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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의 재정의

courage지난 몇 년 동안 책을 많이 안 읽었는데 한 6개월 전부터 독서를 다시 시작했다. 말콤글래드웰의 책들을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사람은 아는 만큼만 보인다는 말처럼 동일한 책이지만 과거에 경험이나 지식이 별로 없을 때랑 지금이랑은 읽었을 때 많은 차이가 났다. 책의 내용은 그대로지만, 내 지식이 조금 더 깊어졌고 내용을 흡수하는 능력이 질적으로 향상해서인지 더 많이 공감했다. 현재 글래드웰의 David and Goliath 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굉장히 흐뭇하게 읽고 있다. 챕터 하나하나가 주옥같고, 통찰력이 넘치는 책인 거 같다.

이 책에 ‘용기’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 글래드웰은 다음과 같은 예를 제시한다.
2차 대전 직전, 영국 정부는 독일군이 맘먹고 런던에 대해 공중폭격을 시작하면 영국이 완전히 초토화될 거라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윈스턴 처칠 수상은 이런 재난이 발생하면 60만 명의 사망자와 120만 명의 부상자가 발생할 것이며, 런던 시민 약 400만 명이 도심 외곽으로 피난 갈 것으로 예측했다. 폭격으로 인한 정신적인 피해는 극에 달할 것이기 때문에 영국은 런던 외곽에 정신병원까지 여러 개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1940년 가을 독일군은 실제로 런던에 엄청난 공중폭격을 하기 시작했다. 57일 연속 폭격을 시작으로 그 이후 8개월 동안 런던에 수 만개의 폭탄을 퍼 부었다. 피해는 참혹했다 – 4만 명 사망, 6만 4,000명 부상, 100만 개의 빌딩 파괴. 영국 정부가 우려하던 악몽이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영국이 우려하던 런던 시민들의 반응에 대한 예측만은 완전히 빗나갔다.
우려했던 런던 시민들의 극심한 공포와 공황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외곽에 준비했던 정신병원들을 찾는 사람들도 없었다. 폭격이 지속되고 그 강도는 더욱 심해졌지만, 오히려 런던 시민들은 동요하지 않고 더욱더 평온을 유지했다. 그들은 오히려 폭격에 대해 덤덤해지고 별거 아니라는 생각까지 하게 될 정도였다.

아무리 그래도 전쟁이고, 죽을 수도 있는데 왜 이런 예상과는 반대의 현상이 일어났을까? 2차 대전이 끝난 후 캐나다 정신과 의사 맥커디는 이 현상을 연구하면서, 폭탄이 떨어진 피해지역의 시민들을 세 분류로 구분해봤다.

첫 번째는 사망자들이다. 당연한 거지만 이들한테 이 폭격의 경험은 매우 참혹하다(이미 죽어서 그 참혹함을 남들에게 전달할 수는 없겠지만).

두 번째는 ‘간발의 차이(=near miss)’ 라고 한다. 이들은 폭탄이 명중하지는 않았지만, 그에 상응한 피해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던 사람들이다. 폭탄이 떨어지는 걸 목격하고, 파괴력을 직접 경험하고, 다른 사람들이 죽는 걸 목격한다. 그리고 이들이 경험하고 본 건 미래에 지울 수 없는 큰 쇼크로 남는다.

가장 중요한, 그리고 위의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세 번째 부류는 ‘큰 차이(=remote miss)’ 이다. 이들은 사이렌 소리를 듣고, 공중에 떠 있는 폭격기들을 목격하고, 폭탄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폭탄은 멀리 떨어져서 이 ‘리모트미스’ 군은 그 어떤 피해도 받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한테 이 무시무시한 상황은 완전 반대의 작용을 한다. 이미 폭격을 생존했기 때문에 두 번째 또는 세 번째 폭격이 일어나면 폭격과 연관되는 내부 감정은 극심한 공포가 아닌 ‘불사신의 맛이 약간 가미된 흥분감’ 과도 같다고 한다.

독일군의 폭격이 시작되기 전에는 공포에 떨던 런던 시민들이었지만 폭격이 시작되고 끝나고, 다시 시작되고 끝나고를 반복하면서 near miss보다는 remote miss들이 많이 생존했다. 그리고 이들은 “야, 이거 별거 아니네. 폭탄 떨어져도 살아남을 수 있네.”라는 생각을 하면서 용기가 생긴 것이다.

글래드웰은 ‘용기’를 다음과 같이 정의(재정의) 한다.

