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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그리고 바로 해고

2021년도에도 투자받고, 또 최근에 투자받은 대표들은 두 시점에서의 전반적인 업계 분위기와 투자자들의 분위기가 180도 다르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2021년도는 나의 짧은 VC 경력 중 가장 흥미로운? 한 해였고, 돈이 완전히 메마를 것 같았지만,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이 시장에 풀렸던 시기였다.

이때 투자 받은 창업가들은 대부분 회사의 실적이나 수치 대비 훨씬 더 높은 밸류에이션에 훨씬 더 많은 투자금을 받았고, 당시 투자자들 분위기는 투자금을 최대한 빨리 소진해서 더 높은 밸류에 또 투자받자는 게 지배적이었다. 회사가 제대로 된 비즈니스 모델로 건강한 매출을 만들 수 있는지는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고, 최대한 많이 채용하고, 최대한 마케팅 많이 태우고, 최대한 직원들을 위한 복지에 돈을 많이 써서, 투자받은 돈을 최대한 빨리 쓰고, 내실보단 더 커진 외형으로 이전 가치보다 5배 이상의 밸류로 또 투자 받는데 모든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을 것이다.

우리도 당시에 신기했던 게, 좋은 창업가들이지만, 매출도 없고, 비즈니스 모델도 없는, 창업한 지 3개월밖에 안 되는 회사들이 기업 가치 200억 원 이상에 펀드레이징을 하고 있었고, 이들에게 투자하는 VC들이 정말 많았다는 점이다. 이 VC들에게 뭘 보고 이렇게 비싸게 투자했냐고 물어보면, “몇 달 뒤에 더 높은 가치에 투자받으면 되죠.”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가 만났던 이런 회사들은 대부분 지금은 문을 닫았거나, 아직 살아 있다면 당시에 투자받았던 200억 원 이상의 밸류보다 훨씬 낮은 50억 원대 밸류로 다운 라운드를 하고 있다. 많은 회사들이 비즈니스 자체도 피봇팅을 하기도 했다.

요샌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VC들은 검토하는 회사가 도대체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지, 최대한 빨리 손익분기점에 도달하기 위한 전략이 있는지, 그리고 기업가치가 합리적인지, 여러 가지를 매우 꼼꼼하게 챙긴다. 투자금의 용도가 더 많은 사람을 채용하고, 유료 마케팅을 하는 거라면, 3년 전만 해도 이 전략에 손뼉 치던 투자자들은 이제 회의적인 시각으로 이 전략을 바라본다. 그래서 2021년 도에도 투자받고, 최근에 또 투자를 받았던 대표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온탕에 있다가 갑자기 냉탕에 들어온 기분이고, 같은 투자자 지면 그동안 분위기와 투자 전략이 어쩜 이렇게 달라졌는지 상당히 놀란다.

우린 2021년도에도 열심히 투자했지만, 위에서 말한 대로 미친 밸류에이션에 투자는 가급적 자제했다. 아무리 좋은 창업가들이 가능성이 높은 사업을 해도, 우리가 원하는 밸류가 아니면 웬만하면 안 들어갔다. 실은, 이렇게 하고도 그 회사가 계속 성장하고 투자도 잘 받으면, 우리가 실수했는가 후회도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참 잘한 것 같다.

요새 우리가 신규 투자를 하거나, 기투자사들에 후속 투자를 할 때, 내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투자하면서 대표들에게 이번 라운드의 목적은 이 투자금을 안 쓰는 것이라고 한다. 회사를 운영하고 성장시키려면 당연히 돈을 써야 하지만, 그만큼 돈을 소중하게 쓰고, 최대한 회사를 lean 하게 운영하면서, 가능하면 이번 투자금으로 흑자를 만들어 보라는 경고이자 부탁이다.

