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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업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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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夢䀄몽몽스튜디오 / 크라우드픽

미국의 TV 프로그램이나 드라마를 보면, 몇 회 정도 하다가 종영하는 경우를 자주 봤다. 그 이유를 알아보니, 처음부터 몇 회짜리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이 시리즈를 다 만들기보단, 일단 4개 정도만 기획하고, 방송 나간 후 시장의 반응을 봐가면서 계속할지 또는 종영할지 결정하기 때문에 그렇다는걸 알게 됐다. 특히 요새는 소셜미디어만 잘 주목해도 특정 프로그램이 시장에서 반응이 좋은지 나쁜지 바로 판단할 수 있어서, 이런 실험을 방송국에서도 자주 하는 거 같다. 한국 방송에서도 이런 트렌드가 요새 보이는데, MBC에서 딱 2회만 하고 방송 종영된 “아무튼 출근!”이라는 프로그램이 이런 케이스다.

실은 나는 이 예능 프로가 좋아서 계속 방영하지 않겠냐는 기대를 했지만, 더는 안 하는걸 보니 시장의 반응은 그다지 좋진 않았나 보다. “아무튼 출근!”은 요즘 젊은이들의 다양한 밥벌이와 그들의 직장 생활을 브이로그 형식으로 엿보는 ‘남의 일터 엿보기’ 프로그램이다. 시장의 반응은 별로인 거 같지만, 나는 계속 밀레니얼의 생각, 생활, 그리고 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있어서 그런지 매우 재미있게 봤다. 아마도 우리가 요새 투자하는 회사의 창업가들이 대부분 이 분들과 나이 또래도 비슷하고, 생각하는 것도 비슷해서 더 몰입해서 봤던 거 같다. 한 회에 3~4명의 직장인이 소개됐는데, 내가 기억하는 건 공무원, 대기업(아모레퍼시픽), 작가, 해녀, 미용사, 자동차 사진작가 등이다.

이 중 내가 제일 재미있게 봤던 분들이 작가, 해녀, 그리고 자동차 사진작가이다. 특히 29살의 최연소 거제도 해녀분의 일상은 정말 재미있었다. 원래는 병원에서 일했는데, 너무 바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자기 시간이 전혀 없어서 뭘 할까 고민하다가, 시간 사용도 자유로운 편이고, 일한 만큼 벌 수 있고, 본인이 좋아하는 물과 관련된 직업이라서 해녀를 새로운 직업으로 택했다고 하는데 나이 많으신 분들만 하는, 아주 올드하고 재미없는 일이라고 알고 있던 해녀라는 직업을 젊은 분의 시각으로 새롭게 보니까 상당히 흥미로웠다. 파주에 사는 작가분의 일상도 신선했다. 배운 건 글 쓰는 거 밖에 없고, 글 쓰는 걸 너무 좋아하지만,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지 못하면 항상 배가 고픈 작가의 삶을 탈피하기 위해서 다양한 시도를 하는 1인 출판사를 운영하는 분이 만만치 않은 현실과 고군분투하는 모습에서 스트롱 창업가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0살 백건우라는 대학생 자동차 사진작가의 일상 또한 상당히 좋았다. 차와 사진을 워낙 좋아해서 고등학교 때부터 자동차 모형을 직접 만들어서 사진을 찍고, 이 사진을 커뮤니티에 올린 게 계기가 되어 실제 슈퍼카들의 사진작업을 의뢰받고 있는, 요새 잘 나가는 신세대 자동차 사진작가이다.