힘든 상황에서 자신을 용감하게 만드는 용기는 선천적인 게 아니다. 굉장히 힘든 상황을 극복했는데, 되돌아보니 이 상황이 생각만큼 힘들지 않았다고 느낄 때, 그때 후천적으로 습득하는 게 용기이다.

이 부분을 읽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해봤다. 솔직히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창업해서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거나,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거 자체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도 무섭지만, 그 길을 한발씩 움직일 때마다 결정을 해야 하는데 이런 결정이 창업가와 그의 팀원들을 어떤 힘든 상황으로 몰아갈지 항상 두렵다. 대부분의 결정은 틀리고, 초기 스타트업은 휘청거릴 것이다. 그럴 때마다 죽을 각오로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서 생존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런 결정을 더욱더 많이 할수록, 그리고 계속 죽지 않고 살아남을수록 새로운 용기가 생긴다. 왜냐하면, 망할 거 같았지만 망하지 않고 살아남았다면, 그리고 그 상황을 되돌아보면서 “죽을 거 같았는데 살아남았구나. 별거 아니네!”라고 생각할 때마다 창업가는 더욱더 용감하고 강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나도 이 프레임워크를 개인적인 경험에 적용해보면 공감한다. 전에 몇 번 포스팅한 적이 있는데 뮤직쉐이크 시절 2009년은 나한테 – 당시에는 – 매우 힘든 시간이었다. 12개월 동안 수입 한 푼 없이 버텼는데 그땐 정말 죽을 거 같았지만, 막상 그 힘든 상황을 극복한 후에 내가 느낀 건 마치 내가 불사신이라도 된 그런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이 물가 높은 LA에서도 3 가족이(=사람 2명과 개 한마리) 1년 동안 수입 한 푼 없이 살았는데, 앞으로 내가 뭘 못하겠냐는 생각도 했던 거 같다. 글래드웰의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보면, 나는 그 힘든 상황을 극복했기 때문에 그 상황이 생각만큼 힘들지 않다고 느꼈던 것이고, 이로 인해서 용기가 생긴 것이다. 지금도 나는 계속 남들이 보면 참 쉽지 않은 새로운 일들을 벌이고 있는데, 2009년을 버티면서 습득한 용기 때문인지 별로 걱정이 되지는 않는다. 이 또한 주워 담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용기를 습득하려면 힘든 상황들을 많이 극복해야 한다. 물론, 그런 상황 앞에서 무릎 꿇고 무너지면 안 된다.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젊었을 때부터 과감한 결정을 하고 힘든 상황들을 경험하면서 극복하는 걸 권장한다. 그래야지 더 큰 일을 하기 위한 더 큰 용기를 습득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near miss를 경험해서 큰 충격을 받더라도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회복 할 수 있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힘든 결정을 하고 힘든 상황을 경험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나도 20대 초반에 위에서 말한 뮤직쉐이크 상황을 경험했다면 지금쯤 더 큰 용기가 생겨서 더 많은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이미지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zkIWHh5XhGg>

기억에 남는 회사

요새 예능프로 ‘복면가왕’을 즐겨 보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시간 날때마다 다시보기 기능으로 그동안 못 봤던 편들을 와이프랑 거의 다 봤다. 내가 즐겨 듣던 옛날 노래들을 많이 들을 수 있어서 좋고, 이젠 흐린기억속에만 존재하는 가수나 연예인들이 가면을 벗고 나타나면 그렇게 반가울수가 없다. 더 이상 TV에서 활동하지 않는 가수들 또는 오랜 공백을 깨고 다시 컴백을 준비하는 가수들이 가면을 벗으면서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는데 “저라는 가수는 모르셔도 됩니다. 하지만, 제 노래는 기억해 주시면 좋겠어요. ‘아 저런 노래가 있었지’ 정도만 기억해 주시면 죽을때까지 행복할 거예요” 인거 같다.

내 주변의 좋은 창업가들도 대부분 이 복면가수들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위대한 창업가로서 자신들의 이름을 널리 알리거나 기억에 남기기 위해서 인생을 살고 있다기 보다는, 시대를 초월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일 하고 있다. 내가 아는 이들은 분명히 후세에 사람들이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기 보다는 이들이 만들어 놓은 기업을 기억해주길 바랄것이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싶다. 솔직히 20년, 30년 후에 나는 뭘하고 있을지 또는 그때까지 스트롱벤처스가 살아 있을지 나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가 투자한 회사들이 잘 되서 그때까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면 좋겠다. 현재 우리 계획대로라면 20년 후에는 우리가 투자한 회사들이 400개가 넘을 것이다. 이 중 많은 회사들이 크게 성장해서 앞으로 스트롱벤처스나 배기홍은 기억하지 못해도, “아, 그런 좋은 회사에 투자한 VC 구나” 정도는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나도 기억해 주면 완전 땡큐다.