둘째는, 투자받아서 사람을 더 채용하는 전략이 아닌, 완전히 그 반대 전략을 구사하라고 한다. 즉, 이번 투자를 받으면서, 회사에 기여를 못 하는 직원들을 대량 해고하라고 한다. 투자를 받는 회사들은 나름 잘하는 회사지만, 계속 그 기조를 유지하려면, 최대한 lean 하게 회사를 운영해야 하고, 이걸 가능케 하는 건 더 적은 인원으로 더 많은 일을 하는 시스템이다. 내가 얼마 전에 채용에 대한 글을 썼는데, 이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채용하지 말고, 100% 기여를 못 하는 직원이 있다면, 과감하게 내보내라고 한다. AI도 좋아져서, 사람이 하는 low level 작업은 충분히 기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두 가지 경고이자 부탁이자 조언은 물론, 꼭 그렇게 하라는 말이 아니라, 최대한 회사를 lean 하게 운영하고 바보 같은 짓을 하지 말라는 말이다. 우리 포트폴리오 창업가분들뿐만 아니라, 모든 창업가가 명심해야 할 내용이다.
투자를 크게 받았다면? 그 돈을 최대한 쓰지 말아라. 최대한 채용하지 말고, 오히려 투자금이 납입된 그날 불필요한 인력을 해고해라.
투자를 적게 받았다면? 그 돈을 최대한 쓰지 말아라. 최대한 채용하지 말고, 오히려 투자금이 납입된 그날 불필요한 인력을 대량 해고해라.
투자를 못 받았다면? 돈을 더 아끼고, 사람 절대 채용하지 말고, 있는 적은 인력도 더 줄여라.

실제로 돈을 버는 사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현실로 온 것을 환영한다.

VC는 끝나지 않았다

요새 링크드인과 페이스북에서 VC의 종말에 대한 포스팅을 자주 볼 수 있다. 한국인, 외국인 할 것 없이, 이제 이 낙후된 VC의 투자 모델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고, AI의 시대에 아직도 사람에게 집중하는 VC 모델은 더 이상 옛날처럼 작동할 수 없다는 주장들을 강하게 한다.

실은 나도 몇 년 전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이 글은 VC가 끝났다는 말은 아니라, VC의 비즈니스 모델이 너무 오래돼서, 이제 우리 같은 투자자들이 돈을 버는 방식도 조금 바뀌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이다. 그런데, 2017년도에 쓴 글인데, VC의 비즈니스 모델은 아직도 2/20 수수료 모델 그대로이긴 하다.

VC가 죽었다고 하는 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몇 가지 공통된 부분이 있고, 솔직히 이 내용들은 추측이 아니라 사실이라서 나도 동의한다. 2021년 대비 시장에 투입되는 벤처 투자금이 절반 이상이 줄었다는 점, 엑싯 또한 신통치 않아서 수익률이 예전에 비하면 현저하게 떨어졌다는 점, VC들에게 자금을 제공하는 LP들 또한 과거 대비 VC 펀드 출자를 상당히 줄였다는 점, 등으로 인해서 벤처 투자는 그 어느 때보다 돈 버는 게 어려워졌다. 엑싯이 안 되면, 회수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회수가 안 되면 VC에 자금을 제공하는 LP들에게 돈이 배분되지 않고, 이렇게 되면 시장에 돈이 안 돌기 때문에, 정말 어려운 시기임은 맞다.

이런 거시적인 시장 상황 외에도 AI의 발달로 인해서 똑똑한 창업가들은 큰 투자 없이 큰 사업을 만들 수 있어서 더 이상 VC 투자가 이들에겐 매력적이지 않다는 이유, 개나 소나 펀드를 만들어서 창업가 대비 VC의 비율이 점점 더 VC에게 불리해지는 상황, 그리고 이제 과거와 같은 큰 혁신은 나오지 않는다는 이론 등으로 인해서 VC라는 산업 자체가 앞으로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많다. 특히, AI가 좋아지면서 조만간 사람이 하는 VC 투자를 기계가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들도 있다.

이런 의견과 시장 상황은 틀리지 않았다. 나 같은 VC도 매일매일 몸으로 느끼는 현실이다. 하지만, 나는 VC는 죽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실은, 완전히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좋은 창업가들을 발굴해서 투자하는 VC 산업은 더욱더 중요해질 것이고, 이들이 투자한 좋은 회사들이 큰 엑싯을 하면서 그들이 투자하는 지역의 경제를 가장 크게 성장시킬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 우리가 보는 현상은 그 어떤 산업에서나 볼 수 있는 보정 과정이다. 코로나 기간 너무 많은 돈이 너무 빨리 시장에 풀려서 VC라는 게임이 살짝 고장 나긴 했지만, 이 또한 고쳐지고 치유될 것이다. 이미 그런 과정을 거치고 있고, 바보 같은 짓 안 하고 원칙을 지키면서 제대로 된 전략으로 투자했던 건강한 VC들만 살아남을 것이고, 살아남는 VC는 더욱더 강해질 것이다.

