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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 유행과 대세

얼마 전에 ‘요즘 애들’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의 부제는 “가장 학력은 높고, 가장 많이 일하지만, 가장 적게 버는 세대”인데, MZ 세대에 대한 책이고, 시중에 나온 수많은 비슷한 책과 같이 MZ 세대는 이렇다 저렇다는 표면적인 이야기보단, 작가는 왜 MZ 세대가 가장 공부는 많이 하고, 가장 열심히 일하지만, 가장 적게 버는지를 어느 정도까지 분석하고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솔직히 말해서 이 책의 내용에 나는 대부분 공감할 수 없었는데, 어쨌든 요즘 애들도 우리와 비슷하게 본인들만의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MZ 세대의 대표적인 특징이 평균을 싫어하고, 자기만의 독특한 개성을 중시하고, 뭔가 항상 새로운 걸 시도하는 것 같다. 이런 이유로 남이 하면 따라 하고, 남이 좋아하면 나도 좋아하는 우리 세대한테 잘 어필되고 판매되던 상품과 브랜드가 더 이상 빛을 못 보고 있다. 새로운 세대에게 잘 마케팅하고 판매하기 위해서 기존 브랜드는 과거 수십 년 동안 잘 작동하던 전략을 버리고 있고, 신생 브랜드는 지금까지 없던 방식과 전략으로 새로운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며칠 전에 운동하면서 잠깐 TV를 봤는데, 성수동 팝업 매장에서 다른 산업군의 브랜드와 콜라보를 계속하는 의류 브랜드를 구입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아주 길게 줄을 서고 있는 광경이 보였다. 나는 처음 들어보는 브랜드였는데, “브랜드 x 다른 브랜드” 식으로 신발부터 옷까지 다양한 패션 아이템을 소량으로 출시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회사였고, 젊은 친구들이 매장 밖에 긴 줄을 형성하면서 이 가게 안에 들어가서 즐겁고 비싼 쇼핑을 하는 뉴스 내용이었다.

기자가 매장 직원도 인터뷰하고, 젊은 커플 고객도 인터뷰했는데, 양쪽 다 하는 말이 비슷했다. MZ 세대는 기성세대와는 다르게 트렌드에 상당히 민감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주목받고, 이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영업/마케팅 방법을 과감하게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그리고 이 새로운 방식조차 지속적으로 변형하면서 이들을 공략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도 다양한 사업,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창업가들의 나이는 점점 더 어려지고 있어서 우리가 만나는 많은 창업가들이 MZ 세대인데, 이들이 트렌드에 민감하고, 새로운 걸 좋아하고, 나 같은 세대의 사람들과는 모든 걸 다르게 보는 건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회사가 이들의 취향에 모든 전략을 맞출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렇게 하면 수십 년 동안 잘하던 사업의 기반이 흔들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트렌드에 민감하다는 말을 조금 더 깊게 해석해 보면, 너무 유행을 탄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유행을 타는 고객들은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없기 때문에,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사랑받고 아주 오랜 기간 동안 꾸준하게 돈을 쓰게 만드는 게 힘들다. 트렌드를 세팅하고 리딩하는 세대일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사업의 확장에는 도움이 안 되는 대규모 뜨내기 세대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글의 오프닝에서 썼듯이, MZ 세대는 전반적으로 돈이 별로 없다. 소셜미디어상에서는 파급력이 강할진 몰라도, 막상 구매력이 그렇게 어마어마하진 않다.

어떤 분들은 2년 반짝 사업을 성장시키고 적당한 가격에 팔고 빠질 목적으로 창업하지만, 내가 아는 대부분의 창업가들은 지속 가능한 사업을 만들고 있고, 지속 가능한 사업은 최소 10년이 걸린다. 이렇게 장기적인 안목으로 사업을 할 때, 반짝 유행하다가 없어질 것들과 지속적으로 유행해서 대세가 될 것들을 잘 구분해야 한다.

유행과 대세를 어떻게 구분할까?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냥 장기적인 방향을 정하고, 이쪽으로 꾸준히 가는 수밖에 없다. 중간 중간에 여러 가지 트렌드와 새로운 유행이 생길 것인데, 그때마다 아무 생각 없이 남들이 가는 쪽으로 방향을 틀지 말고,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일시적인 유행이 아닌, 장기적인 대세가 될 수 있는 트렌드를 잘 선택하길 바란다.

헛똑똑이들

스트롱 내부 미팅을 할 때 내가 요새 자주 언급하고 강조하는 게 있는데, 바로 투자하지 않을 이유를 찾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하지 말고, 투자할 이유를 찾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하자는 것이다.