Review를 통한 불공평 해소

얼마 전에 택시를 타고 강남에서 서울역까지 넘어갈 일이 있었다. 서울에서 좋지 않은 택시경험을 많이 했지만 이건 최악이었다. 좌석벨트 미착용은 이제 나한테는 오히려 정상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데, 이 기사분은 운전 자체가 저질이었다. 초급가속, 초급정지, 멀미가 날 정도의 끼여들기는 정말 지옥같아서 한 마디 했지만 역시 돌아오는 건 침묵과 더 거친 보복성 운전이었다. 운전을 업으로 하는, 운전을 가장 잘 해야하는 택시 기사분의 수준미달 운전실력에 화가 났다. 도대체 이럴땐 어디에 하소연하고 아까운 내 돈은 어디서 보상받을 수 있을까?

제대로 된 평가(=review)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나마 카카오택시는 별점이라도 줄 수 있지만, 이 또한 많이 부족하다. 별점 2개와 별점 3개의 차이는 상당히 애매하다. 만약에 승객들이 택시기사를 고를 수 있다면, 단순 별점을 가지고 좋은 기사인지 아닌지 판단하긴 힘들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했으면, 돈을 낸 손님은 서비스에 대한 자세하고 공정한 평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어야 하는데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서비스들은 이런 평가 기회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현재 사용되고 있는 일부 평가시스템들이 완벽하지는 않다. 영혼없는 – 주로 리워드를 노린 – 평가도 많고, 알바생들을 고용해서 평가를 왜곡시키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리 내가 돈을 내고 택시를 타는 손님이라고 나만 택시기사를 평가하는 건 공평하지 못하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분들도 손님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손님이나 서비스 제공자나 서로에 대한 평가를 전혀 못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현실이 많은 옵션 중 특정 서비스를 선택하고 이에 대해서 돈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손님에게 더 불리하게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얼마전에 투자한 홈케어 O2O 서비스 닥터하우스도 이와 비슷한 평가시스템을 도입할 것이다. 집수리는 택시보다 훨씬 더 비싸고 규모가 크다. 또한, 택시같이 한번 타고 끝나는게 아니라 이사가기 전까지는 수리한 집에서 온 가족이 계속 살아야 하기 때문에 삶의 질과도 직결된다(뭐, 택시승차는 삶의 질 뿐만 아니라 ‘삶’ 자체가 왔다갔다 하긴한다). 그런데 막상 공사를 맡긴 업체나 기술자가 일을 엉망으로 해놓고 “원래 그 공사는 그렇게 하는거예요” 라면서 나 몰라라 하면 문제가 커진다. 이런 업체나 기술자는 다시는 이 바닥에서 일을 못 하게 해야하며,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이 바로 제대로 된 평가 시스템이다.

제대로 만든 평가 시스템은 바이어와 셀러에게 동등한 권리를 줄 수 있는 공평성을 시장에 제공할 수 있다. 물론, 좋은 시스템을 바이어와 셀러가 좋은 의도로 잘 사용해야 한다.

불필요한 욕심

스타트업 생태계가 발전할수록 과거에는 찾을수 없던 좋은 회사들이 더 많이 창업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경쟁 또한 치열해지고, 이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스타트업들이 과거에 비해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하고 있다. 우리는 펀드 자체가 크지 않고, 투자하는 시점도 초기여서 소액투자를 전문적으로 한다. 하지만 과거보다는 회사들이 더 많은 펀딩을 필요로 하는 트렌드에 발맞추기 위해서 최근에는 다른 투자자들과 공동투자를 한 사례가 많이 있다.

