증 내는 타다 기사도 만난 적이 있다. 전에는 불친절한 타다/파파 기사를 만나면 진짜 운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친절하고 조심스럽게 운전하는 기사를 만나면 진짜 운이 좋다고 생각할 정도다.

파파는 이제 와이파이는 제공하지 않는데 타다 플러스와 넥스트는 와이파이를 기본적으로 제공한다. 나에겐 이게 정말 중요하다. 강남 내에서 이동할 때도 차가 막히면 30분, 그리고 분당이나 일산까지 멀리 가면 1시간 이상을 택시에서 보내는데, 와이파이가 되면 나에겐 달리는 사무실이 되기 때문에, 비싸도 타다를 이용한다. 그런데 와이파이가 안 되는 타다 차량도 요새 너무 많다. 기사님에게 물어보면, 와이파이가 뭔지도 모르는 분이 있고, 그냥 잘 모르겠다고 하는 분들도 많다.

사람을 위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즈니스가 스케일이 생기면, 항상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 소프트웨어는 스케일해도 동일한 품질을 유지할 수 있지만, 사람은 그게 안 되기 때문이다.

주로, 많은 불만족스러운 고객이 존재하는 시장에 기술이 잘 적용되면 혁신이 생기는데, 한국 택시 산업에서의 개선이나 혁신은 현재의 구조로는 불가능하다는 게 내 결론이다.

이 시장이 좋아져서 시민의 사랑을 받는 택시 산업이 만들어지려면 방법이 하나 있는데, 그건 자율주행과 로봇 드라이버다. 완벽하게 작동하는 full self driving 기술이 구현되야지만, 누구나 다 만족하고, 돈이 아깝지 않은, 소비자 중심의 택시 산업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빨리 자율주행기술이 완성됐으면 한다. 더욱더 많은 투자금이 이 기술에 투입되고, 더욱더 많은 똑똑한 창업가들이 이 분야에서 창업하고 일했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다.

참고로, 나는 운전을 잘 안 해서, 택시를 정말 많이 탄다. 내가 아는 지인 중 내가 택시를 제일 많이 타기 때문에, 나만 항상 이상한 택시 기사가 걸린다는 건 확률상 맞지 않아서, 내 경험이 분명히 일반인의 택시 경험을 대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스타트업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요샌 투자 시장이 약간 진정되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것 같은데, 작년 한 해는 정말로 시장에 돈도 많고, 비상장 회사에 대한 투자 열기가 뜨거웠다. 개인들도 이 투자 시장에 많이 참여했지만, 몇 년 전부터 대기업들도 스타트업 투자 시장으로 진입했고, CVC(Corporate Venture Capital) 관련 법들이 하나씩 만들어지면서 이제 웬만한 중소기업은 모두 다 직접 투자할 수 있는 부서를 만들거나,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래서 더 많은 인력이 투자심사역이 되고 있고, 이 분야에서도 이직이 활발하게 –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그리고 자주 – 일어나고 있다.

직접 투자 부서를 만들지 않아도, 내가 만나는 모든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스타트업 투자에 관심이 많다. 결국엔 회사의 성장과 관련된 고민을 하다가 본인들이 모든 걸 직접 다 못 하니까, 다른 회사에 투자하면서 같이 협업하거나, 아니면 결국엔 인수를 통한 비유기적 성장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은 겉으로 보면 너무 다르고, 궁합이 안 맞을 것 같지만, 조합과 밸런싱을 잘하면, 상당히 이상적인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스타트업은 뭔가를 빨리, 자주 시작할 수 있고,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데, 이런 실험을 스케일 할 수 있는 규모가 없다. 반면에 기업은 빨리, 자주 시작하고, 여러 가지 실험을 할 수가 없지만, 확실히 된다고 생각하는 실험은 크게 유통하고 스케일 할 수 있는 규모가 있다. 이 두 가지를 잘 혼합할 수만 있다면, 성공의 방정식이 완성된다.