물론, TV에 나온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나도 잘 안다. 어쩌면 사실이 왜곡되어 있고, 수많은 편집을 통해서 이들의 멋있고 좋은 면만 어느 정도 연출됐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연출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리얼했던 건, 이 젊은 친구들이 일을 할 때 볼 수 있었던 즐거움과 진지함이다. 이 즐거움과 진지함이 얼굴 표정 뿐만이 아니라 온몸에서 발산되는걸 TV 화면으로도 내가 느낄 수 있었다면 이건 찐 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이들은 모두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덕업일치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본인이 좋아서 선택한 일이기에, 그리고 그냥 남들이 하는대로 따라 하지 않고, 충분히 고민하고 선택한 일이기에, 힘들지만 즐기면서 할 수 있고, 이러다 보니 돈도 잘 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이런 덕업일치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게 아니라는걸 잘 안다. 하지만, 이렇게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젊은 분들을 보면서 나도 많은 에너지를 받았고, 가끔 요새 젊은 친구들은 아무 생각 없이 산다는 비판적인 생각을 하는 내 태도를 많이 바꿀 수 있었다. 대한민국의 고정관념으로 보면, 이 프로에 나온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쓸데없는 짓을 하면서 인생을 낭비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이런 젊은 세대를 나는 적극적으로 응원하고 싶다.

설탭

2016년 12월에 우리는 오누이라는 회사에 투자했다. 프라이머 회사라서 그 전부터 알고 있었고, 오누이 고예진 대표님이 본인이 대학생일 때 과외 수업을 하면서 느꼈던 시장의 가능성과 문제점을 사업화 한 게 모바일 수학 질의응답 서비스 오누이라는 앱이었다. 수학 문제를 풀다가 모르는 게 있으면 사진을 찍어서 앱에 올리고, 명문대 과외선생님들이 실시간으로 이 문제를 풀어주는 서비스였다. 과거에도 비슷한 컨셉의 앱이 있었지만, 오누이 나름의 전략과 실행력으로 사업 초반에는 꾸준히 잘 성장했다.

그런데 얼마 안 가서 비즈니스는 한계에 부딪혔고,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빠르게 변하고 경쟁이 심한 이 시장에서 고속 성장하는 서비스를 만들고 운영하는 건 쉽지 않았다. 특히나, 돈과 인력이 없는 작은 스타트업이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내 기억으로는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고생했고, 꽤 긴 정체 기간이 있었다.

실은 여기까지는 특별한 내용은 없다. 좋은 시장에서 좋은 제품으로 시작해서, 초반에는 반응이 좋았고 어느 정도의 성장이 있지만, 한정된 자본과 인력 때문에 더 이상 성장을 못 하고 정체되는 과정은 전 세계 모든 스타트업이 최소 한 번 정도는 겪는다. 아마도 많은 분이 아는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이런 과정을 여러 번 거치고, 결국엔 서서히 사라진다. 어떻게 보면, 여기서 사업을 접는 게 더 현실적이고 현명하다는 생각도 나는 가끔 한다. 우리가 투자한 회사가 망하는 건 유쾌한 경험은 아니지만, 위와 같은 상황이 오면 기약 없이 계속 사업 초기의 믿음과 비전만 가지고 버티는 거 자체가 어쩌면 어리석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누이 팀은 계속 버텼다. 힘들게 버티면서도 계속 눈과 귀는 크게 열어놓고, 이런저런 시장의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본인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이 과외 시장에서 어떻게 하면 살아남으면서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고 테스팅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몇 가지 중요한 관찰과 배움이 있었고, 같은 과외 시장이지만, 조금은 다른 방법으로 제품을 만들고 고객에게 접근해보기로 했다. 소위 말하는 ‘피보팅’을 시도했고, 설탭이라는 서비스로 피보팅을 했다. 참고로, 설탭은 아이패드를 이용해 100% 서울대 선생님과 학생이 화면과 필기를 공유하며 실시간으로 과외를 받을 수 있는 서비스다. 어떻게 될지 몰랐기 때문에, 아주 조용히 피보팅했는데, 다행히도 출시 약 1년 만에 매달 120% 성장했고, 현재 10대 중고생들의 소셜미디어에 자주 거론되는 아주 인기 있는 앱이다. 실은 이렇게 서울대 선생들이 태블릿을 이용해서 과외를 하는 서비스가 시장에 꽤 있는 거로 알고 있는데, 설탭이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이유는 오누이 팀이 그동안 이 시장에서 오랫동안 고생하면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관찰한 디테일이 잘 녹아들어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번에 오누이의 투자 소식이 발표됐다. 우리도 이번 라운드에 다시 참여했는데, 회사의 성장이 더욱더 뜻깊었던 이유는 설탭의 실시간 과외 플랫폼의 기술 인프라 API를 제공하고 있는 회사가 또 다른 스트롱 투자사인 플링크이기 때문이다. 플링크도 초반에 많이 고생했는데, 역시 창업가가 한 시장에 집중하면서 한 우물만 파다 보면 이런 좋은 일이 동시에 생기기도 하는 거 같다.