공동투자를 하는 이유는 스타트업한테 도움을 줄 수 있는 투자자들을 더 많이 참여시키기 위한 전략적인 면과 투자유치금액 자체가 너무 커서 공동부담하기 위한 정량적인 면이 있다. 전에 포스팅을 한 적이 있는데, 우리는 주로 투자한 회사들의 첫번째 투자자이다. 우리가 스타트업들을 발굴하고, 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투자조건을 협의한 후에 다른 투자자들에게 회사를 소개하고 공동투자기회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최근에 공동투자를 여러번 하면서 우리가 먼저 발굴한 좋은 회사들을 다른 투자자들에게 소개함으로써 굳이 우리 지분율을 낮출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특히 우리가 소개한 공동투자자들이 우리보다 주로 많은 금액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더 많은 지분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때는 그냥 우리만 단독으로 좋은 조건에 투자해서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하고, 그 다음 라운드에 다른 투자자들을 더 높은 밸류에이션에 참여시킬까라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조금만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이건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불필요한 욕심이라는걸 깨닫는다. 우리가 투자할 수 있는 금액은 한정되어 있다. 몇 년 전에는 이 금액만 가지고도 꽤 오래 버티면서 제대로 된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이걸로 괜찮은 후속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위에서 말했듯이 경쟁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좋은 스타트업들이 더 많이 창업되고 있고, 이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더욱 더 좋은 제품이 필요하다. 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더 좋은 개발인력이 필요하고 과거보다 더 많은 펀딩이 필요하다.

우리가 단독으로 투자하면 더 많은 지분율을 확보해서 회사가 잘 되면 더 큰 돈을 벌 수 있는건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의 단독 투자금만으로 개발인력을 채용하고,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기에는 모자라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에는 공동투자자들과 함께 투자규모를 더 키우는게 모두를 위해 현명하다. 공동투자를 하면 내 지분율은 낮아지지만 회사가 살아남아서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확률은 훨씬 높아지기 때문이다.

내가 항상 강조하듯 1억원 짜리 회사의 지분 30%를 갖는거 보다 1,000억원짜리 회사의 3%를 갖는게 훨씬 더 좋다.

잘 부탁드립니다

8265590387_cefbec3838_b오랫동안 많은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대화하던 회사와 얼마전에 투자계약을 마무리 했다. 투자 금액과는 상관없이 투자를 하는 회사와 투자를 받는 회사간에 계약을 한다는건 항상 어렵고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지난 2개월 동안 우리는 상당히 많은 한국과 미국의 스타트업들에 투자를 했는데, 양사가 계약서에 서명하고 창업가와 악수를 하면서 내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바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다.

계약하는 자리에 나와 같이 있던 어떤 분이 돈이 있는 투자자가 왜 피투자자한테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하는지 여쭤봤다. 오히려 돈을 받는 사람이 주는 사람한테 그 말을 해야하는게 아니냐는 말과 함께. 얼핏보면 이 말이 맞아 보인다 – 돈 받는 사람이 돈 주는 사람한테 고마워해야하고,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하는게. 하지만, 투자한 회사가 망하거나 또는 성공적으로 exit한 경험이 있는 투자자라면 잘 알 것이다. 투자계약을 하고 투자금 납입이 되는 그 순간부터는 투자자의 운명과 미래는 바로 창업가와 그의 팀에 달려있다는 걸.

현명한 투자자라면 돈 뿐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가치를 스타트업에 제공해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이상의 가치를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특정 비즈니스에 대한 지식이 많은 투자자는 전략이나 제품개발에 실질적인 피드백과 조언을 제공하고, 본인의 경험을 기반으로 스타트업의 시행착오를 최소화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 이 비즈니스를 잘 모르는 투자자들도 좋은 인맥을 소개해주고 자신들의 생각과 의견을 제공해 준다. 그런데 나는 잘 안다. 나같은 투자자들이 제공하는건 제 3자의 의견과 제안이며, 실제 결정은 우리가 투자한 회사의 대표이사와 창업팀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이들이 올바른 결정을 해야지만 우리도 잘 되고, 우리가 잘 되야지만 우리 펀드에 출자한 출자자분들도(=LP) 성공하기 때문에 이 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건 스타트업들의 성공이다.

절대로 그렇지 않지만, 외부에서 볼때는 마치 우리같은 투자자는 ‘갑’이고 투자를 받는 창업가들은 ‘을’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실제는 그 반대이다). 아쉬운 건 돈을 필요로 하는 스타트업들이기 때문에 이들이 투자자들에게 잘 보여야한다고 생각하는 시각 때문인거 같다. 뭐, 그럴수도 있다. 하지만, 투자가 집행된 이후 투자자들의 미래는 그들이 투자한 스타트업한테 달려있다. 투자자들은 투자한 스타트업이라는 배에 탄 것이고, 이들은 험한 파도가 치는 거친 바다를 이 배의 선장과 그의 선원들이 잘 항해해서 무사히 육지까지 갈 수 있길 기도하는 수 밖에 없다. 가끔 선장한테 쓴소리도 하고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겠지만 결국 배를 모는건 선장과 그의 팀이다.

그래서 우리 투자사들에게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미지 출처 = http://forums.elderscrollsonline.com/en/discussion/156579/shooting-star/p3>