우리도 이제 나를 포함해서 투자 인력이 5명으로 커졌는데, 모두 다르게 생각하고, 세상을 다르게 보고, 지금까지의 경험도 다르기 때문에, 창업가나 회사에 관해서 이야기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내가 아주 투자하고 싶은 회사에 대해서 다른 분들은 초부정적 피드백을 줄 때도 있고, 반대로 다른 분들이 너무 좋다고 생각하는 창업가에 대해서 나는 또 다른 시각으로 그 반대의 의견을 제공하는 경우도 많다. 실은, 이렇게 다양한 의견을 기반으로 이야기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설득하는 과정에서 우린 상당히 많은 걸 배우고, VC로서 한 층 더 성장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매우 바람직한데, 이렇게 서로의 논리와 주장을 남들과 공유하고 설득할 때 한가지 항상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이건 나도 자주 빠지는 함정이고, 스스로 너무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투자자, 또는 경험이 계속 축적되고 있는 투자자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자주 느끼는 점이기도 하다. 바로, 투자하지 않기 위한 논리를 만들고, 이를 합리화하고 또 정당화 하기 위해서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실은, 모든 스타트업은 투자하지 말아야 할 이유만 수백 가지이고, 투자해야 할 이유는 거의 없다. 이건 모든 VC들이 잘 아는 사실인데,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특정 회사가 성공할 수 있는 몇 개 되지 않는 이유를 찾아서 투자해야 하는 업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가끔 잊는 것 같다.

그래서 너무 많은 투자자들이 시장 조사, 데이터, 본인의 경험 등을 기반으로 투자하지 않기 위한 멋진 논리를 만드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사용하는 것 같다. 이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이 사업은 이미 다른 회사들이 시도해 봤는데 잘 안됐고, 저 사업은 시장을 다 먹어도 100억이 안되고, 저 창업가는 본인이 하는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고, 등등, 실은 구구절절 모두 맞는 말이다. 원래 뭔가를 반박하는 부정적인 이야기만큼 논리적이고 완벽한 게 없긴 하다.

나는 이런 걸 헛똑똑이 증후군이라고 한다. 똑똑한 투자자이고, 더 똑똑한 부정적인 의견이긴 한데, 결국엔 이렇게 해서 투자하지 않는 회사 중에 엄청나게 잘하는 곳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많은 VC들이- 나를 포함 – 투자하다 보면 어느 시점에 이 헛똑똑이 증후군에 빠지는데, 이건 좋은 투자를 하기 위해서 반드시 경계해야 하는 마인드셋이다.

실은 헛똑똑이 투자자들은 본인들이 창업가보다 똑똑하다는 걸 자꾸 증명하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여러 가지 수치와 논리를 기반으로 특정 창업가와 사업에 투자하면 안 되는 이유를 계속 만드는데, 이런 분들은 투자하지 말고 그냥 직접 창업하는 걸 권장한다. 우리가 하는 이 투자라는 업은 본인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 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을 잘 찾아서 이들에게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창업가보다 더 똑똑하다는 걸 이렇게 힘들게 계속 증명할 필요가 없는 직업이다.

한 방은 없다

스타트업은 린하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시도해서 실패해도 그냥 다음 새로운 시도로 넘어가면 된다. 대기업은 관료주의적이고 느리다.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하기 위해서 내부 승인 과정을 거치다 보면, 그 새로운 건 이미 옛날 것이 되어 있다. 하지만, 대기업은 스타트업이 가지지 못한 자본력과 유통력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스타트업과 대기업의 협업을 종종 본다. 물론, 서로 DNA가 다른 조직이라서 대부분의 협업은 실패하지만, 잘하는 사례도 아주 가끔 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본 많은 스타트업 대표들이 대기업과의 협업에 너무나 큰 자원을 할당하고, 너무나 큰 기대와 의미를 부여한다. 큰 오프라인 리테일 유통망을 가진 대기업을 통해서 제품이 마케팅되고 유통되기 시작하면 매출이 10배 이상 증가할 거라는 시장 조사와 분석 자료를 너무나 굳게 믿으면, 이 협업을 되게 하기 위해서 회사의 모든 자원을 투입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수년 동안 자체적으로 매출을 이렇게 크게 만들지 못한 회사인데, 남과의 협업을 통해 큰 성장이 가능하다는 걸 너무 굳게 믿으면, 우리 사업의 핵심이 우리의 제품과 고객에서 다른 회사와의 협업으로 바뀐다.