그 어떤 시장이라도 너무 커지고, 돈이 너무 많이 집중되면, 이상한 사람들과 회사가 항상 생길 수밖에 없는데, 건강한 시장이라면, 결국 이런건 스스로 정화된다. 단지 시간이 좀 걸릴 뿐이다. 2020년과 2021년, 전 세계에 너무 많은 신생 VC가 생겼고 – 한국도 심할 정도로 많이 생겼다 – 이미 투자하고 있던 VC들도 펀드 규모를 엄청나게 불렸고, 그 큰 펀드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더 많은, 더 큰, 더 말도 안 되는 투자를 상당히 많이 했다. 그리고 그 대가를 우리가 모두 지금 치르고 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계속 건재하면서 잘하는 VC들도 많다. 이들은 시장이 어떻든 그냥 본인들이 잘하는 투자를 꾸준히 했고, 본인들이 해야 하는 투자를 꾸준히 했다. 시장의 상황에 따라서 투자하는 방법, 규모, 전략 등은 변하고 보정되고 미세조정 될 수 있지만, VC라는 업의 본질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VC는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 막 시작하고 있다고 난 생각한다.

그리고 한 마디만 더. VC는 이제 끝났다고 하는 분들의 프로필을 대략 보면, 한 번도 제대로 펀드를 만들어서 투자를 해본 적이 없는 분들과 VC라는 타이틀은 있지만, 투자는 거의 안 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항상 그렇듯이, 이런 분들의 말은 그냥 무시하면 된다.

AI가 아니라 사업이다

나는 1999년도에 스탠포드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실리콘밸리에 처음 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이었지만, 이 동네는 한국과는 아주 다르고, 심지어 미국의 다른 지역과도 많이 다르다는 걸 당시에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창업가나 VC 네트워크가 전혀 없었지만, 벤처 관련 수업을 몇 개 들으면서, 스타트업과 entrepreneurship에 대한 관심이 많이 생겼고, 팀을 만들어 사업계획서도 만들어 보고, 이 동네의 네트워킹 행사에도 다니면서 다양한 사업계획서를 봤고, 이보다 더 다양한 창업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우습지만, 그땐 10명 중 9명의 창업가가 어떤 사업을 하냐고 물어보면, “인터넷 기반의” 사업을 하고 있고, 앞으로 세상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고 답변했다. 사업 계획서 10개 중 9개의 표지에는 “인터넷 기반의 혁신적 xxx”라는 설명이 있었고, 더 재미있는 건, 이런 피칭을 듣거나, 사업계획서를 보면 대부분 투자자들이 “와, 인터넷 기반이라고? 대박인데”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어떤 사업인지 보단, 인터넷 기반이라는 점이 이들에겐 훨씬 더 중요했다.

블록체인이 한창 유행할 때도 비슷한 현상을 볼 수 있었다. 어떤 사업을 하고 있냐고 물어보면, “블록체인 기반의” 혁신적인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하면서, “우린 다릅니다. 왜냐하면 이건 블록체인 기반이기 때문이죠.”라는 MSG를 항상 너무 많이 쳤고, 이들을 대하는 투자자들도 블록체인이라는 단어에 홀린 듯이 반응했다.

블록체인은 반짝하다가 메인스트림으로 진입하는 데 실패했지만, 인터넷 기반의 사업은 이제 사업의 기본이 됐다. 모든 사업은 인터넷 위에서 돌아가기 때문에 이제 그 누구도 “인터넷 기반의”라는 말을 안 한다. 그냥 모든 게 인터넷 기반이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 기반의 혁신적 사업”에 투자했던 VC 중, 가장 성공한 스타트업에 투자해서 가장 많은 돈을 벌었던 투자자들은 누구였을까? 바로 “인터넷 기반”이라는 말에 집착하지 않고, 그 인터넷 기반의 “사업”에 집중했던 사람들이다. 중요한 건, 어떤 사업이고, 어떤 방식으로 돈을 벌고, 돈을 정말 벌 수 있는 사업인지를 판단하고, 그 사업 모델이 인터넷을 만나면 얼마큼 더 커질 수 있는지를 볼 수 있는 능력이다. 인터넷 기반이라는 말에 현혹돼서 어떤 사업인진 제대로 파악도 안 하고 그냥 투자한 사람들은 대부분 크게 망했다.

