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piring

원스어폰어타임인 실리콘밸리

얼마 전에 아담 피셔의 “원스어폰어타임인 실리콘밸리(Valley of Genius)”라는 책을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 미국에서 출간된 지는 2년 됐는데, 이런 책이 있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다가, 내 지인분이 다른 친구 VC 분들과 같이 번역을 해서 곧 한국에서도 출간될 예정이며, 현재 텀블벅에서 크라우드펀딩 진행 중이다. 정말 고맙게도 이 책에 대한 추천사를 부탁했는데, 처음에는 좀 망설이긴 했다. 추천사를 쓰려면, 책을 다 읽어봐야 하는데, 책 분량이 적지 않았고, 내가 요새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솔직히 그냥 정중하게 거절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냥 호기심에 책 초반부 몇 장을 읽다가 매우 재미있어서 금방 책의 절반을 읽었고, 결국 짤막한 추천사를 썼다.

나도 이 분야에서 활발하게 일하고 있고, 실리콘밸리와 창업에 대한 책을 그동안 많이 읽었고, 실리콘밸리에서도 몇 년 살아서 이 동네 이야기는 웬만하면 다 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되도록 실리콘밸리 관련 책은 더는 안 읽었다. 실은 “실리콘밸리의 xxx” 또는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렇게 한다.” 부류의 책을 나는 정말 싫어한다. 그런데 이 책을 재미있게 끝까지 다 읽은 이유는, 다른 책들과 크게 두 가지 부분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일단 책의 독특한 전개 방식이다. 특정 회사 또는 특정 사건과 실제로 관련이 있는 인사이더의 대화, 대본 위주로 전개되는 방식인데, 매우 독특하다. 아마도 이 많은 사람을 한 번에 한 곳에 불러서 작가가 인터뷰한 것 같진 않고, 따로따로 각각 인터뷰했는데, 그 내용을 취합해서 나열한 방식은 마치 모두 한 방에 모여서 대화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아직 미개봉된 영화나 연극의 대본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또 다른 점은 내용의 깊이 그 자체이다. 실리콘밸리의 유명한 회사들이 어떻게 창업됐고, 어떻게 성장했는지에 대한 많은 이야기는 이미 공개적으로 알려졌는데, 이런 알려진 내용보다 훨씬 더 깊고 사실적인 내용이 실제 그 회사에 일했고, 그 역사를 만들었던 장본인들의 입으로 전달된다. 예를 들면, 트위터가 실제로는 Odeo라는 스타트업의 여러 가지 실험적인 제품 중 하나였고, 사장될 뻔한 제품이 어떻게 바이럴하게 펴졌는지에 대한 일반인들에게 이미 알려진 내용과는 다른, 그런 인사이드 이야기를 나는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즉, 남들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창업가, 회사, 그리고 그들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이야기를, 실제 주인공 또는 내부자가 아니면 절대로 알 수 없는, 그런 누구나 다 안다고 생각하는 이야기에 대한 그 누구도 모르는 찐 이야기다.

내가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던 또 다른 더 큰 이유가 있었다. 이 책은 큰 걸 만들기 위해서는 아주 작게 시작해야 한다는 걸 잘 아는 사람들, 자신을 환경에 적응시키기보단 환경을 자신에게 적응시키려 했던 사람들, 천재지만 멍청이라는 소리를 더 많이 듣던 작은 사람들, 끝까지 괴짜로 남길 원했던 사람들, 대담한 아이디어를 가졌지만, 매번 무시당하고 조롱받았던 사람들, 하지만 결국엔 이겼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서 그렇다. 즉, 창업가에 대한 이야기다.

마지막 장의 주인공은 스티브 잡스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이 책의 엔딩과 딱 맞는 사람이다.