모든 개발력은 우리에게 폭발적인 성장을 말로 보장하는 파트너사의 요구를 맞추는 데 다 투입되고, 우리 마케팅 담당자들은 우리 자체 마케팅이 아니라, 다른 회사와의 파트너십을 그 회사의 기준에 맞춰서 홍보하기 위해서 바빠진다. 그리고 회사의 핵심인 대표이사 또한 이 협업이 한 방에 우리 회사의 운명을 180도 바꿔 놓고, 그 이후에 우리 회사는 제이 커브 성장을 그릴 수 있다고 굳게 믿어서, 실은 더 중요한 모든 일들은 이 협업 이후로 미룬다.

그런데 대기업과의 협업은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1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나는 봤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과 자원을 투입한 후에 잔뜩 기대하면서 시작한 파트너십은 대부분 잘 안된다. 실은, 대부분 재앙의 수준으로 마무리되고, 이 협업 때문에 그동안 날렸던 시간, 돈, 그리고 정말로 중요한 일을 소홀히 한 대가는 작은 스타트업을 그대로 파산시킬 수 있다.

왜 그런진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한국에선 스타트업의 성공이 “대박”과 “한 방”과 같은 단어로 포장되기 시작했고, 내가 만나는 일부 창업가들은 스타트업에 한 방이 없으면 절대로 제이 커브를 만들 수 없고, 제이 커브를 못 만들면 유니콘 기업이 될 수 없다고 굳게 믿고 있다. 실은, 방금 쓴 문장에 내가 싫어하는 스타트업 단어가 다 들어가 있는데, 내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가 “한 방”, “유니콘”, 그리고 “제이 커브”다. 아직도 이런 한 방 신화를 믿고 있는 창업가들은 이전 글의 AuditBoard와 같은 회사들의 성장을 참고하면 좋겠다.

이 세상에서 한 방으로 크게 성공하는 대박 성공은 절대로 없다. 특히, 요새 같이 경쟁이 심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한 방에 성공하는 사업은 있을 수가 없다. 이런 게 아직도 있다면 그건 사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창업가들은 특정 기업과의 협업, 특정 기능, 특정 업데이트, 특정 인력이 그동안 회사에 없던 성공을 한 방에 가져올 수 있다고 믿으면 안 되고, 여기에 올 인 하면 안 된다. 모든 일들엔 시간이 걸린다(TTT=Things Take Time).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건, 작은 것들이 쌓여서 큰 게 되는 복리의 힘, 그리고 복리의 힘을 움직이는 원동력인 나만의 견고한 사업과 비즈니스 모델이다.

절대로 대박은 없다. 이 대박에 올 인하지 마라.

작은 시장, 작은 사람들, 큰 결과

5월 말에 테크크런치에 한 M&A 관련 기사가 올라왔다. Hg라는 투자사가 AuditBoard라는 스타트업을 한화로 4조 원($3B)이 넘는 금액에 인수한다는 내용인데, 업계 분들도 이 기사를 보고 갸우뚱했다. 왜냐하면, 인수자인 Hg도 낯선 이름이었고, 이 투자사가 인수한 AuditBoard라는 회사도 낯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수 금액은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엄청나게 큰 딜이었다. 관련 기사도 많지 않았는데, 그나마 찾을 수 있는 기사를 읽어보면 대부분 “당신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회사의 가장 큰 인수 소식”과 비슷한 부류의 내용이다.

AuditBoard는 LA 주변 오렌지카운티의 두 한인 중학교 친구인 Daniel Kim과 Jay Lee가 2014년도에 창업한 회계/감사/리스크 관리 관련 B2B SaaS 스타트업이다. 다니엘이 중견 기업의 CFO 였는데, 본인이 몸담고 있었던 회사의 회계 관리 업무를 하면서 불편한 점들을 개선하기 위해서 창업했고, 시작은 미국 회계/감사 관련 법인 Sarbanes-Oxley 법 준수를 위한 소프트웨어였다. 그래서 창업할 때 회사 이름도 SOXHub이었는데, 회사는 점점 더 그 시장과 제품의 영역을 넓혀갔다. 이 회사가 그동안 계속 그 누구의 주목도 받지 않으면서 이렇게 큰 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두 공동창업자가 우리가 언론을 통해서 접하는 그런 전형적인 유니콘 창업자들이 아니다. 둘 다 회사를 창업했을 때 나이도 있었고, 그 전에 스타트업 경험이 전혀 없었고, 소프트웨어로 뭔가를 해본 사람들도 아니고, 어쨌든 투자자들이 만났을 때 “이 친구들한테 당장 투자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그런 팀은 아니었다. 또한, AuditBoard의 본사는 Cerritos라는 오렌지카운티의 도시였는데, 내가 알기론, 이 도시는 소프트웨어 회사를 창업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특히나 유니콘 회사를 만들기엔 약간 뜬금없는 지역이긴 하다.