CVC를 만들거나, 아니면 직접 투자를 몇 년 전부터 시작한 선견지명을 가진 기업들도 많고, 나도 이들과 오랫동안 이야기하면서 가끔 공동투자도 하고,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이런 기업 중 투자를 시작하고 한 1~2년 후의 성적표를 보면, 천차만별이다. 어떤 곳은 투자를 너무 잘해서, 시장에서도 인지도가 높아졌고, 투자한 회사들도 잘 성장해서 유니콘이 된 곳도 있다. 우리도 이런 곳들과는 자주 이야기하고, 공동 투자의 기회를 계속 만들어 보려고 노력한다.

이와 반대로, 어떤 기업은 그 성적이 처참하다. 투자도 거의 못/안 하고 있고, 시장에서의 인지도 자체가 아예 없거나, 아니면 엄청 안 좋아서, 대부분의 창업가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우리도 가급적이면 이런 회사와는 공동 투자를 하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력한다.

내가 몇 년 동안 이런 회사 담당자들과 일을 해보니까, 왜 이렇게 성적이 다른지 확연히 눈에 보인다. 일단 투자를 잘하는 CVC 분들을 보면, 투자를 잘하는 VC의 특성과 성향을 그대로 갖고 있다. 이들은 투자업을 이해하고, 파운더 분들을 존중하고, 절대로 갑질을 하지 않는다. 물론, 대기업이라는 큰 조직에서 투자를 하므로, 스트롱같이 단독으로 투자 결정을 할 순 없고, 항상 기업의 전략과 방향을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의사 결정이 조금 느리긴 하다. 그래도 최대한 빨리 의사결정을 하고, yes와 no를 아주 명확하게 말해준다. 그리고 이메일이든 전화든, 모든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굉장히 프로페셔널하다.

이런 분들의 성적표는 너무 훌륭하다. 이렇게 투자를 2년 정도 했다면, 일단 시장에서 창업가와 다른 투자자들이 인정해주고, 결과도 좋다. 투자한 회사들이 꽤 잘하고 있고, 이미 투자한 회사를 좋은 가격에 인수해서 모기업의 사업에서 전략적인 시너지가 발생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와 반대로, CVC 설립하고,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생태계를 잘 만들겠다고 크게 선언하고 투자를 시작한 기업 중 성적을 매기자면 F 학점인 곳들도 은근히 많다. 그런데 실은 이런 회사의 투자담당자들과 한 번이라도 이야기하거나 미팅을 했다면, 이런 초라한 결과는 전혀 놀랍지 않다. 담당자들은 투자에 대해서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본인들 명함을 믿으면서 갑질을 너무 많이 한다. 특히 이런 분들의 특징은 의사결정을 아예 하지 않거나, 굉장히 느리다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형편없다. 본인들이 필요하면 자료 달라고 닦달하지만, 남들이 필요한 답변은 절대로 해주지 않고, yes도 아니고 no도 아닌, 항상 애매한 이야기만 한다.

이런 분들이 기업에서 투자업무를 담당하면, 그 CVC는 그냥 망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런 담당자를 투자업무에 배치한 회사의 문제가 더 크다. 결국, 그 회사의 채용 역량과 회사가 인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능력없는 기업과 그 기업의 투자 담당자들을 만나면, 오히려 미소가 절로 생긴다. 이런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이 이렇게 큰 기업이 됐고, 지금은 잘하고 있다면, 우리가 투자하는 스타트업들은 더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꿈을 꾸기 때문이다. 더 좋은 사람들로 구성된 스타트업이 이런 대기업들을 수년, 또는 수십 년 내에 완전히 파괴하고 갈아 엎어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결국엔 모든 건 사람이 하는 거니까, 이게 꿈이 아니라 곧 현실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자부한다.

실은 큰 기업은 스타트업의 속도로 갈 수가 없다. 스타트업의 속도로 갈 수가 없다면, 그래도 따라가려고 노력하거나, 아니면 완전히 비켜주거나 해야 하는데, 그 길목을 막는 경우가 너무 많긴 하다.