웬만한 팀이라면 돈과 에너지가 떨어지면 그냥 그만둘 텐데, 지칠 줄 모르는 각오와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는 탄성을 내 눈앞에서 직접 보여준 오누이 팀과 설탭에게 정말 감사한다.

체력단련

나도 펀드를 만들면서 하고 있고, 우리가 투자한 회사 대표님들이 스트롱 투자 이후 후속 투자를 받기 위해서 펀드레이징하는걸 옆에서 많이 지켜보고, 도움 주고, 어떨 때는 같이 직접 펀드레이징을 하기 때문에, 투자 받는 게 얼마나 힘든지는 잘 알고 있다.

요새 정부가 경제에 엄청난 벤처자금을 투입해서, 돈이 시장에 꽤 많이 풀렸지만, 그래도 투자 받는 건 매우 어렵다. 아마도 시장에 돈이 많이 풀렸으니까, 많은 대표들이 “우리같이 작은 초기 회사에까지 돈이 오지 않을까”라는 행복한 상상을 한다. 코비드19 때문에 경기가 위축되니 돈을 더 투자하라고 정부에서는 자금을 투입하는 건데, 역사를 보면, 이런 현상이 일어날 때마다 실제로 자금은 사업을 더 잘하는 상위 소수의 회사에 다 투자된다. 그만큼 투자자들은 안전한 투자처를 찾고 있고, 그나마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기업가치 1,000억 원+ 회사에 대부분의 자금을 투입한다. 경기가 어려울수록 벤처투자자도 돈을 많이 벌기보단, 돈을 많이 잃지 않길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가치가 상대적으로 낮은, 이제 시작하는 회사에까지 올 수 있는 투자금은 오히려 더 적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도 우리 투자사들이 후속투자유치를 시작하면, 과거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더 많은 VC를 소개해준다. 한 10개 넘는 VC와 미팅을 했는데, 아직 성과가 없는 우리 투자사 대표와 얼마 전에 중간 점검을 위해서 만났다. 실은 이분은 그동안 사업과 제품에 집중한다고 우리 빼곤 다른 투자자와의 교류가 거의 없던 분이라서, 나는 투자유치 여부를 떠나서 VC와 미팅 연습 차원에서 많은 VC를 만나보라고 했고, 내가 아는 좋은 VC, 개인투자자, 전략적 투자자를 소개해줬다.

결과는 참담했다. 그리고 이 분은 다양한 투자자들로부터 정말 다양한 질문, 공격과 챌린지를 많이 받았다. 나도 가끔 이상한 질문을 창업가들에게 하는데, 들어보니 이 분도 정말 이상하고 말도 안되는 질문도 많이 받았고, 회사와 비즈니스에 대한 공격 뿐만 아니라 창업가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그런 인간적인 공격도 많이 받았다. 그래도 내가 참 고맙게 생각하는 건, 이 분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고, 이 모든 게 앞으로 사업하고, 펀드레이징하는데 피와 살이 되는 좋은 연습과 훈련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었다. 심지어는 이걸 체력단련과 비슷하다고 이야기했다. 몸이 튼튼해지기 위해서 운동하는 건 힘들고, 숨이 차고,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지만, 결국 잘 극복하고 그 힘든 시기가 지나면 아주 단단한 근육질의 몸이 되는거와 같이 이런 힘든 과정을 거쳐야지만 투자를 받고, 더 좋은 파운더가 되고, 더 좋은 사업이 만들어 진다는 이야기를 했다.