블록체인 기반의 사업들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아직 살아있거나, 잘되고 있는 블록체인 스타트업은 비즈니스 모델이 탄탄한 곳들이다. 블록체인 기반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사업인지가 훨씬 더 중요하고, “블록체인 기반”보단 “사업”을 보고 투자한 VC들의 성적이 훨씬 더 좋다.

요새 나는 이 현상이 AI와 함께 다시 반복되고 있다는 걸 매일 느끼고 있다. 너무 많은 창업가들이 “AI 기반의” 사업을 하고 있고, 대부분의 회사 소개는 “우린 AI 기반의 xxx입니다. 이게 곧 미래이고, 우린 세상을 바꿀 것입니다.”로 시작한다. 그리고 여전히 너무 많은 VC들이 어떤 사업인지, 어떻게 돈을 버는지, 그리고 이게 말이 되는 사업인지를 파악하기보단, “AI” 그 자체에 더 많은 무게를 싣고 있다. 앞으로 2년 후면, 도입의 수준은 다르겠지만, 모든 사업은 AI를 활용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그 누구도 사업을 설명할 때 “AI 기반의 xxx”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 기반, AI 기반은 그냥 기본이 될 것이다.

세월이 바뀌고,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인터넷 기반의 사업, 블록체인 기반의 사업, AI 기반의 사업, 모두 인터넷, 블록체인, AI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업”이 중요한 거다. 유행어에 현혹되지 말고, 사업의 본질에 집중하자. 이건 창업가, 투자자, 모두에게 해당한다.

언젠가는

2주 전 열렸던 2025년도 마스터스 골프 대회를 드디어 로리 맥길로이가 우승했다. 맥길로이가 2009년도를 시작으로 그동안 17번이나 마스터스에 참가했는데, 탑텐은 여러 번 했고 준우승도 한 번 했지만, 우승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16년 만에 거머쥔 우승 트로피였고, 그 누구보다 우승을 간절히 원했던 선수였기 때문에, 이번 우승은 나에게도 굉장히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우승 인터뷰에서 맥길로이가 이런 말을 했다. “과연 내가 이 대회를 우승할 수 있을지 의문하기 시작했다.(I started to wonder if my time would ever come)”. 그가 울먹이면서 이 말을 하는 그 순간, 바로 우리가 투자한 창업가들의 모습이 그대로 떠올랐다.