두 번째 이유는, 이들이 풀고자 했던 포천 1,000 기업의 회계/감사 시장을 잘 아는 투자자들이 거의 없고, 알아도 일반적으로 이 시장은 그렇게 큰 시장이 아니라 그냥 잘 먹고 잘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벌 수 있는 틈새시장 정도로 인식되는 수준이었다. 투자자라면 창업가들에게 수십번도 말했을 전형적인 “너무 작은, 스케일이 불가능한 시장”으로 인식되는 틈새에서 이들은 창업했는데, 이런 회사는 투자받는 게 정말 힘들다.

세 번째 이유는, 위에서 말한 두 가지 이유로, AuditBoard는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구조를 첫해부터 만들 수밖에 없었고, 투자도 거의 안/못 받았기 때문에 언론에서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았고, 정말로 이런 회사를 일부러 찾으려고 하는 투자자가 아니라면 VC의 레이더망에 안 잡혔다. 또한, 너무 틈새시장으로 알려진 분야라서, 경쟁사도 거의 없었고, 이렇다 보니 이 분야는 더욱더 안 알려졌고, 이 회사 또한 더욱더 안 알려졌다.

창업 후 거의 10년 만에 인수되는 AuditBoard의 수치는 굉장히 놀랍다. 일단 연반복매출(ARR)이 한화로 거의 3,000억 원이다. 시장이 가장 좋을 때, B2B SaaS 스타트업의 기업가치가 ARR의 20배 정도였는데, 이렇게 경기가 안 좋은데도 거의 15배 기업가치로 인수됐다. 그리고 이 회사는 지금까지 받은 총투자금이 한화로 600억 원밖에 안 된다. 600억 원의 투자를 받아서 3,000억 원의 연 매출을 만드는 회사로 성장했고 – 참고로, 창업 2년 차부터 흑자 전환했다 – 4조 원에 인수됐는데, 투자 금액 대비 매출 창출 능력이나 엑싯 비율이 이렇게 좋은 스타트업은 드물다. 말 그대로 진짜 유니콘이다.

마지막으로, 더욱더 놀라운 사실은, 대부분 모르고 있었던 이 회사의 인수가, 올해 북미 시장에서 벤처투자를 받은 스타트업 엑싯 중 가장 큰 메가 엑싯이라는 점이다. 아무도 몰랐던 회사의 엑싯이 올해 북미 시장에서 가장 큰 엑싯이라니,,,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우린 Daniel과 Jay를 2014년도에 처음 만났고, 2015년도에 투자했다. Mucker라는 LA의 액셀러레이터로부터 첫 투자를 받은 후, 스트롱이 두 번째인가 세 번째 투자자였다. 실은, 지금 와서 말하지만, 나도 그땐 세리토스라는 창업불모지에서, 스타트업과는 거리가 너무 먼 두 명의 한인교포 창업가들이, 내가 아예 모르지만 아무리 봐도 시장 규모가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분야에서, 돈 벌기가 그렇게 어려운 B2B SaaS 사업을 하는 이 회사를 만났을 때 전혀 투자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끈질기게 찾아와서 설득했고, 반은 설득당했지만, 반은 그냥 “이거 투자할 테니까, 더 이상 나를 좀 귀찮게 하지 마세요.(=제발 이거 먹고 떨어지세요)”라는 생각으로 투자했다.

그 누구도 – 나도, 스트롱도, 이 회사의 시리즈 B를 리드한 Battery Ventures도, 그리고 심지어는 두 명의 공동창업가들도 – AuditBoard가 이렇게 큰 회사로 성장할진 상상도 못 했다. 나는 지금도 어떻게 이렇게 작은 시장에서, 이렇게 작은 사람들이, 이렇게 큰 결과를 만들었는지 이해가 안 간다. 2014년도의 Daniel과 Jay의 모습과 2024년도의 $3B 엑싯이 계속 머릿속에서 겹치는데, 뭔가 계속 현실과 비현실을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다.

왜 우린 이렇게 더디게 가고 있을까. 왜 우린 남들같이 투자를 못 받을까. 왜 우린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을까. 왜 우린 이렇게 작은 시장에서 니치한 사업을 하고 있을까. 뭐, 이런 고민을 오늘도 하고 있는 창업가들에게 AuditBoard 이야기를 꼭 공유해주고 싶었다. 아마도 느끼는 점도 많을 것이고, 어쩌면 더 많은 고민거리가 생기겠지만, 그래도 많은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긍정의 메시지가 전달되길 희망해본다.