모든 파운더 분들이 이런 마음가짐을 가졌으면 좋겠다.

일생일대의 기회

1593990736558나이가 들수록, 체력도 서서히 약해지는 걸 내가 계속 몸소 느끼고 있다. 헬스장에서 무거운걸 들때도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고, 많이 반복해도 예전같이 근육이 잘 안 붙는다는 것도 눈에 띄게 보인다. 그래서 더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는데, 전에 몇 번 포스팅 했듯이, 난 요새 영화 록키 음악을 항상 들으면서 자신을 모티베이션 하면서 운동한다.

록키 1에서, 록키는 헤비웨이트 챔피언 아폴로 크리드와 운 좋게 대타로 시합상대가 된다. 동네 체육관에서 훈련하는 완전 무명복서에게는 너무나 좋은 기회였고, 이 내용을 프로모터가 록키한테 전달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He picked you up. It’s a chance of a lifetime. Can’t pass it by. (아폴로가 너를 시합상대로 지명했어. 일생일대의 기회야. 절대로 놓치면 안돼).” 물론, 록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시합에서 지긴했지만, 인상적인 경기를 하면서 완전 스타가 됐고, 그 이후는 우리가 아는 그 록키 이야기다.

어떤 인생을 살든, 누구에게나 이런 일생일대의 기회가 한 번 정도는 온다. 나도 아직 살 날이 더 많지만, 내 짧은 경험에 비춰보면, 한 번이 아니라 몇 번은 오는 것 같다. 이런 기회가 왔을 때, 두 가지가 중요하다. 일단 이 기회가 정말 일생일대의 기회인지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고, 더욱 중요한 건 록키가 이 기회를 안 놓친 것처럼, 우리도 기회를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실은 누구나 다 알지만, 이게 말만큼 쉬운 건 아니다.

전에도 여러 번 내가 관련해서 글을 쓴 적이 있어서 내 이야기를 아는 분들은 잘 알 텐데, 나는 2008년 초에 MBA를 그만두고 LA로 와서 뮤직쉐이크 사업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교를 그만두고 사업을 한 게 정말 잘 한 결정이지만, 당시에는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며칠 동안 혼자서 끙끙거리면서 고민 엄청 했고, 결국 와이프한테 속마음을 털어놨고, 둘이 상의하면서 또 고민 엄청 많이 한 후에, 결국엔 학교를 떠나기로 했다. 실은, 13년 전 그때는 이게 내가 잘하는 결정인지 아닌지 판단이 잘 안 섰고, 내 기억으로는 그때도, “일단 해보자. 몇 년 후에 시간만이 이 결정이 잘 한 건지 아닌지 판단해 줄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한테는 이게 일생일대의 기회였고, 다행히도 – 정말 다행히도 –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좋은 학교를 그만두고, 위험한 사업을 했는데, 실은 그 사업의 결과는 그렇게 좋진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스타트업 분야에 발을 담그고, 아주 깊게 관여하면서 나는 지금까지 정말 운 좋게 좋은 경험을 많이 했다. 스트롱벤처스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당시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와튼을 그만뒀고, 뮤직쉐이크를 하기 위해서 LA로 왔고, 그러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더 다양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게 없었으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이 일을 지금 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지금 힘들게 사업을 하는 창업가들도 창업을 결심하기 전에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다. 월급 꼬박 잘 나오는 편안한 직장을 그만둔 분들이 있고, 명문 대학을 그만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창업이라는 길을 선택했을 때 주위 분들이 말렸을 것이고, 심지어는 가족들한테도 욕 먹었을 텐데, 어쩌면 이렇게 힘든 길을 선택한 걸 지금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반대로, 나의 경우와 같이, 어쩌면 시간이 좀 흐르면 이게 일생일대의 기회였을지도 모르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여러분의 선택에 감사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아니, 이럴 확률이 훨씬 더 크다고 나는 생각한다.