맥길로이가 마스터스 대회에 첫 출전 했을 때의 나이가 18살이었다. 엄청난 거물 신인이었고, 그의 기세와 실력은 마스터스 대회를 한 10번은 우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첫 출전부터 우승을 노렸지만, 우승하지 못했을 때 그의 심정은, “첫 출전이니까 괜찮아. 나는 젊고 앞으로 기회는 너무 많아. 내년엔 우승해야지.” 정도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그다음 해에도 우승에 실패했다. 이번에도 “괜찮아. 난 아직 10대야. 내년에 이기면 돼.”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3년 차도 우승하지 못했고, 그다음에도 못 했고, 수년 동안 계속 우승에 실패했다. 어떤 해엔 우승에 가까이 갔지만, 반면에 형편없는 성적으로 마친 적도 많다. 그러면서 맥길로이도 20대가 됐고, 다시 30대가 됐다. 체력도 예전 같지가 않고, 민첩성과 시력도 떨어지면서 더 이상 “내년에 우승하면 돼.”라는 자신감보단, “내가 과연 우승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나는 맥길로이는 개인적으로 모르지만, 그가 지난 17년 동안 마스터스 대회에 대해서 느꼈던 이 감정의 변화는 아주 정확하게 이해한다. 나도 스트롱을 운영하면서 비슷한 과정을 겪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투자한 창업가들이 맥길로이가 거친 과정을 그대로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스트롱 이야기를 해보자. 2012년도에 우린 1호 펀드를 만들었고, 2015년도에 2호 펀드를 만들었다. VC를 처음 시작할 땐, TechCrunch나 WSJ에서 읽는 것처럼, 우리도 좋은 회사에 투자해서 50배, 100배의 수익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과 순진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투자를 시작하고, 첫 2년이 지났을 땐 “이 회사들은 아직 시간이 걸려. 조금만 더 지나면 엑싯이 한두 개는 나올 거야.”라는 희망과 자신감이 아직 충만했다. 그런데 3년, 그리고 4년이 지나면서 이 희망이 서서히 의구심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유니콘이 될 거로 생각했던 투자사들이 점점 더 싹수가 노래 보이면서, 과연 이 중 엑싯이 하나라도 나올지 스스로에게 의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의구심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조바심과 절망감으로 매우 빠르게 바뀌면서 “나는 과연 투자해서 돈을 벌 수 있을까? 나에게도 엑싯이라는게 생길까?”를 의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하는 투자가 맞다면 언젠가는 좋은 결실을 볼 것이라는 믿음을 억지로라도 스스로에게 주입하면서 계속 버텼고, 2017년도에 우리가 가장 먼저 투자했던 코빗이 좋은 엑싯을 했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쌓인 의구심이 다시 자신감과 희망으로 바뀌었고, 이후 우린 계속 좋은 투자를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나는 맥길로이가 겪었던 그 똑같은 희망 -> 의심 -> 절망, 변화의 과정을 거쳤고, 이게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 잘 이해하고 있다.

우리가 투자한 창업가들도 모두 다 이런 과정을 경험한다. 아마도 대부분 5년 정도 사업하면 좋은 엑싯을 하거나, 회사가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창업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업이라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첫 1년은 개고생인데, 이때만 해도 체력도 있고, 희망도 있고, 자신감도 있어서 “한 2년만 더 하면 잘할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한다. 제품도 열심히 만들고, 펀딩도 열심히 하고, 좋은 사람도 열심히 채용한다. 하지만, 잘 안된다. 제품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고객은 안 생기고, 수많은 투자자를 만나지만 그 누구도 돈은 안 주고, 아무도 우리 회사에 오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도 계속 희망과 자신감으로 몇 년을 더 버틴다. 딱 일 년만 더 하면 모든 게 잘될 거라는 생각으로. 이 과정을 거치면서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다. 회사는 안 망했지만, 창업 초기에 꿈꿨던 성장은 아직도 너무 멀리 있고, 이 10년 동안 창업가의 희망은 의구심으로 바뀌면서 “과연 내가 이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매일 하게 된다. 이게 요새 내가 거의 매일 경험하는 상황이다.

맥길로이가 걸어온 길과 그 감정의 변화를 나는 잘 알기 때문에, 내가 그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지만, 그의 이번 마스터스 우승은 감동 그 자체였다. 그는 또, “꿈이 있으면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다시 일어나서 도전해라. 계속 열심히 노력해라. 그러면 꿈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실은, 이 말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너무 뻔한 말이긴 하지만, 이 말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이 말을 할 자격이 없지만, 맥길로이는 이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스스로 얻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창업가들이 나에게 자주 물어본다. “대표님, 저도 이 미친 짓 한지가 이제 8년째인데요, 제가 과연 이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요?”
솔직히, 내가 대답하기에 굉장히 부담스럽고 어려운 질문이라서 나도 항상 생각을 많이 하는데, 그럼에도 내 대답은 항상 “지금까지 안 망했으면 뭔가는 제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계속 도전하고, 계속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입니다.”이다.

그 언젠가가 정말로 언제일진 나도 잘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할 수 있다는 믿음조차 없다면 우린 이 험난하고 미친 여정을 계속할 수 없을 것이다.

미친 사람들과 같이 일하기

미친 사람들. 이게 내가 요새 우리 투자사 창업가들과 만날 때마다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다.