프라이머 18기 미팅

얼마 전에 내가 벤처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는 국내 1호 악셀러레이터 프라이머 18기 선발 대면 인터뷰를 다 마쳤다. 서류지원 이후 50개+ 회사를 후보로 뽑았고, 이 회사들을 3주 동안 1시간씩 대면 미팅을 했는데, 항상 느끼는 거지만 굉장히 힘들다. 주중에는 나도 일이 많아서 대부분 주말을 이용해서 미팅했는데, 다시 한번 주말에 시간 내주셔서 나랑 미팅한 창업가분들에게 이 포스팅을 빌려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달하고 싶다.

빽빽하게 앞뒤로 잡힌 미팅으로 도배가 된 토/일 캘린더를 보면 실은 스트레스 엄청 쌓이고 한숨까지 나오는데, 이게 또 막상 회사들을 만나보면 오히려 에너지가 충만해져서 하루를 마무리하게 된다. 이번에도 너무나 다양한 분야에서,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로 사업을 하는 분들도 있었고, 너무나 뻔한 아이디어지만 시장의 다른 플레이어보다 훨씬 더 잘 하는 창업가들도 많았다. 전형적인 엄친아 창업가, 해외 유명 대학 출신 창업가, 현재 대기업 소속인 스텔스 창업가 등, 다양했다. 내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분은 부모님 빚을 갚기 위해서 길거리에서 시작한 창업가, 그리고 무명 연습생 생활을 오랫동안 한 창업가였다. 프라이머 선발과는 무관하게 모두 모두 파이팅이다.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젊은이들이 한국에 너무 많고, 이런 친구들 때문에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어른들이 많지만, 반면에 정말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열심히 사는 젊은 창업가들도 많다는 걸 이번에도 나는 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스트롱도 워낙 초기에 투자하지만, 프라이머는 우리보다 더 앞 단계에 투자하기 때문에 이렇게 여러 명의 파운더들을 짧은 기간 안에 만나보면 요샌 어떤 서비스와 제품이 시장에서 유행하고 있고, 창업가들은 어떤 트렌드에 민감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MZ 세대는 요새 뭐하고 있는지, 즉 이 시장에 대한 맥을 어느 정도 짚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프라이머 기수를 진행할 때마다 느끼는 점은, 한국의 창업 생태계는 매우 활발하고 앞으로 더 폭발적으로 성장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실은, 여러 가지 매크로 지표를 보면, 앞으로 한국 경제가 어려울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지만, 그래도 유일한 희망이 스타트업 생태계이며, 나도 여기서 일하고 있는 일원인 만큼, 이 분야만이라도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 항상 간절하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초기 창업가들을 많이 만날수록 마음의 위안이 된다.

대부분 간절하게 프라이머 투자를 받고 싶어 하지만, 아쉽게도 대부분 선발되지 못한다. 내가 이 분들한테 항상 강조하는 건, 프라이머 투자가 되든 안 되든 상관없이 자기만의 사업을 하라고 한다. 이 창업가들이 그 좋은 학교 나와서, 그 좋은 직장 다니다가, 이 어려운 길을 가는 이유가 프라이머 투자 받기 위한 건 아닐 것이다.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고, 더 큰 의지가 있을 것이다. 사업을 하다 보면, 힘든 일들이 많이 생길 것이고, 주변에 잡음도 많이 들릴 것이다. 이게 너무 많이 쌓이다 보면, 내가 왜 이 사업을 시작했는지,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본질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한 박자 쉬면서, 항상 이 초심을 생각해보면 좋겠다. 결국, 사업 자체가 좋아서 하는 거지, 투자를 받고, 어떤 투자자한테 인정받기 위해서 이 지저분하고 힘든길을 가는 건 아니지 않냐.

압박

1년에 4번 하는 메이저 테니스 대회 중 마지막 메이저인 US OPEN이 얼마 전에 끝났다. 한국 시각으로 새벽이랑 오전에 중계해줘서 나는 재택근무하면서 꽤 많은 시합을 봤다. 참고로, 첫 번째 메이저 대회인 호주오픈은 연초에 잘했고, 두 번째인 프랑스오픈은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9월 말로 연기됐고, 세 번째인 윔블던은 아예 취소됐으니, 올해 US OPEN이 실제로는 두 번째로 열린 메이저 대회인 셈이다. 올해 경기는 100% 무관중으로 진행됐다.