내가 하는 일을 굳게 믿고, 작은 것들이 쌓여서 큰 결과로 폭발할 수 있는 복리를 믿고, 투자에 의존하지 말고 자생하는 법을 배워라. 이런 마인드로 최소 10년 정도 한 우물만 파면, 어쩌면 뭔가 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위대한 것들은 TTT라는 점을 절대로 잊지 말자.(TTT = Things Take Time).

입으로 투자하기

그동안 투자하면서 많은 실수를 했고, 그 실수만큼 많은 걸 배웠다. 벤처투자는 어려운 일이지만, 내가 이 업을 사랑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다른 분야에 비해서 실수에 관대하다. 그리고 실수를 하는 사람들도 솔직하게 본인의 잘못을 인정한다. 또한, 실수를 한 후에는 그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한 배움에 집중한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다른 산업에서는 이런 당연한 것들이 잘 안 보인다.

그동안 내가 배우고 느낀 것 중 하나는 직접 돈으로 투자해야지, 입이나 손가락으로는 투자하지 말라는 점이다. 우리 주변에는 입과 키보드로 투자하는 가짜 투자자들이 너무 많아졌다. 내가 투자를 시작했을 땐, 소셜 미디어가 메인스트림 시장으로 들어오기 전이라서, 손가락보단 입으로 투자하는 사람들만 있었다. 언론과의 인터뷰나 오프라인 행사에서 이들은 마치 대학교수와 같이 본인들의 이론을 펼치면서 왜 어떤 회사는 잘 되고, 어떤 회사는 잘 안되는지 청산유수와 같이 말한다.

나도 이런 사람들이 말하는 걸 처음 들었을 땐, 이분들을 투자의 신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똑똑해 보이고, 스타트업에 대한 이론은 거의 완벽했기 때문이다. 10개의 질문을 하면, 10개의 정답을 알려줬다. 하지만, 이론이 완벽한 투자자들이 여기저기서 좋은 말은 많이 하지만, 실제로 어떤 회사에 투자했는지 알아보면 포트폴리오사가 거의 없거나, 5년째 펀드를 못 만들고 있는 가짜 투자자임을 알게 됐다. 그리고, 나도 직접 투자를 하면서 이 분야의 경험이 조금씩 생겼고, 실제 스타트업 세상은 완벽한 이론과는 완전히 다르게 돌아간다는 걸 매일 느끼고 있다. 투자자로서 가장 중요한 건 외부 행사나 언론에서 입으로 투자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돈을 집행하는 것이다.

소셜 미디어가 커지면서 이제 손가락과 키보드로 투자하는 가짜 VC들도 너무 많아졌다. 투자에 대한 교과서를 여러 권 쓸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요새 너무 많고, 이들의 글을 읽어보면 모두 다 투자의 귀재들인 것 같다. 이 회사는 이래서 잘 됐고, 저 회사는 이래서 망했고, 창업가들은 이렇게 해야 하고 등등.

하지만, 매일 매일 창업가들을 만나고, 이들에게 투자하면서 진흙밭에서 같이 구르는 투자자가 봤을 땐, 이들의 이론은 하나도 안 맞는다. 그 이론이 하나도 안 맞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은 직접 투자를 해보지 않고, 남들이 하는 말과 책에서 읽은 것들을 아주 논리적으로 짜깁기하고 편집하기 때문이다.

입과 손가락을 투자하는 가짜 투자자들을 경계해야 한다. 창업가들도 이런 투자자들을 만나면 이들이 그동안 어떤 회사에 투자했는지, 그 투자는 본인들이 발굴해서 직접 한 건지, 아니면 이들이 다니는 회사의 다른 사람들이 투자한 건지, 또는 그냥 회사와 관련된 분을 통해서 그 회사의 주식을 조금 산 건지 등등, 이런 질문을 자세히 하고 이들이 진짜로 투자하는 사람들인지, 아니면 입과 손가락으로 투자하는 사람들인지 판별해야 한다.

오히려 진짜 투자를 하고, 경험이 많은 투자자들은 완벽한 이론과 흑백 논리보단 주로 “잘 모르겠다.” ,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라는 말을 많이 할 것이다. 왜냐하면 정말로 벤처 현장에 가보면, 모든 게 가능하고, 모든 게 불가능하고, 절대로 교과서와 같이 사업이 전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진짜 투자자는 입이 가는 곳에 돈을 집어넣는다.(put their money where their mouth is). 가짜 투자자는 입과 손가락만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