모두 일생일대의 이 기회를 즐기시길.

<이미지 출처 = 크라우드픽>

불가항력

우리같이 많은 회사를 검토하고 만나고, 그리고 많은 회사에 투자하다 보면, 상당히 비슷한 비즈니스를 자주 본다. 나도 최근 몇 년 동안 검토하거나 만났던 스타트업 중 과거에 존재하지 않던 완전히 새로운 기술, 제품 또는 비즈니스로 창업한 사례는 한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적었던 것 같다. 대신, 대부분의 창업가는 이미 존재하는 비즈니스를 더 좋게 다듬는 전형적인 faster, better, cheaper 플레이를 하는 분들이었다. 물론, 이게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오히려 이렇게 하는 게 훨씬 더 대중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비즈니스를 만드는데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완전히 새로운걸 만드는것 보단, 이미 여러 사람과 여러 회사가 시도를 해서 어느 정도 product market fit을 찾은 컨셉을 더욱더 정교하게 다듬으면 정말로 괜찮은 대형 비즈니스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스타트업이 거의 동일한 비즈니스를 남들보다 더 잘 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해도, 어떤 팀은 실패하고, 또 어떤 팀은 성공한다. 실은 대부분 실패하고 극소수만 성공한다고 하는 게 맞다. 내 개인적인 경험을 봐도, 나는 뮤직쉐이크라는 인터넷 음악 비즈니스를 잘 못 했지만, 이와 비슷한 비즈니스를 하는 팀 중 잘 하는 팀도 있다.

똑같은 시장에서, 거의 똑같은 서비스를 만들어서 사업을 하는데, 왜 어떤 팀은 잘 하고, 어떤 팀은 못 할까? 이 질문은 실은 투자자뿐만 아니라 누구나 다 궁금해하는 질문이긴하다. 나도 항상 스스로 물어봤고, 아직도 계속 물어보고 있기 때문이다.

답은 심플하지만, 굉장히 묵직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여기 사람이다. 결국, 뭘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이걸 하는 게 중요한, 이 본질적인 문제로 돌아오는데, 아무리 같은 시장에서, 같은 기술을 이용해서, 같은 제품을 만들고, 같은 기능을 만들고, 똑같은 가격에 제품을 제공해도, 안 되는 회사는 그걸 하는 사람들이 못 해서 안 되고, 잘 되는 회사는 그걸 하는 사람들이 잘 해서 잘 된다. 사람 자체가 진입 장벽이자, 사람 자체가 이 비즈니스의 defensibility가 되는 것이다.

영어불어로 Force Majeure는 불가항력이라는 뜻이다. 천재지변과 같이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힘이라는 의미인데, 나는 창업가분들 자체가 불가항력이 아닐까 생각된다. 논리적으로 봤을 때 도저히 될 수 없는 사업을 되게 만들고, 성공적으로 이끄는걸 우리 주변에 많이 볼 수 있는데, 이건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좋은 창업가들이 뭔가를 하겠다고 맘먹고 덤비면, 그 누구도 멈출 수 없는 불가항력이 되는걸 나도 여러 번 목격한 적이 있다.

모든 게 동일하지만, 사람만 다르다면, 이게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기 때문에, “그거 내가 전에 해봐서 아는데, 잘 안되는 비즈니스야” 또는 “이미 많은 팀이 시도해봤는데, 그건 안 되는 비즈니스야”라고 단정하고 그런 비즈니스를 검토하지 않거나, 그런 팀을 만나보지도 않는 건 기회를 스스로 차버리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창업가, 그 사람 자체가 진입장벽이 될 수 있는 멋진 분야에서 우리 모두 멋진 일들을 하고 있음에 오늘도 감사하게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