워낙 잘하는 선수들이 전 세계에서 참여하고, 영원한 1등은 없는 게 냉혹한 프로 테니스의 세계라서 대회마다 예상치 못한 이변이 발생하는데, 올해 US 오픈은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졌다. 일단 꽤 많은 탑 플레이어들이 불참했다. 테니스의 빅3 선수인 로저 페더러, 라파엘 나달, 노박 조코비치 중 조코비치만 참여했고, 이 외 랭킹이 꽤 높은 선수들이 대거 불참했다. 그만큼 새로운 선수들이 많이 참가했는데, 이런 이유 때문에 이번 US 오픈은 나도 잘 모르던 신예 선수들이 상당히 선전했다. 물론, 원래 실력이 좋은 선수들이라서 잘했지만, 역시 하이랭커의 부재가 한몫을 했고,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무관중 경기로 인한 관중의 압박 부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테니스뿐만 아니라, 모든 프로 경기에서 – 특히, 테니스 같은 개인 스포츠 – 위닝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선수의 체력, 정신력, 실력, 운, 그리고 관중의 압박이다. 나는 프로는 아니지만, 아마추어 테니스 경기를 하면서 관중이 있냐 없냐가 승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직접 경험을 수없이 했는데, 관중의 규모와 압박은 잘하는 선수에게는 더 잘하게 하는 약이 되지만, 못하는 선수에게는 몸을 마비시키는 독이 될 수 있다. 이건 내 생각이지만, 테니스 세계 50위 선수와 10위 선수의 실력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다. 이 둘이 그냥 관중이 없는 연습 경기 또는 승패의 압박이 없는 친선 경기를 하면 실력은 비등하다. 40위의 차이를 만드는 건, 관중이 있는 경기를 했을 때 이 압박을 더 잘 즐기고 버틸 수 있는 경험과 배짱인 거 같다. 그래서 이번 US 오픈에서 무명 또는 신예 선수들이 선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무관중(=무압박) 경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큰 상금이 걸린, 세계가 쳐다보는 메이저 경기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동료 선수와 연습하듯이 부담 없이 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큰 경기를 많이 해 본 경험이 중요하다고 하나보다.

스타트업도 압박의 경험이 중요한데, 이건 그냥 나이만 먹으면 알아서 쌓이는 그런 경험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그동안 – 특히,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모두 힘든 올 해 – 나이도 어리고, 이 사업이 첫창업인 대표들이 그동안 대기업과 스타트업 경험을 많이 한 나이 많은 대표들보다 훨씬 더 외부의 변화와 위기에 유연하게 대처하는걸 여러 번 봤다. 이들의 경험은 수많은 실험과 시행착오를 하면서 차곡차곡 쌓인 건데, 이건 그냥 단순히 시간이 지나면 생기는 그런 경험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이들에게 무관중 경기란 없다. 하루하루가 실전이고, 생존의 압박을 이겨야지만 하루를 더 버틸 수 있어서 잘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과거에는 그냥 나이만 먹으면 경험이 쌓이고 이 자체를 모두가 존중했지만, 스타트업은 좀 다르다. 그래서 난 이 동네가 좋다.