말의 힘

바로 전 포스팅에서 말한 How I Built This에서 펩시의 CEO를 했던 전설적인 인도 출신의 여성 Indra Nooyi의 1시간이 넘는 인터뷰를 나는 여러 번 반복해서 들었다. 이 내용 한 번 정도 들어보는 걸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

이분 정말 대단하다. 미국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대학교까지 인도에서 다니다가 대학원 유학을 오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았는데, 지금도 미국에 인종 차별이 없진 않지만, 당시에는 상당히 많은 불이익을 받았던 것 같다. 여자이고, 유색인종이고, 영어도 심한 악센트가 있고, 실은 어떻게 보면 당시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가장 차별 대우받고 편견으로 가득 찬 시선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서 미국으로 온 것 자체가 나는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브랜드 중 하나인 펩시코의 대표를 12년 동안 연임한 건 더욱더 대단하다.

이 인터뷰에서 내가 가장 감명 깊게 들었던 부분은 인드라 누이가 GE와 펩시코, 두 회사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그때 결정적인 역할을 한 ‘마음을 움직이는 말의 힘’이다. 당시 인드라는 잭 웰치가 이끌던 당대 최고의 회사 GE의 경영진으로 이직하기로 거의 마음을 굳혔다. 그런데 펩시에서도 인터뷰하고 싶다는 요청이 들어왔다. F&B 사업에 대해 문외한이고, 고기도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라서 본인이 펩시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헤드헌터와의 친분 때문에 큰 기대 없이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당시 펩시의 대표이사는 Wayne Calloway라는 말수가 정말 없는, 아주 조용한 사람이었는데, 인드라에게 이 사람과의 미팅은 꽤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펩시도 한 번 고려해볼까 고민했지만, 결국엔 GE를 선택하려고 했다.

그 통보를 하기 며칠 전에 펩시의 캘로웨이가 직접 인드라의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주로 비서나 헤드헌터를 통해서 연락을 하는 게 관례이지만, 그는 직접 인드라에게 전화했고,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누이씨, 내가 GE의 이사회 멤버인데, 방금 이사회에서 당신이 GE에 합류할 거라고 들었습니다. 솔직히 GE는 너무나 대단한 회사이고, GE로 간다고 해도 저는 충분히 납득하고 당신의 결정을 존중할 겁니다. 하지만, 저도 당신이 필요하니 제 말을 한 번만 들어보시고 결정했으면 합니다.” 이어서 웨인은 “펩시의 경영진에는 당신 같은 사람이 없습니다. 당신은 세상을 다르게 보고, 당신 같은 사람이 다른 의견을 제공해줘야지만 펩시코에겐 미래가 있다고 생각해요. 펩시로 오면 내가 당신을 100% 지지해주고 지원해주고, 여기서 성공할 수 있게 모든 걸 바쳐서 헌신하겠습니다. 한 번만 나에게 기회를 주세요.”라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펩시코와 같은 회사의 대표에게 이런 말을 들으면, 누군들 마음이 안 움직일 수 있을까? 인드라 누이는 그 자리에서 펩시에 조인했고, 결국 펩시의 대표이사로 승진하면서 승승장구했다. 나를 이렇게까지 인정해주고, 생각해주고, 간절하게 원하는 조직에 헌신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심리가 강하게 작용한 것이다.

실은 이렇게 말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아주 유명한 사례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Pepsi Challenge 캠페인을 만들어서 코카콜라 시장점유율을 뺏은 펩시코의 사장인 John Sculley를 애플로 데려올 때 사용한 파워풀하고 유명한 말이다. 당시 27살밖에 안 됐던 잡스가 스컬리에게 “평생 설탕물만 팔래요, 아니면 나랑 애플에서 세상을 변화시키겠습니까?”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고, 소문에 의하면 결정적으로 이 말 때문에 존 스컬리가 펩시를 그만두고 애플에 조인했다고 하니, 파워풀한 말과 그 말의 뒤에 있는 사람의 생각과 의지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투자사 대표님들, 그리고 모든 창업가들도 사람에 대한 이런 열정, 태도, 그리고 끈기를 갖고 채용에 임했으면 좋겠다.

*말의 힘만큼 파워풀한 건 이메일의 힘인데, 내가 전에 관련해서 쓴 이런 포스팅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