우리가 투자한 창업가들은 본인들의 사업이 잘되든, 잘 안되든, 내가 지금까지 만난 모든 직장인 중 일 잘하는 순위를 매겨보면 상위 1%에 들어가는 분들이다. 일을 좀 하는 분들이 아니라, 오지게 잘하는 분들이고, 남이 만들어 놓은 회사에서 직장인 생활을 하면 날아다닐 정도로 야무지게, 그리고 진취적으로 일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결과를 만드는 그릿이 있는 분들이다. 아마도 이들이 대기업에 취직한다면, 대부분 초고속 승진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분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똑똑하고 일 잘하는 사람들이 그냥 직장 생활을 하면 아주 잘 살 텐데, 굳이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힘든 창업의 길을 택한 걸 보면 정말로 미친 사람들인 것 같다. 솔직히 미치지 않았다면 이 진흙탕에 스스로 들어가서, 나오지도 못하면서 수년 동안 뒹굴지 못할 것이다. 어쨌든 내가 봤을 땐, 머리가 돌지 않고선, 이들이 선택한 ‘남이 덜 다닌 길’로 절대로 안 갈 것인데, 우리는 이미 280명이 넘는 이런 미친 사람들에게 투자했다니, 이것도 미친 짓이긴 하다.

작년부터 올해 내내 너무 힘들어하는 창업가분들과 매일 만나고 있다. 어떤 분들은 우리가 투자한 지 1년이 안 됐지만, 어떤 분들은 우리가 옆에서 10년 이상 진흙탕에서 구르는 걸 보고 있는 분들이다. 항상 돈 없고, 항상 사람 없고, 항상 모든 게 쪼들리는 스타트업의 대표로 10년 동안 살아간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내 앞의 대표님은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 그들의 가족은 뭐라고 생각할까? 내가 이분들과 미팅하면 실시간으로 내 머릿속에서 계속 떠오르는 몇 가지 공통된 질문들이다.

어떤 분들은 너무 힘들어서 죽을 것 같다고 하고, 어떤 분들은 내 앞에서 펑펑 울기도 한다. 나는 감정이 좀 메마른 인간이지만, 이런 분들을 보면 같이 펑펑 울어 주고 싶을 정도로 안쓰럽다. 그리고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이들에게 그렇게 힘들면 그만하라고 한다. 우리가 투자한 회사의 대표에게 사업 그만하라는 말은 투자자로서는 아쉽지만, 같은 인간으로서는 최선을 다해서 인생을 살고 있는 분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참 신기한 건, 그렇게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그만하라고 해도 대부분 그 힘든 사업을 계속한다. 계속 한다고 잘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더 힘든 것 같은데도 계속한다. 죽을 만큼 힘들어서 매일 포기하고 싶지만, 반대로 죽을 만큼 재미있어서 계속하고 싶다고 말하는데, 이런 말을 나는 들을 때마다 이분들이 미친 사람인 건 확실하고, 여기에다가 변태가 아닐까 하는 의심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 미친 인간들을 너무 좋아한다. 이런 분들과 항상 같이 일하고, 힘들게 사업하는 걸 가까운 곳에서 보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VC라는 직업은 나에겐 세상에서 가장 큰 특권이자 특혜라고 생각한다. 누가 보면 하찮은 사업이지만, 바퀴벌레같이 절대로 죽지 않고, 스스로 뭔가를 해보겠다는 시도를 하는, 이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나는 정말 좋다. 원래 내 성향이 그냥 뭐든지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좋아했는데 – 나도 그런 편이다 – 초기 투자를 하면서 이런 사람들을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존경하고 사랑하게 됐다. 열심히 한다는 게 이렇게 글로 쓰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 세상에서 우리 창업가들만큼 열심히 사는 사람이 그렇게 많진 않다.

이번 주도 이런 미친 사람들과의 미팅으로 일정이 빡빡하다. 솔직히 이렇게 힘들어하는 분들과 만나는 게 나도 육체적, 심리적으로 기가 많이 빨려서 힘들지만, 동시에 너무너무 즐겁다. 하시는 사업이 모두 다 잘 되길 바라지만, 이 중 대부분 망할 것이고, 실은 본인들도 그걸 알고 있다. 그런데도 편안한 길을 버리고 남이 덜 다닌 진흙탕과 가시밭을 맨발로 걸어 다니면서 아프지만 너무 즐겁다는 이 미친 인간들을 어떻게 안 좋아할 수 있을까?

이 글을 다시 읽어보니 나도 이제 미친놈이 다 된 것 같다. 오늘도 모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