1,000만 MAU

당근마켓 10M

이미지 출처: 당근마켓

우리 투자사 당근마켓의 MAU(Monthly Active Users: 한 달 동안 서비스를 이용하는 unique한 이용자 수)가 1,000만 명을 돌파했다는 기사가 며칠 전에 보도됐다. 회사의 상황을 남들보다는 더 깊게 알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의 성장 속도를 봤을 때 1천만이라는 수치는 당연한 산출물이지만, 막상 이 숫자를 돌파 했을 때는 조금 먹먹해졌다. 한국 인구 5,200만 명, 스마트폰 인구 5,000만 명인데, 이 중 20%인 1,000만 명이 당근마켓을 매달 사용한다는 건 이제 갓 5년 된 앱이 만든 대단한 실적이다. 작년 7월 MAU가 300만, 이후 9개월 만에 2배가 넘는 700만, 그리고 다시 4개월 만에 1,000만 MAU 고지를 점령했다. 우리가 첫 투자를 했고, 분명히 잘할 팀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 몰랐는데, 항상 우리의 예상과 기대를 가뿐히 넘어주는 당근마켓 팀이 너무 자랑스럽다.

이 1,000만이라는 숫자도 엄청나지만, 당근마켓은 중고거래를 기반으로 동네 주민의 문화, 생각, 태도를 확실히 바꾸고 있고, 이게 실은 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최근에 당근마켓 거래를 하면서 경험하고 느꼈던 점을 공유하고 싶다. 오래된 계산기를 18,000원에 판매한다고 올렸는데, 잠원동 분이 아파트 정문으로 오겠다고 했다. 배터리가 오래 돼서 액정이 깜박거렸는데, 그냥 배터리는 알아서 교체하라고 설명에 적었다. 아주 발랄한 여대생 분이 따릉이를 타고 왔고, 개강해서 회계용 계산기가 필요했는데 너무 고맙다고 여러 번 인사하면서 물건을 받아 갔다. 나는 계산기 배터리가 수명이 다 돼서 교체해야하는데(3V 배터리 실물까지 보여주면서), 계산기 특성상 배터리 교체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에, 유튜브 영상보고 그대로 따라 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집으로 오면서 걱정이 됐다. 혹시 배터리가 문제가 아니라 계산기가 너무 낡아서 액정이 문제면? 저렇게 밝고,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크게 실망하지 않을까, 그리고 숙제하는데 지장이 생기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했는데, 이런 걱정은 솔직히 중고거래 판매자가 하는 그런 일반적인 걱정은 아니다. 그냥 팔면 장땡이고, 문제가 있어도 난 몰라하는 마인드가 일반적인데 우리 동네 사람이고, 돈 없는 학생이고, 내 매너온도가 걸려있는 문제이고, 등등 이런 것들이 다 마음에 걸렸다.

아니나 다를까, 배터리를 힘들게 교체했는데도 액정이 깜박거린다고 다음날 당근을 통해서 연락이 왔다. 나는 고민 한번 하지 않고, 계산기값 18,000원에 배터리값 3,000원까지 해서 21,000원을 환불해드렸다. 솔직히 나는 막 착한 사람도 아니고, 손해 보는 거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런데 이런 내 행동을 봤을 때, 확실히 당근마켓은 독특한 동네, 로컬, 중고거래 문화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더 좋은 건 이게 net negative가 아니라 net positive한 좋은 문화라는 점이다. 이런 디테일이 모여서 1,000만 MAU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동기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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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yet / 크라우드픽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 투자사의 비즈니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지 한 7개월 정도가 지났다. 신천지 사태가 터지면서 한국은 잠시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코비드19 국가가 됐지만, 정부의 신속하고 효율적인 방역 전략으로 얼마 안 가서 바이러스를 가장 잘 통제한 나라의 명예를 얻었는데, 요새 다시 한번 위기를 겪고 있다. 이번에도 국가와 국민 모두 잘 협조해서 슬기롭게 이 위기를 극복하길 바란다.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계속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기업을 운영하는 대표들의 정신건강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거 같다. 100% 소프트웨어 기반의 완전 비대면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은 그나마 낫지만, 사람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비즈니스는 이럴 때마다 지옥을 맛보기 때문이다. 안그래도 바이러스 때문에 사람과의 만남과 접촉을 꺼리게 되는데, 거리 두기 단계가 상승할수록 이 콘택트를 국가에서 법으로 금지하기 때문에, 심각할 경우 갑자기 매출이 0으로 떨어지는 지옥을 경험하기 때문이다(이미 3월과 4월에 그 지옥을 경험하긴 했다).

실은 이 글을 쓰는 이 시점에도 많은 스타트업 대표들이 이런 지옥을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에 화가 나고,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게 만든 안일한 시민들한테도 화가 나고, 세상만사에 짜증이 나겠지만, 그래도 자기 사업이기 때문에 창업가는 비즈니스가 좋든 힘들든 스스로 계속 동기부여를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물론, 이런 자가발전하는 건 힘들다. 그런데 상황을 더욱더 힘들게 만드는 건 직원들의 사기이다. (회사에 대한 실제 오너십 또는 오너 같은 마음가짐이 있는 직원분들도 있겠지만)회사의 오너가 아닌 일반 직원들은 상황이 이렇게 힘들어지면 멘탈이 완전히 바닥을 쳐버리는데, 이들은 창업가와는 완전히 다른 입장이기 때문에 스스로 모티베이션이 잘 안 된다.

만약 팀 내에 이런 직원들의 사기저하 시그널들이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대표이사는 관심을 갖고 당장 해결하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 다들 어른들인데,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잘 해결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초반에 이런 문제를 잘 잡지 않으면, 이런 분위기가 암과 같이 조직 내부로 퍼지면서 회사 자체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영업 하는 분들은 회사가 만든 제품을 외부 고객한테 팔면서 짜릿한 희열과 보람을 느끼고, 이게 이 분들의 삶과 직장생활의 원동력이 된다. 개발자들도 겉으로 보면 그냥 코딩만 하면 행복해한다고 느낄 수 있지만, 결국 본인들이 만든 제품을 시장에서 인정해주고, 사용해주고, 사랑해줘야지만 계속 좋은 코딩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체가 너무 오래 가고, 회사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모르는 직원들에게도 회사의 미래가 썩 밝지만은 않다는 게 너무 뻔하게 느껴지면, 문제가 발생한다.

초짜 대표이사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가 이런 상황이고, 이럴 때 좋은 이사회가 있으면 같이 극복해나가는걸 나는 몇 번 봤다. 이런 상황이 생기면 대표는 원래 대표가 가장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사람’에 다시 한번 집중을 해야 한다.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고, 대표이사는 직원들이 행복하게 일 할 수 있도록 옆에서 응원해주는 치어리더 역할을 잘 해야 하는걸 모두 알고 있지만, 회사가 정신없이 돌아가면, 회사 내부보단 외부에서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게 된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욱더 직원들한테 신경을 써야 한다. 필요하다면, 모든 직원과 일대일 면담을 주기적으로 해야 하고, 가끔 회식도 하고, 직원들의 상태가 어떤지 꼼꼼하게 체크해야한다. 경험 많은 코치나 이사회 멤버들은 매달 한 번씩 – 회사 규모가 크지 않다면, 매주 – 모든 직원들이 참석해서 회사의 현황과 미래, 그리고 대표이사의 생각을 자유롭게 공유하면서 토론할 수 있는 all-hands 미팅 또는 타운홀 미팅을 권장한다. 어쨌든 직원들의 동기부여는 대표이사에게는 매우 중요하고 현실적인 문제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건, 이 모든 걸 아무리 잘 하고 직원들과 매일매일 진솔한 대화를 나누어도 결국 스타트엄 멤버들에게 동기 부여를 가장 잘 할 수 있는 건 회사의 성장이다. 투자유치 또한 직원들에게는 큰 모티베이션이 될 수도 있지만, 그 효과는 오래 지속하지 못 한다. 결국, 내가 회사에서 뭔가 열심히 하고 있는데, 이게 결국엔 시장과 고객이 좋아하고, 누군가 돈을 내고 사용하는 제품으로 구현되고, 이런 수치가 계속 커져야지만 지속적인 모티베이션이 만들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